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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가 인물을 만든다, 자연이 영혼들을 만들 듯이 .
2025 02 26
인물이 시대를 바꾼다는 세기가 지났다. 시대가 인물을 생성하고 생장시키고 발산시킨다. 자연은 자기에 의한 자기를 창조한다. 이를 벩송은 자연의 자발성이라 한다. 여기에는 어떠한 신도 절대자도 개입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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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군대 가기 전에 신천동 사랑방에는 걸려있는 족자가 있었다. 가끔 시대의 사건이 생기면, 아버지께서 마루에서 이 족자를 외우시면서, 우리 형제들에게 이야기 했다. 형이야 알아들었을 지는 몰라도, 글자의 뜻보다, 진시황 주변이야기가 흥미로웠다. 박정희가 친위 쿠데타를 하여 영구총통을 꿈꾼다는 소문이 파다한 유신시절이었고, 그 시절에 헌법 개정의 “헌”자만 꺼내도 술집이든 다방이든 벽에 귀가 달려 있어서, 그 말을 한 자가 사라지는 시절이었다. 그래도 대학생들은 허술한 귀퉁이 술집에서 “타도”라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였다. 결사들이 만들어지는 시기였다. 이들 목소리를 막으려고 긴급조치를 1호에서부터 계속 발동하던 시기였다.
진시황의 독재를 타도하기 위해 장량은 당대의 걸물인 박랑사(博浪沙)와 함께 황제의 가마를 습격하였다. 여러 대 가마들 중에서 잘못 선별하여, 제거에 실패하여 박랑사는 잡혔고, 장량은 방랑인이 되었다. 어느 날 노인을 만나, 고민을 털어놓으니 다음날 만나자고 하였고 그 노인이 준 비서(祕書)가 황석공삼략(黄石公三略)이라 한다. 그 책을 읽고, 평천하를 위하여 소위 전국의 덕후(내공이 강한 고수)들을 만나며, 진나라를 무너뜨리고 세상을 평정하고자 한다. 초나라 항우와 한나라 유방의 싸움 사이에서, 한나라 승리를 거두었다. 장량은 봉작을 받기를 사양했다고 하면서 유후를 얻었든데, 그 유후가 작위를 받지 않은 제후급으로 살았다고 하셨다. 나중에 책을 찾아보니, 유후(留侯)란 유 땅을 받기는 했지만 그 지역이 너무나 척박하여 아무도 가지지 않을 곳이라 한다. 장량은 아들에게 척박한 땅에 농사 짓게 하고, 여전히 유람하며 강호의 늙은 현자(덕후)들과 지냈다고 한다. 유방이 한나라 고조로서 통치하면서, 전쟁에서 승리하여 제후의 작위를 받은 이들을 제가하였는데, 이들이 반란을 일으킬까 봐 다 죽였다는데, 장량만은 죽이지 못했다고 하였다. 나의 아버지는 장량이 삼략의 네 가지를 다 이루었다고 하였다. 부성인군자, 명성쇠지원, 통성패지단, 심치난지기, 지거취지절(夫聖人君子,明盛衰之源,通成敗之端,審治亂之幾,知去就之節) 그 중에서 ‘지거취지절’이 가장 어렵다고 한다. 승리하면 봉록과 제후직을 받았다가 한신은 토사구팽(兎死狗烹)을 당하고, 다른 제후와 봉토를 받았던 장수들도 다 죽었다고 한다. 이렇게 이야기를 맞추어서 세세하게 알게 된 것도 우발적 기회(아자르)에 의해 공부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던 스물아홉이후였다.
