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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 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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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춘(立春) - 봄의 시작
입춘(立春)은 대한(大寒)과 우수(雨水) 사이에 있는 절기로, 음력(陰曆)으로는 정월(正月) 의 절기(節氣; 매달 상순에 드는 절기)에 해당하며, 태양이 황경(黃經; 춘분점에서부터 황도를 따라 잰 천체의 각도 거리) 315도에일 때이다. 양력(陽曆)으로는 2월 4일이나 5일경으로 봄이 시작됨을 알리는 절기이다.
입춘 전날이 절분(節分)인데, 철의 마지막이라는 뜻이다. 이날 밤을 "해넘이"라고 부르고, 콩을 방이나 문에 뿌려 마귀를 쫓고 새해를 맞는다고 한다. 그러므로 입춘을 마치 연초(年初)처럼 본다.
특히 입춘날에는 "입춘대길(立春大吉)" 등의 입춘방(立春榜)을 문에 붙이고, 입춘절식(立春節食)이라 해서 고유의 절기 때 먹는 음식인 절식(節食)으로 입춘날에 먹는 햇나물 무침이 있다.
유래는 경기도 내의 산이 많은 6개의 고을{양평(陽平), 지평(砥平), 포천(抱川), 가평(加平), 삭녕(朔寧), 연천(連川)}에서 움파{동총(冬蔥)}, 멧갓, 승검초 등 햇나물을 눈 밑에서 캐내 임금께 진상하고 궁궐에서 겨자와 함께 무쳐 "오신반(五辛盤)"이라 하여 수라(水刺)상에 올렸다.
멧갓은 이른 봄 눈이 녹을 때 산에 자생하는 개자(芥子)로서, 끊는 물에 데쳐내어 초장에 무쳐서 먹는데 몹시 맵고, 고기를 먹은 뒤 입가심으로 좋다. 승검초는 움막에서 기르는 당귀(當歸)의 어린 싹인데, 깨끗하기가 은비녀의 다리같고, 꿀에 찍어서 먹으면 아주 맛이 좋다.
햇나물 무침을 먹는 이유는 겨우내 결핍된 신선한 야채를 보충하기 위한 것으로, 민간(民間)에서도 이를 본받아 눈 밑에 돋아난 햇나물을 뜯어다 무쳐서 입춘절식으로 먹는 풍속이 생겼다.
옛 중국 문헌에는 입춘 15일간을 5일씩 3후(候)로 갈라서, ① 동풍이 불어서 언땅을 녹이고, ② 동면하던 벌레가 움직이기 시작하고, ③ 물고기가 얼음 밑을 돌아다닌다고 하였다. 잡절(雜節)은 입춘날을 기준으로 하여 결정된다. 밭에 씨앗뿌리기가 시작되는 88야(夜), 태풍시기인 210일, 220일 등은 각각 입춘날로부터 88일, 210일, 220일째 날이다.
예부터 입춘절기가 되면 농가에서는 농사 준비를 했다.
아낙들은 집안 곳곳에 쌓인 먼지를 털어내고 남정네들은 겨우내 넣어둔 농기구를 꺼내 손질하며 한 해 농사에 대비했다. 소를 보살피고, 재거름을 부지런히 재워두고, 뽕나무밭에는 오줌을 주고 겨우내 묵었던 뒷간을 퍼서 인분으로 두엄을 만들기도 한다. 바야흐로 바빠지기 시작하는 것이다.
일년 농사의 시작이 이제부터이기 때문이다. 또 이날 내리는 비는 만물을 소생시킨다 하여 반겼고, 입춘때 받아둔 물을 부부가 마시고 동침하면 아들을 낳는다 하여 소중히 여겼다. 그러나 '입춘한파'니, '입춘 추위 김장독 깬다'고 간혹 매서운 추위가 몰려와 봄을 시샘하기도 한다.
입춘날 농가에서는 대문이나 집안 기둥에 '입춘대길(立春大吉)', '건양다경(建陽多慶)' 같은 입춘첩(立春帖)을 써붙인다. 여기에는 한 해의 무사태평과 농사의 풍년을 기원하는 뜻이 담겨 있다. 더불어 어둡고 긴 겨울이 끝나고 봄이 시작되었음을 자축하는 뜻이기도 하다.
예전에 농가에서 이 날 보리 뿌리를 뽑아 보고 그 뿌리의 많고 적음에 따라 농사의 풍흉을 점치는 보리뿌리점(麥根占)을 쳤다. 여주인(女主人)이 소복(素服)을 하고 지신(地神)에게 삼배(三拜)를 올리고 보리뿌리를 뽑아 세 가닥이면 풍년, 두 가닥이면 평년, 한 가닥이면 이면 흉년이 든다고 믿었다. 또 부녀자들은 오곡을 솥에 넣고 볶을때 맨 먼저 솥 밖으로 튀어나온 곡식이 그 해에 풍작을 이룬다고 믿었다지만 이제는 다 옛 얘기가 되고 말았다.
제주도에서는 입춘일에 큰굿을 하는데, '입춘굿'이라고 한다.
입춘굿은 무당조직의 우두머리였던 수신방(首神房)이 맡아서 하며, 많은 사람들이 굿을 구경하였다. 이때에 농악대를 앞세우고 가가호호를 방문하여 걸립(乞粒)을 하고, 상주(上主), 옥황상제, 토신, 오방신(五方神)을 제사하는 의식이 있었다.
♣입춘풍속(입춘풍속)
立春은 24절기(節氣) 가운데, 한 해의 시작이요, 계절의 시작인 봄의 문턱을 의미하기 때문에 역시 정월(正月) 풍속과 함께 다양한 한 해의 복(福)을 기원하는 다양한 풍속들이 있었다.
◈ 입춘첩(立春帖)
: 춘첩자(春帖子), 입춘방(立春榜)
- 대궐(大闕)에서는 설날에 문신(文臣)들이 지어 올린 연상시(延祥詩:신년축시) 중에서 잘된 것을 선정하여 대궐의 기둥과 난간에다 입춘첩(立春帖)을 써붙였는데, 일반 민가와 상점에서도 모두 입춘첩을 붙이고 새봄을 송축(頌祝)했습니다. [ 帖(첩)문서 ]
* 입춘첩(立春帖) 예시
♠ 국태민안(國泰民安) 가급인족(家給人足
♠입춘대길(立春大吉) 건양다경(建陽多慶)
♠입춘대길(立春大吉) 건양다경(建陽多慶)
♠소지황금출(掃地黃金出) 개문백복래(開門白福來)
♠ <短句(단구)에는> 春到門前增富貴(춘도문전증부귀) 春光先到古人家(춘광선도고인가) 一家和氣滿門楯(일가화기만문순) 人情富貴如將得(인정부귀여장득) 玉洞桃花萬樹春(옥동도화만수춘) 立春大吉(입춘대길) 掃地篁金出(소지황금출) 開門萬福來(개문만복래) 壽如山富如海(수여산부여해) 戶納東西南北財(호납동서남북재) |
♠ <대구(對句)에는> 立春大吉 建陽多慶(입춘대길 건양다경) 國泰民安 家給人足(국태민안 가급인족) 雨順風調 時和豊年(우순풍조 시화풍년) 堯之日月 舜之乾坤(요지일월 순지건곤) 壽如山 富如海(수여산 부여해) 父母千年壽 子孫萬代榮(부모천년수 자손만대영) 天下太平春 四方無一事(천하태평춘 사방무일사) 天上近三陽 人間五福來(천상근삼양 인간오복래) 鳳鳴南山月 麟遊北岳風(봉명남산월 인유북악풍) 掃地黃金出 開門萬福來(소지황금출 개문만복래) |
◈ 목우(木牛) 놀이
- 함경도 지방에서 입춘이 되면 나무로 소를 만들어 관아(官衙)로부터 민가(民家)까지 끌고 나와서 돌아다니
는 풍속입니다. 이는 옛날 중국에서 흙으로 소를 만들어 내보내던 풍속을 모방한 것이고, 농사를 장려하고 풍
년(豊年)을 기원하는 뜻을 지닌 것입니다
◈ 아홉 차리 - 지방에 따라 입춘(立春)날이나 대보름 전 날에 베푸는 `아홉 차리'라는 민속이 있다. 가난하지만 근면하게 끈기 있게 살라는 교훈적인 세시민속이다. 이날은 각자 소임에 따라 아홉 번씩 부지런하게 일을 되풀이하면 한 해 동안 복을 받고 그렇지 않으면 화를 받을 줄 알았다. 글방에 다니는 아이면 천자문(天字文)을 아홉 번 읽고 나무꾼은 아홉 짐의 나무를 하며 노인이면 아홉 발의 새끼를 꼰다. 계집아이들은 나물 아홉 바구니를, 아낙들은 빨래 아홉 가지를, 길쌈을 해도 아홉 바디를 삼고 실 꾸리를 감더라도 아홉 꾸리를 감는다. 심지어는 밥을 먹어도 아홉 번, 매를 맞더라도 아홉 번을 맞았다. 굳이 아홉 번이라 함은 많이 했다는 의미이며 우리 조상들의 숫자 개념상 최고의 陽數(양수)이기 때문이다.
◈ 적선공덕행(積善功德行) - 또 입춘날이나 대보름날 전야에는 많은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는 착한 일을 꼭 해야 연중 액(厄)을 면한다는 적선공덕(積善功德)의 복지(福祉)민속도 있었다. 이를테면 밤중에 몰래 냇물에 가 건너 다닐 징검다리를 놓는다든지 가파른 고갯길을 깎아 놓는다든지 다리 밑 동냥움막 앞에 밥 한 솥 지어 갖다 놓는다든지 행려병자가 누워있는 원(院) 문전에 약탕 끓여 몰래 놓고 온다든지...
상여 나갈 때 상여머리에서 부르는 향도가(香徒歌)에
`입춘날 절기 좋은 철에/ 헐벗은 이 옷을 주어 구난공덕(救難功德) 하였는가/
깊은 물에 다리 놓아 월천공덕(越川功德) 하였는가/
병든 사람 약을 주어 활인공덕(活人功德)하였는가/
부처님께 공양드려 염불공덕(念佛功德)하였는가' 하는 대목이 있다.
죽어서까지도 염라대왕으로부터 입춘공덕(立春功德)을 심판 받았던 것이다. 오늘날에 되살리고 싶은 아름다운 우리의 입춘(立春)민속이다. (이규태 칼럼에서)
◈ 입춘수 - 입춘(立春) 전후에 받아 둔 빗물이 입춘수(立春水)다. 이 물로 술을 빚어 마시면 아들 낳고 싶은 서방님의 기운을 왕성하게 해준다고 알았다. 아울러 가을 풀섶에 맺힌 이슬을 털어 모은 물이 추로수(秋露水)다. 이 물로 엿을 고아 먹으면 백병을 예방한다고 알았다.
◈ 선농제 - 서울 동대문 밖에 제기동(祭基洞 : 전농동<典農洞>)이라는 지명이 있는데, 이곳(전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구내)에서 베풀어졌던 선농제(先農祭)의 제사에서 비롯된 이름들이다. 농사를 다스리는 신(神)인 신농(神農)에게 풍년을 비는 제사는 신라 때부터 있어왔다. 입춘(立春) 후 첫 해일(亥日)에 선농제, 입하(立夏) 후 첫 해일에 중농제(中農祭), 입추(立秋) 후 첫 해일에 후농제(後農祭) 도합 세 차례의 제사를 지냈는데 조선왕조에 들어와서는 이 동대문 밖에 선농단을 짓고 선농제만을 지내왔던 것이다.
♣ 우수(雨水) - 단비가 내려 대지를 적신다.
24절기(節氣)의 둘째. 입춘 후 15일 후인 양력 2월 19일 또는 20일경이 된다. 태양이 황경 330°에 올 때, 우수입기일(雨水入氣日)이 되는데, 음력 정월의 중기이다. 입춘과 경칩 사이에 있다.
봄을 알리는 단비가 내려 대지를 적시고 겨우내 얼었던 대지가 녹아 물이 많아진다는 의미로 우수(雨水)라 한다. 기후는 날씨가 풀려 봄바람이 불어와 "우수 경칩에 대동강(大同江) 물이 풀린다."라는 옛말이 전해온다.
옛 문헌에 우수 기간에는 수달이 물고기를 잡아 늘어놓고, 기러기가 북으로 날아가며, 초목에 싹이 튼다고 하였으며, 또한 옛사람은 우수 입기일 이후 15일간의 기간을 3후(三候)로 5일씩 세분하여 ① 수달이 물고기를 잡아다 늘어놓고, ② 기러기가 북쪽으로 날아가며, ③ 초목에는 싹이 튼다고 하였다.
수달은 강이 풀리면서 물위로 올라오는 물고기를 잡아 먹이를 마련하고 추운 지방의 새인 기러기는 봄기운을 피하여 다시 추운 북쪽으로 날아간다. 그렇게 되면 봄은 어느새 완연하여 초목에 싹이 튼다.
이제 농부는 논밭에 있는 병ㆍ충해 예방을 위해 논ㆍ밭두렁 태우기를 하는 등 본격적인 영농준비에 들어간다. 논ㆍ밭두렁 태우기는 겨울동안 죽지않고 살아있는 각종 병ㆍ충해를 박멸해 농작물의 병ㆍ충해를 예방하고, 증산을 꾀한다는 것에서 시작된 하나의 풍습이다. 농약이 변변찮던 시절 병ㆍ충해 예방을 위해 꼭 논ㆍ밭두렁 태우기를 하였다. 그러나 현재는 그 효과의 의문성, 좋은 농약의 등장, 산불의 위험때문에 점점 사라져가고 있다.
♣ 경칩(驚蟄) -동물(개구리)과 벌레들이 잠에서 깨어난다.
24절기의 셋째, 음력으로는 2월 절기이며 양력으로는 3월 6일경부터 춘분(春分:3월 21일경)전까지이다. 태양의 황경이 345도 일 때, 우수(雨水)와 춘분 사이에 있다. 계칩(啓蟄)이라고도 한다.
초목에 물이 오르고 겨울잠을 자던 동물(개구리)과 벌레들도 잠에서 깨어나 꿈틀거리기 시작한다는 뜻에서 경칩(驚蟄)이라는 이름이 붙여진 것이다.
경칩때는 동물뿐만 아니라 식물도 완전히 겨울잠을 깨는데 이를 '식물기간'이라 한다. 보리, 밀, 시금치, 우엉 등 월동에 들어갔던 농작물들도 생육을 개시한다. 이때 농촌의 봄은 바야흐로 시작된다. 담배모를 심고 과일밭을 가꾸는 등 농사가 본격화된다.
씨뿌리는 수고가 없으면 결실의 가을에 거둘 것이 없듯, 경칩때부터 부지런히 서두르고 씨 뿌려야 풍요로운 가을을 맞을수 있는 것이다.
동지로부터 81일이 지나면(경칩부근) 추위가 완전히 물러가는데 81일을 9일 단위로 나눠(9*9=81) 농부들은 구구가(九九歌)를 불렀다. 구구가는 긴 겨울동안 농사를 손놓아 게을러지는 것을 추스리고, 자연현상을 관철하면서 농사 시기를 살피고자 한 것이다. 그 중 아홉째 마지막 경칩 부근의 노래는 "밭가는 소의 모습을 어디서나 볼 수 있다"해서'구구경우(九九耕牛)'라 불렀다.
이때쯤이면 농가에서는 장 담그기를 한다. 장 담그는 일은 가정의 일 년 농사라 할 만큼 중요하다. 훌륭한 장맛의 비결은 좋은 재료 선택(콩,소금,물)과 주부의 손끝 정성에 있다. 잘 씻어 말린 장독에 메주를 넣고, 체에 받쳐 거른 소금물을 메주가 잠길 정도로 붓는다. 그리고 고추,참숯 등을 넣는다. 고추의 붉은색은 악귀를 쫓는다고 해서, 참숯은 살균작용을 하기에 꼭 넣는다. 장을 담근 장독에는 잡귀가 들지 못하도록 왼새끼를 꼬아 솔잎, 고추, 한지를 끼운 금줄을 쳐 장맛을 지켰다. 반찬이 변변찮던 시절, 농가에서는 맛의 근원이었던 장을 무척이나 아꼈다.
안동지방에서 알아준다는 종가집 종부는 "진짜 올장 담그기는 정월에 해야 해. 요즘이사 삼월도 좋고 사월도 좋지만 그러면 장맛이 제대로 안 나. 티가 쓸고, 곰팡이와 구더기가 잘 들게 돼 장맛이 영 파이지."라고 충고해 준다.
날이 완전히 풀리는 경칩 때가 되면 겨우내 인분이 쌓인 변소를 푼다. 인분은 직접 논밭에 뿌리기도 하지만 집 한켠에 쌓인 퇴비더미를 파고 묻어서 몇 달간 잘 썩은 거름을 파내어 논밭에 내었다. 퇴비더미를 '두엄'이라고 하는데, 두엄은 인분 또는 외양간에서 나온 쇠똥, 돼지우리에서 나온 돼지똥, 염소똥, 닭똥, 누에똥 등 각종 찌끼가 섞인 거름으로, 주재료는 역시 똥이다.
금비(金肥)를 양약이라 한다면 퇴비는 한약이다. 농토에 보약같던 퇴비는 지력을 높이는 성질이 있다. 우리 조상들이 퇴비 만들기에 열을 올린 이유도 바로 지력 증진을 통한 생산량 향샹에 그 이유가 있었다.
실학자 연암 박지원도 "과농소초(課農小抄)"에서 퇴비가 농사에 얼마나 중요한 지를 밝히고 있다.
금비는 질소, 인산, 가리로 대별되는데 우리 조상들은 금비가 없었기에 퇴비와 똥, 아궁이의 재(灰) 등을 농사에 이용하였다. 그것도 부족해 땟물조차 거름으로 만들고, 오줌도 아무데서나 누지 말고 꼭 집에서 누도록 했다.
경칩 풍속(驚蟄風俗)
♣ 개구리들이 봄을 맞아 논이나 물이 괸 곳을 찾아 알을 까놓는데, 그 알을 먹으면 몸을 보(補)하고 허리 아픈 데 좋다고 해서 경칩날 개구리 알 찾기가 벌어지기도 한다. 지방에 따라선 도룡뇽 알을 건져 먹기도 한다.
♣ 토역(土役, 흙일)을 하면 탈이 없다고 해서 이날 담을 쌓거나 벽을 바르는 일을 한다. 경칩 때 벽을 바르면 빈대가 없어진다고 해서 일부러 흙벽을 바르는 지방도 있다. 빈대가 심한 집에서는 물에 재를 타서 그릇에 담아 방 네 귀퉁이에 놓아두면 빈대가 없어진다는 속설이 전한다.
