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수학 철학의 여러 단계들(1912),
브륑슈비크(1869-1944), P. 592.
# 수학 철학의 여러 단계들 (Les étapes de la philosophie mathématique, 1912)
브륑슈비크(Léon Brunschvicg, 1869-1944), Alcan(PUF), 1912, [1947판] P.592.
제1부 구성의 시대 Période de constitution 01
제1권 산술학 Arithmétique. 03
제1장 인종지학과 초기 수적인 조작들 L’éthnographie et les premières opérations numériques 07
§3 [원시인의 수 세기(헤아리기): 일반화 방식의 두 경향인 추상과 경험]
어떻게 계산의 용법과 수적 항목들이 인류[의 사고] 속에 도입되는지를 탐구하는 철학자의 호기심에서, 폭넓은 재료는 인종학적 관찰들에 의해 제공되었다. 타일러(Tylor, 1832-1917)의 고전적 작품, 원시 문화(1871, 2권) 이후에, 코난트(Conant, 1857–1916)는 1896년에 매우 풍부한 전문저술인 수 개념: 수의 기원과 발전(1896)을 뉴욕에서 발간했다. 결국 가장 최근의 주제는 열등 사회들에서 심정적 기능들(1910)의 제5장에서 레비-브륄(1857-1939)에 의해 새로이 개선되었는데, 이 책의 5장의 제목은 「숫자세기와 연관된 선논리의 심정성」이다. (7)
우리는 이 세 작품들에서 수집되었던 사실들의 수확[추수]에 기여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특히 초기 지표들을 제공했던 레비-브륄에 빚지고 있다. 그는 우리의 논리학적 습관들과 원시적 심정성 사이에서 대립을 강조하면서 초기 지표들의 진행을 해보야 한다고 한다. 문명화된 국가들에서 수 세기(la numération, 기수법)는 계산(le calcul)에 앞선다. 어린이들은 수적 가치들을 구별하는 상태에 이르기에 앞서, 수 세기와 계산에서 숫자들의 이름들(les noms)을 배운다. 만일 사람들이 이런 앞선 국면에서, 그들에게 과자들 또는 과일들이 자신들의 것으로 얼마나 있느냐고 묻는다면, 그들은 자신들이 아는 수의 이름들 모두를 무턱대고 말한다. 유럽인들이 사용방법에 따라 원주민들에게 산술학을 가르쳐보았던 선교사들이 행했던 것과 비슷한 관찰을 주목해야 한다. 이들은 추상관념의 일반성에서 시작했었다. 이렇게 돕리츠호퍼(Dobrizhoffer, 1717-1791)의 증언에 따르면, 파라과이의 토착민인 과라니족(Les Guaranis)은 그들의 입말에서 4(넷) 이상으로 더 나아가지 않지만, 이들은 “모두 스페인어로 수들을 발언할 줄 안다. 그러나 헤아리면서 그들은 쉽게 그리고 자주 속는데, 그들이 보기에 그러한 재료[숫자들의 용어]를 너무나 믿을 수 없다는 것이다.” 아비폰족(Les Abipones)도 마찬가지로 “세어야만 한다는 것을 지지할 수 없었다. 즉 그러한(센다) 것이 그들을 괴롭힌다. 이어서 사람들이 자신들에게 지워진 문제들을 벗어나기 위하여, 그들은 아무 수나 손가락들로 제시한다.” (8)
그런데 바로 여기에 특징적인 것이 있다. 같은 아비폰족이 더 이상 속지 않는 경우가 있다. 그들의 생각이, 자신들에게 낯선 언어에 의해 압축되거나 지배되는 대신에, 생각의 원래 과정을 따라 되돌아가서 자유로울 때이며, 그리고 사물들이 집합으로 구성되어 특별한 무더기로 있을 경우에라도, 그들의 생각이 사물들에 대해 직접적 시각에 근거하고 또 사물들이 차치하는 장소의 표상에 지지를 받을 때이다. 그들이 사냥개들로 둘러싸여 [양] 무리들을 몰고 갈 때, 돕리츠호퍼가 말하기를 “나는 자주 감탄했다. 그들은 어떻게 세지 않고서도 상당히 많은 무리에서 한 사냥개가 점호에 빠졌는지를 무매개적으로[직관적으로] 깨달을 수 있었는지 말이다.” 분명하게 말하지만, 만일 사람들이 수세기(la numération, 기수법)의 규칙적인 체계를 포함하는 조합작업들에서 계산의 이름[명칭]을 유보하는 것이 맞다면, 돕리츠호퍼가 말하듯이, 아비폰족은 세지 않았다고 말해만 했다. 그러나 그것을 말하는 하나의 방식(une façon)일 뿐이리라. 사실에서는, 왜냐하면 아비폰족은 우리의 계산의 결과들에 동등한 결과들의 조작[계산]작업을 할 수 있기 때문에, 아비폰족은 “그들의 방식(la manière)으로” 셀 줄을 안다. 따라서 수세기의 규칙적 체계들과 독립적인 하나의 계산이 있다. 그 계산은 수세기에 앞서고, 또한 수세기를 가능하게 한다. (8)
수학적 사유의 각성을 파악하기 위하여, 우리가 인용했던 논문집들 속에서, 이런 계산[산술학]의 가장 기본적인 절차들을 다시 [수면] 위로 올려놓을 것이다. 우리는 증가하는 복잡성의 질서 안에서 명석한 분석을 위하여 이 절차들을 소개할 것이다. 그러나 전혀 그렇게 되지 않을 것 같고, 매우 먼 지방들의 인민들로부터 그리고 아주 다른 지적 수준들의 인민들로부터, 차용한 경험이 단선적인 순서로 마음대로 처리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지도 않을 것이다. (8)
[1절] 계열과 대응 Sériation et correspondance 8
§4 [가끔 영혼과 신체의 논의가 수와 명사 사이, 점과 무한 사이와 연관이 있을 것 같다.]
계산[산술학]의 동등가치를 제공할 수 있는 절차들 중에 가장 단순하고 가장 “원시적”인 절차는, 우리가 보기에, 타일러가 오스트레일리아, 말레이시아, 마다가스카르에서 이미 사용했던 것으로 알렸던 절차인 것으로 보인다. 사람들은 어린이들에게 태어나는 순서에 따라서 고정된 이름[명사]들을 불러준다. 따라서 이 이름들의 각각이 마치 수처럼 고정되는 것과 같은 것처럼 보인다. 여기에 오스트레일리아의 영국인 탐험가 에이리(Eyre, 1815-1901)에게서 빌려온 목록표가 있다. “오스트레일리아의 아들레이드 도시의 구역에서, 그리고 북부 종족들에서, 영국인 총독인 무어하우스(Moorhouse, 1813- 1876)는 세상에 태어난 어린이들을 그 순서에 따라 숫자의 이름들을 붙인다는 것을 발견하였다. 그 이름들의 어미에서 변화가 소년들과 소녀들의 이름에서 차이를 구성한다.
첫째 아이, 케르타메루(Kertameru) (소년) 또는 케르타냐(Kertanya) (소녀)라 불린다.
둘째 아이, 와리티야(Warritiya) - 또는 와리아르토(Warriarto) -
셋째 아이, 쿠드누티야(Kudnutya) - 또는 쿠드나르토(Kudnarto) -
넷째 아이, 모나이티야(Monaitya) - 또는 모나르토(Monarto) -
다섯째 아이, 밀라이티야(Milaitya) - 또는 밀라르토(Milarto) -
여섯째 아이, 마루티야(Marrutya) - 또는 마루아르토(Marruarto) -
일곱째 아이, 완구티야(Wangutya) - 또는 완과르토(Wangwarto) -
여덟째 아이, 냐르라이티야(Ngarlaitya) - 또는 냐르라르토(Ngarlarto)
아홉째 아이, 푸아르나(Pouarna) - 또는 [없음]” (9) [왜 아홉까지일까?]
오스트레일리아인들은 3(trois) 그 넘어 기수를 갖지 않는다. 아홉 아들의 아버지인 오스트레일리아인은, 9(neuf)라는 수를 표상하지 않더라도, 기수 또는 서수의 추상관념이 없더라도, 자기 가족이 전부인지를 말할 줄 알 것이다. 그런데 그는 9(neuf)까지 세지 않는다. 그러나 그는 우리가 아홉째(neuvième)라고 말하는 항목에까지 밀고 나가서, 그는 항들의 질적 구별을 하는데, 이 항들은 우리의 눈으로 보기에 배열되어 정돈된 계열을 조성하는 것으로(composeraient) 여길 수 있다. 한마디로 그는 수[항목]열거(l’énumération)를 수단으로 수세기(la numération)를 보충하고 있다. (9)
§5. [수열거에서 각 용어(대상에 상응하는 표시)의 발생의 단계 ....]