이 글을 떠올리면서 한나라 말기에 삼국지(삼국의 전쟁)의 이야기가 있다. 전쟁은 인민을 피폐하게 만든다. 다른 사상들도 출현한다. 그럼에도, 적어도 중국이 이민족에게 처음으로 완전히 먹힌 송나라(960-1279) 말기에 징기스칸의 침공이 있기 전까지, 전쟁은 상부의 권력다툼이었다. 중국이 통째로 몽골족에게 넘어갔을 때, 새로운 사상을 만들기보다, 있었던 전통 사상을 깊이와 폭을 더하는 것도 있다. 주희(주자)는 분통을 터뜨리며 유학(儒學)을 다시 세우고자, 예기에 속해있던 대학과 중용을 따로 떼어내었고, 대학을 통해 학문의 기본 방향을 정했다. 격물치지 성의정심 수신제가 치국평천하(格物 致知 誠意 正心, 修身 齊家 治國 平天下)를 표면에 올려놓았다. 주희의 등장도 시대의 산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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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인물은 시대의 아들이다. 그 시대의 문화와 의식의 범위 안에 있다. 이 인물의 삶은 마치 부처님 손바닥 안에 있는 것과 같다고 한다. 그 인물이 종(種)으로서 인간의 범위를 넘어섰을 때 영웅이라 하며, 류적 차원의 경지에 이르렀을 때 신격화가 된다. 신격화 위에 하나의 신을 설정하는 것은 이 신격화된 신들이 노는 어떤 곳에서도 주제하는 (최고)신이 있다는 가정 하에서 성립한다. 이런 설명방식이 아리스토텔레스의 류와 종을 재분할한 것이고, 중국식으로 음양을 사상으로 분할하여 설명하는 것이다. 이런 사고방식은 잠정적으로 선전제를 삼은 우주론을 근거로 한다. 이런 우주론에서는 당연히 하나의 우주(세상)에서 분할로서 이분법적 구분의 하늘과 땅이다. 이를 인간이란 종에 견주어서 남과 여이다(서양은 개체들이다). 그런데 개인에게까지 적용하면(적용의 오류이지만), 중생들은 영혼과 신체의 이중성을 생각하게 된다. 이런 사고의 방향 또는 경향은 자연스러워 보이지만, 감각적 경험을 일반화하는 과정에서 생긴다. 그런데 동양에서 이런 이분법적 사상(四象)이 있고, 사상에서 최고류, 류와 종, 개체와 닮은 4가지 논의가 있다. 동양과 서양의 사고의 분화는 달라진다. 동양은 태양 소양 태음 소음의 연관에서 64괘의 복잡한 사고를 전개하였다. 그런데 서양은 개체들 각각의 성질이 있어서 개체들의 일반화로서 종의 개념과 그 차이가, 류들과 최고류들의 차이와 전혀 다른 방식으로 다루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을 눈치 챈 시대(12세기)에, 둘 사이의 분할과 분류의 방식이 유비적이지도 동등한 비례도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다. 이로서 서양은 개별자로서 인물과 사물에 대한 논의에서, 인간의 경험, 자연과 빛의 구체적 작용, 인물의 실제적 실험과 노력, 이런 여러 관계와 연관들에서 개체(인물이든 사물)의 고유성이 류와 연관이 없다는 것을 사유하기 시작한다. 중국과 더불어 동양에서는 사상(四象)에서 논리적 사고로 8괘까지는 분할했지만, 16항목까지를 정립할 수 없어서, 8괘를 중첩화하여(아마도 사회와 인간 또는 영혼과 신체, 리와 기) 세상의 변화를 설명하려 한다. 여기서도 우주발생론이 아니라 우주론에 머문다.
서양의 12세기는 개별물의 성질들이 인간의 분할하는 방식에 따른 형식적이고 논리적 구조로 되어 있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된다. 즉 물체들은 자동인형(automata)이 아니라는 것이다. 게다가 살아있는 신체는 더군다나 자동인형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런데 물체의 자동과 신체의 자동의 차이가 고대의 류(類)와 종(種)에서 분할하는 방식으로 설명하는 것도 뭔가 꺼림직하게 맞지 않다는 것이다. 중국의 8괘에서 64괘로 넘어가는 방식은 이미 기원전 1100여년에 64괘에 대한 주석을 달기 시작했고, 세상사의 연관들을 엮어서 설명하려 했다고 한다. 그 설명의 방식은 시대에 따라 역사적 사건들에도 대응시키면 6쾌의 보다 복잡한 설명들을 보태서 세상사의 분화현상에 대응하고, 시대의 변화와 새로운 주인공에 대한 정당성을 부여하려고 했을 것이다. 그리고 변역기를 지나 평천하에서는 64괘는 자연현상에 비추어서 설명하는 방식을 여러 사건들과 사실들의 경우에 대응시키고자 했을 것이고, 자연의 활동과 작동이 64괘의 내부적 효사(爻辭)와 더불어 설명하려면 거의 6400경우의 수에 이른다. 자연을 ‘경우의 수’에 견주어 구조들을 갖는 것으로 적용하여 설명하려 하였고, 그 거대한 구축의 세계를 배열하여 왕조의 치세를 합리화 또는 정당화하였다. 고착된 세계가 여러 불합리에 의해 변역의 시기에는 구축된 배열을 중요성과 생산성에 의해 달리 설명하면서, 왕조의 변역 시기의 백성의 저항과 더불어 새로운 왕조 등장을 정당화하는 것이다. 평천하의 토대 위에서 백성의 안락과 편안을 구실로, 64괘의 배치와 배열에 맞는 위계질서를 구축하는 것이다.
