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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 나들길 1. 2코스(갑곶돈대-광성포-초지진). 2
◈ 일시 : 2023. 10.16(월). 1차 2박 3일 중 첫날.
강화 선원면 연리 날씨.
◈ 구간 거리 및 소요시간 : 18 km. 8시간 14분.
◈ 동행 : 아내.
◈ 지도.
지도 1-1.
지도 1-2.
지도 1-3.
◈ 트랙.
카카오 맵으로 트랙 보기.
◈ 일정 정리.
4박 5일 일정으로 10.16일 월요일에 출발하여 금요일에 돌아올 계획으로 첫날은 갑곶돈대-초지진까지 가서
초지진 못 미쳐에 있는 k2모텔에서 자고 2일째는 초지진-동검도 앞-여차리까지 가서 강화로 나가
강화읍 초입에 있는 휴모텔에서 자고 셋째 날은 강화에서 화도터미널로 가서
강화 나들길 7코스를 시작해 여차리-외포리까지 갈 계획이었는데 셋째 날 장화리에서 점심을 먹고
장곶돈대를 둘러보고 나와 외포리 쪽으로 가고 있는데 졸음운전을 하는 차가 달려들어 하마터면 죽을뻔했다.
간발의 차이로 겨우 화를 면했는데 올해 몇 달 사이에 벌써 세 번째 사고인데 대체 왜 그러는지 모르겠다.
82세의 노인인데 밤을 새워 야근을 하고 퇴근하는 중인데 계속 졸아서 마누라가 옆에서 계속 꼬집으며 왔단다.
달려드는 차를 눈앞에서 본 아내가 너무 놀라 가슴이 뛰고 다리가 풀리고 진정이 안 돼서 결국
경찰 불러 사고 접수하고 가슴이 떨려 모든 일정을 취소하고 경찰차 타고 화도로 나가 귀가했다.
06 ; 32. 천안역에서 1호선 전철 급행으로 출발.-영등포역 07 ; 58 도착.
08 ; 44. 신세계. 경방필정류소에서 60-3번 버스 타고 가서 염창동. 서울도시가스 정류소에서 3000번으로 환승.
10 : 13. 현대아파트 앞 정류소 하차. 3000번은 급행이라 청소년 수련원에서는 서지를 않는다. 뒤돌아간다.
10 ; 24. 길 건너 청소년 수련원 정류소.
10 ; 26. 우측 고려인삼센터 가는 길 내려가
10 ; 31. 갑곶 교차로. 회전 로터리. 12시 방향의 갑곶돈대 방향으로- 진해공원 죽산 조봉암 선생 추모비.
10 ; 38. 갑곶순교성지.-순교자 삼위비.
10 ; 48. 구 강화대교. 평화의 길은 이 다리를 건너 문수산으로 간다.
전쟁기념관이나 이섭정 정자로 가는 길은 막혀있다. 주차장 쪽으로 내려가서 들어가야 한다.
10 ; 57. 갑곶돈대 관리사무소. 강화 갑곶돈 안내판. 세계금속활자발상중흥기념비. 강화비석군. 이정.
대포. 강화전쟁박물관등을 둘러보고 나와 정문에서 좌측으로 간다.
11 ; 15. 강화나들길 안내판과 스탬프 찍는 곳.
11 : 22. 강화나들길 2-A시점 갑곶돈대-6km- 2-A 종점 화도돈대.
11 : 25. 2차로를 만나 좌측으로 다리를 건너 2차로옆 인도를 따라간다.
11 ; 28. 동락하수장 맞은편. 강화나들길 조형물과 포토죤.
11 ; 36. 신정리 삼거리.
11 ; 38. 3인순국터(카카오맵의 더리미 순국터)
11 ; 44/12 ; 16. 더러미 장어마을 일미식당에서 장어탕으로 점심.(26000).
12 ; 21. 문수산과 강화대교와 염하 건너를 둘러본다.
12 ; 28. 쉼터. 2차로와 작별하고 좌측 둑길을 따라간다. 호국돈대길 2코스 안내판. 억새와 갈대 설명문.
12 ; 39. 새우양식장과 노천 천막식당.
12 ; 49. 2차로로 나가 따라간다. 용진 참숯장어 입간판.
12 ; 55. 용진진 좌강돈대. 우측에 높은 성루와 돈대. 올라가 보고 내려온다.
13 : 03. 솔마을 입구. 용당사터 정류장. 버스는 53번과 53A가 다닌다.
