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립자는 젊은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어머니와같은 따스함과 특유의 실천적인 성향으로 특별히 가난하고 소외받으며 병고에 시달리는 이들에 대하여 더욱 구체적인 사랑과 헌신으로 투신하였다. 그러한 창립자의 노고를 지지하던 원주교구 초대 교구장이자 사회 정의 및, 복지 사업에 앞장서며, 대중적 존경심과 교구민의 사랑을 받던 고(故) 지학순 다니엘주교의 간곡한 요청으로 1982년 원주교구청 내에 가톨릭의원-현재 ‘원주가톨릭병원’-을 개원하여 가난한 환자들을 진료하면서 동시에 수녀회 창설을 준비하게 된다.
그리고 이듬해인 1983년 9월 11일 ‘원주 전교 봉사 수녀회’라는 명칭의 정식 수녀회가 발족되었다. 이후 창립자는 1986년, 6년간의 관구장 소임을 마친 후, 원주 호저면에 폐교한 초등학교를 수리하여 결핵 환자들과 함께 살고 있던 프란치스코 작은형제회 소속 수사인 고(故) 페르난데스(Fernandez, 한국명 하 멜키올)신부와 인연이 되어 지도 신부로 모시고, 페르난데스 신부의 조언에 따라 회칙을 받아들이기로 결정하게 된다.
페르난데스 신부는 프란치스코 회칙을 따르라고 이야기 하지 않았으나, 창립자가 기도와 묵상을 통해 하느님의 은총으로 창립한 이 작은 수녀회가 필요로하는 불타는 봉사애와 행동으로서의 설교정신이 프란치스코 성인의 정신과 가장 부합한다고 판단하게 되어, 프란치스코를 주보성인으로 받아들여 모시고, 성 프란치스코 수도 3회 회칙을 사용하게 되었다.
그리고 1988년 9월 11일, 수녀회의 이름을 ‘프란치스코 전교 봉사 수녀회(Franciscan Missonaly of Service Sister)’로 바꾸고, 1993년 11월 9일 교황청으로부터 수녀회 설립인준을 받게 되었다.
이로서 수녀회는 본격적으로 국 내외에서 사회 봉사와 교구 협력 및 선교를 통해 그 활동 영역을 넓혀갔다. 그리고 그 영역이 넓혀짐에 따라 창립자의 마음에 새로운 움직임이 일기 시작하였다. 주님께서 창립자에게 어떠한 영감을 주셨고, 창립자는 그분의 말씀에 귀를 기울였다. 새로운 성소가 지금 싹트려 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