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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유지현 FA신청 논란과 세대교체
2003년이니까 약 6년전의 일이다.
당시 엘지팬들 사이에서의 가장 뜨거운 관심은 유지현의 FA신청 여부였다.
유지현이 어떤 선수였나.
94년 엘지트윈스가 가장 강할 무렵 리드오프를 꿰찬 이후 엘지 내야의 중심축을 도맡아온 스타 중 스타 선수가 유지현이었다.
유지현은 큰 기복이 있는 선수는 아니었다.
94년 데뷔하여 2002년 준우승때까지 8년동안 3할을 기록한 해가 4차례나 됐고 다소 부진했던 96년 (타율 : 0.249)을 제외하고는
제몫을 다해내던 선수였다. 그리고 그만큼 트윈스 팬들에게 사랑 받는 선수이기도 했다.
그러던 유지현이 2003년 급작스러운 부진에 빠진다. 2002년만해도 비록 경미한 부상등으로 규정타석을 채우진 못했지만
91경기에 나와 타율 0.310 도루 21개 득점 51개 등으로 쏠쏠한 활약을 펼쳤었지만
2003년에는 109 경기에 나와 고작 타율 0.234 득점 30개를 기록하는 프로 데뷔 이후 최악의 부진을 겪게 된다.
유지현의 시련은 부진과 더불어 2003년 입단한 초특급 대형 신인 박경수와의 경쟁에서도 불리한 위치를 점할 수 밖에 없었다.
거기에 김성근 시절 발굴한 권용관이 주전 유격수 자리를 꿰찼었고, 이미 유지현은 유격수를 보기에 노쇠했다는 평가와
더불어 박경수와의 2루수 경쟁으로 내몰린 상황이었다.
여기에 유지현의 부진이 더 뼈아팠던 것은 2003년 시즌이 끝난 이후 FA자격을 획득하는데, 알다시피 FA획즉 마지막 해의 성적이 선수의 몸값을 좌우하는데 있어 가장 큰 영향을 끼치는 관행을 감안해볼때 유지현의 시련은 혹독한 것이었다.
당시 구단은 유지현에게 FA신청을 유보하라는 압력을 가한다.
노쇠한 유격수에 대한 시장가치가 낮다라는 자신감이 있었던 모양이다.
더구나 유지현은 프로야구 출범이후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연봉조정신청에서 승리한 선수로, 구단의 자존심에 생채기를 낸
눈꼴 사나운 선수이기도 했다. 그러다 FA자격 획득년도에 최악의 부진을 겪었으니 구단에서는 얼마나 쾌재를 불렀겠는가.
그러나 이해할 수 없는건 팬들의 반응이었다.
사실 구단의 부당한 FA권리 포기 압박은 팬들이 앞장서서 막아줘야할 사안이었다.
2003~4년 경쟁자였던 새카만 후배 박경수와....
그리 박대받은 팀이 뭐가 좋다고 은퇴후에도 이짓이다 이양반은 ...
당시 팬들은 "유지현이 노쇠한 만큼 세대교체 대상이므로 FA신청을 하지 말고 팀에 헌신해야한다" 라는 주장과
"유지현이 고작 1년 부진한 것으로 세대교체 대상이 될 수 없으며 자신의 권리를 당당하게 행사해야한다" 라는 주장이
팽팽히 맞서고 있었다.
이상한 일이었다.
유지현은 엘지팬들이 가장 좋아하는 스타중 한 선수였으며, FA신청 찬성론자들 말대로 유지현이 부진한건 고작 2003년
뿐이었는데 왜 그들은 소모적인 논쟁을 하며 유지현에게 방패막이가 되어주지 못했을까.
그것은 세대교체에 대한 욕구때문이었을 것이다.
당시 입단한 박경수에 대한 기대는 그야말로 대단한 것이었다.
팀선배 유지현은 물론이요, 이종범을 능가할 만한 대형 유격수 자질을 갖춘 박경수의 입단은 모든 엘지팬들의 가슴을
설레게 하기 충분했다.
그러나 그런 박경수가 자리를 잡기 위해 희생양이 필요했다.
권용관의 안정적인 내야 수비를 포기하긴 어렵다 보고, 타격도 안되고 송구도 안되었던 "노쇠한(?) 유지현"이 그 타겟이
된것이다. 유지현은 엘지팬들이 가장 사랑하는 스타에서 단 1년만에 세대교체의 대상으로 전락한 것이다.
당시 쌍마에서 그 논쟁에 참여한 필자의 글귀가 한구절 생각난다.
