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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광수<사진> 연세대 정보대학원 교수가
'UX(User eXperience)로 보는 현재와 미래'라는 주제로 펼친 위비 지식 콘서트 내용을 요약했다.
퀴즈를 하나 내보겠다.
A사와 B사는 비슷한 서비스를 제공한다. 과정은 조금 다르지만, 소비자가 얻는 편익은 같다.
가격은 A사 1만원, B사 250원이다.
과연 여러분은 어느 걸 선택하겠는가.
대부분 B사를 고를 것 같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A는 퀵서비스, B는 우체국이다.
전 세계적으로 우체국은 다 무너지고 있다. 사용자 경험(UX·UsereXperience)과 연관이 있다.
올해 성균관대에 사표를 내고 연세대로 옮겨올 때 사표를 우편으로 보내달라고 하더라. 당황했다.
우체국에 가본 기억이 가물가물하기 때문이다. 고민 끝에 조교에게 부탁했더니 이 친구도 모르더라.
결국 2만8000원 주고 퀵서비스를 불렀다.
우체국에서는 250원짜리 우표 1장 붙이면 되는데 안 간다.
우리는 비즈니스를 할 때 가격을 갖고 싸운다.
그런데 정작 소비자에겐 꼭 가격이 중요하지 않을 때가 있다.
사용자 경험이 갖는 묘미가 여기에 있다.
기업의 전략에서 가격의 중요성은 간과할 수 없고, 소비자 구매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그러나 정작 소비자가 판단하는 가격의 의미가 제품과 서비스의 '사용 경험에 따라 지불하는 가치'라는 점은 쉽게 간과한다.
소비자는 가격이 아니라 만족에 민감
비즈니스 모델 관점에서 UX를 분석해보자. 한쪽에는 제품과 서비스의 총비용이 있고,
반대쪽에는 소비자의 만족이 있다고 가정하자.
그렇다면 양쪽 사이 어딘가에 소비자가 지불하고자 하는 심리적 가격 수준이 자리 잡고 있다.
이를 소비자의 지불 의사 수준이라 부른다. 기업에서 이보다 낮은 상품 가격을 제시하면 소비자는 싸게 느끼지만,
높으면 비싸다고 느낀다.
결국 기업 이윤은 비용과 가격 사이에서 결정되는데, 이윤을 높이려면 비용을 낮추거나,
소비자 만족을 높여서 두 지점 간 거리를 벌려야 한다.
우리 산업계는 지금까지 비용 낮추는 데만 골몰했지, 만족을 높이는 데는 상대적으로 소홀했다.
소비자 만족을 높이는 사업 전략이나 상품 기획은 우리 기업들의 놀라운 성장세에 비교하면 안타까운 수준에 머물고 있다.
UX의 중요성을 사례를 통해 살펴보자. 노키아는 역사상 가장 많은 휴대전화를 팔아치운 기업이었다.
판매량 기준으로 역대 최다 판매 휴대전화 10대를 뽑으면 6대가 노키아 제품이었다. 그
런데 순식간에 무너졌다. 왜 그랬을까. 사용자 경험을 무시하고 제조업 중심 관점으로 일관하는 기업 문화가 파국을 불렀다.
단적인 예로 노키아는 휴대전화 이름을 '노키아 1100', '노키아 2200', '노키아 3300' 식으로 붙였다.
이런 노키아를 모토롤라는 '레이저', LG는 '초콜릿폰', 애플은 '아이폰', 삼성은 '갤럭시폰'으로 공략했다.
과연 이들이 소프트웨어나 하드웨어 기술에서 우위를 점했기 때문에 노키아를 무너뜨렸을까.
인스타그램은 UX에 예민했다.
트위터와 페이스북, 인스타그램을 사진 올리는 기능만으로 비교하자면, 트위터에서는 사진을 보려면 7번 클릭해야 한다.
손가락으로 화면을 7번 쳐야 한다. 페이스북은 6번이었는데, 4번으로 줄였다. 인스타그램은 2~3번이면 된다.
손가락 톡톡 한 번 두드리는 데 0.1초도 안 걸린다. 7번 쳐봤자 1.4~2.8초다.
인스타그램은 1초 빠른 셈인데 이게 결정적인 차이를 부른다. 그래서 페이스북이 인스타그램을 무려 1조원에 인수했다.
애플과 삼성의 피 말리는 특허 소송에서 주요한 쟁점은 스마트폰 외각이 꺾인 정도나 앱을 배열하는 구조, 사용자 인터페이스 등
대부분 UX와 관련이 있는 것들이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컴퓨터를 쓰려면 문자 명령어를 외워야 했던 도스(DOS)나 유닉스(Unix) 체제를 UX 관점에서
재편한 윈도 운영체제(OS)로 혁신하면서 비약적인 발전을 구가했다.
그런데 윈도 비스타나 윈도 8은 UX를 무시하면서 몰락의 길을 걷고 있다.
윈도 8은 전통적으로 윈도 초기 화면 왼쪽 밑에 있는 조그만 '시작' 버튼을 없앴다.