고중세 시대에는 사대부 또는 귀족이 다른 사람들을 돌보고 평안하게 살게 하였다고 사람들은 착각한다. 아리스토텔레스가 경제(아낌)에 대해 말했을 때, 집안의 재산으로 토지생산, 가축들, 노예들 그리고 여자를 잘 다스리는 것이라 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여인을 노예와 같은 등급으로 취급했다는 것이 중세말기와 르네상스시대에 알려지자, ‘여성이 아리스토텔레스를 채찍으로 때리는 삽화’ 많이 그렸다는 것도 잘 알려진 사실이다. 삶이 위계적 질서 속에서 상중하로 갈라져 있을 경우에 상부의 몇몇 여성들을 제외하고 자신의 역량을 발휘할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다. 그럼에도 여성은 남편을 또는 자식을 통해 자신의 재능과 역량을 대신해 주기를 바랐다고들 한다. 그러나 단지 여성만이 아니라 상부의 몇몇 인물들을 제외하고 많은 이들은 명령에 복종하는 백성 또는 대중으로 살았다.
서양에서 르네상스를 지나 ‘빛의 세기(18세기)’까지도 견고한 위계질서의 세상 속에서 살았다. 빛의 세기 말기에 프랑스 혁명에서 농노가 해방되고 인민의 지위가 세상의 표면으로 나왔다고 하지만, 대부분의 유럽사회는 19세기말까지 농노제는 유지되었다. 말하자면 영국의 빅토리아왕조든, 독일의 프로이센-독일 제국이든, 오스리아-헝거리의 합스부르크왕가든, 러시아의 짜르 체제든, 인민의 지위는 명령에 순종해야만 하는 체제였다. 우리나라도 왜란과 호란을 거치면서 왕조체제는 더욱 강화되었고, 19세기 후반 외세의 침입에 대처할 수 있는 자생적 능력이 없었고, 백성은 도탄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중국도 아편전쟁이후 서양 식민지 침탈에 당할 수밖에 없었다. 19세기 초반부터는 어느 듯 세계가 하나로 연결되는 시기로 보인다. 1919년 유럽 대전이 세계 대전이라고 하는 것은 유럽전쟁이기도 하고, 지구상에 식민지를 서로 침탈하려는 쟁탈전이 곳곳에서 일어났다는 점에서, 징기스칸의 전쟁 보다 더 넓은 지구상의 전쟁이라는 점에서 세계 1차대전이라 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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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중등 교육에서 배운 이야기들은 이런 이야기들에서, 왕조의 중요인물이나, 시대에서 중심의 인물의 활동상이다. 사람들은 영웅이 시대를 만든다고 하기도 한다. 영웅 같은 중요 인물이 나서 혼란과 위기를 극복하기를 기원했을 것이라고들 한다. 물론 도구/무기의 변화와 발달은 전쟁의 형태를 바꾸었다. 이런 과정에서 새로운 도구의 발명자보다 이를 이용하여 전쟁을 잘 치른 자에게 더 많은 이야기가 남아있다. 이런 인물이 시대를 변역(變易)하고 나라를 구한다고들 한다. 말하자면 인물이 시대의 변화에서 중심이며, 그를 잘 들여다보면서, 다음의 활용을 할 수 있다고들 한다. 그러나 세계사에서 그럴듯하게 이끌어간 전쟁의 인물은 둘이다. 하나는 알렉산드로스 대왕이고 다른 하나는 징기스칸이다. 이들의 영웅적 이야기 다음으로도 많은 인물이 있다고 하지만, 이 다음의 전쟁들에서는 다른 사람들과 합의를 통한 전략과 여러 조건들에 맞게 행한 장수 또는 장군들의 판단이 있어야했다. 세상사는 소수의 인물이 변역(變易)하는 시기를 지나, 여러 방향, 적어도 지역적으로 넓은 전선을 동시에 파악하며, 배열과 배치를 필요로 하였다. 점점 더 넓은 지역과 다양한 능력의 인물들의 필요와 더불어 공동으로 대처하는 방식을 공유하는 지식과 전술이 필요하였다. 영웅이라기보다 현실적으로 움직이는 인원과 물자의 배치와 이동의 방식 중요했고, 더 나아가 이 이동에 따른 속도에 따라, 배치와 배열을 넘어서 분포와 강도가 중요하였다. 이로써 다양한 영역에서 인물들이 등장하게 된다.