13 ; 07/13. 쉼터.
13 ; 18. 용당돈대 가는 산길 입구. 숲길 550m 표지판. 좁은 산허리길을 따라간다.-종점까지 12.9 kmj표지목.
13 ; 24. 용당돈대. 돈대안에 커다란 나무 한그루. 도로 따라온 아내를 만나 납작 돌길을 따라 좌측으로
13 ; 43. 산길 끝. 좌측 둑으로 나가 둑길을 따라간다.
13 ; 48/51. 작고 앙증맞은 둑길 쉼터. 온길을 뒤돌아 본다.-타래붓꽃 해설판.
14 ; 10. 화도돈대. 길가에 있고 성문이 없는 평지다. 떨어진 감 하나씩 주워 먹고. 카카오맵이 뜨기 시작한다.
14 ; 19. 수문옆 화도교를 건너 2차로옆 보행로를 따라간다. -화도수문개출기사비.
14 ; 21. 강화나들길 2코스 호국돈대길. 2ㅡB시점-4km-2-B종점 광성보. 주민들이 주변청소를 하고 있다.
14 ; 35. 황톳길 쉼터. 문수산 바라보고.
14 ; 45. 오수돈대 산길 입구. 2코스 종점(광성보)까지 9.9 kkm.
14 ; 49. 오수돈대. 물 빠지는 수문이 있는 원형돈대.-오두돈대 정류소.
14 ; 55. 강화외성 안내판. 외성 아랫길을 따라간다.
15 ; 06. 둑 아래는 빨간 함초밭.
15 ; 11/18. 쉼터.
15 ; 31. 대형송전탑 2. 뻘밭에 비친 그림자 자화상을 사진에 담아보고. 바다 건너편은 공원묘지.
15 ; 52. 강화나들길 2-C종점 초지진-6km-2-C 시점 광성보 문.
15 ; 54. 이재연 장군 상. 광성 로터리. 광성마을 표지석. 좌측으로 간다. 수준점. 강기운 의교비.(사비로수문과 다리)
16 ; 00. 광성보. 숙종 때 설치. 신미양요(1871) 때 이재연장군과 350여 명 순국을 기리는 신미의총비가 있다.
강화나들길 2-BC시종점. 광성보 안으로 들어가면
16 ; 07. 광성돈대. 대포 2문.
16 ; 10. 광성보 문을 나와 좌측으로 쌍충비각과 용두돈대 가는 길의 소나무 숲길이 일품이다.
16 ; 18. 쌍충 비각. 무명 용사비. 1871년 신미양요 때 광성보에서 순절항 어재연장군외 59명의 순절비다.
16 ; 18. 손돌목 돈대. 염하 건너편의 손돌의 묘가 건너다 보인다.
16 ; 38. 용두돈대. 강화전적비 정화 기념비. 돈대아래의 바닷물쌀이 엄청 세게 휘돌아 내려간다.
16 ; 45. 광성포대. 포대는 돈대위에 있지 않고 바닷가 아래에 있다.
17 ; 00. 둔덕을 넘어가 2차선 도로. 어재연 숯불장어 입간판. 잠시 도로 따르다 좌측 해안 둑길로
17 ; 18. 작은 낚시터를 지나 꽃밭둑길을 지난다.
17 ; 31. 덕진진.
17 ; 36. 대포가 실치 된 남장 포대를 지난다.
17 ; 42. 덕진돈대.
17 ; 44. 경고비. 향토유적 9호. 흥선대원군의 외국선박의 출입을 통제하겠다는 척화의 의지를 담은 비.
해는 넘어가는데 산모랭이를 돌아가는 길이 물이 차 올라온다. 정신없이 갈대밭을 빠져나간다.
17 ; 54. 2차로 나와 잠시 가다 다리를 건너 다시 좌측 시멘트길을 따라간다.
18 ; 13. 다시 2차로 생선구이 집. 좌측 안쪽엔 모텔. 오늘은 여기까지. 2차로 따라 숙소를 찾아간다.
18 ; 27. 블루 모텔 앞을 지나 초지리 정류소. 우측에 k2모텔(35000. 시설은 좋은데 싸다). 옆집은 프라하 모텔.
날이 완전히 어두워졌다. 숙소를 정하고 되돌아 내려가 솔마루 식당에서 갈치조림(30000)으로 저녁.
1부에 이어.
14 ; 35. 황톳길 쉼터. 문수산 바라보고.
