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부경(天符經)에 대한 짧은 이해
우연한 기회에 우주 만물의 생성 변화를 81자로 설명한 우리나라 최초의 철학원리서라는 천부경의 존재를 알고 그 오묘한 뜻을 깨닫고자 무수히 외우고 노력하였다. 천부경을 해석하려고 많은 책도 읽었고, 생각도 많이 했지만 내 가슴에 와 닿는 책도 없었고 내 자신의 해석도 내 마음에 썩 들지 않아서 평생의 숙제인가 생각하고 있다. 스승이신 대산 김석진 선생님의 저서를 읽었어도 역시 너무 어려웠다. 확실한 것은 경전이라서 사람마다 용도에 맞는 해석을 하고 있다는 것이며, 또한 완벽한 해석은 영원히 존재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우매한 머리에 그나마 잊을까 두려워 지금까지 마음속으로만 생각해 두었던 것을 처음으로 글로 써 본다.
1. 一始無始一 하나로 시작하였지만 그 시작은 없고
一은 우주, 인간의 창조와 운행, 순환과정으로 생각되며, 무한한 순환 반복을 의미한다고 생각된다. 一을 둥근 원으로 그리면 무한히 반복되어 시작한 지점을 다시 찾을 수 없다. 다른 한편은 一始는 太極이고 無始는 無極으로 이해하면 무극에서 태극이 생겼으므로 둘이 다른 것이 아니고 결국 하나라고 생각할 수도 있으리라
2. 析三極無盡本 셋으로 나누어도 근본은 다할 수 없네
<생각> 우주를 하나라고 보고 이를 셋으로 아무리 나누어도 그 끝까지 갈 수 없다. 수학에서 1/3 이 0.3333...... 으로 무한하게 나가는 이치로 생각되며, 결국 위의 구절과 이어져서 무한히 순환하면서 이어가는 우주의 이치인가 생각된다. 3은 천,지,인의 삼재, 상중하 등 동양사상이나 철학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가 있다.
3. 天一一地一二人一三 하늘이 처음이요, 땅이 두 번째요, 사람이 세 번째라.
고전에 하늘은 子시에 열리고, 땅은 丑시에 열리고, 사람(만물 포함)은 寅시에 낳았다고 하는데 이는 天地人의 생성 순서 또는 位相(上下관계)을 뜻한다고 본다. 여기서 天一, 地一, 人一의 一이 무엇인가? 몇 자 뒤에 같은 형식으로 나오는 것과 비교해 본다.
天一一 地一二 人一三
天二三 地二三 人二三
모두 81자에 불과한 경전에 위와 같은 내용이 나오는 것은 무언가 비교적인 의미가 있을 것으로 생각하던 중 주역에서 一은 陽, 二는 陰이므로 앞의 구절은 陽의 시대인 先天을 암시하고 뒤의 구절은 陰의 시대인 後天을 암시하는 것으로 생각되며, 결국은 先天은 하늘, 땅, 사람의 순서로 생성되었을 뿐만 아니라 또한 서열화 되어 하늘을 우러러보고, 땅을 공경하며 사람이 살았다. 그러나 후천은 陰의 시대이므로 하늘, 땅, 사람의 위상이 同格이어서 하늘과 땅, 사람이 동급이 되었고, 精神보다는 物質 중심의 시대가 되었다. 여기서 선후천의 암시가 되어 있어 후천 시대를 예고하는 것으로 보인다.
4. 一積十鉅無匱化三 하나에서부터 쌓아서 십으로 크게 해도 다함이 없이 셋이 되리라.
1에서 부터 하나하나 더해 가면 10진수로 확장되어 끝없이 많은 수로 증가하지면 한 없이 증가하는 것이 아니라 도로 셋으로 된다. 아무리 많은 것도 크게 분류하면 셋(천지인, 상중하, 의식주, 머리가슴배 등)으로 나누어 지는 이치이기도 하고, 수많은 기업체가 난립해도 결국은 Big 3으로 변하는 이치를 말한다.
5. 天二三 地二三 人二三 후천에는 하늘도 땅도 사람도 모두 삼이라.
위에서 설명한 바와 같이 후천에는 음(陰)의 시대에 되어 하늘이나 精神, 땅이나 자연에 대한 경외감이나 공경함이 없이 사람과 같은 동급으로 취급하는 陰의 세상이 되니 정신보다는 물질, 선보다는 악, 남자보다는 여자가 득세를 하는 시대이다. 얼핏 보면 민주주의의 평등사상 같기도 하지만 인류의 소중한 정신문화 유산, 권위 등이 모조리 무너지고 있는 현실을 보고 있는 느낌이 든다.
6. 大三合六 生七八九 큰 삼이 육과 합하여 7,8,9를 만들고
大三은 天地人으로 생각되며, 天의 1이 6과 합하여 7, 地의 2가 6과 합하여 8, 人의 3이 6과 합하여 9가 된다. 6은 천부경의 한 가운데에 있는 글자이고 십진수에서도 정 중앙에 위치하는 수로써 새로운 세상 즉 후천이 시작되는 수이다. 7,8,9도 역술적으로 많은 의미가 있으므로 여기서 쉽게 설명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천부경이 현대적인 문자나 숫자가 확립되기 이전인 수 천년 전에 만들어졌다고 보면 10진법이라는 숫자 구성원리를 설명한 것이 아닌가 생각되기도 한다. 천부경의 성립 시기라면 이것도 엄청난 발견이리라. 솔직히 말해서 더 이상은 알지 못하겠다.
7. 運三四成環 五七一 3,4가 운행하여 5,7,1의 고리를 이룬다.
