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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10개 국가의 대표적 선교운동
사도 바울의 평생에 걸친 선교운동은 그가 생존해 있을 동안 로마전역으로 확산되게 되었으며, 사통팔달로 연결되었던 교통의 중심지 로마를 중심으로 전세계를 향한 복음의 열정은 많은 순교자들의 피흘림속에서도 끊임없이 진행되어 갔습니다
이름조차 알 수없는 지구촌의 한 모퉁이, 나라도 없이 떠도는 이스라엘의 작은 마을 나사렛에서 태어난 예수 그리스도, 사람으로 태어나는 첫장면에서 조차 마굿간이라는 험난한 여정을 시작하여, 제자들과 사람으로 부터 버림을 받아 억울한 죽음을 당하였던 예수 그리스도, 그러나 그 어떤 누구에게도 책임을 전가하거나 억울함을 호소하지 않음으로서 마지막 한 순간까지 이 땅, 자기 백성만을 생각한 예수 그리스도, 그렇게 이름도 없이 사라지는 듯 하였던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로 말미암아 흔적조차 없어질 것 같은 기독교의 불씨는 되살아나고 흩어졌던 그의 제자들도 모여들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리고 천년이 두번 지나간 지금, 전 세계 곳곳에서는 십자가의 등불이 켜져 있고 적어도 15억 이상의 기독교인들이 주일을 기다리며 예수님을 찾고 있습니다
1) 로마(Roma)
로마(이탈리아어: Roma)는 이탈리아의 수도이며 라치오주의 주도로 테베레강 연안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서양문명을 대표하는 로마제국의 수도로서, 현재에는 로마가톨릭의 중심지로서, 로마 가톨릭의 정치적 중심지 교황청이 있는 바티칸시국을 중앙에 놓고 있습니다 세계 문명사회에서는 로마를 ‘세계의 머리(Caput mundi)’, ‘영원한 도시(la Città Eterna)’라고 칭하기도 하며, 270만명이 거주하는 유럽 최대의 관광도시입니다
로마는 예수 그리스도의 수제자 베드로와 사도 바울이 순교한 지역으로, 가장 교회가 부흥한 지역입니다 박해를 받을때에도 카타콤에서 복음의 생명을 유지하면서 성장을 가속화 하던 로마 교회는 코넬리어스(Cornelius) 감독때에는 기독교인들이 수십만명을 상회하였고, 46명의 감독과 100명이 넘는 교역자들이 선교활동을 사역하고 있었습니다
로마시 외곽에 위치한 이탈리아 지역의 선교상황에 대해서는 알려지지 않고 있지만 3세기 중엽까지 약 100명이 넘는 감독들이 있었던 것으로 보아 그 교세를 짐작할 만한 것이었습니다 노바타안 분열 문제로 로마 감독회의가 개최될때 이탈리아에서 60여명이 참석한 사실에서 그 성장의 면모를 엿볼수 있는 것입니다
로마는 현재에도 가톨릭의 도시이며 가톨릭을 상징으로 도시는 번성하고 있으나, 종교적인 색채보다는 관광상품의 색채가 강할 정도로 역사를 매개로 한 관광소비로 전락하였습니다 물론 바티칸시국을 중심으로 한 가톨릭의 영향력은 지금도 여전히 절대적인 것이라고 볼 수 있으나, 그와 반대로 순교의 제물이 되었던 기독교회는 축소되어 있습니다
2) 프랑스(French Republic)
2세기 중엽, 리용(Lyon)과 뷘(Vien) 지역에서 교회가 크게 성장하였으며, 2세기 후반경에는 이레나우스(Irenaeus)의 활동으로 많은 사람들이 개종하여 선교의 큰 효과를 보았습니다 3세기 중엽에는 파리의 최초 감독이었던 디오니시어스(Dinoysius)를 포함한 7명의 선교사가 로마로 부터 파송된 사실에서 그 성장의 방향을 가름할 수 있는 것입니다
대부분의 프랑스인은 로마 가톨릭을 신앙하며, 16세기 종교개혁에 의하여 기독교신자들도 일부 남아있습니다 교회역사 학자들은 이 사람들을 "위그노" 라고 칭하며 앙리4세의 낭트칙령으로 종교의 자유를 인정받았습니다 그러나 루이 14세에 의하여 낭트칙령은 폐지되었고, 프랑스 개혁교회라는 호칭을 갖게 되었는데, 이들은 20세기 초까지 박해를 받아야 했습니다 그외에 일부는 이슬람교 신자도 있었으나 이들은 과거 식민지국가였던 북아프리카 거주민들이 대부분이었습니다
3) 스페인(Kingdom of Spain)