이 첫째 단계에서 수적인 사유는, 그런 사유가 인간에 정신에 현재로 나와 있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오히려 사물들에서 포함되어 있다. 이것은 각 자식이 일종의 시간적 표시(le signe temporel)를 타고난 것이고, 그리고 아이들 전부는 순서로 된 계열을 형성하는 것이다. 이때에 중요한 진보가 있는데, 순서(l’ordre)라는 관념을 일반화하는 것이 질적인 구별속에 계열의 항목들[이름들의 순서] 그 아래 들어있는[잠재해 있는] 있는 것이다. 이런 방식에서 동일한 것들을 개별자들의 모임에 적용하는 대신에, 이런 구별은 그 어떤 대상들의 배열작업을 위하여 표지점이 되는 것이다. (9)
그리고 이 새로운 단계에서도 아직은 수의 명칭들(이름들)이 없다. 그러나 수세기에 걸친 구체적 등가들이 있다. 레비-브륄이 재통합한 정합적인 관찰들은 생겨나는[태어나는] 상태에서 이런 사유의 훨씬 복잡한 실천들을 분명하게 알게 해준다. 우리는 단지 오스트레일리아 북단 토레스 해협의 머레이 섬들(Îles Murray)에서 다루었던 이런 관찰들의 하나를 인용할 것이다. “여기서는 원주민들의 유일한 수들은 네타트(netat) =1과 네이스(neis)+2 둘 뿐이다. 이 수를 넘어서, 그들은 이중겹치기(réduplication)에 의하여, 네이스 네타트(neis netat은)는s 2, 1이라 3이고, 네이스 네이스(neis neis)는 2, 2라 4, 등등이다. 또는 이들은 신체의 일부와 연관시킨다. 이런 마지막 방법[신체 일부 사용하기]에 의해 31까지만 셀 수 있다. 사람들은 왼손의 작은 손가락으로부터 시작한다. 그리고 사람들은 손가락들, 손목, 팔목, 겨드랑이, 어깨, 쇠골에 파인 부분, 흉부, 이어서 [반대편 흉부로부터] 오른 팔의 길이에 반대 순서로 내려가서, 끝내는 오른 손의 작은 손가락으로 끝난다.” 이처럼 토레스 해협의 서쪽 종족들에게 깊이 스며들었던 관찰자가 말하기를 “업무의 문제에서, 어떤 한 인간은 왼손 새끼손가락에서 시작하여, 그리고 대상들의 수를 그 인물의 어떤 [부위]점에까지 진행하였는지를 상기할 것이다. 그리고 그는 [그가 가리키는 신체 부위의 표시를 따라가서] 찾고자 했던 수를 재발견할 것이다.” (10)
이러한 [계산의] 조작 작업은 분명하게 대응(la correspondance)의 절차이다. 현대의 과학자들에게 매우 익숙하게 된 이런 표현을 도입하면서, 오직 완전히 질적이며 기원적인 기호작용을 이 용어가 보존하고 있다는 것만이 중요하다. 대응의 범위는 기호(le signe)와 기호화된 사물과 관계 속에서, 기호들의 계열과 기호화된 사물들의 계열과 관계 속에 고갈된다. 기호들과 대응들의 사용이 허용하는 확장성과 정확성이, 보르네오섬의 다약족에 관해 이루어진, 브뤀(James Brooke, 1803-1868)의 관찰에서 밝혀진다. 레비-브륄은 그의 관찰을 우리에게 알려주었다. 그리고 그의 관찰이 너무나 놀랄정도로 많아서 우리는 그 관찰을 [여기서] 전부다 다시 생산할 수 없을 정도이다. ≪“중요한 것은, 봉기를 일으켰다가 진압된 얼마간의 마을들에게, 그들이 갚아야 할 배상액의 총액을 알게 해줄 수 있다는 것이다. 어떻게 원주민 전달자가 그것을 처리할 것인가? - “그는 건조한 나뭇잎 몇 장을 가져갔고, 그는 그것을 조각내어 잘랐다. 그러나 내가 나뭇잎 대신에 그에게 보다 편리한 종이로 바꾸게 했다. 그는 그 조각들을 탁자위에 하나하나 놓았다. 그리고 동시에 세기 위하여, 열(10)까지는 자기 손가락들을 이용했다. [이 다음으로] 이때에 그는 자신의 발을 탁자 위에 올려놓았다. 그리고 각 발가락을 종이의 각 조각과 동시에 세었다. [그와 동시에] 마을의 이름에는 그 마을의 우두머리의 이름, 그의 전사들의 이름, 배상액의 금액과 상응시킨다. 그는 손가락들과 발가락들을 다 사용했을 때, 그는 다시 손가락들로 다시 돌아온다. [내가 종이로 제시한] 목록의 마지막에, 그 때에 그는 탁자위에 배열된 종이의 45개 조각이 있었다. 그는 내가 만들었던 나의 전문을 새로이 다시 반복할 것을 나에게 요구했으며, 그러는 동안에[종이와 연관 없이 네가 숫자로 반복하는 동안에] 그 자신은 종이의 조각들을, 이전에 손가락들과 발가락들 세기처럼, 세는 것이다. 그가 말하기를 “자 보세요, 우리에게 속하는 우리 철자[글자]들입니다. 다른 백인들처럼 당신은 우리들처럼 읽지 않습니다다.” 밤 늦게, 그는, 계속적으로 종이의 각 조각에 손가락을 놓으면서, 이 모든 것을 정확하게 반복했다. 그리고 그가 말하기를, “잘 되어가요. 만일 내가 내일아침 회상한다면, 모든 것이 잘 되리라. 탁자위에 이 종이들을 놓아 보세요.” 이런 말을 한 후에, 그는 종이들을 뒤섞었다. 그리고 그는 그것들을 무더기로 만들었다. 다음날 아침 일어나자마자, 그와 나, 우리는 탁자에 모였다. 그는 전날에 조각들이 있었던 대로의 순서로, 종이조각들을 정돈하였다. 그는 완전히 정확하게 모든 세부적인 것들을 반복했다. 한달 가까이 지나는 동안, 내부에서 멀리 이 마을에서 저 마을로 가면서, 그는 다른 액수의 합계들 등등을 결코 잊지 않았다.≫ (11)
건조한 잎들 조각들 또는 종이 조각들의 사용법은 대응 조작법을 외화한 것이다. 이 대응조작법은 원주민에게 문명화된 인민들의 수적인 계산을 보충하게 해 준다. 원주민에게 기수의 형식으로 제시했던 수들은 계열로서 번역되었다. 계열의 계속적인 항들은 손가락들과 발가락들의 의해 형성된 서수체계에 관련되어 있었다. (11)
체계를 조성하는(composer) 신체 부위의 표시들(les signes locaux, 부위기호들)의 고정성은 아주 복잡한 계산들에서 편하고 정확하게 인식하게 해준다. 그럼에도불구하고 수적 개념의 표현은 아직 구성되지(constituer) 않았다. 예를 들어 오스트레일리아의 무랄루그(Muralug)족에게 수 5는 한 단어로 지칭되는데, 나비게트(nabiget)이다. 나비게트는 게트(get)에서 유래하며, 손을 의미한다. 그러나 “사람들은 나비게트가 수 5의 이름이라고 말할 줄 모른다. 그는 손안에 손가락들이 있는 만큼이나 문제 중인 대상들이 있다는 것을 말할 뿐이다.” (11)
[2절] “둘(2)”이란 용어 La notion de “deux” 11
§6. [대상화에서 나열, 상응하는 수나열, 수나열의 관념연합에 의해 논리적 형식으로서 수열의 체계가 성립하여, 계산이라는 방식이 문화유전으로 전승되는가?]
그러면 수의 고유한 개념이 나타나기 위하여 무엇을 필요로 할 것인가? 언어가 순수하게 추상적 기호들로 형성된 어휘로 풍부하게 되는 것이 분명히 필연적이지 아닐 것이다. 왜냐하면 구체적 명칭작업이 아직 시작되지 못해서, 추상적 표현이 아니기 때문이다. 엄밀하게 말하자면, 심지어 심리학적인 새로운 조작작업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산술적 사유는, 우리가 좀 전에 서술했던 예상계산(la supputation)에서만이 복잡하게도 또한 그 자체로 확실하게도 될 수 있다. 단지 습관이 일상에서 그의 작업을 쌓기로 그리고 경제적으로 완성할 것이다. 해결해야할 각각의 문제를 위해 다른 손가락들과 발가락들로 또한 참조 계열의 항목들인 신체의 다른 부분들을 거쳐가면[다 지칭하고 또는 세고 나면], 사람들은 예비적 작업을 다시 행할 수고를 더 할 필요 없다. 기억이 그것의 결과물을 고정한다. 기억은, 마치 앞선 계산의 결과를 표현하는 것처럼, 즉 마치 미래 계산을 위해 미리 [결과를] 받았던 것처럼, 항목들 각각의 줄 세우기를 유지한다. 그러면, 이 항목을 지정하면서, 일련의 계속적 운동에 의해 주어져 있어야만 했던 것을, 하나의 이미지로 즉 동시적인 모음으로 떠올리는 것이 가능하다. 손(main)을 기호화할 단어의 발언에서, 이미 이전에 만져졌고 들어 올려졌던 모든 손가락들이 함축되어 드러날 것이다. 이렇게 그 단어는 기수의 의미로 풍부하게 될 것이며, 기수는 문명화된 인민들의 입말에서 끝내 기원적 표상작업을 지워버린다. 달리 말하자면, 수의 추상적인 용어가 형성되었을 때는, 소리 이미지가 연결된 어떤 구체적 직관에서, 보르네오의 토착민들의 계산에서 종이의 조각들이 행했던 역할을 그 소리 이미지가 그 용어에게만 행할 수 있을 때이다. (12)
단지 종이 조각들은 아주 [허술한]덧없는 [관념]연합의 조각들의 수적인 용적량을 지니고 있었던데, 이런 연합을 통해서 원주민은 이 조각들을 특별한 수적 조작 작업들에 연결했다. 이에 반해, 소리 이미지들의 기호화 작용이 만든 [관념]연합은, 용법에 의해, 또한 유전적인 전승[상속]에 의해, 통용되는[변함없는, 항구적이 된] 연합이 된다. 그런데 유전적 전승은 개인에게 계산의 생성하는 조작 작업들을 다시 하게하는 것을 면제해 준다. 이리하여 수나열 체계를 구성하도록 해주는 자발적 사유로부터, 수나열의 규칙에 지지받는 논리적 형식의 사유로 이행(le passage)이 완수 된다. (12)
§7. [2란 용어: 수나열(la numération)의 토대, 연합에서 한편으로 쌍(짝)에서, 다른 한편으로 2의 활용은 중첩(배가하기, 곱하기)에서 나온다.] .
