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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계룡세계軍문화축제 문학심포지엄 제 3 주제
분단, 비무장지대(DMZ)의 시문학운동
전 민 (시인 :한국현대시인협회 부이사장)
1. 남북 분단 후 시문학의 지향점
1950년의 한국전쟁은 한반도에 남북분단을 고정시켜 놓은 비극적인 계기가 되었다 전쟁을 일으켰던 이념과 체제에 대한 거부와 반항이 싹트기도 했고, 새로운 삶의 지표와 가치의 정립을 위한 몸부림도 나타나게 되었다.
분단이라는 특수한 상황에 대한 인식마저 퇴색되어 고착상태가 지속되고 있는 실정이다. 분단이 고착화되면서 우리 민족의 자주적이고 민주적 발전을 저해하는 결정적 요인이 되고 있다. 더 나아가서 남북한 간의 체제 경쟁과 극단적인 대결 양상까지 보이며 동족간의 반목과 불신을 심화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우리가 처해있는 분단의 현실은 민족적 최대의 관심사이며, 남북통일이야말로 우리민족이 궁극적으로 이룩해내야 할 절대절명의 과제다. 통일은 우리에게 있어서는 매우 중요하기에 남북분단 이후의 통일문학이 우리에게 관심사가 되고었다
우리 민족사의 불행인 남북분단을 문학 속에서 어떻게 형상화할 것인가라는 시대적 과제에 인식을 두고, 분단의 아픔과 극복, 이산가족 문제, 군사적 대치로 인한 불신, 전쟁의 상처와 치유, 민족의 단일성 회복, 통일에 대한 열망 등을 주제로 한 분단시대의 시문학운동을 탐색하고 통일시대를 맞이하려는 통일지향 시에 대하여 정리해보고자 한다
쌀가마니 탄약상자 부상병이 탄 달구지를 보고노란 까치들이흰 배를 드러내며 날아 간다후퇴하는 인민군 총뿌리에 떠밀리며서낭당에 절하고 또 절하던 형님은그 후에 다신 돌아오질 못했다오늘도 낮달은 머리 위에서 뒹글고 있지만빛을 먹은 필름처럼 까맣게 탄 사진을 현상해서천도재 올린 우리 식구들절이 멀어질수록 풀벌레 소리로 귀를 막는다나무껍질처럼 투박해진 세월은내 얼굴의 버짐처럼 가렵기만 한지저수지에 돌팔매질을 해물수제비 예닐곱 개나 뜨던 여름이 오면형님은 언제나 거기에 있다6·25를 기억하는 예성강처럼언제나 거기에 있다
-함동선 .「형님은 언제나 서른네 살」
분단 이후 시의 특질은 언어의 가능성과 대상으로서 현실의 시적 수용에 부심하였다. 후퇴하는 인민군 총뿌리에 떠밀리며 서낭당에 절하고 또 절하던 형님은 그 후에 다신 돌아오지 못했고 그 때 형님의 나이가 서른 네 살이라는 비극적 체험에서 유발되는 정서로 분단의 역사적 인식을 드러낸다 전쟁의 현실을 직접 체험한 전후세대는 한국전쟁을 동존상잔의 비극이 또 다시 가족사의 비극으로 인지하고 남북 분단 역사 인식을 가족사적 비극의 실제 체험에서 드러나고 있다
여기서 북쪽으로 눈을 돌리면
육십년 전에 떠나온
고향 마을이 보인다
불에 타 허물어진 돌담 겯에
접시꽃 한 송이가
빨갛게 피어 있다
얘들아, 다 어디 있니
밥은 먹었니
아프지는 않니?
보고 싶구나!
