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백산악회에 기고한 글을 전재한 것입니다.]
때는 바야흐로 계절의 여왕이라 불리우는 5월 하고도 한 중간인 날, 2007년 5월 17일이다. 일주일 전(5월 10일) 백두대간의 고치령-늦은목이 구간을 산행한 뒤 1주일만에 다시 목요 대간팀에 참가하여 백두대간을 한 칸 줄일 수 있었다. 청명한 하늘 밑의 깨끗한 숲속을 6시간 여동안 마음껏 걸을 수 있던 행복한 산행이었다.
7시에 잠실을 떠난 버스는 치악휴게소에서 휴식한 후 제천을 지나 동쪽으로 계속 달려 10시 50분쯤 오늘의 산행 들머리인 피재에 송백인들을 내려 놓는다. 지난 4월 26일 싸리재에서 금대봉과 매봉산을 거쳐 건의령까지의 한 구간을 가던 중 산불위험을 이유로 이곳에서 산행이 중단되었었다. 오늘은 하늘이 흐려있고 어제 비가 온 관계로 산불위험은 거의 제로일 듯. 모두들 거침없이 어제의 비에 씻긴 깨끗한 숲속 대간길로 스며든다.
지난 번 가지 못했던 부분(피재-건의령)과 한 구간(건의령-자암재)을 합하여 오늘 운행거리는 20km 가 넘을 것 같아 약간은 걱정이 되기도 한다. 오늘의 최고고도는 지각산으로 1,080m 이다. GPS로 시작점인 피재의 고도를 첵크해 보니 해발 914m로 꽤 높은 지점에서 오늘 산행이 시작됨을 알 수 있었다. 따라서 피재에서 최고점까지는 불과 200m 이내의 높이 차이라서 조금은 안심이 되기도 한다.
비가 올 듯 하던 하늘은 차차 개여가서 기분이 좋아지는데 나무들은 어제의 비로 깨끗이 몸을 씻고 말쑥한 모습으로 나그네를 맞는다. 거무티티하던 줄기들에선 연두색 여린 잎들이 새로 나와서 새로운 봄을 구가하고 있는 바야흐로 봄이다. 봄, 5월 좋은 계절이다.
봄과 겨울이 서로 맞서던 잔인하다고 욕을 먹던 4월은 가고 이제 봄이 완연하게 지배하는 계절의 여왕 5월이다. 새들은 노래하고 사람들은 다시 희망을 품는다. 완만한 언덕을 오르내리는 길은 푹신한 낙엽에 덮여 그야말로 양탄자길이다. 산행 시작 25분이 지나 삼각점이 설치된 작은 봉우리 위에 도착한다. 길은 다시 완만하게 아래로 향하는데 여기서부터 점심식사를 하기로 한 건의령까지의 길은 힘든 게 없을 듯하다.
카메라에 경치를 기록하며 가는데 큰 변화가 없는 숲길이라 여러 곳을 찍을 필요는 없겠다. 단조롭지만 평화롭고 아늑한 숲길이 계속 펼쳐진다, (진정한 평화는 이렇게 조용한 모습을 띠어야 사람들에게 호소력이 있을 것 같다.)
12시 19분, 산행시작 후 1시간 반이 채 안되어 건의령에 도착했다. 여기서 오늘 점심식사를 하기로 했기에 다들 모여서 식사를 준비하거나 담소를 나누고 있다. 오늘 점심 준비는 색다른 방법으로 하기로 지난 주 이미 공고가 되어 있었다. 밥과 반찬을 여성 회원들이 준비하고(일부 남성도 준비하였다고 함) 이것을 모두 비벼서 비빔밥으로 해서 공급하는 방법이었다.
건의령을 지나는 도로 주변에 꽃이 피어 있기에 이를 촬영하며 밥이 되기를 기다리는 동안 비빔밥이 다 되었다고 들국화 대장이 회원들을 부른다. 철저히 무임승차한 나에게는 더욱 맛이 있는 밥이었다.(혼자 지내는 걸 좋아하는 내게 이러한 공동취사는 제법 낯설고 심적 부담도 되니 난 아직 덜 자랐나 보다.)
