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광스님의 병낫는 법-효공스님에게
眞性은 淸淨하여 本無病之名字언만은 着오온之색신 일새 於是에 策縛病魔하여 搏(잡을 박, 두드릴 박, 박동)床呻吟矣(어조사 의)라.
然이나 知痛者는 非痛이라 若痛者인댄 何以知痛이리오.
非痛故로 知痛이니 當身 心惱亂之際(사이 제) 不忘본참공안하고 常自擧覺하여 頓悟無生하면 非但病滅이랴 亦知四大本空하리니 何憚(꺼릴 탄, 협박할 탄)病哉(在어조사 재)아.
以病선지식하여 以悟爲則하고 切莫墮於病魔圈(범위, 우리 권)櫃(상자 궤)하여 虛度光陰을 至祝不己矣라.
무릇 참성품은 청정하여 본래 병이라는 이름도 없지만 오온의 색신에 집착하기에 이에 병마에 속박되어 병상을 치며 신음하는 것이다.
그러나 아픈 줄 아는 것은 아픈 것이 아니다. 만일 아픈 것이라면 어떻게 아픈 것을 알겠는가. 아픈 것이 아니기에 아픈 것을 아는 것이니 잊지 말고 항상 스스로 들어 살펴 무생의 도리를 단박 깨달으면 비단 병만 없어질 뿐 아니라 사대가 본래 공한 줄 알 것이니 어찌 병을 싫어하겠는가.
병으로 선지식을 삼아 깨침으로써 법칙을 삼고 이에 병마의 우리에 떨어져 헛되이 세월을 보내지 말기를 지극히 빌어 마지 않네.
-통광스님 25세 때 수계 도반 효공스님이 병에 걸려 고생한다는 소식을 듣고
마음아, 어디 있느냐/통광스님 유고집/불광출판사/2023 59-60
첫댓글 眞性은 淸淨하여 本無病之名字언만은 着오온之색신 일새 於是에 策縛病魔하여 搏床呻吟矣라.
然이나 知痛者는 非痛이라 若痛者인댄 何以知痛이리오.
非痛故로 知痛이니 當身 心惱亂之際 不忘본참공안하고 常自擧覺하여 頓悟無生하면 非但病滅이랴 亦知四大本空하리니 何憚病哉아.
以病善知識(스승을 이르는 말)하여 以悟爲則하고 切莫墮於病魔圈櫃하여 虛度光陰을 至祝不己矣라.
무릇 참성품은 청정하여 본래 병이라는 이름도 없지만 오온의 색신에 집착하기에 이에 병마에 속박되어 병상을 치며 신음하는 것이다.
그러나 아픈 줄 아는 것은 아픈 것이 아니다. 만일 아픈 것이라면 어떻게 아픈 것을 알겠는가. 아픈 것이 아니기에 아픈 것을 아는 것이니 잊지 말고 항상 스스로 들어 살펴 무생의 도리를 단박 깨달으면 비단 병만 없어질 뿐 아니라 사대가 본래 공한 줄 알 것이니 어찌 병을 싫어하겠는가.
병으로 선지식을 삼아 깨침으로써 법칙을 삼고 이에 병마의 우리에 떨어져 헛되이 세월을 보내지 말기를 지극히 빌어 마지 않네.
통광 스님 25세 한참 젊은 나이에 이미 도통하셨었군요. 스스로 알지 못한 것을 섣불리 입밖에 내시진 않았을테니 말입니다.
이 법문을 들으니 '알아차림의 알아차림' 이란 책의 내용이 떠오릅니다.
저는 예전부터 의문 한가지가 있었는데 그럼 도대체 알아차림이란 무엇인가? 하는 것이었어요.
명상을 한다고 앉아있으면 명상을 하고 있구나...
분노, 슬픔같은 감정에도 아, 이런 감정이 올라오는구나....
하루 종일 끊임없이 떠들어대는 그 수많은 '생각' 들 사이로 문득 또 생각에 속았구나....
이런 알아차림이 생기지요.
그런데 제 의문은 이 알아차림이란 것도 결국 <또다른 생각>에 불과한 것이 아닌가 하는것이었습니다.
회원님들은 그런 의문 든적 없으셨는지요?
이 책에 보면 알아차림이란 스스로를 인식하는 능력이 있는 것이고 의식에서 올라오는 생각과는 다른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었습니다. 덕분에 오래된 의문이 해소된 것 같았습니다. 맞는지는 모르겠지만요
오늘 통광스님 법문에도 비슷한 내용이 있습니다.
<아픈 줄 아는 것은 아픈 것이 아니다. 만일 아픈 것이라면 어떻게 아픈 것을 알겠는가. 아픈 것이 아니기에 아픈 것을 아는 것이니 잊지말고....>
알아차림의 알아차림.
어떤 감정이 왔을 때,
이 감정이 왜 올라오는 건지 사유할 때가 때때로 있습니다. 신나게 끄달려 가는 것을 잠시 멈추게 되는 몇몇 순간이 있어 다행이라 생각합니다.
감사합니다. 마하반야바라밀 _()()()_
고맙습니다.
병없는 자리~~~
마하반야바라밀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