"빙엔"의 聖女 "힐데가르트"(Hildegard von Bingen)를 뵈러 가다.
천둥소리에 잠을 깬다. 빗소리가 심상치 않다.
새벽 01시 40분이다.서울로는 08시 40분.
에어콘을 틀어놓고 잔 탓인지 실내가 썰렁하다.
조절기를 30도로 맞추는데도 여전히 찬바람이 나온다.
아예 꺼버리고 다시 잠이 든다.
비가 오니 어찌 될까 걱정을 하다 깜박 잠이들어 비몽사몽(非夢似夢)간에 일어나 짐을 꾸린다.
독일에서의 첫 식사.
생각대로 내가 좋아하는 음식들만 있다.
여러가지 치즈와 햄, 쏘시지, 빵, 스크럼블, 그리고 요그르트,,,,,
대체로 음식이 짜지만 맛이 좋았다.
가이드 김사장님이 이곳의 음식이 특히 짜다고 누누히 말한다.
車를 타면 안전벨트, 식사 때면 음식이 짜다,,,,,,,,
8시에 車를 타고 "뤼데스하임"으로 향한다.
정식 이름은 "뤼데스하임 암 라인"(Rüdesheim Am Rhein)이란다.
"프랑크푸르트"에서 서쪽으로 약 80K 떨어진 "라인"(Rhein)江가에 있는 마을이다.
다행히 비는 점차 가늘어져 움직이는데 크게 문제가 되지는 않을듯 했다.
車에서 보는 "라인"(Rhine) 江.
9시경이 되어서 도착한 곳은 "뤼데스하임"의"힐데가르트"(Hildegard) 修道院의 부속聖堂이다.
그런데 한국에서 남들이 가 봤다는 사진과 모습이 다르다. 뭘까?
나중에 알고보니 독일에는 "힐데가르트"성녀(聖女)를 주보성인(主保 聖人)으로 모시는 聖堂이 15개나 된다고 한다.
그중에 "루페르츠베르크"에 있는 "Bingerbrück "本堂과 "아이빙엔"(Eibingen) 本堂이 오래 된 聖堂이고
그외의 大部分은 2차대전(2次大戰) 以後에 設立이 됐다고 한다.
그러나 聖女의 유해를 모신곳은 이곳이라고 한다.
우리가 간 곳이 "Limburg"修道院의 부속聖堂으로 이곳이 聖女의 유해(遺骸)가 모셔진 곳이다.
聖堂 건물 코너에 세워진 聖女의 像.
聖堂 문 앞 정원에 세워져 있는 聖女의 像.
"힐데가르트 폰 빙엔"(Hildegard von Bingen)
즉 "빙엔"의 聖女 "힐데가르트"(1098 ~ 1179.09.17).
中世 독일의 "베네딕트" 수도회 수녀원 원장으로 그분을 지칭하는 수식어는 대단히 많다.
예술가이며, 작가이며, 카운셀러이며, 언어학자이며, 자연과학자이며, 과학자이며
철학자이며, 의사이며, 약초학자이며, 시인이며, 작곡가이며, 예언자다.
"성녀 힐데가르트"는 8세 때 "디지보덴베르크"(Disibodenberg)에 있는 베네딕토 수녀회에서 교육을 받았다.
12세 때부터 은수생활을 시작하고, 14세 즈음에 수도 서원을 하였다. 38세에 수녀원장으로 선출되었다.
원장으로 있던 중 43세 되던 해 영적 체험을 시작한다.
성녀는
"하늘이 열리고 빛나는 불길 같은 빛이 내려와 머리와 심장을 가득 채웠고,
가슴이 불길에 휩싸이는 듯 했다."고 기록하였다.
처음에는 환시에 대해 의문을 품고, 갈등하며 거부하였지만
지도신부와 교구가 환시를 인정한 후 예언자의 소명을 받아들였다.
에우제니오 3세 교황과 주교들도 힐데가르트의 글을 읽은 후 감격하여
성녀의 사적 계시를 인정하고, 환시를 잘 기록해 두라고 격려하였다.
1148년 빙엔의 "루페르츠베르크"에, 그리고 1165년에는 아이빙엔에 수녀원을 설립하였다.
베네딕토 규칙에 충실히 따르며 수녀들에게 가르침을 주었고, 전례를 위한 노래를 작곡하였다.
수녀들을 위한 여러 강론집을 남겼고, 자신의 저서 "쉬비아스"(Scivias)를 바탕으로 한 음악극을 작곡하기도 했다.
체력이 약한 편이었지만 독일 전역을 네 번이나 순회하며 하느님의 말씀을 선포하고 자신의 환시에 대해 설교하였다.