2(둘, deux)의 용어를 중심으로 삼는 조작[계산] 작업들을 강조하면서, 우리는 이 이행의 가장 기호작업적인 특징을 표시할 기회를 가질 것이다. 2(둘, deux)는 자연적으로 수나열(la numération)의 가장 단순한 토대를 제공 한다. (12)
처음 숫적인 재현(표상)작용은 쌍(le couple)이다. 오스트레일리아의 몇몇 원주민들은, 이 덩어리들에 관하여 수의 문제를 제안하려 하지 않고서도, 단지 대상들 일체를 두 단위의 규칙적인 덩이로 나눌 줄 안다. 이때에 만일 그들이 탁자 위에 그들 앞에 놓인 일곱(7) 대상들을, 예를 들어 침들(일곱)을 갖는다면, 사람들이[누군가] 그것들 중에 하나를 제거할 때만, 그들이 셈(le compte)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자신들이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사람들이 그것들 중에 둘(2)을 제거했을 때, 뺄셈(soustraction, 빠진 것)을 더 이상 깨닫지 못한다. 왜냐하면 사실에서 그들은 짝수와 홀수만을 구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초보적인 절차는, 어떻게 쌍들(les couples)이 숫적 단위의 역할을 하기에 이르는지를 아주 잘 설명해준다. 이리하여 “요크 공작의 섬((île du duc d’York)에서는 사람들이 쌍들에 의해 센다. 그리고 사람들은 쌍들의 수에 따라서, 쌍들에게 다른 이름들을 부여한다. 폴리네시아의 방식은, 대상인 한에서가 아니라 쌍들인 한에서 관계하고 있다고 암묵적으로 인정하면(sous-entendant)서 수들을 사용하는 것이었다. 호코루아(Hokorua, 20)란 40을, 즉 스무 쌍을 말하고자 하는 것이다.” (13)
배수작업(duplication, 겹치기, 덧보태기 작업)은, 마치 덧셈(더하기)처럼, 수적인 양의 형성에 기여할 수 있는 초기 계산 작업이 된다. 사실상, 레비-브륄도 마찬가지로 지적했던 의사 스테판(Emil Stephan, 1872-1908)의 호기심 많은 관찰은 누벨 뽀메라니(Nouvelle-Poméranie)의 원주민들이 동일한 언어적 조합, 즉 사나울 루아(sanaul lua)를 사용하는 것을 보여준다. 사나울 루아는 10과 2인데, 그들이 이것을 적용하는 대상들의 습관적 그룹에 따라서, 즉 10+2 또는 10x2로 표현한다. 의사 스테판이 발하기를 “그들은 언어에서 구별할 필요를 겪지[느끼지] 못한다. 왜냐하면 그들은 결코 추상적으로 세지 않기 때문이고, 그들은 실체들을 동반한 수들만을 사용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12개의 코코아, 20개의 타로토란이 있고, 그리고 10이란 무더기를 단위로 사용한다. 그러면 사람들은, 10개 코코아에 더하기 2, 또는 10개[타로토란]의 두 무더기가 있다는 것을 잘 본다(voit, 안다).” (13)
결과적으로 다른 지역에서도, 언어의 세분화(différenciation)는 수의 세분화를 동반한다. 딘카족들(les Dinka)은 상부 나일강 지역에서 다음과 같은 항목용어를 갖는다.
2 = 루(rou)
5 = 으디에츠(wdyets)
여기에서 그들은 7을 으데루(wderou)라고 하고, 10을 으티에(wtyer) 또는 으티야(wtyar)라 한다. 다시 말하면, 오스트리아 언어학자인 뮐러(Friedrich Müller, 1834-1898)에 따르면, 그들은 두 가지 조합들, 5 + 2 와 5 x 2를 형성한다고 한다. (14)
이리하여 규칙적인 조합의 두 전형이 2(deux)라는 수가 근본적 역할을 하는 곳에서 발견될 수 있다. 1(l’un, 하나)는 순수하게 보태기(additif)이다. 해던(1855-1940)이 토레스 해협의 원주민들에게서 1(하나)이다. “사실상 두 수만이, 즉 우라푼(urapun)과 오코사(okosa)만이 있다. 이 두 용어는 서양의 언어에서 각각 1(un, 하나)과 2(deux, 둘)이다. 3(trois, 셋)은 오코사 우라푼(okosa urapun)이고 4(넷)는 오코사 오코사(okosa okosa), 5(다섯)는 오코사 오코사 우라푼(okosa okosa urapun), 6(여섯)은 오코사 오코사 오코사(okosa okosa okosa)이다. 이런 이후에 사람들은 습관적으로 라스(ras) 또는 덩어리(tas)라고 말한다.” 또 다른 2는 곱셈기호(multiplicateur)로서 발견된다. 그래서 체계는 인도의 카렌족의 수나열에서 흔적들이 남아있다. 여기서 선교사인 메이슨(Francis Mason, 1799-1874)은 다음과 같은 용어법을 발견했다(카렌족의 언어인 브가이(Bghai)언의 층위).
1 = Ta (타)
2 = Kie (키에)
3 = Theu (튜)
4 = Lwie (르비에)
5 = Yay (야이)
6 = Theutho (3 x 2) (튜토)
7 = Theuthota (3 x 2) + 1 (튜토타)
8 = Lwietho (4 x 2) (르비에토)
9 = Lwiethota (4 x 2) + 1 (르비에토타)
10 = Tachie (타키에) (14)
[3절] 손가락 계산 - le calcul digital 15 [10진법 계산]
§8. [여기까지, 저자는 수의 단위 설정에 기원에 대해 묻지 않은 것 같다. 이런 의미에서 저자는 논리주의자에 가깝다. 수의 단위 설정에 직관주의가 설득력을 갖는 것 같다.]
2(deux)라는 용어의 사용이 일으킨 수적 절차의 다양성은 보다 높은 정도에서 5진법의 사용과 동일하게 서로 만난다. (15)
무엇보다 먼저, 손의 모든 손가락에 의한 예상계산(la supputation)에까지, 즉 5라는 수의 재현(la représentation, [표상])에까지 도달하는 것이 해결할 문제이다. 슈타이넨(Steinen, 1855-1929)이 아주 충분한[잘] 관찰을 했던 바카이리족(Bakaïris)의 실례는, 문제가 얼마나 어려운지를, 계산을 위한 손가락의 사용과 손가락들 수에 대한 인식 사이에 얼마나 거리가 먼지[떨어져있는지]를, 보여준다. 손가락들의 운동은 바카이리족의 계산에서 일상적 방식에 개입한다. 옥수수 낱알들의 작은 더미를 세기 위하여, 한 바카이리인은 더미를 낱알의 규칙적 그룹으로 분배하며 시작한다. 그로서는 첫째 그룹을 평가[측정]하기는 쉽다. 왜냐하면 두 가지 수의 이름으로 분배하기 때문이다, 즉 tokale(토칼레)과 ahage(아하게)이다. 그는 첫째 이름[tokale]을 발언하면서 왼손의 작은 손가락을 세운다[편다]. 둘째를 발언하면서 그 옆의 손가락을 세운다[편다]. 그러고 나서 그는, 다음 손가락들을 펼치면서, 계속하여 하나(un, 일)[tokale]과 둘(deux, 이)[ahage]라는 이름들을 병치한다. 그러나 둘째 그룹에서부터는 오른손이 장면을 연출하며, 그 바카이리인은 옥수수의 새로운 낱알을 건드리고, 그는 그것을 새로운 손가락을 펼쳐서 재현[표상]한다. 슈타이넨씨가 말한 것처럼, “오른손은 건드리기를 하였고, 왼손은 세우기[펼치기]를 하였다.” 계산의 절차는 6을 넘어서까지 가지 못한다. 바카이리인이 6에 도달하는 찰나에, 그는 손들을 바꾼다. 그는 왼손의 손가락들을 들어올린 순서에서 오른 손의 손가락을 편다. 그러나 그는 일(un)과 이(deux)를 지칭하는 기본적인 항목들을 조합하기를 그만둔다. 그는 새로운 평가[측정]을 더이 상 수행하지 않는다. 그는 동일한 단어, 메라(mera)를 반복하는데 만족한다. 메라(mera)는 이쪽 것(celui-ci)을 뜻한다. 산술적 사유는, 대상들과 손가락들 사이에 대응을 성립시킨 몸짓(une mimique)에 의해서만 표명될 뿐이다. 만일 바카이리인에게서 내놓는[제시하는] 곡식 더미들이 열(dix)을 넘어선다면, 그는 발가락들에게 도움을 청한다. 만일 그 더미가 스물(vingt)을 넘어선다면, 그는 머리카락들을 취급하고, 그리고 그는 머리카락들을 모든 방향들로 당긴다. 그러나 수적 조합, 즉 수 6(여섯)까지를 형성할 수 있는 한계들에서, 그 바카이리인은 손가락 계산을 진실로 실행하지 않는다. 그는 손가락을 세지만, 그는 손가락들 그 자체를 세지 않는다. 사람들이 그에게 제시한 각각의 문제에서, 그는, 마치 이미 만들어진 계정, 즉 실행하는 바렘(un barême pratique)이 있는 것처럼, 손가락의 수를 사용하지 않고서 계산 작업을 다시 시작한다. 이 실행 바렘(barême)은 새로운 더하기를 처리하고, 결국에는 “사유의 절약”을 실현하게 해 준다. 그런데 이것이 바로 말 그대로, 손가락 계산을 구성하게 될 것이다. (16)
§9. [손가락 계산에서 사유의 절약에서, 대상 없이도 세기의 나열을 한다. 이 수나열은 입말을 통해서이고, 이를 기호화하는 단계를 거쳐서 문자화로 이를 것이다. ]
이런 계산의 성립에서 매개적인 국면이 계속해서 열거되는 손가락들의 질적인구별에 의해서 재현될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9에서 이미 서술했던 일반적 절차의 특별한 경우를 재발견 한다. 영국령 뉴기니아의 부길라이족들의 예는 가장 흥미있는 방식의 이전[전환]을 표시하고 있다. 선교사 샬머스(James Chalmers, 1841-1901)는 이 종족들에게서 다음과 같은 수의 이름들을 발견했다.
1 = Tarangesa[타랑게사] (왼손 새끼손가락)
2 = Meta kina[메타 키나] (왼손 다음손가락: 약지)
3 = Guigimeta kina [긴지메타 키나] (중간 손가락)
4 = Topea [토페아] (둘째 손가락, 식지)
5 = Manda [만다] (검지)
반면에 수열거의 연속으로 부길라이 족들은 팔과 어깨를 사용한다.
