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베스의 기도묵상 1. 하나님의 은총
“야베스는 그의 형제보다 귀중한 자라 그의 어머니가 이름하여 이르되 야베스라 하였으니 이는 내가 수고로이 낳았다 함이었더라 야베스가 이스라엘 하나님께 아뢰어 이르되 주께서 내게 복을 주시려거든 나의 지역을 넓히시고 주의 손으로 나를 도우사 나로 환난을 벗어나 내게 근심이 없게 하옵소서 하였더니 하나님이 그가 구하는 것을 허락하셨더라”(대상 4:9-10)
“기록된 바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을 위하여 예비하신 모든 것은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 듣지 못하고 사람의 마음으로 생각하지도 못하였다 함과 같으니라”(고전 2:9)
어느 날 저녁 온 가족이 거실에 앉아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우리 아들 데이빗이 뜬금없이 자기를 주목해달라고 말했다. 그때 데이빗은 24살이었다 안 그래도 그날따라 유난히 말이 없어서 나는 걱정스러운 마음으로 그 아이를 지켜보고 있었다. 그런데 녀석이 별안간 “아빠, 부탁이 있는데요. 저를 축복해 주시면 안 될까요”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아내와 딸은 갑자기 그게 무슨 말이냐는 듯한 표정으로 데이빗을 바라보았다. 물론 나도 그랬다. 갑자기 자기를 축복해 달라니 이게 무슨 말인가.
“데이빗, 아빠가 너를 축복하고 있다는 건 너도 알고 있지 않니?” “그거야 알고 있죠. 하지만 전 아빠가 정말로 저를 축복해 주셨으면 좋겠어요.” 이렇게 말하더니 데이빗은 내가 뭐라고 대답하기도 전에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내가 앉아 있는 안락의자로 걸어와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는 내 얼굴을 한 번도 쳐다보지도 않고 고개를 숙인 채 내가 축복해 주기를 기다렸다.
순간 내 가슴속에서는 줄 수만 있다면 여기에 있는 모든 것을 주고 싶다는 강한 열망이 끌어 올랐다. 내 사랑하는 아들이 내 발 앞에 무릎 꿇고 앉아 그가 원하는 것을 줄 수 있는 사람은 세상에 나 하나뿐이라는 것을 온몸으로 이야기하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데이빗의 양 어깨에 손을 하나씩 얹고 처음에는 아이의 마음과 건강과 유익과 실력을 위해 기도했으며, 다음에는 그의 삶 전체를 위해 기도했다. 다음에는 그 아이의 우정과 장래에 대해 기도했다. 정말이지 나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내가 간구할 수 있는 모든 복을 빌어주었다. 나는 데이빗이 진정으로 축복받고 있구나 하는 확신이 들 때까지 계속해서 아이를 위해 기도해 줬다.
지금 내가 이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야베스가 경험한 기적 같은 삶은 데이빗이 내 앞에 무릎을 꿇은 것과 같은 순간에 일어나기 때문이다. 어쩌면 지금 당신도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고 있을 것이다. 무언가 진심으로 원하고 갈망하며 말이다. 그런데 그것은 어디에서 만들 수도 살 수도 발견할 당신에게 그것을 줄 수 있는 분은 오직 하나님 한 분뿐이다. 왜냐하면 지금 당신이 원하는 것은 바로 그분의 거룩한 복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감사하게도 하나님은 당신에게 복 주시기를 열망하신다. 야베스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알지 못했다면 그는 복을 받기 위해 하나님 앞에 나아갈 생각은 꿈에도 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자기 백성에게 복 주시기를 기뻐하신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당신은 어떤가? 하나님이 당신에게 복 주시기를 원한다고 생각하는가? 어쩌면 여러분 가운데는 ‘하나님은 나 같은 사람에게 복 주고 싶지 않으실 거야. 아무리 생각해봐도 난 복 받기는 틀린 것 같아. 어쩌면 그분은 나한테 눈꼽만큼도 관심 없는지도 몰라’라고 생각할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오늘만큼은 그런 생각을 버리고 하나님이 자신의 성품에 대해 뭐라고 말씀하시는지 귀 기울이기 바란다. 그리고 하나님에 대한 오해들도 깨끗이 떨쳐버리고 오직 그분 말씀만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 바란다.
