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곡을 지은 패니 크로스비 여사는 생후 6일째 병원측의 실수로 영구적으로 시력을 잃고 말았다. 하지만 이 하나님의 사람은 자신의 장애에 절망하지 않고 도리어 그것을 찬양의 제목으로 올려드렸다. 사람들이 크로스비 여사에게 “사실 맹인이 되고 싶지 않았었죠?” 라 물었을 때, 그녀는 당당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글쎄요, 제가 맹인이 되어 가장 좋은 점은 제가 가장 먼저 볼 얼굴이 예수님이라는 점이네요.” 장애도, 불행도 그녀로 하여금 하나님을 찬양하지 못하도록 할 수 없었다. 그리고 교회사에서 가장 많이 불리는 곡인 이 곡은 그녀의 그런 심정을 잘 대변해주는 곡이라 할 수 있다.
한국어보다는 원어인 영어가 더 깊은 울림이 있어 미천한 영어실력이지만 해석을 해보았다.
1절
Blessed assurance, Jesus is mine 축복받은 확신, 예수는 나의 것
O what a foretaste of glory divine 오 영광스러운 신성의 맛보기
Heir of salvation, purchase of God 구원의 상속자, 하나님께서 값 주고 사심.
Born of His Spirit, washed in His blood 그의 성령으로 거듭남, 그의 피로 씻어짐.
1절의 첫 가사가 ‘축복받은 확신’이다. 여기서 확신(Assurance)이라는 단어는 지난 주일설교 말씀 때, 히11:1의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라는 구절의 ‘실상’과 같은 단어다.(ESV기준) 확신은 특정 대상이나 사실에 대한 강한 믿음을 말하는데 중요한 점은 바로 이 확신이 축복을 받았다는 것이다. 즉, 내가 믿고 바라는 그 확신이 나에게 100% 복이 된다는 뜻이다. 그리고 이어서 크로스비 여사는 그 확신의 대상이 예수 그리스도이며 자신은 그 분을 소유했다고 확신에 찬 목소리로 고백하고 있다.
그러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소유한 자신이 이 땅에서 누리는 복들을 언급하고 있다. 구원을 상속받고, 하나님이 자신을 위해 독생자 아들의 피 값으로 자신을 사셨으며, 성령으로 거듭나 새 삶을 얻고,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모든 죄를 사함 받았다고 말한다. 그런데 정말 놀라운 고백이 그 앞에 언급된다. 개인적으로는 이 부분에 큰 울림이 있었다. 바로 그것은 ‘O what a foretaste of glory divine’ 다. 여기서 Foretaste라는 단어는 맛보기, 시식이란 뜻인데 앞에 언급한, 예수를 믿고 받은 그 놀라운 은혜들이 영원한 그 분의 나라에서 누릴 그 영광에 비하면 ‘마트 시식코너’ 라는 것이다. 이 말은 우리가 구원받고 이 땅에서 누리는 것들이 아무런 의미 없는 하찮은 것이 아니라 여기서 누리는 것도 우리의 전 존재를 뒤바꿀 만큼의 엄청난 복이요 은혜인데, 이 땅의 삶을 마치고 영원한 하나님 나라에 갔을 때 우리가 누리는 그 영광은 인간의 언어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클 것이라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지금 예수 안에서 누리는 기쁨과 감사도 말로 형용할 수 없을 만큼 크고 놀라운데 천국 가서 누리게 될 것은 얼마나 클까? 라는 기대와 소망을 가지게 만드는 고백이다.
2절
Perfect submission, perfect delight, 완전한 순종, 완전한 기쁨
Visions of rapture now burst on my sight; 큰 기쁨의 소망들이 지금 내 시야에 펼쳐진다.
Angels descending, bring from above 천사들이 내려와 위로부터 가져온다.
Echoes of mercy, whispers of love 자비의 메아리, 사랑의 속삭임.
크로스비 여사는 완전한 순종이 완전한 기쁨을 낳는다고 고백한다. 그런데 조금만 생각하면 순종이라는 것이 즐겁지 않은 일임을 발견하게 된다. 왜냐면 자신의 본성을 거슬러야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자존심, 고집, 가치관들을 내려놓아야 순종을 할 수가 있다. 하지만 즐거이, 기쁨으로 순종하는 방법 하나가 있다. 다름이 아니라 그것은 순종의 대상을 사랑하는 마음이 더 크면 된다. 사랑하기에 내 본성을 거스를 수 있다. 개인적인 경험으로도 사랑하니까 사랑하는 사람이 하라고 하는 건 하고 싶고, 싫어하는 것은 하지 않으려 노력했었다. 마찬가지로 주님에 대한 순종도 그 분을 전심으로 사랑할 때 할 수 있다. 좀 더 정확하게는 순종하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 주님 말씀에 순종하지 않고는 견딜 수가 없게 된다.