-민 영 .「갈수 없는 고향」
삶의 거처를 옮겨 다니면서 살아야 하는 실향민 시인의 시 에는 잊혀지지 않는 고향의 모습이 선명히 떠오른다 허물어진 돌담, 접시꽃, 같이 뛰놀던 친구들의 기억도 선명하다 그때 그 시절의 친구들이 옆에 있는 듯, 밥을 먹었느냐 아프지는 않니? 시인은 묻는다 이제 세월이 너무 많이 흘러갔다
철망 아래 국화송이찬바람에 흔들리고물가에 푸른 쥐철모 밑에 숨느니어디로 가는 길일까여기서 끊어져 이끼가 피고무너진 길에는 정히슬픈 물이 흐른다고향땅 새록새록가슴 사무쳐이 주먹으로 흐르고 흐르는눈물을 훔치느니병사의 총부리 끝엔불탄 산정이 숨죽이고노루 하나 의연히북녘하늘 우러른다기러기여, 이 가을누가 울 울음을 울고 가는가총소리에 놀라문득, 하늘만 높구나 -정희성,「휴전선에서」
시인은 전쟁을 체험한 세대이다. 그런데도 전쟁 체험이나 통일에의 열망보다는 분단 현실의 아픔을 서정적으로 노래하고 있다. 북녘하늘을 우러르는 주체가 사람이 아니라 노루인 것처럼 시속 주체는 병사이다 분단을 몸소 겪은 세대와 그렇지 않은 세대가 분단을 바라보는 시각은 다르다. 분단체험 세대는 그렇지 않은 세대에 비해 서정성보다는 구체적인 체험이 시에 배어 있다. 분단은 오늘까지의 현실이다 여전히 역사이고 아픔이다 어쩔 수 없는 현실이다 분단이후 시적 의미가 불화의 죽음지향성이 아니라 상호 연동하는 삶과 사랑의 마음에 있다.
2. 현실과 이념의 경계선에서 시적 의미
현실과 이념의 경계선에서 비무장지대(DMZ)는 남과 북이 무장을 하지 않는다는 의미이지만 반세기 전의 끔찍했던 내전의 소산이며, 적극적이며 항구적인 평화에 이르지 못한 어정쩡한 타협의 증거라는 점에서 그것은 그러하다.
`비무장지대'의 `비'(非)는 언제든지 떼어버릴 수 있는 혹과도 같다. 비무장지대는 죽음의 지반 위에 세워진 평화의 가건물이다. 그곳에서 죽음은 역사적 사실이고, 평화는 불확실한 미래이다.
야윈 엉덩이에서 춤추듯 덜렁거리는 가방 속에서
장총(長銃)은 막대기처럼 두 동강으로 부러지네
압록강 임진강 철교도 한갓 장난감이네
남쪽의 일요일 새벽을 놀라게 한 소련제 T34의 캐터필러도
종이네 납작 구겨지네
목에 걸려 되넘어간 유언은 많으나 그 사람 안보이고
받을 사람 다 어디로 갔는지
(생략)
-문덕수 . 「우체부 Ⅳ DMZ」 에서
“목에 걸려 되넘어간 유언은 많으나 그 사람 안보이고/ 받을 사람 다 어디로 갔는지” 하는 시행은 영혼의 전령자인 ‘우체부’로서 자긍심과 소명마저 흔들리게 한다. 전쟁의 상흔은 그만큼 인간들에게 죽음에 대한 공포와 고통을 수반하게 한다. 6.25전쟁의 전운이 계속되면서 화자가 감내하는 ‘우체부’의 역할도 일시적으로 흐트러진다. 시속의 화자는 시인으로 “압록강 임진강 철교도 한갓 장난감이”라며 전쟁의 피해는 인간의 힘을 무력하게 하는 정황에 대한 안타까운 심경을 표현하고 있다
총을 겨누어 맞선 중간을 긋고
남북으로 2킬로씩 물러나게 하네
우악한 손이 쇠막대기를 차례로 박아나가고
묵직한 쇠망치로 탕탕 치니
허벅살처럼 물렁물렁한 땅에 깊이 들어가네 아프네
또 어디서 무장한 헬멧이 돌돌 말아온 쇠그물 다발을 세워서 돌리며
서에서 동에까지 144 마일을 빈틈없이 펴네
이러히 땅과 나라는 두 동강 나고
허리를 잘라 살붙이들 가르고 찢어놓으니
아픔 슬픔 원한 피눈물의 소용돌이
구름과 바람과 하늘은 남북이 없네
고니는 높은 소나무 가지의 둥지에 알을 낳고
다람쥐 멧돼지 산토끼 오가며 놀고
푸른 숲속 백로의 하얀 몸빛 유난히 눈부시지만
철조망 안의 DMZ네
-문덕수 . 「우체부 Ⅳ DMZ」 에서
위의 “서에서 동에까지 144마일을 빈틈없이 펴네/ 이러히 땅과 나라는 두 동강 나고” 휴저선은 지금도 진행 중이다. 남북으로 갈린 상황에서 남북을 자유롭게 왕래하는 것은 “다람쥐 멧돼지 산토끼”와 “푸른 숲속 백로”들이다. 사람은 왕래할 수가 없다. 남북을 왕래하던 ‘우체부’의 역할이 정지될 수밖에 없다. 군사분계선이 단지 `전방지역'에만 국한된 게 아니다 이 땅 곳곳에, 그리고 우리의 무의식 깊숙이에 까지 그어진 보이지 않는 선이다.