♣ 단풍나무나 고로쇠나무를 베어 나무에서 나오는 물을 마시면 위병이나 성병에 효과가 있다고 해서 약으로 먹는 지방도 있다.
♣ 춘분(春分) - 주.야의 길이가 같다.
춘분(春分)은 경칩(警蟄)과 청명(淸明) 사이에 드는 24절기의 하나로, 양력 3월 21일경부터 청명 전까지의 15일간을 말한다. 음력으로는 2월 중이다. 천문학에서는 태양이 남에서 북으로 천구(天球)의 적도와 황도(黃道)가 만나는 점(춘분점)을 지나가는 3월 21일경을 말한다.
태양이 2분(二分 :춘분.추분)에는 적도 바로 위에 있게 되고 2지(二至 :하지,동지)에는 최남{북회귀선}, 최북단{남회귀선}에 있게 된다. 태양이 황경(黃經) 0도에 위치하면서 천구(天球)의 적도 위를 남에서 북으로 끊고 지나가 밤과 낮의 길이가 같아진다.
태양이 남쪽에서 북쪽을 향하여 적도를 통과하는 점을 춘분점이라 하며 태양의 중심이 춘분점 위에 이르러 적도 위를 똑바로 비추며 밤과 낮의 길이를 같게 한다. 이 날은 밤낮의 길이가 같지만, 실제로는 태양이 진 후에도 얼마간은 빛이 남아 있기 때문에 낮이 좀 더 길게 느껴진다. 경칩과 청명의 보름 중간이 바로 춘분이다.
피안(彼岸)의 시기
불교에서는 춘분 전후 7일간을 봄의 피안이라 하여 극락왕생의 시기로 본다. 옛날 중국에서는 춘분기간을 5일을 1후(候)로 하여 3후로 구분하였는데, ① 제비가 남쪽에서 날아오고, ② 우뢰소리가 들려오며, ③ 그 해에 처음으로 번개가 친다고 하였다.
철 이른 화초는 벌써 춘분에 파종한다. 또한 화단의 흙을 일구어 얼마 남지 않은 식목일(또는 한식< 寒食>)을 위하여 씨뿌릴 준비를 한다.
농가에서는 농사 준비로 분주해진다. 특히 농사의 시작인 초경( 初耕)을 엄숙하게 행하여야만 한해 동안 걱정없이 풍족하게 지낼 수 있다고 믿는다.
밤과 낮의 길이가 같다는 춘분은 만물이 약동하는 시기로 겨울의 속박에서 완전히 벗어나는 때이다. 추운 북쪽지방에서도 "추위는 춘분까지"라고 했다.
일년 중 춘분에서부터 약 20여일이 기온상승이 가장 큰 때이다. 이때는 춥지도 덥지도 않은 난춘(暖春)시기로 일년 중 농부들이 일하기에 가장 좋은 시기이다. 이때를 두고 옛사람이 말하기를 "하루를 밭 갈지 않으면 일년 내내 배부르지 못하다." 했듯이, 동양에서는 이 날을 농경일로 삼고 씨앗을 뿌렸다. 춘분 때는 이웃끼리 파종할 씨앗을 바꾸어 종자를 정선한다.
겨울철 얼었다 땅이 풀리면서 연약해진 논두렁ㆍ밭두렁이 무너지는 것을 막기 위해 말뚝을 박는다. 또 천수답과 물이 귀한 논에서는 물을 받기 위해 또랑을 치기도 했다.
옛 말에 ,"이월에는 천하의 만민이 모두 농사를 시작하는 달"이라 했다. 이월의 농작업은 대부분 한 해 농사의 시작을 위한 준비작업이다. 즉 퇴비만들기, 마늘밭 거름주기, 보리밭 거름주기, 논의 객토, 특용작물 비닐하우스 관리, 비닐하우스용 고추ㆍ참외 파종, 과수의 가지치기, 장 담그기,고구마 싹 틔우기 등을 하는 농번기에 접어든다.
꽃샘바람
봄이지만 아직 음력 2월이라 이맘 때면 바람이 많이 분다. "2월 바람에 감치독 깨진다", "꽃샘에 설늙은이 얼어죽는다" 라는 속담도 있듯이, 2월 바람은 동짓달 바람처럼 매섭고 차다. 이는 풍신( 風神)이 샘이 나서 꽃을 피우지 못하게 바람을 불게 하기 때문이라고 전해온다.
♣ 청명(淸明) - 날씨가 청명하다.
24절기의 다섯째. 음력 3월 절기이며, 양력 4월 5, 6일경이 된다. 태양의 황경(黃經)이 15도에 있을 때이다. 춘분과 곡우 사이에 있다.
청명은 보통 한식과 겹치거나(6년에 한번씩) 하루 전이 되기도 한다. 그래서 "청명에 죽으나 한식에 죽으나 매일반"이라 했다. 또 이날은 식목일과 겹치는 것이 보통인데, 날이 풀리고 화창하여 일년 중 식목에 가장 적당한 시기이기 때문에 식목일을 청명과 같은 날로 잡은 듯하다.
청명 때는 삐삐, 또는 삘기라 부르는 띠(牙)의 어린 순이 돋는데 군것질거리가 없던 농가의 아이들이 다투어 뽑아 먹기도 했다.
청명·한식 때가 되면 특히 바람이 심한데, 이때 불이나기 쉬우므로 한식날은 불을 사용하지 않고 찬밥을 그냥 먹기도 했다.
옛 사람은 청명 15일 동안을 5일씩 3후로 세분하여, ① 오동나무의 꽃이 피기 시작하고, ② 들쥐 대신 종달새가 나타나며, ③ 무지개가 처음으로 보인다고 하였다.
이날 성묘( 省墓)를 간다. 우리 조상들만큼 성묘를 자주 하는 민족도 없을 것이다. 옛날에는 일년에 네 번, 그러니까 봄에는 淸明(청명), 여름에는 中元(중원, 음7월 15일), 가을에는 秋夕(추석), 겨울에는 冬至(동지)날, 눈길을 밟으며 찾아 뵙고 산소 위의 눈을 쓸어 내렸다.
청명이 되면 비로소
봄 농사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며, 봄 밭갈이를 한다. 논 밭둑을 손질하는 가래질을 품앗이로 행하기도 했다. 천수답이나 물이 부족한 논에서는 봄철 논물 가두기를 한다. 논물을 가두어 두었다가 물이 부족한 모내기 때 요긴하게 쓰자는 것인데, 가두어 둔 물은 대부분 봄가뭄에 마르기 마련이다. 현재는 저수지의 확충, 농업 용수의 개발, 양수기의 보급 등으로 논물 가두기는 사라졌다.
[동국세시기]의 기록에 의하면 청명(淸明)날 버드나무와 느릅나무를 비벼 새 불을 일으켜 임금에게 바친다. 임금은 이 불을 정승, 판서, 문무백관 3백 60 고을의 수령에게 나누어 준다. 이를 사화(賜火)라 했다. 수령들은 한식(寒食)날에 다시 이 불을 백성에게 나누어 주는데 묵은 불을 끄고 새 불을 기다리는 동안 밥을 지을 수 없어 찬밥을 먹는다고 해서 寒食(한식)인 것이다. 이렇게 하여 온 백성이 한 불을 씀으로써 동심일체를 다지고 같은 운명체로서 국가 의식을 다졌던 것이다.
꺼지기 쉬운 불인지라 한식 날 온 백성이 한 불을 나누어 갖기란 힘든 일이 아닐 수 없다. 습기나 바람에 강한 불씨통(藏火筒)에 담아 팔도로 불을 보내는데 그 불씨통은 뱀이나 닭껍질로 만든 주머니로 보온력이 강한 은행이나 목화씨앗 태운 재에 묻어 운반했던 것이다.
바로 그 신성한 새 불을 일으키는 날이 청명이요, 이 새 불을 온 백성이 나누어 가짐으로써 동심일체의 한 백성임을 재확인하는 날이 바로 한식날이다.
♣청명주(淸明酒)
청명절이 든 때에 담근 술을 춘주(春酒)라고도 한다. 찹쌀 석 되를 갈아 죽을 쑤어 식힌 다음, 누룩 세 홉과 밀가루 한 홉을 넣어 술을 빚는다. 다음날 찹쌀 일곱 되를 깨끗이 씻어 쪄서 식힌 다음, 물을 섞어 잘 뭉개어서 독 밑에 넣고 찬 곳에 둔다. 7일 후 위에 뜬 것을 버리고 맑게 되면 좋은 술이 된다.
♣ 나무 심기
청명, 한식이면 나무를 심는데 특히, "내 나무" 라 하여 아이를 낳으면 그 아이 시집 장가 갈 때 농짝을 만들어줄 재목감으로 나무를 심었다 한다.
♣ 내나무 노래
`한식 날 심은 내 나무 금강수(金剛水) 물을 주어 육판서(六判書)로 뻗은 가지 각 읍 수령(守令) 꽃이 피고 삼정승(三政丞) 열매 맺어... '하는 <내 나무 노래>를 부르며, 내 나무에 인생의 꿈을 실어 애지중지 길렀던 것이다. 연정(戀情)을 품은 아가씨가 있으면 그 아가씨의 내 나무에 거름을 주는 것으로 사랑을 표시하기도 했다 하니, 내 나무는 낭만이 깃든 사랑의 매체(媒體)이기도 했다. 되살리고 싶은 나무의 민속들이 아닐 수 없다.
♣ 나무 타령 한 구절
`청명(淸明) 한식(寒食) 나무 심자/ 무슨 나무 심을래/ 십리 절반 오리나무/ 열의 갑절 스무나무/ 대낮에도 밤나무/ 방귀 뀌어 뽕나무/ 오자마자 가래나무/ 깔고 앉아 구기자 나무/ 거짓없어 참나무/ 그렇다고 치자나무/ 칼로 베어 피나무/ 네 편 내 편 양편나무/ 입 맞추어 쪽나무/ 양반골에 상나무/ 너하구 나하구 살구나무/ 아무 데나 아무 나무...'
♣ 곡우(穀雨)
24절기의 여섯째. 봄의 마지막 절기로, 음력으로는 삼월중(三月中)이며, 양력으로 4월 20, 21일경, 태양의 황경(黃經)이 30도일 때이다. 청명과 입하(立夏) 사이에 들며, 곡식에 필요한 비가 내린다는 곡우(穀雨)는 봄비(雨)가 내려 백곡(穀)을 기름지게 한다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곡우 무렵이면 가뭄을 해갈하는 단비가 내리고 그 물로 못자리를 한다. 물이 꼭 필요한 곡우 때 비가 내리지 않으면 "곡우에 가물면 땅이 석 자나 마른다."고 걱정할 정도였다.
곡우는 농사에 가장 중요한 절기중의 하나이다. 왜냐하면 곡우 때 못자리를 하기 때문이다. 농사 중의 농사인 벼농사의 파종이 있는 날이므로 죄인도 잡아가지 않을 정도였다. 나라에선 농민들에게 곡우임을 알려 볍씨를 내어주며 못자리를 권장하는 행사로 법석을 떨었다.
옛날에는 곡우 무렵에 못자리할 준비로 볍씨를 담근다. 볍씨를 담은 가마니는 솔가지로 덮어두며, 밖에 나가 상가(喪家)에 들렀거나 부정한 일을 보았을 때는 집 앞에 와서 불을 놓아 악귀를 몰아낸 다음에 집안에 들어오고, 들어와서도 볍씨를 볼 수 없게 하였다. 만일 부정한 사람이 볍씨를 보게 되면 싹이 트지 않고 농사를 망치게 된다는 俗信(속신)이 있었다. 이렇듯 우리의 선조들은 농사의 시작부터 경건한 종교성을 갖고 임했다.
곡우 때는 농작물의 파종기가 집중되어 있다. 볍씨 소독, 못자리 만들기, 고구마 싹 틔우기, 시금치ㆍ배추ㆍ열무 등 봄채소 파종,호박ㆍ고추ㆍ조 파종, 봄보리 갈기(파종), 겨울보리 아시ㆍ두벌 김매기,감자 심기, 마늘 웃거름 주기 등이다.
일년중 날씨가 가장 변덕스러운 때이므로 농가에선 늦서리의 피해를 당하지 않도록 유의해야 한다. 청명ㆍ곡우가 낀 양력 4월은 황사가 많은 계절이다. 몽골건조지대와 중국 황하지방에서 불어오는 황사는 한반도 곳곳에 엄청난 피해를 입힌다. 황사가 끼면 하늘이 누런 먼지로 뒤덮이고 가시거리가 짧아진다. 햇볕을 가려 농작물의 성장을 방해하고 각종 기관지염과 눈병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그러나 황사가 농작물에는 좋은 역할을 한다. 예부터 적조방제나 물고기의 질병치료를 위해 황토를 사용했듯이 황사는 호수의 산성화를 막는 중화제 역할을 한다. 또 토양의 산성화를 막고 식물성장의 촉진제 역할도 겸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황사에는 식물의 영양분인 칼슘, 마그네슘이 평소의 대기보다 높게 포함돼 있어 식물성장에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황사 현상은 봄청 중국 내륙지방에서 발달한 한랭 전성에 의해 대기권 상층부로 불려 올라 간 모래가 편서풍을 타고 한반도까지 불어오는 것으로, 일명 토우(흙비)라고도 하며, 이 황사는 비가 내리면 누런색을 띤다하여 '황우(黃雨)'라 하기도 한다. 또한 누런 모래 먼지가 만 길까지 뻗쳐 있다 하여, "황사만장(黃砂萬丈)" 이라고도 부른다.
♣ 곡우물 - 곡우 무렵엔 나무에 물이 많이 오른다. 명산으로 [곡우물]을 마시러 간다.곡우 물은 주로 산 다래, 자작나무, 박달나무 등에 상처 내서 흘러내리는 수액이다. 몸에 좋다고 해서 전남, 경남·북, 강원도 등에서는 깊은 산 속으로 곡우물을 약수로 마시러 가는 풍속이 있다. 경칩의 고로쇠 물은 여자 물이라 해서 남자에게 좋고, 곡우물은 남자 물이라 해서 여자들에게 더 좋다고 한다. 거자수(자작나무 수액)는 특히 지리산 아래 구례 등지에서 많이 나며 그곳에서는 곡우 때 약수제까지 지낸다.
♣ 곡우 살이- 황해(黃海) 바다에서에서 조기가 많이 잡히는데, 흑산도 근해에서 겨울을 보낸 조기는 곡우 때면 북상해서 충청도 격렬비열도 쯤에 올라와 있고 이때 잡는 조기를 <곡우살이>라 부른다. 곡우살이는 아직 크지는 않았지만 연하고 맛이 있어 남해의 어선까지 출어해 잡아 올린다.
♣ 雨前茶(우전차) -곡우전후에 따는 잎으로 만든 차를 우전차 또는 細雀(세작)이라 부르는데 최상품으로 친다. 우전차는 찻물의 온도를 55 ~ 60도쯤으로 하여 우린다. 참고로 곡우를 지나 입하 경에 따는 차를 中雀(중작)이라 하며 물의 온도를 6, 70도 사이에 맞추면 좋다.
♣ 곡우절식(穀雨節)
곡우를 전후하여 인천 앞바다에서 잡는 조기가 살찌고 맛이 좋다고 하여 장안에서 조기국 먹기를 기다린 날이기도 하다. 또한 < 봄 조개>. < 가을 낙지>라는 말처럼 봄 조개는 제일 맛날 때이다. 대합탕, 대합구이가 제맛이 나며. 또한 도미가 도톰하게 살이 찔 때라 도미찜. 도미탕 등을 하면 제일 맛이 있을 때이다. 4월의 절식으로는 증편, 개피떡, 화전, 어채(魚菜), 어만두(魚鰻頭), 복어, 도미 등이 있다.
♣ 조기 맑은 탕
맑은장국에 청장으로 간하여 싱싱한 조기를 큼직하게 토막내어 넣고 잠시 끓인다. 불에서 내리기 직전에 쑥갓잎을 넣어 고소한 조기 맛과 시원하고, 향긋한 맛으로 먹는 시절식이다. 또한 '곡우 살이국'은 연평도 근해에서 잡힌 어린 조기살 맛이 기막히다 해서 얻어진 이름인데, 냄비에 무우를 골패쪽으로 썰어 깔고 어린 조기를 씻어 안치고, 고추장과 된장을 풀은 장국을 부은 다음 펄펄 끓이다가 위에 계란을 풀어 얹어서 빨리 꺼내어 따끈하게 먹는다. 이때가 보통 양력 4월 20일경이 된다.
♣ 천렵
물이 따뜻해질 때니 천렵을 나가 물고기를 잡아서 지져 먹고, 어죽도 끓여 먹었다. 특히 참조기는 알을 낳기 위해 서해안을 따라 올라오는데 알이 통통히 밴 조기로 만든 찌개는 일미이다.
♣ 복어국
복어는 하돈(河豚)이라 하고, 독이 많아 조심해서 조리해야 하는 음식이다. 살만 토막내어 참기름에 지져서 끓이면 맛이 기막히고, 해독이 되어 안심하고 먹을 수 있다고 한다.
♣ 어채와 어만두
어채는 생선을 저며 썰어 녹말을 입혀 데치고- 오이, 국화잎, 전복, 석이, 표고버섯도 데친다. 익힌 생선, 달걀 지단, 익힌 채소를 그릇에 함께 담아 초고추장과 함께 먹는다. 익힌 회라 하여 숙회라고 하며 주안상에 차갑게 내는 음식이다.
어만두는 흰살 생선(민어)을 큰 조각으로 떠서 - 고기소를 넣고- 만두 모양으로 만든다. 이것을 녹말에 묻혀- 쪄 내어 초장에 찍어 먹는다.
♣ 장미 화전
찹쌀가루 반죽에 노란 장미 꽃잎을 얹어 기름을 두르고 지져서 먹는다. 이는 3월 삼짇날에 먹는 화병과 같은 것으로 유전(油煎)이라고도 한다.
♣ 대합 구이
대합을 살짝 익혀 입이 벌어지면- 살을 꺼내 조갯살과 함께 다져- 다진 쇠고기와 섞어서 양념한다. 이것을 조개껍질에 채워 담고, 밀가루, 달걀을 입혀 지진 다음- 석쇠에 놓고 따끈하게 구워 낸다.
♣ 증편과 개피떡
증병(烝餠)이라고도 하는데 쌀가루를 술로 반죽하여 부풀어 오르게 한다. 그 다음 방울 모양으로 한 수저씩 떠서- 삶은 콩을 꿀로 반죽하여- 속에 넣는다. 그 위에 대추살을 얹어 찐다.
