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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stoire de la philosophie,
Emile Bréhier, 1876—1952
제1권. [고대] 그리스 시대, Période Hellenique 35
제1장 소크라테스 이전 철학자들 Les présocratiques 37
철학의 초기 시대에, 즉 알렉산더 대왕의 죽음(기원전 323년)과 더불어 철학이 완성되었던 그리스 시대에, 철학은 그리스 지방에서 발전되어, 계속해서 다양한 중심 도시로 계승되었다. 이러한 연속은 여러 정치적 흥망성쇠에 상응하고 있다. 철학은 기원전 6세기경에 이오니아 지방에서, 그 당시 가장 부유했고 상업적인 해양 도시들에서 태어났다. 기원전 546년부터 이오니아 지방은 페르샤인들에 복속되었다. 밀레토스(Milet, Μίλητος)라는 큰 도시는 494년에 파괴되었다. 지적 삶의 중심은 이전되었다. 그것은 남부 이탈리아와 시실리아(Sicilia) 섬이며, 우리는 이곳으로 철학이 넘어온 것을 보게 된다. 결국 페르샤와 여러 차례 전쟁을 겪고 난후, 페리클레스(Péricles, Περικλῆς, 전495경-429) 시대에, 아테네는 해양제국의 새로운 중심으로서 그리스의 지적 수도가 되었다. 이 중심은 펠로포네소스 전쟁(기원전 431-404)까지 지속된다. 이 발전시기에 이오니아인들은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대(大)그리스 지역의 초기 철학자들은 이오니아 이민자들이었다. 아테네에서도 철학의 초기전파자들도 마찬가지로 이오니아인들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중심 도시들의 각각에서 철학적 사상은 다른 특성들을 지니고 있었다. (37) (47LMI) (57UKA)
제1절 밀레토스 학파의 자연학[물리학] La physique milésienne 37
기원전 6세기에 밀레토스에서 일어났던 관념들의 운동 범위와 정확한 의미를 규정하는 것은 어렵다. 그리스의 소아시아 지역에서 그 당시에 가장 강력하고 가장 활발한 도시에서 이어지는 3명의 철학자들이 있는데, 그 중의 첫 철학자는 탈레스(Thalès, Θαλῆς, 기원전625-547)이다. 탈레스는 아무 것도 쓰지 않았으나, 아리스토텔레스(Aristote, Ἀριστοτέλης)에까지 올라가지 않더라도 전통적으로 알려져 있었다. 다른 두 철학자는 아낙시만드로스(Anaximandre, Ἀναξίμανδρος, 기원전610-546)과 아낙시메네스(Anaximène Ἀναξιμένης, 기원전 59?/585-524/525)이다. 이 둘 각각은 산문으로 된 저술의 작가이다. 이것의 제목은 나중에 자연에 관하여라고 제목이 붙여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두 철학자에 대해서는 아리스토텔레스와 그 학파의 작가들이 그들에 대해 말했던 것만을 알고 있을 뿐이다. (38)
그런데 아리스토텔레스가 무엇보다도 이들의 가르침 속에서 탐구했던 것, 그것은 다음과 같은 질문에 대한 대답이었다. 사물을 이루고 있는 물질(la matière, ὕλη)이 어떤 것인가? 이 질문은 아리스토텔레스가 제기한 질문이다. 그는 자신의 고유한 학설의 언어로 의문을 제기하였다. 사람들이 밀레토스학자들에게서 찾고자 하는 문제의 해결책에 관해, 밀레토스학자들 자신들이 이 문제에 전념했는지를, 우리는 이에 대해 어떠한 증거도 가지고 있지 않다. 또한 사람들이, 탈레스는 만물의 원리가 물[水]이며, 아낙시만드로스에 따르면 무한자(l'infini, ἄπειρον)이며, 아낙시메네스에 따르면 공기이라고 알고 있을 때, 이 정식들 속에서 물질의 문제에 대해 응답을 듣는 것에 조심해야 한다. (38)
문제의 의미를 관통하기 위하여, 가능하다면 이 철학자들이 어떤 문제들을 효과적으로 취급했는지를 탐구할 필요가 있다. 아마도 그들은 두 가지 순서로부터 시작한 것 같다. 우선 과학적 기술의 문제들로부터이다. 이리하여 아낙시만드로스는 해시계(un gnomon, 천문관측기)를 발명하기 시작하여, 거기에다 두 극지(des solstices, 동지와 하지)와 동등선분(équinoxe, 춘분과 추분)의 선들을 그렸다. 또한 그는 첫 천문 지도를 그릴 수 있었을 것이고, 그리고 황도 12궁의 기울기를 발견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들은 별똥별들[기상상태]의 또는 천문학적 현상들의 자연과 원인들에 관한 문제들, 즉 지진, 바람, 비, 번개, 감춰짐(일식과 월식)의 문제, 또한 땅의 형성과 지상 생명의 기원들에 관한 지리학의 일반적 문제들이었다. (38)
이 과학적 기술들에 대하여, 우리의 밀레토스학자들은 아마도 메소포타미아와 이집트의 문명들이 그들에게 전달된 것을 그리스 여러 나라들에게 전파하는 것이 임무였을 것이다. 바빌로니아 사람들은 하늘의 관찰자들이었다. 게다가 그들의 토지대장을 작성하기 위하여, 그들은 도시들과 운하들의 계획들을 세웠다. 그리고 심지어 그들은 세계의 지도를 그리려고 시도했다. 역학적 기술들에 관한 한, 그 기술들은 기원전 7세기에서 5세기까지 [고대] 그리스의 모든 지역들에게 매우 풍부하고 다양한 발전에 기여했다. 이오니아 철학자들은 틀림없이 이 발전의 주동자들이라기보다 증인들이다. 이 매우 공감할 만한 증인들은 기술적 활동에서 인간의 우수성을 보았다. 이 증인들의 견해에서 아마도 기원전 5세기경에 이오니아인인 아낙사고라스(Anaxagore)에게서 가장 놀라운 표현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그에 따르면, 인간은 동물들 중에서 가장 지성적인 동물이다. 왜냐하면, 인간은 손을 가지고 있고, 그 손은 탁월한 도구이며, 모든 도구들의 모델이기 때문이다. (39)
밀레토스학자들의 독창성은 이미지들 중에서 선택할 줄 알았던 것 같다. 이 이미지들에 의해 하늘과 유성(météore 기상)을 표상하였다. 그런데 이 이미지들은 신화들 속에서 환상적인 것은 어떤 것도 간직하지 않았다. 이 이미지들을 기술에서든지 직접적 관찰에서든 빌려왔다. 신화처럼 불가사의한 어떠한 배경도 인정하지 않으면서, 상상작용의 극단적인 정확성을 가지고 자신들의 과학을 구성하는 모든 유비적 측면들 안에는 큰 욕망이 있는데, 그 욕망은 자신들과의 연관하여 가장 친숙한 사실들과 접근할 수 없는 현상들을 이해하려는 크나큰 욕망이다. (39)
이런 일상적 관찰들 중의 하나가 특히 항해를 걱정하는 한 밀레토스 인에게서는 번개를 동반하는 폭우와 풍랑을 일으키는 폭풍의 관찰이었다. 사람들은 고요한 정적 속에서 두껍고 검은 구름들이 형성되고, 이 구름이 번개에 의해 미묘하게 찢어지고, 그리고 이 번개라는 전령이 알리는 폭풍 같은 바람이 곧 뒤따라온다는 것을 알았다. 아낙시만드로스는 이것들을 설명하고자 애쓰면서, 바람이 구름들을 가두고, 자신의 폭력으로 그것을 흩어놓는다고 가르쳤다. 그리고 번개와 천둥은 이 갑작스런 단절을 동반한다고 가르쳤다. 그런데 이 폭우의 비유를 통해서 그는 자연과 별들의 형성을 생각했다. 아낙시만드로스가 하늘로부터 형성되는 개념들을 얻기 위하여, 두꺼운 구름의 포장막을 밀도 높은 공기의 타원형 포장막으로 대체하는 것, (그에게서는 “공기”는 수증기와 다른 것이 아니다) 내부의 바람을 불로 대체하는 것, 포장막이 찢어짐을 일종의 바람 빠지는 길을, 또는 공기의 관(管)을, 통과하는 것으로 대체하는 것으로 충분하다. 이 관을 통하여 불이 침투하는 것이다. 사람들은 이 포장막이 수레 중심 주변에 바퀴의 테들처럼 땅 주위에 배치된 원의 형태로 되어 있다고 가정한다면, 하늘의 별들은 우리에게는 바람 빠짐의 길로 통해서 나오는 내부 불의 일부일 뿐이다. 이 바람 빠짐의 순간적인 닫힘에 의해서 달의 월식들과 여러 국면들[달 크기]이 설명될 것이다. 아낙시만드로스는 회전 운동을 하는 세 개의 원형 포장막이 있다고 인정했다. 땅의 가장 멀리에는 하나의 바람 빠짐 길만 있는 태양과 달의 포장막들이 있고, 보다 낮은 곳에는 수많은 통풍구들이 있는 고정된 별들(아마도 은하수)의 막이 있다. (40)
이러한 종류의 비유는 우주 발생문제를 새로운 방법으로 정식화하는데 도움을 준다. 하늘의 형성은 폭우의 형성과 근본적으로 다르지 않다. 문제가 되는 것은, 나무를 두르고 있는 껍질처럼 불이 어떻게 최초에서부터 땅을 둘러싸고 있고, 세 개의 원형 고리들의 내부에서 부서지고 분산되었는지를 아는 것이다. 그런데 아낙시만드로스에게서 이 놀이의 원인이 비들, 폭우들, 바람들의 기원에 속하는 원인과 잘 닮았을 것이라는 것이다. 물안개 피어오름에 의해서 바다위에 생산된 수증기들은 불의 천구(sphere)를 부수고, 그리고 이 천구를 고리들로써 장막을 형성한다. (40)
밀레토스학파의 자연학에서 근본적인 현상은 바로 열의 영향 하에서 바닷물의 수증기화 현상이다. 이 수증기화의 생산물들(증기, 바람, 구름 등)은 그리스에서는 전통적으로 생명적 속성들인 것으로 생각되었다. 따라서 아낙시만드로스는 오래된 견해를 따라, 그는 생명 있는 존재들이 태양에 의해 증기가 오르는 더운 습기 속에서 생겨난다는 것을 인정했다. 또한 그는 물고기들과 침있는 각질 속에 갇힌 존재들과 같은 바다 생명의 형태들이 먼저 형성되었다는 것을 강조했다. 이 형태들은 생명의 류적 형태를 변형시키면서, 그리고 이 각질을 깨트리고서 땅위로 위치를 이동했다. (40)
아낙시만드로스의 관점들은, 마치 아리스토텔레스가 학설의 중심처럼 간주했던 원초적 실체에 관한 주장들의 의미를 정확하게 하는데 우리에게 도움을 준다. 이 주장들은 존재들에 대해 물질에 근거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세계가 나오게 된 사물에 근거하는 것 같다. 탈레스는 근거인 사물이 물[水]이라고 가르치면서, 매우 잘 알려져 이미 널리 퍼져 있는 우주발생론적 주제를 재생산하기만 했다. 그러나 밀레토스학파의 사유의 발전에 따르면, 의심할 바 없이, 어떤 사물을 이 물에 의해서 마치 바다의 부피처럼 이해해야만 한다. 이 부피에는 물에서 분간되어 나오는 모든 생명도 포함한다. 게다가 그는, 마치 바다 위에 배가 떠 있듯이, 지구가 원초적 물 위에 놓인 평평한 판처럼 있다고 가르쳤다. 아낙시만드로스에게서는, 무엇이 탈레스의 물 대신에, 그가 무한자(l'infini)라 불렀던 것으로 대체하려고 하였을까? 이런 표현의 의미에 관해서 사람들이 거의 조금도 서로 일치하지 못하고 있다. 이것은, 마치 탈레스의 주제가 옛 우주발생론을 참조한 것과 마찬가지로, 신들과 땅과 하늘에 앞서 있었던 혼돈에 대하여 헤시오도스의 신화에서 빌려 온 밀레토스학파의 형식인가? 그러면 무한자는 양적으로 무규정적인 혼돈일 것이다. 이 혼돈에서 규정적인 사물들, 불, 물, 등등이 태어났다. 또는 그 무한자는 적어도 혼합물일 것이다. 여기에서 모든 사물들이 뒤섞여 있다가 이어서 세계를 형성하기 위하여 분리되었다. 아마도 아낙시만드로스의 무한자는 오히려 크기에 있어서 무제한성(l'illimité)일 것이며, 즉 하늘을 경계들[막들]로 해서 포함되어 있는 세계와 대립해서 보면 경계가 없는 것일 것이다. 왜냐하면, 무한자는 세계들을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다. (41)
이 해석은 다수의 세계들의 주제와 일치한다. 이것은 아낙시만드로스의 주제들 중의 하나이며, 아낙시메네스에서 다시 다루어 질 것이다. 결국 그는 다수의 세계들의 동시적 현존을 인정한다. 그 세계들은 영원하고 늙지 않는 무한자의 가운데에서 생성하고 소멸한다. 그가 우리에게 말하듯이, 이 무한자로부터 “영원한 운동”에 의해, 다시 말하면 끊임없이 생산되는 생장운동에 의해 세계들이 태어난다. 생장운동의 결과는 상반자들을, 즉 뜨거운 것과 차거운 것을 서로 서로 분리하는 것이다. 이 상반자들이 서로가 서로에게 작용하면서, 우리가 보듯이, 모든 우주적 현상들을 생산한다. (41)
아낙시메네스는 공기(l'air)를 원리로, 즉 제일 시초로 삼으면서, 아낙시만드로스를 물리치지 못한다. 공기라는 용어는 무한자의 분성을 정확하게 하는 것일 뿐이다. 왜냐하면, 그의 원리는 (제한 없는) 무한한 공기이다. 여기서부터 모든 사물이 생겨난다. 아낙시만드로스의 무한자처럼, 그것도 영원한 운동으로 활성화된다. 그러나 아낙시메네스는 이 운동이 사물의 기원에 대한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다고 믿지 않았던 것 같다. 체에서 거르는 운동과 같은 요동치는 운동은 뒤섞인 사물들을 잘 분리할 수 있으나, 이것들을 생산할 수는 없다. 따라서 아낙시메네스는 이 영원한 운동에다가 사물들의 기원에 대한 다른 설명들을 포개 놓았다. 공기는 희박해짐에 따라 불을 생겨나게 하고, 계속적으로 압축됨에 따라 바람을, 구름을, 물을, 그리고 마지막으로 땅과 돌을 생겨나게 한다. 이 변형의 마지막 질서에서 그는 아마도 관찰로 접근할 수 있는 매우 구체적인 현상들을 생각했다. 선선하고 보이지 않는 공기에서 바람의 형성하고, 즉 구름의 형성은 곧 비로 해소될 것이고, 비는 강들을 생겨나게 하고, 그리고 강물은 퇴적물들을 쌓는다. 이 반대의 과정으로서 희박화의 과정은 불을 생성하게 하는 과정이며, 말하자면 틀림없이 불이 붙은 별똥별과 별들을 생성하게 하는 과정이다. (42)
따라서 밀레토스학자들의 자연학은 지리학자와 기상학자의 자연학이다. 그러나 우주에 일체에 대한 그들의 관점은 다음 세기에 보게 될 천문학의 진보에는 아무것도 예고해주지 못했다. 탈레스와 아낙시메네스에게 있어서 땅[지구]는 평평한 원판이며, 한 사람은 지구가 물위에 떠있다고 했고, 다른 한사람은 공기 위에 떠있다고 했다. 아낙시만드로스에서는 그것이 원통형 기둥이며, 바닥의 지름은 높이의 1/3이라고 했고, 우리가 거주하는 최상의 부분은 약간 배가 나온 듯이 불룩하다고 했다. 지구는 스스로 균형을 유지하고 있다. 왜냐하면, 지구는 우주의 경계(donfins)로부터 동일한 거리에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런데 아낙시메네스는 아주 오래된 신화의 이미지와 마찬가지로 생각해서, 그로서는 태양이 지고 난 뒤에 땅 아래로 지나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태양이 높은 산에 의해 시야에 가려져 있지만, 동쪽으로 되돌아가 가기위해 수평선을 돈다는 것이 진실이라 믿었다. 아낙시메네스가 천체의 고리들과 지구와의 거리를 규정하려했다는, 이런 규정 속에서 사람들은 수학적 천문학이 무엇이 될 것인지의 어떤 희미한 빛을 가까스로 생각할 수 있다. (42)
다른 한편 감각적이고 친숙한 이미지들만이 개입했던 자연학에게 아주 다른 종류의 설명 양식이 덧보태어진다. 세계들의 탄생과 파괴는 어떤 정당한 질서에 따라 규칙화되었다는 것이다. “세계들이 나온 사물들 속에서, 존재들은 필연성에 따라 파괴된다. 이 존재들은 시간의 질서에 따라, 각자들의 부당함에 대해 징벌과 처벌을 서로 서로에게 떠넘긴다.” 이제, 같은 시기에 정의의 질서이기도 한 계속이라는 자연적 질서의 관념이 솟아난다. 이것은 동양문명들에서 매우 널리 퍼져있었던 세계의 질서라는 사회질서이다. 이것은 그리스 철학에서 첫 도식의 역할을 할 것이다. 정의의 개념은 의심할 바 없이 밀레토스학자들이 세계에 부여했던, 그리고 아낙시메네스가 불멸이며 불후라 부른 원초적 실체에 부여했던 신적 특성에 결합되어 있다. (42) (47MKB) (57UKA)
