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청소년위원회의 일을 하다 보면 드는 시시콜콜한 잡생각들이 있다. 30대 후반의 나는 소년은 아닌데 청년인가 중년인가 아니면 청중년인가? 혹은 아이와 어른의 기준에서 보면 아이는 아니고 어른이긴 한데 그럼 몇 살부터 어른이었을까. 아니면 내가 과연 청소년 위원회의 위원으로서 역량과 자격이 있는 사람인가 없는 사람인가 하는 것들이 바로 그것이다.
그 시기는 누구도 정할 수 없다. 다만 나는 중년으로 향하고 있고 조금이라도 더 나은 역량과 자격을 가진 사람이고자 한다.
청소년도 어른도 모두가 불완전하다. 내가 소년이었던 시절 가졌던 생각중의 하나가 ‘어른들은 완벽하다, 완성되어 있다, 따라서 모두에게 모범이 되고 바른 행동만을 해야한다.’였고, 완벽하지 못한 미완성인 소년과 어린이, 청소년들을 보호해주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시간이 흐르고 내가 어린시절 어른이라고 생각했음직한 나이가 되었음에도 나는 전혀 완벽하지 못하고 실수투성이다.
다만 분명한 것 하나는 하루, 한달, 일년, 십년의 시간이 지나면서 나에게는 경험이라고 하는 자산이 생겼다.
자존심은 중요하지만 필요할 때와 필요하지 않을 때가 있다. 어린 시절 나의 선택은 대개 나의 자존심을 세우는 방향으로 이루어지곤 했다.
또래 친구들 사이에서 ,호감이 있던 이성 앞에서, 친척이나 가족들 앞에서 나의 체면을 세우는 방식의 멋있는 선택만을 하였었다. 그래서 친구들이, 주변 사람들이 “쟤는 참 생각도 바르고 멋지다.” 라고 하면 기분이 으쓱하곤 했다. 하지만 굳이 자존심을 내세우지 않았던 경우라도 난 그게 아니었는데 친구 사이에 오해가 생기거나, 다른 사람을 도와주려고 했는데 되려 피해를 주게 되는 경우도 생겼고 그런 경우에는 다툼이 생기고 싸우게 되었다. “아니, 나는 돕고자 하는 선의에서 한 행동인데 그걸 가지고 날 비난하다니 참을수 없어.” 라고 하면서 말이다.
하지만, 타인은 내가 아니어서 내 마음을 알지 못한다. 나의 부모도, 형제도 , 친한 친구도 나에 대해서 조금 더 알고 있을 뿐이지 내가 생각하는 것을 다 알아주지 못한다. 그래서 내가 원하는 것을 해주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렇다고 해서 다른 사람이 나에게 해주길 바랬던 것들을 해주지 않았다고 해서 서운해 할 필요가 없다.
그들은 당신의 감정과 원하는 것을 모르기 때문이다. 그러면 말하면 된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은 말하지 않는다. 그러고 나서는 실망하고 원망하고 미워하고 싫어하게 된다. 모두에게 하기가 어렵다면 일단 내가 가장 좋아하고 사랑하는 사람에게 만이라도 먼저 나의 감정을 표현하는 용기를 내보면 된다.
이것이 자존심을 세우고 꿍하게 있는 것보다 더 멋지고 용감하다. 나의 선한 의도를 이야기 했다면 대개는 이해하고 공감해준다. 또한 여러 가지 이유로 내가 실수를 하고 잘못을 하게 된 경우라도 마찬가지다. 실수에 대해서 솔직하게 이야기하고 사과를 한다면 부드럽게 상황을 극복할 수 있다. 그것이 더욱 더 멋있는 용기다.
하지만 혹시나 나를 이해해주지 못하고 나를 계속 비난하고 화낸다면 어떡할까. “똑같이 아니 두배로 갚아줄까?.” 그러지 말고 이해해 주면 된다. 나의 마음을 이해해줄 마음의 여유가 아직은 없는 사람이구나. 아니면 마찰이 너무 잦아서 나와 안 맞는다면 보내주고 새로운 사람을 찾으면 된다. 나와 맞는 사람들은 널리고 널렸다.
나의 넓은 마음을 그에게 베풀어주고 제각기 갈 길을 가자.
결론적으로 사람이란 불완전하고 미숙하며 감정의 동물이다. 불완전한 사람끼리 모여 있으면 문제가 생기고 마찰이 생기기 때문에 이에 대한 해결이 필요하며 불필요한 자존심 때문에 관계를 그르치는 경우도 많다. 그러지 말고 실수를 바로 잡고 마음을 표현할 수 있는 용기를 내어 더욱 큰 자존심을 가질 수 있도록 하자.
글쓴이. 임도영
미소치과 원장이다. 청소년자치연구소에서는 청소년위원으로 활동하고 계신다. 훈남외모로 지역에서는 훈남닥터라는 호칭도 가지고 계신다. 개원후에 지역사회에서 뿌리 내리면서 군산스토리 등 지역 시민들의 자발적인 SNS 모임에도 참여하는 등 나름의 가치를 가지고 활동하고 있다. 연구소 활동 참여하면서 청소년에 대한 다양한 고민을 하는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