예전 서울에는 떡장수들이 증편을 이고 집집으로 팔러 다녔다. 청, 백색 두 가지인데 승검초 가루를 섞은 것이 청색이다. 개피떡은- 흰색과 쑥을 넣은 푸른색의 떡에- 팥소를 넣어 반달형으로 만든다.
♣ 입하(立夏) - 여름의 문턱에 들어선다.
입하는 24절기 중위 일곱 번째 절기이다. 곡우와 소만 사이에 들어 있으며, 음력으로는 4월, 양력으로는 대개 5월 6일 전후에 해당된다. 태양의 황경(黃經)이 45°에 이르렀을 때이다.
이맘때면 곡우에 마련한 못자리도 자리를 잡아 농삿일이 좀더 분망해진다. 파릇한 신록(新綠)이 신비한 색상으로 온 누리를 뒤덮는다.
입하(立夏)는 말 그대로,<여름에 든다>,<여름의 문턱에 들어선다>는 뜻이다.여름은 입하(立夏)에서부터 시작하여 입추(立秋)전까지이다.
입하가 되면 농작물도 자라지만, 아울러 해충도 많아지고 잡초까지 자라서 이것들을 없애는 작업도 많다.
옛사람들은 입하 15일간을 5일씩 3후(候)로 세분하여, ① 청개구리가 울고, ② 지렁이가 땅에서 나오며, ③ 왕과(王瓜: 쥐참외)가 나온다고 하였다.
곡우전후에 채다한 세작을 茶(차)중에서도 최상품으로 치나, 한국의 茶聖(다성), 초의(艸衣)선사는 '우리의 차(茶)는 곡우 전후보다는 입하(立夏) 전후가 가장 좋다'고 하였다.
옛날엔 입하가 되면 농작물도 자라지만 해충도 번성하고 또 잡초까지 자라서 이것을 제거하는 행사를 권장하였다.
입하에 이르면 그간 일교차가 크고 변화 많던 날씨는 안정되고, 천지만물은 무성히 자라기 시작한다.
잎새를 띄운 나뭇잎은 윤기를 더하고 그렇지 않은 나무들은 마지막으로 싹을 띄워 푸르름의 여름으로 넘어가고자 몸부림친다.
이때 마을에는 한두 그루쯤 있는 이팝나무에서 흰꽃이 핀다. 꽃이 마치 흰 쌀밥 같이 온 나뭇가지를 뒤덮으며 피는데 꽃이 한꺼번에 잘 피면 그해 풍년이 들고, 꽃이 신통치 않으면 흉년이 들 징조라고 한다. 그러니까 우리 조상들은 쌀밥나무라 부르는 이팝나무를 통해 그해의 풍흉을 점쳤던 것이다.
역시 계절의 여왕은 이때다.
산에는 뻐꾸기 울어 예고, 들에는 온갖 나물들이 지천으로 돋아나 입맛을 돋군다.
녹음이 무성해지고 농가에서는 못자리 돌보기 등의 농사일이 한창일 때다.
"입하가 지나면 여름"이라 했지만 산간지방에서는 우박이 내려 담배, 깻잎, 고추 등 어린 모종이 해를 입기도 한다. 또 높새바람이 불어 농작물의 잎을 바짝 마르게 하는 해를 입히기도 한다.
♣ 소만(小滿)
24 절기 중위 여덟 번째 절기이다. 소만(小滿)은 입하(立夏)와 망종(芒種) 사이에 있는 음력(陰曆) 4월 중기(中氣)로 태양이 황경 60도에 도달한 날이 입기일(立氣日)이 되고 양력으로는 5월 21일경이다. 의미는 만물(萬物)이 점차 생장(生長)하여 가득찬다(滿)는 뜻으로, 날씨가 여름에 들어서 모내기가 시작되고 보리 수확(收穫)을 하기 시작합니다.
옛 사람들은 소만을 5일씩 3후(三候)로 등분하여, ① 초후(初候)에는 씀바귀가 뻗어 나오고, ② 중후(中候)에는냉이가 누렇게 죽어가며, ③ 말후(末候)에는 보리가 익는다고 하였다. 이 시기에 심한 가뭄이 들곤 한다.
여름의 분위기가 본격적이다. 연푸른 들판과 넘실거리는 논물이 볼 만하다. 밭농사의 김매기들이 줄을 이으며, 가을 보리 베기에도 바쁜 시기라서 1년중 가장 바쁠 계절로 접어들 때이다. 이 시기에는 가물 때가 많아서 밭곡식 관리와 모판이 마르지 않도록 물 준비를 부지런히 해야 한다.
모든 산야가 이토록 푸른데 대나무만큼은 푸른 빛을 잃고 누렇게 변한다. 이는 새롭게 탄생하는 죽순에 자기의 영양분을 공급해주었기 때문이다. 마치 어미가 자기 몸을 돌보지 않고 어린 자식에게 정성을 다하여 키우는 모습을 본 듯하다. 그래서 봄의 누래진 대나무를 가리켜 죽추(竹秋 - 대나무 가을) 라 한다.
초후를 전후하여 죽순(竹筍)을 따다 고추장이나 양념에 살짝 묻혀 먹는다. 시절식으로 참 좋은 별미이다. 또한 즐겨 시식하는 냉잇국도 늦봄 내지는 초여름의 시절식으로 예로부터 유명하다. 소만이 되면 보리가 익어가며 산에서는 부엉이가 울어 옌다. 이때 쯤이면 '보릿고개'란 말이 있을 정도로 내남없이 양식이 떨어져 가난하고 힘겹게 연명하던 시기다.
보리는 말후를 중심으로 익어 밀과 더불어 여름철 주식을 대표한다.
절기가 소만에 이르면 남쪽 따뜻한 지방에서부터 감자꽃이 피기 시작한다. 감자꽃은 희꽃이 피는 흰감자와 자주꽃이 피는 자주감자가 있다.
산과 들판은 신록이 우거져 푸르게 변했고 '추맥(秋麥)'과 '죽맥(竹麥)'이 나타난다.
음력 3.4월이면 '권농(勸農)의 달'이라 하여 매우 바쁜 시기이다. 봄바람과 더불어 모판을 만들면서부터 농사일이 바빠진다. 경운기와 트랙터를 이용한 논갈이, 모판 만들고 볍씨 뿌리기, 올콩심기, 면화ㆍ참깨ㆍ아주까리 파종, 춘잠치기, 3월에 심은 채소류 관리 및 김매기, 소ㆍ돼지 등 교미시키기가 그것이다.
♣망종(芒種) -수염이 있는 까끄라기(芒) 곡식의 종자를 거두고, 뿌림.
24절기 중의 아홉 번째 절기이다. 음력 4, 5월, 양력 6월 6, 7일경이 된다. 소만(小滿)과 하지(夏至) 사이에 들며, 태양의 황경(黃經)이 75도일 때이다.
옛 사람들은 망종을 5일씩 끊어서 3후(三候)로 나누었는데, 초후(初候)에는 사마귀가 생기고, 중후(中候)에는 왜가리가 울기 시작하며, 말후(末候)에는 지빠귀가 울음을 멈춘다 하였다.
망종(芒種)은 벼, 밀, 보리 등 수염이 있는 까끄라기(芒) 곡식의 종자를 거두고, 뿌려야 할 적당한 시기라는 뜻이다.
이 무렵에는 모내기와 보리베기를 하는 시기이다. "보리는 망종 전에 베라" 는 속담이 있는데, 망종까지는 모두 베어야만 논에 벼를 심는다. 또 망종을 넘기면 보릿대가 꺾어지거나 부러질 염려가 있고 바람에도 넘어갈 염려가 있기 때문이다.
망종까지는 보리를 베어야논에 벼도 심고,밭 갈아 콩도 심게 된다.
망종을 넘기면 모내기가 늦어지고, 바람에 보리가 넘어져 수확하기가 어려워진다. 특히 보리는 "씨 뿌릴 때는 백일, 거둘 때는 삼일"이라 할 정도로 시간이 촉박했다.
남쪽에서는 '발등에 오줌싼다'고 할만큼 1년 중 제일 바쁜 때이였다.
보리 그스름 - 전남지방에서는 망종날 '보리 그스름' 이라 하여 아직 남아있는 풋보리를 베어다 그스름을 해 먹으면 이듬해 보리 농사가 잘 되어 곡물이 잘 여물며 그해 보리밥도 달게 먹을 수 있다고 한다. 또한, 이날 보리를 밤이슬에 맞혔다가 그 다음날 먹는 곳도 있는데, 이렇게 하면 허리 아픈 데 약이 되고 그 해를 병 없이 지낼 수 있다고 믿는다.
망종보기 - 망종이 일찍 들고 늦게 들음에 따라 그 해 농사의 풍흉(豊凶)을 점친다. 음력 4월 내에 망종이 들면 보리농사가 잘되어 빨리 거두어들일 수 있으나 5월 망종이 들면 그 해 보리 농사가 늦게 되어 망종내에도 보리 수확을 할 수 없게 된다고 한다.
전남, 충남, 제주도에서는 망종날 하늘에서 천둥이 요란하게 치면 그 해 농사가 시원치 않고 불길하다고 한다. 경남 도서 지방에서는 망종이 늦게 들어도 빨리 들어도 안 좋으며 중간에 들어야 시절이 좋다고 한다. 특히 음력 4월 중순에 들어야 좋다고 한다.
망종날 풋보리 이삭을 뜯어 와서 손으로 비벼 보리알을 모은 후 솥에 볶아서 맷돌에 갈아 채로 쳐 그 보릿 가루로 죽을 끓여 먹으면 여름에 보리밥을 먹고 배탈이 나지 않는다고 한다.
제주도 지역에서는 망종이 일찍 들면 그해 보리가 좋고 늦게 들면 보리가 좋지 않다고 하며, 또 이날 우박이 내리면 시절이 좋다고 한다.
망종은 보리를 먹게 되고 볏모를 심는 시기다. 망종은 말 그대로 까라기 종자라는 뜻이니 까끄라기가 있는 보리를 수확하게 됨을 의미한다.
보리를 수확한 후에는 보리깍대기를 태워야 모내기 하기에 편리하다. 그리고 모를 심어도 빨리 사름(뿌리 활착)하게 된다. 그래서 보리수확이 끝난 논마다 보리깍대기 태우는 연기로 장관을 이루게 된다.
농가에서는 이맘 때 쯤이면 보리수확과 모내기가 연이어져 부척 바쁘게 된다. 이때의 바쁨을 일러 "발등에 오줌 싼다"고 말한다.
망종때는 농사일이 끊이지 않고 연이어져 일을 멈추는 것을 잊는다고 '망종(忘終)'이라고도 했다. 말 그대로 농번기의 최고 절정인 것이다.
보리수확과 타작이 끝나는 망종때부터 모내기가 대대적으로 시작된다. 특히 이모작을 하는 남부지방에서는 보리나 밀을 베랴, 논을 갈고 써래질하고 모심으랴, 눈코 뜰새없이 바쁘다. 이렇게 바쁘다 보니 자연 "불 때던 부지깽이도 거든다, 별보고 나가 별보고 들어온다."는 말까지 생기게 되었다.
이때의 바쁨을 이문구는 동시 '오뉴월'에서 이렇게 감칠맛나게 표현했다.
엄마는 아침부터 밭에서 살고
아빠는 저녁까지 논에서 살고
아기는 저물도록 나가서 놀고
오뉴월 긴긴 해에 집이 비어서
더부살이 제비가 집을 봐주네
모심기는 또 얼마나 괴로운 일이던가.
논에 물이 많으면 심어도 모가 곧 뽑히고, 적으면 구덩이가 쉽게 드러나 뿌리가 마르고 만다. 또 모를 심으면 며칠간 모끝이 하얗게 마르는 죽사름을 시작하는데, 이것은 못판에 있던 모를 옮겨 심으므로써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느라 잠시 죽은 듯이 있다가 뿌리를 내리며 다시 기운차게 살아오르기
위함이다.
모내기
못자리에서 기른 모를 본논에 옮겨 심는 일
모심기라고도 한다. 한국의 벼농사에서 모내기에 의한 농사법이 널리 보급된 것은 조선 중기 이후부터이며 그 이전에는 논에 물을 대고 논바닥을 고른 다음 종자를 뿌리거나, 밭상태의 논을 고르고 종자를 뿌리는 직파재배법(直播栽培法)에 의하여 대부분의 논농사가 이루어졌다.
근래에는 한국을 포함한 동남아시아의 대부분의 벼농사 지대에서 모내기를 통한 벼재배가 일반화되어 있지만, 아시아 ·아프리카의 일부지역과 미국의 벼농사 지대에서는 지금도 직파재배가 실시되고 있다.
모내기를 통한 벼농사의 장점으로는,① 어린 모가 좁은 면적의 못자리에서 생육되기 때문에 집약적인 관리 ·보호를 받을 수 있다. ② 못자리기간만큼은 본논을 다른 용도로 이용할 수 있어 토지 이용도를 높일 수 있다. ③ 본논에 물을 대는 기간이 단축되어 관개수를 절약할 수 있다. ④ 일정한 간격으로 모를 심기 때문에 본논의 재배관리가 쉽다. ⑤ 본논관리를 집약적으로 수행함으로써 단위면적당 수확량을 높일 수 있다.
모내기는 그 지방의 기후 ·재배품종 ·병해충 발생 ·지력 등을 고려하여 수확량을 가장 많이 낼 수 있는 시기에 실시하게 되며, 수리(水利) 사정 · 윤작(輪作) 관계 · 노동력 사정 등도 고려되어야 한다.
기계모내기를 할 때는 손으로 모를 낼 때보다 10일 이상 덜 자란 모를 심기 때문에 품종별 ·지역별로 늦심기 한계기의 범위 안에서 모를 내야 한다.
모내기를 하는 방식에는 산식(散植)과 정조식(正條植)이 있다. 산식은 포기 사이와 줄 사이가 고르지 못한 방법으로, 최근에는 거의 이용하지 않고 있다. 정조식은 줄 사이와 포기 사이가 일정하여 논에서의 여러 가지 작업을 편리하게 할 수 있으므로 이 방법이 많이 이용되고 있다. 정조식으로 모를 심을 때도 줄 사이와 포기 사이의 거리에 따라서 여러 방식으로 나누어지며, 일반적으로 줄 사이 21cm×포기 사이 21cm와 같이 정사각형에 가까운 모양으로 모를 심는 정사각형식, 30cm×15cm와 같이 심는 직사각형식, 직사각형식의 변형인 병목식(竝木植), 또는 2조(二條) 병목식 등의 방법이 널리 쓰이고 있다.
벼의 재배조건에 따라서 모내기 방식을 선택해야 하며, 비옥한 논, 심경다비(深耕多肥) 조건, 기후가 온난한 평야지, 소식(疏植), 수수형품종(穗數型品種) 재배 등의 환경에서는 정사각형식이나 이에 가까운 방식으로 심는 것이 좋지만 한랭지역(寒冷地域), 척박한 논, 밀식(密植), 조식(早植), 수중형품종(穗重型品種) 재배 등의 환경에서는 직사각형식이나 병목식으로 모를 심는 것이 유리하다. 직사각형식은 정사각형식에 비하여 포기 사이가 좁으므로 초기의 생육은 약간 억제되나 줄 사이가 넓기 때문에 생육 후기까지 비료의 흡수가 쉬우며, 줄 사이를 통한 통풍과채광이 좋은 장점을 가지고 있어 관리작업이 더 편하다.
정조식으로 모를 심을 때 줄 사이와 포기 사이의 거리에 따라서 단위면적당 심는 포기수가 결정되며 이것과 포기당 심는 못수[苗數]를 합한 것을 벼의 재식밀도(栽植密度)라 한다. 일반적으로 벼의 재식밀도는 그 지방의 기상 ·토양 ·시비량 ·재배품종 ·모내기 시기 ·모의 소질 ·노동력사정 등을 고려하여 결정한다. 원칙적으로 분얼(分蘖)이 억제되고 생육이 충분하지 못한 환경, 즉 땅이 척박하고 비료가 적은 조건, 한랭지대, 늦심기, 이삭이 크고 분얼이 적은 품종 및 작은 모를 심을 경우에는 밀식이 유리하며, 이와 반대로 벼의 생육에 좋은 조건, 즉 땅이 비옥하고 비료를 많이 주는 경우, 난지(暖地), 조식,분얼을 많이 하는 품종 및 큰 모를 심을 경우에는 밀식의 효과가 적거나 경우에 따라서는 소식하는 것이 오히려 유리하다.
2모작의 경우에는 모심는 시기가 늦어질수록 더 배게 심어야 하며, 3.3m2
당 85∼120주(株) 가량을 심고 포기당 못수는 5∼6이 알맞다. 모내기할 논은
써레질을 할 때 높고 깊은 곳이 없도록 논고르기를 잘 하여야 물관리가 쉽고 제초제(除草劑)의 피해도 적게 받는다.찰흙논을 경운기의 로터리로 곤죽이 되도록써레질을 한 후 바로 모를 심으면 모가 땅속으로 빠져들어가 깊이 심는 것과 같은 결과를 가져오므로 찰흙논은 모내기 2∼3일 전에써레질을 하여 흙이 어느 정도 가라앉은 다음에 모를 심는 것이 좋다.
모내기할 때는물을 얕게 댄 후 모춤을 가지런히 맞추어서 2~3cm 깊이로 얕게 심어야 새 뿌리가 빨리 내리고 새끼를 많이 치게 된다. 물이 잘 빠지지 않는 습답의 경우에는 10∼15줄마다 1줄씩 배수구(排水口) 예정지를 만들어 무효분얼기
(無效分蘖期)에 흙을 파올려 골을 만들고 중간물떼기[中間落水]를 하여야 벼의 후기생육이 좋아진다.최근 벼농사에서 이앙기(移秧機)의 보급 ·이용이 급속히 늘어남으로써 한국의 논농사도 기계화 시대에 들어섰다. 이앙기를 이용할 때는 먼저 기계를 철저히 점검하여 가장 좋은 상태에서 작업을 할 수 있도록 손질을 해두어야 한다. 모내기 전의 작업준비로는 이앙기에 모를 싣고, 단위면적당 포기수와 한 포기당 못수를 알맞게 조절하고 모심는 깊이를 조절한 후 유압 레버를 이앙상태로 해주는 일을 점검 ·확인해야 한다. 또 모를 심기 전에 논의 모양을 살펴보고 심어나갈 방향을 결정해야 하며, 일반적으로 기계의 전진 방향은 논의 긴 쪽 방향으로 하고 논두렁이 곧은 쪽부터 심기 시작하는 것이 좋고, 논두렁의 양쪽이 굽은 논에서는 안쪽에서부터 심기 시작하는 것이 좋으며, 삼각형 논은 적게 굽은 쪽부터 심어나간다.