인물이 시대를 가늠한다는 이야기는 19세기말 이전의 전제군주의 시대에서나 통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20세기 후반에서 21세기에는 시대가 인물을 만든다. 그 시대의 생산력과 배치 속에 살아가면서 몸에 밴 자들 중에서 나온다. 왕조시대가 무너졌다고 해도 그 잔재들이 남아 있어서, 지구상의 사건들은 사건들의 연관보다, 일어난(만들어진) 사실(le fait)에 관계하는 관심도에 따라서 중요도가 달라진다. 물론 이런 관심도가 식민지 쟁탈에서 부의 획득과 연관하여 교역에 있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한 사건의 해결에는 한 인물 또는 인물을 중심으로 하는 소집단이 잘 또는 빨리 해결하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이 해결을 잘하는 것은 만들어진 사실에 대한 이해 또는 재조립에 달려있었을 것이다. 여러 사실들이 다르다고 해도 한 사실을 잘 이해하는 것은 다른 사실들도 이해할 수 있는 방식에서 닮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이루어진 사실들에는 각각의 강도가 다르고, 사실을 이루는 분포에도 차이가 있다는 것을 곧 바로 알게 된다. 생산력과 생산양식도 다르고, 사실을 이루는 인민들의 역량도 다르다는 것이다. 화학에서 한 원자가 다른 원자와 이루어지는 사실과 그 한 원자가 전혀 다른 원자들과 만나는 사실이 전혀 다르다는 것이다. 인물이 여러 다른 인민들과 덩어리를 이룰 경우에는 다른 강도와 다른 역량이 생겨난다는 것이 당연하게 여겨진다.
사실들에서 관계 맺는 방식에 따라 판단하는 것과 달리, 사건(l’événement)은 관계들만이 아니라 건너서 미치는 연관들도 중요하게 제기된다. 말하자면 장군과 장교에 의한 전쟁이 사실에 대한 파악으로 이루어진다면, 인민들과 함께 치루는 전면전의 경우에는, 지휘관과의 사실의 관계 판단을 넘어서, 인민의 삶의 터전에 연관과 더불어 정세의 변동을 생각해야 한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1910년대 이전까지는 인물을 중심으로 사람들이 모이고 또한 상대편에서 인물을 중심으로 배치되어 있다는 것은 당연하였다. 그러나 디지털의 시대에는 정보가 흐르고 있다. 이 흐름은 생산과 소비의 양식에 따라 다르다. 말하자면, 물이 지표의 토지와 산들에 따라 달리 흐르듯이, 사건들은 연관을 맺는 방식에 따라 접속하는 방식이 달라서, 한 사건에 접속하는 연관들에 따라 사건의 강도가 달라지고, 사건이 지니는 분포가 달라진다.
