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동율맥 제10대 혜은 법홍 대율사(慧隱法弘大律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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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가여래친수마정수계계승역대율사釋迦如來親授摩頂受戒繼承歷代律師는 제1대 대은낭오大隱朗旿(1780-1841)율사, 제2대 금담보명金潭普明(1765-1848)율사, 제3대 대흥사 초의의순草衣意詢(1786-1866)율사, 제4대 해인사 범해각안梵海覺岸(1820-1896)율사, 제5대 직지사 제산정원霽山淨圓(1862-1930)율사, 제6대 화엄사 호은문성虎隱文性(1850-1918)율사, 제7대 백양사 금해관영錦海瓘英(1856-1926)율사, 제8대 백양사 만암종헌曼庵宗憲(1876-1956)율사, 제9대 백양사 묵담성우黙潭聲祐(1896-1981)율사, 제10대 금수사 혜은법홍慧隱法弘(1915-2003)율사, 제11대 용화사 도월수진道月守眞(1948-현재)율사로 계승되었다.
특히 이번에 사리비를 제막하는 제10대 혜은법홍대율사慧隱法弘大律師는 강원도 고성 출생(1915년)으로, 9세에 출가 금강산 유점사 운학雲鶴스님을 은사로 득도학, 22세에 유점사 금강계단에서 영호英鎬대율사로 구족계, 24세 건봉사乾鳳寺에서 대교과를 수료했다.
해방후 1946년 32세에 한용운스님과 불교호법단을 조직하고, 36세 때인 6.25당시 해인사 팔만대장경을 사수한다. 50세에 대한민국 문화훈장 수상, 1968년 54세 7월 6일부터매일 70리를 일본 희애산 100일간 회봉고행성만回峰苦行盛滿하여 희애산안락율원 율사 계승, 2001년 87세에 9월 담양 용화사 도월수진상인에게전계를 마치시고 말년에는 미국 캠브리지주립대학에서 철학박사학위를 수여받으시어 많은 중생을 제도하시다 2003년 89세 음2월8일 출가재일出家齋日 고요히 입적하셨다.
용화사
담양 용화사는 1934년 갑술년에 백양사 차학신 스님께서 백양사 포교당으로 출발한 것이 효시가 되었다. 그러나 어려운 여건으로 민가에 팔렸다가, 담양불교청년회와 신도회 등이 1945년 해방 전까지 백양사 청류암에 주석하셨던 백양사 묵담큰스님께, 깊은 산중에 계시느니 가까운 읍내로 내려오시어 교화해 달라고 권청한 것을 계기로 다시 세워졌다. 당시 임야 6천평, 대지 6백평의 초가집 2동 등을 매입하여 담양군 담양읍 남산리 106번지에 사찰을 창건하니 사액을 용화사라 하였다.
최초 창건자 묵담 대종사께서는 임야 대지 등 약 7천평에 초가를 개조하여 인법당으로 만들고, 대중스님들과 운수납자 신도들이 운집하여 사찰 발전기반을 견고히 하였다. 2대 주지 덕봉지광 대종사께서는 큰스님의 뒤를 이어 미륵전, 칠성각, 종각, 요사 등을 창건하는 등 비약적인 발전을 거듭하였다.
뒤를 이은 제3대 주지 도월수진스님께서도 선사스님의 유훈을 받들어 1995년부터 천일 기도를 봉행하면서, 1997년 9월 18일까지 48평 크기의 외5포 내7포의 목조 대웅보전을 건립하고, 본존 석가모니불, 문수, 보현 양대보살과 1천관세음보살, 후불탱화, 신중탱화, 지장탱화를 조성 봉안하여 대사찰의 규모로 발전하였다
묵담유물관은 전면5칸, 측면 3칸의 35평 규모에, 맞배지붕 건물로 2004년 6월에 개관을 했으며 2005년에 단청하였다.
묵담유물관은 묵담스님께서 생전 시에 모아 놓으셨던 보물 737호 불조역대통제를 비롯하여, 오원 장승업의 달마스님 나한 신통도와 연담스님 사기, 백파스님의 금강팔해경, 여타 추사글씨 등 많은 성보문화재가 전시되어 있다.