최초 4줄(4조식 이앙기인 경우)은 그 뒤의 기준이 되므로 천천히 운전하여 똑바로 심어나가야 하며, 모심기를 시작할 때 논의 양쪽 머리에 이앙기가 회전할 부분 8줄 정도를 남겨야 하며, 마무리작업은 긴 쪽으로 4줄을 남기고, 한쪽 머리 논부터 심은 다음 , 긴 쪽 4줄을 심고 , 마지막으로 나머지 한쪽 머리 논을 심어주면 마무리가 끝난다.
작물의 생리 ·생태적인 면에서는 가급적 모를 일찍 내는 것이 유리하지만 한국과 같은 온대지방에서는 모의 발근생리(發根生理)로 보아 평균 기온이 13~15.5℃ 이상이 되어야 모를 낸 후 새 뿌리를 뻗을 수 있기 때문에 모를 일찍 내는 데도 한계가 있다.
1모작보다 모내기가 늦어질 수밖에 없는 2모작 논의 경우에는 하루라도 빨리 모내기를 하는 것이 유리하며, 늦어도 중부지방은 6월 하순,남부지방은 7월 상순을 넘지 않도록 해야 한다.
기계모내기를 할 때는 손으로 모를 낼 때보다 10일 이상 덜 자란 모를 심기 때문에 품종별 ·지역별로 늦심기 한계기의 범위 안에서 모를 내야 한다.
♣ 하지(夏至)- 낮의 길이가 1년 중 가장 긴 날
하지는 24절기 중의 열번째 절기이다. 망종(芒種)과 소서(小暑)사이에 있는 음력(陰曆) 5월 중기(中氣)로 태양이 황경 90도에 이른 때로 양력(陽曆)으로는 6월 22일경이다. 이 날은 태양이 황도상에서 가장 북쪽에 위치한 하지점에 이르러, 낮의 길이가 1년 중 가장 긴 날이 된다.
북반부에서는 남중고도라고 하여 정오의 태양 높이가 가장 높고, 태양으로부터 많은 열을 받으므로 지구 표면에 가장 많은 열량(熱量)을 받는다. 이 열량이 쌓여서 하지 이후에는 기온이 상승하여 몹시 더워지며, 삼복(三伏) 더위에 접어들게 된다.
북극지방에서는하루 종일 해가 지지 않고, 남극에서는 수평선 위로 해가 나타나지 않는다. 동지에 가장 길었던 밤 시간이 조금씩 짧아지기 시작하여 이날 가장 짧아지는 반면에 낮 시간은 14시간 35분으로 1년 중 가장 길다.
옛 사람들은 하지 15일간을 5일씩 끊어서 3후(候)로 나눠서, ① 초후(初候)에는 사슴의 뿔이 떨어지고, ② 중후(中候)에는 매미가 울기 시작하며, ③ 말후(末候)에는 반하(半夏)의 알이 생긴다고 했다.
♣남부지방에서는망종(芒種) 전후에 시작된모심기가하지(夏至) 이전(以前)이면 모두 끝나며, 이제부터는장마가 시작되는 때이기도 하다.
강원도 지역에서는파삭한 햇감자를 캐어 쪄먹거나 갈아서 감자전을 부쳐먹는다. 남부지방에서는 단오를 전후하여 시작된 모심기가 하지( 夏至) 이전이면 모두 끝나며, 장마가 시작되는 때이기도 하다.
기우제
하지가 되도 비가 오지 않으면 이장(里長)이 제관이 되어 용소(龍沼)에 가서 기우제(祈雨祭)를 지낸다. 제물로는 개나 돼지 또는 소를 잡아 그 머리만 물 속에 넣는다. 그러면 용신(龍神)이 그 부정함을 노하여 비를 내려 씻어 내린다고 믿는다. 나머지 몸통 고기는 기우제에 참가한 사람들이 함께 먹으면서 공동체 의식을 다진다.
하지가 되면묵정밭과 산야는 희디 흰 개망초꽃으로 뒤덮힌다. 옛날 보온용 비닐 못자리가 나오기 전의 남부 이모작 지대에는 하지 '전삼일·후삼일'이라 해서 그때가 모내기에 적기였다.
지금은 보온용 못자리 설치로 모내기가 빨라져 하지 때가 되면, 모는 새 뿌리를 내리며 날마다 더욱 굳어진다.
늦모내기가 대체로 끝나는 하지부터는 비료주기와 벼 병충해 방제작업에 들어간다.
장마와 가뭄대비도 해야 하는 만큼 이때는 일년중 추수와 더불어 가장 바쁜 때이다. 메밀파종, 누에치기, 감자캐기, 고추밭매기, 마늘캐기 및 건조, 보리수확 및 타작, 보리수매, 모내기, 모낸 논 웃비료주기, 제초제 살포 등이다. 그루갈이용 늦콩심기, 또 대마수확이 이루어진다. 대마를 하는 농가는 모내기보다 더 바빠 대마철은 아예 잠을 못 잔다고 한다.
보리 타작한 농가는 "할매단지" 에 가을추수 후 넣어둔 쌀을 꺼내고 보리를 넣어 잘 모셔둔다.
벼농사의 경우 모내기가 끝나면 김매기(지역에 따라서는 논매기라 한다)가 뒤따른다.
벼가 피기까지(출수기) 두세번에 걸쳐 김매기가 이어진다. 처음 매는 김을 초벌매기(애벌매기라고도 한다)라 한다. 초벌매기 후 3주 쯤 지나면 두벌매기가 이어지고 잡초가 많은 논이나 알뜰한 농가, 일손이 많은 농가에서는 세벌매기까지 하게 된다.
그러나 요즘은 유기농법으로 농사짓는 논을 제외하고는 거의 김매기를 하는 논은 없다. 모두들 손쉬운 제초제로 김매기를 대신 하게 된다.
노동력의 부족으로 인해 땅에 마구 뿌려댄 제초제는 결국 벼로 옮겨가고, 그 벼는 사람이 먹게 됨에 따라 체내에 축적되고, 마침내는 각종 암이나 질병을 일으키게 되는 원인을 우리 스스로가 제공하고 있는 셈이다. 다. 심각한 상황을 유발하고야 만다.
두레 김매기를 통해 이웃간의 도타운 정을 나눌 줄 알았던 우리의 전통은 이미 사라진지 오래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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璇樞無停運 // 四序相錯行// 奇言赫曦景// 今日一陰生
선추무정운 사서상착행 기언혁희경 금일일음생
별자리 운행은 멈춤이 없고/ 일년 사계절이 맞물려 도네/
한 여름 햇살 눈이 부셔도/ 오늘부터 서늘한 기운 돌기 시작한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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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나라 권덕여(權德與)가 하지(夏至)를 읊은 시이다. 하지는 24절기 가운데
하나로 이날이 되면 낮이 가장 길고 상대적으로 밤이 가장 짧다.
그런데 모든 사물은 극도로 흥성하면 그 때부터 기울거나 시들기 시작한다.
시인은 여름의 정점에서 가을의 도래를 예감하는 것이다.
"권세는 십년을 가지 못하고 열흘 붉은 꽃이 없다(權不十年, 花無十日紅)"라는
말도 있다.
흘러가는 세월을 탓만 하지 말고 그 속에 잉태되는 새 생명을 찬미하자.
이병한 < 서울대 명예 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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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서(小暑) - "작은 더위"라는 소서부터 본격적인 더운 날씨로 접어든다.
24절기 중의 열한 번째 절기이다. '작은 더위'라는 소서(小暑)는 하지(夏至)와 대서(大暑) 사이에 있는 음력(陰曆) 6월 절기(節氣)로, 태양이 황경 105도의 위치에 있고, 양력으로는 7월 7,일경이 된다. 날씨는 더위와 함께 장마전선의 정체로 습도가 높은 장마철이 시작된다.
작은 더위'라는 소서부터 본격적인 더운 날씨로 접어드는데, 옛 사람들은 소서 15일간을 3후(三侯)로 나누어서, ① 더운 바람이 불어오고, ② 귀뚜라미가 벽에 기어다니며,
③ 매가 비로소 사나워진다고 하였다.
이 시기는 본격적인 더위가 시작되는 계절이며, 장마전선이 한반도의 허리를 가로질러 장기간 머무르므로 습도가 높아지고 많은 비가 내리는 장마철이다.
장마전선
장마 현상이 나타나게 되는 주요 원인으로서 주로 북태평양 고기압과 오호츠크 해 고기압 사이에 형성되며 정체성이 강한 한대전선이다.
우리 나라의 장마는 북태평양 고기압의 확장과 함께 장마전선이 북상해 오는 시기와 관련하여 해에 따라서 장마 기간이 빨리 시작되고 또 늦게 시작되기도 한다.
장마 전선이 우리 나라에 걸쳐 있을때는 만주 지방과 양쯔강 유역에 저기압이 나타난다. 동서로 가로 놓이는 장마 전선을 따라 2~3일 주기로 양쯔강에서 약한 저기압이 동진해 오는 경우가 흔히 있는데 이때 우리 나라에는 비가 많이 내린다.
옛날에는하지 무렵에 모내기를 끝내고, 모 낸 20여일 뒤인 소서 때부터는 논매기를 한다.
팥, 콩, 조도 하지 때 심고, 소서에 김을 매준다. 이 시기엔 퇴비를 장만하기 위하여 밭 두렁의 잡초를 깎기도 한다.
본격적인 더위가시작되는 철이므로 채소나 과일들이 풍성해지고 보리와 밀도 먹게 된다. 특히 음력 5월 단오를 전후하여 시절식으로 즐기는 밀가루 음식은 이때 제 맛이 나서 국수나 수제비 해먹기를 즐긴다.
소채류로는 호박, 생선류로는 민어가 제 철이다. 잘생긴 민어를 다량으로 사다가 배를 따고 깨끗이 씻어 밝은 볕에 말려 포를 만들면 그 짭찔하고 쫄깃한 맛으로 해서 찬밥 물말이 해서 먹는데 반찬으로 최고이다.
싱싱한 민어로는 회 떠서 먹고, 따로 매운탕 끓이되 애호박을 송송 썰어 넣고 고추장 풀고 수제비 좀 띄워 먹는 맛도 일품이다.
<작은 더위> 라는 소서부터 본격적인 더운 날씨로 접어든다.
이맘 때가 되면 벼논에서는 잎도열병과 멸구를 방제하기 위해 1차 농약을 친다. 물약을 치기도 하고, 요즘은 손으로 뿌리는 농약을 치기도 한다.
농가에서는 장마기와 가뭄기가 겹치는 이때 논물관리와 무너지기 쉬운 논둑 관리, 그리고 가뭄에 대비해 양수기를 설치해 놓는다.
<농가월령가>에
젊은이 하는 일이
김매기 뿐이로다
논밭을 갈마들여
삼사차 돌려 맬 제
날 새면 호미들고
긴긴해 쉴 새 없이
땀 흘려 흙이 젖고
숨막혀 기진 할 둣
했듯이 김매기도 빼놓을 수 없는 일이다.
요즘은 다양한 제초제와 기계화로 인해 손쉽게 농사를 지을 수 있다. 그러나 과다한 제초제와 농약살포는 인체에 치명적인 영향을 준다.
땅을 죽이고 자연을 죽이는 농법에서 벗어나 자연에 순응하며 벌레와 지렁이와 공생하는 생태농법, 유기농법이 활발해져야 한다.
농사에 있어 진짜 농군이라면 지켜야 할 세 가지 원칙이 있으니, 그것은 '무농약', '무제초제', '무화학비료'이다.
농약을 쓰지 않으려다 보니 메뚜기와 각종 병충해가 들끓어 이를 감당할 농법을 개발해야 하고, 제초제를 쓰지 않으니 사흘이 멀다고 김매기와 피사리로 허리 펼 날이 없고, 화학비료를 쓰지 않으려다 보니 퇴비와 유기질 비료를 만드느라 일손을 다 뺏겨야 한다. 3무의 원칙을 지키며 농사 짓는다는 것이 엄청난 고통일 것이다.
허나 진짜배기 농사꾼, 자연과 생명의 소중함을 아는 농군이라면 이런 수고를 수고라 여기지 않을 것이다. 남들이 바보같은 짓한다고 손가락질 할지라도 대대로 물려줄 땅임을 안다면, 묵묵히 3무의 원칙아래 굵은 땀, 진실의 땀을 흘리며 한뙈기의 논이라도 정성스레 대할 것이다.
♣ 대서(大暑) - <큰 더위>인 대서((大暑)는 일년 중 제일 더운 때라서 붙여진 명칭.
24절기 중의 열두 번 째 절기이다. "큰 더위"인 대서(大暑)는 소서(小暑)와 입추(立秋) 사이에 있는 음력 6월 중기(中氣)로 태양이 황경 120도에 도달하는 날이 입기일(立氣日)이고, 양력으로는 7월 23일경이다. 대서는 일년 중 제일 더운 때((大暑)라서 붙여진 명칭으로, 대개 중복(中伏) 시기와 비슷해서 폭염의 더위가 심한 시기이면서도 장마로 인해 많은 비를 내리기도 한다.
옛 사람들은 대서 기간을 5일씩 끊어서 3후(候)로 하였는데, 제1후에는 썩은 풀이 화하여 반딧불이 되고, 제2후에는 흙이 습하고 무더워지며, 제3후에는 때때로 큰비가 내린다고 하였다..
대서는 대개 중복(中伏)과 비슷한 시기이나 장마는 끝나며 더위가 가장 심해지는 때이다. 그러나 때때로 장마전선이 늦게까지 한반도에 걸쳐 있으면 큰비가 내리기도 한다.
뇌성(雷聲)과 벽력(霹靂)이 요란하면서 한 줄기 소나기가 쏟아지기도 한다. 한 차례 비가 내리면 잠시 더위를 식히기도 하나 또다시 뙤약볕의 노염이 뒤통수를 벗긴다.
소나기가 한 차례 지나가고 나면 마당에 난데없는 미꾸라지들이 떨어져 버둥거리기도 한다. 빗줄기 타고 하늘로 치솟았던 녀석들이 비가 그치면서 땅으로 떨어진 것인데 그런 놈으로 지져 먹으면 기운이 난다고 했다.
참외나 수박 등이 풍성하고 햇밀과 보리를 먹게 되고 채소가 풍족하며 녹음이 우거지는 시기로, 과일은 이때 가장 맛이 난다. 그러나 비가 너무 많이 오면 단물이 많이 없어지는 반면 가물었을 때는 과실 맛이 매우 달다.
'큰 더위'인 대서는 겨울인 대한으로부터 꼭 6개월이 되는 날이다.
일년중 가장 더운 시기로특히 대서 이후 20여일이 일년중 가장 무더운 시기이다. '불볕더위', '찜통더위'도 이때에 해당된다.
밤에도 열대야 현상이 일어나며 더위 때문에 "염소뿔이 녹는다"고 할 정도다. 특히 무더위를 초ㆍ중ㆍ말 삼복으로 나누어 소서ㆍ대서라는 큰 명칭으로 한것도 무더위의 경종을 농민들에게 알리기 위함이다.
우리나라는 이때부터 본격적인 피서철이 시작되어, 해수욕장이며 계곡 등으로 피서객이 물밀듯이 밀려간다.
대서때는 뜨거운 태양과 많은 비로 인해 벼를 비롯한 모든 작물이 잘 자라 "오뉴월 장마에 돌도 큰다"고 한다. 이때는 더운 날씨 때문에 많이 발생하는 병의 문고병과 이화명흑나방 등을 예방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논두렁의 웃자란 풀들이 벼를 덮어 생육을 방해해 논두렁 풀도 베어준다.
논두렁에 심어둔 두렁걸이 콩.팥도, 고구마 밭의 풀 등도 이때 메고 복돋아 주어야 한다.
농가에서는 대서가 낀 "삼복(삼복)에 비가 오면 대추나무에 열매가 열리지 않는다"고 걱정하기도 한다.
여름철 잦은 비와 고온 다습한 날씨는 벼에 바람 한 줌 통할 수 없게 한다. 이렇게 되면 벼 줄기가 썩어 들어가게 되는데 이 병을 문고병(또는 몽고병)이라 한다. 그러나 대개의 경우 많은 벼들이 서로의 어깨를 맞댄 채 함께 있으면서도 썩지 않고 잘 자란다. 그것은 벼들 스스로 최소한의 자기 존재를 지켜나갈수 있는 거리와 여유를 확보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람이 사회를 구성하고 살 듯, 벼들도 자기 세계를 지키며 그렇게 사는 것이다.
음력 6월은 보리, 밀을 위시해 노지용 수박, 참외 등 각종 과일들이 생산되는 시기이다.
벼를 비롯해 그동안 경작한 농사는 가을의 수확을 기다리는 시기로서 농군들의 일손도 다른 달보다 한가한 때이다.
오월에 이어 유월에도 이모작 지대와 특수작물을 수확한 논에서는 늦모내기가 이어진다.
연이어 그간 심어둔 호박, 고추, 콩 등을 솎아내고, 김을 매고 흙을 북돋워 준다. 잎담배도 따로 건조시킨다. 퇴비 만들기, 삼베하기, 논 물 빼기와 물대기도 소서ㆍ대서 절기의 중요한 일이다.
7.8월은 본격적인 장마시기로 쌀 생산에 막대한 피해를 입힌다. 특히 집중적으로 오는 태풍과 비도 문제이지만 장기간 계속되는 장마는 냉해와 병충해 등을 유발해 벼의 생육에 심각한 피해를 끼친다.
7.8월이 벼와 옥수수, 밤, 감 등 작물의 알곡이 열리는 시기이기에 더욱 그러한 것이다.
가뭄이 심해 오랫동안 비가 내리지 않으면 벼논은 거북이 등처럼 쩍쩍 갈라진다. 벼들이 누렇게 타들어 가면 농민들의 마음도 시커멓게 타들어 간다. 장기간 한발이 계속되면 마을 단위로 기우제를 지낸다. 그것도 신통치 않으면 장을 옮겨 섰다. 비가 내리길 바라는 간절한 마음인 것이다.
농민들도 가만히 있을 수 없어 단지 안에 도마뱀을 잡아 넣고, 병에다 버들가지를 꽂아두며 비가 오길 원했다.
쌀 농사에 가장 무서운 복병은 가뭄과 냉해이다.
과거엔 가뭄이 가장 큰 피해를 입혔으나 오늘날 저수지의 축조로 천수답이 많이 사라지고, 양수기 등 농기계의 발달로 가뭄은 그다지 심각한 해를 입히지 못한다.
그보다는 장기간 날씨가 차가워지고 비만 내리는 냉해는 현대과학으로도 별다른 대책이 없다. 그저 구멍뚫린 하늘을 쳐다보며 원망의 삿대질을 해댈 뿐이다.