모세가 하나님에 대해 좀 더 많은 것을 보여달라고 간청했을 때 하나님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여호와로라 여호와로라 자비롭고 은혜롭고 노하기를 더디 하고 인자와 진실이 많은 하나님이로라”(출 34:6)고 소개했다. 구약성경에 나오는 인물 가운데 모세만큼 하나님과 가깝게 지낸 사람도 없을 것이다. 그는 세상과 일제에 접촉하지 않고 하나님의 임재 속에서만 혼자서 여러 날을보낸 적도 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모세와 단둘이 있을 때 이렇게 말씀하셨다는 것은 모세를 통해 우리에게 꼭 전해주고 싶었던 말씀이라고 생각해도 무방할 것이다.
우리는 모두 하나님에 대한 그림을 나름대로 그리고 있다. 나는 당신이 그리고 있는 하나님 초상화가 하나님에 대한 진리를 얼마나 정확하게 표현하고 있는지 몹시 궁금하다. 만일 그 그림 속의 하나님이 인식하고 냉담하며 자비롭지 못하고 노하기는 빨리하면서 복 주는 데는 더딘 분이라면 당신은 하나님을 잘못 알아도 단단히 잘못 알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에 대한 그런 오해는 당신에게 복을 받아 누리는 삶이 아니라 곤궁한 삶만을 가져다줄 뿐이다.
그런 삶은 일 분도 살 필요가 없다 그런 왜곡된 오해로 얼룩진 삶을 살아야 할 이유가 뭐가 있겠는가? 그러므로 하나님에 대해 그런 오해를 갖고 있다면 지금 당장 떨쳐내 버리도록 하라. 이제 그분 앞의 잠잠히 앉아, 그분이 어떤 분인지 반추해보기 바란다. 그분은 우리 아버지시다. 신실하고 동정과 연민이 가득하며 뭐든 주고 싶어 하시는 아버지인 것이다. 지금도 그분의 마음은 당신에게 은총을 물 붓듯 부어주고 싶다는 갈망으로 넘치고 있다. 그런 하나님 앞에 무릎 꿇고 앉아 복 주시기를 간구해보지 않겠는가?
* 나의 야베스기도 일기
내가 알고 있는 하나님은 어떤 분인가? 하나님의 속성 가운데 내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무엇이며 가장 중요하지 않게 생각하는 것은 무엇인가?
야베스의 기도묵상 2. 왕의 후사
“야베스는 그의 형제보다 귀중한 자라 그의 어머니가 이름하여 이르되 야베스라 하였으니 이는 내가 수고로이 낳았다 함이었더라 야베스가 이스라엘 하나님께 아뢰어 이르되 주께서 내게 복을 주시려거든 나의 지역을 넓히시고 주의 손으로 나를 도우사 나로 환난을 벗어나 내게 근심이 없게 하옵소서 하였더니 하나님이 그가 구하는 것을 허락하셨더라”(대상 4:9-10)
"16.성령이 친히 우리의 영과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언하시나니 17.자녀이면 또한 상속자 곧 하나님의 상속자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상속자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할 것이니라"(롬 8:16-17)
당신은 혹시 주일에만 ‘하나님 아버지’라고 기도하고 나머지 엿새는 고아처럼 살고 있지는 않은가? 세상에 이보다 흔한 자기기만은 없다. 우리는 입술로는 무언가를 믿는다고 말하면서 행동으로는 전혀 그렇지 않은 때가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이래서야 왕의 아들이고 딸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그리고 왕의 아들이고 딸이면 뭐하겠는가? 평생 유리방황하고 산다는 점에서는 집 없는 부랑자나 다름없는데 말이다.
혹시 코노 오렐리(Connor. O’ Reilly)라는 사람에 대해 들어본 적이 있는가? 그는 20세기에 아일랜드의 한 가난한 집에서 태어났다. 그런데 운 좋게도 부유한 친척이 미국으로 가는 배를 마련해 줘서 미국으로 가는 배를 타게 됐다. 그러나 그는 승선권만 받았을 뿐 미국까지 가는 동안 끼니를 해결할 수 있는 돈은 받지 못했기 때문에 마냥 좋아하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미국에 도착할 때까지 굶어 죽지 않을 방법을 어떻게든 모색해야 했다. 드디어 출항하던 날 그는 있는 돈 없는 돈 다 털어 빵을 산 뒤 너덜너덜한 여행 가방 속에 집어 넣었다.
배는 일주일 동안 바다를 항해했다. 그 일주일 동안 오렐리는 끼니때마다 아무도 모르게 자기 선실로 가서 가방에서 빵을 조금씩 꺼내 먹었다. 그나마 다른 가난한 여행객들이 나눠 달라고 할까 봐 후다닥 입에 쑤셔 넣느라 마음 편히 못 먹었다. 그것으로 자신조차도 미국에 도착할 때까지 버틸 수 있을지 의문이었다. 그렇게 허겁지겁 빈약한 식사를 하고 나면 배의 식당으로 가 부유한 승객들이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것을 부러운 눈으로 바라보곤 했다.