6 = Gaben [가벤] (팔목)
7 = Trankgimbe [탄크짐베] (팔꿈치)
8 = Podei [포데이] (어깨)
9 = Ngama [느가마] (왼쪽 가슴)
10 = Dala [달라] (오른쪽 가슴) (16)
§10. [나열에서 대상(곡식)에 대응하는 신체부위, 그리고 대상없는 신체부위에 맞는 명칭(명사, 언어 또는 단어의 개입), 그리고 단위의 인식과 더불어 대상 없이 수의 나열[산술학의 성립].]
수 5(cinq, 다섯)를 정복하기 위하여, 그들에게는 일체에 대해 직관 속에 포함될 수 있는 항들을, 또한 집적[모음]을 형성하는 항들을, 이질적 계열로부터 분리하는 일이 남는다. 전반부 요소들의 다섯 개들과 부길라이족 어휘의 후반부 다섯 개들 사이에 대조는, 손가락의 해부학적 배치가 어떤 점에서 서수의 계열을 기수의 모음으로 변형작업 하는데 유리한지를 보여준다. 손가락들은 이동할 수 있고(mobile) 동시에 재현할 수 있는 특권을 갖는다. 이렇게 고려해보면, 일종의 작업[노동] 분업은 두 손들 사이에서 확립되었다.커슁(Cushing, 1857-1900)이 주목한 것에 도움을 받아, 사람들은 손가락 계산을 하는 비문명화된 민족들이 왼손에서 그것을 연습한다고 이런 특별성을 설명할 것이다. 마치 오른 손이 습관적으로 행동하는 손인 것처럼, 그 야생인[원주민]은 셈을 하는 손가락들을 계속적으로 만지기 위해 오른손에 도움을 청한다. 그리고 세는 대상들은 자연적으로 왼손의 손가락들이고, 그리고 이 대상들에는 명사[명칭, 단어]가 적용되고, 이 명칭은 수적인 표기법을 지칭하며, 보다 정확하게는 나중에 수적인 표기법으로 변장되어 사용될 것이다. (17)
어떻게 운동들과 재현들 사이에 종합이 구성될 것인가? 뉴멕시코의 주니 족(Les Zuñis)들에게서 기본 다섯 수들을 지칭하는 단어들에 대한 커슁에 의한 번역은 이런 것을 경탄할 정도로 잘 보여준다.
1 = Töpinte(퇴핀테) = 시작하기 위해 취한 태도[하나를 펼침]
2 = Kwilli (크빌리) = 앞선 것과 함께 또 펼침[두개를 펼침]
3 = Ha’i (하이) = 동등하게 나누는 손가락[중간 손가락]
4 = Awite(아비테) = 하나를 제외하고, 펼친 모든 손가락 [즉 네 손가락]
5 = Öpte (옵테) = 베어낸 자리(l’entaillé, 다섯 손가락으로 눈금 만듬?)
하나(Un, 1)는 운동의 대상이라는 항목에 대한 단순한 직관(l’intuition)이다. 둘(deux, 2)은 계속하는 운동들이라는 항목들의 병치(la juxtaposition)이다. 다른 한편 다섯(cinq, 5)은 운동의 마지막이며, 이 마지막 운동은 모든 손가락들을 올린[펼친] 것이고, 즉 베어낸 자리(l’entaillé)까지, 다시 말하면 엄지(le pouce)까지이다. 한 손의 모든 손가락으로 실행되었던 전체 운동의 재현은, 셋(trois, 3)과 넷(quatre, 4)의 지칭(la dénomination) 속에, 앞서서 들어 올린 손가락들만큼이나 손가락들을 들어 올릴 것이 남아있다는 것이 가정되어 있다. 그런데, 넷(quatre)은 이미 빼기계산의 싹이 들어 있는, [다섯으로부터] 뒤로 후퇴의 결과이다. 셋(trois)은 길의 중간에 있다는 감정(le sentiment)을 번역한다. (17)
[4절] 수세기의 절차들 – Les procédés de numération[기수법] 18
§11. [수읽기(세기), 기수의 성립: 다섯(5)의 성립에서 찾는다.]
- [대상 없이 수나열(기수법)의 생성: 여기까지, 저자는 수의 단위 설정에 기원에 대해 묻지 않은 것 같다. 이런 의미에서 저자는 논리주의자에 가깝다. 수의 단위 설정에는 직관주의가 설득력을 갖을 것 같다.]
수 어휘의 확장을 위하여, 즉 수 5로부터 확장을 위하여, 절차들의 동일한 변양이 관찰들에서 제공되었다. 가장 단순한 수(數) 작업은 주니 족들에 의해서 적용되었던 수 작업이다. 이들은 - 6이란 토팔릭야(topalïk’ya)에서는, 말하자면 이미 세었던 것에 다른 것을 보탠다. - 7이란 퀼릭야(kwillïk’ya)에서는, 둘을 끌어와서 나머지와 더불어 들어올린다. - 8이란 하일릭야(hailïk’ya)에서는, 셋을 끌어와서 나머지와 함께 들어올린다. (18)
머독(John Murdoch, 1888-1963), 알레스카 최북단의 배로우 곶에 사는 에스키모인들에게서 비슷한 형식들을 찾아[끌어]냈다.
1 = ata’uzuk(아타우줔); 6= atautiymin akbinigin tudlimud, 말하자면 일단 가장 가까운 손가락(손이든 발이든)위에 한번 그리고 수 5. 그런데 이는 tudlimud (다섯 또는 한 손)을 암시할 수 있고 , 그리고 마찬가지로 또한 atautiymin(한번)을 암시한다.
2 = ma’dro(마드로) ; 7= madro’nin akbi’nigin (가장 가까운 손가락 위에 두 번)
3 = pi’nasum(피나숨) ; 8= pinas’unin akbi’nigin (가장 가까운 손가락 위에 세 번)
이 수적 지칭들(les dénominations)은 1과 6, 2와 7, 3과 8에서 대응한다. 이런 대응은 우리가 여러 번 길어 올렸던 수집들 속에서 코난트(Conant, 1857–1916)에 의해 기록되었던 수읽기(기수법)의 변칙들(les anomalies 편차들)을 바르게 가게 한다. 그는 영국 인종학자인 라탐(Latham, 1812-1888)의 논문들(1860)에서 층위들(les échelles)을 빌려온다. 이 층위들은 오세아니아 섬들로부터 기록된 것이며, 거기서는 1과 6, 2와 7, 3과 8, 4와 9, 5와 10은 같은 단어에 의해 지칭된다. (18)
발라드(Balad) 우에다(Uea)
1 = parai = 6 1 = tahi = 6
2 = paroo =7 2 = lua = 7
3 = pargen = 8 3 = tolu = 8
4 = parbai = 9 4 = fa = 9
5 = parnim 10 5 = lima 10 (19)
코난트가 보기에, 이런 층위들은 역설적이기도 하고 그럴듯하기까지 하다고 보았다. 그리고 사람들이 산술적 사유의 메카니즘을 언어적 표현에서 전부 소모하였다고 가정 할 때, 필연적으로 같은 사정일 것이다. 그러나 만일 그 표현이 메카니즘의 한 부분만을 구성한다고, 그리고 몸짓들은 단어들을 어느 정도로 둘러싸고 있을 수 있으며, 겉보기에 언어가 고려하지 않는 것 같은 차이들을 확립할 수 있다고 확신한다면, 사정은 동일하지 않을 것이다. (19)
더욱 놀라운 층위가 있는데, 셸루(Paul du Chaillu, 1831-1903)가 만났던, 가봉 분지에 사는 므부샤족에서 마주친 층위이다:
1 = Ivoco 6 = Ivoco beta (1,2)
2 = Beta 7 = Ivoco bebalo (1,3)
3 = Bebalo 8 = Ivoco bendaï (1,4)
4 = Bendaï 9 = Ivoco betano (1,5)
5 = Betano 10 = Dioum (19)
우리가 고려하건데 관찰의 정확성을 검증할 수 없다. 그러나 우리는 관찰자 자신이 쉽게 해석할 수 있었던, 그리고 관찰자 앞에서 사용되었던 언어를 조정[번역]할 수 있었던 범위 안에 있다. [수의] 층위를 정확한 것으로 간주하면서, 우리는 스스로 어려움을 재현하면서 그것의 특이성을 설명할 것이다. 이런 어려움은 5진법 체계의 정확한 용도가 해결되었다는 것을 가정 하에 있다. 단위들의 두 전형[견본]을 조합해야 한다. 하나는 손가락들의 이미지에 의해 제공되고, 다른 하나는 손의 이미지에 의해 제공된다. 이런 조합의 방법적 사용은. 몇몇 종족들이 분명하게 깨달을 수 없었을, 근본적 구별에 지지를 받는다. 이로부터 그 종족들의 종합적 시도에서는 불확실성, 즉 왼손잡이[서툰자]가 증거이다. 마치 셸루의 보고서가 증거하는 왼손잡이[서툰자]처럼, 그리고 그 왼손잡이[서툰자]는 우리의 기수법의 논리적 습관과 아주 근본적으로 부딪힌다. 둘째 손의 첫째손가락, 둘째손가락, 셋째손가락이라고 이렇게 말하는 대신에, 므부샤족은 이렇게 말한다. 한(une) 손 다음에, 둘째손가락, 셋째손가락, 넷째손가락이라고 한다. (20)
§12. [다섯의 성립으로 수읽기(수나열) 다음으로 수세기(기수법)이 생겨난다. - 기수법에는 빼기의 의미를 갖는다.]