“삼팔선은 삼팔선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어부가 그물을 던지다 탐조등에 눈이 먼 바다에도 있고
나무꾼이 더는 오르지 못하는 입산금지의 팻말에도 있고
사람들이 오고가는 모든 길에도 있고
사람들이 주고받는 모든 말에도 있고
수상하면 다시 보고 의심나면 신고하는
이웃집 아저씨의 거동에도 있다”
-김남주.「삼팔선은 삼팔선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에서
임시적 평화가 존재하는 비무장지대는 여전히 긴장과 갈등이 끊이지 않고 있다. 남북의 병력이 공공연히 `작전'을 수행하고 있고, 크고 작은 충돌이 일어나고 있다 최근 오창성 북한 병사의 남한으로 탈출 현장이 비무장지대의 비극적 현실이다. 영화 <공동경비구역 JSA>에서는 판문점 경비구역에 함께 근무하는 남북 병사 사이의 우정이 파국적인 결말로 치닫는 과정을 통해 엄존하는 한반도 군사대결 구조를 고발하고자 한다. 비현실적이다 싶을 정도로 경계와 금기를 넘어서 함께 어울리던 남북 병사가 한 방의 총성에 의해 거의 본능적으로 본래의 적대적 관계로 돌아서는 모습은 대결구조의 뿌리 깊음과 외형적 평화의 부질없음을 아프게 일깨운다.
오호, 여기 줄지어 누워 있는 넋들은 눈도 감지 못하였겠구나.어제까지 너희의 목숨을 겨눠 방아쇠를 당기던 우리의 그 손으로 썩어 문들어진 살덩이와 뼈를 추려 그래도 양지바른 두메를 골라 고이 파묻어 떼마저 입혔거니,죽음은 이렇듯 미움보다도, 사랑보다도 더 너그러운 것이로다.이곳서 나와 너희의 넋들이 돌아가야 할 고향 땅은 삼십 리면 가로막히고, 무주공산(無主空山)의 적막만이 천만 근 나의 가슴을 억누르는데,살아서는 너희가 나와 미움으로 맺혔건만, 이제는 오히려 너희의 풀지 못한 원한이 나의 바램 속에 깃들여 있도다.손에 닿을 듯한 봄 하늘에 구름은 무심히도 북(北)으로 흘러가고,어디서 울려오는 포성(砲聲) 몇 발, 나는 그만 이 은원(恩怨)의 무덤 앞에 목 놓아 버린다.