"세대교체는 물흐르듯 자연스러운 것이라야지, 강압적 무혈입성은 안됩니다"
결국 유지현은 2005년 쓸쓸한 은퇴를 맞이한다.
2. 2009년 트윈스의 화두 "리빌딩" 그리고 김태군
리빌딩이라는 명제가 특정시기에만 중요한 것이 아니고, 항상 프로야구단을 운영함에 있어 염두에 두어야 하는 것이라지만
2009년 엘지트윈스라면 그 중요도와 절실함은 곱절이 됨을 우리는 알고 있다.
현재 김재박 감독이 가장 많은 비난을 받는 부분은 이 리빌딩에 소홀했다는 점이다.
유망주들의 기회를 원천적으로 봉쇄하고, 일부 주전선수들의 풀타임 출장을 절대적으로 보장하는 그의 팀 운영 방식은
세대교체와 성적이라는 두마리 토끼를 모두 놓치는 최악의 상황으로까지 악화시켰다.
필자 역시 김재박 감독의 "리빌딩에 대한 무관심"으로 이미 등을 돌린지 오래 됬으며, 이제 그를 신뢰하는 엘지팬들은
얼마 남아 있지 않은 것 같다.
이 시절 김재박을 좋아하지 않았던 엘지팬 그 누굴쏘냐!!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포수 포지션이다.
국가대표 단골 포수 조인성이라는 훌륭한 버팀목이 있다고는 하지만 포수라는 포지션상 반드시 백업이 필요하고, 더구나
조인성도 이제 30대 중반을 훌쩍 넘기는 노장이 되어 있었다.
김재박이 이를 위해 선택한 것은 김정민이었다.
김정민이 훌륭한 포수이긴 하나, 당장 1~2년의 단기적 처방일 뿐, 향후 엘지 안방마님 10년대계가 필요한 시점이라는 점을
감안할때 백번 양보해도 좋은 선택이라고 봐주긴 어렵다.
여하튼 김정민은 일찌감치 부상으로 전열에서 이탈했고, 조인성은 잔부상과 체력저하 그리고 매너리즘을 극복하지 못하고
부진의 부진을 거듭했다. 이과정에서 조인성은 팬들에게 "척결되야할 1순위"로 낙인찍혔고 2008년 2차 3순위로 엘지에 입단한
김태군이라는 어린 포수가 팬들 사이에서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조-심 사태가 발발한다.
이유야 어쨌든 간에 조인성에게 쏟아진 그간의 의혹들이 허황된 소설은 아니었다는 것이 사실로 드러난 계기였다.
김재박은 어쩔 수 없이 조인성의 철밥그릇을 잠시 뺏어야 하는 상황을 맞이할 수 밖에 없었고, 팬들이 그렇게도 염원하던
김태군의 선발 출장은 이루어졌다.
전 엘지팬들을 쪽팔리게 만들었던 조-심 사태의 한 장면~
심수창의 유니폼을 잡아다니는 김용수코치의 손이 초라하게 보인다.
그러나 이게 웬일인가.
김태군은 만 19세라는 나이에 믿기지 않는 노련한 투수리드로 8월 7~9일까지 벌어진 두산전에서 위닝을 가져오는데
일등 공신이 된다. 특히 조인성에게 수없이 지적되어 왔던 바깥쪽 일변도의 코스 선택에서 탈피하여 과감하게 몸쪽 승부를
즐겼고, 특히 이번 조-심 사태에서 부각된 투포수간의 원활한 커뮤니케이션 부재에 대한 우려를 말끔히 해소할 만큼
뛰어난 적응력을 보인 것이다.
김재박이 원했든 원치 않았던 간에 김태군에게 주전 도약이라는 기회가 제공된 셈이다.
필자를 비롯한 수많은 엘지팬들이 마치 독립이라도 맞이한듯 뛸듯이 기뻐했고, 이는 분명 엘지의 미래에 득이 되면 됐지
해는 절대 되지 않을 상서로운 징조임은 분명한듯 보인다.
3. 무서운 광풍에 이어 자리잡게 될 흑백논리
며칠전 쌍마를 훑어보다가 이례적인 글을 봤다.
조인성까계의 행동대장급으로 활동하던 한 유저가 "김태군의 활약에 너무 큰 기대를 하지 말자" 라는 소재로
짤막한 글을 남겼기 때문이다. 평소 그 분의 글을 부정적인 시각으로 바라보던 필자로써는 이례적으로 그 분의 글에
큰 동의를 하게 되었다.
결국 그분의 주장은 "유망주의 한계"라는 현실을 직시하자는 내용인 것이다.