다른 한편 5의 체계[5진법]는 자연적으로 이중으로 계산작업하는 응용에 알맞다. 우리는 이미 이런 계산작업의 원시적 특성을 인정하고 있었다. 둘(deux, 2)의 명칭은, [인도의 벵골지역의) 푸리 어(le Puri)와 (남아프리카의) 호트엔토트 어(le Hottentot)에서, 그리고 [북아메리카 인디언의] 다코타(Dakota)족의 방언과 알콘킨(Alkonkin)족의 방언에서, 손들 또는 팔들의 직관에서 빌려왔다. 이로부터 주목할만한 사실이 나온다: 손, 말하자면 수 5의 재현으로부터, 이 이행은 수10에 직접적으로 열려있다. 미국 인종학자 밴크로프트(Bancroft, 1832-1918)는 다음을 주목했다. 5 이상을 셀 수 없는 켈리포니아주 아래지역의 원주민들에게서도, 보다 지적인 개인들은 5의 두 배(deux fois cinq)의 기호화를 잘 이해할 줄 알고 있었다는 것이다. 이런 관찰은 어떻게 10(열)이 그보다 하부인 수들[9, 8, 7 등]을 앞서 진행할 수 있는지를, 그리고 앞선 수들의 명칭들이 참조하는 기준점들의 역할을 할 수 있는지를 잘 이해하게 해준다. (20)
주니스족들이 4를 지칭하기 위해 이미 이용했던 빼기의 절차(게다가 주니스족들이 마찬가지로 9를 – 그런데 9 = tenalik’ya(테날리키아), 즉 나머지와 함께 들어 올린 한 손가락을 제외한 모든 손가락 - 지칭하기 위해 사용했던 절차)는 열들 사회들에서 의미있는 빈도로 등장한다. 예를 들어 우리가 주니스족들에게 이미 접근할 기회를 가졌던 에스키모인들에게서, 10은 kod’lin 이라 한다(머독에 따르면, kut(쿠트) 또는 kule(쿨레)로부터 파생되어, 상위의 할당, 발들과 손들에 대립에 의해서). 그리고 9는 kodlinotai’la라고 기호화하며, 10을 갖지 않는 것이라 한다. 마찬가지로 15는 akimi’a(아키미아)이며, 14는 akimiaxotaityuna(아키미악소티우나)인데, 내가 15를 갖지 않고 있다는 뜻이다. (20)
코난트가 제시했던 보태기 예들에서 빼기의 절차로부터, 보다 완전한 목록이 아이누족((Les Ainu)에서 발견되는데, 그들은 6에서 10을 일종의 거꾸로 방식으로 센다.
1 = sine 6 = iwa (10-4)
2 = tu 7 = arawa (10-3)
3 = re 8 = tupe-san (10-2)
4 = ine 9 = sinepe-san (10-1)
5 = asikne 10 = wa
[5절] 인종지학적 탐구의 결과들 Résultats de l’investigation ethnographique 21
§13. [곱셈에 대한 명칭화가 이루어져야 대상화의 수를 넘어서 일반화의 개념으로 향할 수 있을 것 같다.]
[원주민의 삶의 터전의 크기와 인구, 그리고 생산의 수확량에 의해, 수의 계산이 발달할 것이다. 인간이 스스로 생산한 위대한 작품은 우선 수이고, 다음은 항목이며, 그 다음이 체계일 것이다. 체계를 지배의 도구로 삼는 제국의 수탈이 며칠 전 베네수엘라에서 일어났다. (59LKH)]
이리하여, 우리 분석의 영역을 이해하는 것이 우리의 목적에 유용하지 않더라도, 우리는 결론지울 수 있을 것이다. 여기서 사람들은, 교육에 의한, 또한 추상적 형식주의의 의미에서 교육을 위하여 완성된, 전승의 습관 덕분으로, 수작업[기수법]의 규칙적 방법을 기대할 것이다. 우리는 다양한 계산작업들의 앞에 있게 되는데, 이는 지적 활동성의 강렬하고 풍부함을 증명할 것이다. 여기서 원시인들은 발명가들이다. 수적 관념들의 순서로 나아가기 위하여, 그것들의 근본적 절차들의 순환을 넓히기 위하여, 그러나 예상계산(la supputation, 예측)의 확신을 가지고, 그들은 발명가들이 만드는 것을 만든다. 말하자면 그들은 마치 그들이 할 수 있다는 것처럼 행한다. 그들은, 획일성과 단순성의 우아함을 생겨나게 했던 스콜라철학의 미학적 걱정 없이도, 여러 다양한 수단들에 차례로 호소한다. (21)
우리는 협소한 한계들 안에서 이것들을 보아왔다. 그 한계들 안에서 우리는 우리의 진술을 통해 더하기(l‘addition), 배가하기(duplication)(곱하기), 빼기(soustraction)를 사용하여 왔다. 그러나 만일 사람들이 보다 넓은 체계들의, 예를 들어 20진법의, 형성을 연구했다면, 양분법(dimidiation, 반으로 나누기)에게 자리를 내주는 것이 좋을 것이다. 타일러(1832-1917)는 남부 아메리카의 토우카(Towkas) 인디언에게서, 그리고 서부 오스트레일리아의 몇몇 종족들에게서 이것을 표시했다. 우리는 그 체계를 니코바르 섬들(Les îles Nicobar)에서 재발견할 것인데, 뮐러(1834-1898)에 따라서 우리는 체계의 수적인 어휘를 재생해본다. 왜냐하면 계산 방법들에 대한 곱하기를, 가장 잘 밝혀줄, 여러 예들 중의 하나이며, 이 예는 수읽기 체계(기수법)의 제도화로 수렴되기 때문이다.
1 = hean 6 = tafuel (2x3)
2 = a 7 = isat
3 = lue 8 = onfoan (2x4)
4 = fuan 9 = hean-hata (10 - 1)
5 = tanein 10 = som
11 = som hean (10+1)
12 = som a (10+2)
20 = hean umdjome (un homme)
21 = hean umdjome hean (20+1)
30 = hean umdjome ruktei (ruktei = demi, 즉 20/2)
40 = a umdjome (2x20)
50 = a umdjome ruktei (2x20 + 20/2)
100 = tanein umdjome (5x20) (22)
§14. [논리적 담론과 논리적 사유 ]
기본적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산만한 이러한 절차들에 대한 고려는 근대적 분석에 관한 깊은 반성들을 불러일으키고 또한 갑작스레 다시 결합하게 한다. 사람들은 이런 근대적 분석을 갈르와(Évariste Galois, 1811-1832)의 쪽지[종이]들에서 재발견했다. “이 모든 인식들로부터 사람들은, 순수 분석학이 가장 비물질적이고 가장 놀라운 논리학이다. 이 학문은 감관들의 표출들에서 전혀 빌려오지 않는다. 이로부터 이 학문이 그것의 일체[집합]에서, 많은 사람들은, 가장 방법적이고 가장 좌표적인 논리학이라고 결론지었다. 그러나 그것은 오류이다…. 헛되이 분석가들은 이것을 감추고자 원했다. 그들은 연역하지 못하고, 그들은 조합하고, 비교한다. 그들이 진리에 도달했을 때, 그들은 측면과 다른 면에 부딪히면서, 거기에 걸려 넘어져버렸다…. 갈르와는 계속해서 말하기를, 이런 모든 것이 일반 세상인들을 매우 놀라게 할 것이다. 그들은 일반적으로 수학이라는 단어를 규제자(le régulier)와 동의어로 간주했다.” 이런 방법적 배열의 부재, 즉 규칙성의 부재는 수들에 관한 초기 계산 작업의 특징이다. 이에 의해서 원시적 심정성은, 레비-브륄의 탁원한 표현에 따르면, 마치 선논리(prélogique)처럼 나타난다.
레비브뢸은 선논리학(le prélogique)의 기호화작용을 강렬하게 강조했다. 이 선논리학은 반논리학(l’antilogique)도, 무논리학(l’alogique)도 아니다. 사실상 사람들이 선논리학으로부터 계산에 관한 것을 고려하기를 제한할 때, 사람들은 선논리학이 논리적 사유(la pensée logique)의 규칙들의 [서곡]전조라기보다, 오히려 논리적 담론(le discours logique)의 규칙들의 전조이다. 만일 논리적으로 사람들이 합리적인 것을 이해한다면, 마치 우리가 조금 전에 인용했던 구절에서 갈르와가 말한 것처럼, 선논리학은 논리학보다 전혀 앞서지 않을 것이다. 이런 이유로, 계산의 영역은 또한 개별적 실천의 영역이다. [한편] 이 영역에서 원시인은 우리의 지성과 비슷한 지성을 증거 했다. 그는 존재들과 사물들 사이에 연대성의 독특한 형식들에 실마리를 제공하지 못했다. 비록 그 형식들이 공간과 시간에서 매우 강렬하게 원인성과 대조를 이룬다고 하더라도 말이다. 반대로 관찰자를 놀라게 한 것은, 이 절차들이 도달한 정확성인데, 이 정확성은 우리의 이론들의 관점에서 보면 매우 초보적인 것으로 보이는데도 불구하고 말이다. 다른 한편 신비적 비슷함들[비슷한 것들]은 여기서 단지 부차적 역할만을 한다. 신비적 비슷함들은, 상대적으로 높은 전형이라 하는 문명들 속에서, 즉 사람들이 역사적 시대의 문턱에서 만난 문명들에 이미 닮은 문명들 속에서, 차후에 발전한다. 수나열은 문명들로 인도할 수 있다. 그런데 수나열은 문명들로부터 진행하지 않는다. 소위 말하는 열등한 문명들과 겉보기에 원시적 문명들은 숫적 표현들을 따로 분리시키는데 성공하지 못했기에, 그 문명들은 “신비적 효력들(vertus myatiques)”의 “응축물들(condensateurs)”인 전달수단[바퀴]들이 되어야 하는 단어들로부터 박탈당했다. (23)
이리하여 계산의 영역에 제한되어 있으면서, 우리는 선논리학을 그리스 기하학자들의 “비합리수(l’irrationnel)”의 이웃하는 의미(un sens)를 부여할 것이다. 비합리수라는 것은, 현존이 근거로서 모순적인 크기들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주어진 크기와 연관이 수적 척도들로서 제도화된 언어의 틀들로부터 나온 크기들을 지칭하는 것이다. “Kαλείσθω οὗν ἡ μέν προτεθεῖσα εὐθεῖα ῥητή, καὶ αἱ ταύτῃ σύμμετροι… ῥηταί, αἱ δὲ ταύτῃ ἀσύμμετροι ἄλογοι καλείσθωσαν.” [유클리드 기하학 원론의 10권, 정의 3: 직선들 중에서 유리수 직선(rational straight-line)과 통약할 수 있는 직선은 유리수(rational)라고 하며, 그와 통약할 수 없는 직선은 무리수(irrational)라고 한다.] (23)
§15. [수적 개념은 언어 항목(개념)이 아니다. 직관적 수(이미지)가 먼저이고 이에 맞는 항목(대상)의 이름은 나중이다. 즉 추리하는 인식(지성)이 발달해야 대상 언어가 성립할 것이다.]
