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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오늘도 시를 씁니다
김명옥
1. 화장하기
사람들은 나에게 묻습니다. 왜 시를 쓰냐고. 나는 답합니다. 행복하기 때문이라고. 또 묻습니다. 지금 행복하냐고. 또 답합니다. 지금 행복하다고. 또 묻습니다, 그러면, 언제까지 쓸 거냐고. 또 답합니다. 내 얼굴이 내 명함이 될 그날까지라고.
1989년 첫 시집 『저만치 홀로 두고』를 시작으로 『하늘은 자꾸자꾸(1991)』『바보의 합창(1992)』『대한민국특별시를 탈출한 내 이름은(1994)』『거대한 도시의 심장에 깃발을 꽂고(1996)』『그곳에서, 그녀는 오늘도(2008)』『소리, 그 따뜻한(2011)』『참, 다행이다(2015)』『어떤 웃음(2019)』『불순한 의도가 있었나(2021)』를 출판했습니다.
언어는 인간의 사고를 지배한다는 춈스키의 말처럼 강산이 세 번 바뀌는 동안 내 언어도 참 많이 변했습니다. 특히, 내 30대는 모더니즘과 포스트모더니즘이 혼재·충돌하던 시기였습니다. 한 쪽은 문학작품은 잘 빚어진 항아리로 통일성·일관성을, 다른 한 쪽은 산산조각난 항아리로 편리성·유희성을 예술적 원리로 내세웠습니다. 특히, 포스트모더니즘은 창조성의 개념을 비판하면서 패러디·페스티쉬(혼성모방), 몽타주·콜라주(붙이기), 키치 등의 도입으로 대중문화와 접목을 시도했습니다. 그러나 질서·가치·의미의 지나친 배제로 반정치성·몰역사성·비사회성이라는 자충수를 놓았고, 지금은 한갓 문화상품으로 유행하다 유령처럼 사라져버렸습니다.
포스트모더니즘은 30대의 나에게 치명적인 유혹으로 다가왔습니다. 첫 화장의 유혹처럼. 화장을 해 본 사람은 압니다. 화장의 화룡점정이 입술화장이라는 것을. 수많은 단어 중에서 가장 적합한 언어를 취사선택하여 적재적소에 골라 넣은 후 마지막 한 방, 풍자와 해학, 이것이 내 시의 화장법이요, 화룡점정이었습니다. 조롱하고, 비틀고, 고발하고, 전복시키는 풍자와 해학에 어떤 사람은 찬사를 보냈고, 어떤 사람은 비난했습니다.
서울은 별들의 잔치마당/ 와!/ 저-기? 저어건 1등성/ 그 뒤 작은 손짓으로 가물가물 미소 짓는/ 저-어기/ 저-어건 3등성/ 또 그 뒤 수줍어 말 못하고 눈만 깜박이는/ 쩌-어기/쩌-어건 6등성/ 지천으로 열린/ 1, 2, 3, 4, 5, 6등성/ 검은 물이 뚝뚝 듣는/대한민국특별시의 촌놈들/ 1, 2, 3, 4, 5, 6 등성을/ 가슴에 붙이고/ 앞으로 나란히
(‘대한민국특별시를 탈출한 내 이름은.20’의 전문)
어제와 오늘의 5일장은/ -크레디트카드회원 각종상품 정보제공, 6개월 할부무이자 혜택, 15만 원 이상 구매고객 선물증정, 전국 어디든지 통신판매 신속배달/ 백과사전 속의 낱말로 자리잡고/ -에스콰이아, 엘칸토, 바실레, 졸리, 피에르가르뎅, 파울로구찌, 발렌티노, 와코루, 로베르, 제노바, 논노, 멜리사, 아놀드파마, 우먼스데이, 비젼, 로사, 꼼므뜨와, 압소바, 트윈베베, 미니타운, 윈디, 란체티, 애로우, 웸블린/ 혀마저 근육통을 호소하는
(‘적신호시 돌아가시오.6’의 일부)
골목길에 서면/ 갑자기 끈끈한 입김이 목덜미로 몰려온다/ 바람이 갈라지는 소리에 섞인/ 자동차사람강아지가로등마네킹/ -골목은 부처님을 바겐세일 중/ 삼계탕LA식커피필하모니초원주차금지주차장/ -골목은 예수님을 몽땅세일 중/ 찰리정샤프김세종뷰띠끄릴리김머리방/ -골목은 애미애비도 왕창세일 중/ 돈돈돈돈돈돈돈돈돈돈돈돈돈돈돈돈돈/ 골목길은 모두모두 바가지세일 중/ 골목길을 방금 탈출한 파리는/ -바겐세일중몽땅세일중왕창세일중바가지세일중/ 한데 섞여……왕왕왕왕왕……목소리를 높이고/ -왕입니다왕입니다왕입니다