사도 바울이 최초로 선교한 지역으로 알려져 있으며(로마서15:23), 이레니우스와 터툴리안도 그들이 활동할 때에 이미 교회가 있었슴을 시사하고 있습니다 키프리안도 3세기 중엽에 이 지역교회에 서신을 보낸 적이 있었습니다 엘비라 대회(Elbira Syond)때 19명의 감독과 24명의 장로가 참석한 것으로 보아 교회의 발전이 상당해 있슴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스페인은 유럽에서 가장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으며, 한때 멕시코를 비롯하여 아르헨티나, 코스타리카 등 중남미 국가와 필리핀, 아프리카 적도 기니 등 세계각지에 식민지 국가를 세운 강대국이었습니다 스페인(영어명칭)은 헌법상 국명을 에스파냐(España)로 쓰며, 외교상 정식 국명은 에스파냐 왕국(스페인어: Reino de España 레이노 데 에스파냐)입니다 스페인은 로마와 게르만족, 그리고 이슬람과 기독교로 부터 계속되는 지배를 받아오다가 1500년대에 들어서 콜롬버스가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하면서 강대국이 되었습니다
스페인은 전 인구의 76%가 예로부터 로마 가톨릭 교회 국가를 정체성으로 삼고 있습니다 스페인에서의 기독교는 이슬람교에 이어 9만명에 이를정도로 미미한 편이며, 이들의 대부분은 로마인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의외로 여호와 증인의 신자가 10만명을 상회할 만큼 다종교주의자들이 많은 국가입니다
4) 카르타고(Carthago)
카르타고(라틴어: Carthago, 페니키아어: Kart-Hadasht)는 현재 튀니지 일대에 위치한 페니키아인 계열의 고대도시로, 페니키아어(語)로는 콰르트하다쉬트(새로운 도시)이며, 그리스인은 칼케돈이라 칭하였습니다 지중해를 두고 로마와 패권을 벌이다 주전 146년 제 3차 포에니 전쟁(149~146)에서 패배하여 로마 공화정의 아프리카 속주가 되었습니다 이후 완전히 파괴된 도시를 아우구스투스가 재건하여 북아프리카 상공업의 중심지가 되었으며, 5세기 경에는 게르만계열의 반달족의 침략으로 폐허가 된 후, 698년 아랍인들에 의해 완전히 파괴되어 역사에서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카르타고인들에게는 인신공희(人身供犧)라는 잔혹한 종교적 풍습이 있어서, 신전의 광장에는 여신(女神) 타니트와, 남신(男神) 바아르아몽에게 산 희생물로서 바쳐진 것으로 추측되는 어린이들의 유해가 매장되어 있었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카르타고는 초기, 수사학(修辭學) ·법률학 등 학문연구의 중심지가 되었으며, 3세기에는 기독교 신앙의 중심지로서 주교도시(主敎都市)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439년에 반달인(人)에게 점령당하고, 698년에는 아라비아인에게 파괴되어 역사속으로 사라져버린 도시가 되었습니다 현재는 고대 카르타고인의 묘지와 카르타고 항구의 유적 및 원형극장과 공중욕탕 등 로마 식민지 시대의 유적이 그 시대를 대변하며 세계유산목록에 등재되어 있습니다
세계적인 신학자 키프리안(Cyprian)과 터툴리안(Tertullian)을 배출한 카르타고는 서북 아프리카의 대표적인 도시로 기독교회들이 2세기 이후로 점차 흥왕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이 지역은 이탈리아 이주민들에 의해 정착되어 라틴 문화권에 속하게 되었으므로 라틴어로 된 고문서들이 많이 출간되었습니다
이탈리아 이주민을 중심으로 지역 원주민들에게도 복음화율이 높았으며, 220년 카르타고 대회 때 70명의 감독이 참석하였고, 256년 대회때에는 87명의 감독들이 참석하여 북아프리카의 당시 교세를 짐작할 만한 큰 성장의 일면을 보여 주었습니다