그리고 그러한 기쁨의 순종을 통해 크로스비 여사는 남들이 볼 수 없는 큰 기쁨의 소망이 자신의 영적 시야에 펼쳐짐을 경험하게 된다. 그것은 바로 그녀를 향한 주님의 자비와 긍휼, 사랑의 소리이자 손길이다. 마치 천덕꾸러기였던 다윗의 친구가 되어주시고, 아버지가 되어주신 주님의 사랑과 같은 맥락이다. 신기하게도 그런 주님의 사랑과 긍휼을 그 누구보다도 많이 받았던 두 사람은 수많은 찬양을 주님께 드렸다.
주님께 순종하는 길은 세상적인 시각으로 볼 때에 참 큰 낭비이자 어리석은 일이다. 하지만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기쁨의 순종을 드릴 때, 남들이 볼 수 없고, 맛보지 못한 놀라운 주님의 은혜를 경험하게 됨을 다시금 배우게 된다.
3절
Perfect submission, all is at rest 완전한 순종, 만물이 영면할 때,
I in my Savior am happy and blessed 구주 안에 있는 나는 행복을 누리고 복을 받았다.
Watching and waiting, looking above 바라보고 기다리고, 위를 바라보며
Filled with His goodness, lost in His love 그의 선하심으로 채워지고, 그의 사랑 안에 잠겼다.
주님에 대한 사랑에 기반을 둔 완전한 순종은 종말의 때에 선명히 빛을 발한다. 세상 모든 만물들에는 종말이 있다. 그 종말의 때, 마지막 때는 어떤 이들에게는 '심판'의 때이지만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소유로 삼고 그 안에 있는 자들은 그 날이 심판의 날이 아닌 진정한 행복의 시작이며, 복의 정점이다. 끝까지 위의 것들을 바라보며 믿음의 길, 순종의 길을 가는 자들에게 하나님께서는 그 분의 선하심으로 삶을 채워주시고, 그 분의 사랑 안에 깊이 잠기게 하신다. 그리고 결국 개인의 종말, 만물의 종말이 왔을 때, 영원한 그 분의 나라에서 영원한 행복을 누리게 됨을 고백하고 있다.
세상엔 시작이 좋은 사람은 많지만 끝까지 좋은 사람은 많지 않은 것 같다. 지금 비록 못나고, 연약해도 내 삶의 종착역에 다다르고, 주님 앞에 섰을 때, 그래도 열심히 살았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후렴
This is my story, this is my song 이것이 나의 이야기, 이것이 나의 노래
Praising my Savior all the day long 사는 모든 날 동안 밤이나 낮이나 내 구주를 찬양
그러기에 크로스비 여사는 자신의 삶에 있어 예배하지 않을, 찬양하지 않을 이유는 단 하나도 없다고 고백하고 있다. 비록 보이지 않는 장애를 가졌지만 그 장애가 결코 이 뜨거운 예배자의 마음을 꺾을 수는 없었다. 그녀에게 있어 삶이란 사랑하는 주님과 늘 함께 하는 일이며, 자신에게 놀라운 구원의 일을 행하신 주님을 찬양하는 것이다. 이러한 예배자의 태도는 아브라함, 모세, 다윗 등등 성경의 수많은 믿음의 조상들의 태도였고, 우리 가까이에 있는 믿음의 사람들의 모습을 보아도 충분히 경험할 수 있다.
이 찬양을 묵상하며 상황과 감정에 따라 예배하고 찬양할 마음이 변하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게 되었다. 변명할 거리가 생길 때 마다 “난 예배할 수 없어요, 찬양할 수 없어요.”라고 스스로 합리적인 이유를 둘러대며 마음을 다해 주님을 기뻐하지 못했던 지난 시간들을 돌아보고, 주님 앞에 회개의 기도를 드렸다. 크로스비 여사의 이 놀라운 고백을 통해 다시금 깨닫는 바는 ‘내가 예배하지 않을, 찬양하지 못할 이유는 절대 없다.’는 것이다. 그저 살아있기에, 그 분의 놀라우신 사랑과 은혜로 구원받은 백성이 되었기에, 그것만으로도 우리는 주님을 예배하고 찬양할 마땅한 이유가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