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인트로
나의 노트북 패스워드는 6969이다. 1969년 6월9일에 태어나서이다. 내가 태어난 1969년은 지구 탄생 후 가장 의미있는 해였다. 지구가 화성 정도 크기의 행성인 '테이아(Theia)'와 부딪혀 생긴 달에 45억년만에 지구의 생명체가 진화를 거듭하여 도달한 해이다. 내가 태어나고 한달 뒤, 아폴로 11호가 달에서 보낸 영상에서 아빠는 달의 지평선 보고 감동한 나머지 내이름을 설월평선이라고 지어 출생 신고를 했다. 나의 특이한 이름 덕분에 설월(雪月, 유키수키)이라는 일본성씨를 가진 귀화인으로 오해 받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나는 69라는 숫자와 인연이 참 많았다. 순창 설씨 옥천군파 69대 손으로 태어났다. 삼척초등학교는 69회로 졸업했다. 심지어 군생활로 20사단 69포병대대에서 당번병을 했다.
마부의 딸
부모님이 모두 공무원인 탓으로 나의 유년기를 한 도시에서 그리 오래 보낼 수가 없었다. 엄마가 강릉에서 속초 영랑호숫가 한 초등학교로 전근을 가면서 의도치 않게 속초는 내나이 일곱에 인생 두번째 정착지가 되었다. 생각해 보면 일곱살 아이의 눈에 당시 속초는 그로테스크한 곳이었다. 속초는 육이오 전에 북한땅이었고 전쟁후 각지에 흩어진 실향민들이 모여 들어 마치 북조선민속촌 같은 느낌이었다. 말투 뿐만 아니라 먹거리도 이상했다. 내가 살았던 강릉에서는 길거리 간식이 번데기나 쥐포였는데, 속초에서는 리어카에서 삶은 도루묵알을 팔았고, 아이들은 꼬깔 모양 종이봉지 안에 든 도루묵 알을 오물 오물 씹다가 삼키기가 거친 껍질을 길바닥에 뱉었다. 모습이 메이저 리그에서 선수들이 씹다가 뱉는 입담배와 흡사하다.
나의 첫번째 여자(?)는 실향민 부모를 둔 동갑내기 69년생 아이였다. 엄마와 형은 학교에 가서 나는 집에서 혼자 놀았다. 바로 행길 건너가 해변이었는데 바다에서 혼자 놀 용기가 나지 않았다. 엄마가 바다에 가면 혼날 것이라고 엄포를 놓았기 때문이다. 초여름 어느날 나는 넘지 말아야 할 신작로를 건너고 말았다. 거기서 말집 딸 경숙이를 만나게 되었다. 정확히 말해 경숙이의 아버지는 노새로 건축자재나 농산물을 나르는 업을 하고 있었다. 노새의 첫인상으로 노새똥이 길바닥에 떨어지지 않도록 노새와 구루마 사이에 똥받이가 있었던 게 신기했다. 그아이와 바닷가에서 어떻게 친하게 되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은데, 아마 결정적으로 가까워진 계기는 땅콩빠다와 탱 분말쥬스였을 것이다. 원주도립병원에서 근무했던 아빠가 달에 한번 정도 집에 미제 식품을 선물로 가져 오셨다. 원주 암시장에서는 미군 부대, 캠프롱에서 유출된 미제 통조림이나 양주 같은 것들을 팔고 있었다.
나는 오렌지색 쥬스가루를 경숙이의 손바닥에 털어 놓았다. 조심스레 혀끝을 가져다 댄 아이의 눈에서 빛이 났다.
"내래 이런 가루는 처음이지비."
"니 우리집에 같이 갈래?"
"먹을게 또 있슴메?"
"어"
동네에서 유일한 냉장고가 우리 집에 있었다. 냉장고를 열어 땅콩빠다병을 꺼내 들고 검지 손가락을 푹 찔러 땅콩빠다 덩어리를 아이에게 내보였다. 경숙이는 난생 처음 만난 이상한 물질에 뒷걸음질로 반응했다.
"뜸들이지 말고 먹어 보라니."
경숙이는 내 손가락을 입에 넣었다. 아이의 입안이 따뜻했다.
어느날 경숙이와 바다에서 놀다가 집에 왔다. 그날따라 일찍 퇴근한 엄마가 의심의 눈초리로,
"월평선 너 물에 들어 갔지?"
