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과 김민석은 1964년생 동갑이다. 이재명은 경북 안동 화전민 마을에서 태어나 성남 신흥시장 인근에서 성장했다. 김민석은 서울 종로구 창신동에서 자랐다.
이재명은 검정고시를 거쳐 중앙대 법대 4년 장학생이 된다. 월 20만원씩 생활장학금도 받았다. 커피숍 종일 알바 월급이 10만원이던 시절이다. 생활장학금의 절반 이상은 형의 대학 등록금과 가족 생활비가 됐다.
그는 4년 내내 봄 여름 가을 겨울 흰고무신을 신고 다녔다. 종로에서 친구들과 돌도 던졌고 나이트에서 고무신 때문에 쫒겨나기도 했다. 과거 김어준 채널에서 털어놓은 얘기다.
김민석은 서울대 사회학과에 입학, 반독재 투쟁을 시작한다. 1985년 총학생회장이 된다. 당시 서울대 출신은 총학 선거전과 이번 당대표 선거 양태가 소름끼칠 정도로 판박이였다고 한다.
상대 후보의 약점을 ‘만들어 내고’ 집요하고 잔인하게 물어뜯는 방식이다. 김민석은 그렇게 운동권의 성골이 됐고 1996년 32세의 15대 국회의원이 된다.
이재명은 졸업과 동시에 사시를 패스했다. 판사 임용이 가능한 사법연수원 성적을 뒤로 하고 성남에서 노동•인권변호사가 된다. 변호사 시절 성남을 기반으로 하던 NL 계열 경기동부연합과 가까웠다는 설도 있다.
그는 2010년 성남시장이 되면서 제도권 정치를 시작한다. 민주당 소속이었지만 당내 주류와는 거리가 멀었다. 이후 국회에 입성, 당대표까지 하면서도 1기 시절엔 비주류란 딱지를 떼지 못했다.
당시 그의 곁을 지키던 핵심은 정청래 수석최고위원이었다. 구속 동의안이 통과됐을 때 정 수석은 다음 선거 공천장에 이재명 대표 직인을 찍을 거라며 사퇴설을 일축했다. 결국 이재명은 구속 적부심에서 극적으로 풀려난다.
정청래는 1965년 충남 금산 농부의 10남매 중 아들로 태어났다. 형제 중 일부는 어려서 부모 가슴에 묻혔다. 고등학생 때까지 방학이면 농사일을 돕던 그는 건국대 산업공학과에 입학한다.
1989년 전대협의 미국 대사관 점거농성에 참가, 징역 2년형을 받고 1991년 출소한다. 이후 서울 마포구에서 보습학원을 공동운영하면서 노사모 등 정치활동을 이어갔다. 국회에 입성한 건 2004년 17대 총선을 통해서였다.
민주당 역대 대통령은 고졸 2명 대졸 2명이다. 김대중 대통령은 목포상고, 노무현 대통령은 부산상고, 문재인 대통령은 경희대 법대, 이재명 대통령은 중앙대 법대다.
지난 당대표 선거에서는 서울대 출신 운동권 성골과 건국대 출신이 맞붙었다. 이재명은 이 중 서울대 손을 들어줬다. 정서적으로는 충남 금산의 농부 아들이 가까울 수 있었다. 하지만 결과는 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