-구 상 .「초토의시.8 적군묘지에서」
시인 자신이 직접 체험한 6·25전쟁이 서정적 자아와 대상으로서의 현실세계를 동시에 뛰어넘는 보다 높은 시적 인식을 통해 형상화하고 있다
한국전쟁 직후에는 ‘적군 묘지’라 불리는 공동묘지들이 전국에 산재해 있었다. 시인이 구체적으로 어느 곳에 있는 적군 묘지에서 썼는지는 정확하지가 않다. 다만 시 속에 ‘고향 땅은 삼십 리’란 구절로 보아 북과 가까운 휴전선 남쪽 30리 부근이었으리라. 그러니 첫 행부터 시인은 감탄사까지 넣어 ‘오호, 여기 줄지어 누워 있는 넋들은 / 눈도 감지 못하였겠구나’라 한다. 시인도 북쪽에 고향을 둔 실향민이란 사실을 굳이 내세울 필요 없이, 고향이 바로 저기 보일듯한데 타향에 묻혀 있으니 안타까움을 그리 표현한 것이다
적군묘지이고 적군이란 바로 인민군이요 그들은 북쪽 사람들인데 이곳 남쪽 적군묘지에 묻혀 있다 시인은 철저하게 존재론적인 기반 위에서 미의식을 추구하고자 한다. 그는 존재에 대한 깊이 있는 인식이 없는 감성을 받아들이지 않으며, 역사의식에 기초하지 않은 생경한 지성이라는 것도 그는 신뢰하지 않는다.
산과 산이 마주 향하고 믿음이 없는 얼굴과 얼굴이 마주 향한 항시 어두움 속에서 꼭 한 번은 천동 같은 화산이 일어날 것을 알면서 요런 자세로 꽃이 되어야 쓰는가.
저어 서로 응시하는 쌀쌀한 풍경. 아름다운 풍토는 이미 고구려 같은 정신도 신라 같은 이야기도 없는가. 별들이 차지한 하늘은 끝끝내 하나인데……우리 무엇에 불안한 얼굴의 의미는 여기에 있었던가.
모든 유혈은 꿈같이 가고 지금도 나무 하나 안심하고 서 있지 못할 광장. 아직도 정맥은 끊어진 채 휴식인가 야위어가는 이야기뿐인가.
언제 한 번은 불고야 말 독사의 혀같이 징그러운 바람이여. 너도 이미 아는 모진 겨우살 이를 또 한 번 겪으라는가 아무런 죄도 없이 피어난 꽃은 시방의 자리에서 얼마를 더 살아 야 하는가 아름다운 길은 이뿐인가.
산과 산이 마주 향하고 믿음이 없는 얼굴과 얼굴이 마주 향한 항시 어두움 속에서 꼭 한 번은 천동 같은 화산이 일어날 것을 알면서 요런 자세로 꽃이 되어야 쓰는가.
-박봉우, 「휴전선에서」
북한은 한국이 동족이 아니라 적이라는 시각으로 보고 있다, 반공을 국시로 삼고 있을 때 전쟁을 넘어 평화와 통일의 염원을 담고 있어 전쟁 테마 시의 패러다임의 대 전환을 예고한다 전쟁 상황에서는 언제나 아군의 사기는 최대한 북돋아 주어야 하고 적에 대해서는 최대한 증오하게 한다. 적에 대한 상대주의적 인식이나 적개심에 대한 회의 동정심 따위는 용납될 수가 없다. 절대적으로 편향적인 애국심이 고무, 찬양되고 적에 대한 냉혹한 살상이 영웅화된다.
3 통합의지의 비무장지대 시문학
비무장지대(D.M.Z)는 가장 첨예한 무장이 지키는 비무장 지역이요, 최대의 민족적 비극의 장으로서 죽음을 각오하고서라도 넘어야 할 장벽인 동시에 평화통일을 위한 기원을 담보하고 있기도 하다. 시학적으로는 침묵 속의 절규가 있고, 갖가지 탐욕과 이념의 충돌 장소이자 그 폐기를 향한 절박한 기원이 공존하는 역설의 장이다. 밀림이 있는 황무지요, 미래가 있는 과거인 것이다. 21세기 전야에 우리 시가 관심을 기울여야할 가장 중요한 테마로 부상하고 있다.
일없이 부러진 가지를 보면
그 다음의 가장이가 안됐다
요행이도
전쟁에서 살아남았을 땐
우리는 어쩌다 애꾸눈이 아니면 절름발이었고
다음엔
찢기운 가슴의
어느 모퉁이가 허물어젔을 것이다
-김광림.「상심하는 접목」에서
전후 50년대 중반의 전쟁 체험이 소재고 전쟁으로 인한 비극의 상처인 비무장지대는 하나의 모더니즘이고 멜로드라마였다 폐허 위 삶터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은 그의 정신적 외상을 치료, 복원하고 딛고 일어서려는 생명의지, 회복의지를 주지적 서정으로 나타내고 있다 . 또한 비무장지대의 중요한 가치는 사람은 살지 않는 곳이지만 세계적 희귀 동식물이 자연 상태로 살고 있는 생태의 보고라는 점이다.