나는 능청스럽게 추호의 망설임도 없이,
"아니."
애거사 크리스티의 추리소설을 즐겨 읽었던 엄마는 혓바닥을 내 어깨죽지에 가져다 맛을 보았다. 당연히 짠맛을 느꼈으리라. 나는 더이상의 변명을 포기한 채 처벌 만을 기다렸다. 가장 고통스러운 형벌은 기다림이다.
"너 아빠한테 이를거야. 이번에 오시면 가만이 안둘걸. 각오해."
지난 번에 걸렸을 때는 발가벗겨서 마당에 있는 플라타너스 나무 아래에서 가죽 혁대로 흠씬 두들겨 맞았다. 동해 바다는 몇발자국만 들어 가도 갑자기 깊어 진다. 지금 생각해보면, 일곱살짜리 아이가 어른의 감시 없이 바닷물에서 놀다가 살아 나온게 신기하기도 하고 맞아도 싸다. 며칠 후, 동사무소 확성기에서 방송이 흘러 나왔다.
"마이크 테스또, 아 아. 구선생님, 원주에서 남편분 전화 왔습니다." 엄마는 전화를 받고 밝은 모습으로 집으로 돌아왔다. 가슴이 철렁했다. 아빠가 주말에 오신다. 나는 며칠동안 고민 끝에 가출을 결심했다.
아빠가 오는 날에는 시외버스 터미널에서 아침부터 기다렸는데, 그날은 가출을 했다. 말집에 찾아가서 집에서 나왔으니, 그집 수양아들로 삼아 달라고 경숙이 엄마에게 부탁을 했다. 그때 마침 그집 식구들이 밥을 먹고 있었다. 근대된장국에서 김이 모락모락 올라 오고 있었다. 식구들 틈에 비비고 들어가 앉았다. 경숙이 밑으로 동생들이 두세명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날 밤 그집에서 잤다. 단칸방에 모기장이 두개 쳐 있었는데 나는 아이들이 있는 모기장으로 들어가 자리를 잡았다. 낯선 환경에서 잠이 올리가 없었다. 경숙이가 나를 안심 시켰다.
"울 오마니래 아까 니네 집에 갔다 왔지비. 그러니 니래 걱정 아이 해도 됩메."
그리고 내손을 잡아 주었다. 나는 그아이의 손을 잡고 잠에 들었다. 그 다음날 나는 집으로 끌려가 나무 아래서 실컷 두들겨 맞았다.
기억은 왜곡 되기 쉽다. 내가 기억하고 있는 것은 기억 조각을 내가 원하는데로 짜맞춘 것일 수도 있고 다른 사람을 통해서 들은 이야기를 기억한다고 착각할 수도 있다. 엄마가 가끔 그러셨다. 나는 어렸을때 부터 엄청 응큼했다고. 아마도 경숙이와 했던 병원놀이에 관하여 엄마에게 얘기했던 것 같다. 내가 어떻게 말했는지는 엄마가 알려 주지 않고 일찍 돌아 가셨지만, 내 기억으로는 우리가 옷을 벗고 서로를 만지고 놀았던 것 같다.
다음해 나는 입학을 했고 부반장 정희에게 꽂혀 경숙이를 잊었다. 정희는 10여년 후에 내인생을... ㅠㅠ. 말집 아이 경숙이는 내가 처음으로 몸을 섞은 여자다. 하지만 그 기억의 진위는 알수가 없다. 엄마의 냉소 섞인 미소가 그립다.
광부의 딸
69년생에게는 특별한 해가 하나 더있다. 한국에서 올림픽을 개최한 1988년이다. 69년생이 재수를 하지 않고 대학을 가면 88학번이 된다. 대학 선배들은 우리를 "88 꿈나무"라고 불렀다. 독일의 바덴바덴에서 열린 IOC총회에서 "쎄울 꼬레아"와 함께 함성이 울린 1981년에 나는 강원도 삼척의 탄광촌에 있는 한 초등학교에 다니고 있었다. 그해 삼척군 장성읍과 황지읍이 합쳐져 태백시로 승격 되면서 탄광마을의 최전성기를 이루고 있었다. 이 산골에 칼라 티비가 없는 집이 없었고 개가 만원짜리를 물고 다닌다는 풍문이 있을 정도였다. 돈과 사람이 넘쳐나다 보니 당시 전국에서 가장 큰 환락가 속칭, 대밭촌이 형성되었다.
