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모태신앙으로서 유아 세례를 받고 어릴적부터 믿음의 자녀로 지내다가 집안 어른들의 종교적 문제로
어머니께서 소박을 당하여 유년기에는 혼자서 교회를 다녔습니다.
그러던 중 11살때 집안의 몰락으로 인하여 돈을 벌어야 해서 객지 생활을 하게 되었습니다.
강원도 속초에서 태어나 11살때까지 살았고, 속초 감리교회에 유아세례인으로 적을 두고
날마다 교회에서 살다시피 하다가 서울 도봉구에 있는 고려버그 산업사란 악세사리 공장 견습공으로 취직을 했습니다.
고된 삶의 연속으로 신앙생활을 제대로 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15살때 고향으로 다시 내려와서 사춘기시절에 다시 교회를 다니기 시작하고
모태신앙이었던 유아기에 어머니께서 눈물을 흘리면서 하나님께 간곡한 기도를 하시던 모습이
떠 올라 성경을 읽고 또 읽으면서 하나님 나라를 보게 되었습니다.
사춘기시절에 방언도 받고 그 이후로 믿음 생활을 하면서 독학으로 공부를 하며 검정고시로
총신대 신학을 2년 하다가 군대에 가게 되었습니다.
군대 갔다 온 이후, 청년기때에 뜨겁고 열정적인 패기로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게 되었습니다.
당시에 고려은단 회장님 조ㄱㅊ 장로님께서 세우신 일암농장수양원에 박ㅎ 전도사님의 믿음의 길을 굳건히 하고
교회학교 초등부교사와 유치부교사도 했었습니다.
그러는 가운데 집안 어른들께서 교회 다닌다고 구박을 하고 못살게 하므로 다시 서울로 올라와서
신앙생활을 잘 할 수 있을 것 같았는데 뜻대로 되지않았습니다.
그 당시 하나님께 간구하고 해 보았지만 시련을 주시려고 했는지 믿음을 져 버리게 되었습니다.
그후 교회도 안 나가게 되고 교회 다닌 사람을 못살게 굴기도 하면서 괜히 트집을 잡고 미워했습니다.
또한 우상숭배와 미신을 믿고 무당들이 굿하는 곳에 찾아가서 같이 춤도 추고 하면서 살았습니다.
그러던 중 하던 사업의 사업의 거듭 실패로 1992년 25억이라는 부도를 막지 못해서 처음으로 부정수표법 위반으로
수감 되었는데 그 당시 하나님께 회개하지도 않고 계속 나쁜길로 계속 생활하다가 배도 타보고 세상일은 다 한 것 같습니다.
그러다가 이곳에 오기전 살았던 인천 옹진군 연평도에서 자리를잡고 '오토바이 수리센터와 중장비 선박 수리점과 꽃게 유통 사업'을 하면서 잘 지내고 있었는데 잘 알고 있던 보험설계사와의 잘못된 교제와 탐욕으로 구속이 되어서 이곳 순천성에 수감이 되었습니다. 이곳에서 수감생활을 하던 중 다시 기독교 집회에 한번 참석을 하게 되었는데 ,떡을 받는 재미로 참석 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기독교 회장님이 항상 웃는 얼굴로 반갑게 맞아 주는 얼굴이 생각이 나고 마음 속에서 다시 하나님께서 나를 맞아 주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내가 배신했던 하나님께서 성령의 감동하심으로 생활 속에서 말씀을 뗄 수가 없었고, 다시 보게 되는 말씀이 나의 모든 죄를 대신해서 골고다 언덕길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언덕길을 올라가는 모습에 나도 모르게 회개의 눈물로 다시금 주님을 다시금 주님을 영접하게 되었습니다.
매일 새벽기도, 회개와 반성의 기도로서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도록 나를 받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또한 연단의 생활 속에서도 매일 같이 말씀을 읽을 수 있어서 감사하고 2030년 6월 29일이 만기 출소일이지만
항상 함께 해 주시는 주님께 감사뿐입니다. 그러는 가운데 십자가전도단과 서신결연을 맺게 되고,
간사님을 통해 성경공부와 하나님 말씀을 배울 수 있어서 너무 감사합니다.
기독교 집회를 통해 믿음의 자녀로 거듭나게 해 주신 성삼위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류ㅎㅅ 담임목사님과 종교담당 김ㅈㅂ교감 계장님이 항상 반갑게 대해 주시고,
소ㅇㅇ기독교 회장님 과 모든 스텝 형제님들께도 감사합니다.
이제는 매주 화요일이 기다려지고 집회에 참석할 수 있게 해 주신 하나님의 섭리하심도 감사합니다.
항상 좋은 말씀으로 공급해 주시는 목사님분들과 김ㅎㅅ목사님께도 감사합니다.
항상 감동을 주시는 '밀알선교회'모든 분들께도 감사합니다.
이곳 '신우회' 모든 분들, 사역에 힘써 주시는 모든 분들께 감사합니다.
모든 것이 "은혜"임을 생각하며 감사 감사뿐임을 고백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