제2절 신화적 우주발생론 Cosmogonie mythiques 43
아주 분명한 이미지를 갖는 이오니아의 지혜는 아마도 이 시대에 이루어진 노력들과 대비를 이룬다. 그 노력들은 신화의 옛 우주발생론에 호감을 갖는 것을 회복하기 위해서 이다. 고문헌수집가인 오노마크리토스(Onomacrite, Ὀνομάκριτος, 전 6세기경)는 아테네 참주 페이시스트라토스(Pisistrate, Πεισίστρατος, 전600경-527)의 측근으로 아테네에 살았는데, 아마도 어떤 잘못으로 527년경에 죽었지만, 그는 고대 신화와 전설들을 모으면서 지냈다. 이 이야기는 그의 편집의 부스러기이거나, 또는 우리가 가장 오랜 자료들 속에서 발견할 수 있는 종류의 편집물들의 부스러기이다. 이 가장 오랜 자료들에서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아리스토텔레스의 제자인 에우데모스(Eudème, Εὒδημος)의 자료들에게까지 거슬러 올라갈 필요가 없다. 이 학자들의 우주발생론들 각각은, 헤시오도스(Hésiode, Ἡσίοδος)에게서와 마찬가지로, 서로 다른 일련의 형식들을 소개한다. 그러나 이 학자들의 신화적 환상은 헤시오도스의 신화적 환상을 넘어선다. 여기서 우리는 옛 문화의 진솔한 쇠퇴를 만나게 된다. 더 이상 질서를 도입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상상작용들을 더욱 두드린다. 플라톤에게서는 사람들이 대양(l'Océan, Ὠκεανός)과 테튀스(Téthys, Τηθύς)를 낳으려고 하늘(Ouranos, Οὐρανός)과 땅(Gaïa, Γαῖα)이 맺어졌다고 본다. 이들에서 크로노스(Cronos Κρόνος)와 레아(Rhéa Ῥέα)의 짝이 태어난다. 이 짝으로부터 이번에는 제우스(Zeus, Ζεύς), 헤라(Héra, Ἥρα) 그리고 그의 형제들이 생산 된다. 아리스토텔레스에서는 신학자들이 밤을 원리로서 삼는다. 우리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제자인 에우데모스에 의해서 유사한 우주발생론들의 온전한 몫(lot)을 발견한다. 즉 이들 우주발생론이 상대적으로 그 당대의 최근 모방 양식들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그의 스승들보다 신중하지 못하여, 곧잘 신학자들의 조잡한 상상을 우리에게 제시하곤 한다. 예를 들어 그 중의 하나는 헬라니코스(Hellanicos, Ἑλλάνικος, 490경-405경)이다. 헬라니코스에 따르면, 첫째 짝이 물과 땅이고, 이들은 크로노스(Cronos)와 헤라클레스(Héracles)다. 그리고 헤라클레스는 황소의 머리, 사자의 머리와 더불어 신의 얼굴을 갖춘 머리 셋의 날개 달린 용이라 한다. 그는 아낭케(Ananké, Ἀνάγκη) 또는 아드라스테이아(Adrastée, Ἀδράστεια)와 결합하였고, 이 짝으로부터 에테르(Éther, Αἰθήρ), 에레보스(Érèbe, Ἔρεϐος), 카오스(Chaos, Χαος) 속에서, 알(un oeuf)를 생성하게 한다. 이 알에서 세계가 나올 것이다. 고생 고생한 노력의 작업들(les élucubrations) 중에서 한 작업에서, 에우데모스는 오르페우스 시들(오르페우스 음류시)의 종교적 연상을 부여 하였는데, 그 한 작업이 최고 존재로서 흐로노스(Chronos)로 나타나며, 이 흐로노스는 에테르와 카오스를 생겨나게 하며, 이들로부터 세계의 알과 날개 달린 신 파네스(Phanès, Φάνης)가 나오게 된다. 이런 작업은 자기 작업과 다른 작업들을 구별하는 것 이외 다른 것이 아니다. (43)
그러나 에우데모스의 신통기들은, 전체적으로 파악해보면, 주목할 만한 특징이 있다. 그 특징은, 이 신통기들이 시간의 신 흐로노스 또는 아드라스테이아와 같은 신화적인 형식에게, 즉 반쯤 추상적인 것들에게 만들어준 지위이다. 이 형식들은 법칙 또는 규칙을 지칭한다. 그것은 우리가 보았던 이오니아의 우주발생론들에서 정의의 신의 이름하에 발명한 그 형식이다. 다른 한편, 이 우주발생론들은 오르피즘 종교의 모임들 속에서 조금씩 똬리를 틀고, 영혼들의 기원과 숙명에 관한 일체의 신념들과 더불어 합체를 이룬다. 이러한 가장 오래된 세부사항들을, 그리고 이 신념들에 관한 신앙으로서 품위들을 우리에게 알려 준 철학자는 플라톤이다. 신체가 무덤 속에 있는 것처럼, 신체 속에 갇힌 영혼이 죽은 후에는 영원히 도취될 향연에 자리를 차지할 것임이 틀림없다. 아마도 대(大) 그리스땅에 있는 도시들, 즉 이탈리아 반도 남단에 있는 투리오이(Thurioi, Θούριοι), 시실리 섬과 접해있는 이탈리아 반도에 있는 페텔리아(Pétélia, Πετηλία), 크레타 섬에 있는 엘류테르나(Eleutherne, Ελεύθερνα) 등에 있는 기원전 2세기의 무덤들에서 황금으로 덮인 작은 판들은, 그 판들 위에는 이집트인의 사자(死者)들의 책에서처럼 영혼이 죽은 후에 따라가야 하는 여정에 관한 충고들과 영혼이 심판에서 발언해야 할 정식들이 조각되어 있는데, 오르페우스종파에 속하지 않는다. 어째거나 불확실한 시대의 전설과 인간의 신적 기원의 전설은 오르페우스신화들의 원에나 디오니소스원환에 결부되어 있다. 이 신적 기원에 플라톤이 암시할 것이다: 제우스의 적이었던 티탄(Titan, Τιτάν) 족들을, 또 제우스의 아들 디오니소스를 소멸하게 했던 티탄 족을 헤라(Héra, Ἥρα)가 물리칠 것이다. 티탄 족은 제우스가 삼킨 심장을 제외하고, 디오니소스의 피 묻은 사지를 먹었다. 이 심장으로부터 새로운 디오니소스가 태어날 것이다. 그런데 제우스는 그때 티탄 족들에게 벼락을 때린다. 이 티탄 족의 재로부터 제우스에 의해 인간 종이 태어난다. 이로서 태어날 때, 제우스로부터 온 선성(善性)이 티탄으로부터 온 악성(惡性)과 뒤섞이게 되었다. 목가적 시인 핀다로스(Pindare, Πίνδαρος 전518-438)는 기원전 478년경에 전성기였는데, 그는 우리에게 일찍이 유사한 신념들이 갖추었던 비유 확장의 증인이다. 즉 “모든 사람의 신체는 매우 권능 있는 죽음에게 양보한다. 그러나 우리 존재의 이미지로 남아있는 것은 아직 살아있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이미지는 신들로부터 오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런 신념들을 철학자들 속에서 곧 발견하러 갈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이오니아와는 거리가 멀 것이다. (44) (47MKF, 57UKD)
제3절 퓌타고라스 학자들 Les Pythagoriciens 44
기원전 494년부터 (멜레토스가 멸망한 해) 밀레토스 학파와 함께 이오니아의 자연학의 거의 모든 흔적이 순간적으로 사라졌다. 게다가 지적인 삶은 대 그리스에서 번창한 식민지들과 시실리로 이동했다. 거기에서 알게 될 여러 사람들은 이오니아 지방에서 왔다. 퓌타고라스(Pythagore, Πυθαγόρας, 기원전580-485년경)는 사모스 섬에서 태어났고, 크세노파네스(Xénophane, Ξενοφάνης 기원전 580-485)는 콜로폰에서 태어났다. 이들은 각각 이탈리아 식민지들에서 중요한 사유의 운동에게, 한편으로 수의 철학에게 다른 한편으로 엘레아주의에게, 충동을 주었다. 이 둘은 장차 관념의 발전을 지배할 것이다. (45)
퓌타고라스주의는 선전과 전파를 할 줄 아는 동료 형성에 만드는데 있어서도, 그리고 대(大) 그리스의 도시들에서 권력을 장악하는데 있어서도, 지적인 운동일 뿐만 아니라 종교적, 도덕적, 정치적 운동이기도 하다. 이 학파의 매우 복잡한 운동으로부터 나와서, 정확한 관념을 세우기는 어렵다. 우선 퓌타고라스 자신의 생애는 초기 세대들에서부터 형성된 전설과정을 통해서만 알려졌다. 게다가 이 퓌타고라스주의의 역사는 매우 분명한 두 시기로 구성되는데, 그 중의 하나는 크로톤에서 학파를 건설한(530년경) 이래로 지속되었고, 플라톤이 죽을 때까지(350년) 지속되었다. 둘째로 신퓌타고라스주의의 시기는 기원 후 1세기경에 시작된다. 그런데 초기시대의 학설과 다음 시기의 학설 사이에 출발선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은 인정한다 하더라도, (구별이 난처한데. 왜냐하면 사람들은 옛퓌타고라스학자들을 알기 위해서 새로운 학파에서 나온 텍스트를 자주 이용해야하기 때문이다) 초기의 퓌타고라스학자들에게 한 덩어리로 부여한 이론들은 매우 분명한 모순들을 포함하고 있어서, 퓌타고라스에게만 이 학설들을 부여하는 것이 불가능하고, 또한 사람들이 학설들의 연결과 학설들의 저자들을 규정함이 없이도 이들을 분류하는 데 만족한다는 것이다. (45)
퓌타고라스는 570년경에 태어나서 530년경에 크로톤에서 종교적 결사체를 세웠다. 그것 자체는 주목할 만한 것이 아무것도 없다. 이런 종류의 결사체는 오르피즘신도의 결사처럼 그리스에 죽 있어왔다. 이 결사들에게 주어진 특별한 임무는 입교자들에게만 비밀을 유지하는 정화의 방법을 교육하는 것이었다. 퓌타고라스학파의 결사도 또한 마찬가지로 그러한 것이었다. 이 결사는 불순한자들에게 폭로해서는 안 되는 비밀들을 가지고 있었다. 아주 오랜 전승에 따르면, 퓌타고라스의 교육은 입교자들에게 죽음 후에 행복한 삶과 결부되어 있었다. 이 결사체는 여성들과 외국인들에게도 열려 있었으며, 도시국가의 종교의 제한들을 넘어섰다. 퓌타고라스학파의 교리문답서에 들어있는 유명한 금지사항들은 가장 세속적인 종류의 금기사항들이었다. 즉 잠두를 먹지 말라, 어둠 속에서 말하지 말라, 반지에 신의 초상을 새기지 말라, 흰 장닭을 희생 제물로 쓰지 말라 등등이다. 이 금지들은 가장 통속적인 종류의 터부들일 뿐이다. 이 금기사항에서 사람들은, 훨씬 나중에 이에 대해 실행하는 사람들처럼, 어떠한 도덕적 상징도 찾지 않아야 한다. 그러나 이 금지들은 종파의 구성원들을 다른 사람들과 구별하는 데 만족하는 기호들이다. (46)
인간과 동물의 신체들을 관통하는 영혼윤회의 학설은, 매우 오래된 한 문서가 퓌타고라스에게 부여하는 이 학설인데, 철학적 반성의 결실로서 간주될 수 없다. 탄생에서 환생의 의미만을 보는 원시인들에게서 자주 마주치게 되는 이 믿음은 동화작용에 결부되어 있으며, 또 영혼이 신체 밖으로 나오는 것으로, 그리고 동물 또는 생명 없는 대상에 남아있는 것으로 전하는 민담에서도 매우 자주 등장한다. 이 믿음은 간단한 역사적 기원에도 전혀 결부되어 있지 않다. 결국, 육식 억제의 규율은, 이것이 실재적으로 학파의 초기 교리문답의 일부를 이루고 있다하더라도, 아마도 모든 살아있는 것에는 통일성이 있다는 것을 믿는 것과 같은 신앙에서 유래했다. 이런 통일성의 믿음이 환생의 이론을 태어나게 했다.(46)
그러면 무엇이 퓌타고라스를 오르페우스 종파들로부터 구별하게 하는가? 이 종파들이 진보했다고 할 수 있는 정도도 아니고, 또한 이 종파들은 자신들의 제의에나 환상적인 신화들에 빠져있었을 뿐이다. 헤로도토스(전484-420년경)에 따르면, 트라키아인 자몰키스(Zamolxis)는 사모스섬에서 퓌타고라스의 노예였는데, 퓌타고라스로부터 “이오니아인의 살아가는 방법”을 배웠다고 한다. 아마도 퓌타고라스는 그리스 전역에 퍼져있었던 밀레토스학파의 우주론을 가져왔을 것이다. 그는 아낙시메네스처럼 세계는 무한한 공기 가운데 잠겨있다고 가르쳤다. 이 무한으로부터 세계는 일종의 호흡에 의해서, 가장 가까운 부분들을 흡수하고, 이 부분들이 세계 속에 들어와서는 사물들을 서로서로 나누어서 따로 놓았다. 무한정한 공기를 또한 컴컴함, 밤, 수증기라 불렀다. 이것은 또한 사물들 속에서 곱셈과 수를 생산하였다. 밀레토스사람들처럼, 가장 오래된 시기에 퓌타고라스파학자인 페트론(Pétron, Πέτρων, ?-?)은 세계의 다수성(la pluralité), 즉 무한정한 다수성을, 말하자면 기하학적으로 줄지어 서있는 세계들을 인정한 것으로 간주된다. 게다가 퓌타고라스의 밀레토스적인 자연학과 질서의 실천적 규칙들 사이에서, 우리가 최소한의 유사성을 파악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47)
이 우주론과, 전승에서 전하는 바에서 퓌타고라스에 부여한 유명한 학설 사이에 더 이상의 겉보기의 친근성이 전혀 없다. 이 전승에서는 모든 사물들은 수들(des nombres)로 되어 있다고 한다. 이 학설 자체는 우리에게 세 가지 다른 측면들을 소개한다. 그런데 이들 사이에 어떠한 연결도 나타나지 않는다. 첫째로, 이 학설은 수들과 기하학적 형상들(les formes) 사이에서 어떤 관계를 지시하다. 퓌타고라스는 그 수들을 철자들의 습관적 상징주의에 의해서 표상했던 것이 아니라, 오히려 수들을 마치 도미노놀이에서 표상하는 것과 같은 방식처럼 표상했다. 각 수들은 마치 점들이 단위들(l'unité)을 포함하는 만큼이나 하나의 집합이며, 이 점들은 기하학적 질서에 따라 배열된다. 이로부터 삼각형수들이, 즉 삼각형으로 배치된 점들에 의해 3, 6, 10, 등으로 표상할 수 있는 것들이 나온다. 정사각형수들은 정사각형으로 배치된 점들에 의해, 4, 9, 16 등으로 표상된다. 직사각형수들은 직사각형으로 배치된 점들에 의해, 6, 12, 20 등으로 표상된다. (47)
학설의 둘째 측면으로, 음악의 세 화음(les trois accord)이 있다. 이 세 화음, 즉 4도음정, 5도음정, 8도음정(옥타브)은 단순 수들의 연관에 의해 표상된다. 즉 2/1 [현에서 이등분의 중간위치], 3/2[삼등분의 둘째 위치], 4/3[사등분의 셋째 위치]이다. 더욱이 사람들은 이 세 가지를 함께 포함하는 어떤 하나의 비례, 소위 조화의 비례를 정의할 수 있다. 즉 이 비례는 12 : 8 : 6 인데, 여기서 중간 비례 항[8]은 가장 큰 극단항[12]을 기준으로, 즉 이 큰 비례에서 비추어 1/3[9]보다 열등하며, 이 중간 수[8]는 가장 작은 극단항[6]을 기준으로, 즉 이 작은 비례에서 비추어 1/3[6]보다 더 크다. 즉 8 = 12 - 12/3 = 6 + 6/3. (47)
결국 셋째 측면으로, 매우 원시적인 상징주의이다. 이 상징주의에 따르면, 수들은 사물의 본질을 대표한다. 유비들 중에 가장 추상적인 유비에 따르면, 7은 기회, 4는 정의, 3은 결혼이다. 이 셋째 측면에서 인간이 수세기동안 재미로 즐겼던 환상적 계수학(l'arithmologie)이 나올 것이다. 그런데 이 셋째 측면을 옆으로 젖혀두면, 사람들은 퓌타고라스가 한편으로는 몇몇 수적 계열을, 다른 한편으로는 몇몇 특수한 수적 연관을 연구하고 밝히고자 어떻게 하였는지를 보게 된다. 만일 그가 이것들을 처음으로 그 자체를 위해서라기보다 사물들을 위해서 연구했다고 해서 - 예를 들어, 삼각수인 10에게, 다른 말로 하면 테트락튀스(tétraktys, tétrade)로서 4개의 첫수들(1, 2, 3, 4)의 합계에게, 특별한 가치를 부여하면서, 이 수들 통해서 그의 교파의 구성원들을 판단했다면 - 그러한 것이, 즉 모든 종류의 새로운 수학적 성질들을 인식하는 데로 이끌었다는 것이 [수의] 가치를 쓸모없게 하는 것은 아니었다. 다른 한편 소위 퓌타고라스정리[32 + 42 = 52]라고 불리는 정리의 발견은, 정사각형의 변과 대각선 사이에서 몇몇 선들 사이는 수적으로 표현할 수 없는 연관(rapports)[√2, 제곱근]이 있다는 것을 생각하는데 까지 나간다. 따라서 퓌타고라스의 과학은 시작에서부터 그 한계가 있었다. (48)
