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사하게 하시니 감사하나이다》
제가 안식년을 가지기 한 달 전, 어느 섬 본당 신부님의 은경축에 참석하게 되었습니다. 일곱(7) 개의 공소가 모여서 1개의 본당이 되었는데 일곱 개의 공소 중에 한 공소에서 하루 지내게 되었습니다. 공소의 신자들과 대화중에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냉담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지요. 냉담의 이유 중에는 신자들 사이에 아주 사소한 것, 단순한 일로 인한 마음의 상처 때문에 아주 오래 동안 성당에 나오지를 않는다는 이야기를 전해 듣는 그 순간 “언젠가 안식년을 얻어 이곳 섬으로 무료검진 의료봉사를 오게 되면 냉담자와 비신자들을 회두시킬 수 있겠구나.”하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섬 본당 신부님에게 이와 같은 제 생각을 전달했더니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제가 평소에 알고 지내는 가톨릭 신자 의사에게 이 사실을 설명하고 봉사할 의향을 물었습니다. 그분의 대답은 아주 우호적이었습니다. 모든 준비를 철저히 잘해서 뜻있는 봉사를 잘하겠다는 약속을 했습니다. 이런 우리 봉사자들의 뜻을 섬마을 본당 신부님과 신자들에게 전했습니다. 4개의 섬에는 일곱 개의 공소가 있으며, 그 중에 삼일 동안 세 개의 공소를 방문하여 무료검진을 위한 의료봉사를 하기로 하였습니다.
이윽고 무료검진 의료봉사 날짜가 다가왔습니다. 그런데 처음에 가겠다고 신청했던 의료 봉사자들이 이런 저런 핑계와 이유로 빠지게 되었습니다. 마치 신약성경에 나오는 하늘나라의 이야기와 비슷했습니다. 임금은 혼인잔치에 손님들을 초대했지만 초대받은 사람들은 이런 저런 핑계를 대면서 잔치 집에 오질 않았습니다. 그래서 임금은 화가 나서 초대하지 않은 사람들 아무나 초대합니다. 하늘나라의 빈자리를 초대받지 않은 사람들로 가득 채우셨듯이 다행히 하느님께서 순수한 봉사자들로 채워주셨습니다.
이렇게 채워진 봉사자들은 여름 휴가철을 맞아 무료검진을 위한 의료봉사를 떠났습니다. 땅 끝 마을 가까이 있는 먼 섬으로 가기 위하여 무거운 의료장비를 챙겼고, 여름철 특별 수송 기간 중 새벽 배를 놓치지 않기 위해 두 대의 승합차를 선창에 세워놓고 차 안에서 잠을 잤습니다. 배는 아직 여명도 없는 새벽 네 시부터 차를 싣기 시작하여 여섯시가 되기 전에 뱃고동을 울리며 섬으로 출발하였습니다. 몇몇은 새우잠으로 눈을 붙였고 꼬박 밤을 새운 봉사자도 있었습니다. 섬에 도착하자마자 의료장비를 풀고 아침식사를 한 후 바로 진료에 들어갔습니다.