(‘골목길에서면.1’의 일부)
밤을 노래하는 도시는 거대한 용광로야/ 말 그대로 피바다였지. 사람들은 타는 갈증을/ 가장 달콤한 입술로 축이면서 점점 말라가고 있었으니/ 어둠이 버섯처럼 번져가는 한강은/ 승천하는 용의 몸뚱이로 내 앞에서 꼿꼿이 일어서곤 했었어/ 건들기만 하면 퍼들거리는 비늘에서 우수수/ 별이 쏟아진 것 같은 자세로 말이야/ 강둑에 누워 바라보던 내 어린 시절의 강처럼 말이야/ 내 유년의 강은 수직으로 곤두선 바다에/ 거대한 말뚝을 박고 있었고 깨어지는 바다는/ 놀란 몸을 부르르 떨며 두근거리는 가슴을/ 동쪽 하늘가에 뿌려 놓곤 했었지/ 공중에 둥둥 떠다니는 도시의 이정표처럼 말이야/ 그런데 파도처럼 몰려왔다/ 파도처럼 밀려가는 별이지만/ 별 볼 일이 없었어/서울에서 보는 하늘은/ 밤도 환했고/ 낮도 어두웠으니까
(‘내가 바보가 되어버린 이유, 그 뒤에는.19’의 전문)
1, 2, 3, 4, 5, 6 등성을 가슴에 붙이고 으스대는 대한민국특별시의 촌놈들. 외국어나 외래어를 사용하면 물건도 사람도 품격 있다고, 있어 보인다고 믿는 도시인. 저마다 다 잘 났다고 왕왕대는 골목길, 밤도 환하고 낮도 어두운 서울 하늘. 이렇게 풍자와 해학으로 화장한 내 30대의 시, 너무 튀어도, 너무 화려해도, 너무 강해도, 너무 낯설어도 그건 내 얼굴이었습니다. 너무 파격적이라 해도, 너무 직설적이라 해도, 너무 싼 티가 난다해도 그건 내 얼굴이었습니다. 화장은 나를 행복하게 했고, 나는 행복하기 위해 늘 새로운 화장법에 열중했습니다.
모(某)방송국 경매프로그램에 나온 중광스님의 그림, 가격이 조금 비싸게 책정되자 한 참석자가 이유를 물었습니다. 전문가는 그림에 붙어있는 광을 가리키며 광 값이라고 답했습니다. 어떤 사람이 나에게 물었습니다. 왜 언어를 거칠고 강하게 쓰냐고. 나는 답했습니다. 그게 내 화장(化粧)법이라고. 그리고 농담인 듯 진담처럼 말했습니다. 혹 압니까. 그게 광 값을 할런지.
2. 근력 키우기
초등학교 2학년, 글짓기 시간. 연필심에 침을 묻혀가며 원고지 칸이 뚫어지도록 썼다 지우고 썼다 지운, 피로 쓴 내 작품 「동지 새알」. 그러나 원고지 위에 남은 건 달랑 도장 하나뿐. 난 지금도 생각합니다. 피로 쓴 작품만을 읽겠다고 말한 니체라면 틀림없이 내 「동지 새알」에 플러스알파가 있었을 텐데.
사람만 지문이 있는 게 아니라 시에도 지문 즉, 개성과 독창성이 있습니다, 사람만 근력을 키우는 게 아니라 시도 근력 즉, 문장력과 표현력을 키워야합니다. 불혹(不惑)에는 불혹다운 지문과 근력을, 지천명(知天命)에는 지천명다운 지문과 근력을, 이순(耳順)에는 이순다운 지문과 근력을. 그러기 위해 많이 읽고, 많이 쓰고, 많이 생각했습니다. 이렇게 만든 내 지문과 내 근력. 어떤 사람이 읽고, 아, 이건 김명옥시인의 작품이네라고 즉시 알아볼 때 나는 가장 행복했고, 내 시는 가장 빛났습니다.
친구는 세월을 입고 있었다/ 헤살거리며 말하는 입이나, 다소 어수룩해 보이는 눈매나, 까불며 흔드는 손짓이나, 뭐 하나 변한 거라곤 하나도 없는데, 정말 검은머리가 듬성듬성 흰머리로 바뀌었다는 것만 빼고는 30년 전이나 똑 같은 친구의 모습에서 난 세월을 읽으며 커피를 시켰다. 아직도 아가씨를 부르면 뒤를 돌아본다며 입을 가리고 웃는 친구의 물기 없는 손가락을 애써 외면하며 세월의 무게가 내려앉은 커피를 스푼으로 되질했다// 세월의 무게는 딱 한 스푼이었지만 스푼 밖의 세월은 세월의 무게보다 더 썼다.