이때부터, 수적 계산의 구성에서 특별하게 수학적인 무엇인가를 파악하기를 원하는 자를 위해서, 사람들은[우리는] 자연적 진행이 논리적 번역의 너울[보자기] 아래에 아직도 숨겨져 있지 않았던 이런 사유가 어떤 관심으로부터 나오는지를 이해한다. 토레스해협 지역의 원주민, 또는 보르네오 섬의 다약족(Les Dayaks de Borméo)은 그들 눈앞에 대상들의 집합들만이, 즉 그들의 신체의 부분들, 종이의 조각들, 동전의 조각들과 같은 질적인 이미지들만이 있다. 만일 이런 이미지들을 가지고, 그들이 계정[셈]을 확립하고, 계정의 정확성을 조절하기에 성공한다면, 그들은 이미지들의 집합들을 관계 맺게 하는 것이고, 그들은 이미지들 사이에 암묵적 등가들을 확립한 것이다. 한 원시인이 이야기하기를, 그는 손들 안에 손가락이 있는 것만큼이나 많은 물고기 잡았다고 한다. 수적 개념은 언어에는 결핍되어 있다. 그 개념은, 심리학에서는 효과적인 실재성인 것처럼, 그의 원초적 형식아래 사유 속에 있다. (23)
이리하여 기본적 계산의 출현에서부터, 그리고 계산의 나머지인 초기 수들의 형성에서부터, 지성은 상상하는 재현으로 환원할 수 없는 국면 하에서 나타난다. 이는 마치 활동성이 직접적 직관의 대상들인 항목들을 넘어서는 것과 같다. 그런데 활동성은 관계들을 연결하는 역할을 한다. 이 관계들의 놀이로부터 소위 말하는 계산이 이루어진다. 이런 관계들의 내포관련(l’implication) 덕분에, 초보적인 무언극은 그것을 해석할 줄 아는 자에게는 체계적이고 미미 진리가 될 수 있는 사유의 표출이 된다. (24)
우리가 원시적 심정성을 통하여 추적했던 이미지와 지성의 대비는, 상응하는 문화의 정도차를 주민들 자체에서 획득하지 않더라도, 문명의 언어를 사용하는 주민들에게서 덜 놀라운 것이 아니다. 여기에 스페인 남서부 바-과달끼비에 마을의 늪지대에 소풍가서 보고서를 쓴 바쟁(René Bazin, 1853-1932)의 특색있는 표현이 있다. “…한 노파가 문 앞에 앉아있었다…. 당신 몇 살입니까?라고 그녀에게 물었다. - 네(4) 두로와 네(4) 레알(Qudtre douros et quatre réaux)입니다. - 이것은 안달루시아의 반(半)야생인이 세는 방식이다. 스물 레알의 네 두로(Qudtre douros à vingt réaux) 각각의 합이 여든이고, 더하여 넷(quatre réaux)이다. 그래서 노파는 나이가 여든넷(84, qudtre-vingt-quatre)이라고 말하기를 원했다.” 자기 나이에 질문을 받은 노파는 상상작용에 도움을 받았다: 그녀는 자기 앞에 있는 화폐의 잔돈 더미를 보았다. 이런 직관은 [셈을] 설명하는데 그녀를 도와주었으나, 그녀는 직관을 반성하는 데 스스로를 면제해주지 못했다. 반대로 나이를 셈이 레알[잔돈]의 셈과 동일했다는 것을 깨닫기 위하여, 그리고 스페인 인민의 화폐제도를 자기의 목적에 맞게 사용하기 위하여, 그녀는 수와 화폐 이미지 사이의 관계를 분해했다. 그 표현이 왼손잡이[서툰자]와 순진한자를 당황하게 하면 할수록, 지성의 노력은 그 자체로 미묘하고 확신에 찬 것으로 나타난다. (24)
사실상 사람들이 이미지 없이 사유하지 않는 것은 확실하다. 오로지 아리스토텔레스의 공리의 명증함을 옹호하고자 힘쓰면서, 심리학자들은 그것[공리]의 정확함을 규정하는 것을 너무 자주 무시했다. 지성은 상상작용의 지지를 받고 있으나, 그러나 마치 상상작용이 지성의 구조 전체를 그려야만 하는 것처럼, 지성은 그것에 좁게 적용하지 않는다. 직관 속에 재현할 수 있는 대상들을 단일하게 고려하면서, 그리고 관계의 내부 활동성을 개입하게 하지 않고서, 지성의 메카니즘을 파악하기를 원한다면, 사람들은 거짓 길을 닦는데 자신을 내맡기는 꼴이 된다. (24)
이런 사실로부터, 우리가 이미 이 장(1장)에서 전념했던 문제의 역사[이야기] 자체로부터 끌어낸 한 일화가 증거한다. 우리는 “도덕성”이라는 제목으로, 이 항목에서 코난트는 뉴질랜드 총독인 지스본(William Gisborne, 1825-1898)이 제공 했던 정보들에 따라서 이 이야기를 보고했는데, 그것을 재생하려 한다. “여러해 전에 하나의 사실이 주의를 끌었고, 호기심을 불러일으켰다. 마오리족(Les Maoris)은 마치 수적 체계의 토대로서 수 11(열하나)을 사용한다. 그리고 이 체계는 121로서 그리고 1331로서, 다시 말하면 112[넓이]과 113[부피]로서 단순한 단어들을 허용하는 이 체계의 모든 넓이[부피]에서 전개되었다. 이 별난 것[명칭]에 대한 어떠한 이유도 찾지 못했다. 마오리족의 이 층위는, 마치 수의 체계들의 서수 규칙들의 바깥에 있는 아주 예외적인 것처럼, 오랫동안 주목을 받았다. 그러나 마오리족 언어의 깊고 미세한 인식과 풍습들의 인식이 오해를 풀게 해주었다. 이런 오류는 다음과 같은 습관으로부터 오는 것으로 나타났다. 즉 대상들의 어떤 수를 세면서 마오리족은, 옆으로 놓았던 단위들을 이어서 세기 위하여, 또한 더미의 10자리 수를 이어서 증명하기 위하여, 각 10자리수(une dizaine)를 재현하면서, [십단위] 수의 하나를 옆으로 놓기를 자주 실행하였다. 그 민족이 10자리수를 세는 것을 보았을 때, 그리고 동시에 그 단어 테카우아(tekaua)를 발언하면서 옆으로 놓는 단위를 세는 것을 보았을 때, 초기 관찰자들은 그 단어가 11을 의미하였다는 것을, 그리고 무지한 원주민은 이 단어를 토대로서 사용하였다는 것을 상상할 것이다. 이런 오류가 뉴질랜드의 입말들에 대한 사전의 초기 편집들에서 경로를 만들었다. 그러나 오류는 후기 편집본들에서 수정되었다.” (25)
(19:21, 59LKJ) (정, 16:04, 59LLF)
# 인명 및 용어 *
385 아리스토텔레스(Ἀριστοτέλης, 전385-322), 그리스 철학자. 논리학의 체계로부터 자연학을 정립하다. 개별학문들의 성립에 선구자이다.
350k 에우클레이데스(Euclide, Εὐκλείδης), 알렉산드리아 수학자. 원론(Στοιχεῖα): 기하학 원론의 저자(?) 알렉산드리아 도서관 관장(?)
O
180? 디오판토스(Diophante d'Alexandrie, Διόφαντος ὁ Ἀλεξανδρεύς, 2-3세기 활동)알렉산드리아 활동하는 그리스 수학자. Les Arithmétiques (Arithmetica): ἀριθμητική)(3세기경) δυναμοκυβον <- δυναμόω(동사): 강화하다, 다지다. + κύβος(κύβον) 정사각형
- κυβοκυβον; [사전에 없는데, 사각형의 사각형, 즉 2배 사각형인가? 플라톤의 메논편에서 꼬마 노예의 사각형의 예는 여기에 속하지 않을까?]
1717 돕리츠호퍼(Martin Dobrizhoffer ou Dobritzhoffer, 1717-1791), 보헤미아 출신 비엔나1) 1765 콜브뤀(Henry Thomas Colebrooke, 1765-1837) 영국 법관, 인도학자, 식물학자. Algebra with arithmetic and mensuration from the Sanskrit of Brahmegupta and Bhascara (1817).
1799 메이슨(Rev. Dr. Francis Mason, 1799-1874), 뉴욕태생, 자연학자, 세례파 소속(Unitarian Baptist Society), 프리메이슨, 버마 선교사, 랑군 정부고등학교 팔리어 교수. 팔리어 문법(Pali Grammar on the Basis of Kachchayano, with Chrestomathy and Vocabulary (1868), Karen Grammar of both Dialects, / Journal of the Asiatic Society of Bengal, année 1865. t. II, vol. XXXIV, Ca;utta, 1866, p. 245 (Conant, p. 112). [콜브룩(Colebrooke, 1765-1837)과 세례파 선교회로 연관이 있는 듯하다]
1803 브뤀(James Brooke, the first Rajah, 1803-1868) 식민지 인도 태생 영국에서 별세, 보르네오지역의 해적과 봉기 제압하는 행정담당.
- 식민지 통치 가계로서 브룩크 가문: the Raj of Sarawak from 1841 to 1946, Charles Brooke and Charles Vyner Brooke, // Charles Brooke, Rajah of Sarawak (1829–1917), head of state of Sarawak, Borneo, / Charles Vyner Brooke (1874–1963), third and last White Rajah of Sarawak.
- Ten years in Sarawak, [1866], I, 139 et suiv., apud Lévy-Bruhl, p. 214 et suiv. [사라왁(Sarawak), 사라왁주는 보르네오 북부에 있는 말레이시아에서 가장 큰 주이다. 보르네오섬의 서북해안 일대를 차지하며 인도네시아의 칼리만탄과 접한다.
1811 갈르와(Évariste Galois, 1811-1832)[스물하나], 프랑그 수학자. Jules Tannery et Évariste Galois, « Manuscrits et écrits inédits de Galois », Bulletin des sciences mathématiques, Paris, Gauthier-Villars, 2e série, vol. XXX, 1906, p. 226-248, 255-263.