종교적 조직화, 이오니아의 우주론, 자연학적 수학주의, 이 세 가지 특징은 어떤 다른 특징에 의해 채워져야 한다. 그것은 이 교단의 정치적 활동이다. 어떤 조건에서 이 교단은 이탈리아 남부의 크로톤에서 권력을 차지하였는데, 이 퓌타고라스학자들의 정치적 경향이 어떠한 것인지를 우리는 완전히 모른다. 하나의 사실만은 확실하고 또한 확신한다. 그것은 크로톤에서 가장 품위 있고 부유한 인물들 중의 한사람, 즉 퀼로네이오(Cylon, Κυλώνειο)가 이 새로운 주인들(퓌타고라스학파들)에 반대하여 봉기를 했고 성공했다는 것이다. 이 봉기에서 집들을 포위하고 불 질렀는데, 이때 크로톤의 퓌타고라스학자들의 중요한 집들도 파괴되었다. 단지 두 사람만이, 아르키포스(Archippos)와 뤼시스(Lysis)만이 피할 수 있었다. 뤼시스는 테베로 가서, 장군이 될 에파메이논다스(Épaminondas, Ἐπαμεινώνδας, v.418-362)의 스승이 되었다. 아마도 5세기 중엽에 일어났던 이런 파국 때문에, 퓌타고라스 학자들은 그리스 본토 속으로 흩어졌고, 이들을 우리는 재발견하게 될 것이다. (48) (47MLA) (57TKD)
제4절 에페소스의 헤라클레이토스 Héraclite d'Hephèse 48
어두운 자로 불리는 헤라클레이토스(Héraclite, Ἡράκλειτος, 전544-480년경)와 크세노파네스(Xénophane, Ξενοφάνης, 전580-485)는 초기 사상가들로서, 우리는 몇 가지 흩어진 그들의 단편들만을 소유하고 있다. 이들은 우리를 이오니아 지방의 도시들로 안내한다. 헤라클레이토스는 에페소스 출신이다. 여기서 그는 아마도 6세기 말경에 활동했다. 이오니아 지방 전체가 546년에 페르샤인들에 의해 정복되었다. 사람들이 가정하기를, 헤라클레이토스는 이오니아 도시들의 봉기의 증인이었을 것이라 한다. 이 모든 도시들은 에페소스를 제외하고, 498년에 페르샤의 지배와 싸웠기 때문에 파괴되었다. 페르샤 제국의 왕 다리우스 1세(Darius Ier, Δαρεῖος 전550경-전486)는 잔인하게 벌을 주었다. 헤라클레이토스는 도시의 파국 한 가운데서 살았다. 그의 사상이 아마도 이렇게 겪은 인상으로 인해서 이런 비관적인 어투로, 매우 특이하면서도 거리를 유지하는 거만한 측면으로 되어 있다. 이 어투는 간략하고 조용하며 분명한 스타일로, 그럼에도 화려하고 친숙한 이미지들로 된 스타일로 번역될 수 있다. 그의 작품으로 우주에 관하여는 산문으로 쓰여졌다. 그 책은 분명히 우리가 진솔한 철학으로 볼 수 있는 첫째의 작품이다. 말하자면 인간의 삶의 의미에 대해 개념화하는 것을 우주에 대한 반성적 학설에 접목시킨 것이다. 아마도 자신의 작품을 그는 전통적이 된 세 부분으로, 자연학, 신학, 정치학으로 나누었다. 이 세 중요한 부분에서 우리에게 남아있는 130개 짧은 단편들을 정돈할 수 있다. (49)
그의 많은 관점들에서 헤라클레이토스의 우주론은 밀레토스학파의 기원으로부터 나온다. 일반적으로 거기에서 두 가지 중요한 주제를 발견한다. 땅으로부터 발산되는 일종의 건조한 증기에 의한 별들(빛나는 불들)의 설명이고, 그리고 바다로부터 생겨난 수증기에 의한 구름들 또는 바람들에 대한 설명이다. 불로부터 물로 그리고 땅으로 변환(transmutation)의 설명이고, 아낙시메네스처럼 응축과 희박에 의한 반대 변환들의 설명이다. 사람들은 여기서 또한 분명히 분간된 사상을 발견한다. 이 사상은 밀레토스 학설 전체를 함축하고 있는 사상이며, 신들 중 어느 신도 인간들 중의 어느 누구도 만들지 못했던 세계의 자치에 대한 사상이다. 그러나 적어도 우리가 보기에는, 그가 새로운 특징들을 보탰다. 우선 그것은 세밀하고 정확한 탐구에 대한 경멸, 즉 다방면의 연구(polymathie)에 대한 경멸이다. 이런 다방면 연구는 어떤 헤시오도스(Hésiode, Ἡσίοδος)같은 사람이며 동시에 헤카타이오스(Hécatée, Ἑκαταῖος) 같은 이의 박식을 지칭한다. 이들은 시와 역사를 쓰기 위하여 모든 전승을 수집하였고 또 퓌타고라스 같은 이의 새로운 학문도 수용하는 이들이다. 직접적인 직관을 위한 이러한 취향으로부터(“두 눈은 두 귀보다 더 좋은 증인이기 때문에”) 우주론의 이미지들이 나오는데, 이 이미지들로는 신화를 전혀 넘어서지 못한다. 별들은 여러 종류의 하늘의 배([바구니])들에서 건조한 증기들의 축적에 의해 생성된다. 배들이 열려진 방향이 우리를 향해 있다. 이들의 이그러짐[월식, 일식]은 배들이 되돌아 갈 때 일어난다. 태양의 빛과 열은 태양과 지구가 가까워진다는 것으로 설명되었고, 지구는 달이 밝기와 열기를 상실하는 흐릿한 지역 그 위에 있다. 새로운 태양이 매일 창조된다는 것과 아마도 반구 남쪽에 대한 부정 등, 이러한 모든 것은 아마도 진보했다기보다 추론적 탐구에 대해 무시하는 특이성이며, 사유의 원초적 형식들로 퇴행을 지적하고 있다. (50)
헤라클레이토스의 개인적 성찰은 분명한 네 가지 주제들 위에 전개된다. 그 것들의 통일성을 파악하기는 쉽지 않다. 우선 전쟁(la guerre, πόλεμος)은 만물의 아버지이다. 존재들의 탄생과 보존은 서로 대립되면서 유지되는 대립자들의 충돌(un conflit)에 힘입고 있다. 호메로스(Homère Ὅμηρος)와 더불어 바라는 것, 즉 “신들과 인간들의 사이에 불일치가 사그라든다”는 것, 그것은 우주의 파괴를 요구하는 것이다. 이 풍요로운 충돌은 동시에 조화이기도 하다. 이것은 퓌타고라스학파에서처럼 단순히 수적인 연관의 의미가 아니라, 오히려 활의 줄이 팽팽하게 유지되는 힘들과 마찬가지로 상반된 방향에서 활동하는 힘들의 조절의 의미에서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화음과 불협화음이, 낮과 밤이, 겨울과 여름이, 삶과 죽음이 경계 지워지고 또 통합된다. 할당된 정도를 넘어서는 한 대립자의 과도함은 죽음에 의해 벌을 받는다. 만일 태양이 자기의 정도를 넘어서면, 즉 숙명으로 표시된 시간에 잠에 들지 않으면, 그의 불은 모든 사물을 태울 것이다. 사람들은 대립자들의 주제를 보는데, 그 주제는 공간 속에 제한되는 동시성을 지닌 대립자들에게도, 그리고 동시에 시간 속에 제한되는 과도와 부족, 포만과 기아와 같이 규칙적으로 이어지는 계속적 대립자들에게도 제한된다. 이들이 굳게 결속되는 것은 복수의 여신 에리뉘에스(les Érinyes Ἐρινύες)들로부터 봉사를 받아, 정의의 여신 디케(Diké, Δίκη)에 의해 유지된다. 이처럼 헤시오도스와 핀다로스에서는, 호라이(les Heures, Ὧραι, 시간들)는 제우스와 테미스(Thémis, θέμις)의 딸들, 즉 규칙, 정의, 평화의 여신들, 에우노미아(Eunomie, Εὐνομία, 법), 디케(Diké, Δίκη 정의), 에이레네(Eirénée, Εἰρήνη 평화)이다. (50)
헤라클레이토스의 둘째 주제, 그것은 모든 사물들의 통일성(l'unité)이다. 거기에 탁월한 진리가 있는데, 세속인은 자신이 만난 사물들에 몰두할 수 없어서, 그 진리를 주목하지 못한다. 또 황금(l'or)[비유적 진리]이 있는데, 자연이 그것을 감추기를 좋아하여 사람들은 매우 많이 활동해야만 그것을 발견한다. 그것은 마치 파르나스 산기슭에 있는 델포이(Delphes, Δελφοί) 신전의 아폴론(Apollon, Ἀπόλλων)신이 수수께끼 같은 단어로 미래를 감춤에도 불구하고 미래를 계시하는 것과 같다. 지혜라는 것은 모든 전설들을 끌어 모으는 어떤 헤시오도스같은 이와 어떤 퓌타고라스 같은 이의 헛된 박식함이 아니다. 그러나 모든 것으로부터 따로 떨어져 있는 이 유일한 사물[통일성을 깨닫는 지혜]은 귀보다 눈을 더, 전통보다 직관을 더 신뢰한다. 그리고 또 이것은 모든 사물을 인도하는 유일한 사유를 인식하는데 있다. 그러면 이 통일성은 무엇인가? 이 통일성은 밀레토스학파들처럼 원초적 실체의 통일성인가? 어떤 의미에서 그렇다. 원초적 실체는 불(le feu, τὸ πῦρ)이며, 만물은 이 불로부터 피할 수 없다. 마치 상품들이 금에 의존하여 교환되듯이 말이다. 모든 것은, 영원히 살아있는 불이 켜지고 꺼지는 정도에 따라서 태어나고 진행한다. 그러나 불은, 마치 밀레토스학파의 상상에 사로잡힌 바다의 넓은 폭과 같은, 그리고 폭풍을 생산하는 기후 등과 같은, 거대한 자연적 환경들 중의 하나가 더 이상 아니다. 오히려 끊임없이 작동하는 능동적 힘, “항상 살아있는” 불이다. 따라서 헤라클레이토스가 행한 이 선택은 사물의 실체에 관한 것이라기보다 규칙, 사유, 로고스에 관한 주의에 호소하는 것이다. 이 로고스는 실체의 변형에 대한 정확한 척도들을 규정하는 것이다. (51)
헤라클레이토스의 셋째 주제는 만물의 영속적 흐르기(le perpetuel écoulement)이다. “너는 똑같은 강물에 두 번 들어갈 수 없다. 왜냐하면 새로운 강물이 항상 너에게 흘러오니깐.” 존재는 영속적 운동과 분리할 수 없다. 맥주는 만일 그게 움직이지 않으면 분해된다. 사람들은 변화하면서 만이 스스로 정지하고 있다. 시간은, 마치 카드 체커 놀이하는 꼬마들이 하듯이, 사물을 이전시킨다. 젊은이는 늙은이가 된다. 삶은 죽음에 자리를 양보한다. 잠자고 다음에 깬다. 차가운 사물은 더워진다. 축축한 것은 건조해진다. (51)
넷째 주제는 대조로부터 나오는 일종의 아이러니한 관점, 즉 우리가 처음 사물 속에서 보았던 것의 대립자를 그 사물 속에서 우리에게 드러나게 하는 전복(un renversement)이다. 돼지들에게 진흙탕은 맑은 물보다 더 가치가 있고, 당나귀에게는 짚이 황금보다 우수하다. 신과 마주하여 가장 현명한 인간은 원숭이일 뿐이다. 바다의 물은 가장 순수하고 가장 불순한데 물고기에게는 이롭지만 인간에게는 해롭다. (52)
이 주제들은 분명하게 주제들 자체 사이에 친화성이 있다. 대립자들은 이 둘을 포함하고 또 이 둘을 서로서로 제한하는 통일성 덕분에 유지될 수 있다. 헤라클레이토스의 모든 직관은 유일한 학설로, 그리고 심오한 특이성의 학설로 향한다. 그의 모든 대조들은 하나의 유일한 대조 속에 있게 된다. 즉 영속자, 일자, 변하는 자가 서로서로 배타적이지 않다. 전혀 반대로 일자와 영속자가 발견되는 모든 것은 변화 자체 속에, 불화 속에, 그런데 측정되는 변화 속에서 규칙이 될 불일치 속에, 있다는 것이다. 헤라클레이토스는, 지혜가 일반적 공식, 즉 변화의 로고스를 발견하는데 있다는 직관을 가졌다. 규칙성 가운데, 원리들 중의 하나는 시간의 주기적 변화들에 관한 것이다. 시간은 항상 비슷한 원환 이후에, 날들, 달들 연들이 온다. 바빌론 문명에까지 거슬러 올라갈 매우 오랜 전통들에 영감을 받아서, 헤라클레이토스는 한 세대가 인간의 삶에 관한 것이듯이, 세계의 삶에 관한 대년(une grande année)을 발견하고자 애썼다. 그는 대년의 마지막을 주목했는데, 만일 사람들이 그것에 대한 후대의 자료를 믿는다면, 그것은 우주적 대화재(une conflagration, 파국), 즉 불 속에 만물이 흡수됨에 의해서이다. 그 대화재 이후에 세계는 불에서 태어난다. 그런데 이것은 아마도 스토아학자들에 의해 전해진 헤라클레이토스의 거짓 해석일 것이다. 그에게서는 의심할 바 없이 모든 것은 불로써 변한다. 그러나 매 순간에 이 변형은 다른 사물 속에서 불의 역방향 변형에 의해 균형을 이룬다. “상층의 길”인 대화재는 “심층의 길”인 공기 속에서 불의 소멸과 동일하다. “동시에, 불은 흩어지고 또 모이고, 나아가고 또 물러선다.” (52)
헤라클레이토스의 지혜는 세속적인 것을 경멸 했다. 처음에는 대중들의 종교를, 이미지들의 숭상을, 특히 피에 의한 예배의 무식한 정화의식을 믿는 오르페우스 또는 디오뉘소스 같은 불가사의한 예배들을, 저 세상에 관한 인간들의 무지를 유지시키는 비밀스런 밀교자들을 경멸했다. 그리고 또한 도시에서 최상인 자들을 추방하는 군중에 대해 정치적 무능을 보았기에, 왕의 자격이 세습되었던 가정에서 태어난 고상한 자에 대해서도 경멸했다. 분명히 그의 신은 세계의 실재성 그 자체이었을 것이다. “그 신은 제우스라는 이름으로 불리거나 불리지지 않거나 간에” 그 신은 밤과 낮이며, 겨울과 여름이며, 다양한 형태를 취한다. 신의 통일성은 그리스 사유의 시초에서부터 세계의 통일성의 반영이다. (52)
기원전 5세기 중엽에서 그리고 4세기 초에 헤라클레이토스 사상의 성공으로부터 우리에게 두 가지 반향이 있다. 우선 히포크라테스(Hippocrate Ἱπποκράτης, 전460경-377경)에 속하는 저술들의 모음집 속에 보존되어 있는데, 정체에 관하여란 논문이 있고, 그리고 플라톤이 크라튈로스편과 테아이테토스편에서 그 당시의 유동주의자들(les mobilistes)의 생애의 일체를 매우 감동스럽게 그려 묘사한 것이 있다. 의학적 논문은 헤라클레이토스의 우주론적 학설을 건강 이론에 응용한다. 건강을 구성하는 것은 전체의 조화에 있으며, 달리 말하면 운동하는 불과 영양을 만드는 물이라는 두 상반된 힘들의 조절에 있다. 게다가 그 다음 논문에서, 우주론적 학설이 동시에 의학적 학설이 아닌 것이 없다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인간이 하나의 소우주라는 생각은 그 시대에서 매우 널리 퍼져있는 평범한 생각들 중의 하나였다. 우리의 헤라클레이토스적인 의사는 숙달된 훌륭한 솜씨가 없지 않지만, 그 스승의 모든 역설들을 축적하고 있다. “모든 것은 닮았으면서 닮지 않았다. 모든 것은 동일하면서 동일하지 않다. 모든 것은 관계 속에 있으면서 관계없이 있다. 완전히 지성적이며 전혀 지성적이지 않다.” 플라톤이 우리에게 말한 사람들, 즉 자기 자신의 스승이었기도 한 크라튈로스(Cratyle, Κρατύλος, 5세기경)와 그 제자들에 관한 한, 이들은 심화된 헤라클레이토스주의자들 이었는데, 이들은 보편적 유동주의(mobilisme)를 끝까지 밀고 나가서, 안정된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하고, 그에 대한 모든 논의와 심지어는 모든 말투조차도 거부하였다. 논의와 말투라는 것은, 사람들이 논의하는 한에서 사물들의 실체를 함축하게 된다는 구실을 붙였다. 따라서 헤라클레이토스주의는 그 후기 학설들의 이어짐에서는 우리가 기원전 5세기 과정에서 전개될 변증법적 철학에 적대적이었다. (53) (47NKB) (57TKE)
제5절 크세노파네스와 엘레아학자들 Xénophane et les Eléates 54