우리 6학년 9반 친구 유진이는 어려서 갱도 매몰사고로 아버지를 잃었다. 다행이도 유진이 엄마는 보상금으로 대밭촌에 식당을 열어 돈을 잘벌고 있었다. 말이 식당이지 젓가락 두들기는 대포집이었다. 노래를 제법 잘 부르는 유진이는 취객들 앞에 불려 나가 유행가를 부르는 곤혹을 치르곤 했다. 새학기가 얼마 지나지 않아 유진이는 내가 다니는 이층 피아노 학원의 문을 수줍게 두드렸다. 그아이는 두달 만에 바이엘 상하권을 모두 떼었다. 유진이가 노래를 잘 부르니 음악성이 좋다고 생각했으나 이유는 다른데 있었다. 방과후 대부분의 시간을 피아노 학원에서 보냈던 것이었다.
1981년 18호 태풍 아그네스가 한반도를 강타했다. 총강수량은 역대 1위를 수립하고 그 기록은 2001년 태풍 루시가 오기까지 향후 20년 동안 깨지지 않았다. 철암천이 붕괴된 그날도 어김없이 유진이는 홀로 피아노 학원에서 체르니100 연습곡 69번을 치고 있었다. 나는 옆방 피아노 의자에 앉아서 피아노 선생님을 기다리고 있었다. 폭우가 물폭탄으로 바뀌어 유진의 피아노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한참이 지나도 선생님이 나타나지 않았다. 기다리다 못해 밖에 나가 보았는데 건물 일층은 이미 물에 잠겨 있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선생님은 집에 가서 점심을 먹고 오다가 갑자기 불어난 물에 휩쓸려 실종되었다. 나는 호들갑을 떨며 유진이에게 달려갔다.
"유지이, 여 와바라. 물난리 났데이"
소년 소녀가 내려다본 창밖 풍경은 13살 평생 한번도 경험하지 못한 두려운 모습이었다. 나는 집에 연락을 해야할것 같아서 전화 다이얼을 돌렸다. 10국에 5269… 신호음이 들렸으나 아무도 내 전화를 받지 않았다. 엄마 학교 전화 번호를 알아 보려고 114에 걸어 보았으나 통화중이다. 유진이가 엄마 가게에 전화를 걸으려는 찰라 전기가 나가면서 전화기가 먹통이 되어 버렸다.
"유지이 니 안 무섭나?"
"우리 바둑으로 알까기하고 놀래? 이기는 사람이 꼴밤 때리기."
폭우는 좀처럼 잦아들 것 같아 보이지 않았다.
"어두워서 뭐가 보여야지 놀지"
"저번에 정전 됐을때 선생님이 피아노 의자에서 양초 꺼내는거 내가 봤다."
피아노 의자 뚜껑을 열어보니 양초가 거의 한 타스나 들어 있었다. 다행히도 오리가 그려진 향로성냥도 있었다. 나는 탁자 위에 촛농을 떨구어 양초를 고정시켰다. 유진은 캐비닛 안에서 바둑판을 꺼내와 펼치면서 말했다.
"봐주기 업시다."
유진이는 알까기 고수였다. 내게 마지막 남은 바둑알을 제거하기 위해 상체를 숙여 신중을 기하고 있었다. 헐렁한 티셔츠 안에서 젖무덤이 촛불에 하얗게 반사되고 있었다. 나는 술에 취한 듯 딱밤의 통증을 느낄수가 없었다.
"유지이 니 배 안고프나?"
"먹을게 있나?"
"내가 한번 찾아 볼께."
학원 선생님 책상 서랍을 열었다. 지금은 재난 상황이라서 이정도의 행위는 충분히 납득 될 수 있을 거라는 것을 알만한 나이였다. 오른쪽 윗서랍에는 먹다 남은 에이스 크래커가 있었고 그 아래 서랍에는 손님 접대용 커피, 프리마, 율무차, 유자차가 있었다. 우리는 일단 에이스 크래커로 허기를 달래고 소파에 기대어 쉬고 있었다. 긴장된 침묵을 깨고 유진이가 말을 걸었다.
"니 십오소년표류기 읽어 봤나?"
"십오소년 우주표류기 말이나?"
"아니, 그거는 만화고… 됐데이."
"그건 왜 물어보는데?"
"밖에를 봐라. 우리 바다에 표류하는거 같지 않나?"