건의령에는 차가 다닐만한 길이 가로지르고 있었는데 산림청에서 세운 입간판이 이 고개의 유래를 다음과 같이 설명해 주고 있었다.
‘한의령(寒衣嶺)
태백 상사미에서 삼척 도계로 넘어가는 고갯길로 건의령(巾衣嶺)이라고도 한다. 고려말 때 삼척으로 유배온 공양왕이 근덕 궁촌에서 살해되자 고려의 충신들이 이 고개를 넘으며 고갯마루에 관모와 관복을 걸어놓고 다시는 벼슬길에 나서지 않겠다고 하며 고개를 넘어 태백산중으로 몸을 숨겼다는 전설이 전해지는 유서깊은 고개이다. 여기서 관모와 관복을 벗어 걸었다고 하여 관모를 뜻하는 건(巾)과 의복을 뜻하는 의(衣)를 합쳐 건의령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아득한 옛날 약 600년전 자기들이 믿고 따르던 나라(고려)가 망함에 새로운 정권(조선)에는 협력을 할 뜻이 없는 꼿꼿한 선비들이 관모와 의복을 이곳에다 버리고 백두대간으로 자취를 감추고 두문불출했다는 이야기이다. 여기서 멀지않은 금대봉 밑 싸리재의 다른 명칭이 두문동재였었다. 그렇다면 두문동재의 두문동은 정권과 담을 쌓고 두문불출하던 선비들이 있던 곳이었지 않았나 싶다.
요즘도 그런 선비들이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자기가 신봉하던 이즘이나 정치세력이 몰락한 후 구차하게 배를 갈아타기 보다는 백두대간을 걸으며 자기수양을 해가는 분들도 꼭 있을 것만 같다.
12시 46분 식사시간이 끝나고 이제부터 각자의 역량으로 덕항산, 자암재를 지나 산행종점인 버스가 있는 곳까지 걸어야 한다. 건의령의 표고를 보니 844m 이다. 푯대봉까지는 제법 경사진 언덕이다. 식사를 한 후인지라 제법 힘이 든다. 오후 1시 5분, 건의령 출발 후 20분만에 푯대봉(해발 1,010m)으로 가는 갈림길에 도착했다. 이곳 삼거리의 표고는 998m이다. 좌측으로 100m 만큼 수직으로 올라가야 푯대봉에 들를 수 있다. 그러나 그리 가지 않고 오른쪽 하강하는 길로 해서 대간길을 계속한다.
푯대봉을 내려가서 봉우리를 두개 넘어 안부에 도달하니 대간길 왼쪽으로 숲을 훼손하여 목장과 과수원을 만들어 가는 지점에 오게 되었다.(오후 1시 38분) 목장을 만들기 위해 숲이 흉하게 파헤쳐져 있었는데 대간이 파괴되는 아픔이 이곳에도 있었다. 이곳부터는 경사가 아주 심한 길로 매우 힘이 드는 길이었다. 길 위에 통나무를 눕혀 놓아 계단처럼 된 길인데 지금까지의 길 중 가장 경사가 심한 듯 했다. 땀을 흘리며 표고 870근처에서 975까지 100m가 넘는 표고차를 계속해서 치고 올라가야 했다.
(여기에서 지도가 현장과 일치하지 않는 것이 발견된다. 목장에서 급경사를 치고 올라가면 해발이 1,161.6m 나 되는 봉우리가 있는 것으로 지도에 표기되어 있으나 실제론 975m 정도의 봉우리 밖에 없는 것을 확인하였다.)
이제 날씨는 완전히 회복되어 숲 위로 해가 밝게 비춘다. 1,000m에 가까운 고지대인지라 공기는 선선하고 바람이 불어 걷기에는 최적의 조건이다. 여린 잎들이 피어나는 연두색 숲길을 나는 걷고 또 걷는다. 오늘 하루만큼은 속세에서 잘라내어 나 자신의 신선놀음을 즐기는 날이다. 지금 이 순간이 그 절정이다. 표고 1,000m 가까이의 청정지역을 걸으며 더 높은 봉우리인 덕항산으로 한걸음씩 닥아 간다. 그 곳이 마치 천국인 것처럼.