그 곳은 산과 산
골짜기와 골짜기들이
서로 껴안고 한 이불 속에서
뜨거운 꿈을 꾸는 마을
피라미 메기 중태기 물방개 오줌싸개
애기똥풀 각시붓꽃 메꽃 조뱅이 민들레 마타리
칡덩굴 머루덩굴 노루 토끼 멧돼지 고슴도치
때까치 굴뚝새들이
옛날 그대로 살고 있는 마을
철조망 탄피 철모 찢어진 군화짝들은
한여름 푸르고 무성한 풀줄기들에 의해
기름진 흙으로 돌아가고
묘향산 기슭 가야산 들녘 넘나들던 새들이
둥지를 틀고 새봄을 맞이하는
옛 마을 동구 주막집터 느티나무
그 느티나무 가지와 잎사귀에서 빛나는 (중략)
-심상운.「비무장지대」에서
총부리를 겨누고 있는 전방이라는 생각을 잊게 해주며 평화스럽고 안락한 비무장지대의 풍경을 그려내고 있다 산과 산골짜기와 골짜기들, 우리가 소망했던 모습이며 서정적 자아의 통일에 대한 그리움이 흠뻑 묻어나고 있다. 화자는 비무장지대엔 휴전되기 이전의 풍경이 그대로 남아 있을 것으로 확신하고 있으며, 이러한 확신은 통일에 대한 확고한 믿음이기도 하다는 옛것을 그대로 간직한 채 대립된 이념 대립으로 골이 깊어진 관계를 개선할 수 있다고 본다.
시의 한 지향점은 유토피아적 환상을 불러일으키며 구체성을 확보하고 있다. 시에서 비무장지대의 풍경을 환상적으로 그리고 있는데, 아직까지는 비무장지대가 “고통의 땅”이거나, “치욕의 역사임”을 상징한다. DMZ가 고통, 치욕이기보다 평화, 축제의 장으로 등장한다 지배자/피지배자의 구별이나 차별이 없는 평화와 축제의 공간이다. 비무장지대에는 평화롭게 살고 있는 동식물들을 비유하여 통일에 대한 염원을 나타내고 있다.
4. 분단 극복 과제, 생태보호 생명시
남북 교류가 활성화 되어도 비무장지대는 보존해야 한다. 남북통일은 전쟁을 통한 무력통일이 아니라 평화통일이어야 하는데 평화의 유지를 위해서는 비무장지대가 존속되어야 한다는 이유에서이고, 또 하나는 비무장지대는 생태의 보고요, 모든 동식물의 해방구로 자리 잡고 있다는 점에 있다. 비무장지대는 지난 반세기 가까이 사람의 손이 미치지 않는 가운데 동식물의 보고가 되었다.
인간의 비극이 여타 생명체에게는 천혜의 축복으로 작용한 셈이다. 비무장지대를 일종의 `생태공원'으로 삼자는 생각은 여기서 출발한다. 비무장지대를 유네스코의 `접경생물권 보전지역'으로 지정하는 등 국제 생태공원으로 조성하는 방안을 마련하여 상태보호 생명시 등의 소재장소가 되는 것도 생각해 봐야 한다
6월의 산하에는 멧돼지와 산양, 고라니 가족들과 기러기떼만 날고
산 능선 따라 동의나물. 산딸기와 평야의 초지엔 크고 작은 야생초
돼지풀, 개망초, 양지꽃. 원추리, 양지 언덕엔 할미꽃, 노랑 제비꽃
계곡습지에는 무당개구리 알알이, 산 복판엔 싱싱한 습지 식물들과
땅과 물 사이에 작은 생명체들이 6월의 사연을 담아 꽃으로 피어난.