필자... 오금이 저릴 정도로 그 현실론에 동의한다.
문제는 유망주에게 경험을 쌓을 기회를 제공하고, 기존 주전 선수들에게는 체력 보강과 매너리즘 극복 기회를 줄 수 있는
운영의 묘가 필요한 것이지 유망주가 모든걸 해결해주길 바라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것 아닌가.
그러나 그분의 글에는 조인성에 대한 언급이 없다.
이게 문제다. 김태군의 한계를 걱정하면서 그에 대한 대안은 제시하질 않고 있다.
그에 대한 대안으로 가장 각광받아야 할 것은 바로 그렇게도 씹어대던 조인성일 것이다.
김정민이 내년에 복귀할지도 모르겠지만 불투명하다. 이경환이 대안이라면 엘지 포수진의 두께에 대해 눈물을 지을 수 밖에
없는 상황일 것이다. 미우나 고우나 주전포수였던 조인성은 "어린 포수 김태군"을 지원사격할 최고의 자원임을 부정하긴
어려운 것이다.
그러나 분명 안티 조인성계의 거두였던 그분이 "유망주의 한계론"을 언급한건 고무적인 일이다.
조인성 or 김태군이 아닌 조인성 and 김태군과 같은 흑백논리가 대세였던 쌍마에 그분의 한마디는 분명 신선한 모습을
보여주기 충분하니까 말이다.
자칫 잘못하면 조인성만 아니면 누구든 다돼..
김태군은 어떻게 해서든 다 잘할꺼야.. 라는 "안티 조인성 광풍"에 이은 흑백논리가 자리잡을 위기에 놓은 팬 여론 아니었던가.
4. "모아니면 도"식의 유망주 기용은 또다른 철밥그릇의 탄생
유지현 얘기로 돌아가 보자.
당시 유지현은 신임 감독과 구단의 정치적 정황과 급진 세대교체를 갈망하는 일부 팬들의 여망이 "리빌딩"이라는 명목으로
쓸쓸히 옷까지 벗는 지경까지 이르렀다.
그 뒤를 이어줄 것으로 기대했던 박경수는 통산 타율 0.241에 불과한 그저 그런 평범한 내야수로 전락해 있으며
아직 트윈스는 유지현급의 대형 내야수를 찾지 못하고 방황하고 있다.
만약 유지현이 은퇴를 늦추고 박경수와 치열한 포지션 경쟁을 벌이며 적어도 3~4년 이상을 더 선수로 활동했다면
어떻게 변했을까? 벌어지지 않은 일을 추론해보는 것이 의미 없는 일이긴 하지만, 별다른 대안 없이 그저 그런 선수로
전락해버린 박경수를 보면 복장이 터지는 것을 참을 수 없다.
당시 필자가 주장했던 "유망주의 무혈 입성 폐해"가 현실이 되었다는 것이 너무도 안타까운 것이다.
적어도 유지현급의 대형내야수가 아무리 기량이 노쇠했다 하여도, 박경수라는 신출내기보다 뛰어난 장점이 없었겠는가...
거꾸로 박경수라는 거물 신인이 유지현이라는 선참을 뜨끔하게 해줄만한 천부적 재능이 없었겠는가.
상호 경쟁과 보완을 통해 유망주는 선배를 배우고, 선배는 유망주를 자극제 삼아 매너리즘을 극복하는 체계...
이젠 이 체계가 현대 야구의 대세임을 정녕 우린 모르고 있는 것인가.
지나친 고참 엘리트 위주의 용병술을 구사한 김재박 감독이 욕먹을 이유는 충분하다.
그러나 "무조건적인 고참 배척, 유망주 풀타임 보장만이 정답"임을 외치는 일부 급진적 팬들의 자세또한 문제다.
우리가 감독에 의해 김태군을 잃을뻔 했던 아찔한 위기를 보며 가슴을 쓸어내리지만
유지현과 특급 박경수 둘다 잃어버린 전례를 생각해보면 우리 스스로도 무엇이 팀을 위해 옳은 판단인지를 고민함이
부족했던 것은 아닐까?
유망주의 기용은 새로운 카드를 얻음과 동시에 기존에 쓰던 카드를 업그레이드 하는 효과가 있다.
2008~9년의 안치용과 박용택은 그 해답중 모범 답안이다.