아마도 페르샤의 정복(기원전 546)의 과정에서 이오니아 지방의 불행이 콜로폰의 크세노파네스(Xénophane, Ξενοφάνης 기원전 580경-485)에게 조국을 떠나게 했다. 그 당시 이오니아인들은 조국을 떠나서 [이탈리아 서안 중부 해안지역] 티레니아 해변에 여러 식민지들을 건설했다. 이런 식민지들 건설 중에 엘레아(Élée, Ελέα)가 있고, 이 도시는 이탈리아 반도 가장 남쪽에 있는 루카니 사람들이 사는 해변의 도시이다. 크세노파네스는, 그의 시로 표현된 글 속에서 보면, 이민자들 중의 한사람이다. 그 시는 먼 이국땅에서 서로 만나서 질문하는 시이다. “너는 어떤 나라에서 왔는고? [고대 이란왕국의] 메디아가 쳐들어왔을 때 너는 몇 살인고?” 그의 애가와 풍자를 통해서 보면, 그는 어떤 고민거리들을 가졌는지를 시구로서 우리에게 충분히 남겼다. 크세노파네스는 밀레토스인들의 정신을 어떤 의미에서 간직하고 있었다. 그 정신은 바다의 증발로부터 오는 발산들 또는 구름들에 의하여 별들과 태양을 설명하며, 지구상에서는 바다에 충적토의 침전을 통하여 일종의 퇴적물을 보고, 화석들의 현존으로부터 증거를 끌어내고, 결국에는 수많은 세계들을 인정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는 앞선 탐구자들과 동일한 과학적 경향은 아니었다. 세계의 형상과 지구의 형상을 아는 것은 그에게 무관심하였다. 그는 오늘의 태양이 직선의 길을 따라서 무한정하게 연속할 것이라는 것, 그리고 지구는 우리의 발아래서 무한정하게 펼쳐져 있을 것이라는 것을 인정했다. (54)
그의 고민들은 다른 곳에 있었다. 헤라클레이토스에서 이미 명백하였듯이, 그에게 있어서는 인간의 이법[누스]과 신화의 전통적 이미지들과는 양립불가능성이라는 생각을 정확하게 하였다. 이런 생각은 밀레토스학파의 과학에 의해 그리고 경험을 통해 무르익었던 것이다. 호메로스(Ὅμηρος)와 헤시오도스(Ἡσίοδος)의 신들은 옷을 입고 인간의 형태와 목소리를 지니고서 인간들과 마찬가지 태어나고, 여러 중범죄들을 범하는 신들이며, 이 신들은 인간에 의한 발명품이다. 이디오피아인들은 신들을 검다고 상상한다. 트라키아인은 신들에게 푸른 눈을 심어준다. 소들이나 말들이, 만일 그들의 신들을 가졌다면, 신들에게 자기 종의 형상을 부여할 것이다. 그리스 목가적 시인 핀다로스(Πίνδαρος)와 반대로, 크세노파네스는 신화들을 경멸하는 위인일 뿐만 아니라, 올림피아경기를 위한 동시대의 취향에 반대하여 경멸의 말투를 남겼다. 그러나 사실상 그는 신중한 방식으로, 그리고 소위 확실성에 도달한다는 주장 없이도, 인간들과는 결코 닮지 않은 유일신의 긍정적 이론을 이 부정적 견해들에 결부시켰다. 왜냐하면, “신은 전적으로 전체를 보고 생각하며, 전체를 이해하고 있기” 때문이고, 그리고 또 신은 전혀 움직이지 않으면서 자기 사유의 지적 권능에 의해서 모든 사물을 지배하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하나이며 지적이며 움직이지 않은 존재라는 자연의 신격화인 것이다. 크세노파네스와 헤라클레이토스와 더불어, 우리는 이오니아의 자연학이 신화의 신학들에 아주 상반되는 신학에서 태어나는 순간에 있게 된다. 이 신학에서 신은 비인격성과 부동성을 지니고, 또 자연법칙을 아는 지적능력을 지닌 어떤 것으로 간주된다. (55)
또한 다른 범위에서, 엘레아의 시민인 파르메니데스(Parménide, Παρμενίδης, 전540경-450경)의 작품이 있다. 엘레아는 540년경에 이탈리아 남부에 건설된 이오니아인의 식민도시이다. 그는 이 도시에서 475년경에 활발히 활동했다. 그는 이 도시에 법률들을 제공했다. 우리는 퓌타고라스학파의 두 사람, 아미나스(Aminias, Ἀμεινίας, 510?-?)와 디오케타스(Diochètas, ?-?)의 이름을 안다. 그는 이 후자의 제자이다. 이 도시는 이오니아와는 아주 다른 지적 환경이었다. 문자의 형식조차 새롭다. 파르메니데스는 싯구로 철학적 저술을 쓴 첫 철학자이다. 우리는 그것의 초반부를 가지고 있는데, 그 싯구는 종교 입문의 문구들처럼 장엄하다. 그 시인에게는 다음이 보인다: 낮의 성문들에까지, 태양신의 딸들이 수레를 끈다. 그 문에는 복수심에 가득 찬 정의의 여신이 지키고 있다. 문지기들의 간청을 받아들여 정의의 여신은 태양신에게 성문을 연다. 태양신은 들어가서 여신으로부터 진리의 말씀을 받는다. 이것은 아마도 아주 먼 옛날로부터 오르페우스종파의 사자(死者)들의 어떤 책에서 모방된 것이며, 환타지의 장치를 갖춘 이오니아 산문의 단순성으로부터 거리가 먼, 또한 헤라클레이토스의 매우 실재론적인 이미지들로부터도 아주 먼, 책에서 모방된 것이다. 우리가 그의 우주론에서 알고 있는 몇 가지는 전적으로 새로운 정신을 배반한다. 만일 그가 지구가 둥글다고 하든지, 저녁별과 아침별이 동일하다는 것을 가르쳤다는 것이 사실이라면, 그것은 세계로부터 정확한 기하학적 이미지를 파악했다는 증거이다. 이것은 이오니아인들이 기상학의 모델로서 상상했던 하늘과는 아주 거리가 멀다. (55)
사실상, 이것들은 이오니아 우주론의 근본적 주제들이다. 특히 헤라클레이토스가 그 우주론에 부여했던 형식에서 이 주제들은 파르메니데스에 의해 바닥끝까지 파괴되었다. 그 이오니아의 주제는 다시 회복하지 못할 것이다. 사물들의 탄생과 생성, 그것들의 분리와 교대로 이어지는 통합, 그것들의 대립들, 그것들의 분할들, 그것들의 변질들, 헤라클레이토스가 소위 말해서 직접적 경험에서 빌려온 이 모든 것인데, 파르메니데스는 추론의 이름으로 부정하는 모든 것이다. 그는 견해[doxa]의 길에 대해 진리의 길[aletheia]의 길을 대립시켰다. 견해의 길은 감관들의 품행, 언어의 습관들로서 이오니아 우주론으로 끌려가는 것이고, 진리의 길은 실재적인 것의 아주 다른 개념작업으로 인도하는 것이다. 파르메니데스의 새로운 사유는 합리적이고 비판적 방법에서 나온다. 이 방법은 그리스에서 모든 철학적 변증법의 출발점이다. 실재적인 것으로부터, 사람들이 실재적인 것을 사유하는 순간부터, 실재적인 것이 있다고 말해야만 하며, 실재적인 것이 없다고 사람들은 말할 수 없다. 왜냐하면 있지 않는 그 무엇을 사람들은 생각할 수도 없고, 설명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것이 이오니아인들이 행한 것이고, 그것은 이오니아인들이 실체로부터 도출될 무엇이기도 하고, 동시에 아니기도 한 원초적 실체를 인정하는 것이다. 그 원초적 실체는 동일한 실체는 아니지만 자기의 생산물들과도 동일한 실체이다. 이것은 이오니아인들이 만든 것으로, 만물의 생성을 인정하면서, 자연의 존재들을 증가하게 하는 그 자연을 인정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있지 않은 것으로부터 있는 것을 나오게 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만물이 스스로 흩어지고 스스로 분할되는 것은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현재] 있는 것은 등급을 갖지 않고, 어떤 위치에 있을 수 있지 다른 위치에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이것들이 운동성이라고 생각할 수 없다. 왜냐하면 이것들에서는 탄생도 소멸도 없기 때문이다. 결국 이오니아인들의 무한한 실체는 불합리하다. 왜냐하면 그 무한에게 충만하게 채워주기 위해서는 [마지막에 필요한] 전체에 모자라기 때문이다. (56)
이오니아 세계 대신에 파르메니데스는 사유될 수 있는 유일한 실재성으로 대체했다. 그것은 완전하고 제한되어 있으며, 중심으로부터 모든 방향에서 무게가 동일한 공(구, 球)이며, 그 공은 [현재] 있는 것[있음]의 조건들에서 유일하게 충분하다. 이 공은 창조되지 않으며, 파괴되지 않고, 연속하며 부동이며 유한하다. 따라서 파르메니데스에게서 ‘있는 것’[있음]은 추상적 용어가 아니다. 더군다나 그것은 감각적 이미지도 아니다. 그것은, 말할 수 있다면, 퓌타고라스 학파의 과학과 접촉에서 생긴 기하학적 이미지이다. 다른 한편 파르메니데스의 공은 그것이 신적 특성인 것으로 간주된다. 이 신적 특성은 헤라클레이토스에게서는 세계의 질서와 같다. 이 반(半) 추상적인 신은 이오니아인들에게서 사물들의 규칙적 흐름을 인도하는 것인데, 그 신은 파르메니데스에게서는 공의 완전한 부동성을 보증해주는 것으로 내세웠다. (56)
그러한 것이 진리의 길이다. 말하자면, 사람들이 견해의 길을 따르지 않아야 한다는 것을 말하는가? 전혀 아니다. 인간적 견해들이 문제시된다는 것을 사람들이 잘 안다는 조건에서 말하는 것이다. 또한 파르메니데스는 자기의 철학에다가 우주론을 중첩시켰다. 그러나 우주론은 만물의 생성과 소멸에 관한 전통적인 견해들을 수집한 것과는 다른 것을 만들고자 원하지는 않았던 것 않다. 이리하여 한편 이 우주론은 이오니아의 우주론과 다른 정신으로부터 나온다. 왜냐하면 그 우주론은 그 자체 속에 헤시오도스와 오르페우스교도들의 신화와 같은 신(神)발생학적(théogonique) 신화를 인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그 우주론은 사랑을 제일의 신으로서 간주하고 있다. 다른 한편, 이 우주론은 원초적 실체를 원리로서 결코 인정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반대되는 두 항들의 - 낮과 밤, 빛과 어둠의 - 한 짝으로 인정한다. 이 항들은 이오니아의 실증주의보다 더 많이 헤시오도스의 환타지를 상기하게 한다. 대립 쌍에 관해서 말하자면, 그것은 완전히 퓌타고라스학파의 사유 특징이다. 결국 이 새로운 우주론은 종교적이고 전통적인 정신을 표시한다. 그에게 있어서 하늘은, 플라톤의 몇몇 신화에서 그렇게 될 것인 것처럼, 영혼들의 통과 장소이다. 거기에는 필연, 즉 아낭케(Ananké, Ἀνάγκη)가 차지하고 있으면서, 영혼들에게 그들의 할당된 몫(leurs lots)을 나눈다. 사실상 세부적 설명에서, 파르메니데스는 이오니아인의 영향 하에 있다는 것을 보태어야만 한다. 동심원적 왕관 같은 것으로 구성된 그의 하늘의 구조에서 그 중심에 땅이 있다고 하는 구조는 아낙시만드로스의 고리들을 상기하게 한다. 그 중에는 순수 불로 된, 즉 빛으로 된 반구가 있다. 이것은, 세계의 극한에서 마주치는, 가장 먼 거리에 있다. 다른 반구들은 매개적이며, 빛과 어둠이 섞여있다. 각 천구들은 이 반구들의 빛나는 부분들이다.
파르메니데스와 더불어, 우리는 그리스 사유에서 상반되는 두 개의 흐름이 그려질 수 있다는 것을 안다. 한편으로 이오니아 실증주의가 있는데, 그것은 직관적이고 실험적이며, 자연적인 수학을 무시하며, 신화들과 종교적 전통과 새로운 종교 입문의식 같은 것에 적대적이며, 거의 대중적이지 않고 거의 존재를 다루지 않는다. 다른 한편으로 파르메니데스와 퓌타고라스의 합리주의가 있는데, 그것은 사유에 의해 실재적인 것을 구축하려고 애쓰고, 변증법적으로 향하는 경향이 있고, 직접적 경험에 거의 공감하지 못하며, 신화와 가깝게 지내고, 숙명의 문제에 커다란 자리를 마련하여주어 다루기에, 자연히 대중적이고 선전하려는 취향을 가지고 있다. 실증주의에 반대하여, 신화적 상상작용과 함께하는 합리주의의 내밀한 연대는 이 시기의 돌출적인 특징일 것 같다. (57)
파르메니데스의 사상으로부터 그의 제자인 제논(Zénon, Ζήνων, 전480/490-420경)이 나온다. 제논은 기원전 5세기경 중반에 활동하였으며, 비판적 측면을 발전시켰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그를 변증법의 기초자라고 했다. 변증법이란, 대담자가 인정하는 원리들에서 출발하면서 그 대담자의 원리들을 반박하는 기술이다. 제논은 그 자신이 대화편들을 쓰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그는 이 새로운 학문적 형식으로 인도하는 길 위에 있었다. 플라톤이 우리에게 말하기를, 제논은 파르메니데스의 명제, 즉 부동의 일자의 현존[존재]라는 명제를 확립하고서, 반대 명제로부터 나온 결과의 부조리들을 제시하였다는 것이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이 반명제에 의해서, 제논은 파르메니데스가 공격 목표로 삼았던 이오니아의 우주론의 학설들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였고, 오히려 만물은 수이며, 다시 말하면 점들과 같은 불연속적인 단위들로 이루어진 퓌타고라스의 명제를 잘 이해했다는 점이다. 제논에 있어서 대비는 양자가 각각 합리성을 목표로 하는 서로 다른 두 표상들 사이에, 즉 파르메니데스의 구의 연속성과 퓌타고라스 세계의 불연속성 사이에 있다. 이 불연속이 부조리이다. 결국, 크기 없는 단위들의 다자(le multiple)를, 즉 점들의 다자를 구성하는 것, 그것은 아무것도 없는 것으로 다자를 구성하는 것이다. 그러나 각 단위에게 크기를 부여하는 것, 그것은 각 단위가 그 단위가 아니라고 말하는 것이 된다. 왜냐하면 각 단위가 그때는 구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만일 어떤 크기로 보태어진 점이 단위를 더 크게 하지 못한다면, 어떻게 점이 이 크기의 조성자(le composant)가 될 수 있는가? 결국 점들로 이루어진 크기를 가정한다면, 이 점들 중에서 둘 사이에는 다른 점들로 이루어지게 되는 어떤 크기가 있을 것이고, 이렇게 무한히 계속 될 것이다. 아울러, 크기가 점들로 이루어진 가설에다가, 제논이 증명한 운동의 불가능성에 대한 유명한 논증들을 보태자. 달리기 논증: 경주자가 경기장의 끝에 도달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그는 무한한 점들을 건너야 하기 때문이다. 아킬레스와 거북이 논증: 거북이를 추격하는 아킬레스는 거북이를 따라잡지 못한다. 왜냐하면, 그는 우선 거북이가 출발했던 장소에 도달해야 하기 때문이고, 그리고 거기서부터 거북이가 현실적으로 있는 장소에 도달하기 위해 다시 출발해야 하며, 만일 그와 거북이 사이에 거리가 항상 무한한 점들로 구성되어 있을 것이라는 것이 사실이라면, 이렇게 무한히 계속될 것이기 때문이다. 화살의 논증: 시간의 매 찰나(chaque moment)에, 날고 있는 화살은 화살 크기와 동일한 장소를 차지한다. 만일 사람들이 시간이 불가분의 찰나들로 구성되어 있다는 것을 가정한다면, 따라서 그 화살은 각 순간(chaque instant)에 정지되어 있다. 경기장의 논증: 만일 두 경주자가 반대방향으로 같은 속도로 운동하며, 움직이지 않는 대상 앞에서 지나가면서 만난다면, 이들은 한 경주자가 다른 경주자에 연관해서 보아도 서로 움직일 것인데, 대상에서 연관하여 보면 두 배의 속도로 움직일 것이다. 그런데 물체가 점들로 구성되어있다면, 또 점과 점 사이에 간격이 불가분의 순간에 뛰어넘게 된다면, 그 결과로서는 한 경기자가 움직이지 않는 대상의 한 점에서 다음 점에 지나가기 위한 필연적 순간이 다른 경기자가 한 점에서 다음 점으로 지나가기 위한 필연적인 순간의 절반 밖에 되지 않을 것이라는 데 있다. 따라서, 결국에는, 제논이 퓌타고라스학자들에 반대하여 옹호하고자 한 것, 그것은 파르메니데스의 연속적 공이다. 그들의 원리는 사물들을 단위들 또는 점들로 구성되었가고 하기에, 제논은 그들의 원리 자체가 그들의 자신의 주제를 파괴하고 있다고 그들에게 제시한다. (59)