갈까마기 몇 마리만 자유롭게 날고, 연어는 남북을 지나 태평양으로
음지가 된 민통선 이남에 핀 양지꽃, 꼬리조팝나무. 벚꽃, 복사나무
늪지, 건습초원, 관목습지, 산림습지, 유월의 총탄에 유린당한 국부엔
자궁을 지켜온 토종 생명체는 숨고 외도로 유입된 외국산 동·식물들이
외아들 바친 할머니, 새신랑 보낸 새 새댁 가슴밭을 글로벌화해 가고.
- 전 민.「6월의 산하에는 -비무장(DMZ)지대」
인간들의 전쟁이 지나간 자리에 인간이 아닌 모든 평화와 안존이 가장 인간적이어야 할 조화로운 모습을 보이고 있다. 평화란 천국이 아니요, 인간이 아닌 원시의 모습도 아니다. 오직 가장 원시적인 삶과 삶끼리 가장 근원적인 조화를 이루는 가운데에 존재한다. 비무장(DMZ)지대인 <6월의 산하에는>‘멧돼지와 산양, 고라니 가족들과 기러기 떼’, 그리고 ‘동의나물. 산딸기와 돼지풀, 개망초, 양지꽃. 원추리, 할미꽃, 노랑 제비꽃’, ‘계곡습지에는 무당개구리 알알이, 산 복판엔 싱싱한 습지 식물들과 땅과 물 사이에 작은 생명체들이’각자의 삶을 누리며 조화를 이루고 있는 삶의 터전이 되어 있다. 그러나 또 다른 전쟁의 자리가 되어 그곳에서는‘유월의 총탄에 유린당한 국부엔 자궁을 지켜온 토종 생명체는 숨고 외도로 유입된 외국산 동·식물들이 외아들 바친 할머니, 새신랑 보낸 새 새댁 가슴밭을 글로벌화해 가고’있다.
그대 봄날에 휴전선 모퉁이에흰 냉이꽃으로 피어나 울고 있구나그대 봄날에 휴전선 너머하얀 찔레꽃으로 피어나 웃고 있구나밤이 와도 그대는 푸른 하늘봄이 오지 않은 조국의 푸른 바람내 언젠가 그대의 강가를 거닐었으나꽃잎 같던 그대의 발자국 소리를 잊었으나내 죽으면 그대 가슴에 나를 묻으리그대 죽으면 내 가슴에 그대 묻으리 ―정호승,「휴전선에서」
분단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대상인 휴전선으로 인해서 우리는 남북을 자유롭게 오갈 수 없지만 자연만은 그렇지 않다. 봄날에 내가 만날 수 없는 북쪽의 ‘그대’가 휴전선의 ‘냉이꽃’이나 ‘찔레꽃’으로 피어날 수 있고, 휴전선을 자유롭게 넘나드는 ‘푸른 하늘’이나 ‘푸른 바람’도 될 수 있다. 하나의 조국으로 맺어진 인간과 자연은 결국엔 죽어서도 서로를 가슴에 묻을 수 있는 한 몸으로서의 존재인 것이다.
위 시는 분단의 개인의 체험보다는 분단극복과 통일이라는 단일민족의 이념이 우선시되고 있다 시인이 분단을 직접 체험해보지 못한 세대다. 분단을 바라보는 눈은 체험적 구체성 보다는 ‘냉이꽃’이나 ‘찔레꽃’같은 이미지를 통해서 통일이라는 관념을 서정적으로 나타내고 있다
1990년대 이후 이른바 생명시의 중심이 된 시인 김지하가 갈망하는 바도 비무장지대의 시적 지향점에서 멀지는 않아 보인다. 아니 비무장지대 비극의 근본적 원인과 자연생태 보존의 의의를 생각할 때, 에로스적 인간의 순진한 삶의 회복이 그 통합적이고 본질적인 방향이 되는데, 그의 생명시는 그 지향점에 부응한다.
휴전선에 잘린 경의선
경의선 화통
그것을 타고 내가 당신에게 갈 수 있다면
그 기관차를
새파란 동백잎, 빛나는 유자 무더기. 향기 짙은 치자꽃으로,
무화과들로 가득 채우고 싶다.