이 외에도 고종 때 민비를 시봉했던 상궁들의 자수족자와 고종 행차시 연(가마) 주위에 장식했던 장엄구, 역대 큰스님들의 글씨 등을 전시해 놓아 꼭 둘러볼 만하다.
용화사 찾아가는 길
용화사는 담양군 담양읍 남산리 106번지에 자리하고 있다.
2일 담양읍 남산리에 소재한 한국불교 태고종 용화사(주지 수진스님)는 묵담유물전시관 옆 경내에서 각 사찰 스님, 안병갑 경찰서장, 한국로스트왁스 장세풍대표, 신도회장, 신도 등 3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묵담 대종사 동상 제막식을 가졌다.(사진)
묵담 대종사의 동상은 한국 로스트왁스 장세풍(경기도 안산시) 대표가 단독으로 사비 1억원을 들여 1년여만에 제작 봉안한 것으로 예술세계 양홍섭 대표가 직접 조각했다.
실제 인물과 흡사하게 제작된 3.3m 높이의 동상이 제막되자 제막식에 참석한 신도들은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용화사의 숙원사업이기도 했던 묵담 대종사 동상제막식은 수보스님의 사회로 진행됐으며 제주 춘강 이동한 박사의 '생전 시 묵담 대종사에 대하여'란 제하의 특강과 금강선원 총재 활안 큰스님의 '축하법어'가 이어졌다.
묵담 대종사의 동상 제작은 한국 로스트왁스 장세풍 사장이 어린시절과 청소년시절을 묵담 대종사의 슬하에서 성장해 왔는데 1년 전에 잠을 자다가 꿈에 묵담 대종사가 나타나서 그 꿈을 실현하기 위해 준비하게 됐다고 밝혔다.
용화사를 상주도량과 교화도량의 근본장소로 삼고 창건한 묵담 대종사는 1896년 3월8일 담양군 수북면 남산리에서 태어났으며 법명은 성우, 법호는 묵담이다. 속성은 담양 국씨로 명문세족이신 아버지 순구 씨와 어머니 오씨 극락화 님의 맏아들이다.
10세전에 부모를 일찍이 잃으시고 11세에 장성 백양사의 천경순오 선사를 의지하여 출가득도 했으며 사미계사는 종산선사였다.
17세에 해인사 해명학교를 졸업하고 18세에 증오사인 금해 노스님을 시봉하면서 사미과와 사집과를 수료했으며 19세부터 25세까지 백양사 불교전문강원을 비롯 여러 강원을 역참하면서 사교과와 대교과를 졸업하고 27세에 선문염송을 이수한 후 29세에 내장사 금강계단에서 금해 노스님의 전계로 구족대계를 받고 해동 칠불암의 계맥을 이어 받아 해동 제9대 율사가 됐다.
또한 묵담 대종사는 해동7불 제9대 율사로서 우리나라 불교사에 보기드문 청정율사로서 한국불교 계율수행사에 우뚝 선 최고 율사로 평가되고 있다.
석가모니 부처님에게는 제77세 법손이 되고 연담 대종사의 제8대 문손이다.
묵담 대종사는 62세에 불교 조계종 제5세 종정에 봉대되어 77세까지 제6세 및 제7세의 종정을 연임했으며 재임기간 중에 태고보우국사의 종조설을 주장하여 종권수호와 교단쇄신, 대중 불교 구현에 전력했다.
그러다가 태고보우 국사를 종조로 하는 태고종 제3세 종정에 봉대되어 84세까지 제4세 종정에 연임되어 5년 동안 한국불교 최고의 상징이 되기도 했다.
86세에 담양용화사 본찰에서 열반계를 송하시고 다음해 1월3일에 가부좌로 바로 앉아서 입적하였으며 세수는 86세이고 법랍이 75세였다.
태고종단 장으로 담양 용화사에서 다비하시어 9과의 사리가 나왔기에 장성 백양사, 담양 용화사, 전주 관음선원, 부산 금수사, 안양 연화사, 제주 성광사, 선광사, 금붕사, 성림사에 각각 한 개씩을 나눠 봉안하고 있는데 담양 용화사는 묵담 대종사의 사리 1과를 모셨다가 오늘에 이르러 동상과 함께 봉안하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