1179년 9월 17일 81세로 선종하였다.
"힐데가르트"는 공식적으로 시성(諡聖)된 적이 없지만 독일교회에서 일찍이 성인으로 공경받아왔으며,
2012년 성인 목록에 공식적으로 기록되었고, 그 해 "아빌라의 성 요한"과 함께 교회학자로 선포되었다.
성녀는 여성들의 교육과 사회활동이 제한되었던 중세 시대에 과학, 식물학, 의학 등에 대한 저서는 물론
77편의 시, 36점의 그림을 남겼으며, 음악사에서도 최초의 여성 작곡가로 간주된다.
약 300통의 편지를 통해 신자들과 수도자들은 물론 성직자, 정치인에게까지 조언을 남기기도 했다.
聖女의 像 앞에서 바라본 聖堂의 入口.
GrabesKirche der Heiligen Hildegard(1179)라고 써 있다.
즉 "힐데가르트"聖女의 遺骸가 있는 "聖墓敎會"라는 뜻일게다.
聖堂 入口 門.
우리는 이곳에서 9 : 30分에 이번 순례(巡禮)의 첫미사를 드렸다.
"Porta"는 길(道)라는 뜻 같은데 무엇을 뜻하는지 모르겠다.
聖堂 內部 全景.
미사가 끝 난후 이곳 院長 修女님으로부터 "힐테가르트" 聖女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다.
聖女가 집필한 책을 보면 宗敎, 音樂, 醫術, 宇宙學등 거의 모든 분야에 능통하셨다고 한다.
그러나 그분이 聖人으로 추대된 것은 재작년인 2012년 10월 7일 敎皇베네딕토 16世에 의해서란다.
敎會學者(Doctor Ecclesiae Universalis)로 宣言되며 聖人品에 올랐다고 한다.
그의 聖 遺物은 "아이블링"(Aibling)의 巡禮聖堂에 있다고 한다.
원장 수녀님과 함께.
祭臺위의 그림은 1141년 聖女가 "주님의 길"(Scivias Domini)이란 책을 집필하면서
직접 그린 삽화(揷畵)를 확대한 것으로 "三位一體"를 象徵的으로 表現하는 것이라고 한다.
성녀(聖女)의 환시(幻視)를 그린 도판들.
"힐데가르트" 聖女의 棺.
院長修女님의 설명을 들은 다음 祭臺 뒤에 있는 "힐데가르트" 聖女의 遺骸가 든 棺 앞에 둘러서서 잠시 기도를 드렸다.
聖堂 內部를 둘러본다.
흔히 野外에서 볼 수있는 풀들이 藥草가 될 수 있다는 뜻을 담은 "스테인드 그라스".
"힐데가르트"聖女는 모든 植物이나 鑛物로 病을 治療할 수 있다고 하셨다 한다.
그의 이러한 주장을 담은 책이 근대 독일의 藥草學의 紀元이 됐다고 한다.
저기에 그려진 몇가지 植物들은 이번 巡禮期間중 사진으로 남길 수가 있었다.
聖堂의 스테인드 글라스.
聖堂 왼편에 있는 수도자의 유해를 모신 곳.
"Sta.Gudula V"(聖 구둘라)는 누구일까?
그녀는 "벨기에"의 聖女라고 한다. 끝의 "V" 는 童貞女를 뜻한단다.
그녀의 遺骸는 "모르셀"(Moorsel)聖堂에 안치되었다가 978년 브뤼셀로 옮겨졌고,
1047년에는 聖 미카엘(Michael) 聖堂에 안치되었다.
그러나 1579년 "칼빈주의자"들에 의해 그녀의 墓는 파괴되었고 遺骸도 훼손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그녀의 遺骸 一部가 여기까지 와 있다는 것일까?
"힐데가르트" 聖女.
"聖 요셉"에게 바치는 祭臺.
聖堂 뒤편의 모습.
문 입구의 스테인드글라스.
"Scivias"는 "힐데가르트" 聖女가 경험한 26가지 환시를 자세히 기록한 것이라고 하며,
"Scito vias"의 줄임말로 "주님의 길을 알라"(Know the Ways of the Lord Domini)
라는 뜻이라고 한다.
聖堂 윗쪽 언덕에 잘 가꾸어진 墓地들이 있다.
이들은 정말 故人들을 잘 모신다.
꽃은 항상 피어있고, 잘 정돈되어 있으며, 故人을 기리는 촛불은 거의 모두 켜져있다.
우리가 요즘 명절 때나 찾아가는 산소에 비해 정말 故人을 추모하는 모습이 잘 보인다.
그 뒤로는 포도밭이 끝없이 펼쳐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