그리고 못난 내 얼굴에라도
함박꽃 같은, 달덩이 같은 째진 웃음지어 만나고 싶다
나 오늘 눈 내리는 원주 거리에 다시 서서
다시금 남쪽으로 돌아갈 자리에 서서
거리를 질주하는 영업용 택시를 보며
경의선 끊어진 철로 위에
홀로 남겨진 기관차 속에 홀로 남을
민족의 외로움을 생각하며
소주 한 잔을 국토 위에 붓는다
아 아 꽃들이여
너희들의 영광은 언제 오려는가.
-김지하.「녹슨 기관차 가득히 꽃을」에서
시문학 운동은 생태 보호적 차원과 분단극복의 민족적 과제를 동시에 유기적인 통일체로 껴안는 데에 그 본령이 있는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전쟁의 목적은 평화라고 했다. 그러나 전쟁은 인류가 존재하는 한 계속 되어진 인류의 최대 적이다. 전쟁은 가장 비천하고 죄과가 많은 무리들이 권력과 명예를 서로 빼앗는 상태를 말한다고 L.N.톨스토이는 말한다. 전쟁은 무엇보다도 참혹한 것이며 야만적이고, 인간으로 하여금 가장 비인간이게 하는 수단으로써 행해지는 것이다.
5. 분단 극복과 통일 염원 시
문학은 한 시대를 그리며 시대정신을 담아내는 데 그치지 않고 시대를 이끄는 역할까지 한다 통일 염원 시는 분단을 해소하거나 극복하고 통일을 지향하거나 추구하기 위한 시를 가리킨다. 남과 북 사이에 서로를 이해하고 이념적 차이를 줄이거나 극복하며 교류와 협력을 늘리는 가운데 평화통일을 지향할 수 있도록 이끌어주는 역할을 한다.
북한 동포가 한 핏줄이라 할지라도 남한 사람들이 도와줘야 할 사람들이란 생각을 가지고 통일을 꼭 해야 하느냐는 생각을 하고 있는 사람들도 있다. 통일에 대한 젊은 세대들의 무관심이나 반대를 줄일 수 있도록 분단의 심각한 폐해와 통일의 엄청난 편익을 재미있고 설득력 있게 그려내는 통일을 주제로 한 시문학운동이 필요하다고 본다.
끊어진 철길이 동네 앞을 지나고금강산 가는 길이라는 푯말이 붙은민통선 안 양지리에 사는 농사꾼 이철웅씨는틈틈이 남방한계선 근처까지 가서
나무에서 자연 꿀 따는 것이 사는 재미다사이다병이나 맥주병에 넣어두었다가네댓 병 모이면 서울로 가지고 올라간다그는 친지들에게 꿀을 나누어주며 말한다"이게 남쪽 벌 북쪽 벌 함께 만든 꿀일세벌한테서 배우세 벌한테서 본뜨세"
-신경림 .「끈어진 철길」에서
분단 상황이 길어지면서 분단을 몸소 체험한 분단 1세대들의 수효가 급격히 줄어들게 되고 분단 극복에 대한 절실함도 차츰 줄어들고 있다. 이러한 양상은 분단 극복이나 통일을 염원하는 시에도 그대로 반영되어서 분단과 통일을 주제로 한 시의 급격한 위축을 초래하게 되었다.