그러나 긴 항해도 끝나 드디어 다음 날이면 뉴욕에 도착하게 되었다. 그날 밤도 여느 때처럼 얼마 남지 않은 빵 조각을 입에 털어 넣고는 식당 문앞에 서서 창문으로 맛있는 음식들을 구경하고 있는데, 한 남자가 오렐리에게 다가오더니 식당에서 함께 저녁식사를 하지 않겠느냐고 했다.
“아, 말씀은 고맙지만 제게는 그만한 돈이 없습니다.” “식사할 돈이 없다니요? 무슨 말인지 모르겠군요. 제가 알기로, 선생님 승선권은 미국에 도착할 때까지 하루 세 끼를 이 배의 식당에서 식사할 수 있는 가격까지 포함되어 있는 걸로 알고 있는데요.”
불쌍하게도 오렐리는 부러운 눈으로 바라보던 음식을 매일매일 먹을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딱딱하게 굳은 빵으로 일주일을 버텼던 것이다. 축복이 그를 위해 매일매일 예비되어 있었는데도 눈앞에서 놓치고 말았다.
이제 우리가 요구하기만 하면 예비된 하나님의 복은 언제든지 우리 것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닫고자 한다. 그런데 애석하게도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오렐리와 같은 실수를 범한다. 그들은 자신을 왕의 후사로 보지 않고 가난한 백성 정도로 생각하기 때문에 딱딱하게 굳은 빵 조각만으로 연명해 간다. 그러면서도 자기가 무엇을 놓치고 있는지도 모른다. 풍성한 식탁이 준비되어 있고 그 앞에 있는 의자에 자기 이름이 적혀 있다는 것을 모르는 것이다.
‘하나님의 복’이라는 공짜 뷔페에서 당신은 얼마나 많은 음식을 맛보고 즐겼는가? 지금까지 당신은 당신에게 놀라운 일을 행하신 그분께 넘치는 감사로 살아왔는가? 아니면 오렐리처럼 당신을 위해 풍성한 식탁이 마련되어 있다는 걸 모르고 딱딱한 빵 조각만으로 연명하다가 나중에야 그 사실을 깨닫고 낭패스러운 느낌으로 살고 있지는 않는가? 심지어는 “나를 위해 그렇게 많은 게 준비되어 있었는데... 내가 누린 건 고작 이 정도라니?” 하면서 사기를 당한 느낌으로 살고 있지는 않는가?
이제 당신은 당신의 티켓이 어떤 티켓인지 알았다. 어쩌면 오렐리도 자신의 티켓에 식사권이 포함되어 있다는 말을 누군가로부터 들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그 말을 듣고도 설마하고 믿지 않았던 것 같다. 그래서 호화로운 식사를 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좁아터진 선실에서 빵 부스러기로 끼니를 때웠는지 모른다. 그 말을 믿지 않았기 때문에 그 좋은 식사를 다 놓치고 만 것이다.
이제 여러분도 딱딱한 빵을 뜯어 먹는 것이 질리는가? 그렇다면 즐거운 향연에 동참하기 바란다. 거기에 동참하기 위해서는 지금보다 더 특별해질 필요도, 선택된 소수의 무리에 낄 필요도, 그 식사를 한 만한 자격이 있다고 검증되어야 할 필요도 없다. 성경은 “여호와께서 주시는 복은 사람을 부하게 하고 근심을 겸하여 주지 아니하시느니라”(잠 10:22)고 말한다.
당신이 타고 있는 인생이란 배의 삯은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 안에서 하나님이 배푸시는 사랑에 의해 이미 완불되었다. 그것도 멋진 향연을 즐길 수 있는 식사권과 함께. 하나님은 그분이 베푸시는 풍성한 식탁을 누리지 못하는 우리를 바라보면서 안타까워 하신다. 이제라도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며 마음껏 복의 향연을 누림으로 날마다 그분을 기쁘시게 하는 경험을 하시기 바라신다.
* 나의 야베스기도 일기
“하나님, 당신의 복이 제 삶 속에 얼마나 풍성하게 마련되어 있는지를 볼 수 있게 해주세요. 그리고 당신의 복이 당신의 영광을 위해 저를 어떻게 변화시키는지도 볼 수 있게 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