얼마나 복장터지고 심장이 상했으면 "냉해가 진 해는 이삭이 달리지 않아 벼를 붙잡고 운다"고 했을까?
여름철 때이른 잦은 강우와 냉해는 잎도열병, 이삭도열병 등 각종 병ㆍ충해를 유발하는 요인이 되기도 한다.
♣ 입추(立秋 )- 가을의 문 턱에 들어서는 절기.
24절기 중의 열 세 번째 절기이다. 입추(立秋)는 대서(大暑)와 처서(處暑) 사이에 있는 음력(陰曆) 7월 절기(節氣)로, 태양이 황경(黃經) 135도에 위치한 날이 입추절의 입기일(立氣日)이고, 양력으로는 8월 8,9일 경이다. 입추는 가을(秋)에 들어서는(入) 절기라는 의미이다. 동양에서는 입추부터 입동 전까지의 석 달을 가을로 한다.
옛날 사람들은 입추 15일간을 5일씩 3후(候)로 갈라서, ① 서늘한 바람이 불어오고, ② 이슬이 진하게 내리며, ③ 쓰르라미가 운다고 표현하였다.
기청제(祈晴祭) -벼가 한창 익어가는 계절인데, 입추가 지나서 비가 닷새 동안만 계속돼도 옛 조정이나 각 고을에서는 비를 멎게 해달라는 기청제(祈晴祭)를 올렸던 것이다. 성문제(城門祭) 또는 천상제(川上祭)라는 이름도 바로 기청제를 두고 한 말이다.
'춘추번로(春秋繁露)'라는 중국 옛 문헌에 이 기청제를 영(榮)이라 하고, 제를 지내는 방법을 상세히 적고 있다. 성안으로 통하는 수로(水路)를 막고 성안의 모든 샘물을 덮게 한다. 그리고 제를 지내는 동안은 모든 성안사람은 물을 써서는 안 되고 또 소변을 보아서도 안 된다. 비를 유감(類感)하는 일체의 행위는 금지된다. 심지어 방사(房事)까지도 비를 유감한다 해서 기청제 지내는 전야에는 부부가 각방을 써야 했다.
그리고 양방(陽方)인 남문(南門)을 열고 음방(陰方)인 북문은 닫는다. 이날 음(陰)인 부녀자의 시장 나들이는 일체 금한다. 제장(祭場)에는 양색(陽色)인 붉은 깃발을 휘날리고 제주(祭主)도 붉은 옷차림이어야 했다. 양(陽)의 기운인 남방(南方), 적색(赤色)을 드리우면서 태양(太陽)의 볕을 갈망했었다.
찌는 듯한 무더위 속에서도 가을의 문턱에 들어섰음을 알리는 것이 입추이다.
입추라 해도 더위는 여전하여 '잔서(늦더위)'가 계속된다. 이때 쯤이면 김장용 무·배추를 심기 시작한다.
벼논에서는 목도열병과 벼멸구를 막기 위해 농약을 친다. 특히, 이 시기에 태풍과 장마가 오면 자주 발생하는 목도열병과, 고온이 지속되면 주로 발생하는 벼멸구의 피해가 심하므로 신경을 써서 방제해야 한다. 잠깐 실수로 잘 지은 농사를 망칠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목도열병은 일반벼에 더 심하게 나타난다.
볍씨는 크게 일반벼와 통일벼가 있었다.
일반벼는기존 재래종을 약간 개량한 것으로 밥맛이 좋고 매우 차지다. 또 볏짚의 길이가 길어 소(牛)의 사료로부터 초가지붕, 가마니나 거적, 새끼, 노끈 재료등으로 다양하게 이용할수 있다. 그러나 소출이 떨어지고 병충해에 약한것이 흠이다.
여기에 비해 통일벼는 볍씨가 일반벼에 비해 크고 소출도 많으나 쌀이 푸석푸석해 밥맛이 없고 밥을 해 놓으면 찰기가 적어 우리 입맛에는 잘 맞지 않았다. 또 볏짚의 길이가 짧고 억세며, 쉽게 서리에 고꾸라져 사료용과 장작 대용의 연료 이외에는 별다른 쓸모가 없다. 그러나 보리고개의 배고픔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옛날에는 질 보다 양을 선호하여 많이 심었으나 배고픔에서 벗어난 지금은 양보다 질을 따지게 되어, 논에서 밥상에서 소리 소문없이 사라져 버렸다.
그래서 기존 농가에서는 일반미, 그 중에서도 속칭 '아끼바리(원명은 아끼바레)'라 불린 쌀을 많이 심었다. 차지고 밥맛이 좋았기 때문이다.
♣ 처서(處暑) - 더위가 물러간다는 서퇴(暑退)의 계절.
24절기 중의 열 네 번 째 절기이다. 처서(處暑)는 입추(立秋)와 백로(白露) 사이에 있는 음력(陰曆) 7월 중기(中氣)로, 태양이 황경(黃經) 150도에 도달한 날이 입기일(立氣日)이고, 양력(陽曆)으로는 8월 23일 경이다.의미는 더위(暑)가 그친다(處 : 止也 그칠지), 더위가 물러간다는 서퇴(暑退)를 뜻한다. 아침·저녁으로 제법 서늘한 기운을 느끼게 되는 계절이다.
옛 문헌에는, 처서 15일간을 5일씩 3후(候)로 세분하여 ① 매가 새를 잡아 늘어놓고, ② 천지가 쓸쓸해지기 시작하며, ③ 논벼가 익는다고 하였다.
처서가 지나면 따가운 햇볕이 누그러져서 더위도 한풀 꺾이고 풀이 더 자라지 않으므로 논두렁,,밭두렁을 깎고, 산소도 벌초를 한다.
중복에 참외, 말복에 수박, 처서에 복숭아, 백로에 포도가 제 철 과실로 최고의 맛이다.
여름이 지나, <더위가 한풀 꺾인다>고 하여 '처서'라 불렀다.
아침·저녁으로 제법 서늘한 기운을 느끼게 되는 계절이다.
농부들은 익어가는 곡식을 바라보며 농쟁기를 씻고 닦아서 둘 채비를 한다.
옛 조상들은 처서가 지나면 따가운 햇볕이 누그러져서 풀이 더 자라지 않기 때문에 논·밭두렁이나 산소의 벌초를 한다.
여름 장마 동안에 습기 찬 옷이나 책을 말리는 일도 이 무렵에 한다.
"처서가 지나면 모기도 입이 비뚤어진다." 라는 속담처럼 선선한 바람에 파리 모기의 성화도 사라져가며 또한 백중(百衆)의 호미씻이[세소연(洗鋤宴)]도 끝나는 무렵이라 그야말로 '어정칠월'로 농촌은 한가한 한 때를 맞이하게 된다.
말처럼 파리·모기의 성화도 면하게 된다.
한편 "처서에 비가 오면 십 리에 곡식 천석(千石)을 감한다." 든가, "처서에 비가 오면 독 안의 곡식이 준다."는 속담처럼 처서의 비는 곡식 감소에 영향을 준다. 그만큼 처서의 맑은 날은 농사에 결정적으로 작용한다. 그래서 옛부터 처서날이 잔잔하면 농작물이 풍성해진다 했다.
입추·처서가 든 칠월은 논의 '지심 맨다'하여 세 벌 김매기를 한다.
피뽑기, 논두렁풀 베기를 하고 참깨를 털고 옥수수를 수확한다. 또 김장용 무배추 갈기, 논·밭 웃비료 주기가 이루어진다.
농가에서는 칠월을 '어정 칠월이요, 동동 팔월'이라 부르기도 한다. 칠월은 한가해 어정거리며 시간을 보내고, 팔월은 추수하느라 일손이 바빠 발을 구르며 지낸다는 말이다.
그러나 칠월도 생각보다는 일거리가 많다. 특히 태풍이 오거나 가뭄이 오면 농민의 일거리는 그만큼 늘어난다. 논물도 조정해야 하고 장마 후에는 더 극성을 부리는 벼 병충해 방제도 빠뜨릴 수 없는 일이다.
♣ 백로(白露) _ 흰 이슬이 맺히고 가을 기운이 완연할 시기.
24절기 중의 열 다섯 번째 절기이다. 백로(白露)는 처서(處暑)와 추분(秋分) 사이에 있는 음력(陰曆) 8월 절기(節氣)로, 태양이 황경 165도에 위치한 날이고, 양력(陽曆)으로는 9월 8, 9일경이다.백로의 의미는 밤에 기온이 내려가 대기 중의 수증기가 엉겨 이슬이 되어 풀잎에 맺힌다는 의미를 지녔다.
옛 사람들은이 시기를 5일씩 3후(候)로 나눠서, ① 기러기가 날아오고,② 제비가 돌아가며,③ 뭇 새들이 먹이를 저장한다고 하였다.
이 때는 추석 무렵으로 만곡이 무르익는 시기이며, 이 즈음에는 건조하고 쾌청한 날씨가 계속되나, 간혹 남쪽에서 불어오는 태풍이 곡식을 넘어뜨리고 해일을 일으켜 피해를 주는 수가 있다.
흰 이슬 : 백로에 내린 콩잎의 이슬을 새벽에 손으로 훑어 먹으면 속병이 낫는다한다.
백로와 포도 : 참외는 중복까지 맛있고 수박은 말복까지 맛있다. 처서 복숭아, 백로 포도 하듯이 철따라 과실의 시식이 정해져 있어 과실 맛으로 절기를 느끼곤 했던 것이다. 옛 편지 첫머리에 `포도순절(葡萄旬節)에 기체만강하시고...' 하는 구절을 잘 썼는데, 바로 백로에서 추석까지 시절을 포도순절이라 했다. 백로절이 바로 그 포도의 계절이다.
다산(多産)의 상징 : 그해 첫 포도를 따면 사당에 먼저 고한 다음, 그 집 맏며느리가 한 송이를 통째로 먹어야 하는 민속이 있었다. 주렁주렁 포도알로서 다산을 유감(類感)시키기 위한 기자주술(祈子呪術)이었을 것이다. 조선 백자에 포도 문양의 백자가 많은데 이 역시 다산을 유감시키고자 내방에 두는 주술 단지였다. 지금도 연만한 분들은 처녀가 공개적으로 포도를 먹고 있으면 망측하다고 호통을 치는데 포도에는 다산을 상징하는 전통적 이미지가 도사려 있기 때문이다.
포도지정(葡萄之情)
부모에게 배은망덕한 행위를 했을 때 포도지정(葡萄之情)을 잊었다고 개탄을 하는데, 포도의 정이란 어릴 때 어머니가 포도 한 알 입에 넣어 껍데기와 씨를 가려낸 다음 입물림으로 먹여주던 그 정을 일컫는다.
허수아비
만곡이 익어가니 백로아닌 새들이 한창이고, 이를 쫓으려는 허수아비의 수고로움도 향수처럼 그립기만 하다.
백로절은 들녘의 농작물에 흰 이슬이 맺히고 가을 기운이 완연히 나타나는 때이다.
하얀 이슬 산들바람 가을을 보내주자
발 밖의 물과 하늘 청명한 가을일레
앞산에 잎새 지고 매미소리 멀어져
막대 끌고 나와 보니 곳마다 가을일레.
― 조선 후기 실학자 이덕무『사계시(四季時)』중
이때가 되면 고추는 더욱 붉은 색을 띠기 시작한다. 맑은 날이 연이어지고 기온도 적당해서 오곡백과가 여무는데 더없이 좋은 날이 된다. "백로에 비가 오면 오곡이 겉 여물고 백과에 단물이 빠진다." 하여 오곡백과가 여무는 데 지장이 있음을 걱정했다.
초가을인 이때는 가끔 기온이 뚝 떨어지는 '조냉(早冷)'현상이 나타나 농작물의 자람과 결실을 방해해 수확의 감소를 가져오기도 한다.
백로에 접어들면 밤하늘에선 순간적으로 빛이 번쩍일 때가 더러 있다. 농부들은 이를 두고 벼이삭이 피고 익는 것이 낮동안 부족해 밤에도 하늘이 보탠다고 한다. 이 빛의 번쩍임이 잦을수록 풍년이 든다고 한다.
벼 이삭이 여물어 가는 등숙기(登熟期 : 양력 8월중순 - 9월말)의 고온 청명한 날씨는 벼농사에 더없이 좋고, 일조량이 많을수록 소확량도 많아지게 된다. 이때의 햇살과 더위야말로 농작물엔 보약과 다름없는 것이다.
아침 저녁으로 서늘한 가운데 한낮에는 초가을의 노염(老炎)이 쌀농사에 결정적 역할을 한다. 늦여름에서 초가을 사이 내리 쬐는 하루 땡볕에 쌀 12만섬(1998년 기준)이 증산된다고 한다. 여름 장마에 의해 그간 못자란 벼나 과일들도 늦더위에 알이 충실해지고 과일은 단맛을 더하게 된다.
이때의 늦더위로 인해 한가위에는 맛있는 햅쌀과 햇과일을 먹게 되는 것이다.
♣ 추분(秋分) - 주야의 길이가 같으나 점차 낮의 길이가 짧아짐.
24절기 중의 열 여섯 번 째 절기이다. 추분(秋分)은 백로(白露)와 한로(寒露) 사이에 들며,음력으로는 8월 중기(中氣)이며, 양력으로는 9월 23, 24일 경이다.
천문학에서는 태양이 북에서 남으로 천구의 적도와 황도가 만나는 곳을 지나는 9월 23일 경을 말한다. 낮과 밤의 길이가 같은 날이지만, 실제로는 일몰(日沒) 후에도 어느 정도 까지는 여광(餘光)이 남아 있기 때문에 낮의 길이가 상대적으로 길게 느껴지기도 한다.
추분은 춘분과 더불어 낮과 밤의 길이가 같으며, 추분이 지나면 점차 밤의 길이는 길어지는 반면 낮의 길이는 짧아지므로 점차 여름이 가고 가을이 왔다는 점을 실감하는 시기이기도 하다.
옛 사람들은 추분기간을 5일을 1후(候)로 하여 3후로 구분하였는데, ① 우레 소리가 비로소 그치게 되고, ② 동면할 벌레가 흙으로 구멍 창을 막으며, ③ 땅 위의 물이 마르기 시작한다고 하였다. 농사력에서는 이 시기가 추수기이므로, 백곡이 풍성한 때이다.
들판은 어디서나 귀뚜라미 울어예고
바람에 마르는 콩꼬투리 툭툭 터지는 소리
조 이삭, 수수 이삭 여물어 가는 청명한 가을 하늘.
밤과 낮의 길이가 같아진다는 추분의 들녘에 서면 곡식들 여물어가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수수와 조가 늘어 뺀 고개를 숙일대로 숙이고, 들판의 벼들은 강렬한 태양, 천둥과 폭우의 나날을 견뎌 저마다 겸손의 고개를 숙인다.
머잖아 쌀알로 열매맺게 될 저 알곡들이 황금빛 바다를 이루어 빛나는 시기이다.
이맘 때는 여름내 짙푸르기만 하던 들이 하루가 다르게 누릿누릿 익어 물들어 간다. 또 고추가 익기 시작하므로 수시로 따서 말린다.
가을 누에치기, 건초 장만하기, 반찬용 콩잎 따기도 한다. 논물 빼고 도구치기, 마지막 논두렁 베기, 병충해 방제, 논에 피사리 등 수확을 앞두고 관리에 들어간다.
시절 요리로는 버섯이 가장 맛있는 철이다. 호박고지, 박고지, 호박순, 깻잎, 고구마순도 이맘때 먹을 수 있으며, 고추도 따서 말리며, 산채를 말려 묵은 나물을 준비하기도 한다.
목화 무궁화과의 섬유작물. 주요재배종에 4종류가 있다. 에티오피아 남부 원산으로, 서아시아에 분포된 황면(G. harbaceum)과 인도에서 재배되는 인도면(G. arboreum)은 모두 한국을 비롯한 동남아시아 일대에 퍼져 있어 아시아면이라고 불리고 있다.
현재 주로 재배되고 있는 목화는 한해살이초본으로 가지가 많이 갈라지며, 여름에 가지의 잎겨드랑이에서 결과지(結果枝)가 나와 각 마디에 꽃이 핀다. 개화 후 모두 붉게 변색된다. 각 씨앗의 표피에 섬유털이 생기는데, 섬유를 빼지 않은 씨를 실면(實綿)이라 하고, 실면에서 씨를 제거한 것을 조면(繰綿) 또는 목화(木花)라 한다. 섬유를 뺀 씨는 면실(綿實)이라 한다. 목화는 생육에 고온이 필요하므로 연평균 15℃ 이상인 열대에서 온대의 남부에 걸쳐 재배된다.
한국이나 미국의 재배 북방한계(北方限界)는 북위 37˚이다. 일조(日照)를 많이 필요로 하여, 생육기간의 40%이상, 특히 결실기에는 맑은 날이 계속되어야 한다.
벼농사 막판 물관리 철저
■벼농사
논물을 너무 일찍 빼게 되면 벼알이 잘 여물지 않으며 금간 쌀이나 푸른 쌀 등이 많아져 품질이 떨어지므로 벼베기에 지장이 없는 한 물 빼는 시기를 늦추도록 한다.
일반 논에서 완전히 물을 빼는 시기는이삭이 팬 후 30∼35일이 지난 다음이므로 이삭의 상태를 잘 살펴 물 뺄 시기를 결정한다.
모래논은 물 빼는 시기를 일반 논보다 늦춰야하므로 수확하기 일주일 전까지는물을 대주고 물 빠짐이 나쁜 논은 물 빼는 시기를 적당히 앞당겨 수확에 차질이 없도록 한다.
■밭농사
콩, 고구마, 땅콩 등 일찍 파종하여 수확기에 있는 밭작물은 서둘러 수확을 하여 다음 작물의 파종이 늦어지지 않도록 한다.
고랭지에서 재배되는 감자는 적기에 수확을 한 후 통풍이 잘 되는 그늘에서 말려 씨감자로 사용하도록 한다.
참깨는 말릴 때 비를 맞게 되면 품질이 떨어지게 되므로 비닐 등을 덮어 주도록한다.
가을에 심을 보리는 지역에 알맞은 우량 종자를 10a당 15∼18㎏ 정도 미리 준비하고 논에 보리를 심을 농가는 논의 물 빼기 등 후기 논 관리를 철저히 하도록 한다.
■채소
붉은 고추는 제 때 수확하여 다음 고추의 자람을 좋게 하고 건조기를 이용해 말리되 건조기의 온도를 55℃ 정도에서 48시간 말린 다음 비닐하우스 안에서 2∼3일간햇볕에 말려 품질 좋은 건고추를 생산하도록 한다.
고온 다습하고 통풍이 잘 되지 않는 고추 포장에서는 탄저병 등의 병해가 발생하기 쉬우므로 적용 약제를 살포하도록 한다.