당겨 본 문수산과 서해안길 갈때 군 훈련으로 우회회 갔던 골프장과 좌측 아래에 군 노천 강의장.
14 ; 45. 오수돈대 산길 입구. 2코스 종점(광성보)까지 9.9 kkm.
14 ; 49. 오수돈대. 물 빠지는 수문이 있는 원형돈대.-오두돈대 정류소.
오수돈대. 좌측 구멍이 물빠지는곳.
오수돈대.
14 ; 55. 강화외성 안내판. 외성 아랫길을 따라간다.
강화외성.
15 ; 06. 둑 아래는 빨간 함초밭.
좌측끝에 광성보가 보인다.
15 ; 11/18. 쉼터.
빨간 함초밭. 좌측끝 하얀집 좌측 뒤가 광성보.
염하 건너편 . 철탑있는쪽이 공원묘지.가운데 하얀곳이 망원경있는 전망데크.
15 ; 31. 대형송전탑 2. 뻘밭에 비친 그림자 자화상을 사진에 담아보고. 바다 건너편은 공원묘지.
뻘밭에 비친 그림자 자화상.
뒤 돌아 보고
여기가 일몰 촬영명소인가 보다. 카메라를 거치해 놓고 기다리고 있다.
노란 황금들이 예쁘다.
15 ; 52. 강화나들길 2-C종점 초지진-6km-2-C 시점 광성보 문.
뒤돌아 보고
15 ; 54. 어재연 장군 상. 광성 로터리. 광성마을 표지석. 좌측으로 간다.
수준점. 강기운 의교비.(사비로수문과 다리)
어재연 장군 상
강기운 의거비.
16 ; 00. 광성보. 숙종 때 설치. 신미양요(1871) 때 이재연장군과 350여 명 순국을 기리는 신미의총비가 있다.
강화나들길 2-BC시종점. 광성보 안으로 들어가면
광성보.
강화나들길 2-BC시종점.
광성보 안해루(按海樓).
신미양요의 치열한 격전지 광성보
사적인 광성보(廣城堡)는 강화도 요새지의 총사령부였다. 광해군 때 보수하고 효종 9년(1658년)에 축조된 해안경비부대 주둔지로, 영조 21년 성을 개축하면서 성문을 건립했는데 이를 안해루(安海樓)라고 불렀다. 광성보 앞에 흐르고 있는 강화해협은 마포와 개성, 중국까지 직항할 수 있는 포구가 있어 한양을 지키는 중요한 군사요충지였음을 짐작할 수 있다. 안해루 남쪽으로 난 오르막길을 따라 걷게 되면 신미순의총(辛未殉義塚), 쌍충비각(雙忠碑閣), 손돌목돈대(孫乭項墩臺)를 거쳐 광성돈대(廣城墩臺), 용두돈대(龍頭墩臺)를 만나게 된다.
쌍충비각 안에는 신미양요(辛未洋擾, 1866년 8월 발생했던 제너럴셔먼호 사건에 대한 보복으로 미국 해병대가 1871년 전함 5척을 이끌고 와 조선을 침략한 사건)의 광성보 전투에서 순절한 조선 후기의 무신 어재연(魚在淵)을 기리는 전적비가 있다. 쌍충비각 맞은편 아래에는 광성보 전투에서 장렬하게 전사한 용사들의 무덤인 신미순의총이 자리하고 있다.
미군의 전쟁사에 ‘48시간 전쟁’으로 기록되어 있는 신미양요의 가장 격렬한 전장이 광성보였다. 어재연 장군은 600여 명의 조선 병사들을 거느리고 1,230여 명의 신무기로 무장한 미국 해군과 맞서 싸웠다. 조선의 군대는 어재연 장군을 포함해 430여 명이 전사하고 20여 명이 포로로 잡히고 만다. 무기 성능의 열세로 대패했지만 미군들과 끝까지 싸우며 한 발자국도 물러서지 않았던 조선군의 투지는 오래도록 우리 가슴에 남아있다.
강화군에서는 광성보 전투에서 나라를 지켜 내려고 장렬히 전사한 용기와 불굴의 정신을 기리는 광성제를 매년 음력 4월 24일 드리며 신미양요의 서글픈 역사를 잊지 않고 있다. 찾아가는 길은 강화버스터미널에서 2, 53, 56번 버스를 타고 광성보에서 하차하면 된다.
[네이버 지식백과] 광성보 (인천 보물섬에서 놀자)
16 ; 07. 광성돈대. 대포 2문.