섬마을에서 어쩌면 평생 한 번 제대로 진료라고는 받아보지 못하였을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줄을 섰고, 이분들은 소변검사, 혈압측정, 치과 진료, 심전도 검사에, 초음파 검사에 신이 나셨습니다. 포도당 주사를 맞기 위하여 내민 손은 평생 해온 논밭일로 거칠고 검게 그을려 있었습니다. 그을린 그 손으로 자녀 모두를 위해 뒷바라지 한 것입니다. 75세가 된 자매님은 농사일이 많아 지금도 논밭에서 일을 해야만 했습니다. 이 섬마을의 평균 연령은 65세 이었으며, 95% 이상이 어업이 아닌 농업으로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이런 아름다운 사람들을 만난 7명의 의료봉사자들은 대부분 전날 잠을 자지 못했습니다. 그런대도 피곤한 기색 없이 열심히 봉사했습니다. 밝은 미소와 힘찬 에너지가 어디에서 나오는지 신기하리라 만큼 흘러넘쳤습니다. 오후 검진을 시작 한지 30분 후 갑자기 초음파기기가 작동을 멈추었습니다. 너무 많은 사람들을 검사 하느라 순간 과포화 상태가 되었구나...하고 생각했었는데 사태는 의외로 심각했습니다. 원인 모를 고장이 난 것입니다. 다른 섬으로 이동해서 이틀을 더 봉사해야 하는데 참으로 큰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리는 마음속으로 기도하면서 해결 방안을 찾아야했습니다. 부산과 광주에 있는 의사 선생님들에게 도움을 청했습니다. 마침 일요일이라 진료를 하지 않는 병원이 대부분 이었습니다. 다행히도 마음씨 좋은 분이 초음파기기를 빌려주었고, 어느 신부님께서 초음파기기를 차에 실은 후 밤새 달려와 아침 첫배로 갈아타고 진료 현장까지 급히 조달해주었습니다. 짧은 시간동안 일어난 이번 사건을 통해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의로운 일을 하게 될 때 주님께서도 우리와 함께하시며 은총을 베풀어 주신다.”는 신앙체험을 다시 한 번 확인 할 수 있는 좋은 시간이 되었습니다.
사흘 동안 진료자 수가 231명이나 되었고, 이들 중에 15%는 비신자들이었습니다. 제가 사제로서 이들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진료가 끝난 사람들을 마지막으로 만나 신앙상담 하는 일이였습니다. 신자들이 주일미사에 잘 참석하는지, 본당신부님 사목에 잘 협조하는지, 가족 중에 냉담자 혹은 비신자가 있으면 잘 권면해서 성당에 데려오기, 이웃 사람들에게 전교하기, 그리고 비신자들에게는 1인 한 종교 가지기를 권하면서 오늘 무료검진을 계기로 성당에 나오라고 조심스럽게 말하곤 했습니다. 무료검진을 위한 의료봉사는 아침부터 밤늦도록 그렇게 사흘이 순식간에 지나갔습니다. 마치 섬마을은 이 기간 동안 축제라도 벌린 것 같았습니다. 예상 밖의 좋은 결과 이었습니다.
그런데 사실, 출발할 때부터 모두들 조금씩은 두려움과 염려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의사, 간호사, 방사선사 등의 전문인이 있기는 하였지만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었고, 무료검진을 위한 의료봉사에 대한 경험들이 풍부한 것도 아니었습니다. 더군다나 그들 모두가 서로에 대하여 친분이 있는 사이도 아니었습니다. 마침 성서에 나오는 잔치의 일화처럼 애초에 초대된 이들이 거절한 자리를 며칠 사이에 급히 메운 이들이었습니다. 출발 시간에서야 처음 대면한 이들 사이에는 어떤 친화력도 없었고, 팀웍이 중요한 봉사 일을 어떻게 해낼 수 있을지 내심 걱정이 되기도 하였습니다. 그런데 3일 동안 어떤 조직보다 더 겸손하고 친절한 마음으로 봉사 일을 마칠 수 있었습니다. “과연 비결이 무엇이었을까?” 하고 묵상해 보았습니다. 그들은 개인적인 성향에 있어서도, 사회적인 환경과 문화에 있어서도, 동질성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구성원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일을 그렇게 조직적으로 해낼 수 있었던 것은 바로 그들 각자가 지닌 올바른 봉사정신이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가족들과의 휴가시간을 포기하면서까지 여름휴가 전체를 이곳 섬마을 형제자매들을 위해 내어놓음은 봉사를 통해 느낄 수 있는 의로움과 이웃에게 사랑을 실천하기 위한 희생정신이었습니다.