튀니지(아랍어: الجمهورية التونسية 엘 조움호리야 에트 토우니시야)는 현재 알제리와 리비아를 국경으로 하고 있는 아프리카에 위치한 이슬람교 국가입니다 이슬람교의 등장이전에는 키프리안, 터툴리안 교부들이 활동할 정도로 기독교운동이 활발하였으나, 현재의 국교는 이슬람교로 수니파가 장악하고 있습니다 현재 튀니지에서는 선교활동이 제한되어 있어서, 기독교 문서를 판매하거나 배포할 수 없으며, 튀니지교회 신자들은 모두 외국인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이들의 선교활동 또한 엄격하게 제한되어 있어서 모든 선교활동은 중단된 상태입니다
5) 소아시아(Asia Minor)
아나톨리아(Anatolia, 터키어: Anadolu, 그리스어: Aνατολή,)는 서아시아의 한 지역으로 현재의 터키 공화국내 고원지대를 말하는 것입니다 아나톨리아는 이전에는 소아시아(Asia Minor, 그리스어: Μικρά Ασία)라고 칭하던 곳이었습니다 이 지방의 북쪽으로는 흑해, 북동쪽으로는 캅카스, 남동쪽으로는 이란고원, 남쪽으로는 지중해, 서쪽으로는 에게해가 있는 문명의 발상지였습니다 아카드, 앗시리아, 히타이트, 아르메니아, 로마, 셀주크 투르크, 오스만제국 등이 아나톨리아를 지배하였던 중요한 국가들이었습니다 그것은 아시아 대륙과 유럽 대륙을 연결하는 입지조건을 갖추고 있어, 수많은 충돌과 문화적 교차로가 되는 지역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비두니아(Bythnia)지방엔 2세기 경, 교세가 크게 확장되었고, 브루기아(Phrygia)에서는 몬타너스 운동의 요람이 되었습니다 다메섹과 안디옥 지역은 바울 당시에도 많은 기독교인들이 있었으며, 그 성장은 계속 이루어져 갔습니다 본도(Pontos)의 루키안(Lucian)은 기독교인들이 너무 많다고 불평할 정도로 성장이 크게 확장되어 졌습니다 이러한 현상은 소아시아 전역에 걸쳐 높은 복음화율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터키는 공식 국가종교가 없는 세속국가로 양심과 종교의 자유를 인정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세계 무슬림 인구에 관한 2009년 자료에 따르면, 터키에서 7,360만 명의 주민, 즉 전체 인구의 98%가 무슬림이라고 할 만큼 무슬림의 영향력은 절대적인 것입니다 이들 무슬림 대다수는 수니파(85~90%)이며, 그외 주요 종파로 알레비파(10~15%), 시아파의 분파가 700~1,100만 명 정도로 영향력은 아주 강한 것입니다
최상위 이슬람 종교 기관은 종무원(터키어: Diyanet İşleri Başkanlığı)으로, 하나피 법학파의 이론을 해석하고, 터키에 등록된 모스크 75,000여 곳 활동을 관할하며, 지역과 주의 이맘을 고용하는 일을 맡고 있습니다 그외에 다른 종교를 믿는 소수 민족은 100,000 명 이하로,주로 기독교인이며 이들 대부분은 아르메니아 사도교회나 그리스정교(64,000명), 유대교(26,000명)에 불과하며, 이들은 무슬림으로 부터 온갖 협박과 박해를 받고 있으나 정부로 부터 보호받지 못하는 실정에 처하여 있습니다
6) 인도(Republic of India)
인도 공화국(印度共和國, 힌디어: भारत गणराज्य 바라트 가나라자, 영어: Republic of India)은 인도반도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국가로 면적은 세계에서 일곱번째로 넓으며, 인구는 중국에 이어 두번째로 많은 국가입니다 북쪽으로는 중국, 네팔, 부탄, 파키스탄이 있으며, 동쪽으로는 미얀마, 방글라데시, 벵골만이 있고, 서쪽으로는 아라비아해와, 남으로는 인도양과 스리랑카가 있습니다 인도는 불교, 힌두교의 발상지이고, 각 지역마다 다양한 언어와 문화를 사용하는 다문화 국가입니다