1812 라탐(Robert Gordon Latham, 1812-1888), 영국 인종학자, 문헌학자. 함부르크, 코펜하게, 오슬로에서 문헌학을 공부했다. Latham, Opuscula, Essays, chieftl Philological and Etnographical, Londres et Leibzig, 1860, p. 247 (Conant, p. 67).
1813 무어하우스(Matthew Moorhouse, 1813- 1876), 의사, 오스트레일리아에서 영국 개척자, 보호관/총독(Protecteur des Aborigènes), 아델라이트 클럽 회원(1863), 남부 오스트레일리아의 입법의원.
1815 에이리(Edward John Eyre, 1815-1901), 영국인, 영국식민지 행정가. 오스트레일리아 탐험가. 뉴질랜드 부행정관(총독). Journals of Expeditions of Discovery into Central Australia, and overland from Adelaide to King George's Sound, in the years 1840-41,(2권) 1845. [부인의 이름은 Adelaide Fanny Ormond (1825–1905)인데, 해군 대령 프랜시스 오몬드(Francis Ormond)의 딸이라 한다. 아델레이드는 지명이다.]
1820 커(Edward Micklethwaite Curr, 1820–1889), 오스틀레일리아 목사, 작가, 변호사. The Australian Race: Its Origin, Languages, Customs, Place of Landing in Australia, and the Routes by Which It Spread Itself Over That Continent, 1886( Vol. 2. Melbourne: J. Ferres. pp. vi, 501. (full text).
1825 지스보른(William Gisborne, 1825-1898), 뉴질랜드 식민지의 사무총장과 내무부장관을 지냈다
1829 칸토어(Moritz Benedikt Cantor, 1829–1920), 만하임 출생 하이델베르크에서 별세, 독일에서 첫 수학사 교수. Vorlesungen über die Geschichte der Mathematik. 4 Bände. Leipzig: B. G. Teubner, 1880–1908: t. I, 3e édit, 1907, Leibzig (que nous désigneraons par Cantor I3), p. 11. (chap. 1, die Babylonier, p. 19 et suiv.) / 칸토어(Georg Cantor, 1845-1918), 셍페테스부르그 태생 할레에서 별세. 독일 수학자, 집합론 탄생에 큰 역할. “실수들(les nombres réels)은 자연수 전체보다 더 많다.” 기수와 서수를 정의하였다. /
1830 코드링턴(Robert Henry Codrington, 1830–1922), 영국 성공회 신부, 멜라네시아 사회 연구의 인류학자. The Melanesian Languages, 1885.
1831 샤일루(Paul du Chaillu, Paul Belloni Du Chaillu, 1831-1903), 프랑-아메리카 탐험가, 사냥꾼, 박물학자. 가봉 여행(Voyages au Gabon, 1855-1865), 스칸디나비아 여행(Voyage en Scandinavie, 1871-1878)
- Transations of Ethnological Society of London, vol. I, New series, 1861, p. 315 (Conant, p. 66-67) // Richard Burton(1821–1890), « Ethnological notes on M. Du Chaillu's Explorations and Adventures in Equatorial Africa », Transactions of the Ethnological Society of London, vol. 1, 1861. [Richard Burton(1821–1890) 영국 탐험가, 인도와 아프리카, 가봉에 대한 기록은 없는 것 같다.]
- 므부샤/음보샤(les Mbousha)족, 가봉 분지에 거주자. 학술적으로 다루지 않는 것 같으며, 아마도 샤일루(Paul Du Chaillu, 1831-1903)의 탐험기록에 나오는 모양이다.
1832 타일러(Edward Burnett Tylor, 1832-1917), 퀘이커 교도 집안 출신, 영국 인종학자. 옥스퍼드 대학 인종학과를 만들었다. 원시 문화(Primitive Culture, 1871, 2권)[tr.fr. Mme Pauline Brunet, (s.d.), La civilisation primitive, 1876, 1181 p.).
1832 밴크로프트(Hubert Howe Bancroft, 1832-1918), 미국 인종학자, 역사가. 미국골동품회(l'American Antiquarian Society) 회원. / 아메리카 인종들과 각 주의 역사를 쓰는 데 협력한 이들은 오크(Henry Lebbeus Oak, 1844-1905), 해커트(Arundel T. Harcourt, ?-1884), 골드슈미트(Albert Goldschmidt, ?-?), 피셔(Walter Mulrea Fisher, 1849-1919), 네모스(William Nemos, 1848-?) 등이다.
- Bancroft(1832-1918), The native races of the Pacific States of North America, New York, v. I, 1875, p. 564 (Conant, p. 29) [이 책은 5권이고, 연속적으로, 각 주들과 산업 등을 포함하여 총 39권을, 1890년까지 냈다.]
1834 뮐러(Friedrich Müller, 1834-1898), 오스트리아 언어학자, 인종학자. 비엔나 산스크리트 어 전공, Grundriss der Sprachwissenschaft. 1876–1888(4권). t. I, p. ii Vienne, 1877, p. 55(Conant, p. 147). / Müller, Grundriss der Sprachwissenschaft, vol . IV, Part. I, Vienne, 1888.
1838 쁘띠또(Émile Petitot, 1838-1917), 프랑스 선교사, 인종학자, 지리학자, 언어학자, 지도학자. 특히 카나다 아메리카인들 연구. Dictionnaire de la langue dènè-dindjié, 1874(dialectes montagnais ou chippewayan, peaux de lièvre et loucheux, renfermant en outre un grand nombre de termes propres à sept autres dialectes de la même langue ; précédé d'une monographie des Dènè-Dindjiè, d'une grammaire et de tableaux synoptiques des conjugaisons). 1875년에 낭시(Nancy)에서 제1회 아메리카인들의 국제회의를 개최했다.
- 1877년에 미국인들의 국제 회의 보고서(Compte rendu Congrès international des Américanistes de 1877. (Luxembourg) [= Compte-rendu de la seconde session, Luxembourg-1877. by: International congress of Americanists (2nd : 1877 : Luxemburg). Buck[출판사], Publication date: 1878.]
- Congrès international des Américanistes : compte-rendu de la première session, Nancy : Imp. ... Adam, p. 41-93 [아담은 낭시의 편집자?] [<John Couch Adams(1819-1892), 영국 수학자, 천문학자,]
1855 해던(Alfred Cort Haddon, 1855-1940), 캠브리지 대학에서 동물학과 인종학 교수 "The Ethnography of the Western Tribe of Torres Straits" in The Journal of the Anthropological Institute. 1890, 재수록 in The Journal of the Anthropological Institute of Great Britain and Ireland, XIX, année 1889, p. 304(Lévy-Bruhl, p. 210).
1855 슈타이넨(Karl von den Steinen, 1855-1929), 독일 의사, 문헌학자, 탐험가, 인종학자
- Die Bakaïrí-Sprache: Wörterverzeichnis, Sätze, Sagen, Grammatik; mit Beiträgen zu einer Lautlehre der karaïbischen Grundsprache, 1892, Unter den Naturvölkern Zentral-Brasiliens. Reiseschilderungen und Ergebnisse der zweiten Schingú-Expedition 1887-1888, 1894, Geographische Verlagsbuchhandlung von Dietrich Reimer, Berlin, 1894, p. 406 et suive.
1855 바쳴러(Le révérend John Batchelor, 1855–1944) 영국 선교사, 일본 혹가이도에 파견된 성공회 신부, The Ainu of Japan : the religion, superstitions, and general history of the hairy aborigines of Japan, Londres, Religious Tract Society, 1892, 348 p / 논문: Meoires of the Literature College, Imperial Uiniversity of Japan, n° 1, Tokyo, 1887.
1857 코난트(Levi L. Conant, 1857–1916), 미국 수학자, 삼각함수 전문가. 수 개념: 수의 기원과 발전(The Number Concept: Its Origin and Development, 1896).
1857 레비-브륄(Lucien Lévy-Bruhl, 1857-1939), 알사스 유대계 출신 프랑스 사회학자, 인종학자. - 인종학 개척자들: [뒤르껭 제자지만] 모스(Marcel Mauss, 1872-1950), 의사출신 리베(Paul Rivet, 1876-1958) - 도덕론과 풍습들의 과학(La morale et la science des mœurs, 1903),
1857 커슁(Frank Hamilton Cushing, 1857-1900) 미국 인류학자, 인종학자. 뉴멕시코의 준니 인디언(the Zuni Indians) 연구의 선구자. 「Manual concepts a study of the influence of hand usage on culture growth」(American Anthropologist, Oct., 1892, Vol. 5, No. 4 (Oct., 1892), pp. 289-318).
1861 헌트(Archibald Ernest Hunt, 1861-1943), 뉴기니아와 사모아 담당 런던 선교회 소속 회장. “Ethnographical Notes on the Murray Islands(Torres Straits)”, in The Journal of the Anthropological Institute of Great Britain and Ireland, vol, XXVIII, année 1899, p. 13.
1863 슈르쯔(Heinrich Schurtz, 1863-1903), 독일 인종학자, 독일 문화역사학자. / Schürtze, Urgeschichte der Kultur, Leipzig et Vienne, 1900 p. 603.
1866 트로프케(Johannes Tropfke, 1866-1939), 독일 수학자, 총 7권으로 구성된 수학사 저서, 기초수학 역사(Geschichte der Elementar-mathematik in systematischer Darstellung. 1902)
1872 스테판(Emil Stephan, 1872-1908), 독일 의사, 독일 해양 탐험의 지도자. “Beiträge zur Psychologie der Bewohner von Neupommern,” Globus 88 (1905): 205. 20.
1872 호트레이(Seymour Henry Coleridge Hawtrey, 1872-1938), 동아프리카 유럽인(영국인), 파라과이 커피농장주. / 아마도 성직자인 아버지의 작업들을 정리해서 아들이 파라과이에 관한 책을 낸 것이 아닌가 한다. 그런데 1901년이면 아버지가 생존했는데.. 아버지의 작품일 확률이 높다.
