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식장에 다녀와서
이른 봄날의 일요일 아침이다, 두근거리는 가슴을 안고 대전에 있는 혼례식장으로 향했다.
우리 형제들은 신부 측의 외가 편으로 참석한 것이다.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약 26년 전에 저세상으로 가버린 시누이의 딸, 6살 꼬마 소녀가 32살이 되어 시집을 간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그동안 시누 남편은 재가하여 새살림을 차리고 잘살겠거니 하고 소식조차 끊어 버리고 잊고 살았는데 갑자기 간접적으로 소식을 받고 우리 가족은 내심 충격을 받기도 했다.
그동안 아빠 혼자서 남매를 키우며 동맥경화증으로 몇 년 동안 투병 생활하는 중이라고 했다. 너무나 오랜 세월이 지났음에도 옛날의 모습이 조금은 알 수가 있었다.
남편은 고인이 된 동생의 남편과 서로 부등켜안고 한참을 침묵하더니
"에이, 사람아~~연락이라도 줘야 하지 않은가?~ 그동안 얼마나 고생이 많았는가?"
하며 소리 없이 손수건으로 눈물 닦는 것을 보고 있노라니 지금껏 살아오면서 여간 해서는 눈물 한 방울 보이지 않던 남편의 약한 모습이 보고 있노라니 나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화장실로 들어가 맘 놓고 울고 말았다. 그러고는 맘을 가다듬고는 어린꼬마가 성숙하게 자란 모습을 상상하며 나와 막내 시누와 동서는 서둘러 신부 대기실을 찾았다. 신부가 우리 일행을 보더니
“혹시 외가댁에서 오셨어요?”
하는 것이었다. 순간 신부의 모습에서 고인이 된 시누이를 만난 것처럼 울컥했다. 하지만 나는 굳게 맘을 다져 한 사람 한 사람 소개를 하다가 막내 시누이를 소개하는 도중에 신부가 그만 소리 내어 울어버린 것이었다.
“이모!~ 그동안 얼마나 ‘이모’라고 불러보고 싶었는데요. 왜 이제야 오세요?”
신부가 막내 이모를 보더니 모성애의 맥이 느껴졌는지 그만 울음을 터트리는 것이었다. 한동안 신부 대기실에는 눈물바다가 되었고, 기쁜 날에 이렇게 가족 상봉의 장소가 되고 말았다.
신부는 비바람에도 잘 견디어 잘 자라 주었고 지금은 SK연구실에서 근무한다고 했다.
신랑은 초등학교 때에 부모가 교통사고로 한 날에 돌아가셨단다. 신랑 역시 엘리트가 되어 신혼의 한 쌍이 된 것이다. 그러고 보면 아마도 하늘에 맺어준 특별한 한 쌍의 인연이리라. 드디어 거룩하고 성스러운 예식은 시작되고 우리 가족은 조카의 작은 울타리가 되어주듯이 굳은 맘으로 혼주 석 바로 뒷좌석에 앉아서 시종일관 두 손 모아 두 사람의 앞날에 행복과 사랑만이 가득하길 빌 뿐이었다.
갑자기 김남조 시인의 「신부, 순백의 축복을 입은 그대」가 떠오른다
신부,
순백의 축복을 입고 있는 이
중략!~~~
옛날에 외롭던 사내아이와
옛날에 외롭던 여자아이가
외로운 버릇대로 그냥 자라나
외로운 긴 세월 차례로 섬겨
이렇도록 늦은 날에 만났습니다.
촛불 한 자루 예 밝히오니
조물주신 어른 굽어살피소서
아름다운 이여,
오늘은 운명의 날입니다.
생략~~~
순간 오래전에 텔레비전에서 즐겨봤던 “들장미 소녀 캔디”를 떠오르게 했다.
아무리 보고 또 쳐다봐도 지금 상황으론 세상에 그 어느 보석보다 더 빛나는 귀중한 선물들이 아닌가 말이다.
저세상에서 지켜보고 있을 시누이를 생각하니 더욱더 아쉬움만 가득할 뿐이다. 하지만 이 세상에서 못다 한몫을 남은 가족이 누리리라 맘먹으며 자리를 떴다.
그동안 신랑 신부가 잘 살아온 것만큼 성숙시키면서 늘 좋은 날들로 이어지길 기원 해본다, 2008년 3월 2일 (일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