(‘세월의 무게.1’의 전문)
쿵!/ 모과 하나가 떨어졌다/ 지구는 실금이 갔지만/ 모과는 아린 기억에 온몸이 무너졌다/ 노랗게.
(‘소리, 그 따뜻한.9’의 전문)
자동문 앞에 섰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드나들었는지/ 힘겹게 꾸루룩, 끼루룩…
숨 넘어 갈듯 하더니 문이 열렸다/ 아침부터 용량 초과된 생각에 묶여/ 허우적거리는 내 기억/ 얼마나 많은 생각이 드나들었는지/ 긴가민가 날 듯 말 듯 알 듯 모를 듯/ 풀어진 절망의 그림자에 갇혀/ 오락가락, 갈팡질팡하던/ 내 기억이 문을 열었다/ 1.4kg, 1,000개의 신경세포가 작동시킨 연락망/ 드디어 연결된 내 생각과 기억의 교감/ 자동문이 열렸다
(‘자동문’의 전문)
모기가 내 팔뚝에 앉아 피를 빨았다/ 손바닥으로 내리쳤다/ 빨다만 피가 튀었다/ 모기는 내 피를 빨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 신나게 빨고 잽싸게 튀어야지, 했겠지/ 아주 조금만 빠니까 모를 거야, 했겠지/ 그러나 그건 착각이고, 최대의 실수였지 /난, 참을성도 없지만, 배려나 동정심도 없는데/ 또 한 마리가 내 팔뚝에 주둥이를 꽂으며/ 통통한 엉덩이를 치켜들었다/ 감히 어딜, 겁도 없이,/ 손을 드는 순간/ 시아버지모기, 해질 무렵 외출 나가면서,/ 저녁진지 들고 나가라는 며느리모기에게,/ 인심 좋은 놈 만나면 포식할거고,/ 고약한 놈 만나면 죽기밖에 더하겠냐는 이야기가/ 번쩍 떠올라, / 들었던 손을 착하게 내리고/ 새빨갛게 통통한 엉덩이로 치근대는 모기와/ 한여름 밤길을 함께 걸었다
(‘한여름 밤길’의 전문)
툭!/ 떨어진 가을 한 잎에도/ 물살은/ 한나절 내내 저리도 흔들리는데// 내가 드나든 세월에/ 우주는/ 얼마동안 흔들릴까……/ 흔들까……
(‘삶.2’의 전문)
자꾸 웃음이 터진다// 풉/ 푸웁/ 푸우웁/ 온몸이 간지러워 더 이상 참을 수 없어/ 그만, 한꺼번에 확 터져버린 팝콘// 대단한 폭설이다.
(‘폭설’의 전문)
조롱하고, 비틀고, 고발하고, 전복시키기보다 따뜻한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작고 사소한 일일지라도 책임감을 갖고 말과 행동과 시가 일치하는 그런 시인이 되기 위해 애썼습니다. 친구를 통해 세월의 무게를 읽고, 떨어진 모과의 아픔을 공감하고, 자동문을 통해 생각과 기억의 교감을 유추해보고, 미물의 삶도 의미를 부여하는 배려, 인간의 근원적인 존재이유, 자연현상에 대한 다각도의 관찰 등은 내 30대의 화려하거나 파격적인 언어와는 완전히 다른 언어세계입니다. 무겁지만 무겁지 않게, 가볍지만 가볍지 않게 이것은, 불혹, 지천명, 이순에 내가 추구하는 내 지문과 내 근력입니다.
파스칼이 말했습니다. 클레오파트라의 코가 조금만 낮아도 세계의 역사는 바뀌었을 것이라고. 그러나 그는 그녀의 코가 높은지, 낮은지, 본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의 말을 철석같이 믿습니다. 혹시, 나도 시류에 편승하여 높은 건 조금 낮게, 낮은 건 조금 높게 획일화·규격화시키고 있지나 않은지 항상 나 자신에게 물어봅니다.
또 반성해봅니다. 세상은 빛의 속도로 변해가고 있는데, 난 제자리걸음만 하고 있지나 않았는지. 2018년 대학진학률이 70%에 달했는데, 아직도 과거의 엘리트 의식에 사로잡혀 어려운 한자어나 난해한 단어를 마구 써 놓고 잘난 척하지나 않았는지(젊은 독자들은 이들을 꼰대라고 칭함). 시류에 편승한(잘 팔리는 작품, 인기 있는 작품) 아류작품들을 내놓고 읽으라고, 읽어달라고 애걸복걸하다가, 뻔뻔하게도 새로운 대중매체 때문에 독자를 잃었다고 이렇게 말하지나 않았는지.
