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봉산 선인봉 박쥐길
선인봉은 인수봉과 쌍벽을 이루는 도봉산의 대표 암장.
선인봉 ‘박쥐’길은 선인봉의 인기루트 제2피치 박쥐날개를 오르는 것이 최고의 하이라이트.
테어난지 56세 장년이 되었지만 아직도 청춘을 간직하고 있는 ‘박쥐’길.
선인봉은 1937년 백령회의 김정태, 엄흥섭 씨 등이 ‘선인A’루트를 초등반하며 시작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보면 선인봉은 80여 년의 클라이밍 역사를 가지고 있는 셈이다.
북한산 인수봉과 선인봉은 1980년대까지도 클라이머들은 ‘인수파’, ‘선인파’로 나뉘어 자존심 싸움을 벌일 정도의 인수봉과 선인봉은 우리나라의 양대 암벽장이였다.
등반성을 본다면 사실 선인봉은 인수봉보다는 한 수 위로 평가하고 있다.
선인봉은 높이 200여m, 폭 500여m 정도의 화강암벽이다. 슬랩, 크랙, 침니, 페이스, 오버행 등 다양한 형태를 하고 있으며 56개의 루트가 열려 있다. 루트 길이는 한 피치에서 일곱 피치로 구분되며 200여 m 되는 루트도 있다.
선인봉은 등반을 마치고 대부분 루트를 따라 하강하게 된다. 각 루트마다 피치의 확보 지점이 하강할 수 있도록 쌍볼트가 설치되어 있다.
“우두두둑!”
“추락!”
짤막한 외침소리는 비명에 가깝다.
“야! 또 떨어졌다.”
“야, 어디서 떨어졌냐?”
“응, 박쥐날개다.”
1970년대 후반 선인봉 박쥐날개에서 들려오는 소리다.
그때는 왜그리 많이 떨어졌는지, 하루면 여기저기서 떨어지는 소리에 익숙해져 버렸다.
예전엔 쉽고도 위험한 루트가 ‘박쥐’길이였다. 요즘엔 박쥐날개 중간에 볼트를 한 개 설치해서 많이 떨어지는 것을 방지했지만 예전에는 날개초입에 뚫려있는 구멍에 슬링이 묶여있는 것이 전부여서 날개 끄트머리를 올라서지 못하고 추락하면 펜듀럼되면서 약15m를 페데기 쳐버렸다. 그래서 그때는 쉽고도 위험한 길로 유명했었다.
선인봉 ‘박쥐’길은 총길이 약150m, 총4-5피치로 끊어서 오르지만 정상까지 가기 위해선 제6피치로 등반해야 한다.
휴일이면 하루 종일 등반자들로 붐비는 루트이며 선인봉의 인기루트중의 하나이다.
‘박쥐’길은 선인봉 중앙에 서있는 늙은 소나무를 거쳐 가는 루트이며 전체적으로 5.7-10정도의 초중급자 루트이다. 바위형태는 전체가 크랙위주이며 소나무 위쪽의 제3피치에서 좌측으로 돌아갈 때는 15여m의 슬랩을 거쳐야 한다. 제1피치는 슬랩과 레이백이 적용되는 관바위크랙, 제2피치는 대형 언더크랙이 있고, 제3피치는 레이백으로 오르는 박쥐날개 상단부다. 제4피치는 우측으로 가면 미세한 언더크랙과 좌측으로 가면 슬랩으로 오른다. 제5피치는 재밍과 레이백이 적용되는 다양한 크랙등반의 묘미를 느낄 수 있는 그랙위주의 루트이다.
‘박쥐’길은 1960년 중앙고OB이자 한양대학교 산악회 회원이었던 선우중옥 씨와 양정고OB이자 동국대 산악회 회원이었던 전광호 씨가 개척했다. 그러고 보니 ‘박쥐’길의 나이가 벌써 56세가 되어 장년이 된셈이다. 1960년 초등반이 이루어졌을 때 단 하루(5시간)만에 등반이 이루어졌다 하니 개척자들의 대단한 등반력을 짐작케 한다. 초등반 당시 박쥐날개 크랙에는 수많은 박쥐들이 살고 있어 여름에 이곳을 오르게 되면 박쥐들의 냄새가 진동하고 크랙에 손을 넣으면 박쥐들이 손에 닿아 찌익찌익 소리를 내면 소름이 끼치기도 했었다. 지금은 박쥐가 한 마리도 없이 이사를 갔다.
전체적으로 크랙위주인 ‘박쥐’길은 하루종일 등반자들이 붐빈다. 이것은 쉽게 오를 수 있는 크랙으로 되어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선인봉의 상징적인 대표루트이기 때문이다.
오늘은 ‘박쥐’길을 오르기 위해서 산당회 고재성후배와 집사람인 이지민, 김홍례강사, 악우회 이남일과 같이 오르기로 했다. 필자도 오랜만에 박쥐길을 오르는데 약40년 전에 이 길을 오르던 생각에 들떠 있었다.
