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택하사 자녀 삼아 주신 성부의 복" (엡 1:4-6)
성부 하나님의 복을 한마디로 요약한다면, “선택하사 자녀 삼아 주신 복”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에베소서 1장 4–5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구원은 인간의 행동이나 노력에서 출발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찾아간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먼저 구원의 계획을 가지시고 우리를 찾아오셨습니다.
그래서 구원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이며, 하나님의 주권적인 선택에서 시작된 영광스러운 역사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선택은 누구에게 해당될까요?
성경은 하나님의 선택의 범위가 특정한 사람들만이 아님을 분명히 말합니다.
마태복음 5장 45절에서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이 그 해를 악인과 선인에게 비추시며
비를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에게 내려 주심이라”
하나님의 사랑과 선택은 세상 모든 사람을 향해 열려 있습니다.
어려운 사람이나 부유한 사람이나, 선한 사람이나 악한 사람이나, 모두 하나님의 관심과 사랑의 대상입니다.
그러나 중요한 사실이 하나 있습니다.
모든 사람이 선택의 대상이지만, 모든 사람이 자녀의 복을 누리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의 선택 앞에 믿음으로 응답하며 나아갈 때, 비로소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복을 누리게 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제나 먼저인 것은 인간의 결단이 아니라, 하나님의 선택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 (요 15:16)
구원의 주권은 전적으로 하나님께 있습니다.
인간은 그 은혜 앞에 응답할 뿐입니다.
이 사실을 깨달을 때, 우리는 오직 은혜를 찬미할 수밖에 없습니다.
에베소서 1장 6절은 그 목적을 이렇게 말합니다.
“그의 사랑하시는 아들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려는 것이라”
하나님께서 우리를 은혜로 대하신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 목적은 분명합니다.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여기서 ‘거룩하다’는 말은 헬라어 *하기오스(hagios)*로,
‘구별하다’, ‘다르다’라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그리스도인들이 세상과 구별된 존재로 살아가기를 원하십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이 핍박과 조롱을 받았던 이유도 그들의 삶이 세상과 달랐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의 그리스도인들은 어떠합니까?
많은 경우, 세상으로부터 핍박받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신앙이 강해서가 아니라, 삶의 모습이 세상과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스스로에게 질문해야 합니다.
나는 과연 하나님의 택하심을 받은 자로서 거룩하고 구별된 삶을 살고 있는가,
아니면 세상의 흐름에 휩쓸려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을 잃어버린 채 살아가고 있는가.
구원에는 두 가지 측면이 있습니다.
죄와 사망에서 건짐 받은 것은 구원의 소극적인 측면입니다.
그러나 더 중요한 적극적인 측면은, 구원받은 이후 어떻게 살아가느냐입니다.
감옥에 있던 죄수가 형기를 마치고 출소했습니다.
그는 감옥에서 나왔다는 사실만으로 모든 것이 끝난 것이 아닙니다.
이제부터가 더 중요합니다.
그가 어떤 삶을 살아가느냐에 따라 진정한 자유인의 삶인지가 결정됩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 우리를 선택하사 자녀 삼아 주신 복은
단지 죄에서 벗어나는 데서 멈추지 않습니다.
그 목적은 예수 그리스도를 닮은 존재,
곧 거룩하고 흠 없는 성숙한 그리스도인이 되게 하시는 데 있습니다.
결국 하나님의 선택의 목적은 분명합니다.
우리를 자녀 삼으셔서,
예수 그리스도의 형상을 닮아 가는 삶으로 이끄시는 것,
이것이 ‘선택하사 자녀 삼아 주신 성부의 복’의 궁극적인 목적입니다.
첫댓글 선택하여 자녀삼아주신 아버지 하나님 고맙고 감사로 영광올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