"그런거 같기도 하네."
유진은 뺨은 이미 발그스레해져 있었다.
"월평선, 니 4학년때 전학 왔을때 니네 엄마가 우리 반 담임선생님이었던거 아나?"
"몰라"
"나 선생님 심부름으로 니네 집에 가봤는데…"
"근데?"
"그냥… 내 가슴에 머 묻었나? 아까부터 왜 힐금거리나?"
가슴이 콩닥콩닥 했다.
"헛소리 하지 마래이. 바다에 표류하는거랑 우리 엄마가 니 담임인거랑 무슨 상관이나?"
"십오소년 표류기 읽으면서 내가 만약 무인도에 갖힌다면 월평선이 니랑 같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상상을 해본 적이 있다."
"왜 하필 난데?"
"내가 니 좋아한다고… 빙신아."
비바람이 몰아쳐 창문이 뜯어져 나갈 것만 같았다.
"니 내 찌찌 만져 볼래?"
심장이 콩닥거리다 못해 멈춘 느낌이었다. 나는 손을 벌벌 떨며 유진의 가슴에 손을 가져다 댔다.
"옷속에 손 넣어도 된데이."
무언가 날라와 피아노 학원 유리창을 때려 부수고 유리 파편과 함께 물보라가 밀려 들어왔다. 유진이는 날카로운 비명 소리를 내었다. 나는 재빨리 유진이 손을 잡고 피아노가 있는 방으로 뛰쳐 들어가 문을 굳게 닫았다.
유진은 조금 진정 되었는지 울음을 멈추었다. 피아노 방에는 창문이 없어서 낮에도 불을 켜고 있어야 했다. 지금은 정전이라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더군다나 양초와 성냥은 옆방에 있어서 그저 캄캄한 밤이 빨리 지나가길 기다리는 수 밖에 없었다. 우리는 바람에 문이 열리지 않도록 문에 등을 기대고 앉아 있었다. 8월 말이라 할지라도 밤에는 기온이 떨어져 추웠다. 우리는 체온을 유지하기 위해 서로 부둥켜 안고 밤을 지새웠다. 유진의 뺨에서 짠 물기를 느꼈다. 나는 유진이가 안심하도록 더 힘껏 안아 주었다.
새벽녁에 바람이 잠잠해졌으나 비는 여전히 세차게 내리고 있었다. 조심스럽게 피아노방을 나와 보니 응접실은 밤새 쑥대밭으로 변해 있었다. 본능적으로 생존을 위해 필요한 것들을 챙겼다. 옆방에서 양초와 성냥을, 책상 서랍에서 먹을 것들을 가져왔다. 혹시 다시 불어 닥칠지도 모를 폭풍을 대비하여 화장실에 가서 마실 물을 주전자에 담아 왔다. 그날 아침은 유자차를 숟가락으로 퍼 먹었다. 몸에 당분이 좀 들어가니 힘이 나고 따뜻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염려스러운 지리함이 계속되는 시간들이었다. 밖이 조금씩 밝아 오자 문틈으로 들어오는 가느다란 빛줄기로 서로의 존재를 확인할 수가 있었다. 그것 보다도, 하루종일 서로를 만지고 비비며 살아 있음에 안도하며 시간을 보냈다.
유진이가 화장실에 혼자 가기 무섭다고 따라 오라고 했다. 나는 화장실에서 촛불을 들고 유진이가 일을 마칠 때까지 기다렸다.
"월평서니 니, 월경이 뭔지 아나?"
"어. 생리…"
"어태 아나?"
"엄마가 오강에 생리 해놓은거 봤다."
"그러면 생리가 어데서 나오는지 아나?"
"똥구멍"
"아니다. 구멍이 따로 있다."
"진짜로? 어태 아는데?"
"나 저번달에 처음으로 생리 시작했다."
"나는 엄마들만 하는 줄 알았는데…"
"월평서니 니, 내 월경구멍 어떻게 생겼는지 궁금하지 않나?"
"..."
"함 볼래?"
"..."
유진이는 변기에 걸터앉아 다리를 벌렸다.
나는 다리 사이에 촛불을 가져다 대고 자세히 들여다 보았다.
그후, 우리는 내가 학원에 들어 간지 정확히 삼일에서 세시간 뺀, 69시간 만에 극적으로 구조되었다.

첫댓글 삶이 참 드라마틱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