박용택의 부상과 부진을 틈타 절치부심한 안치용의 등장은 엘지트윈스에게 "안치용"이라는 나름대로 쏠쏠한 새로운
카드를 안긴 셈이다. 그러나 이 효과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안치용의 등장으로 자극을 받은 박용택이라는 기존 카드는
역시 절치부심하여 국내리그 최고 수준의 왼손타자로 업그레이드 되었다.
결국 엘지는 안치용이라는 새로운 카드와 업그레이드된 박용택이라는 카드 두장을 손에 쥔 꼴이 되었다.
김태군을 출전시키라고 팬들이 외친 이유도 이런 것이어야 한다.
"조인성 숙청"의 목적으로 김태군을 외친 것이라면 팀에 독이 될 수도 있음을 명시해야 한다.
박경수가 유지현과의 경쟁에서 인위적인 무혈입성을 하여 그저 그런 선수가 되었듯이, 김태군도 그저 그런 포수로
만들어선 안된다. 그 경쟁의 대상에 최적임자는 뭐니뭐니해도 조인성이라는 것이다.
고참 선수들을 숙청하기 위해 "유망주를 중심으로한 리빌딩"을 주창했던 이순철...
그 참담한 폐혜가 고스란히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이순철이 단행한 그 참혹했던 고참선수 숙청을 우리 팬들이 자행하고 있는건 아닌지...
프랜차이즈 스타를 박대했던 그 기분 나쁜 추억을 우리 팬 스스로고 되살리고 있는건 아닌지...
또다른 철밥그릇 만들기라는 우를 범하는 것은 아닌지
이젠 제발 성찰하고 고찰하자.
이젠 팬들마저도 고민하지 않으면 살아날 수 없는 팀이 이놈의 엘지트윈스란 말이다.
첫댓글 매우 공감하는 글입니다. 턴 방식의 게임인 야구란 종목에서 기회를 어떻게 분배하는가의 문제는 정말 중요한 문제입니다. 아무리 퇴조기의 유지현이라 했어도 황혼기는 아니었다면 일정 기회를 놓고 박경수와 경쟁을 시켰어야 했는데 그정도의 엔트리 공간도 없을만큼 당시 엘지가 강했는지도 의심이구요. 출장기회를 적절히 배분하여 경쟁관계를 만들어줫다면 유지현은 전성기는 아니지만 어느정도 마지막 불꽃을 태워 명예회복과 팀전력 상승을 이끌었을테고 박경수는 지금같은 적당 적당히 뜬금포 치고 수비 제법 하는 2루수에 머물진 않았을테죠.
매우 공감하는 글입니다만, 한 가지 테클. 저는 청룡시절에도 김재박 안 좋아했습니다. 뭐 뒷담화까는 것 같아서 뭐하기는 한데, 때는 바야흐로 1986년 올스타전이 벌어지던 잠실구장의 경기 종료 후 주차장에서 자신의 싸인을 받으려고 어린 아이를 안고 있던 어느 아저씨. 김재박에게 싸인을 부탁했으나 마누라가 뭐라고 하자 쌩까고 잽싸게 운전해서 내빼던 모습, 그리고 그 장면을 보고 아저씨의 품에 안겨 야구공을 손에 쥔 채 울던 아이의 모습. 그 때 부터 저는 그 냥반 안티였습니다. 좋은 글에 딴지 걸어서 죄송~~^^
혹시 그때 울던 아이가 강호님은 아니시죠^^
강호님... 저 사진 아마 86 올스타 이전일겁니다 ㅋㅋㅋㅋㅋ
합리적인 기회 배분을 통한 전력의 극대화와 자연스런 세대교체..경쟁이 그바탕이 되어야 겠죠. 그 경쟁 또한 공평해야 하는데 엘지는 입단때부터 주전감은 주전감 백업감은 평생 백업감이라는 계급의 꼬리표가 붙어있다는게 가장 큰 문제라고 봅니다. 백업은 주전의 경쟁자이지 신분 자체가 백업이어선 안되죠. 2군은 소위 백업의 경쟁자여야 하구요. 근데 박용근 보면 이젠 백업+대주자의 포스가 철철 넘칩니다. 임도현 같이 발빠르고 어깨 좋은 선수는 이젠 그냥 본적지가 구리 같구요. 성골 한명 지정해서 포지션 독점케 하고 기회 몰빵해주고 향후 10년간 철밥통 채워주고 그 선수 못하면 얘보다 잘하는 선수가 누가 또 있냐는 개소리나
해대고... 이런 악순환 고리 끊지 못하면 신고선수 신화 같은건 언감생심이고 엘지 미래 자체가 없다고 봅니다.
와우~ 정말 좋은 글, 공감 백배 글, 뒤 늦게 나마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