일단 고추 역병이나 탄저병이 발생한 고추는 빨리 제거해 병원균의 토양내 밀도가 높아지지 않도록 한다.
가 을 무와 배추 웃거름은 무 파종이나 배추 정식후 15일 간격으로 3회에 걸쳐나누어주도록 한다.
토양이 건조한 무와 배추 포장은 스프링클러 등을 이용, 물을 충분히 공급하도록 하고 진딧물과 무름병 등의 병해충 방제를 하도록 한다.
♣ 한로(寒露)_ 이슬(露)이 찬 공기(寒)를 만나 차고 싸늘한 이슬(寒露)이 내림.
24절기 중의 열 일곱 번째 절기이다.
한로(寒露)는 추분(秋分)과 상강(霜降) 사이에 있는 음력(陰曆) 9월 절기(節氣)로, 태양이 황경 195도의 위치에 이른 때이고, 양력(陽曆)으로는 10월 8. 9일경이다.
의미는 이슬이 찬 공기를 만나 찬 이슬이 내린다는 뜻이다.
이 시기는 단풍이 짙어지고 오곡백과(五穀百果)를 수확하는 시기로, 농촌은 타작이 한창인 때이다.
또한 제비 등 여름새와 기러기 등 겨울새가 교체되는 시기 이기도 하다.
한로절(寒露節)은 공기가 차츰선선해지면서 이슬(露)이 찬공기(寒)를 만나서 서리로 변하기 직전이다.
옛 사람들은 한로 15일간을 5일씩 끊어서 3후(候)로 나눠서,① 기러기가 초대를 받은 듯 모여들고,② 참새가 줄고 조개가 나돌며,③ 국화가 노랗게 핀다고 하였다. 저녁이면 붉게 익은 감을 까치 밥으로 남겨 둔 고향집이 그리울 때이기도 하다.
이 무렵에 높은 산에 올라가, 머리에 산 수유(山茱萸)를 꽂으면 잡귀를 쫓을 수 있다고 믿는데, 이는 산수유 열매가 붉은 자줏빛으로 붉은 색은 양기(陽氣)의 색으로 사귀(邪鬼)를 쫓는 벽사력을 가지고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한로와 상강철의 서민들은 시식(時食)으로 추어탕(鰍魚湯)을 즐겼다. [본초강목]에는 미꾸라지가 양기(陽氣)를 돋우는데 좋다고 기록하고 있다. 고기어(魚)+가을추(秋)가 미꾸라지 추(鰍)자인 것을 보면, 가을[추(秋)]에 누렇게 살찌는 고기[어(魚)]라 하여, 미꾸라지를 추어(鰍魚)라 했는가 보다.
찬 이슬 맺히는 한로에 접어들면 농부들은 잠시 머뭇거릴 겨를도 없다. 새벽밥 해먹고 들에 나가 밤 늦도록 일을 한다.
한로에는 찬 이슬 머금은 국화꽃 향기 그윽하고, 기온은 하루가 다르게 떨어진다. 이즈음 기온이 더욱 내려가니 늦가을 서리를 맞기 전에 빨리 추수를 끝내려고 농촌은 바쁘기 그지 없다.
벼이삭 소리 슬슬 서걱이고 곡식과 과일이 결실을 맺는 때, 북으로부터 남으로 내려오는 황금빛 벼들의 물결에 맞춰 벼베기가 시작되고, 단풍은 춤추듯 그 붉은 자태를 뽐내기 시작한다.
벼가 여물어 들판이 황금물결로 출렁일때 농부들은 안 먹어도 배가 부르다.
벼를 베거나 타작하는 날은 무슨 잔칫날처럼 부산하고 고될망정 수확을 하는 농부의 얼굴에는 웃음이 넘친다.
예전엔 길손이 지나면 꼭 불러 새참이나 점심을 함께 권했고, 막걸리 한 사발이라도 돌려 먹을 줄 알았다.
그러나 요즘의 가을 들판은 너무도 다르다. 주인은 논둑에서 어정거리는 동안 콤바인이 굉음을 울리며 순식간에 논을 오가며 벼를 담은 가마니를 떨어뜨린다.
♣ 상강(霜降) - 밤 기온이 뚝 떨어지면서 서리가 내리기 시작.
24절기 중의 열 여덟 번째 절기이다. 상강(霜降)은 한로(寒露)와 입동(立冬) 사이에 있는 음력 9월 중기(中氣)로, 태양이 황경 210도에 위치한 날이 입기일(立氣日)이며, 양력으로는 10월 23, 24일 경이다. 대체로 이 시기에는 쾌청한 날씨가 계속되며 밤에는 기운이 뚝 떨어지면서 서리가 내리기 시작한다.
상강(霜降)이란 밤 기온이 매우 낮아져 수증기가 지표(地表)에 엉겨 서리가 내린다는 뜻이다.
이 시기에는 벼배기를 서둘러 마무리 짓고 끝마쳐야 한다.
옛 사람들은 상강을 5일씩 3후(候)로 나누어,① 승냥이가 산짐승을 잡고,② 초목이 누렇게 되며,③ 동면(冬眠)하는 벌레가 모두 땅에 숨는다고 하였다.
이 때부터 겨울잠에 들어갈 동물들은 서서히 동면을 준비한다.
봄부터의 바빴던 농사일도 추수의 가을걷이가 마무리되면서 상강(霜降) 때쯤이면 거의 끝이 난다. 다음해 농사에 대비하는 잔손질만이 남이 있는 것이다
<농가월령가, 9월령에서는 "들에는 조, 피더미, /집 근처 콩, 팥가리, /벼 타작 마침 후에 틈나거든 두드리세......." 그러나 지금은 이러한 행사들이 농사 기술 개량으로 인해 모두 한 절기 정도 빨라지고 있다.
된서리가 내려 천지가 눈이 온 듯 뽀얗게 뒤덮히는 때다. 이때 쯤이면 각 시·군의 엽연초 조합에서 잎담배 수매가 시작된다.
과거 수입담배가 들어오기 전 잎담배가 제값을 받을 때는 담배수매가 시작되기 며칠 전부터 그 지역은 흥청거렸다. 담배 등급을 판정하는 심사관들이 묵는 여관에는 조금이라도 나은 판정가를 받으려고 술 접대가 한창이었고, 수매가 시작되는 날이면 목돈을 쥔 사람들을 유혹하는 장사꾼이 도처에서 모여들어 흥청거렸다. 목돈을 손에 쥔 농민들은 할 일없이 어슬렁 거리며 이곳저곳을 기웃거렸다. 더러는 제 기분에 취한 나머지 일 년 고생해 지은 담배값을 기생집이나 사기꾼에 홀라당 털리기도 했다.
상강은 보리파종의 적기이다.
가을 추수가 끝나기 무섭게 이모작 지대인 남부지방에서는 보리파종에 들어간다. 보리파종이 늦어지면 동해(凍害)를 입을 우려도 있고 수확량도 급감한다. 또 보리파종이 늦어지면 이듬해 보리 숙기가 늦어져 보리 베기가 지연되고 보리베기가 지연되면 모내기가 늦어지는 악순환이 계속된다. 그래서 농가에서는 이 시기를 놓칠까봐 발을 동동 구르게 된다.
명을 다한 잎새들이 마무리하며 겨울 맞을 준비를 한다.
보름간의 준비가 겨울을 얼마나 알차게 따뜻하게 보낼수 있느냐를 좌지우지한다. 얼마 후면 입동? 농촌은 막바지 가을걷이로 바쁘다. 농부에겐 길고 힘든 한 해였지만 그래도 거둠의 기쁨이 있으니 어떠랴.
농사를 잘 지었으면 잘 지은 대로, 못 지었으면 못 지은 대로의 수확이 있으니.
가을 동안 잘 익은 호박 따 들이랴, 밤·감 따랴, 조·수수 수확하랴, 서리 오기전에 고추 따랴, 깻잎 따랴, 고구마 캐랴, 콩 타작하랴, 농부는 고단한 몸을 추스릴 틈도 없이 이른 아침부터 밤 늦도록 들판에서 살게 된다.
논갈이 및 가을보리 파종, 마늘 심기와 양파모종 이식도 이맘때가 절정이다.
일손이 많이 가는 마늘 농사는 집집이 모여 품앗이 형태로 심기도 한다.
♣ 입동(立冬)- 겨울의 문턱에 들어 섰음.
24절기 중의 열 아홉 번째 절기이다. 입동(立冬)은 상강(霜降)과 소설(小雪) 사이에 들며, 음력(陰曆) 10월 절기(節氣)로, 태양이 황경(黃經) 225도에 위치한 때이고, 양력(陽曆)으로는 11월 7, 8일 경이다. 이 날부터 '겨울(冬)의 문턱에들어선다(立)' 라는 뜻에서 입동이라 칭한다.
또한 옛사람들은 입동 입기일 이후 15일 간의 기간을 5일씩 3후(三候)로 세분하여,
① 제1후에는 물이 비로소 얼고,
② 제2후에는 땅이 처음으로 얼어 붙으며,
③ 제3후에는 꿩은 드물어지고 조개가 잡힌다고 하였다.
특별히 절일(節日)로 여기지는 않지만 우리의 겨울채비와 상당히 밀접한 관계가 있다.
찬서리는 내리고, 집 한쪽 감나무 끝엔 까치밥 만이 남아 홀로 외로운 때가 입동이다.
바야흐로 겨울의 시작이다.
일순간 몰아치는 바람은 짧았던 가을의 끝임을 알리고 , 벌써 긴 겨울이 시작됨을 고한다. 이때 쯤이면 가을걷이도 어느덧 끝나고 바쁜 일손을 털고 한숨 돌리는 시기이다.
농부들은 예히 자연의 변화를 직감하고 기나긴 겨울 채비에 들어간다.
입동은 겨울을 앞두고 한 해의 마무리를 준비하는 시점이다. 농가에서는 서리 피해를 막고 알이 꽉 찬 배추를 얻기 위해 배추 묶기에 들어가고, 서리에 약한 무는 뽑아 구덩이를 파고 저장하게 된다.
회남자(淮南子)』천문훈(天文訓)에, "추분에서 46일이면 입동(立冬)인데, 초목이 다 죽는다."고 하였다.
바야흐로 겨울의 문턱이요, 시작이다.
월동 동물들은 동면에 들 준비를 하고, 푸르게 자라나던 풀이며 무성하던 나무들은 왕성한 자람을 멈추고 잎을 떨군 채 겨울의 채비에 들어가는 것이다. 나무들이 잎을 떨구는 것은 긴 겨울을 대비해 영양분의 소모를 적게 하기 위함이다.
이맘 때면 수확을 끝낸 들판에선 소들의 중요한 겨울먹이인 볏짚을 모은다. 모든 볏짚은 농가 마당에 보기 좋게 쌓아 두기도 하고 ,논배미에 단촐히 모아두기도 한다. 농가의 큰 일꾼이자 초식동물인 소에게 볏짚같은 풀사료는 없어서는 안될 필수먹이인 것이다.
입동은 천지만물이 양에서 음으로 변하는 시기이다. 이제 길고 고통스러운 겨울의 시작인 셈이다.
김장
무수히 쌓인 낙엽 위에 서리가 내려 쉬고 찬바람이 옷깃을 올려준다. 입동은 겨울채비가 한창인 시기이다. 입동 전후해서 김장을 담그며, 이 시기를 놓치면 김치의 상큼한 맛이 줄어든다. 옛날에는 우물가 나 냇가에서 부녀자들이 무·배추 씻는 풍경이 장관을 이루기도 하였다. 입동날 날씨가 추우면 그 해 겨울은 추울 것으로 점을 친다.
경남 여러 섬에서는 입동에 갈가마귀가 날아온다 하고, 밀양 지방에서는 갈가마귀의 흰 뱃바닥이 보이면 목화가 잘 될 것이라고 믿었다. 제주도에서는 입동날 날씨가 따뜻하지 않으면 그 해 바람이 지독하게 분다고 점을 쳤다.
고사
이 시기에는고사 지내는 것이 상례이었다. 10월 10일에서 30일 사이에 햇곡식으로 시루떡을 쪄서 토광, 터줏간지, 씨나락섬 등에 고사를 지냈으며, 외양간에도 고사를 지낸 후, 농사에 애쓴 소에게도 가져다 주며, 이웃집과도 나누어 먹었는데, 이러한 고사 행위는 한해의 노고와 집안이 무사하였음을 감사드리느 동시에 이웃과의 일체감도 다지는 훌륭한 계기가 되었다.
고사[告祀] : 가족의 평안과 재앙 퇴치를 빌고 풍년과 가호를 기원하여 음력 시월 상달에 가신(家神)에게 지내는 제사.
제주(祭主)는 주부가 되며, 미리 몸을 깨끗이 하고 고삿날에는 다른 사람의 출입을 금하며, 문에 소나무 가지를 꽂아 새끼를 치고 문 앞에 흙을 뿌린다. 주로 시루떡 6시루를 찌는데 조상신·터주신 ·성주신 ·조왕신 ·삼신신 ·잡신 등 6신을 위한 것이다. 상도 떡시루 ·정화수 ·나물 ·과일 등으로 여섯 상을 차린다.
조상신의 상(床)은 집 주인이 거처하는 방에, 터주신의 상은 마당 한복판에, 성주신의 상은 대청에, 조왕신의 상은 부엌에, 삼신신의 상은 주부가 거처하는 방에 각각 차린다. 주부가 비는 것이 상례이나 무당을 부르기도 한다.
주부는 목욕재계 후에 옷을 깨끗이 입고 절을 4배(拜)씩 하며, 두 손을 머리 위에 모아 손바닥을 비비며 소원을 빈다. 고사를 지낸 뒤에는 신령에게 올린 술 ·떡 ·과일 등을 가족 ·친지나 주위 사람들과 나누어 먹고 덕담과 행운을 비는 말을 교환한다.
지방에 따라 차이는 있으나, 호남 일대에서는 햇곡식이 익으면 쌀 1되 가량 될 만큼 벼를 베어 짚째로 실로 매어 방문 앞에 달아 놓고 절을 하기도 하며, 음식을 마련해서 고사를 지내기도 한다. 또 햇벼를 베어다가 선영에 제사를 지내고 쪄 말려서, 샘 ·당산 ·마당 ·곡간 등에 받쳐 놓기도 하는데 이것을 ‘올개심리(올이심리)’라고 한다.
조왕신 [王神] : 부엌을 맡고 있다는 신.
조신(神)·조왕각시·조왕대신·부뚜막신이라고도 한다. 본질적으로는 화신(火神)인 조왕신은 성격상 부엌의 존재가 되었고, 가신(家神) 신앙에서도 처음부터 부녀자들의 전유물이었다. 부인들은
아궁이에 불을 때면서 나쁜 말을 하지 않고 부뚜막에 걸터앉거나 발을 디디는 것은 금기 사항이었으며, 항상 깨끗하게 하고 부뚜막 벽에는 제비집 모양의 대(臺)를 흙으로 붙여 만들고 그 위에 조왕중발(조왕보시기)을 올려 놓는다. 주부는 매일 아침 일찍 일어나 샘에 가서 깨끗한 물을 길어다 조왕물을 중발에 떠 올리고, 가운(家運)이 일어나도록 기원하며 절을 한다.
명절 때 차례를 지내거나 집안의 치성(致誠)굿을 할 때는 성주에게 하듯이 조왕신에게도 조왕상을 차려놓는데 대개 목판에 간단히 차려서 부뚜막에 올려 놓았다. 조왕신의 풍습은 한국 전역에 퍼져 있으나, 남부와 충청도에서 비교적 잘 발달하였다.
치계미(雉鷄米)
또한 옛날 향약(鄕約을 보면 춘추(春秋)로 양로 잔치를 베풀었는데, 특히 입동(立冬), 동지(冬至), 제석(除夕)날에 일정 연령이상의 노인들에게는 치계미(雉鷄米)라 하여 선물을 드리는 관례가 보편화 돼 있었다. 비단, 논 한 뙈기나 밭 한 뙈기 없는 가난한 집일 지라도 일년에 한 번은 마을 노인들을 위해 응분의 출연(出捐)을 했다.
♣ 소설(小雪) - 소설에는 눈이 적게, 대설에는 많이 온다고 하여 붙여진 명칭
24절기 중의 스무 번째 절기이다. 소설(小雪)은 입동(立冬)과 대설(大雪) 사이에 있는 음력(陰曆) 10월 중절(中氣)로 , 태양이 황경 240도에 도달한 때이고,
양력(陽曆)으로는 11월 22, 23일 경이다. 소설(小雪)이란? 이 시기에는 첫 겨울의 증후가 보여 눈이 내린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이십사(24) 절기 중의 입동 후에 소설이 있다. 입동이 지나면 첫눈이 내린다하여 소설이라 했다. 소설에는 눈이 적게, 대설에는 많이 온다고 하여 붙여진 명칭이다. 이로부터 차츰 겨울이라는 기분이 들기 시작하면서 눈이 내린다.
"소설 추위는 빚내서라도 한다." 했듯이 첫얼음과 첫눈이 찾아드므로 시래기를 엮어 달고 무말랭이, 호박 오가리, 곶감 말리기 등 대대적인 월동 준비에 들어간다.
농가월령가에도 겨울채비를 노래하고 있다.
무 배추 캐여 들여 김장을 하오리라
방고래 구들질과 바람벽 맥질하기
창호도 발라놓고 쥐구멍도 막으리라
수숫대로 터울하고 외양간에 떼적 치고
우리집 부녀들아 겨울 옷 지었느냐
손돌(孫乭)의 전설
고려 때 전란이 일어나 왕이 강화도로 파천(播遷)을 가게 되었는데, 배가 통진(通津)·강화 사이(후에 손돌목이라 하였다)에 이르렀을 때 풍랑이 일어 위험하게 되었다. 뱃사공 손돌이 왕에게 일단 안전한 곳에 쉬었다 가는 것이 좋겠다고 아뢰었다. 그러자 왕은 파천하는 처지라 모든 것이 의심스러운 터에 그런 말을 고하므로 그를 반역죄로 몰아 참살하였다. 그러자 갑자기 광풍이 불어 뱃길이 매우 위태롭게 되었다. 할 수 없이 싣고 가던 왕의 말을 목베어 죽은 손돌의 넋을 제사하니, 비로소 바다가 잔잔해져 무사히 강화에 도착하였다 한다.
그 뒤 매년 이 날이 되면 날이 몹시 추워지고 광풍이 인다고 하는데, 이는 손돌의 억울하게 죽은 원혼 때문이라고 한다. 이 때의 추위를 손돌추위, 그 바람을 손돌이 바람(손돌풍, 손석풍(孫石風))이라고 한다.