배치와 배열을 잘 보는 이들은 현상에서 사실들의 조각들과 찰나에 능하다. 이들은 용어에 맞는 수식어들을 찾아서 쓰고, 가끔은 엉뚱한 수식어를 쓰면서, 대중들을 혼란스럽게 한다. 배치에는 발현의 방식과 순간들에 따라 다르며, 이것들의 표면은 배열이 되어 있지 않아서 배열과 순서를 위해, 겉보기와 다른 강도와 농도를 생각한다. 이 강도와 농도는 항목으로된 사건의 과정에서 깊이와 폭에 따라 다르며, 이 깊이와 그 폭에 접속하는 부류들과 연관들에 따라 순서상 우선과 차선 그리고 삼선과 사선 그리고 오선으로 밀려난다. 사선만이 아니라 오선까지도 필요하다. 오선은 오열(五列)이란 조직 밖이라 부르는 것인데 민중들의 신앙에서 오열을 죽 내재해 있었다. 이 오열이 제대로 표면위에 있다고 보여진 것은 촛불시위에서 그리고 남태령에서 밤을 세우고서 넘어섰던 농민과 젊은 여성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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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2월 3일 이후의 계엄령은 허술하기 짝이 없다고들 한다. 이 시대에는 중요 방송과 언론 등에서 현상의 사실들에서 보여주었던 장면과는 다른 장면들을 보게 되는 것은 12월 3일 밤 국회 의사당 주변에 모인 시민들과 남태령 대첩에서만 있었던 것이 아니다. 누리 소통은 어제 헌재의 변론을 마치는 과정까지, 수많은 장면들이 등장하고 또는 의로운 제보자들이 있었다. 이들은 내란수괴를 재판하는 중요 계열에 속하지 않지만, 이들 없이 사건이 분명하게 드러나지 못한다는 것도 사실이다.
신문은 안본지 오래되었고, TV도 보지 않은지 거의 7-8년이 되어간다. 주류라는 언론과 방송이 앵글로색슨 지식과 유일신앙자의 기복신앙과, 내속적으로 부일자와 숭미자들의 이야기를 확산한다는 생각한다. 그러기에 열심히 달리 사유하기 위해 번역을 해보지만 한계를 느낀다. 세상을 뜨는 그 순간까지 노력하고 내공을 쌓는다고 말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이번 근 두달 반동안은 사건의 흐름을 따라 가려 해 보았다. 그 사건 윤석열의 내란은 윤석열의 사고방식에서 나올 수 없다는 것을 느낀다. 그러면 설계자는 누구인가? 김건희라고? 그녀는 치국도 평천하도 모르고 관심조차 없는 자일 것이며, 탐욕과 오만으로 권력의 힘을 빌려 사람들을 부리려는 데 재미들인 탐만치에 빠진 자일 것이다. 누가 이런 음모가 아닌 실행계획을 세웠을까? 부일자와 숭미자를 겸한 자의 수법일 것이다. 이제 부일자의 시대로는 안 되고, 중국과 빨갱이를 제거하는 숭미자들이 표면에 등장한 사건이었다. 이 사건은 오래지는 않지만 꽤 긴 시간에 걸쳐서 시간을 두고 표면과 심층이 밝혀질 것이다. 사건의 원인과 경과, 그리고 과정에서 관계와 연관들 관한 독사(doxa)들이 넘쳐 날 것이다. 사건의 접합(절속)이 매우 많아서, 트래픽이 많은 몇 가지로 줄여서 알려질 것이다. 그럼에도 시간의 경과에 따라, 각각이 처한 위상에 따라 자기의 방식으로 점검해 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길어도 2주 후인 3월 첫 순(旬)에 인용이 결정될 것이라 한다. 사실상 심문과 조사는 어제로써 끝났다. 그럼에도 사건의 선들은 여러 갈래로 파장을 일으키고 있으나, 언론과 방송은 국힘당과 민주당의 권력 다툼처럼 비춘다. 제3의 계열은 이미 표면으로 올랐고, 사상(四象)이외에 제5열도 소통하고 있다. 극우(외세파, 국짐당), 우파(민주당), 중도(조국당), 좌파(사회당, 진보당, 민중당), 극좌(공산당)로 나누어 볼 수 있다. 다시 재편될 것인데 민주당이 우파가 되고 조국당이 중도가 되고, 나머지 여러 작은 정당들이 좌파가 될 것이다. 이번에는 자주와 자치, 자율과 자발이라는 자연의 힘을 빌어서 성립할 것이다. 세계사는 그렇게 변역(變易)의 길을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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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이 시대를 만든다는 것은 옛 이야기로 남는다. 인민에 의한, 인민을 위한, 인민의 정치에서, 이제는 인민 속에서 정치로 바뀌고 있는 한 국면일 것이다. 이 속에서라는 의미는 자연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다. 자연을 대상을 삼아왔지만, 이제는 아름다운 지구, 세계 속에서 살아가는 방식을 창안해야 할 때이다는 점에서, 생물학과 생태학의 관심이 중요하다. 하루 아침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젊은 시절에서 장년에 이르기까지 긴 노력의 과정을 거친 자들이 합의와 계약에 의해 새로운 제도의 창안이 나올 것이다.