사모스 출신의 멜리소스(Mélissos, Μέλισσος ὁ Σάμιος)는 파르메니데스의 제자이며, 제논보다 열 살 이상이나 어리다. 반대로 그에게서는 이오니아의 자연학과 충돌이 첫 과제이다. 멜리소스는 기원전 440년에 페리클레스(Περικλῆς)의 함대를 파멸시킨 사모스의 장군이다. 그의 출신으로 보아, 그는 이오니아 철학을 배운 후에 엘레아학설을 알았던 것이 당연하겠다. 이렇게 설명될 수 있을 것이다: 만일 그가 실재적인 것에게 파르메니데스의 공의 성질들, 단위, 영원성, 연속성, 충만성 등을 부여했다면, 그는 이오니아 사상의 어떤 것을 가지고 크기에서 무한한 것으로 만들면서, 그 어떤 것을 옹호한 것이다. 더욱이 그는 감각적 인식의 불충분함에 관해 정열적으로 강조했다. 결국에는 만일 우리가 하나의 사물이 뜨거운 것이라고 진실로 주장한다면, 우리에게 뜨거운 사물이 차갑게 되는 감각을 오류라고, 다시 말하면, 이오니아 자연학에서 변화의 이미지를 토대로 하고 있는 모든 관찰들을 오류라고 딱지를 붙여야 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59) (47NLF) (57TKE)
제6절 아그리장뜨의 엠페도클레스 Empédocle d.Agrigente 59 ,
파르메니데스의 적대적 태도에도 불구하고, 자연학적 사색은 기원전 5세기 중반에 정력적으로 퍼져나갔다. 그 시기에는 기원전 494년경에 태어나 444년 이후에 죽은 것으로 추정되는 아크라가스 출신의 엠페도클레스(Empédocle, Ἐμπεδοκλῆς, 전494-444), 클라조메나이 출신의 아낙사고라스(Ἀναξαγόρας, 전 500-428), 젊은 퓌타고라스학인들, 그리고 이 세기 말에 압데라 출신의 데모크리토스(Démocrite, Δημόκριτος, 전460경-370경)도 있다. (59)
그러나 전적으로 새로운 특징은 이 모든 학설들에 공통적이다. 즉 변형도 진실한 탄생도 없다. 왜냐하면 아무것도 무로부터 나오는 것이 없기 때문이다. 수많은 매우 작은 입자들의 다양한 조합이 있을 뿐이며, 이 입자들의 각각은 변하지 않고, 완전히 영속적인 성질들을 부여받았다. 이 입자들과 이것들의 통일과 분리의 세계를 상상하는 방식이 많은 만큼이나, 그 만큼의 많은 다른 우주론이 있다. (60)
이미지들이 담겨져 있는 시(詩)에서, 엠페도클레스는 네 가지 원소들(στοιχεῖα)의 학설, 또는 사물들의 “뿌리들”(ῥιζώματα)들의 학설을 서술한다. 즉 물, 공기, 흙, 불이다. 이것들은 화가가 사용하는 색깔처럼, 또는 반죽을 만드는 물과 밀가루처럼, 세계에 속한다. 모든 것은 이것들의 함량에 맞게, 이것들의 재통합과 이것들의 분리로부터 나온다. 그러나 이것들 중의 어느 것도 제일원소가 아니다. 마찬가지로 이것들은 영원하기 때문에 서로가 서로에서 도출되지 않는다. 이 학설은 처음으로 대기의 공기가 현존하고 독립적이라는 것을 인정한다. 엠페도클레스는 [시험]관의 상부 입구를 손으로 막고서 물속에 넣는 방식으로, 물시계(une clepsydre)의 실험에 의해 공기의 현존을 증명했다. 이 장치 속에 들어있는 공기는 하부의 입구를 통해서 물이 들어가는 것에 대해 저항한다. 모든 변화가 일어나는 것은 원소들의 재통합에 의해서든 해체에 의해서든 이다. 따라서 이 두 활동적인 잠재력 중에서, 하나는 원소들이 흩어져 있을 때 이것들을 재통합하는 것이며, 이것을 친밀(l'Amitié, φιλία, 상생)이라 한다. 다른 하나는 원소들이 재통합되었을 때, 이것들을 흩어놓는데, 이것을 증오(Haine νεῖκος, 상극)라고 한다. 상생과 상극은 서로서로 교대로 우월권을 얻는다. 만일 우리가 모든 것이 상생에 의해 통합된 상태에서 출발한다면, 즉 파르메니데스의 공(la sphère, σφαῖρα)과 유사한 스파이로스(le sphaeros, σφαῖρος)로부터 출발한다면, 상극이 조금씩 도입되어 상생을 점진적으로 몰아내고서, 사물들은 상생이 완전히 사라지는 완전한 흩어짐의 상태에까지 이른다. 그러고 나서 반대 운동에 의해, 상생이 점진적으로 세계 속에 다시 들어오면서, 상극을 나가게 하며, 상생은 이미 떠났던 스파이로스로 다시 되돌아온다. 따라서 영원히 교대하는 서로 상반되는 세계의 두 흐름들, 즉 섞임에서 흩어짐으로 가는 흐름과 흩어짐에서 섞임으로 가는 흐름이라는 밝힐 수 없는 질서가 있다. 왜냐하면 상생과 상극은 우월권을 서로 교대로 양보하는 맹세에 의해 참여하고 있다. 우리들의 현실적 세계는 상극이 진행하는 세계이다. 이 스파이로스로부터 처음에는 대기처럼 이를 둘러싸고 있는 공기가 분리되었고, 그러고 나서, 가장 높은 곳에 운반된 불이 분리되었고, 그러고 나서 땅이 분리되었으며, 땅으로부터 물이 솟았다. 천체의 반구(半球) 들 중의 하나의 반구에서 불은 우월성을 갖고 있어서, 낮의 빛을 생산한다. 밤의 반구에서 불은 어두운 공기 덩어리의 가운데 있어서 불의 흔적들만 있을 뿐이다. 태양과 달은 적어도 불타버린 덩어리들이 아니다. 엠페도클레스는 달이 태양 빛의 반사일 뿐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는 일식들의 진실한 원인을 알아챘다. 밤의 본성은 땅의 그림자일 뿐이라는 것도 알아챘다. 달은 응축된 공기의 덩어리이며, 기원전 5세기경에 그리스에 널리 퍼지기 시작한 유리의 거울들처럼 빛을 반사한다. 엠페도클레스는 게다가 모호한 방식으로 이 사색적 이론을 태양에 적용했다. 태양은 하늘 위에서 불타는 반구의 반사라고 한다. 양성의 결합에 의해 동물들이 현실적으로 생성하는 것은 암수 양성인 원초적 상태를 이어가는 것으로 증오[상극]라는 진행의 다른 증거이라고 한다. 우리 세계의 묘사에 대립하여, 엠페도클레스는 모호하지만 상생[사랑]이 진행하는 세계에 대해 묘사했다. 그리고 결합에 의한 새로운 종들의 창조적 발생에 대해서도 묘사했다. 목없는 머리, 어깨없는 팔 등이 방황하여 돌아다니면서 짝과 결합하고자 애쓰는 사지(四肢)들에 대한 묘사는 이러한 장면이다. 이것들의 결합에서 우선 매우 이상한 괴물들이, 즉 인간의 얼굴을 한 소, 또는 소의 머리를 지닌 인간 등이 태어났다는 것이다. (61)
엠페도클레스의 자연학은 세부적인 생리학적 설명들로 풍부하다. 4원소의 학설은 의학 학파를 생겨나게 했다. 이 학파는 필리스티온(Philistion, Φιλιστίων, 기원전 4세기 전반 활동)이란 의사에 알려졌다. 4원소의 성질들, 불의 더움, 공기의 차거움, 물의 습함, 땅의 건조함 등은 활동적 힘들로 간주되었고, 유기체 속에서 이 힘들의 어떤 조합은 건강, 지성의 정도, 다양한 기질 또는 성격을 만든다. 우리가 나머지 것과 잘 연결시키지 못하는 것으로 보이는 이 중요한 이론은 외적 지각의 이론이다. 냄새들(발산물들)은 존재들로부터 발산되어, 감각기관들 속에 위치한 작은 구멍들과 만나게 된다. 만일 알맞은 대응이 일어난다면, 한 향기가 침투하는 것이고, 그래서 지각이 생겨난다. 시각(플라톤도 티마이오스편에서 다시 사용한 생각인데)이란 것도 외부의 빛으로부터 온 발산물과 눈에 포함된 불로부터 나온 불타는 광선 사이에 만남에 의해 생겨난다. (62)
엠페도클레스는 자연학자일 뿐만 아니라, 자신의 고향인 아크라가스(Ακράγας)의 인민들에게는 영감을 받은 예언자로서 자처했다. 그 예언자는 머리에 작은 띠를 두르고, 인민들을 치료할 줄 알고, 인민들에게 영혼의 기원과 숙명을, 그리고 필연적인 영혼의 정화를 가르쳤다. 이 점에서 엠페도클레스는 오르페우스교도들과 퓌타고라스학파의 계보로부터 나왔다. 그래서 그는 영혼들이 동물의 신체로 윤회하는 것을 믿었고, 이런 믿음을 근거로 육식 금지와 계율을 세웠다. 그는 영혼이 다이몬인 줄 알고 있으며, 죽을 수밖에 없는 자기 생애의 연속이 속죄이라고 한다. 이 속죄가 이미 범했던 범죄, 살인, 거짓 선서의 경우에는 3만년을 지속한다. 지상은 동굴이며, 죽음과 분노가 가득 찬, 환희가 없는 나라이다. 사람들은 이 종교적 교육과 우주론의 연결을 매우 잘 알지는 못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엠페도클레스의 비관론과, 세계사의 현실적 국면이 상극에 의해 지배된다는 그의 믿음과 사이에 있는 연관을 주목해야 하지 않겠는가? (62) (47NLJ, 57TKE)
제7절 크라조메네의 아낙사고라스 Anaxagore de Clazomène
이오니아 지방의 클라조메나이(Clazomènes, Κλαζομεναί) 출신인 아낙사고라스(Anaxagore, Ἀναξαγόρας, 기원전 500-428)와 더불어, 이오니아인들의 실증적 영감으로 되돌아가기 위해서 그의 예언자들과 그의 입문자들이 함께 하는, 우리는 새로운 대그리스로 떠나보자. 보수주의적 전통을 간직한 지방의 출신인 이 이오니아인이 어떻게 아테네로 거주하러 왔는지를 우리는 밀레토스지방의 전승들이 거의 없어서 잘 모른다. 아테네는 메디아 전투들 이래로 번성하였고, 새로운 해군 제국의 수도가 되었다. 그는 여기서 30년을 거주하였고, 그 당시의 주인공인 페리클레스(Périclès, Περικλῆς)의 친구가 되었다. 그의 지지에도 불구하고, 아리스토파네스의 구름들(전 423)에서 매우 잘 대표되는 아테네의 늙은 정신은 이오니아인들의 정신과 화해하지 못했다. 이오니아인들은 천구라는 것들의 신성을 부정했고, 태양은 불타는 돌이며, 달도 하나의 땅이라고 가르쳤다. 그는 경건하지 못하다고 고발당했고, 아테네에서 추방당했다. 그러나 플라톤이 전하는 것처럼 그의 영향은 생생하게 남아있었다. (63)
아낙사고라스는 파르메니데스와 이오니아정신 사이의 충돌을 새롭게 해결하려 하였다. 그는 이제 생성도 소멸도 없다고 하는 지배적 원리에 집착하였다. “아무것도 생겨나지 않고 파괴되지 않는다. 그러나 [현재] 있는 만물의 섞임과 분리가 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변화를, 즉 어떻게 한 사물은 다른 사물로 될 수 있는가를, 설명하는 것이다. [한편] 아낙사고라스는 모든 이오니아인들처럼 사물들이 무한히 다양하다는 것을 아주 생생하게 느꼈다. 많은 사물들과 많은 종류들이 있다. 예들 들어 뼈, 살 등. 이것들 중의 각각은 다른 것으로 환원할 수 없는 성질들을 가지고 있다. 그의 관점은 적어도 은연중에 엠페도클레스의 관점에 대립된다. 후자의 것은 사물들을 네 원소의 성질들의 조합과 정량에 의해 설명했다. 반대로 아낙사고라스는 뼈, 살, 머리카락 등은 분해할 수 없는 성질들과 같은 것으로 되어 있다고 생각했다. 다른 한편으로 우리는 사물들이 어떤 것들을 다른 것들로부터, 즉 머리카락은 머리카락이 아닌 것으로부터, 살은 살이 아닌 것으로부터 생겨나오는지를 안다. 실재적으로 이런 생성이 없다면 어떻게 이것이 가능한가? 그 생산은 이미 생산자 속에 이미 현존해있었다는 것이다. 따라서 그 생산 작용은 분리일 뿐이라는 것이다. 사물들이 섞여있는 한 상태로부터, 그리고 그 섞여있다는 이유로 어떤 것들과 다른 것들을 서로 구별할 수 없는 상태로부터, 사물들이 분리되는 다른 상태로, 사람들은 통과한다. 화가가 [색을] 조합하는 기술보다 훨씬 더 나은 기술을 갖춘, 자연은 광석으로부터 철을 추출하는 제련술 기사의 기술에 비교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사물들의 변형은 무한하며, 어느 사물도 다른 사물로 탄생하기를 그치지 않는다. 따라서 각 사물은 자기 속에 모든 사물들의 씨앗들을 포함하고 있어야만 한다. 그 씨앗들은 혼합되어 있기 때문에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서로 섞여있다. “이 사물들은 도끼로써도 서로서로 잘라지지 않는다. 더위로부터 추위로도 추위로부터 더위로도 잘라지지 않는다.” 각 사물은 자기 속에 우세한 성질에 따라서 이름이 붙여진다. 그러나 무한히 많은 다른 성질들이 그 속에 분명하게 구별되지 않을지라도 현재 들어있다. 따라서 스스로를 만들고 있는 과정 중에 있는 분리란 결코 완성되지 못한다. 그리고 분리란 항상 존재로부터 그 만큼이나 멀리 있으니, 여기서 운동은 끝이 없다. 씨앗들의 각각은 무한성을 포함하고 있으며, 모든 사물의 씨앗들을 아리스토텔레스가 전통적 생성의 이름으로 호모이오메레이아이, 즉 동질부분들이라 불렀다. 그러나 씨앗들은 사물들을 구성하는 부분들이 수에서 제한되어 있다. 아낙사고라스는 분할운동의 무한성을 인정할 수 있었다. 왜냐하면 그는 상대적으로 무한분할가능성을 인정하기 때문이며, 또한 무한분리가능성과 더불어, 제한된 신체 속에서 무한한 호모이오메레이아이를 인정하기 때문이다. 무한한 호모이오메레이아이는 분리를 무한히 가능하게 내버려 둘 것이다. (64)
이로부터 사람들은 밀레토스의 옛 우주론들을 새로운 언어로 번역할 수 있다. 아낙시만드로스의 무한은 무한히 큰 혼합이 된다. 거기서 “모든 사물은 일체이며, 그것들의 최소치에서는 구별될 수 없다”. 우주론은 분리의 연속적 과정의 역사일 것이다. 그 분리 과정에 의해 세계의 부분들이 서로서로 떨어지며, 한편 조밀하고 습하며, 춥고 어두운 부분은 중심으로 재통합되는데 비해, 반면에 희박하고 더운 부분은 외적 영역으로 옮겨간다. 그러나 아낙사고라스에게는 다른 문제들이 제기되었다. 무한히 완전한 동질부분 속에 운동의 어떤 기원이 있을 수 있는가? 엠페도클레스에게서 운동의 기원이 요소들의 외부에 있었던 것처럼, 그 기원은 혼합보다 상위이며, 외적인 실재성 속에서만 있을 수 있다. 단순하고 혼합 없는 이 원인은 자체적으로 현존하며, 세계의 배열질서의 원리이다. 그 원리가 지성, 즉 누스(Noûs)이다. 그 누스는 어떤 메카니즘에 의해 작용하는가? 아낙사고라스는 천체운행에 의해 생겨난 변화로부터 받은 인상의 영향으로, 사물들을 서로 분리하는 제1원인이 원운동 또는 회오리운동이라고 인정했다. 따라서 그가 상상하기를, 누스는 원운동으로부터 우선 그자체적으로 활성화되고, 그러고 나서 제한된 공간에서 작은 회오리를 생산한다는 것이다. 그 누스는 조금씩 자신의 중심으로부터 주위를 넓혀가며, 무한한 공간으로 퍼져간다. 사물들의 분리는 파악하기 어려운 방식으로 회오리 운동의 기계적인 작용에 의해 생산되었다. 예를 들어 별들은, 에테르가 흙에서 돌들을 빼내서, 이들을 신속한 운동의 속도에 의해서 불을 붙였다는 사실에서 유래한다. 게다가 그 동일한 과정이 제한된 공간의 수많은 점들로부터 생산된다. 밀레토스학파의 교육에 따르면, [사람들은] 무한한 세계들을 받아들여야만 한다. (64)
아낙사고라스의 생물학은 그의 우주론과 감각적 연결이 전혀 없다. 그는 아마도 모든 살아있는 존재자들이 식물을 포함해서, 그 자체들 속에는 보편적(우주적) 지성[누스]의 파편들이 들어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감각작용이 대립자들에 의해 만들어진다고 가르쳤다. 완전히 감긴 눈꺼풀 속에서도 빛의 이미지가 나타날 수 있다고 한다. 우리보다 더 뜨겁고 더 차가운 것이 우리를 덥게 하고 춥게 한다고 한다. 따라서 모든 감각은 괴로움을 포함하고 있는데, 왜냐하면, 괴로움은 닮지 않는 것과 접촉 때문이다. (65) (47NMA, 57UKE)
제7절. 기원전 5세기경 의사들 Les Médecins du 5é siècle 65
아낙사고라스 이후에 기원전 5세기 과정에서, 이오니아의 정신은 주목할 만한 대표자들은 없었을 지라도 지평을 유지한다. 자연학자들은 희극작가들(les comiques)에 의해 조롱받았는데, 크라티노스(Cratinos, Κρατίνος, 전520경—423경)에 의해 히폰(Hippon, Ἵππων, 전5세기)이, 아리스토파네스(Aristophane, Ἀριστοφάνης, 전450-386)에 의해 아폴로니아의 디오게네스(Diogène d'Apollonie, Διογένης)가 조롱 받았다. 그리고 플라톤은 크라튈로스(Cratyle, Κρατύλος)(409 b)편에서 아낙사고라스학파들에 대해 말한다. 이로써 사람들은 밀레토스학파의 옛 주제들 각각이 되살아나는 것을 본다. 히폰은 물을 원리로 삼고, 아폴로니아의 디오게네스는 공기를 원리로 삼는다. 아테네의 아르켈라오스(Archélaos, Άρχέλαος)는 아낙사고라스와 마찬가지로 누스와 원초적 섞임을 인정했다. 그러나 이 작가들은 우주론보다 생리학에, 그리고 의학에 더 관심을 가졌다. (65)
