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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우
류인서
재 하나 넘을 적마다 꼬리 하나씩 새로 돋던 때 나는 꼬리를 팔아 낮과 밤을 사고 싶었다 꼬리에 해와 달을 매달아 지치도록 끌고 다니고 싶었다
하지만 나는 꽃을 샀다 새를 샀다
수수께끼 같은 스무 고개 중턱에 닿아 더이상 내개 팔아먹을 꼬리가 남아 있지 않았을 때 나는 돋지 않는 마지막 꼬리를 흥정해 치마와 신발을 샀다 피 묻은 꼬리 끝을 치마 아래 감췄다
시장통 난전판에 핀 내 아홉 꼬리 어지러운 춤사위나 보라지 꼬리 끝에서 절걱대는 얼음별 얼음달이나 보라지
나를 훔쳐 나를 사는 꼬리는 어느새 잡히지 않는 나의 도독
당신에게 잘라준 내 예쁜 꼬리 하나는 그녀 가방의 열쇠고리 장식으로 매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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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인격을 팔아 사는 것은 어차피 다른 사람의 인격이라면 좀 위로가 될지도...
섬세한 감성이 느껴집니다.
나를 훔쳐 나를 사는 꼬리가 무엇을 얻고 잃을 것인가? 시의 마지막 연에 그 답이 있는 바, 시인이여, 나를 훔쳐 나를 보이는 것이
당신 마음 속의 자물쇠를 여는 열쇠고리 장식이면 마음이 놓인다, 다만 당신이 앞으로 세상에 내보일 시들이 열쇠고리 장식이라면 곤란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