취재차 선인봉을 찾았을 때 마침 후배인 고재성과 이남일을 만나 같이 오르기로 하고 옛생각을 하니 더한층 기분이 좋아진다. 고재성은 이곳 선인봉의 날다람쥐 같은 클라이머다. 가만히 따져보니 ‘박쥐’길과 나이가 똑같았다. 청춘을 이곳 선인봉에서 지낸 선인의 골수파이기도 한 고재성후배는 지금은 어였한 장년이 되었고 백발이 된 머리는 길게 길러 머리 뒤에 묶어두었다. 마치 도를 닦은 도사가 바위에서 춤을 추듯 가벼운 몸놀림으로 사뿐사뿐이 움직이는 것을 보니 선인봉의 귀신을 보는 듯하다.
재성이는 눈 깜작할 사이 첫 피치의 관바위크랙을 올라 확보한다.
제1피치는(5.7), 약30m에 큰 크랙으로 오르게 되며 중간쯤에서 좌측의 능을 타고 올라 슬랩으로 쉽게 오를 수도 있다. 하지만 원래의 ‘박쥐’길은 곳바로 크랙을 따라 오르게 되며 중간지점의 반침니크랙을 지나 납작하고 네모진 일명 ‘관바위’를 언더로 잡고 우측으로 이동하여 레이백으로 곳바로 5m 정도 오르면 넓직한 테라스에 확보지점 두 곳이 있는데 이곳에서 제1피치가 끝이 난다.
전체적으로 5.7의 난이도의 쉬운 크랙으로 부담 없이 오를 수 있지만 관바위 언더크랙을 진입하기 전에 반침니가 벙어리여서 까다롭다.
제2피치는 박쥐날개 끄트머리 위의 쌍볼트에서 끊을 수도 있고 소나무까지 단번에 치고 오를 수도 있다. 하지만 날개위에서 한번 끊어주고 오르는 것이 재미있는 방법이다. 왜냐하면 이곳 박쥐날개를 오르는 것이 ‘박쥐’길을 오르는 묘미이기 때문이다.
이곳 제2피치 박쥐날개는 박쥐길 최고의 하이라이트다. 사실 이곳 언더크랙 날개를 오르기 위해서 ‘박쥐’길을 오르는 것이다. 예전에는 이곳 날개크랙에 볼트가 없었으며 프렌드가 개발되기 전에는 프렌드설치를 할 수 없으니 무수한 클라이머들이 이곳 날개를 넘지 못하고 추락을 반복했다. 그때는 왜 그렇게 여기저기서 많이 떨어졌는지 지금생각해보면 뻣뻣한 암벽화 탓을 해야 할 것 같다.
이곳 날개 끝부분에서 추락하면 10여 m 이상 떨어지며 관바위쪽으로 10여m 페데기 쳐버려 위험하다. 따라서 추락을 하면 중경상을 입기도 했다. 지금은 암벽화의 접지력이 좋아지고 기량이 좋아져 웬만하면 날개를 무난히 오를 수 있지만 70년대 말까지만 해도 하루에도 몇 번씩 떨어지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박쥐날개의 대형 언더크랙을 오르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그러나 초보자들은 공포심으로 인해 발의 디딜 곳을 제대로 찾지 못하고 몸이 굳어 바위쪽으로 바짝 붙기 때문에 오히려 발이 밀리게 되는 것이다. 예전에는 언더크랙(날개) 초입 날개에 구멍이 뚫려 있어 슬링을 묶어둔 것이 확보물의 전부였으니 추락의 공포심을 안고 올라야하는 쉽고도 위험한 루트였다.
우리팀은 남일이가 먼저 제2피치를 올라 날개 끄트머리 위에서 확보하고 필자가 사진을 찍기 위해서 올라갔다.
“야!, 재성아 거기서 네가 선등으로 올라와라!”하고 주문했다.
“아-예, 알았습니다.”
선인봉의 바위귀신 재성은 그야말로 눈 깜작할 사이 날개의 끄트머리를 올라오고 있었다.
“야, 이렇게 빨리 올라오면 어떻게 사진을 찍냐?, 위도 좀 쳐다보고 천천히 좀 올라와야 얼굴 나오게 사진을 찍을 수 있지.”
“아-예, 그럼 내려갈께요,”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순식간에 2m 정도를 내려가 버린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그냥 해본소리인데 이렇게 빠르게 움직일 줄이야......
아무튼 너무 빨리 움직여 마음에 드는 사진 찍기는 틀린 거 같다.
제3피치(5.7), 약18m 크랙으로 박쥐날개의 윗부분이 된다. 남일이가 쉽게 레이백으로 소나무까지 오른다. 이곳 크랙은 레이백으로 크랙 밖으로 나와서 올라야 쉽게 오를 수 있는 크랙이다. 이곳 제3피치가 선인봉의 상징인 소나무가 있는 피치이다. 이곳에 자리하고 있는 늙은 소나무는 수백년을 선인봉 중단 절벽 바위틈에서 이슬을 먹고 버텨온 소나무다. 이곳 소나무가 오래토록 살아서 클라이머들의 활력소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소나무 옆에는 녹슬은 큼직한 피톤이 아직도 건제함을 과시하면서 자리하고 있다. 이 피톤은 1972-80년 사이에 인천 백봉, 이영관 선배님이 대장간에서 제작해 정으로 구멍을 뚫고 하강용을 위해 인수봉과 선인봉에 박아논 피톤이다.