기원전 450년경에 코스(Cos, Κῶς) 섬에서 태어난 히포크라테스(Hippocrate, Ἱπποκράτης, 전450경-377경)의 이름으로, 마흔한 편의 의학 논문들을 우리는 소유하고 있다. 이 논문들은 5세기 말에 그리스인들의 지적 생활에서 의학이 지녔던 상당한 중요성을 우리에게 제시한다. 이 모든 그리스인 작가들은 오랜 미신들에서 벗어났으며, 사람들은 간질이라는 논문의 놀라운 앞부분을 알고 있다. “나는 성스런 질병이라 불리는 간질이 더 이상의 신적인 것도 아니고, 다른 질병보다 더 성스런 것도 아니다. 인간들은 무지에 의해 그 질병에게 신적 기원과 원인들을 부여했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다른 학자들 가운데서, 의학과 철학적 우주론 사이의 연관에 관한 방법상의 심각한 충돌을 빚었다. 옛 의학에 관하여(2권, 전5세기말)라는 논집의 저자와 마찬가지로, 몇몇 의사들은 무엇보다도 자기의 기술에 비해 자연학의 독단과 불확실을 걱정했다. 질병과 건강의 원인으로서 추위와 더위의 가설, 건조와 습함의 가설과 같은 헛된 가설에 도움을 받는 것은 알맞지 못하다는 것이다. 사람들이 확신을 보장할 것이 아무 것도 없는 가운데서 천체운동을 다루고자 할 때, 그러한 몇몇 가설들은 선량하다. 그런데 진실한 의학은 자율적이며, 그리고 의학은 가설에 도움 없이 관찰을 통해서, 의학이 확신하는 무한히 많은 것들을 발견했다. 이 경험적 방법은, 플라톤이 파이드로스편의 한 구절(270 c) 속에서 관점을 매우 완전하게 정의한 생리학적인 의학들과는 대립된다. 플라톤이 생각하기에는 우주의 본성 없이는 영혼의 본성을 이해한다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만일 이런 가운데 히포크라테스를 믿어야 한다면, 경험의 방법 없이는 물체[신체]에 대해 말할 수조차 없다. 만일 그 물체가 단순한지 또는 합성적인지를 각각의 존재에 맞게 검토해야 한다. 그리고 만일 그것이 합성적이라면, 그 부분들을 열거하고, 그것들의 각각에 맞게, 그 부분에 속하는 능동들과 수동들을 검토해야 한다. (66) (47NME, 57UKF)
제9절 5세기경의 퓌타고라스학자들 Les Pythagoriciens du Ve siècle 66
같은 시기에 퓌타고라스학자들은 또한 한 방면으로 참여했다. 보지 않고 듣는 자들은 실천과 믿음이 그 중심인 순수 종교적 질서를 형성했는데 비해, 반면에 수학자들은 수학, 천문학, 음악 등의, 말하자면 플라톤에 의해 철학의 출발점으로 삼을 과학들의, 과학적 발전만을 탐구했다. 이들은 매우 잘 못 알려진 그룹을 형성했는데, 그 우두머리로서 필로라오스(Philolaos, Φιλόλαος, 기원전 485경-385경)가 있었을 것이고, 이 그룹에는 세베스(Cébès de Thèbes)와 심미아스(Simmias de Thèbes)도 포함되는데 플라톤은 이 둘을 소크라테스와 대화하는 파이돈편에서 소개한다. 그리고 정치적으로 장군이자 통치자였던 아르퀴타스(Ἀρχύτας, 기원전435경-347)도 있는데, 그는 플라톤의 친구이며, 그의 성향 상으로 철인 왕이 되고자 하였던 인물이다. 또한 티마이오스(Τίμαιος, 기원전 5세기경)도 포함되는데, 그를 통해서 플라톤은 자신의 자연학을 서술하였다. 플라톤주의의 독단들이 묘사되었던 이 지적 환경으로부터 정확한 역사를 재구성한다는 것을 불가능하다. 그 진위가 의심되지만 필로라오스의 단편들을 따로 젖혀두고, 우리가 갖는 모든 확실한 자료는 아리스토텔레스가 서술한 원전들일 뿐이며, 이 원전들에서 아리스토텔레스는 더 이상 정확하게 하지 못하면서도 퓌타고라스학자들의 학설들을 제시한다. 그 중 보존된 한 개론에서 보면, 그들은 이오니아의 우주발생론에서 거의 완전히 해방되었다는 점이다. 그들이 그렇게 해 온 것처럼, 결국 말하고자 한 것은, 만물들은 수로 이루어졌다는 것이고, 그러한 것은 사물들이 불이나 공기로 이루어졌다고 말하는 것과 같은 의미일 수 없다는 것이다. 점들로 배열된 것들로서 또는 크기로서 수들을 상상하는 어떤 방식으로부터, 수들은 불이나 공기처럼 다른 것으로 변형될 수 있는 그런 실체가 결코 아니라는 것이다. 수들은 고정되고 영속적인 질서를 가정한다. 여기에서 그들의 우주론적 성격이 나온다. 이 우주론은 이오니아 방식으로 우주발생론을 허용하는 것이 아니고, 어떤 질서, 즉 우주를 묘사하는데 만족하면서, 자연학 대신에 순수 수학적 천문학을 생성하게 한다. 그들이 보는 세계의 체계 속에서, 중심은 불이 차지하고, 그 불 주변에 반지구라 불리는 첫 혹성이 끌려서 돌고 있고, 그리고 줄을 서게 하는 순서상 지구, 태양, 다섯 혹성들, 그리고 고정된 별들이다. 이 체계로부터는 아무것도 그들이 기원을 찾았다는 것을 지적해 주지 못한다. 더군다나 그들이 지구에 할당한 위치는 이오니아인들의 관념들을 완전히 배제한 것이다. 이오니아인들의 생각은 천체의 현상들을 기상의 현상들에 동화시킴으로서 다소 시달렸던 정신을 지니고서, 바로 그런 이유로 해서 구름으로 된 천장 그 아래에 움직이지 않는 지구를 어쩔 수 없이 가정하였다. 관찰을 통해 접근할 수 없는 천문학적 실재성들에 대한 상상, 즉 반지구와 중심불에 대한 상상에 - 우리가 거주하지 않는 반대방향에 있는 지구 반구를 밝히는 중심불 – 관하여, 그 실재성들 중의 하나인 중심불은 어떠한 우주론적 특성을 갖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태양 빛을 가지고 엠페도클레스에서 이미 마주쳤던 설명을 숙명적으로 부여하는데 있다. 다른 하나인 반지구는, 중심불과 달 또는 태양 사이에서 불투명한 물체의 개입에 의해 (월, 일)식(蝕)을 설명하는데 있다. 따라서 새로운 퓌타고라스주의는 어떤 의미에서는 이오니아인들의 동적이고 질적인 자연학으로부터 진실한 해방이었다. 이 자연학은 마지막 아낙사고라스파 학자들과 헤라클레이토스파 학자들과 더불어 다 퍼내 쓴 표시가 되었다. 이런 시대의 상황을 전후로 해서, 천체의 질서와 운동에 관한 가설이 풍성했음이 틀림없는데, 그러나 우리에게는 흔적들만 남아있다. 이 흔적들 중에 하나인 퓌타고라스 학파인 히케타스(Hicétas, Ἱκέτας, 전400경–335전)가 있다. 히케타스는 낮의 운동을 지구가 자기의 축 위에 도는 자전운동에 의해 설명했다. 우리는 이 내용을 키케로(전106-43)의 한 구절을 통해 아는데, 이 구절은 수세기를 지나서 코페르니쿠스(1473-1543)의 주의를 끌게 했다. (59) (47OKB, 57UKF)
제10절 류키포스와 데모크리토스 Leucippe et Démocrite 68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일한 시기에 이오니아정신은 독특한 정열을 다시 불붙였다. 그러나 방향은 달리한다. 밀레토스의 류키포스(Leucippe, Λεύκιππος 480/460년경-370경)는 엘레아에서 제논(Zénon)의 교육을 받았고, 그 운동의 첫 전수자였으며, 이 운동을 압데라의 데모크리토스(Démocrite d’Abdère, Δημόκριτος 460경-370)가 이어 갈 것이다. 데모크리토스는 460년경에 태어나 420년경에 압데라에서 그의 학교를 건립했다. 소크라테스보다 10여년 젊고 더 오래 살다가 죽은 이 철학자는 백과전서적인 자연학을 발전시켰다. 그는 매우 방대한 동물학과 식물학의 관찰들을 수집하는 취향을 가졌다. 그가 자신에 대해 말하기를 “어느 사람도 나보다 더 많이 여행하지 않았을 거다. 많은 나라들만큼이나 여러 기후들을 보았고, 돌아다닌 만큼이나 많이 교육받은 인간들의 강론들을 들었다”. 사람들은 그의 매우 다양한 주제들에 관한 50여 편의 개론서들의 제목을 보존하고 있다. 도덕론, 우주론, 심리학, 의학, 식물학, 동물학, 수학, 음악, 기술론 등 어느 것도 그를 벗어나지 않았다. 아리스토텔레스의 것만큼이나 방대한 저술들 중에서, 그리고 그의 보편성의 야심 때문에 그가 속한 소피스트들의 시대의 특징을 지닌 그의 저술 중에서, 몇몇 단편들만이 남아있다. (68)
그의 일반적인 사유 속에서, 사람들은 류키포스의 우주발생론을 데모크리토스의 것과 구별할 수 없다. 데모크리토스는 그의 작품 두 우주: 세계의 체계에서 류키포스의 우주발생론을 진술하고 있다. 그 우주발생론은 밀레토스학파의 도식에 충실하다. 그 우주발생론에는 무한한 덩어리가 있다. 그 속에서, 연속적으로 또는 동시적으로 생산될 수많은 세계들의 물질이 길어 올려 질 것이다. 하나의 세계가 형성되기 위하여, 소용돌이 운동으로 활기를 얻게 된 한 조각이 이 덩어리로부터 떨어져 나오는 것으로 충분하다. 세계의 부분들의 구별과 배치는 아낙사고라스에서처럼 소용돌이 운동의 효과들이다. 기원전 5세기 말경에 데모크리토스에게서 세계의 몇몇 세부 사항들도 마찬가지로 분명하게 고풍의 특성을 지닌다. 즉 아낙시만드로스처럼 온전하게 그도 지구에게 템버린의 형태 또는 원판의 형태를 부여한다. (59).
그러나 고풍스런 낡은 거푸집 안에, 그는 상당히 새로운 것을 도입한다. 즉 원자들 의 이론이다. 데모크리토스의 자연학은 아주 분명하게 입자적인 초기 물리학이다. [한편] 모든 세계들의 씨앗들이 뒤섞인 채 있는 무한한 덩어리는 무한히 작은 입자들로 이루어져 있다. 이 입자들은 그 크기가 너무 작기 때문에 볼 수 없고 또 불가분이며(원자들, atomes), 완전히 충만하고 영원하며, 입자들 각각은 동일한 형상을 간직하지만, 결합에서는 무한히 다른 형상들을 표상한다. 그는 이 형상들에게 관념들(idées)라는 이름을 부여했다. 이 동일한 이름은 플라톤이 나중에 동등하게 영원한 본질들에게 부여할 것이다. 원자들 사이에는 그것들의 크기와 형태이외 어떠한 다른 차이도 없다. 또는 만일 아톰들이 동일한 크기와 동일한 형태를 가졌다고 하더라도 그것들의 위치이외 어떤 다른 차이도 없다. 동일한 아톰들의 여러 조합들 사이에서 아톰들의 상대적 질서 이외 어떤 차이이도 없다. 다른 한편, 세계의 기원은, 즉 무한 덩어리로부터 부분의 이탈은, 빈 것을 가정한다. 그 빈 것 속에 이 부분이 떨어진다. 빈 것 없이는 운동도 없다. 그리고 이 빈 것에 의해서 견고함이 완전히 박탈당한 공간을 이해해야만 한다. 그 공간은, 있는 것과 대립에 의해서, 있지 않는 것이다. 따라서 빈 것을 주장하는 것, 그것은 있지 않은 것의 현존의 필연성을 주장하는 것이고, 따라서 이것은 파르메니데스의 위대한 원리를 모순되게 말하는 것이다. 아톰들의 무더기는, 우리가 그렇게 말했듯이, 회오리운동에 의해 활성화 되었다. 그런데 그 운동의 기원은 모호하다. 이 운동의 효과는 무게를 지닌 아톰들 사이에 여러 충돌들을 생산하는 것이다. 바람 또는 물의 회오리에서 일어나는 것처럼, 가장 가벼운 아톰들도 외부의 빈 것을 향하여 되 튕기어나가며, 반면에 촘촘한 원자들은 중심으로 통합되고, 거기에서 원자들은 초기의 공[球, 구]같은 집합을 형성한다. 이 공 안에서 조금 조금씩 공 모양의 겉 봉지와 중심핵으로 구별된다. 그 봉지는 점점 엷어지게 되고, 중심에는 잔가지에서 제거된 원자들이 부분적으로 집적된다. 그 잔가지에서는, 회오리운동에 접촉하고서 그 운동에서 집적되었던 외부 원자들을 희생하고서, 천구의 물체들이 형성된다. (69)
이리하여, 그리스 우주론에서 처음으로, 뜨거움[열 熱]과 차거움[냉, 冷]과 같은 질적인 잠재력들에게 어떠한 호소도 하지 않는다. 지성, 우정[사랑] 또는 증오 같은 근본적인 실재성의 외부 운동 원인들에게 어떠한 호소도 하지 않는다. 이제 소립자적인 역학만이 있다. 여기에서는 도형, 불가침투성, 운동, 위치 같은 성질들만이 오직 역할을 한다. 진실한 실재성은 원자에게, 그리고 빈 것에게 속한다. 우리가 사물들에게 부여하는 다른 성질들, 맛, 열기, 색깔 등은 단지 협약에 의해서만 사물들에 속한다. 이 성질들은 감각작용의 단순한 감화작용들이며, 감각작용은 대상에 의해 기관의 변질에서 생겨난다. 이것은 마치 플라톤이 압데라 출신의 소피스트인 프로타고라스에게 제공한 학설에서처럼 설명된 것이고, 또 이 학설에 따르면 지각된 성질은 두 운동의 협력의 결과이다. 바로 이러한 것이 데모크리토스가 생각했던 시각론인데, 말하자면, 눈과 보인 대상 사이에 간격에서 자리를 차지한 공기가 이 둘의 각각에서 발산하는 방전같은 이중의 영향 하에서 압축되어있다. 따라서 공기도 인상을 받아들이는 소질이 있어서, 그 공기가 동공에까지 전달한다. 그리고 동공에서는 대상의 반사가 이루어진다. (70)
이리하여, 기계적인 물리학이 생겨남과 동시에, 감관들에 관하여 아주 자연스럽게 회의주의가 생겨난다. 감관들이 우리에게 주는 인식은 “잡종의 인식”이다. 합법적 인식은 이법[이성]으로부터 온다. (70)
따라서 운동성은 어떤 성질적인 잠재력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원자들의 형태와 차원에 의존한다. 그러한 이유로 해서 입자 물리학은 영혼의 이론을 포함하고 있다. 영혼은 움직이고 운동의 원인이기에, 마치 불의 아톰과 같은 또는 태양광선을 통해 볼 수 있는 이리저리 날아다니는 먼지들처럼, 공 모양의 아톰들로 되어 있다. 신체의 원자들과 동등한 수로 되어 있고, 또 신체원자들과 하나하나 번갈아가면서 그 원자들에 병치되는 영혼의 원자들은 들이쉬는 숨에 의해 연속적으로 되돌아온다. (70)
데모크리토스의 남아있는 단편들로부터, 우리는 원리를 겨우 볼 수 있을 것이다. 그의 논문들의 일체에 따르면, 마치 고대 증거들에 따르면, 그를 이론가로서보다 관찰자로서 생각할 필요가 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우리에게 알려주는 바로는, 그가 비판할 의도가 없지 않았지만, 데모크리토스는 생산되는 사실들을 모으는데 만족하였고, 그리고 그 원리들에 앞서서 더 많이 규정하기를 원하지도 않았고, 그것이 일어났을 때 그것의 항상성을 기록하는데 만족하였다. 즉 기원전 5세기경에 이오니아의 역사가들, 헤카타이오스(Hécatée, Ἑκαταῖος, 전550경-480년경) 또는 헤로도토스(Herodotos, Ἡρόδοτος, 전484?-430)가 역사의 사실들을 수집하였던 것과 동일한 정신으로 또 동일한 호기심으로 자연적인 사실들을 수집하고 분류하는데 만족하였다. (71)
데모크리토스의 매우 실증적인 정신과학에다가 도덕론을 덧붙였다. 그 도덕론은 대그리스의 철학자-시인들에서 표현되는 숙명과 생명의 비극적인 의미에서는 완전히 낯설지만, 걱정 없고 또 미신 없는 영혼의 고요함(le calme)[ἀπάθεια]을 주제로 삼았다. 데모크리토스는 신들의 현존을 인정했지만, 그것들은 인간들과 동일한 자격으로서 보편 우주의 필연성에 복종하는 일시적인 원자들의 조합들이다. (71) (47OLA, 57UKF)
제11절 소피스트들 Les Sophistes 71