통일염원 시는 우리만의 특수한 관심사다. 문학의 보편성에 비추어 보면 통일 염원시는 자칫 소외될 수 있는 여지가 많다. 통일을 주제로 한 문학은 점점 퇴색되어 가고 있다 분단 극복과 민족의 통일을 중요한 문학적 주제로 지속시켜나간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지만 우리 조상이 우리에게 전해준 이 땅을 보존하고 하나의 국가로서 통일해야 할 역사적 사명이 있다. 다음의 시는 그러한 사명과 의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발바닥이 다 닳아 새 살이 돋도록 우리는우리의 땅을 밟을 수밖에 없는 일이다.숨결이 다 타올라 새 숨결이 열리도록 우리는우리의 하늘 밑을 서성일 수밖에 없는 일이다.야윈 팔다리일망정 한껏 휘저어슬픔도 기쁨도 한껏 가슴으로 맞대며 우리는우리의 가락 속을 거닐 수밖에 없는 일이다.버려진 땅에 돋아난 풀잎 하나에서부터조용히 발버둥치는 돌멩이 하나에까지이름도 없이 빈 벌판 빈 하늘에 뿌려진저 혼에까지 저 숨결에까지 닿도록 우리는 우리의 삶을 불 지필 일이다.우리는 우리의 숨결을 보탤 일이다.일렁이는 피와 다 닳아진 살결과허연 뼈까지를 통째로 보탤 일이다. ―조태일,「국토서시」전문 “버려진 땅에 돋아난 풀잎 하나에서부터/조용히 발버둥치는 돌멩이 하나에까지/이름도 없이 빈 벌판 빈 하늘에 뿌려진/저 혼에까지 저 숨결에까지 닿도록//우리는 우리의 삶을 불 지필 일이다.”고 노래하고 있는 것이 우리에게 절실하게 느껴지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이렇듯 우리는 이 땅과 한 몸이면서 한 핏줄이다. 우리의 “일렁이는 피와 다 닳아진 살결과/ 허연 뼈까지도” 이 땅과 더불어 영원히 사라질 수 없는 귀중한 몸인 것이다. 한반도는 조상 대대로 내려온 삶의 터전이고 우리가 후손들에게 물려줄 유산이라는 점에서 의미를 지닌다. 분단과 압제를 경험해 온 우리민족의 뼈아픈 역사로 볼 때 국토보존과 계승의 의무가 명백하다
이 다리 반쪽은 네가 놓고나머지 반쪽은 내가 만들고짐승들 짝지어 진종일 넘고강물 위에서는 네 목욕하고그 아래서는 내 고기 잡고물길 따라 네 뜨거운 숨결 흐르고조상님네 사랑 이야기만주 넓은 벌 말 달리던 이야기네 시작하면 내 끝내고초저녁달 아래서 시작하면새벽별 질 때 끝내고백두산에서 한라산까지너와 내가 닦고 낸 긴 길형제들 손잡고 줄지어 서고철조망도 못 막아지뢰밭도 또 못 막아휴전선 그 반은 네가 허물고나머지 반은 내가 허물고이 다리 반쪽을 네가 놓고나머지 반쪽은 내가 만들었듯
-신경림 .「승일교 타령 」
승일교’는 임진각에 있는 ‘자유의 다리’, 판문점에 있는 돌아오지 않는 다리’와 함께 우리가 분단국가임을 알려주는 매우 상징적인 장소이다. 시인은 이승만과 김일성의 이름자 하나씩을 따서 명명했다는 한탄강 `승일교'의 건설 사례에서 바람직한 방향을 볼 수 있다. 우리민족이 바라는 통일은 단순한 영토나 체제통합만이 아니라 가치관과 생활양식까지도 융화가 되어 정신적인 면의 통합까지 이루는 것이다
남북 분단이후의 시는 분단과 통일이라는 주제가 시문학의 중요한 범주로 자리 잡게 되었고 변화가 문학의 요인 보다는 시대적 요인에 의한 것이기 때문에 의도적이기보다는 필연적 성격이 강하다. 분단이나 통일에 대한 문학적 관심과 노력은 쉽게 포기하거나 변경할 수 없는 성역으로 남아있으며 분단 극복과 통일에 대한 열망은 여전히 한국 현대시의 중요한 소재가 될 수밖에 없다.
남북 분단 이후의 시문학운동의 본질은 부질없는 논리와 이념 대립에서 빚어진 한국전쟁에 대한 반성이고 모략과 살상과 파괴에 대한 경종이다. 나와 너를 막론한 모든 물리적 정신적 무장을 해제하고 편파적 분석과 가식적 기교를 버리고 개별적 삶과 가치가 존중되는 동시에 상호공존의 공동체적 협동을 이루는 참삶의 회복을 염원하는 담백한 시정신의 복원이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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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민
@시인 (한국현대시인협회 부이사장)
@월간 <시문학> 1985년 등단
@시집 <바람은 잠을 이루지 못한다>등, 11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