옛사람은, 이 기간을 5일씩 3후(三侯)로 구분하여,
① 무지개가 걷혀서 나타나지 않고,
② 천기(天氣)가 올라가고 지기(地氣)가 내리며,
③ 폐색되어 겨울이 된다고 하였다.
살얼음이 잡히기 시작하면서 제법 춥지만 그래도 낮엔 아직 따뜻하여 아늑하기도 해서, "소춘(小春)" 이라 부르기도 한다.
소설 무렵, 대개 음력 10월 22~23일 경에는 관례적으로 심한 바람이 불면서 날씨가 갑자기 추워지기도 하는데, 이날은 손돌(孫乭)이 죽던 날이라 하고, 이때의 바람을 '손돌바람'이라 해서 외출을 삼가고 배를 바다에 띄우지 않는다.
이렇게 많은 월동준비 가운데 뭐니뭐니 해도 김장이 가장 큰 일이다. 오죽하면 "김장하니 삼동 걱정 덜었다."고 하겠는가?
김장독은 볕이 잘 들지 않는 곳에 구덩이를 파고 묻는다.
천지가 잠들고 생명이 얼어붙는 겨울철, 김치는 싱싱한 야채 대용으로 장기간 저장이 가능한 훌륭한 음식이다.
김치는 새 나물이 돋아나는 이듬해 봄까지 더할 수 없는 영양분이자 겨울철 가장 사랑받는 반찬이 되는 셈이다.
음력 시월은 '농공(農功)을 필(畢)'하는 달이다.
추수를 끝내고 아무 걱정없이 놀수 있는 달이라 하여 '상달'이라 했고, 일하지 않고 놀고 먹을수 있어 '공달'이라 했다.
농가에서는 배추와 무우를 절여서 김장을 담그고, 들나물도 절여 담그며 겨울을 준비한다. 이때는 벼 건조 및 저장하기,추곡 수매와 담배 수매를 제외하고는 큰일이 없다.
소 사료용 볏짚 모으기, 무·배추수확·저장,시래기 엮어 달기, 목화 따기 등 조촐한 일이 있을 뿐이다.
♣ 대설(大雪) -눈이 많이 내리는 시기. 목록가기
24절기 중 의 스물 한 번째 절기이다. 대설(大雪)은 소설(小雪)과 동지(冬至) 사이에 있는 음력(陰曆) 11월 절기(節氣)이며, 태양이 황경 255도에 이른 때이고, 양력(陽曆)으로는 12월 양력 12월 7, 8일경이다. 눈이 많이 내리는 시기라는 의미이지만 실제 추위의 계절은 동지(冬至)를 지나서부터이다.
옛 사람들은 대설 15일간을 5일씩 3후(三候)로 나누어서,
① 제1후는 산박쥐가 울지 않고,
② 제2후는 범이 교미하여 새끼를 치며,
③ 제3후는여지(여枝):지혜와 정신을 보익하는 한약)가 돋아난다고 하였다. 한국을 비롯한 동양에서는 입동 이후, 소설 ·대설·동지·소한·대한까지를 겨울이라 보지만, 서양에서는 추분 이후 대설까지를 가을이라고 본다
이 날 눈이 많이 오면 풍년이 들고 푸근한 겨울을 난다고 한다.
11월은 중동(中冬)이라 대설 동지 절기로다
바람 불고 서리 치고 눈 오고 얼음 언다
―『농가월령가』중 십일월령
소설 뒤 대설을 놓은 것은 동지를 앞에 두고 눈다운 눈이 이때쯤 내리기 때문이다. 그러나 해마다 눈이 고르게 오는 것이 아니어서 대설이라고 해도 어느 해는 소설보다 적게 오기도 한다.
"눈은 보리의 이불이다."라는 말이 있다. 눈이 많이 내리면 보리를 덮어 보온 역할을 하므로
동해(凍害)가 적어 보리가 잘 자라기 때문이다.
부네야 네 할 일 메주 쑬 일 남았도다
익게 삶고 메주 찧어 띄워서 재워두소
― 『농가월령가』중 십일월령
농사일을 끝내고 한가해지면 가정에선 누런 콩을 쑤어 메주를 만들기 시작한다. 메주를 잘 만들어야 한 해 반찬의 밑천이 되는 장맛이 제대로 나기에 갖은 정성을 기울여야 한다.
잘 씻은 콩을 고온에서 단시간 익히는 것이 중요한데 손으로 비벼 보아 뭉그러질때까지 충분히 익힌다.
삶은 콩은 소쿠리에 담아 물을 뺀 후 둥글넓적하게 혹은 네모지게 모양을 만든다. 모양을 갖춘 메주를 그대로 며칠 방에 두어 말린 후, 짚을 깔고 서로 붙지 않게 해서 곰팡이가 나도록 띄운다. 알맞게 뜨면 짚을 열십자로 묶어 매달아 둔다. 메주 달 때는 대개 짚을 사용하는데 이는 짚에 효소가 있기 때문이다.
요즘 좋은 나일론끈이 많지만, 메주를 달 때 유독 짚으로 묶어 다는 이유는 푸른 곰팡이의 번식을 양호하게 하기 위함이다.
간혹 도시에서 자란 새댁들이 물색 모르고 나일론끈으로 달아 메주를 버리기도 하고 장맛을 형편없이 만들기도 한다.
메주를 띄울 때도 곰팡이가 잘 번식하게 하기 위해서는 이불같은 것을 덮어 주는데, 이때도 천연섬유로 된 이불이어야 좋지 나일론 등 합성섬유로 만든 이불은 좋지 못하다. 곰팡이 균도 자연친화를 좋아함을 알수 있다.
♣ 동지(冬至) - 겨울에 이르렀다는 뜻으로 낮이 제일 짧음.
24절기 중의 스물 두 번 째 절기이다. 동지(冬至)는 대설(大雪)과 소한(小寒) 사이에 있는 음력(陰曆) 11월 중기(中氣)로, 태양이 황경 270도에 도달한 날이고, 이 날은 태양이 황도의 최남단{남회귀선}에 위치해 낮이 가장 짧은 날이다. 양력(陽曆)으로는 12월 22, 23일경이다. 동지는 태음태양력(太陰太陽曆)의 역법(曆法)에서 역(曆)의 기산점(起算點)이 되기 때문에 그 중요성이 더해졌고, 또한 24절기 중에 풍습이 가장 많이 있는 기간이기도 하다.
하지와 동지는 태양의 운행을 중심으로 여름과 겨울의 도달을 의미하면서 또한 그 계절의 정점임을 표현하고 있다.
동지는 고대(古代) 시절에 설{원단(元旦)}로 삼았던 때가 있었기 때문에 아세(亞歲: 작은 설)라고도 한다. 특히 민간(民間)에서는 동지 팥죽이라 하여 팥죽을 먹어야 나이를 한 살 더 먹는다고 믿었다.
전통의 풍습에 원단(元旦)과 함께 동지를 으뜸가는 축일(祝日)로 쳐서 궁궐에서도 회례연(會禮宴)을 펼치고, 동지사(冬至使)을 중국에 보내기도 했다. 민간에서는 동지절식(冬至節食)을 먹었는데, 붉은 팥으로 죽을 쑤어 그 속에 찹쌀로 옹시미 또는 새알심이라는 단자(團子)를 만들어 넣어 먹고, 또 역귀(疫鬼)를 쫓는다는 의미로 팥죽 국물을 벽이나 문에 뿌렸다.
동지는 글자 그대로 겨울에 이르렀다는 뜻으로, 태양이 가장 남쪽으로 기울어져 밤의 길이가 일 년 중 가장 긴 날이다.
이 날이 지나면 하루 낮길이가 약 1분씩 길어지는데 옛 사람들은 태양이 기운을 회복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여 동지를 설날로 삼기도 했다.
가장 긴 밤 : 태양이 남회귀선, 적도 이남 23.5도인 동지선에 도달한 시절로 밤이 제일 길다.반대로 남반부에서는 낮이 가장 길고밤이 짧다.
작은 설, 동지 : 11월을 동짓달이라고 할만큼 11월은 동지가 대표한다. 옛날엔 동지를 설이라 했는데 이는 태양의 부활과 새로운 시작의 의미이다. 설날이 바뀌면서 '작은 설', 다음해가 되는 날의 의미로 '아세(亞歲)'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태양의 부활과 크리스마스
태양은 하루하루 북으로 올라와 옛날에는 이를 태양이 복원(復元)한다 하여 동짓날을 축일로 삼았으며, 특히 태양신을 숭상하던 페르시아의 미드라교에서는 동지, 12월 25일 <태양탄생일>로 정해서 태양의 부활을 축하하였으며, 고대 로마력(曆)에서 12월 25일은 동지(冬至)날이었고 유럽이나 중근동 지방에서는 이 동지날이 설날이었다. 예수 그리스도가 태어난 날은 신약성서에 명기돼 있지 않으며 그 옛날에는 1월 6일로 성탄일을 삼기도 하고 3월 21일을 성탄일로 잡기도 했다. 로마 교황청이 성탄일을 이 동지설날로 통일시킨 것은 4세기 중엽이다. 그래서 옛 설날 풍습이 성탄 풍습으로 혼합된 것이 하나 둘이 아니다.
팥죽과 축귀(逐鬼)
동짓날에는 어느 집에서나 팥죽을 쑨다. 팥죽은 팥을 후루루 삶아 첫물을 버리고 새물을 부어 삶아야 쓴 맛이 없다. 푹 삶은 팥을 굵은 체에 걸러서 오래도록 달이다가 쌀을 넣고 잘 퍼졌을 때 새알심[옹시래미 라고도 함]을 넣는다. 새알심은 찹쌀 가루를 익반죽하여 작은 새알 만한 크기로 동글동글 빚어 둔다. 소금 간을 하여 그릇에 담고 식성에 따라 꿀로 단 맛을 더한다.
이렇게 쑨 팥죽을 먼저 사당에 올려 차례를 지내고, 다음에 방과 마루 부엌과 광 등에 한 그릇씩 떠다 놓고, 대문이나 벽에다 죽을 뿌린다. 팥죽의 붉은 색은 양(陽)의 색으로써 귀신(음귀<陰鬼>)을 쫓는다는 믿음에 근거한다. 그런 연후에야 식구들이 팥죽을 먹는다. 동지 팥죽은 마음속의 사악함도 씻어내고, 새로운 한해를 시작하는 의미가 담겨 있을 것이다. 또한 잔병을 없애고 건강해지며 액을 면할수 있다고 전해져 이웃간에도 서로 나누어 먹었다.
옹시래미(새알심)
자기 나이 수대로 새알심을 넣어 먹었다고도 한다. 이 새알심은 맛을 좋게 하기 위해 꿀에 재기도 하였고, 새알심 속에 땅콩이나 아주 작은 동전을 넣어 그것을 씹는 아이에게 따로 선물을 주기도 하였다. 가난하고 추운 어린 시절에 그래도 참 행복했던 추억으로 남아 있는 시절이다. 새알심의 의미는 아마도 새알의 부화(孵化)를 의미하는 새로운 변화의 의미를 상징하는 것으로 봅니다. [ 孵(부) 알까다 ]
동짓날 팥죽을 쑨 유래는, 중국의 [형초세시기]에 의하면, 공공씨(共工氏)의 망나니 아들이 동짓날 죽어서 역신(疫神) 즉, 전염병귀신이 되었는데, 그는 평상시에 팥을 두려워하였으므로 역신을 쫓기 위해서 동짓날 팥죽을 쑤어 악귀를 쫓았다는 것이다. 전염병이 유행할 때, 우물에 팥을 넣으면 물이 맑아지고 질병이 없어진다고 여겼으며, 사람이 죽으면 팥죽을 쑤어 상가에 보내는 관습이 있는데 이는 상가에서 악귀를 쫓기 위한 것이다.
절에서도 죽을 쑤어 대중들에게 공양(供養)한다. 팥죽을 먹어야 겨울에 추위를 타지 않고 공부를 방해하는 마구니(마귀)들을 멀리 내쫓을 수 있다고 여긴다.
어쩌면 붉은 색의 연지·곤지, 입술루즈, 봉선화 매니큐어 등의 화장은 아름답게 꾸미기 위함 보다 붉은 색이 귀신을 쫓는다는 믿음에서 시작되었는지도 모른다. 견강부회일지는 모르겠으나 성탄전야 에 산타클로스가 붉은 색(양<陽>)의 옷을 입고 불(양<陽>)을 지피는 부엌 아궁이로 들어온다. 성탄절 = 동지날 = 설날 = 태양의 부활이라는 등식에서 나온 풍속이고 보면 설날 풍속이 동서양이 다를 바 없음을 알 수 있다.
동지가 초승(음력 11월 초순)에 들면 애동지, 중순에 들면 중동지, 그믐(
하순)에 들면 노동지라 하며, 애동지에는팥죽을 쑤지 않고 대신 팥 시루떡을 쪄서 먹었다 한다. 팥죽이든 시루떡이든 시원한 동치미를 곁들이면 그 맛이 더욱 일품일 것이다. 고려시대에는 '동짓날은 만물이 회생하는 날'이라고 하여 고기잡이와 사냥을 금했다고 전해진다. 속담에도 "동지를 지나야 한 살 더 먹는다.", "동지팥죽을 먹어야 진짜 나이를 먹는다."라는 말이 있다.
팥죽 한 그릇에 얽인 전설.
옛날 양산 어느 마을에 김씨 성을 가진 노인 내외가 살고 있었다. 이들은 살림살이가 매우 구차하여 할아버지는 짚신을 삼고, 할머니는 길가에 나가 팥죽장사를 하며 살았다. 그들에게는 아들이 하나 있었는데, 이 아들은 관청에서 날품팔이를 하였다.
하루는 할머니가 팥죽을 팔고 있었는데 남루한 의복에 신도 신지 않은 과객이 그 앞을 지나갔다. 이를 불쌍히 여긴 할머니는 그 과객을 불러 팥죽을 대접하고 짚신도 한 켤레 주었다. 이에 과객은 고마움을 표시하고 훗일 다시 만날 것을 기약하며 길을 떠났다.
어느덧 세월이 흘러 그로부터 여러 해가 지난 뒤에 그때의 과객이 할머니를 찾아왔다. 그러나 할머니는 찾을 수 없었다. 매우 실망한 과객은 백방으로 수소문한 끝에 그 할머니의 아들을 찾아내었다. 아들은 찾아가서 자신이 할머니를 찾게 된 경위를 말하고 그 은혜에 보답하고 싶다고 하였다. 그러나 할머니는 며칠 전에 돌아가셨고 아들은 상중이었다. 그래 그 과객은 은혜에 대한 보답으로 아들에게 할머니의 묏자리를 보아주었다. 아들은 과객이 보아준 묏자리에다 어머니를 장사지냈다.
그 후부터는 그 집은 살림이 불처럼 일어나 당대에 만석꾼이 되었다고 한다.
동지(冬至) 달력
조선조 시대에는 동지(冬至)가 되면 관상감(觀象監)에서 새 달력을 만들어 궁궐(宮闕)에 올렸다. 임금은 이를 황색 표지의 '황장력(黃粧曆)'과 백색 표지의 '백장력(白粧曆)' 청색표지의 청장력(靑粧曆)) 등으로 분리해 '동문지보(同文之寶)'라는 옥새(玉璽)를 찍어 신하(臣下)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또한 각 관청(官廳)에서도 일정 수량의 책력(冊曆)을 나누어 받고, 각자 자신의 친분있는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이것이 전래되어 서울 지방에서는 "하선동력(夏扇冬曆)"이라는 풍속이 정착되는데, 이는 여름철 단오날에는 부채를 선물하고, 겨울철 동짓날에는 달력을 선물하는 풍속을 뜻한다. [ 粧(장) 화장하다, 꾸미다. 璽(새) 옥새. 扇(선) 부채 ]
또한, 내의원(內醫院)에서는 전약(煎藥)이라 하여 쇠가죽을 진하게 고아 관계(官桂)· 생강· 정향(丁香)· 후추· 꿀 등을 섞어 기름에 엉기게 하여 굳힌 후, 임금에게 진상하여 별미로 들게 하였다. 그 밖에 고려· 조선 초기의 동짓날에는 어려운 백성들이 모든 빚을 청산하고 새로운 기분으로 하루를 즐기는 풍습이 있었다.
동지헌말
해가 길어지기 시작하는 동지부터 섣달 그믐까지는 며느리들의 일손이 바빠진다. 시할머니나 시어머니 시누이 시고모 등 시집의 기혼녀들에게 버선을 지어 바치기 위함이다. 이를 동지헌말 또는 풍년을 빌고 다산을 드린다는 뜻인 풍정(豊呈)이라고도 했다.
18 세기의 실학자 이익(李瀷)은 동지헌말에 대해 새 버선 신고 이 날부터 길어지는 해그림자를 밟고 살면 수명이 길어진다 하여 장수를 비는 뜻이라 했는데 그것은 미화된 이유 가운데 하나일 뿐이다.
동지부적
동짓날 부적으로 뱀 '사(蛇)'자를 써서 벽이나 기둥에 거꾸로 붙이면 악귀가 들어오지 못한다고 전해지고 있으며, 동짓날 일기가 온화하면 다음해에 질병이 많아 사람들이 많이 죽는다고 여겼으며, 눈이 많이 오고 날씨가 추우면 풍년이 들 징조라고 전한다.
또 동지사(冬至使)라는 외교 사절을 파견하였다.
동지에 먹는 음식
귤 :
또한 제주목사는 동지 무렵이 되면 특산물로 귤을 상감에게 진상하였다. 상감은 멀리 섬 사람에게 그 공
로를 위로하는 선물을 하사하였으며, 기쁘게 여겨 임시로 과거를 실시하여 사람을 등용하는 일이 있었
는데, 이를 황감제(黃柑製)라 하였다.
우유
우유는 서양풍물이 들어온 것이라 생각하기 쉬운데, 우리나라의 <고려사>에 보면 시인 이순의가 관에 상고한 기록에, "우유를 약용으로 즐겨하여 의관들이 농민의 젖소를 징발하여 우유 죽을 만드니 경기도 지방의 농사를 지을 소마저 상하게 하니 이를 금하게 해달라" 하는 것이 있다. 몽고와의 교류 뒤 국가의 상설 기관으로 유우소(乳牛所) 또는 목우소(牧牛所)가 조선 때에는 타락색(駝酪色)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타락이라는 이름은 돌궐(突厥)어의 '토라크'에서 나온 말인데 원래는 말린 우유를 뜻했다. 조선조에선 우유제를 통틀어 타락이라 불렀다. 우유를 그대로 마시는 일은 드물고, 낙죽 혹은 전약(煎藥)의 재료로 썼다. 특히 왕의 병에는 궁전 안의 약방에서, 대신의 병에는 왕이 하사토록 하여 이를 만들어 올렸다.