우리가 말해왔던 이 마지막 철학자들은 메디아 전쟁들의 마지막(449년)을 표시하는 특별난 정신적 융성기의 환경에서 살았다. 그리스는 야만적인 위험에서 벗어났다. 아테네의 해양 제국은 에게 해의 섬들 일부분과 이오니아에 속했던 문명의 옛 땅을 차지하였다. 페리클레스(Περικλῆς, 전495경-429)는 아테네에 민주 헌법을 도입했다. [한편] 그리스 고전 연극에서 번역되어 나타나듯이 매우 깊은 도덕적 동요가 있었다. 아이스퀼로스(Αἰσχύλος, 전525-456)가 신적 정의로 표시되었던 한계를 넘어서려는 데서 오는 무절제의 위험과 범죄의 장면을 상연했다. 반면에 에우리피데스(Εὐριπίδης, 전480-406)는 끊임없이 인간적 특성을, 즉 정의 규칙들 중에서 임의적이고 협약적인 인간적 특성을 표시했다. 다른 한편, 희극은 옛 전통들을 옹호하면서 이오니아 과학이 도입한 새로운 사상들을 공격하고 조롱했는데, 왜냐하면 이 사상들을 두려워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또한 소피스트들의 교육을 조롱했다. (71)
논증술(la sophistique)은 기원전 5세기의 후반 50년대에서 특징을 이루고 있는데, 이것은 학설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가르치는 방법을 지칭한다. 소피스트들은 한 도시에서 다른 도시로 청강생을 찾아다니는 교수들이다. 이들은 약속된 수업료를 받으면서 자신들의 학생들에게, 고증적 과목들로서든지 또는 일련의 강좌들로서든지, 그 주제가 어떠하든지 간에 그 주제에서 승리하게 하는 방법들을 가르친다. 이들은 진리의 탐구와 진리의 출판 대신에, 납득하게 하고 설득하게 하고 유혹하게 하는 기술에 기초하여 성공을 탐구하는데 있다. 지적 삶의 중심은 그리스 대륙에서 일어났으며, 이 시기는 지적인 삶이 경쟁과 경기의 형식을 취하고, 또 그리스 삶에서 매우 친숙한 투창시합의 형식을 취하는 시기이다. 최고권한을 지닌 심판관이, 이 심판관이 종종 시민이 되기도 하는데, 경쟁자들을 분간하여 그들에게 값어치를 부여한다. 그리고 경쟁자들이 경쟁에서 이기고 자기주장을 잘 방어했던 주제들만이 중요하다. 그러한 것이 정의의 주제와 불의 주제 사이에 일어난 것으로 아리스토파네스(Ἀριστοφάνης, 전 450-386)가 우리에게 제시한 토론이다. 정의가 묻기를, “너는 누구인가? - 한 주장이지. - 그래, 그러나 나의 것보다는 열등하지. - 너는 나보다 우월하다고 주장하지만 나는 승리를 계속하고 있지. - 그러면 너는 어떤 교묘한 재능을 가졌는가? - 나는 새로운 이유들을 발명하지.” 이러한 것이 에우리피데스(Euripide, Εὐριπίδης, 480-406)가 안티오페(410년경)에서 뮤즈들 중의 한 친구와 정치가 사이에서 묘사한 삶의 이상에 관한 토론이다. 플라톤은 이와 대조적으로 우리에게 제시하면서, 소크라테스를 이런 경연에서 슬며시 빠져 나가게 하다. 플라톤의 프로타고라스편에서, 히피아스가 소크라테스와 프로타고라스 사이에 이런 종류의 토론을 이루기 위해 시도했으나 헛되었다. 플라톤의 고르기아스편에서 칼리클레스(Calliclès)는 자연적 정의를 위하여 하나의 담론은 발언한 후에, 소크라테스가 다른 담론으로 자기에게 대답했기 때문에 소크라테스가 놀이의 규칙을 위반했다고 불평한다. 거기에서는 청중의 어떤 선입견이 있는데, 우리는 이 선입견을 이제야 겨우 알아차릴 정도이다. 그 철학자[소크라테스]는 더 이상 진리를 드러내지 않고, 미리 앞서서 그 청강자의 평결에 수긍하며, 그 진리를 제안 한다. 영속되는 것은 이런 특성이다. 소피스트시대 내내, 사람들은 연설가, 정치가, 소피스트에게, 말하자면 공적인 인간에게 말을 거는 모든 자들과 연관해서 철학자를 정의할 임무에 힘쓴다. (72)
이런 조건들에서 지적으로 중요한 가치들은 박학다식과 능수능란이다. 전자는 그 인간[철학자]에게 인식의 대상에 유용한 모든 인식들을 소유하게 하는 것이고, 후자에서는 그 인간이 자기 견해 맞는 자기 주제들을 선택하고, 이 주제들을 마음을 사로잡는 방식으로 소개하는 것이다. 이로부터 소피스트들의 두 개의 본질적 특성이 나온다. 한편으로 이들은 기술자들이며, 인간에게 모든 기술들을 가르치고 알게 할 수 있다고 허풍 떤다. 다른 한편으로 수사학의 스승들이며, 청중의 호의(la bienveillance)를 사로잡는 기술을 가르친다. (72)
첫째 관점에서 논증술(la sophistique)은 사회생활의 우월성에 관하여 이 기술들을 근거로 해서 [자기] 주장을 통할 수 있게 한다. 가장 천박한 직업에서부터 가장 고상한 기술에까지, 즉 정치적 덕목에까지도 소피시트들은 가르칠 수 있다고 과장한다. 이것이 4명의 유명한 소피스트들의 공통적 징표이다. 플라톤이 다음 세대에게 이들의 초상화들 그려 놓아서, 이 몇몇 소피스트들은 우리에게 특히 잘 알려졌다. 트라키아지방의 압데라 출신인 프로타고라스(Protagoras, Πρωταγόρας 기원전490경-420경)는 주로 440년경에 활발히 활동했으며, 그는 종교란 실질적인 면에서 무차별적이라고 함으로써 아테네인들에게 소란을 일으켰다. 시실리의 레온티노이(Léontinoi en Sicile) 출신인 고르기아스(Gorgias, Γοργίας 기원전487-380??)은 427년에 자기 도시의 대사로서 아테네에서 활동했다. 380년경에 거의 백세를 살다가 죽었다고 하며, 아테네에서 그의 제자들로서는 철학자들은 아니지만 작가들로서 유명한 연설가이며 수사학자인 이소크라테스(Isocrate, Ἰσοκράτης, 전436–338)와 펠로포네소스전쟁을 쓴 투키디데스(Thucydides, Θουκυδίδης, 전 460-400)가 있다. 마지막으로 두 소피스트, 케오스섬 출신이며 언어 문법학자인 프로디코스(Prodicos de Céos, Πρόδικος, 470/460-399경)와 펠레포네소스 반도 북서부 엘리스(Élis, Ήλις) 출신인 히피아스(Hippias d'Élis, Ἱππίας 443-396/390)가 있다. (73)
전적으로 예술과 문화를 기대하게 하는 이러한 인간주의로부터, 프로타고라스의 유명한 초기 담론이 신앙을 만든다. 즉 “인간은 만물의 척도이며, 존재하는 것에서는 존재의 척도이고, 존재하지 않은 것에서는 비존재의 척도이다”라고 전해진다. 게다가 인간이 전념하는 것은 오직 인간적인 사물들에 대해서이다. “신들에 관한 한, 나는 그들이 있는지도 그들이 있지 않는지도 알 수 없다. 그 주제의 모호함이라든지, 삶의 짧음이라든지 너무나 많은 장애물들이 거기에 대립되어 있다.” 거기에 바로 인간적이고 합리적인 문화를 열망하는 모든 프로그램이 있다. 사람들은 인간 일반을 탐구한다. 플라톤에 따르면 히피아스는 “법률에 따라서가 아니라 자연에 따라서” 모든 인간들을 “친척들이고, 이웃들이고, 동향인들로서” 간주한다. 한 유명한 신화에서, 프로타고라스는 어떻게 제우스가 인류를 구원했는지를 이야기 한다: 그 인류는 방어할 자연적 수단이 없이 점점 소멸해 가고 있는데도, 그 인류가 자연적이고 선천적인 덕목들인 정의와 신중을 모든 인간들 각자에게 부여하면서 말이다. 이 덕목들 덕분에 인간들이 도시를 건설할 수 있었고, 서로가 서로를 도우면서 그들의 종족을 영속할 수 있었다. [이런 이야기는] 사회적 삶에 대한 대단한 찬가였다. 이 소피스트는 여전히 예술들(les arts, 기술들)을 옹호하는데 알맞다. 플라톤에서는, 히피아스 같은 이는 이 기술들 덕분에 독립적이 될 수 있다고 과장한다. 왜냐하면 그는 그가 입은 의복들조차도 제작할 줄 알기 때문이다. 그러한 것으로는 특히 히포크라테스의 저술들 총서에 들어있는 익명의 저술인 의학의 변호에도 있다. 이 책은 이들에 대한 중상모략에 반대하여 의학의 유용성을 제시하며, 그 책의 서두에서 그 시대의 진보정신의 매우 특징적인 말로서 시작한다: “많은 일반인들이 기술들을 비방하는데 훈련되어 있다. … 그러나 선한 정신의 진실한 목표, 그것은 새로운 사물들을 발견하는 것이거나 또는 이미 발명되었던 사물들을 완전하게 하는 것이다.” (74)
이런 환경에서, 도덕적 문제들도 제기되어야 할 것이다. 특히 케오스 출신의 프로디코스는 이 그룹의 도덕론자로서 알려졌다. 그의 이름으로 크세노폰(Ξενοφῶν, 430경-355경)은 악덕과 미덕을 선별하는 헤라클레스(Héraclès, Ἡρακλῆς)의 유명한 교훈적인 우화(apologue)를 제시한다. 그 시대의 아름다운 정신들은 헤라클레스에 대해 파리스((Pâris, Πάρις)를 대립시킨다. 파리스는 아테네와 헤라 대신에 아프로디테를 선호한다. 이 사랑의 주제들은, 마치 인간적 삶의 많은 부분들이 덧없는 특성을 지닌 비극적인 주제처럼, 연속적으로 이어갈 진실한 설교들의 주제가 되었음이 틀림없을 것이다. (74)
그러나 정치학에서 소피스트들은 특히 인간의 권력과 자치를 주장했다. 법률은 인간의 발명이며, 어느 정도에서는 인위적이고 임의적이다. 이러한 것은 그 시대의 입법가들의 작품이라는 사실로서 제시된다. 입법가들은 아테네에서든지 식민지에서든지 법제의 작업을 작품 그대로 각 순간에 맞게 인수인계한다. 마치 파르메니데스가 엘레아에서 그렇게 했듯이, 프로타고라스는 투리오이(Thurioi) 도시에게 법률을 제공했다. 따라서 법률은 인위적 작품으로서 자연에 대립된다. 사실상, 성문법이 아닌 법들이, 즉 종교적 가치를 지닌 전통적 관습들이 많이 있고, 이 관습법은 입법가들의 반성적 작업의 측면에서 검토되지 않는다. 이러한 것이 소피스트인 안티폰(Antiphon, Ἀντιφῶν, 전480경–410)의 견해이다. 그의 단편들은 최근에 발견되었는데, 그는 법률의 인위적 정의와 자연적 정의를 대립시키는 잘못을 범하지 않았다. 예를 들어, 법률이 인간에게 법정 앞에서 진리를 증언하게 강요하는데, 그 법률은 어떤 이도 우리에게 그렇게 행하지 않았던 잘못을 우리에게 자주 행하게 강요한다. 다시 말하면 정의의 초기 계율에 모순되게 말하기를 강요한다. 그러나 법률의 협약적 성격에서 안티폰은 어떤 우월성을 보았던 것 같다.
사람들이 아주 중요하다고 느끼는 이런 생각들의 운동방향은 상당히 슬픈 하나의 출구로 나간다. 한편으로는 정치적 냉소주의에, 다른 한편으로는 순수한 재능(la virtuosité, 기교)에 이른다. 한편으로 아테네의 귀족정치인들, 크리티아스(Critias, Κριτίας, 기원전?460/450- 404/3)와 알키비아데스(Alcibiade, Ἀλκιβιάδης, 전 450- 404) 같은 이들의 정치적 냉소이다. 이 냉소주의는 투키디데스(Thucydides, Θουκυδίδης, 전 460-400)의 펠로포네소스 전쟁속에 매우 자주 표현되어 있다. 플라톤은 이들을 고르기아스편에서 [귀족정의 옹호자인] 칼리클레스(Calliclès, Καλλικλῆς)를 통해서 후세에 전했다. 여기서는 고르기아스에 의해 가르쳐진 수사학의 교육이 칼리클레스 같은 이의 도덕적 정치적 퇴폐에 이르게 했다는 것이다. 칼리클레스에게 있어서 권력은 자기 욕구를 만족시키는 수단 이상의 것이 아니었다. 다른 출전에서는 순수한 재능에 관한 것인데, 사람들이 이미 비-존재에 관한 고르기아스의 담론에서 발견하는 재능이다. 여기에서 엘레아학설의 변증법적 수단을 사용하면서, 그는 증명하기를, ‘아무것도 없다. 만일 어떤 것이 현존한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인식할 수 없다. 또는 만일 인식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다른 것들로 옮기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한다. 다른 한편으로는 기교에 관한 것이 있다. 이것은 사람들이 말을 잘하기 위해 부여했던 중요점에 주목한 것이다. 그 중요한 것으로, 고르기아스의 수사학 교육, 프로타고라스의 일반문법의 작업들, 프로디코스의 동의어에 관한 탐구가 있다. 또 다른 기교에 관한 것이 있다. 이 기교는 이중 담론들과 같은 작은 책들에서 논증에 대한 기교적 방책들을 발견한다. 이 책들은 도덕적 문제들에 관해 주장할 수 있는 상반된 이중주제들을 체계적으로 요약한다. 결국 이 기교는 토론의 기술에서, 즉 논쟁술(l'éristique)에서 자신의 마지막 진술(manifestation)을 한다. 이 논쟁술에 대하여 플라톤은 에우튀데모스편에서 매우 잔인하게 조롱했다. 즉 논쟁술은 두세 가지 매우 단순한 원리들에 의해서 자기 반대편이 자가당착에 이르게 하는 아주 쉬운 수단들을 갖는다. 이와 같은 수단들로서는 ‘그 오류는 불가능하다’, 그리고 ‘모든 반박은 불가능하다’가 있다. (75)
소피스트들이 우수한 재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것들은 오로지 성공으로 인도되는 지적 삶에서 얻어진 개념작용의 결과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운동으로부터 앞선 자들과 마찬가지로, 실증적인 것은 어떤 것도 상실하지 않았다. 이오니아 자연주의, 대(大)그리스의 합리주의, 엠페도클레스와 퓌타고라스학자들의 종교 정신, 소피스트들의 인본주의 등의 모든 특징을 우리들은 그리스 철학자들 중의 가장 특권적인 철학자에서, 즉 플라톤에서 통합되는 것을 볼 것이다. (75) (47OLJ) (32:16, 57TMH) (31:15, 57UK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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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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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문들 Text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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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 Diels(1848–1922), 그리스 학설사(Doxographi Graeci, 1879). V. les éditions des fragments de Xénophane(Senofane), de Parménide et des Sophiste procurées dans la Biblioteca di Studi Superiori par M. Untersteiner et celle de Pythagoriciens(Pitagorici) due à Mme Timpanaro-Cardini (I, 1958) [운테르스테이네르(Mario Untersteiner, 1899–1981) 이탈리아 고전문헌학자. 철학자. 고전문헌학자 세바스티아(Sebastiano Timpanaro, 1923-2000)의 어머니이다.]
Pour Héraclite, cf. l'édition des fragments par R Walzer, Eraclito, Florence, 1939, et la traduction de K. Alexlos, Les les fragments d'Héraclite d'Ephèse, Paris, 1958. [빨쩌(Richard Rudolf Walzer, 1900-1975) 독일영국 고전문헌학자. 철학자. / 알렉스로스(K. Alexlos, s.d.) 프랑스 번역가라서 인명에 없는갑다.]
