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삼국지 [2]
주몽, 고구려를 건국하다 ②
그들은 볼품없는 말을 선택한 주몽을 비웃었으나?
유화의 얘기를 들은 금와왕은 그녀를 가엾게 여겨 궁궐로 데려갔다.
유화는 별궁에 머물며 궁녀들의 보살핌을 받았다. 며칠 후 별궁을 찾은 왕은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단정하게 차려입은 유화의 모습은 금방 하늘에서 내려온 월궁 선녀처럼 아름다웠다.
금와는 유화를 후비(後妃)로 맞아들이고 싶었다. 그러나 유화의 마음속에는 해모수뿐이었다.
왕은 끈기 있게 기다리면서 그녀를 왕후와 다름없이 대접했다. 매일 맛있는 음식과 훌륭한 의복·아름다운 장신구 등을 선물하면서 마음을 얻으려 애썼다. 하지만 그 어떤 것도 그녀의 마음을 움직이지 못했다.
어느 날 금와왕이 낮에 깜박 잠이 들었는데 꿈에 천제의 아들이 나타났다.
“나는 해모수라 하네. 유화가 곧 내 아이를 낳을 것이야. 장차 천하를 호령할 아이니 자네가 잘 돌봐 주길 바라네.” 너무도 생생한 꿈이었다. 금와는 시종을 불러 별궁에 가서 유화를 살피고 오라 했다.
그때였다. 유화의 시중을 드는 시녀가 황급히 뛰어 들어왔다.
“조금 전에 하늘에서 눈부신 빛이 내려와 유화부인의 방에 머물다 사라졌습니다. 너무 기이한 일이라 이리 아룁니다.”“부인은 어떠하시냐?”
“한참 혼절해 계시다가 정신이 드셨습니다. 부인께서 깨어나시자마자 달려온 겁니다.” 금와는 서둘러 유화의 처소로 갔다. 유화는 매무새를 가다듬고 국왕을 맞이했다. 은은한 서기(瑞氣)가 그녀를 감싸고 있었다.
그로부터 열 달 후, 유화는 다섯 되 정도 되는 큰 알을 낳았다.
금와왕은 상서롭지 못한 일이라 여기고 알을 돼지우리에 던져 넣었다. 그러자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돼지들이 알을 먹지 않고 빛이 잘 드는 곳에 굴려 놓는 것이 아닌가. 성질이 난 왕은 알을 거두어 길 가운데 버렸다.
지나는 소와 말이 알을 밟지 않고 피해 갔다. 인적이 드문 들판에 버려도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온갖 짐승이 그 알을 감쌌다. 오기가 생긴 금와는 석수장이를 불렀다.
석수장이가 알에 정을 대고 망치로 힘껏 내리쳤다. 알은 끄떡도 하지 않았다.
금와는 하는 수 없이 알을 유화에게 돌려주었다. 유화는 알을 따뜻한 아랫목에 두고 정성스럽게 돌봤다.
며칠이 지나자 알이 스스로 깨졌다. 안에서 잘생긴 사내아이가 나왔다. 이 아이가 바로 주몽이었다.
주몽은 어려서부터 생김새가 비범하고 영특했다.
일곱 살이 되자 스스로 활과 화살을 만들어 사냥하러 다녔다. 짐승을 겨냥해 쏘면 빗나가는 법이 없었다.
이에 놀란 사람들이 아이를 일컬어 ‘주몽’이라 했다. 부여 말로 ‘활을 잘 쏘는 사람’이란 뜻이었다.
금와에게는 태자 대소를 비롯해 7명의 아들이 있었다. 주몽은 이들과 함께 사냥할 때마다 많은 짐승을 잡았다. 대소 형제들은 뛰어난 주몽을 시샘했다.
그들은 아이를 나무에 매달거나 진흙탕에 빠뜨리거나 하면서 괴롭혔다.
성년이 되면서 주몽의 명성은 날로 높아졌다. 그를 따르는 자가 나날이 늘어 갔다. 이를 지켜본 대소 형제들은 주몽이 자신들의 지위를 위협할지 모른다는 위기의식을 느꼈다.
그들로서는 한시라도 빨리 주몽을 없애야 했다. 대소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금와왕 앞에서 주몽을 헐뜯었다.
“주몽은 기이하게 태어났을 뿐 아니라 용모와 풍채도 남다릅니다.
주몽이 흉심이라도 품는 날이면 저희 일곱 형제 모두 무사하지 못할 겁니다.
이참에 그를 죽여 후환을 없애는 게 좋겠습니다.”“그 무슨 가당치 않은 소리냐!” 금와는 대소를 꾸짖어 내보내긴 했지만, 주몽과 왕자들의 갈등을 마냥 모른 척할 수는 없었다.
왕은 일단 분란이 가라앉을 때까지 주몽을 말 목장으로 내보기로 했다.
목장에 간 주몽은 묵묵히 말 돌보는 일을 했다. 그러나 시일이 지날수록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게 됐다.
주몽은 유화에게 자신의 속마음을 털어 놓았다. “어머니는 소자가 천제의 손자이자 태양신의 아들이라고 하셨지만, 현실은 말똥이나 치우는 신세입니다. 이래서야 무슨 큰일을 하겠습니까!” 부인이 온화하게 웃으며 아들을 위로했다.