- Hawtrey, Lengua Indians of the Paraguayan Chaco, J.A.I. XXXI, année 1901, p. 296 (Levy-Bruhl, p. 219)
- 부친 호트레이(Rev. Henry Courtenay Hawtrey, 1820-1906)[52세]와 모친(Emily Sewell)[29세] 사이에 태어난 아들이다. [‘reverendus’: 성직자(아마도 성공회)]
1888 머독/무르독(John Murdock ou John Murdoch, 1888-1963), 카나다 퀘벡의 사업가[벌목상인], 정치가. [북(北)쉬꾸띠미(Chicoutimi-Nord), 카나다 퀘벡 북쪽에 있는 도시.] 북부 에스키모 언어에 관심을 가졌을까? 수를 세는 10까지 정도의 용어를 기록했을 것이다.
- les Esquimaux du Cap Barrow(the Pointe Barrow), 알레스카 최북단에 있는 곶(cap)이다. [cf. Eskimo prehistory in the vicinity of Point Barrow, Alaska. Anthropological papers of the AMNH ; v. 47, pt. 1dlek. 1959, James Alfred(1911-1968).>
-무르독(John Riggs Murdock, 1826–1913) 미국 몰몬교 개척자, 유타주 정치가. 비버에 있는 말일성도 교회(the Church of Jesus Christ of Latter-day Saints in Beaver)의 지도자. 에스키모와 연관은 없지만, 아마도 현 카나다와 미국의 접결지역 인디언들에 관심을 가졌을 것이다. 아래 문헌 참조:
- [John Murdoch,] Notes on Couting and Measuring anmong the Eskimo of the Pointe Barrow, American Anthropoloist, t. III, 1890, p 38 et suiv. cf. Tylor, tr. Vrunet I, 286. [전자의 무르독과 생몰 연대가 안맞고, 이 당시 동명이인들이 있는데 후자의 무르독이 거의 맞을듯한데, 에스키모까지 관심은 아닌 것 같은데... 알 수 없다.]
* 종족 ---
아비폰 족(Les Abipones / Les Abipons) 남아메리카 인디언 주민. 이들은 챠코 지방(la province de Chaco)과 리오 들라 프라타의 주변들(les bords du Rio de la Plata)에 산다. 남위 28도와 30도 사이이다.
아이누(Les Aïnous, アイヌ Ainu), 일본 호카이도와 러시아 극동에 사는 원주민, 또한 사할린 쿠릴열도에 거주한다. / 중국 극서부(Le Xinjiang, 新疆)에 사는 아이누 족과 아무 연관이 없다.
알콘킨(Alkonkin)어/ 알콘킨 족: 북아메리카, 주로 카나나의 중부와 동부 지역에 사는 원주민들의 언어들(Algonquian languages)의 총칭
바카이리(Bakaïri)란 보로로족의 한 인물일 것이다. / 보로로족(Les Bororos)은 브라질의 내륙 동부에 있는 소마토 그로소(Mato Grosso)주에 사는 토착민이다. 이곳에 바카이리(bakairi)라는 마을이 있다. 이 마을을 탐험한 독일 의사 슈타이넨(Karl von den Steinen, 1855-1929)이 전하는 바에 의하면, 아마도 로자 보로로(Rosa Bororo, s.d.)은 전사의 아들로서, 제수이트 선교사에 의하면, 1882년 셰례를 받은 인물로 알려졌다. 바카이리(Bakaïri)란 바카이라 마을의 인물을 지칭하는 것 같다.
보로로족(Les Bororos)은 브라질의 내륙 동부에 있는 소마토 그로소(Mato Grosso)주에 사는 토착민이다. 이곳에 바카이리(bakairi)라는 마을이 있다. 이 마을을 탐험한 독일 의사 슈타이넨(Karl von den Steinen, 1855-1929)이 전하는 바에 의하면, 아마도 로자 보로로(Rosa Bororo, s.d.)은 전사의 아들로서, 제수이트 선교사에 의하면, 1882년 셰례를 받은 인물로 알려졌다. 바카이리(Bakaïri)란 바카이라 마을의 인물을 지칭하는 것 같다.
부길라이(Bugilaï de la Nouvelle-Guinée anglaise): 오스트렐레일리아 북부에 있는 뉴기니아 섬의 부길라이의 종족. - / 타고타(Tagota) de la Nouvelle-Guinée anglaise: 구글에 등장하지 않는다.
다코타족(Dakotas), 아메리카 지명에서 온 시우족(Sioux)의 북아메리카 원주민, 이 주민의 언어 다코타(Dakota) une population amérindienne de Sioux à l'origine des toponymes précédents ;
다약족(Les Dayaks de Borméo: Les Dayak ou Daya), 보르네오 섬의 원주민들.[보르네오 섬의 북부 일부는 말레이시아, 중남부는 인도네시아 이다. 식민지 시대 네델란드 지배였다.]
딘카 민족(les Dinka) 남 수단의 농업과 목축하는 민족. 나일 남부의 바라 알 가잘(Bahr al-Ghazal (bassin du Nil) 지역, 종글라이(Le Jonglei), 코르도판의 남부, 북 나일 지역 등에 거주한다. 언어는 누에르딘카(Nuer-Dinka)를 쓰며, 종족은 누에르(Nuer)족이라 한다.
과라니 족(Les Guaranis du Paraguay, en esp. Guaranís), 토착인구, 브라질, 아르헨티나, 볼리비아, 우루과이와 파라과이의 토착민이 사는 인구지대. 약 30만명 정도의 과라니 입말(langue guarani)을 사용한다. 과라니 입말 종족인 셈이다.
호트엔토트(Hottentot) 남아프리카의 전원생활을 하는 원주민에 대한 명칭, 주로 독일인과 영국인 이름 부른 명칭.
인누 족 / 몽따네 족(Les Innus, aussi appelés Montagnais), 카나다 퀘벡에 있는 퀘벡-라브라도르(Labrador) 반도의 동쪽에 살았던 원주민 / 언어: 인누-에문(L’innu-aimun) - par Adam de la numération chez les Montagnais [이 아담이 누군지? 아잠 쇼트(Adam Shortt, 1859-1931)일까?]
카렌족(Karen)족, 본문에서 인도의 한 종족으로 되어 있다. / 그러나 위키에서는 카렌족(Karen – peuples), 티벳-버마에 사는 종족 Les Karens (eux se nomment: Pwa Ka Nyaw Po, et sont appelé Kariangs ou Yangs par les Thaïs); 이들은 4-5백만의 티벳-버마 종족 집단이다. 이 중의 10%는 타일랜드에 살고 10%정도가 버마에 산다. 버마에서 이 종족은 둘째 소수 인종이다. 첫째 소수 인종은 샨(les Shans)족이다. / 바가이/바기 (Bghai, Baghi)는 버마 카렌 족의 언어이다. .
케레푸누(le dialecte Kerepunu de Nouvelle-Guinée) 방언. // 1839 로우스(William George Lawes, 1839-1907) 영국 영국 알더마스톤 태생, 오스트레일리아 시드니애서 별세, View of village houses, Kerepunu, Papua New Guinea, ca. 1890. William George Lawes, 1890경. // 영국령 뉴기니아의 칼로(Kalo)에 사는 케레푸누족, 또는 케레푸누 언어. 로우스의 글에서는 케레푸누는 종족이름 또는 지역이름일 수 있다. // 케레푸누(Kerepunu, Kenepuru) 방언 - 파푸아 뉴기니아의 언어총칭인 케아파라의 일종. 케아파라(Keapara) 방언의 종류에는, Aroma, Babaka, Kamali, Kalo, Keapara (Kerepunu), Kapari, Lalaura, Maopa, Wanigela (Waiori) 등이 있다.
마오리족(Les Maoris), 쿡 섬들(les îles Cook)과 뉴질랜드(Nouvelle-Zélande)에 거주하는 원주민.
므부샤/음부샤(les Mbousha)족, 가봉 분지에 거주자. 학술적으로 다루지 않는 것 같으며, 아마도 셸루/샤일루(Paul Du Chaillu, 1831-1903)의 탐험기록에 나오는 모양이다.
푸리(Puri, Purî), 인도의 벵갈만 아래 지역에서 성스러운 지역을 의미한다. 그 지역의 언어(le Puri). // Purî, 인도 동부, 벵골만에 있는 지역 // Le puri, poori ou boori, 인도 벵골만 지역의 아침식사의 빵, 인도 지역(종족)마다 명칭을 달리 한다(télougou; hindi; népalais; bengali; ourdou; tamoul; malayalam; kannada; oriya).
타고타(Tagota) 뉴기니아la Nouvelle-Guinée anglaise)에 속한다: 구글에 등장하지 않는다.
주니 족(Les Zuñis) 주니 인디언, 뉴멕시코 주와 아리조나 주에 예전에 살았던 푸에블로 부족(des tribus pueblos)들 중의 하나. (cf. Sur les Indiens zuñi : traduit de l'article d'Adam Kittelson, site du e-musée du Minnesota, (page consultée le 19 janvier 2006))
* 지명 ---
아들레이드(City of Adelaide), 남부 오스트텔레일리아의 도시. 1842년에 남부오스트레일리아. 조약(the South Australia Act 1842)에 의해 성립되었다.
누벨 뽀메라니(Nouvelle-Poméranie) 누벨 브르타뉴(La Nouvelle-Bretagne) 또는 독일에서는 노이폼에른(Neupommern), 파푸아 뉴기니아 동쪽에 있는 섬 중의 하나인데, 독일 식민지였으나, 아마도 영국으로 넘어갔을 것이다. 통상 영어 명칭(New Britain)으로 사용한다.
니코바르 섬들(Les îles Nicobar) 인도양의 북동쪽에 있는 섬들, 실론과 말레이시아 사이에 있는 섬인데 말레이시아와 훨씬더 가깝다. 인도네시아 수마트라섬 북쪽에 있다.
요크 공작의 섬(île du duc d’York, en Duke of York Island), 오스트레일리아 북부에 위치한 파푸아 뉴기니아(Papouasie-Nouvelle-Guinée)의 동쪽에 비스마르크 제도들 중에서 동쪽 끝에 위치한 섬. (59LKJ)
(21:38, 59LLF)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