이 순간만큼은 백두대간과 일체가 되어 숨쉬고 움직이고 싶다. 산에 의지해 사는 동물처럼 순수하고 소박해지고 싶다. 한 마리 사슴처럼 자연속을 헤치며 하염없이 걷는다. 목표가 있지만 목표가 없는 것처럼 아무 것에도 매이지 않고 나만의 시간을 내가 요리한다.
산아래 세속의 골치아픈 일들은 다 잊어버리고 마음이 맑아지는 순간이다. 절대자인 그분이 필요해지고 대화가 가능한 것도 이때이다.(그분과의 대화는 후기에 적는다.)
나는 숲의 정기에 취해 대간길을 신들린 듯 걸어갔다. 약간 완만해진 길로 그 다음 봉우리에 올라가니 GPS로 잰 고도가 1,003m 이다.(오후 1시 51분) 23분 후(오후 2시 14분)에는 1006봉에 도달하였다. 지도에 표기된 것과는 약간 다른 높이의 봉우리들이다. 약 10분 후에는 고도가 910m인 안부에 도착하였다. 고만고만한 봉우리들을 여러 개 넘은 후에 도달한 곳으로 안부는 이 부근의 능선길 중 꽤 낮은 곳이다.
다시 언덕을 치고 올라가니 오후 2시 40분, GPS상 1048봉(지도엔 이곳 표고가 1,055m로 표기됨)에 도달하였다. 이제 9명의 지아비를 희생시켰다는 여인의 이야기가 담긴 구부시령도 머지 않았다. 급한 경사길을 내려가 한참을 가니 오후 2시 51분, 드디어 구부시령에 도착하였다. 그곳에는 구부시령의 유래를 설명하는 안내간판이 서 있었다.
옛날 이 근처 마을에 살던 한 여인이 남편을 얻었으나 계속 죽게 되어 9명까지 이르렀다고 하는데 믿기 어려운 이야기이다. 이 이야기에서 우린 어떤 교훈을 얻을 수 있을까? 이 지역에 음기가 서려 남자들이 힘을 못 쓰고 죽었을 것이라는 설명도 가하다.
좀 더 다른 뜻이 있을 것 같기도 하나 생각을 미루어 버린다. 이렇게 산좋고 물맑은 곳에서 일어날 법한 일 같지 않아서 현실감이 느껴지지 않음을 더 이상의 해석을 회피하는데 대한 핑계로 대 본다. 이제 덕항산까지는 1.1km가 남았다.
산행시작점인 피재를 떠난지도 이미 4시간이 지났다. 이제 힘도 많이 소진되어 덕항산으로 오르는 발길이 무겁다. 덕항산에 가서 좀 쉬리라 작정하고 말을 안 듣는 몸을 달래서 계속 전진한다. 땀도 나고 숨도 가쁘다. 그러나 오늘의 마지막 고생이라 생각하니 크게 힘들지는 않다. 한마디로 갈만하다고 할 수 있었다.
오후 3시 17분 해발 1,074m의 덕항산 정상에 섰다. 1999년 가을 이래 8년만에 밟는 덕항산 정상이다. 그때는 울산의 산님들과 삼척에서 하루 묵은 다음 덕항산을 등반하고 환선굴을 구경하였는데 한 분이 꽤 힘들어하던 것이 상기되었다.(다들 어떻게 지내시는지...)
덕항산부터는 동해바다가 보인다는 말에 희망을 가지고 올라왔기에 계속 오른쪽을 전망하며 여기까지 왔다. 중첩된 산줄기들은 멀리 동쪽에서 분명 끝나고 있었고 거기부터가 바다였다. 산이 끝나는 지점에서 분명 바다가 시작되고 바다가 끝나는 점이 수평선이 되고 그 다음이 하늘일 터인데 바다와 하늘의 경계가 오늘은 불분명하다. 따라서 바다의 감흥도 반감되고 만다.