“어디에 있든 얻을 것이 있는 법이다. 목장에서는 무엇이 제일 소중하다고 생각하느냐?”“좋은 말이겠지요.”“그럼 그것부터 네 것으로 만들어라.”
주몽은 어머니 말씀을 듣고 깨달은 바가 있었다. 목장으로 돌아간 주몽은 가장 좋은 말을 골랐다.
천리마라 불릴 자격이 있는 훌륭한 말이었다. 그는 말의 혀에 침을 꽂았다.
잘 먹지 못한 말은 보름도 안 돼서 뼈가 앙상하게 드러날 정도로 야위었다.
때마침 금와왕이 왕자들을 데리고 목장을 찾았다. 주몽이 잘 돌본 덕분에 말들이 하나같이 몸에 윤기가 흐르고 활기가 넘쳤다. 금와는 주몽의 노고를 위로했다.
“내 너에게 상을 내릴 테니 원하는 게 있으면 말해 봐라.” 왕자들의 못마땅한 시선이 주몽에게 날아와 꽂혔다.
“저는 그저 말 한 필이면 족합니다.” 늠름한 말들 사이에서 주눅 들어 있는 야윈 말을 가리켰다.
금와는 뜻 모를 웃음을 짓더니 쾌히 승낙했다. 대소 형제들은 볼품없는 말을 고른 주몽을 비웃었다.
대소가 크게 웃으면서 말했다. “이런 궁벽한 곳에 처박혀 있더니 제 주제를 깨달았나 보다.
” 왕의 행차가 돌아간 후, 주몽은 말 혀에 꽂아 두었던 침을 뽑고 정성스럽게 보살폈다.
천리마는 한 달도 안 되어 전처럼 다시 살이 오르고 생기를 되찾았다.
얼마 후, 주몽은 부름을 받고 금와왕 앞에 나아갔다. 금와는 주몽에게 손잡이가 옥으로 된 채찍을 하사하며 말했다.
“여기서 남쪽으로 천 리쯤 가면 졸본부여가 있다. 짐의 먼 친척인 연타발(延陀勃)이 다스리는 나라다.
거기 가서 짐의 아들이라 밝히고, 이 채찍을 보여 줘라. 그러면 반갑게 맞아 줄 것이다.
수일 내로 떠나도록 해라. 요즘 대소의 동향이 심상치 않구나.”“저 혼자 떠나란 말씀입니까? 어머니와 식솔들은 어찌하고요?”“네가 떠나면 대소도 너의 식솔들에게 해를 끼치진 않을 거다.
내가 잘 돌볼 테니 걱정하지 마라.” 왕의 진심이 느껴졌다. 주몽은 왕에게 감사 인사를 드린 후, 곧장 거처로 돌아갔다.
오이·마리·협보 등의 무사가 이미 몰려와 있었다. 그들은 몹시 다급해 보였다.
성격이 급한 오이가 채근했다. “아무래도 사태가 긴박하게 돌아가는 것 같습니다.
대소가 비밀리에 자객을 모으고 있다 합니다. 당장 이곳을 떠나셔야 합니다.”“너희는 준비가 다 되었느냐?”“이미 짐도 꾸렸고 말도 두 필씩 준비해 두었습니다.”
이때, 유화가 보낸 사람이 급히 달려와서 고했다.
“임금님이 대대로 내려오는 나라의 보물인 옥 채찍을 왕자님께 준 걸 알고, 대소 태자가 길길이 날뛰고 있다 합니다.
당장에라도 쳐들어올 수 있으니 어서 떠나라는 유화부인의 전갈입니다.
” 막상 어머니와 아내를 두고 떠날 생각을 하니 주몽은 가슴이 미어졌다.
그렇다고 아무 기약도 없는 곳으로 연로한 어머니와 산달이 가까워진 아내를 데려갈 수는 없었다. 그는 내실로 들어가서 부인 예씨를 찾았다.
그녀는 이미 만삭이라 산일만 기다리고 있었다. 누워 쉬고 있던 예씨는 주몽이 들어서는 것을 보고 부른 배를 조심스럽게 받치며 일어났다.
주몽이 입술을 지그시 깨물며 말했다. “아무래도 당장 떠나야 할 것 같소.”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던 예씨는 애써 눈물을 감추었다.
“걱정하지 말고 떠나세요. 배 속의 아이는 제가 잘 지킬게요.” 주몽은 아내의 배를 어루만졌다.
“일곱 모가 난 돌 위에 있는 소나무 밑에 신표(信標)를 두었으니, 아이가 장성하면 그것을 찾아 아비에게 오라 하시오.”
말을 마친 주몽은 눈시울이 붉어져 마당으로 나섰다. 어둠이 짙게 깔려 있었다.
그는 수하들과 함께 야음을 틈타 도성을 빠져나갔다.
이튿날 아침, 주몽의 탈출 소식을 접한 대소는 크게 화를 내며 정병 수백 기를 동원하여 뒤를 쫓게 한 것이다.
다음에 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