김병기 의원이 전하는 블랙요원을 양성하는데 10년 이상, 또는 20년이나 걸린다고 한다. 보살이 되기에 오랜 수련이 필요하고. 수련이 깊어져서 각성을 하는 자가 그 노력을 거쳐 간 자들 중에 몇 안 된다. 이런 이야기는 서양철학사에서 소크라테스의 직계제자들 중에 퀴니코스학파는 노력(l'effort, πόνος 포노스), 긴장(une tension, τόνος 토노스 )을 강조했었다. 이런 노력과 강도의 시대의 시대를 열었던 것은 촛불시위를 거쳐서 불빛시위를 창안한 세대에 있을 것이다.
규소의 시대의 전개과정에서 어느 정도 공유화 또는 일반화의 시대를 맞이하고 있다. 사람들은 AI를 통한 쳇GPT와 딥시크(DeepSeek)를 말하면서, 새로운 시대에 긴 노력과 공력이 필요할까라고 한다. 노력과 내공은 분야별로 독특하기에 항상 심혈을 기우려야 한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수학에서 이런 일화가 있다. 미시시피강에서 어린 청소년이 암산을 잘하는 이가 있어서 이를 데려다가 수학 공부를 시켰는데, 암산도 못하고 수학도 못하는 청년이 되었다는 것이다. 암산은 수학이 아니다. 암산의 영역과 수학의 영역은 전혀 다른 것이다. 영역의 차이는 점점 더 다양한 영역들에서 서로 간에 통약불가능하다. 그래도 인간은 먹고 자고 싸고 산다는 것이 공통이다 말하자면 벩송이 말하듯이 산다는 것이 먼저이고, 그리고 사유하는 것이다. 그리고 인간에게 한 평생이라는 것은 공통분모이다. 벩송의 두 가지 보태어, 플라톤이 말하는 철학한다는 것이 있는데, 철학한다는 죽는다는 배우는 것이다. 위에서 말했듯이 장량의 지거취지절(知去就之節)은 떠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는 것이리라.
이번에 반란수괴인 윤석열의 독재에서 끌어내는 과정에서 시대가 내공이 있는 이들을 사람들에게 보게 했다. 먼저 감옥에 있지만, 조국의 “3년도 길다”는 구호가 성립하였다. 그리로 국회로 가던 그 시각에 이재명 당대표는 당원들과 시민들에게 유투버를 통해 국회에 모여 달라고 했다. 이런 순발력은 오랜 정치적 노력과정에서 나온 힘일 것이다. 윤석열과 김용현의 계엄주도에 대해, 사건을 사실 그대로 알게 해주고, 윤석열의 아무 말 대잔치인 개소리 방지를 해준 이가 있다. 국정원의 홍장원 차장, 계엄실행 장군이 곽종근 사령관, 경찰에서 조지호 청장이 있다. 계엄의 사건의 여러 연관들을 깊이 있게 다루는 정치적 감각을 드러낸 이들이 많은데, 정보부 1차장 출신인 박선원 의원, 육군 대장 출신 김병주의원, 부승찬의원 등등이 있다. 검찰의 실상을 전문적 지식으로 세세하게 알려준 조국당의 박은정의원이 있고, 더하여 검찰 계통의 일상과 조작을 알려준 이로서 임은정 검사도 있다.