C. J. de Vogel(1905–1986), Greek Philosophy, t.I, Leyden, 1950.
G.S. Krick(1921-2003) et J.-E. Raven(1914–1980), Presocratic Philosophers: A Critical History with a Selection of Texts, Cambridge, 1957. [키르크(Geoffrey Stephen Kirk, 1921-2003) 영국 그리스 고전문헌학자. / 레이븐(John Earle Raven, 1914–1980) 영국 그리스고전 연구자. 프레소크라틱]
J. Voilquin(1905–1986), Les penseurs grec avant Socrate, Paris, 1964.
- 전반적 연구물 Etudes d'ensemble
J. Burnet, 초기 희랍 철학(Early Greek Philosophy)(1892. 4th edition, 1930)(fr,. L'aurore de la philosophie grecque, tr. Reymond, 1919) [버넷(John Burnet, 1863–1928)]
A. Rey, 그리스 과학의 청년기(La jeunesse de la science grecque, 1933) [레(Abel Rey, 1873-1940) 프랑스 철학자 과학사가. ]
R. Mondolfo, 젤러의 책을 이탈리아어로 번역, La filosofia dei Greci, vol I.. Origini e periodi della folosofia greca, 1932; vol II, Ionici et Pitagirici, 1938; [vol III 누락되었음] vol IV Heraclte, 1961: 이 번역가가 노트를 확장하여 덧붙였다고 한다. 참조: 그이 저술로는 L'infinito nel pensiero dei Greci, 1934; 제2판 1956판 L'Infinito nel pensiero dell'antichità classica, 1956. [몬돌포(Rodolfo Mondolfo, 1877–1976) 이탈리아 철학자.]
F. M. Cornford, 종교에서 철학으로(From Religion to Philosophy: A Study in the Origins of Western Speculation 1912) [콘포드(Francis Macdonald Cornford, 1874–1943) 영국 고전학전공]
A. Diès, 신비적 순환: 소크라테스이전 철학에서 개별적 현존들의 신성, 기원 그리고 종말(Le Cycle mystique. La divinité, origine et fin des existences individuelles dans la philosophie antésocratique, 1909 [디에스(Auguste Diès, 1875-1958) 프랑스 고위성직자(주교이상) 문학박사. 대학학장, 헬레니스트]
A. Rivaud, 생성의 문제: 기원에서 테오프라스토스에까지 그리스 철학에서 물질의 개념(Le problème du devenir et la notion de la matière dans la philosophie grecque depuis les origines jusqu'à Théophraste, 1905 [리보(Albert Rivaud, 1876-1956) 프랑스 철학자. 정치가.]
P.-M. Schuhl, 그리스 사유의 형성에관한 시론: 플라톤철학의 연구에서 역사적 입문(Essai sur la formation de la pensée grecque, introduction historique à une étude de la philosophie platonicienne, (박사학위논문 1934, 1949 출판) [쉴(Pierre-Maxime Schuhl, 1902-1984) 프랑스 철학자. 1921년 고등사범졸업 플라톤의 상상적 허구에 관한 연구(Étude sur la fabulation platonicienne (1947)]
P. Tannery, 희랍과학의 역사: 탈레스에서 엠페도클레스까지(Pour l'histoire de la science hellène, de Thalès à Empédocle, 1887)(재판 1930) [딴느리(Paul Tannery 1843-1904) 프랑스 과학사가.]
H. Cherniss, 소크라테스 이전의 철학에 대한 아리스토텔레스의 비판주의(Aristotle's Criticism of Presocratic Philosophy, 1935) [체니스(Harold Fredrik Cherniss, 1904–1987) 미국 고전철학, 그리스 전공자. 플라톤과 아카데미에 대한 아리스토텔레스의 비판주의(Aristotle's Criticism of Plato and the Academy, 1944)
W. Jaeger, 초기 그리스 철학자들의 신학(Die Theologie der frühen griechischen Denker, 1953, 영어판 The Theology of the Early Greek Philosophers, 1947. [예거(Werner Jaeger, 1888-1961) 독일 문헌학자 철학사가.]
H. Fränkel, 초기 그리스 정신의 시와 철학(Dichtung und Philosophie des frühen Griechentums, 1951), 초기 그리스 사유의 길과 형식(Wege und Formen frühgriechischen Denkens, 1955(1961 재판) [프랭켈(Hermann Ferdinand Fränkel, 1888-1977) 독일-미국인 그리스 고전문헌학자.]
R. B. Onians, 유럽 사상의 기원: 신체, 정신, 영혼, 세계, 시간, 운명에 대하여(The Origins of European Thought: About the Body, the Mind, the Soul, the World, Time and Fate, 1951) [오니언스(Richard Broxton Onians, 1899-1986) 영국 고전학자. 런던대 교수.]
E. R. Dodds, 그리스인과 비합리(The Greeks and the Irrational, 1951) [도즈(Eric Robertson Dodds, 1893–1979) 아일랜드 고전학자.]
R. Schaerer, 호머에서 소크라테스까지 고대인간과 내적 세계의 구조(L'homme antique et la structure du monde intérieur d'Homère à Socrate, 1958. [섀러(R Schärer, s.d.) fr.deu.en에 없음]
J.-P. Vernant, 그리스 사유의 기원(Les Origines de la pensée grecque, 1962), 그리스인들에서 신화와 사유: 역사적 심리학의 연구(Mythe et pensée chez les Grecs. Etudes de psychologie historique, 1965 [베르낭(Jean-Pierre Vernant, 1914-2007) 프랑스 고대 그리스 신화 연구자.] (47OMA)
- 전문 연구물들 Etudes spéciales
I.
탈레스에 관해서는 되르플러(Doerfler)의 논문을 참조. Archive für Geschichte der Philosophie, xxv, 1912, p.305; 아낙시만드로스에 관해서는 딴느리(Tannery)와 딜스(Diels)의 논문들을 참조, ibid, viii, 1895, p. 443, x, 1897, p. 228. [되르플러(Doerfler s.d.), 딴느리(Paul Tannery 1843-1904), 헤르만 딜스(Hermann Diels, 1848–1922)]
Charles H. Kahn, Anaximander and the origins of greek cosmology, 1960. [칸(Charles H. Kahn, s.d.)]
II.
W. Guthrie, 오르페우스와 그리스 종교: 오르페우교 운동의 한 연구(Orpheus and Greek Religion, a study of the Orphic Movement, 1935) [윌리엄 거드리(William Keith Chambers Guthrie, 1906–1981) 스코틀랜드 그리스 고전학자.]
O. Kern, 오르페우스, 에피메니데스 페레시데스에 대하여, 신통기의 비판적 문제(De Orphei Epimenidis Pherecydis theogoniis quaestiones criticae. 1888)(박사학위논문), 오르페우스: 종교역사 탐구(Orpheus. Eine religionsgeschichtliche Untersuchung. 1920) [오르페우스(Orpheus, Ὀρφεύς) 그리스 신화와 종교에서 전설의 시인 음악인. / 에피메니데스(Epimenides of Knossos, Ἐπιμενίδης) 7세기에서 6세기 철학자 시인, “크레타인은 항상 거짓말쟁이다”는 거짓말쟁이 역설 / 페레퀴데스(Pherecydes of Syros, Φερεκύδης, 6세기경 활동) 우주발생론 저자이다.]
J. Harrison, 1850–1928) 그리스 종교 연구 서설(Prolegomena to the Study of Greek Religion, 1903) p. 574. [해리슨(Jane Ellen Harrison, 1850–1928)여사, 영국 고전학자, 언어학자, 여성주의자. 그리스 종교 연구 서설(Prolegomena to the Study of Greek Religion, 1903)(개정판 1908, 1922)]
H. Jeanmaire(1884-1960), Dionysos, Histoire du culte de Bacchus, 1951.
Cl. Ramnoux, 그리스 사상에서 밤과 밤의 어린이들(La Nuit et les enfants de la Nuit dans la tradition grecque, 1959). [랑누(Clémence Ramnoux, 1905–1997) 프랑스 철학자. 소크라테스 이전 그리스 사상 전공]
III.
A. Delatte(1886-1964), Etudes sur la littérature pythagoricienne (dans Bibliothèque de l''Ecole des Hautes Etudes, sciences historiques), Paris, 1915
___ La vie de Pythagore, de Diogène Laërce, édition critique, Bruxelles, 1922.
___ La Politique pythagoricienne (Bibliothèque de la faculté de philosophie et lettres de l'université de Liège), Liège-Paris, 1922.
G. Méautis(1890-1970), 퓌타고라스주의 탐구(Recherches sur le pythagorisme, 1922)(Recueil de travaux de la faculté des lettres de Neuchâtel) 1922.
A. Olivieri(1872–1950), Civilia Greca nell'Italia Meridionale, Naples, 1931.
P. Kucharski, Etude sur la doctrine pythagoricienne de la Tétrade, Paris, 1952. [쿠차르스키(P. Kucharski, s.d.) 폴란드계?]
J. E. Raven, 퓌타고라스학자들과 엘레아학자들(Pythagoreans and Eleatics: An account of the interaction between the two opposed schools during the fifth and early fourth centuries B.C, 1948 [레이븐(John Earle Raven, 1914–1980), 영국 고전학자. 철학과 식물학관심
J.-P. Vernant, Le fleuve Amélès, Rev. phil., 1960, p.163. [베르낭(Jean-Pierre Vernant, 1914-2007) 프랑스 고대 그리스 신화 연구자.]
M. Detienne, 호메로스, 헤시오도스, 퓌타고라스(Homère, Hésiode et Pythagore: poésie et philosophie dans le pythagorisme ancien, 1962) [드띠엔(Marcel Detienne, 1935-) 벨기에 출신 프랑스 대학인, 그리스 연구자]
C. J. de Vogel(1905–1986), Pythagore and eagly Pytagoreanism, Assen, 1966.
IV.
Max Wundt, Die Philosophie des Heraklits, Archiv für Geschichte der Philosophie, xxix, p. 431. [막스 분트(Max Wundt, 1879-1963) 독일 철학자, 반유태주의 및 국가사회주의자. 그리스 철학에서 주지주의(Der Intellektualismus in der griechischen Philosophie, 1907)]
V. Macchioro(1880–1958), Eraclito, Bari, 1922
G. S. Kirk, 헤라클레이토스: 우주에 관한 단편들(Heraclitus, The Cosmic Fragments, 1954), 「Logos, harmonie, ... dans Héraclite(헤라클레이토스에서 로고스와 조화)」, Revue Philos., 1957, p. 289-299. [커크(Geoffrey Stephen Kirk, 1921–2003) 영국 고전철학자. 고대 그리스 문학과 신화전공.]
Cl. Ramnoux(1905–1997), 헤라클레이토스에서 고대 사유의 어휘와 구조들(Vocabulaire et structures de pensée archaïque chez Héraclite(Héraclite, ou l'Homme entre les mots et les choses), 1959.
_____ Etudes présocratiques, Revue philosophique, 1961, 93-107 et 1962, p. 76-89.
A. Jeannièr(1920–1995)e, 에페소스의 헤라클레이토스의 사유(La pensée d'Héraclite d'Epèhse, 1950)(Paris). 소크라테스이전 철학자들: 그리스 사유의 여명(Les Présocratiques: l’Aurore de la pensée grecque, 1966)(Le Seuil, coll. « Écrivains de toujours », Paris,)
R. Mondolfo et E. Zeller, 그리스의 철학(La filosofia dei Greci)(I, 4, 1961)
V.
M. Levi, Senofane et la sua filosofia, Turin, 1904. [레비(M. Levi, s.d.) 이탈리아철학자?]
H. Diels, 파르메니테스의 교훈시(Parmenides Lehrgedicht, 1897)(griechist und deutsch, Berlin, 1897). [헤르만 딜스(Hermann Alexander Diels, 1848–1922) 독일 그리스 고전학자. 그리스 학설사(Doxographi Graeci, 1879)(재 1929)]
V. Brochard, Études de philosophie ancienne et de philosophie moderne, 1912에서 「Zénon d'Elée」 3-22. [브로샤르(Victor Brochard, 1848-1907) 프랑스 철학자, 고대그리스 철학사 전공]
W. J. Verdenius, 파르메니데스(Parmenides, 1942), Groningen, 1942. [베르데니우스(Willem Jacob Verdenius, 1913–1998), 네델란드 고전 문헌학자.]
A. Koyré, 제논의 파라독스에 관한 논평 참조, 철학적 사유의 역사적 연구들(Etudes d'histoire de la pensée philosophique, 1961, 9-32. [꼬이레(Alexandre Koyré 1892-1964) 러시아 출신의 프랑스 인식론자이자 철학자이다.
Chiapelli(1857–1931), Sui fragmenti e sulle dottrine di Melisso di Samo (Rendiconti della Academia degli Lincei) 1890.
G. Calogero, Studi sull'Eleatismo, Rome, 1932 [칼로게로(Guido Calogero, 1904–1986) 이탈리아 철학자.]
R. Mondolfo, L'infinita dell'Essere in Melisso, 1993, Sofia, p. 159. [몬돌포(Rodolfo Mondolfo, 1877–1976) 이탈리아 철학자.]
J. H. M. Loenen(1919–1978), Parmdnides, Melissus, Gorgias, Assen, 1959.
VI.
Bidez, 엠페도클레스 전기(La biographie d'Empédocle, 1894)(Trav. de l'univ. de Gand). [비데(Joseph Marie Auguste Bidez, 1867-1945) 벨기에 고전문헌연구자. 역사가.]
E. Bignone(1879–1953), 엠페도클레스(Empédocle, Stidio critico, 1916)
M. Detienne, La “Démonologie d'Empédocle”, Revye des Etudes grecques, LXXII, 1959, p. 1-17. [드띠엔(Marcel Detienne, 1935-) 벨기에 출신 프랑스 대학인, 그리스 연구자]
J. Bollack, 엠페도클레스(Empédocle, 1965, 1969)(3권) [볼락(Jean Bollack, 1923-2012) 프랑스 철학자, 문헌학자.
J. Brun, 엠페도클레스(Empédocle, 1966) [브룅(Jean Brun, 1919-1994) 프랑스 철학자. 고대철학 전공. ]
VII.
J. Geffcken, Die Asebeia von Anaxagoras, Hermes, XLII, no 1. [게프켄(Karl Heinrich Johannes Geffcken, 1861-1935) 독일 고전 문헌학자. 그리스 문학전공]
F. M. Cleve(1890–1985), The philosophy of Anaxagoras, 1949.
VIII.
Oeuvres d'Hippocrate, texte et trad. par Littré, 10 vol., Paris, 1839-1861.
Diès, Oeuvres d'Hippocrate, Revue de philosophie, XXI, 1912, p. 56 et 663. [디에스(Auguste Diès, 1875-1958) 프랑스 고위성직자(주교이상), 헬레니스트.]
P.-M. Schuhl, Les premières étapes de la philosophie biologique, Revue d'Histoire des Sciences, 1952, p. 197-221.
____ Les débuts de la psycho-parmacologie dans l'antiquité grecque, Annales Moreau de Tours, t. I, p. 4-8, Paris, 1962. [쉴(Pierre-Maxime Schuhl, 1902-1984) 프랑스 철학자.]
L. Bourgey(1901–1979), Observation et expérience chez les médecins de la collection hipporatique, Paris, 1953.
IX.
E. Frank(1883–1949), Plato und die sogenannten Pythagoreer, Halle, 1923.
X.
A. Dyroff, 데모크리토스 연구(Demokritstudien, 1899) [디로프(Adolf Dyroff, 1866-1943) 독일 철학자.]
XI.
H. Gomperz, 소피스트와 수사학(Sophistik und Rhetorik, 1912) [곰페르쯔(Heinrich Gomperz, 1873-1942) 오스트리아 철학자. 심리학에 관한 저술이 있다.]
W. Nestle, Die Schrift des Gorgias über die Natur, Hermes, LVII, 1922, p.51. [네스틀레(Wilhelm Albrecht Nestle, 1865-1959) 독일 고전문헌학자. 그의 아들 발터(Walter Nestle, 1902–1945)도 고전문헌학자이다. ]
E. Bodrero, 프로타고라스(Protagora 1914) Rivista di filologia, XXXI, p. 558. [보드레로(Emilio Bodrero, 1874-1949) 이탈리아 철학교수. 엠페도클레스(Empedocle 1910)]
F. Dupréel, 소피스트들(Les sophistes, 1948), Neuchatel, [F. Dupréel, F.는 오타. 뒤프레엘(Eugène Dupréel, 1879-1967) 벨기에 철학자. 도덕론 전공, 소피스트들(Les sophistes; Protagoras, Gorgias, Prodicus, Hippias, 1948) (Neuchatel/ Paris Editions du Griffon/ P.U.F. "Bibliotheque scientifique. 14. Philosophie et histoire")]
M. Untersteiner, 소피스트들(I sofisti, 1949), Turin. [운테르스테이네르(Mario Untersteiner, 1899–1981) 이탈리아 그리스 고전학자, 문헌학자, 철학자 소피스트들(I sofisti, 1949)]
W. Volgraff, 고르기아스의 장례사(L'Oraison funèbre de Gorgias, 1952), Leyden. [볼그라프(Wilhelm Vollgraff, 1876–1967), 네델란드 고고학자.]
A. Capizzi, 프로타고라스(Protagora, 1955)(Florence) [카피찌(Antonio Capizzi, 1926–2003) 이탈리아 철학자, 역사학자. Protagora. Le testimonianze e i frammenti, 1955]
J. Rolland de Renéville(1917–1990), 플라톤과 소피스트들에서 일자-다자와 그 속성 문제에 관한 시론(Essai sur le problème de l'un-multiple et de l'attribution chez Platon et les Sophistes, 1962, Paris. (47OMB) (57UK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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