광성돈대(廣城墩臺)
광성보에 소속된 3개 돈대 중 하나로, 광성돈대에 있었던 홍이포는 포구에서 화약과 포탄을 장전한 다음 포 뒤쪽 구멍에서 점화해 사격하는 사정거리 700m의 포구장전식 화포이다. 포탄이 날아가기는 하지만 폭발하지 않았기 때문에 위력은 약했다.
[네이버 지식백과] 광성보 (인천 보물섬에서 놀자)
16 ; 10. 광성보 문을 나와 좌측으로 쌍충비각과 용두돈대 가는 길의 소나무 숲길이 일품이다.
16 ; 18. 쌍충 비각. 무명 용사비. 1871년 신미양요 때 광성보에서 순절항 어재연장군외 59명의 순절비다.
쌍충비각(우). 무명용사비(좌)
쌍충비각 안에는 신미양요(辛未洋擾, 1866년 8월 발생했던 제너럴셔먼호 사건에 대한 보복으로 미국 해병대가 1871년 전함 5척을 이끌고 와 조선을 침략한 사건)의 광성보 전투에서 순절한 조선 후기의 무신 어재연(魚在淵)을 기리는 전적비가 있다.
광성보 전투에서 장렬하게 전사한 용사들의 무덤인 신미순의총.
쌍충비각 맞은편 아래쪽에 있다. 1871년(고종 8) 4월 23일 광성진(廣城津)에서 벌어졌던 미해군 육전대(陸戰隊)와의 싸움에서 장렬하게 전사한 용사들의 무덤이다. 당시 군사를 이끌던 어재연 장군과 동생 재순, 군관, 사졸 등 53명의 전사자 중 어재연 형제는 충청북도 음성군 대소면 성본리에 안장하고 신원을 알 수 없는 나머지 51명의 시신은 7기의 분묘에 나누어 합장하여 그 순절을 기리고 있다. 이들 대부분은 호랑이를 사냥하던 포수 출신들로서 용맹함이 뛰어났다고 한다.
[네이버 지식백과] 신미순의총 [辛未殉義塚] (두산백과 두피디아, 두산백과)
16 ; 18. 손돌목 돈대. 염 건너편의 손돌의 묘가 건너다 보인다.
손돌목 돈대.
손돌목 돈대.
손돌목 돈대에서 염하 건너로 본 손돌묘지.
덕포진 북쪽 해안 언덕 위에 위치하며 고려시대 뱃사공인 손돌의 무덤이다. 1970년에 덕포진 내의 현 위치에 복원하였으며 1977년에는 묘비를 세우고 주변 묘역을 단장하였다. 몽고군이 고려를 칩입하여 도성으로 쳐들어오자 고려 왕인 고종(高宗)이 강화도로 피난하면서 바다를 건너갈 배를 마련하지 못해 손돌의 작은 나룻배를 타게 되었다. 물길이 좁아 앞이 보이지 않고 세찬 물살에 배가 심하게 요동치자, 겁에 질린 왕은 뱃사공이 자신을 죽이려는 줄 알고 손돌의 목을 베라고 명령하였다. 손돌이 이지역의 물길이 험해서 그러한 것이라고 했지만 고종은 손돌의 애원을 들어주지 않았다. 그러자 손돌은 체념하고 물 위에 작은 바가지를 띄우고 그 바가지를 따라가면 강화도에 무사히 도착할 것이라고 말한 뒤 죽음을 받아들였다. 흘러가는 바가지를 따라 목적지에 무사히 도착한 왕은 자신이 경솔하였음을 깨닫고 뱃사공의 시신을 거두어 후하게 장사를 치른 뒤 사당을 세워 억울하게 죽은 손돌의 넋을 위로하였다.
조선 말까지 손돌의 넋을 달래는 제사를 지내오다가 일제강점기 동안 중단되었으며 1970년부터 다시 지냈다. 1989년부터는 김포문화원이 주관하여 손돌의 기일인 음력 10월 20일에 진혼제를 지낸다.
[네이버 지식백과] 덕포진 손돌묘 [德浦鎭孫乭ㅡ] (두산백과 두피디아, 두산백과)
손돌목 돈대에서 본 부래도.
16 ; 38. 용두돈대. 강화전적비 정화 기념비. 돈대아래의 바닷물쌀이 엄청 세게 휘돌아 내려간다.