요즘은 각종 문예지와 문화센터를 중심으로 대량생산된 작가가 넘쳐나는 시대입니다. 그러다보니 간혹, 설익은 자기감정만 쏟아놓은 작품이나 세상살이의 푸념을 주절거린 작품을 만날 때도 있습니다. 어쩌다 지적이라도 할라치면 곧장 돌아오는 말, 잘 난 척하지 말고, 너나 잘하세요. 물론 나도 잘 압니다. 6,000년 넘은 바오밥나무도 연약한 싹에서 시작되었다는 것을. 그러나 꼭 명심해야 합니다, 바오밥나무는 살아남기 위해 죽을힘을 다했다는 사실을. 그러면서 반성했습니다. 혹, 나도 내 작품에 대한 쓴 소리에 귀를 닫고 마음을 닫고, 너무 잘난 척 하지나 않았는지.
한국문인협회에 등록된 작가 약 1만 5천명(그 중 시인은 약 6000명), 약 1%의 뜬 별(유명하거나 인기 있는 작가), 그 1% 시인의 작품 중에서 명시(名詩)로 남는다는 것은 하늘의 별 따기보다 어려울지도 모릅니다. 내 시가 한국의 대표명시로 남지 못한다 할지라도, 내가 1%의 뜬 별이 되지 못한다 할지라도, 나는 오늘도, 지금도, 내 시를 위해 나만의 지문을 만들고, 내 지문을 위해 열심히 근력을 키우고 있습니다. 왜냐고 묻는다면, 내 시는 내 얼굴이기 때문입니다. 나만의 지문과 탄탄한 근력이 바탕이 된 내 작품을 독자들에게 선보인다면 누가 압니까, 떠나갔던 독자들이 돌아올지.
3. 행복한 쓰기
요즘 대중매체에서 가장 핫한 30대 시인의 작품을 통해 요즘 독자들은 어떤 시에 열광하는지, 어떤 시가 좋은 시인지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 보았습니다.
너의 진짜 모습// 나의 진짜 모습// 사라졌어
(하상욱의 ‘포토샵’)
진짜/ 싫은데// 자꾸/ 끌리네
(하상욱, ‘막장드라마’)
친구야// 너와 나는 같은 년도에/ 태어나고// 너는 나와 같은 학교에/ 다니고// 너는 나와 같은 추억을/ 가졌건만// 왜// 니만 연애하냐?
(최대호, ‘친구’)
오빠가 제일 싫어하는 사람이/ 거짓말 하는 사람이라고 했지// 근데 넌 왜/ 만날 때마다 거짓말 하냐?// 니가 어제 나한테/오늘 대충하고 나온다고 했지?// 근데 왜 이렇게 예뻐
(최대호, ‘거짓말’)
내 유년기 시절, 환갑은 꼬부랑 할머니와 동격이었습니다. 그런데 지나고 보니 환갑은 청춘이었습니다. 5만원하면 떠오르는 신사임당도 48세에, 9번 장원급제했다는 율곡도 49세에, 천하를 통일한 진시황제도 49세에 세상을 떠난 것에 비하면 난 겁나게 오래 살고 있는데도 영원한 청춘이고 싶습니다.
고염무는 만권의 책을 읽고 만 리를 여행하라 했고, 두보는 만권의 책을 읽으면 귀신처럼 붓을 놀릴 수 있다고 했습니다. 두 무릎 고장 나도록 열심히 쏘다녔습니다. 안과 문턱이 닳도록 읽고 또 읽었습니다. 그러나 요 몇 년 소파에서 엑스레이 찍기와 시체놀이(멍 때리기)를 하며 고민에 빠졌습니다.
한국인의 평균독서량 연간 9.1권, 성인 중 4명은 단 한 권도 읽지 않는다는 충격적인 사실. 나도 요즘 30대처럼 SNS, 유튜브, 트위터, 인스타그램, 페이스북 등을 통해 강력한 한 방을 날려야 하나. 그러다 부끄러웠습니다. 내 지천명은 줏대 없는 팔랑귀가 아니었고, 내 이순도 가는귀먹어서 고개를 끄덕인 것은 아니었는데. 그러다 나에게 되물었습니다. 혹, 대중매체가 주목하는 시인이 되기 위해 여기저기 기웃거리지는 않았는가. 인기에 영합하지는 않았는가.
사람들과 만날 때, 명함을 주고받습니다. 그럴 때마다 사람들은 나에게 말합니다. 명함을 달라고. 나는 답합니다. 제 얼굴이 제 명함입니다. 어떤 사람은 재미있어하고, 어떤 사람은 기분나빠합니다.
나는 시를 씁니다. 나는 오늘도 시를 씁니다. 내 얼굴이 내 명함이 되는 그날까지 열심히 화장하고, 열심히 근력을 키우고, 행복한 글쓰기를 할 겁니다. 왜냐고요? 나는 죽는 그날까지 시인이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