이 부분도 상징적인 의미를 찾지 못하여 안타까운 부분이다. 어떤 분은 3달씩 4계절로 1년이 이루어지고 이것이 5,7의 합이 12월이니 일 년이라는 말을 하기도 하는데 말끔하게 이해하기는 어렵다. 다만 주역의 근본이 되는 하도(河圖)를 보면 3과 8(오행의 木)은 동쪽, 4와 9(金)는 서쪽, 5와 10(土)는 중앙, 2와 7(火)은 남쪽, 1과 6(水)은 북쪽이 서로 좌우 상하가 얽히는 고리 모양이 되니 五行의 원리를 설명한 것이 아닌가 생각되기도 한다. 이 낙서는 오행 상생(相生)의 원리를 설명하고 있는데, 대산 선생님께서 천부경이 한국의 주역이라고 말씀하신 것이 이 부분이 아닌가 생각되기도 한다. 그러나 이 부분 역시 자세히 깨닫지는 못하였다.
하도(河圖)의 숫자 배열과 고리 형태.
8. 妙衍萬往萬來 用變不動本 묘하게 흘러서 만 가지가 가고 만 가지가 오나 사용하는 것은 변해도 그 근본은 변하지 않으리라.
삼라만상은 오묘하게 흘러서 사람과 동물은 생로병사(生老病死)를 거치고 식물과 사물들도 생장수장(生長收藏)을 거치면서 수많은 것들이 죽고, 사라지고 또 수많은 것들이 태어나고 만들어지면서 끝없이 이어진다. 이러한 운행 속에서 사용하는 것(용도나 물건)은 변해도 그 근본은 변하지 않는다. 예전에는 짚신을 신었지만 지금은 구두를 신는다. 그러나 그 근본은 발에 신는 신발일 뿐이다. 위에 선후천의 변화를 예고하고 있지만 변하는 것은 후천의 물질 문명일 뿐이고, 선천의 정신 문화는 영원히 변치 않을 것이다.
주역 서문에 ‘隨時變易하야 以從道也니라(때에 따라서 변하고 바뀌되 그 도를 따라야 한다)’라는 말과 같은 뜻임이 분명하다. 수천 년 인류의 역사에서 쌓아진 진리나 가치 등은 지금 사람들의 입맛에 맞지 않을지 모르나 입장이 바뀌어지면 그 소중함을 깨닫게 될 것이다. 효도 정신을 비웃던 자가 자신이 늙어서도 그럴 수 있을가? 그 근본은 변치 않음을 알아야 할 것이다.
9. 本心本太陽昻明 人中天地一 사람의 본래의 마음은 태양과 같이 높고 밝음에 근본을 두니 사람 속에 天地의 진리가 있느니라.
태양은 이 세상은 모든 것들이 살 수 있는 힘을 주면서 그 공을 자랑하지 않는다. 우리 민족의 고구려, 신라, 백제, 조선 등의 국호를 보면 모두 태양과 관련이 있다. 단군의 弘益人間(널리 인간을 이롭게 한다) 정신은 바로 이 태양 사상과 일치하는 것으로, 이 天符經이 단군조선의 정치 이념이었다고 전해지는 것과 일치하는 내용이며, 동학운동에서의 人乃天(사람이 곧 하늘이다) 사상으로 전해졌다고 보인다. 사람 속에 천지의 진리가 있다함은 우주와 사람은 서로 다른 개체가 아니며 하나일 뿐이며, 음양오행과 같은 이치가 서로 통하여 가히 떼어 놓을 수 없는 관계에 있다.
10. 一終無終一 하나가 끝났어도 그 끝은 없도다.
一은 하나라고 하였지만 무한히 순환되는 우주, 진리라고 보여지며, 한 시대가 끝났어도 그 끝은 없고 다시 시작하는 순환으로 이어진다. 주역에서도 마지막으로 끝나는 64번째 괘의 이름이 未濟이다. 주역 상경(上經)의 천지창조와 하경(下經)의 인간 생활이 순환을 마치고 불(火)은 위에, 물(水)는 아래에 자리를 잡았으니 모든 순환을 마친 것이다. 이대로 끝나면 세상의 종말이 되니 성인(聖人)께서 마지막 괘의 이름을 미제(未濟)로 지으셨다. 미제(未濟)는 아직 건너지 않았다는 뜻이니 건너기 위하여 다시 1번으로 순환하도록 되어있다. 동양의 고전은 시작과 끝을 始終이라고 하지 않고 꼭 終始라고 쓴다. 글을 읽을 때도 뒷 줄의 첫 자를 앞줄 끝에 붙여 읽는다.
천부경을 공부하는 사람들은 여기에서 현묘하고 신비한 도술을 찾으려 하지 말고 태양과 같이 세상을 이롭게 하면서도 그 공을 자랑하지 않는 정신 즉 홍익인간의 정신을 깨닫고 마음에 새겨서 조금이라도 좋은 일을 하면서 살려고 하는 정신이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우선 자기 자신을 사랑하고 수양하며, 가족을 비롯한 주변을 위해서 노력하고, 나아가 사회와 국가를 위해서 노력한다는 정신을 갖는 것이 천부경의 깊은 뜻이라고 생각된다. 나는 언제부터인가 천부경을 가슴에 품고 다녔다. 좋은 마음을 가지면 하늘이 복을 주실 거라고 생각하는데, 마음이 비록 착하지 못하더라도 훌륭한 뜻을 가진 천부경을 가슴에 품고 다니면서 착한 마음을 가지려고 노력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