인도에 복음을 소개한 것은 예수님의 12제자 중 한사람인 도마(Thomas)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현재에도 인도 남부지방에는 도마교회(St. Thomas Church)가 있으며, 이 교회의 판테누스(Pantaenus)가 아라비아를 거쳐 인도까지 가서 선교했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코스마 인디코푸르트는 6세기에 인도교회가 건제하고 있음을 증언하고 있고 오늘날 인도에는 성 도마교단이 있으며, 미약하지만 복음화의 열정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인도의 종교는 힌두교로서 인구의 절대다수가 신봉하는 종교입니다 주전 2500년경 인더스 문명으로 시작한 인도는 아리아인들의 침략으로 베다신앙에서 파생한 힌두교를 국가적인 종교로 이어온 것입니다 불교와 자이나교는 주전 6세기경에 편입되어 들어온 것이며, 주후 10세기에서 16세기 까지 무려 600년 동안 이슬람교의 영향력 아래에 있었습니다 지금도 인도에서는 힌두교에 이어 이슬람교인이 가장 많으며, 불교의 메카인 인도로서의 불교는 소승불교세력이 일부 있을뿐 큰 영향력은 갖고 있지 않고 있습니다 펀자브주에는 시크교를 신앙하는 사람들이 집중되어 있는 기이한 현상도 있습니다
인도에서 기독교의 흔적을 찾기란 쉽지 않은 일이었습니다 1947년 조합교회, 장로교, 개혁교회의 연합체인 성공회 교회, 남인도교회(The Church of South India (United)를 중심으로 침례교회, 루터교회, 구세군, 로마가톨릭, 시리아정교회 등이 극소수 있을 뿐입니다
7) 아르메니아(Հայաստանի Հանրապետություն)
아르메니아(Հայաստան / Հայք)는 카프카스 지방에 위치한 내륙의 국가로서, 공식 명칭은 아르메니아 공화국(Հայաստանի Հանրապետություն 하야스타니 한라페투티윤)이며, 그루지야, 아제르바이잔, 터키, 이란과 국경을 이루고 있는 인구 300만명의 작은 국가입니다 오스만제국, 말기(1915~1923)에 오스만 제국령 동부 아나톨리아지역에서 터키가 아르메니아인을 강제 이주시키는 과정에서 아르메니아인 150만 명이 살해되는 대학살이 일어났습니다 그후 1920년대 소련의 연방국가로 편입되었다가 1991년 소련의 해체로 독립되었습니다 그러나 소련의 연방국가 시절에도 스탈린에 의해 대숙청이 이루어졌으며 약소국으로서의 고통은 끊임없이 계속되었습니다
아르메니아 귀족사회 출신으로 카파도기아의 가이사랴에 망명생활을 하였던 그레고리(Gregory) 선교사에 의해 최초로 복음이 전파되었습니다 많은 박해 가운데서도 티리다테스(Tiridates)왕을 신앙으로 인도하였으며, 그 결과 모든 부족이 왕을 따라 기독교로 개종하고 그레고리는 감독으로 추대되었습니다
현재, 아르메니아인 대다수는 아르메니아 정교회를 신앙하고 있습니다 또한 이슬람교 국가의 침략을 받아 국가의 존폐가 위기의 상황속에서도 종교적 일치속에서 정교회 문화를 지키는 높은 신앙심을 나타냈습니다
8) 아일랜드(Ireland)
아일랜드(Ireland, 아일랜드어:Éire)는 유럽의 북서쪽, 영국의 좌측에 위치한 공화국으로서, 대서양과 인접하고 있습니다 아일랜드는 프랑스 갈루아족이 주전 5세기경, 아일랜드섬으로 건너와 토종 민족인 게일족과 함께 터전을 잡았습니다 .2
그 후로 붉은 머리 켈트족이 이주해 왔으며, 5세기에 패트릭에 의해 가톨릭이 전파되었습니다
패트릭(Patrick)선교사에 의해 영국보다 먼저 복음화 되었는데 그것은 패트릭이 유소년시절 아일랜드 해적에 붙잡혀 6년간 목장에서 노예처럼 일하게 되었고 그 과정속에서도 꿈을 버리지 않고 아일랜드의 복음화를 위해 기도한 결과였습니다 그가 석방된 뒤에도 아일랜드를 위하여 파리로 유학하여 감독이 되었으며 다시 아일랜드 선교사로 파송되어 아일랜드를 위해 헌신하였습니다
그는 신학교와 수도원을 세워 학문을 일으키고 전도의 불길을 확산시켜 나갔습니다 그 열매로 나타난 콜롬바(Columba)는 스코틀랜드의 선교사로 파송되었습니다 이오나섬을 스코틀랜드 복음화의 전초기지로 삼고 열심히 선교에 주력한 결과로 기적적인 복음의 성과를 이룩하였습니다
북아일랜드의 역사는 가톨릭과 기독교의 종교적 갈등의 역사이기도 하였습니다 북아일랜드 종교갈등은 17세기에 올리버 크롬웰의 침공으로 식민지가 된 아일랜드에 18세기 스코틀랜드 장로교인들이 이주하면서 시작되었습니다 현재 북아일랜드의 얼스터에 이주한 장로교인들은 가톨릭교도들을 몰아내고, 인구의 대부분을 차지했으며, 이들의 후손들은 지금도 정치, 사회, 문화의 모든 영역에서 기득권을 갖고 있습니다