나름대로 메뉴 구조를 연구해 편리하게 구성해서 타일처럼 화면에 나열해 놓았지만 '시작' 버튼을 없앤 것 때문에 사용자들은
불편을 호소했다. 사실 '시작' 버튼은 기술이나 디자인 관점에서 보면 대단한 건 아니지만,
사용자에게는 일터로 들어가는 현관문 같은 긴요한 역할을 한다.
마이크로소프트는 모바일 세계와 연동한다는 전략적 이유에서 이 버튼을 없앴는데, 도리어 이게 사용자들 불만을 가져온 것이다.
혁신가치는 구매가 아니라 사용에서 출발
사용자 경험은 '구매'보다 '사용'이 중요한 혁신가치가 되면서 빛나고 있다.
지난해 60조원을 벌어들인 구글에서 뭔가를 직접 구매한 소비자는 사실 거의 없다.
대부분 무료로 검색엔진을 쓰고, 구글 메일과 캘린더, 구글 문서도 무료다.
하지만 구글은 이를 통해 확보한 사용자가 많기 때문에, 광고 키워드를 중심으로 막대한 수익을 거둘 수 있었다.
최근 소프트웨어 기술을 기반으로 완성되는 UX 전략은 '공유(共有) 경제'라는 말을 타고 새로운 질서를 창조하고 있다.
우버(Uber)는 택시를 타려면 길거리에서 기다리다가 손들어서 세워야 하는 번거로움, 더구나 잘 잡히지도 않는다는
사용자 불만에서 사업을 착안했다.
우버는 UX 가치가 다르다.
스마트폰 우버 앱을 클릭하면, 누가 운전하는 무슨 차가 어디서 어떻게 오는지 다 볼 수 있다.
에쿠스나 벤츠 같은 최고급 차량을 제공하고, 정장을 차려입은 운전기사가 마치 개인 기사처럼 행동한다.
시쳇말로 '뽀다구' 나는 사용 경험을 제공하는 것이다.
요금 계산하면서 많이 나왔다느니 적다느니 현금이니 카드니 하는 실랑이도 아예 없다.
우버의 비즈니스 모델이 흥미로운 점은, 어차피 고급 차량 유휴 시간을 이용하는 것이니,
비용이라 해봤자 감가상각비와 인건비 그리고 기름값 정도밖에 없다는 점이다.
우버 입장에서는 차량을 늘리면서 드는 비용은 거의 없고 영(zero)에 가깝다.
앞서 언급한 비즈니스 모델 기본 공식에서 분석해 보면, 비용 쪽은 극단적으로 낮으면서도,
소비자에겐 프리미엄급 만족을 제공하기 때문에 소비자의 지불 의사 수준을 높일 수 있고 높은 가격을 결정할 수 있다.
소비자의 본성과 욕구를 과학적으로 이해해야
UX 전략은 실상 신비롭거나 대단한 게 아니다.
최종 소비자가 가진 본성과 욕구에 대한 과학적 이해를 기반으로 현실의 상품을 기획하고, 기술을 개발하고,
유통하는 것이 중요하다. 혁신도 마찬가지다.
어떠한 혁신도 소비자가 수용하지 않는다면 성공할 수 없다.
그렇기에 어떻게, 무엇이 인간을 편리하고 유용하게 '느끼게' 하는지 이해해야 한다.
그래서 사용 경험 전략은 비즈니스의 기본 중의 기본이며, 필요조건이고 충분조건이라 할 수 있다.
우리가 운영하는 UX 연구실은 융합의 표본이다.
인지과학, 정보시스템, 마케팅, 전자, 심리학, 광고, 디자인 등을 전공한 학생들이 섞여 있다.
기본적으로 사람들 마음에 대해 연구한다.
과학적으로 이 사람들이 왜 이런 생각을 하는지, 시각은 어떻게 작동하고, 행동은 어떻게 나타나는지 질문을 던진다.
뇌파를 측정하고 아키텍처나 UI 설계 개발, 상호 소통하는 리테일숍도 만든다. 연구실 360도를 다 스크린으로 만들고 있다.
그동안 국내 기업들은 인간의 심리와 욕망을 구현하는 UX 전략을 상당수 무시해 왔다.
선도적인 기업 제품과 서비스를 벤치마킹하면서 "이거 해, 저거 해"라는 임원 지시와 일사불란한 실행을 통해 빠른
추격자(fast follower) 내지는 카피캣(copycat) 수법으로 세계시장을 분할했지만, 이제는 추진력을 기대하기 어렵다.
이제 불편한 과거는 씻어내고 새로운 도약을 준비해야 한다.
두려운 건 자본력, 기술력, 노동력, 그리고 소비력까지 네 박자를 무장하고 세계를 공격하는 중국 기업들이다.
이런 각축전에서 UX 전략이 가지는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인간 욕구(needs)는 변하지 않는다.
주권자인 이용자·소비자 관점에서 구조를 파악해야 한다.
가볍게, 쉽게, 재밌게 그리고 함께 UX를 만들고 품는 자가 세상을 가지는 시대가 왔다.
평소 가장 좋아하는 말로 강의를 마칠까 한다.
아리아나 허핑턴 허핑턴포스트 사장이 위클리비즈 인터뷰에서 했던 말인데
'천사가 하늘을 날 수 있는 이유는 마음이 가볍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