전약(煎藥)
궁궐의 내의원(內醫院)에서는 동짓날이 되면 겨울철 내내 사용하기 위해, 생강, 정향. 계피, 후추, 설탕, 꿀 등을 쇠가죽과 함께 푹 고아 고약(膏藥)을 만들어 진상했는데, 이를 전약(煎藥)이라 한다. 현대의 고약(膏藥)이 여기에서 전래된 것이다. [ 煎(전) 달이다, 지지다 ].
우유 죽(타락 죽) 쑤는 법
쌀 1컵을 곱게 갈아 체에 밭쳐 3컵의 물을 붓고, 된죽을 쑤다가 2, 3컵의 우유를 넣고, 몽우리 없이 풀어 홀홀하게 하여, 따끈할 정도로만 데워 낸다. 식성에 따라 꿀, 소금을 넣어 먹는다.
끓이면 맛이 시어지고 너무 시간이 지나면 삭으니, 죽을 쑬 때는 돌솥에 나무 주걱이 제일 좋은 도구다. 죽의 반찬은 된장 보다는 젓국이 잘 어울린다.
비웃구이와 비웃젓(淸魚)
청어는 기름기가 많고 고소하여 주로 구워 먹었고, 보관이 어려워 젓을 담아 먹었다. 또한 양념하여 쪄 먹기도 한다.
줄 과메기(꽁치과메기)
청정해역 동해 영덕 앞 바다에서 갓 잡은 신선한 꽁치를 엄중 선별하여 , 자연상태에서 신선한 해풍으로 해동과 냉동을 거듭하여 얼 말린 꽁치 과메기는, 조선시대 궁중 진상품으로 올렸을 만큼 맛이 좋고 영양이 풍부한 자연식품이다
영덕대게
영덕대게는 대게중에서도 저질 밑바닥에 개흙이 전혀 없고 깨끗한 모래로만 이루어진, 영덕군의 강구면과 축산면 사이 연안 3마일 앞바다에서 잡힌 것이, 타지역산 보다 살이차고(일명 박달게라고 함) 맛이좋아 그 명성이 점차 전국으로 확산되면서 지역 특산품의 자리에
올라 영덕의 으뜸식품으로 인정을 받게 되었다.
붉은대게(일명 홍게)
붉은대게는 동해안에서 가장 많이 어획되는 한해성 게로서 주로 통발에 의해 어획되며,
일반적으로 형태적 특징이 영덕대게와 유사하여, 시중에서 영덕대게로 판매되는 예가 많은데
이는 대부분 붉은대게(홍게)라 할 수 있다. 근래 대게어획량이 급감함에 따라, 대게와 유사한
홍게의 중요성이 부각되고 있으며, 홍게도 살이 단단한 상품(上品)은 대게에 비해 별 손색이
없이 비교적 저렴한 가격으로 게맛을 즐길 수 있으므로 굳이 값비싼 대게만을 고집할 이유는
없을 것이다.
냉면
주로 함경도나 평안도 지방에서 바깥의 기온이 얼어붙어 있을 때, 따끈한 구들목 위에서 이가 시리도록 즐겨 먹었다는 풍속이 전해지는데, 요즘은 한더위 때에도 어느 누구를 막론하고 좋아하는 음식이 되었다. 냉면은 메밀을 곱게 가루 내어 몹시 가늘게 국수를 뽑아 삶아서 찬물에 씻어 건펴 두고. 위에 무우, 오이, 배, 유자, 돼지고기 편육, 달걀 지단채를 얹는다. 살얼음이 낀 동치미국물을 붓는다. 겨자와 식초로 맛을 맞추어 먹는다.
동지 때는 '동지한파'라는 강추위가 오는데 이 추위가 닥치기 전 보리밟기를 한다. 이때는 땅속의 물기가 얼어 부피가 커지면서 지면을 밀어 올리는 서릿발로 인해 보리 뿌리가 떠오르는 것을 막고 보리의 웃자람을 방지하기 위해 과거엔 겨울 방학을 앞두고 학생들을 동원해 대대적인 보리밟기를 하기도 했다.
동짓날 한겨울 기나긴 밤에는 새해를 대비해 복조리와 복주머니를 만들었다.
복조리는 산죽을 쪄와 사등분으로 쪼개어 햇볕에 말리고 물에 담근 뒤 그늘에서 건조시켜 만든다. 복조리는 새해부터 정월 대보름까지 복을 사라며 "복 조리 사려"를 외치며 다녔다. 대보름이 지난 뒤 팔러 다니면 상놈이라 욕을 먹기도 했다. 복조리를 부엌 부뚜막이나 벽면에 걸어두고 한해의 복이 그득 들어오기를 기원했다.
음력 십일월부터는 농한기다. 이때는 가장들 보다 아녀자들이 할 일이 더 많다.
간장, 된장, 고추장을 만들기 위한 메주쑤기로 부산할 때다.
무말랭이, 토란 줄기, 호박 오가리 등 각종 마른나물 말리고 거두기에 겨울 짧은 해가 아쉽기만 할 때다.
비닐하우스 농가에서는 골조설치, 비닐 씌우기, 거름내기, 논갈이 등 중노동이 잇따른다. 과거엔 농한기로 쳤지만 비닐하우스의 등장으로 모내기철 보다 더 바쁜 농번기가 되었다. 그래도 우리네 기억 속엔
정겨운 화롯가의 추억이 남아 있다.
오누이 들의 정다운 이야기에
어느 집 질화로에는 밤알이 토실토실 익겠다
콩기름불 실고추처럼 가늘게 피어나던 밤
파묻은 불씨 헤치며 잎담배 피우시며
고놈 두 눈동자 초롱같애'하며
내 머리를 쓰다듬어 주시던 할머니
바깥은 연신 눈이 내리고 오늘밤처럼 눈이 내리고…(중략)
어느 집 질화로엔 밤알이 토실토실 익겠다.
― 김용호 시『눈 오는 밤에』
겨울밤이면 농부들은 동네 사랑방에 모여 내년 농사에 쓸 새끼를 꼬기도 하고 짚신이며 망태기를 삼기도 했다.
더러 손재주 좋은 이들은 곡식을 말릴때 쓰는 멍석, 음식을 보관하는 봉새기, 재를 밭에 뿌릴때 쓰는 삼태기, 배낭의 일종인 조루막, 풀 베어 담는 꼴망태 등 다양한 생활용품을 만들었다. 옛날 시골에서 자란 분들은 꼴망태 지고 풀피리 불던 옛고향이 그리워 질 것이다.
졸음이 몰려올 쯤이면 쌈지담배를 꼬실리다가, 이내 아낙네들이 삶아온 고구마를 먹으며 마을 소식들이 오갔다.
내년 소작료 얘기며, 부당한 물세 때문에 복장이 터진다는 얘기며 ,안산 너머 닭실골짝 김서방네는 소작료 때문에 논주인과 다투다 부치던 논을 뺏겨 내년 살길이 막막하다며 혀를 끌끌 차기도 했다.
밖은 눈이 무진장 내리는데 말이다 .
안방에서 동네 아낙들과 고구마에 동치미를 들이키며 바느질을 하다 말고, 강부잣집 딸년은 시집가 잘 산다는 얘기며, 양달마을 박서방은 술집 작부와 눈이 맞아 도망을 쳤다는 얘기들이 오갔다.
그때 쯤이면 어린 것은 아이스크림 같은 겨울 감홍시를 입이 벌개지도록 칠한 채 먹다 말고 이내 어미 무릎을 베고 잠이 들곤 했다.
이처럼 겨울나기는 눈오는 밤 질화로에 묻어둔 불씨요 밤알처럼 훈훈한 것이었다.
그러나 산업사회를 살아가는 오늘의 상황이, 아름다운 겨울의 낭만을 사라지게 했다.
모진 바깥 세상에 시달린 손을 포근하게 묻을 곳이며, 얼어붙은 볼을 감싸 녹여주며 거칠어진 마음을 따뜻하게 해주는 정(情)의 원천이던 겨울나기, 쇠죽을 끓여 지글지글 끓던 방에서 밤과 고구마에 동치미를 들이키며 가족끼리.이웃끼리 도란도란 얘기 나누던 따뜻함이 새삼 그리운 시절이다.
♣ 소한(小寒) - 소한 얼음 대한에 녹는다.
24절기 중 스물셋째. 음력으로는 12월절(十二月節),
양력으로는 1월 5일, 6일 경이다. 태양의 황경(黃經)이 285도일 때이며 동지와 대한 사이에 있으면서 한겨울의 추위가 매섭게 찾아든다.절기의 명칭으로는 다음의 절기 '대한(大寒)'이 더 춥다는 의미지만 우리나라는 소한(小寒) 때가 1년 중 가장 춥다.그래서 속담에,"대한이 소한집에 놀러 갔다가 얼어 죽었다." 는 옛말이 생겨났다. 그러나 추위를 이겨냄으로써 어떤 역경도 감내하고자 했던 까닭으로 '소한(小寒)의 추위는 꾸어다가라도 한다.'고 했다.
옛사람들은 소한 15일간을 5일씩 3후(候)로 세분하여, ① 기러기가 북(北)으로 돌아가고, ② 까치가 집을 짓기 시작하고, ③ 꿩이 운다라고 하였다.
소한은 양력으로 해가 바뀌고 처음 나타나는 절기다. 소한때는 '정초 한파'라 불리는 강추위가 몰려오는 시기이다
소한땜'이 아니라도 이때는 전국이 최저 기온을 나타낸다. 그래서 "대한이 소한집에 가서 얼어 죽었다."든가, "소한 얼음 대한에 녹는다."고 할 정도로 추웠다.
농가에서는 소한부터 날이 풀리는 입춘 전까지 약 한 달 간 혹한에 대비해 만반의 준비를 해야 했다. 눈이 많이 내리는 지방에서는 문밖 출입이 어려우므로 땔감과 먹을 것을 집안에 충분히 비치해야 했다.
논은 지가 품고 있던 벼가 없으니
슬퍼 하늘만 쳐다본다
벼하고 지하고
더 어려운 일도 이겨 내었재
논아 너무 슬퍼하지 마고
내년에 우리
멋지게 살아보자
― 울진 온정초등 3학년 김형삼(85년)의 『빈논』
농촌에서 자란 한 초등학생의 시각을 통해 이 시기의 들녘을 보자. 그것이야말로 논이 가지고 있는 진정일 것이다.
< 보리.>고온과 저온에 모두 견디는 힘이 강한겨울에 쌀을 먹고, 여름엔 보리를 먹어야 보양(保養)이 되는 까닭은 무엇일까?
물론 철따라 나는 곡식을 맞추어 먹다 보니 자연 그렇게 되기도 했지만 보다 큰 이유는, 엄동에 쌀밥을 권하는 것은 천지가 음기(陰氣)에 든 겨울에, 따가운 땡볕 속에 영근 쌀에서 양기를 취하여 음양 조화를 지니려는 것이며, 한여름에는 엄동의 눈밭에서 자란 보리의 냉기를 취하여 모자라는 음기를 보강하려는 것이다.
벼가 없어진 빈 들판에 눈이 내리면 특히, 동짓달과 섣달에 눈이 많이 오면 풍년이 든다고 믿었다. 그래서 "눈은 보리 이불이다." "사람이 보지 못하는 사이에 눈이 내리면 풍년이 든다.", "함박눈 내리면 풍년 든다."고 반겼다.
눈을 풍년의 징조로 본 것이다. 또 눈은 "첫눈 먹으면 감기에 안 걸린다.", "장사 지낼 때 눈 오면 좋다.", "첫눈에 넘어지면 재수 좋다."며 눈을 상서(祥瑞)롭게 보았다.
겨울 농사의 중요한 몫은 보리 차지다.
보리하면 경상도 특히 경북을 연상한다.
오죽하면 경상도 하면 "보리 문디"라고 까지 했을까?
경상북도의 대다수 농지는 보리재배의 적지이자 논보리 이모작이 가능해 일찍부터 보리재배가 성공했던 곳이다. 잠시라도 땅을 놀리면 벌받는 줄 알았던 부지런한 우리네 아버지 어머니들은 보리를 심어 자식들을 부양하고 그것을 팔아 농가의 농사밑천으로 사용하곤 했다.
지금은 보리 농사가 줄어 보리밭을 구경하기도 어렵지만, 가곡『보리밭』이나, 한흑구가 수필에서 예찬했던『보리예찬』은 늦가을부터 봄까지 우리 농촌을 대표하던 정겨운 풍경이었다. 그래서 "보리밭 사잇길로 걸어가면 뉘이 부르는 소리 있어 나를 멈춘다"고 했고, '보리밭 로맨스'니 '보리밭에만 가도 취한다'는 등 보리는 우리의 정서를 대변해 왔다.
특이한 것은 가을보리씨를 이듬 해 봄에 심으면 열매가 맺히지 않는다고 한다. 그 이유는 가을보리는 혹독한 겨울을 보낼 준비가 되어 있는데 따뜻한 봄에 파종하니 자신의 성질을 잃어 열매를 맺지 못하는 것이다.
가을보리를 봄에 심어 열매 맺게 하려면 '춘화처리'라는 것을 해 주어야 한다. '춘화처리'란 가을보리가 추운 대지에 뿌리내려 겨울을 나듯 보리씨를 추운 곳에 일정기간 보관했다 뿌려야 정상적으로 열매가 맺힌다.
엄동설한을 보내지 않고는 결실의 열매를 맺지 못하는 보리처럼 인간의 삶도, 시련의 시절을 보낸 후에야 그 꿈을 열매 맺는 것은 아닐런지….
이렇듯 하찮게 보이는 보리도 하나의 열매를 맺기 위해서는 추운 흙 속에 묻혀 자신을 죽이고 삭히는 인내의 굳은 시련을 겪은 후 비로소 황금물결로 춤추는 보리가 되는 것이다.
♣ 대한(大寒) - 일년 24절기 중, 마지막 절기.
24절기의 마지막. 음력으로는 12월 중기(中氣)이며, 양력으로는 소한(小寒) 15일 후부터 입춘(立春) 전까지의 절기로, 1월 20일, 21일 경이다.
태양의 황경은 300도가 된다. 음력 섣달로 매듭 짓는 절후. 겨울철 추위는 입동에서 시작하여 소한에 이를수록 추워지며 1월 15일 경 대한에 가까워지면서 최고조에 달한다.
그러나 대한이 지나면서 추위는 수그러들기 시작하여 속담에 '춥지 않은 소한 없고 포근하지 않은 대한 없다.', '대한이 소한의 집에 가서 얼어죽는다.' '소한 얼음, 대한에 녹는다'는 이야기가 생겼을 만큼 푸근한 것이 보통이다.
절분(節分)과 해넘이 - 한국을 비롯한 동양에서는 대한의 마지막 날이자 입춘(立春) 전날인 절분(節分)은 한 해를 매듭짓는 마지막 날로, 풍속에서는 이 날 밤을 해넘이라 하여, 콩을 방이나 마루에 뿌려 악귀를 쫓고 새해를 맞는 풍습이 있다. 절분 다음날은 정월절(正月節)인 입춘으로, 이 날은 절월력(節月曆)의 연초가 된다.집안 손질 - 제주도에서는 이사나 집수리 따위를 비롯한 집안 손질은 언제나 신구(新舊)간에 하는 것이 관습화 되어있다. 이때의 신구(新舊)간은 대한(大寒) 후 5일에서 입춘(立春) 전 3일간(1월 25일∼2월 1일)의 보통 1주일을 말한다
대한은 24절기의 마지막 절기이다. 소한 추위가 대한에 이르면 절정에 달한다.
대한은 일년 중 가장 추운 시기이다.
시베리아 기단의 맹위로 인해 몹시 추운 날이 계속된다.
이때는 또 건조한 날씨로 불이 일어나기 쉽고, 가뭄이 들 때가 많아 보리 등 겨울 농작물에 피해를 끼치며 불이 많이 일어나기도 한다.
엣날엔 소한·대한 때는 꿈쩍도 않고 집에만 있었지만 요즘은 비닐하우스 일을 비롯한 여러 특용작물 재배로 인해 바쁘기는 매 한가지이다
무릇 농경 사회에서 겨울 석달은 농한기로, 다음 해 농사를 짓기 위한 휴식·준비의 시기였다. 그러나 농촌에 휘몰아친 변화의 바람은 결코 농한기로 안주할 수 없게 만들었다. 이 농한기를 부지런히 움직인 이가 부와 명예를 얻을수 있는 세상이 되었다.
벼농사 중심의 농가는 본격적인 농한기에 해당된다.
기껏해야 보리밭의 월동 거름덮기, 농기구 손질, 겨울 땔감 준비등이다.
예전엔 가마니 짜기, 새끼 꼬기 등도 빼놓을수 없는 일감이었다.
특히 겨울에는 크게 힘쓸 일도 없고, 나무나 한두 짐씩 하는것 말고는 대부분 놀고 먹기에, 삼시 세 끼 밥 먹기가 죄스러워 겨울 점심 한 끼는 반드시 죽을 먹었다. 이는 쌀을 아끼려는 눈물겨운 노력이자, 일하지 않고는 밥을 먹지 않겠다는 투철한 노동정신이 스민 것임을 알 수 있다. 또 양식 있는 겨울에 아끼지 않으면 돌아오는 보릿고개에 모두가 굶어 죽게 되니, 있을 때 아끼자는 깨어있는 정신이었다.
대한 때면 눈덮힌 겨울 들판에 황량함만이 남아 있다.
이 죽어 있는 땅에 새싹이 돋아나는 봄이 올 것 같은 희망 따위는 도무지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이 죽어 자빠진 땅에도 봄은 기어이 오고야 만다. 그 희망을 소설가 김영현은 그의 작품집『깊은 강은 멀리 흐른다』에서 건강한 농사꾼의 눈을 빌려 이렇게 표현하지 않았던가?
"도시에서 온 놈들은 겨울 들판을 보면 모두 죽어 있다고 그럴거야. 하긴 아무것도 눈에 뵈는게 없으니 그렇기도 하겠지. 하지만 농사꾼들은 그걸 죽어 있다고 생각지 않아.
그저 쉬고 있을 뿐이라 여기는 거지.
적당한 햇빛과 온도만 주어지면 그 죽어빠져 있는 듯한 땅에서 온갖 식물들이 함성처럼 솟아 나온다 이 말이네.
그것이 바로 대지에 뿌리박고 사는 민중이라네.
진짜 훌륭한 운동가라면 농민과 같을거야.
적당한 온도와 햇빛만 주어지면 하늘을 향해 무성히 솟아 나오는 식물들이 이 땅에서 살아가는 민중들이구.
일시적으로 죽어 있는 듯이 보이지만 그들은 결코 죽는 법이 없다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