제4피치, 좌측의 슬랩구간(5.9),우측의 크랙구간(5.10a) 두 갈래로 갈라지는 피치이다.
등반길이 약35m 소나무에서 약10여m 크랙을 따라 오르면 이곳에서 두 갈래로 길이 갈라진다. 좌측의 슬랩으로 오르면 5.9 슬랩이며 우측의 크랙으로 가는 것보다 쉽게 오를 수 있는 구간이다. 슬랩을 통과하면 넓은 테라스가 나오며 이곳이 ‘허리테라스’라고 불리는 곳이다. ‘표범’길, ‘허리’길, ‘박쥐’길 등 여러 루트가 이곳 허리테라스에서 만나게 되며 10여명 이상이 편히 서있을 수 있는 넓은 곳이다.
소나무에서 직상을 해서 우측으로 활같이 휘어진 크랙으로 가는 것이 까다롭다. 우측으로 휘어진 10여m의 크랙은 위로 갈수록 손가락이 들어가지 않는 미세한 크랙으로 되어있기 때문에 발디딤장소를 잘 찾아 딛는 것이 쉽게 오르는 방법이다. 활같이 휘어진 크랙을 따라 거의 다가서 언더크랙에 개척당시에 박아놓은 하켄이 아직도 설치되어있다. 56년을 비바람에 꿋꿋하게 버틴 하켄이 이곳 ‘박쥐’길 세월의 상징적이며 이 하켄이 계속해서 버텨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하켄을 당겨보니 아직도 튼튼하다. 언제 또다시 이 길을 간다면 망치로 더 두둘겨서 튼튼하도록 박고 싶다. 밸런스를 요구하는 언더크랙이 끝나면 오버행 턱넘어 크랙을 잡고 왼쪽 발을 올려 딛고 턱을 올라서면 쌍볼트가 클라이머를 반긴다.
제5피치는 허리테라스에서 중앙으로 오르는 크랙과 테라스 우측크랙으로 오르는 길로 구분이 된다.
좌측크랙은 5.9이며 우측크랙으로 오르는 것은 5.8이다. 길이는 양쪽 다 50여m 된다. 볼트는 하나도 없고 좌측크랙은 캠 작은 것부터 중간사이즈까지 필요하고 테라스에서 출발점이 수직크랙으로서 재밍과 레이백이 가능한 크랙이다. 위로 올라갈수록 크랙은 쉬워지며 약45m 오르면 우측으로 쌍볼트가 있다. 이곳에서 크랙을 따라 정상으로 계속 갈수 있으며 대부분 이곳에서 하강을 하게 된다.
우측으로 오르는 크랙 역시 전체적으로 캠을 설치해야 하며 레이백과 재밍 등 다양한 크랙등반 기술을 요구한다. 쉽게 오를 수 있는 구간이다. 이곳역시 크랙을 따라 계속 정상으로 갈 수 있으며 이곳 쌍볼트에세 하강을 하게 된다.
등반길잡이
제1피치(5.7), 약30m, 관바위 크랙/제2피치(5.8), 약20m, 박쥐날개 언더크랙/ 제3피치(5.7), 날개 상단부 레이백 크랙, 약15m/ 제4피치, 약35m, 좌측슬랩(5.9), 우측크랙(5.10a)/ 제5피치(5.9), 좌측 수직크랙, 약45m, 우측 수직크랙(5.8) 약50m 등반 후 하강/ 마지막피치에서 정상으로 갈수 있음./ 야영은 선인봉 아래 지역 구조대 부근에서 할 수 있으나 국립공원 허가제이다. 식수는 석굴암장 150여m 못가서 우측에 샘터에서 구할 수 있다.
로프60m 2동/퀵드로우 8개/ 캠1세트/ 등반시간 2인조 1시간 30분 정도 소요된다.
찾아가는 길
지하철을 이용한다면 1호선을 타고 도봉산역에서 하차한다. 시내버스는 141번, 142번(파란색 간선버스)종점까지 간다.
지하철 도봉산역에서 내려 큰 도로를 건너 상가지역을 통과하여 국립공원 도봉분소를 거쳐 주 등산로를 따라 석굴암(사찰) 방향으로 간다. 30여 분 가면 도봉산장(도봉 대피소)이 나오며 산장 앞 3거리에서 우측길을 따라 계속해서 10여 분 가면 삼거리가 나오는데 이곳 삼거리에서 좌측의 석굴암 방향으로 가면 된다. 석굴암 뒤편의 암벽이 선인봉이다. 식수는 석굴암 약 150m 못 가서 등산로변 우측의 샘터에서 구할 수 있다. 선인봉은 도봉산 입구 멀리에서도 한눈으로 보이며 일반 등산객들도 잘 알려진 도봉산의 대형 암벽이다.
도봉동 상가지역에서 약1시간 20분이면 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