따라서 아일랜드 사람들은 수백년동안 영국에서 넘어온 기독교인들에게 차별과 억압을 받았고, 이것은 부활절봉기(1916년), 아릴랜드 공화국군 결성 등의 무장투쟁으로 폭발하였습니다 아일랜드 사람들이 가톨릭을 신앙함으로서 아일랜드 민족의 정체성을 확립하고자 한 것도 영국 기독교인들의 아일랜드에 대한 지배에서 기인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기득권층인 지주계급들은 가톨릭에서 장로교로 개종함으로서 그들 스스로의 재산과 기득권을 지키려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현재의 아일랜드는 섬의 4/5를 차지하고 있는 아일랜드 공화국에서 가톨릭을 국교로 신앙하고 있으며, 영국령의 북아일랜드는 기독교가 장악하는 양대 축을 이루고 있습니다
9) 게르만족(독일, Germanen)
게르만 족(독일어:Germanen)은 고대 유럽의 게르만계 민족들을 통칭하는 말이었습니다 게르만인들은 문자보다 상호 의사소통이 가능한 방언들을 사용했으며, 공통된 신화와 스토리들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켈트족에 비해 철기보급이 더디고 무기의 시대적 차이뿐만 아니라 전반적으로 발전이 더디어 켈트족의 로마화 이후에도 한동안은 계속 그 상태로 존재하였습니다 그러나 로마와 인접한 프랑크족과 게르만족은 로마의 보호와 용병, 교역 등으로 많은 부와 권력을 쌓고 일부 로마화가 되어, 게르만족의 대이동 이후 가장 성장하게 되는 주역들이었습니다
게르만족은 현재의 독일 북부지방과 덴마크, 그리고 발트해 연안에 위치한 작은 민족이었지만 역사의 수레바퀴속에서 끝까지 살아남은 민족중의 하나가 되었습니다
264년, 카바도기아의 전쟁포로들을 통하여 서 고트족에 복음이 전파된 것으로 추정하며 게르만 민족의 복음화에 가장 큰 공헌을 이룩한 사람은 울필라스(Ulfilas)였습니다 그가 콘스탄티노플에 있을 동안 아리우스파의 기독교에 개종한 뒤 33년에 걸쳐 선교사업에 헌신하였습니다 문자가 없었던 게르만 민족에게 헬라문자를 기초로 하여 문자를 만들고 성경을 번역하였습니다 30세에 이르러 콘스탄티노플의 감독 유세비우스에 의하여 고딕(Gothic) 크리스챤의 감독으로 안수를 받았으며 다뉴브강 북쪽에서 남쪽에 이르기까지 선교활동을 하였습니다
독일 연방 공화국(독일: Bundesrepublik Deutschland)은 10세기 부터 1806년까지 신성 로마제국의 중심부를 이루고 있었습니다 16세기에 북독일은 루터교회가 로마 가톨릭으로부터 분리된 종교개혁(Reformation)의 핵심부로 성장하였습니다 1871년 프랑스와 프로이센 전쟁에서 승리하여 독일은 최초로 통일을 이루어 근대적인 국민국가가 되었습니다 유태인 최악의 학살자이며 세계점령의 야욕을 부리던 히틀러가 일으킨 무모한 전쟁 제2차 세계대전이 종전되고, 1949년에 독일은 연합군 점령지 경계선을 따라 동서독으로 분단되었으나, 1990년에 통일을 이루었습니다
독일의 종교는 프랑크 왕국시대에 가톨릭이 전파되어 신성 로마제국(962~1806) 초기까지 크게 융성하였습니다 1517년 가톨릭의 사제였던 루터의 종교개혁 이후로 가톨릭에서 개신교가 분리되고 그 후 30년간의 종교전쟁의 역사가 계속되었고, 이 일로 인하여 독일의 인구는 2/3로 줄었으며, 국가는 황폐하여 졌습니다 그 후1648년의 베스트팔렌 조약이 체결되면서 독일의 종교 전쟁은 종식되었으나, 신성 로마제국은 사실상 수많은 독립 공국으로 갈라졌고, 1806년 나폴레옹전쟁으로 신성 로마제국은 막을 내리게 되었습니다
현재, 독일 국민의 60%가량이 로마 가톨릭과 루터교(기독교)를 각각 절반씩 차지하며 신앙하고 있으며, 일부는 이슬람교, 유대교를 믿고 있습니다 로마 가톨릭은 바이레른을 중심으로 남부 독일에 많고, 기독교는 북부 독일에 공동체를 형성하며 생활하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영국과 동유럽계 이민에 의해 성공회와 정교회가 들어오면서 독일 기독교의 교파는 더욱 다양한 성격을 가지고 있습니다
