흠흠시조 006
뉘라서 정 좋다 하던고
옥선(玉仙) 지음
뉘라서 정(情) 좋다 하던고 이별(離別)의도 인정(人情)인가
평생(平生)에 처음이요 다시 못 볼 님이로다
아마도 정(情) 주고 병(病) 얻기는 나뿐인가 하노라
이별(離別)의도 – 이별도.
인정(人情) - 사람이 본래 가지고 있는 감정이나 심정.
지은이는 진양(晉陽) 기생이랍니다. 진양은 오늘날 진주(晉州)일 것입니다. 옥(玉)처럼 곱고 어느 한편으로는 선녀(仙女) 같았나 봅니다. 연대미상(年代未詳)이라 하니 사람은 가도 작품은 남아, 오늘날 문예 비평 용어인 ‘텍스트의 힘’을 느끼게 합니다.
처음 본 님과 헤어져 급기야 병을 얻은 자신의 처지를 담담하면서도 솔직하게 그려내었습니다. 세상의 경험은 뭐든 처음에는 낯설고 아프지요.
흠흠시조 007
철을 철이라커던
진옥(眞玉) 지음
철(鐵)을 철(鐵)이라커던 무쇠 석철(錫鐵)만 여겼더니
다시 보니 정철(正鐵)일시 적실(的實)하다
마침내 골풀무 있으니 녹여 볼까 하노라
석철(錫鐵) - 만들어진 말로, 별 쓰임새 없는 ‘무른 쇠’로 풀어 봅니다. 중장의 ‘정철(正鐵)’에 대치됩니다.
정철(正鐵) - 무쇠를 불려서 만든 쇠붙이의 하나. 시우쇠, 연철(鍊鐵).
적실(的實)하다 - 틀림이 없이 확실하다.
마침내 – 마침 내. 나에게 때맞춰.
골풀무 - 땅바닥에 장방형(長方形)의 골을 파서 중간에 굴대를 가로 박고 그 위에 골에 꼭 맞는 널빤지를 걸쳐 놓은 것으로, 널빤지의 두 끝을 두 발로 번갈아 가며 디뎌서 바람을 일으킨다. 발풀무. 풀무 - 불을 피울 때에 바람을 일으키는 기구. 골풀무와 손풀무 두 가지가 있다.
지은이의 이름을 글자대로 풀면 ‘진짜 옥’입니다. 이 작품으로 일약 선조 때 명신 송강(松江) 정철(鄭澈)과 문학적 대(對)를 이루게 되었습니다.
먼저 운을 뗀 것은 선비 정철이었는데, 그 시조는 이러합니다.
옥을 옥이라커든 형산 백옥만 여겼더니
다시 보니 자옥일시 적실하다
마침 활비비 있더니 뚫어 볼까 하노라
상당히 노골적(露骨的)이거늘, 활비비와 골풀무가 남녀 성기(性器)의 비유가 적실하기 때문입니다.
흠흠시조 008
벽천 홍안성에
금홍(錦紅) 지음
벽천(碧天) 홍안성(鴻雁聲)에 창(窓)을 열고 내다보니
설월(雪月)이 만정(滿庭)하여 님의 곳 비취려니
아마도 심중안전수(心中眼前愁)는 나뿐인가 하노라
벽천(碧天) - 푸른 하늘. 벽공(碧空).
홍안성(鴻雁聲) - 기러기 소리. 큰 기러기 홍(鴻), 기러기 안(雁).
설월(雪月) - 눈과 달. 눈 온 밤의 달빛.
만정(滿庭) - 뜰에 가득함.
님의 곳 – 님 계신 곳.
심중안전수(心中眼前愁) - 가슴 속에 있고 눈앞에도 있는 시름.
지은이는 평양(平壤) 기생으로 연대는 미상입니다. 남겨진 작품을 대하니 이름자와 같이 비단 같고 붉은 꽃과도 같았던 자태였나 봅니다. 해어화(解語花)라는 범칭(汎稱)에 맞춰 한자어가 많이 들어 있습니다.
‘설월이 만정한데’의 구절은 상투적(常套的)이긴 해도 님 계신 곳에도 그러려니 하면서 시공(時空)을 동일시(同一視)하려는 기교에는 적합한 듯하고요. 세상 각 사람이 저 혼자만이 시름겨운 줄 알아도 어디 ‘아니’ 그런 사람 얼마나 될까요.
흠흠시조 009
위수에 고기 없어
평안기(平安妓) 지음
위수(渭水)에 고기 없어 여상(呂尙)이 중 되단 말가
낚대를 어디 두고 육환장(六環杖)을 짚었는다
오늘은 서백(西伯)이 와 계시니 함께 놀고 가려 하노라
위수(渭水) - 중국의 강 이름. 웨이수이 강 - 중국 황허강(黃河江)의 큰 지류(支流). 간쑤성(甘肅省) 동남부에서 시작하여 산시성(陝西省)으로 흘러 황허강으로 들어간다.
여상(呂尙) - ‘태공망’의 다른 이름. 여(呂)는 그에게 봉해진 영지(領地)이며, 상(尙)은 그의 이름이다. 중국 주나라 초기의 정치가(?~?). 성은 강(姜). 이름은 상(尙). 속칭은 강태공(姜太公). 무왕을 도와 은나라를 멸하고 천하를 평정하였다. 저서에 ≪육도(六韜)≫가 있다.
육환장(六環杖) - 승려가 짚는, 고리가 여섯 개 달린 지팡이.
서백(西伯) - 서쪽의 어르신. 주(周) 문왕(文王)의 별칭. 《맹자(孟子)》 ‘이루(離婁) 상(上)’에 백이(伯夷)와 태공(太公)의 말 중에 문왕을 서백이라 칭하는 게 나옵니다.
평양감사 방백(方伯)으로 기녀를 불러 대사를 웃게 하면 상을 내리겠다고 함.
지은이는 평안의 기생입니다. 평양(平壤)의 기생을 ‘평양기’라고 한다면 평안도(平安道) 소관 관기(官妓)였던가 봅니다. 생몰(生沒)이나 활동 연대는 미상입니다.
기녀로서는 박학다식(博學多識)하여 중국의 고대 인물을 빌려와 자신의 마음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 아마도 관찰사(觀察使)랑 어울리며 동석한 손님을 태공으로 비유한 것이 아닐까 합니다.
아니면 태공은 먼저 온 손님이요, 갑자기 등장한 관찰사를 우선 상대해야 하는 자신의 입장을 변명한 것일 수도 있겠습니다.
흠흠시조 010
산촌에 밤이 드니
천금(千錦) 지음
산촌(山村)에 밤이 드니 먼 데 개 짖어 운다
시비(柴扉)를 열고 보니 하늘이 차고 달이로다
저 개야 공산(空山) 잠든 달을 짖어 무슴하리오
시비(柴扉) - 사립문.
공산(空山) - 사람이 없는 산중.
무슴하리오 – 무엇하겠는가.
지은이는 연대가 미상(未詳)입니다. 이름에 일천 천, 비단 금이니 비단처럼 화사하고 고왔겠습니다.
작품의 내용은 어디 한촌(閑村)에 스며든 선비의 감상(感想) 같기도 한데, 가집(歌集)에 실려 전하는데, 여류(女流)로 구분해 놓았으니 그런가 합니다. 중장 후구가 조금 초심자 같은 엮음이라 거꾸로 믿음이 더욱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