용두돈대
용두돈대
용두돈대
돈대아래의 바닷물쌀이 엄청 세게 휘돌아 내려간다.
용두돈대에서 본 동영상.
16 ; 45. 광성포대. 포대는 돈대위에 있지 않고 바닷가 아래에 있다.
광성포대.
17 ; 00. 둔덕을 넘어가 2차선 도로. 어재연 숯불장어 입간판. 잠시 도로 따르다 좌측 해안 둑길로
좌측 해안 둑길로
대명항과 초지대교가 보인다.
17 ; 18. 작은 낚시터를 지나 꽃밭둑길을 지난다.
17 ; 31. 덕진진.
덕진진(德津鎭) 성문인 공조루(控潮樓)
덕진진(德津鎭)은 강화 12진보 가운데 가장 강력한 포대로 강화해협을 지키는 요새 중의 요새였다. 숙종 5년(1679년)에 축조된 덕진돈대, 강화도 제 1의 포대였던 남장포대, 대포 10문이 설치된 덕진포대가 덕진진에 소속되어 있었다. 강화해협을 따라 왼쪽으로 광성보를, 오른쪽으로 초지진을 두고 있어 상호 연락이 수월한 중요 진지였다.
고종 3년(1866년) 병인양요 당시 양헌수 부대가 어둠을 타고 이 진을 거쳐 삼랑성(정족산성)으로 들어가 프랑스군을 격파했다. 고종 8년(1871년) 신미양요 때는 미국함대와 치열한 포격전을 치렀으나 화력의 열세로 남장포대와 덕진포대가 파괴되었지만 조선 군사들은 도망가지 않고 끝까지 싸우며 장렬하게 전사했다. 성문인 공조루(控潮樓)를 지나면 강화 최대의 포대인 반달모양의 남장포대가 도열해 있다.
자연적인 지형을 교묘하게 이용하여 적의 눈에 띄지 않도록 반달모양으로 만든 남장포대를 지나 계단에 올라서면 탁 트인 사각형 모양의 요새 덕진돈대가 있고 그 아래 계단으로 내려가면 바다를 향해 서 있는 경고비가 있다. 1867년 대원군의 쇄국정책에 의해 세워진 ‘바다의 척화비’이다. 비석에는 ‘海門防守他國船愼勿過(해문방수타국선신물과, 바다의 문을 막고 지켜서 다른 나라의 배가 지나가지 못하게 하라)’는 내용의 비문이 새겨져 있다. 덕진진 찾아가는 길은 강화버스 터미널에서 2, 53, 56번 버스를 타고 덕진진에서 하차하면 된다.
[네이버 지식백과] 덕진진 (인천 보물섬에서 놀자)
17 ; 36. 대포가 실치 된 남장 포대를 지난다.
남장 포대
남장 포대
17 ; 42. 덕진돈대.
덕진돈대.
덕진돈대.
덕진돈대.
덕진돈대에서 본 초지진.
17 ; 44. 경고비. 향토유적 9호. 흥선대원군의 외국선박의 출입을 통제하겠다는 척화의 의지를 담은 비.
경고비
1867년 대원군의 쇄국정책에 의해 세워진 ‘바다의 척화비’이다. 비석에는 ‘海門防守他國船愼勿過(해문방수타국선신물과, 바다의 문을 막고 지켜서 다른 나라의 배가 지나가지 못하게 하라)’는 내용의 비문이 새겨져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덕진진 (인천 보물섬에서 놀자)
해는 넘어가는데 산모랭이를 돌아가는 길이 물이 차 올라온다. 정신없이 갈대밭을 빠져나간다.
대명항과 초지대교.
대명항과 강화를 잇는 초지대교.
17 ; 54. 2차로 나와 잠시 가다 다리를 건너 다시 좌측 시멘트길을 따라간다.
18 ; 13. 다시 2차로 생선구이 집. 좌측 안쪽엔 모텔. 오늘은 여기까지. 2차로 따라 숙소를 찾아간다.
내일 이어갈 강화나들길
18 ; 27. 블루 모텔 앞을 지나 초지리 정류소. 우측에 k2모텔(35000. 시설은 좋은데 싸다). 옆집은 프라하 모텔.
날이 완전히 어두워졌다. 숙소를 정하고 되돌아 내려가 마루 식당에서 갈치조림(30000)으로 저녁.
K2 모텔.
K2 모텔. 시설 좋고 가격도 착하다 강추.
솔마루 식당.
반찬도 깔금하고 맛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