의로움이(義)란 ‘사람이 행하여야 할 옳은 길이며 진리’이기에 그 ‘옳은 길 즉 참된 길’을 행하는 사람들이 많으면 많을수록 살만하고 평화로운 세상이 될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 안에, 시대와 종교 그리고 가치관이 달라도, 그 시대와 지역을 사람이 살만한 곳으로 살려나가며 협력하는 이들은 바로 의로움을 지키는 이들입니다. 양심이 깨어 있고 그 양심의 소리에 귀 기울일 줄 아는 사람들입니다. 함께한 의료봉사 팀은 그렇게 먼저 자신을 내어놓을 줄 아는 이들이었습니다. 누구도 몸을 사리지 않고, 누구에게 어떤 도움이 필요한지를 능동적으로 살피며 항상 열려진 마음을 지닌 이들이었습니다. 의로운 이들의 의로운 봉사야말로 하느님의 사랑을 실천하는 의로운 사람들입니다. 세속적인 눈과 가치로 보면 약삭빠르지 못한 바보들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영적인 눈과 하느님의 가치로 보면 하늘에 보화를 쌓고 있는 지혜로운 사람들입니다. 이들은 처음으로 경험한 무료검진을 위한 의료봉사를 해마다 계속하겠다고 하느님께 약속하였습니다. 올 휴가 때에도 하느님께서 인도해 주시는 장소로 가서 기꺼이 즐거운 마음으로 봉사하기로 했습니다.
어느 날, 그리스도교 신자가 몸이 아픈 사람을 만났는데, 당신을 만나게 해주신 하느님께 진심으로 감사를 드린다고 겸손하게 말했습니다. 이웃을 위해 봉사할 수 있도록 몸이 불편하고 아픈 사람을 만나게 해주신 하느님께 감사와 찬미를 드림은 올바른 행위입니다. 왜냐하면 봉사도 아무에게나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봉사하고자 하는 이의 마음에 은총을 내려주셔야만 가능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사제는 매 미사 때마다 성찬의 전례 중 감사기도를 드릴 때 큰소리로 경문을 읽으며 기도를 드립니다. “또한 저희가 아버지 앞에 나아와 봉사하게 하시니 감사하나이다.” 봉사는 하느님께서 의로운 사람들에게 주신 가장 아름다운 봉헌 행위입니다.
※ 이 글의 자료는 장정애 봉사단원이 적었던 그물원고의 ‘의로움에 대하여’와 의료봉사 평가(2007년8월) 때 7명의 봉사단원들이 나누었던 내용들을 종합해서 제가 정리한 글입니다.
2011년 7월 17일
농민 주일에 - 안창호 발다살 신부 -
첫댓글 십여년전 지금은 칠십이 훌쩍 넘으신 아는 형님이 봉사활동 갔다 오시다 아버지 앞에 나아와 봉사하게 하시니 감사하나이다
라는 이기도 내용을 말씀 하시며 봉사 할수있게 해 주셔서 감사하다는 말씀을 하신 기억이 납니다
명금당님은 함께 하시지 못하지만 저를 위해 봉사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누군가를 위해 봉사한다는 것은 말처럼 쉬운일이 아니여서 칭찬을 해 주면서도 정작 선뚯 나서지 못하는 이중성을 저에세서 봅니다. 봉사하는 그 손길에 하느님께서 사랑스러운 눈으로 보실텐데 말입니다. 이제는 하느님 보시기에 좋은 봉사에 눈길을 돌려 보겠습니다.
2007년 이후 저희 봉사단원들외에는 의료봉사 이야기 공개적으로 이 공간에 처음 나누게되었습니다. 몇번이고 묵상한 후에 여기에 올리게 되었지요..^^* 봉사할 때에는 아무도 모르게 해야 하느님께서 주시는 은총이 더 많거든요.^^* 하지만 가난한 이웃이 아직 대한민국에 생각보다 너무 많답니다..^^*
그때의 일이 새록새록 새롭고 그립습니다! 봉사하게 해주신 아버지께 감사드리고, 이야기로 엮어주신 신부님께도 감사드리고....
저도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