이번 사건의 속 이야기와 뒷 이야기를 많이 남긴 김어준과 여론조사기관인 여론조사꽃은 기존 언론의 지형을 바꾸어 놓을 수 있을 것이다. 김어준은 한달이 넘게 집에 들어가 잘 수 없었다고 하니, 윤석열이 파면이 되어야 집으로 들어 갈려나. 이와 더불어 몇몇 일인 방송과 평론가들이 있는데, 매불쇼의 최욱을 꼽을 수 있다. 이와 더불어 이런 류의 매체에 활동한 이들 중에, 대중의 걱정과 불안을 가라앉히는 설명을 잘 해준 이들은 유시민과 최강욱 등일 것이다. 유시민은 정치적 전반에 걸쳐서 정열적으로 방향설정을 하였고, 최강욱은 이번 사건의 연관들을 간략하고 정확하게 설명하는데, 어렵고 딱딱한 이야기들을 사람들의 마음을 후련하게 하고 안도하게 하는 독특한 화법과 설명기술이 있는 것 같다.
극우파의 체널이든 짧은 유투버든 일인 미디어든 간에 어느 것도 열어보지 않았던 나로서는 극우의 기독교 세력으로 전광훈과 손현보가 있다는 것이고, 이들 크리스트교인들이 정치에 깊숙이 참여했다는 것은 개신교의 집단이 탐욕에 빠진 것으로 보인다. 이런 탐욕과 오만에 기댄 국짐당 의원들이 많다고 하는데, 그보다 그들이 내세울 대선의 후보자로서 김문수와 한동훈 정도라고 하고, 기존에 알려졌던 오세훈, 홍준표 등은 명태균 사건(아직 밝혀지지 않았지만 곧 알려질) 때문에 후보에 오르기가 불가능할 것이라고들 한다. 아마도 명태균 사건이 내란죄 재판에 이어, 다음 3월에는 중요 사건으로 떠오르면서, 김건희가 모든 매체의 주인공이 될 것이라 한다.
시대는 새로운 인물을 요구할 수 있다. 자료를 꼼꼼하게 정리해 보관하고 있던 신용한과 사건의 진행과정의 자료들을 정리하여 알려주는 노영희 변호사도 있다. 이미 잘 알려진 사건전문기자인 주진우, 국방전문가인 김종대 의원, 정치사회의 맥락을 집어주는 이상호기자 등도 대중의 불안을 잠재워 주었다. 이와 다른 각도에서 눈 내리는 밤을 세워 시위를 이끌었던 진보당 정혜경과 비서관 천승훈의 사진은 그 다음날 짤로서 누리소통을 달구었던 것도 이야기에 올려야 할 것이다. 더하여 누리통신을 통하여 먹을 것과 마실 것을 보내준 인민들의 열망이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윤석열 정권이 들어서서, 조국처럼 공격하고 핍박을 받는 것도 아니고, 시대의 흐름도 읽지 못하다가, 윤석열이 탄핵될 것이 분명해지고, 대선이 앞에 다가오니 꿈털대는 정치인들이 있다. 이들 장외에 있었던 정치인들은 시대가 그들을 표면에 올려주지 않았다. 이 들은 노력과 내공을 다지는 세월을 보내어 진솔한 좌파와 우파의 형태가 갖추어질 4년 후 쯤에 다시 시대의 인물들의 배치와 분포가 나올때를 기다려야 할 것이다. 민주당의 바깥이 무엇이 되어야 할 것인지를 성찰하지 않았던 정치인들은 지거취지절(知去就之節)을 숙고하며 내공(τόνος 토노스)을 쌓아야 할 것이다.
시대의 변역(變易)에서, 시대가 위에서 말했던 인물들 보다 더 많은 인물들을, 이미 시대를 담당하게 만들었고, 만들고 있다. 시대의 뒤 언저리에 있었던 이들은, 밥을 먹어야 사니까(삶이 먼저다), 숟가락 들고 밥상에 앉아서 밥먹고, 그리고 바깥에 나가 공덕 쌓고, 적선을 하며, 돈수하는 노력을 할 하여야 할 것이다. (4:25, 58MME) (7:03, 58MMF)
젊07533헌재발언25마지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