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강 霜降
분꽃 피고 달맞이꽃 피고 졸며 애끊는
박꽃 피고
삐걱삐걱 반달 젓는 소리
아스라이 봉선화 올랑 불랑
녹두 쏟아지듯 꺼질 듯 울먹
여물어 우는 항아리 속 어둠
서리가 오려나
서리가 오려나
오그라든 몸부림
하늘 눈꺼풀 밀치고
달아난 풀밭엔
잔기침 소리
피사리
피를 뿌리까지 뽑으니
생살을 물고 통증이 따라올라 오듯
벼도 따라 흙이 올라오고
논물도 찰랑찰랑 딸려 온다
피를 뿌리까지 뽑으니
먼 곳에 논물이 끌고 온
산도 구름도 햇살도
너울너울 고여든다
피가 뽑힌 자리는
물방개 물지렁이 거머리 소금쟁이 개구리울음이
굳은살처럼 배겨들어
긴 여정을 마친 철새들이
달의 동공에 들어앉아다 푸드득 날으면
어둠을 물고 있던 이빨들이 우수수 떨어진다
논의 이름으로 피를 뽑으면
참았던 숨처럼 푹 하고 내쉬면
가을이 알알이 들어앉는다
매상도 받아주지 않는 쌀
논 물결 써레질처럼 밀려왔다
먹구름처럼 앉혀놓는 시월입니다
여린 모들 주인 발소리에
한 뼘씩 이삭으로 자라
꽃을 피우고 묵직이 고개를
숙여 뜨거운 여름 탈곡해 자루에 담아도
왕겨 같은 마음입니다
까맣게 탄 농심 우르르 몰려
화르르 불 싸지르는
귀뚜리 울화 치밀어 흐느끼던
묵은 수심 창고 가득 쌓입니다
알알이 영글어 버린
옛날의 낟알이 있고
천년의 논이 있고
첩첩이 흘러온 물길
만년 전 벼를 가지고
만년 전 살아온 바람이 어깨를 토닥거려도
후회로 가득한 가을
녹초가 된 햇살도 귀 닫은 바람도
논을 등 돌리고 눕는 밤입니다
햇살
빨래가
너무 잘 말라서
옷이
얇아졌다
허수아비
머슴처럼 울었다
여름엔 개구리들이
가을엔 귀뚜리들이
울어 넘어와도
허허 그 놈들
뿌리치지 못하고
받아 주던 이
첫댓글 소중한 원고 감사합니다.
일전 보내주신 원고로 잘 정리해 두었습니다.
건강하시고 멋진 날 열어가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