10) 영국(United Kingdom of Great Britain and Northern Ireland)
영국의 정식명칭은 "그레이트 브리튼 북아일랜드 연합 왕국"(United Kingdom of Great Britain and Northern Ireland)으로 북대서양과 북해사이에 위치하며 그레이트 브리튼 섬과 아일랜드섬의 일부인 북아일랜드와 그리고 해외영토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영국은 19세기 세계 최강의 국가로서 전 세계 1/4이 영국의 영토였으며 "해가 지지않는 나라" 라는 별칭이 있을 정도였습니다
영국은 대서양 연안 구석기인들인 이베리아인들이 정착한 이래로, 켈트족이 선진 기술을 갖고 대륙에서 건너와 선주민과의 혼혈이 이루어졌고 브리튼 섬의 켈트화가 진행되었습니다 로마제국의 브리튼 정복 이후 소수의 로마인들이 건너와 문명을 전달하고 영국을 발전시켰습니다
주후 314년 8월 1일, 콘스탄틴 황제는 북아프리카에서의 정통 보편교회를 대표한다고 주장하였던 도나투스주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서방감독들을 소집하여 아를르 종교회의(Spnod of Aries)를 개최하였습니다 이 회의에 영국에서 온 세 대표가 있었으니 이들은 요크의 에보리우스(Eboriu of York), 런던의 레스티투투스(Restitutus of London)와 아델피우스(Adelphius)였습니다
영국교회가 이러한 총대들을 파견할 수 있었던 것은 영국의 많은 지역에 기독교가 확산되어 있슴을 의미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영국 교회의 시작과 초기 발전 상황에 관하여는 거의 알려진 바가 없는 것입니다 전설에 의하면 아리마대 요셉을 비롯한 초대 기독교인들의 선교활동을 주장하고 있으나 그 신빙성은 증명이 되지 않고 있습니다 한때 브리튼을 점령했던 로마군에 의해 기독교가 전파되었다는 학설이 가장유력한 것이나 그것은 오히려 미드라교(Mithar)였을 가능성이 훨씬 더 높은 것입니다
그 중에서 가장 유력한 복음화의 경로는 고올을 통하여 이루어진 것이라는 설인 것입니다 아를르 종교회의 이후 영국에서 두번째 파송한 회의는 359년 리미니 회의(Council of Rimini)였으며 수명의 총대들을 파견했는데 이 총대들의 과반수의 경비를 국가가 부담하고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이러한 일련의 여러 경로를 거치면서 영국의 기독교는 끊임없이 성장하였고, 이러한 청교도 정신을 바탕으로 오늘날 가장 강대한 미국 기독교를 형성하는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된 것입니다
현재, 영국 국민의 대다수는 기독교인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들 가운데 대부분은 영국성공회(Church of Enland)로서 영국 기독교인들의 29%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영국 성공회는 영국 국교회이며 영국의 종교개혁으로 인하여 로마 가톨릭 교회에서 분리되어 나온 것이었습니다 영국 성공회는 전세계 성공회 (Anglican Church또는 Episcopal Church)들이 대등한 위치에서 상통하는 세계성공회공동체 (Anglican Communion)의 모태가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14%를 차지하는 장로교회는 스코틀랜드 종교개혁으로 형성되었으며 현재 스코틀랜드의 국교입니다 로마 가톨릭교회는 11%로서 한때 5세기에서 16세기까지 영국의 교회를 사실상 지배하였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영국의 국교정책에도 불구하고 영국인 가운데 42%는 무신론자들인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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