바다 쪽을 향하여 카메라 셧터를 여러 번 눌러 댄다. 그래도 바다와 하늘의 경계는 불분명하여 약간 서운한 생각이 든다. 덕항산 쯤 오면 날씨도 좋아졌겠다 무언가 좋은 사진 몇장은 건질 수 있지 않을까 했는데 그 바램이 무산된 것 같다. 하늘엔 무심히 흰 뭉게구름이 흘러서 간다. 꼭 여름 하늘같은 분위기이다.
덕항산 정상에서 잠시 머물며 풍경사진을 여러 장 찍고 복숭아 통조림을 따서 먹었다. 여기까지 참고 걸어와 준 몸에 대한 보상이다. 이제 1.4km 떨어진 지각산(환선봉)까지 가면 오늘의 고생은 끝인 듯 하다.
다시 남은 힘을 짜내어 지각산을 향했다. 만만치 않은 언덕길이다. 그러나 아무리 긴 길도 계속 걸으면 좁혀지는 법. 오후 4시 2분전, 환선봉이라는 정상석이 세워진 지각산에 도착하였다. 이곳은 해발 1,080m 로 오늘 걸은 길 중 가장 높은 지점이다. 환선봉이란 이름은 최근에 붙여진 것이라는데 아마도 삼척시가 세계에 자랑하는 동양최대의 석회석 동굴인 환선굴의 명칭을 따라 이 봉우리도 환선봉으로 명명한 듯 하다.
환선봉에서 잠시 쉰 뒤 가파른 언덕을 10여분 내려가니 잘 정비된 헬기장에 도착하였다.(오후 4시 16분) 여기선 백두대간의 끝인 자암재도 지척일 것 같다. 자암재를 향하여 북쪽으로 걷는데 마지막 봉우리가 하나 더 기다리고 있다. 도대체 몇 번 째 봉우리인가? 정말 이것이 마지막 봉우리였다. 약 70m 의 수직거리를 극복하고서야 자암재로 내려설 수 있었다.
오후 4시 31분, 오늘의 마지막 이정표인 자암재에 도착하였다. 여기서 좌측으로 탈출하여 버스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약 3km의 길은 포장된 찻길이었다. 지루하고 재미없는 길이었다. 그래도 길가에 핀 할미꽃, 민들레와 유채꽃이 나그네를 반겨주어 기분이 좋았다.
오후 5시 8분 버스가 서있는 산행종점에 도착하였다. 휴식시간 포함 6시간 16분의 산행이었는데 총거리는 20.5km나 되었지만 높낮이가 적은 탓에 할 만한 산행이었다. 송백에서 하산 후 제공하는 식사가 오늘은 쇠고기국밥이었다. 언제나처럼 맛있게 먹을 수 있었다.
여기까지 지루하게 산행기를 적어 보았다. 성질이 급한 분은 물론 성격이 좋은 분도 읽을 수 없을 정도로 시시콜콜하고 재미없는 이야기인데 왜 나는 적고 있을까? 존재증명이라고나 해야할까? 내가 보고 듣고 겪었던 그날이 너무나 소중했기에 어딘가에 기록하고 싶었고 기록하려니 이왕이면 자세하게 기록하고 싶었다. 그러다 보니 맥도 없는 이야기가 길게 늘어나고 말았다.
그래서 지름길을 원하는 분들을 위해 지금까지의 산행기록 중 수치로 나타낼 수 있는 것들을 모아서 드라이하게 하나의 표로 정리하였다. 이 표를 보면 지금까지의 길을 조금은 더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표. 피재-자암재 구간 주요지점의 표고, 거리 및 도착시각
구글 사진을 하나 더 본다. 공중에서 빗겨서 입체적으로 본 사진이다.
피재는 일명 삼수령이라고도 불리운다. 세 개의 강이 시작된다는 뜻.
산악인들이 벌이는 '존재를 증명하기' 게임.
또 걷는다. 그분도 동행하는 아름다운 길
덕항산 정상에서 동쪽으로 보며 바다를 찾는다. 웬 뭉게구름?
지각산 정상은 환선봉으로 바뀌어 간다.
낙엽송도 하늘을 향해 잘 자라고 있다.
유럽나도냉이꽃을 가까이서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