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서부터 정말 미친 듯 빡빡한 일정을 몰아부치고 하루도 쉬지 않은 채, 열 네시간을 날아서 동토(凍土)에 도착했다. 내가 세르비아에 도착한 날은, 프랑스에서 하룻밤을 자며 유로화의 위엄을 체험한 다음 날이었다. 공항에는 약속대로 검은 색 KMG 긴팔 티셔츠에 건빵 바지를 입은 밀란이 서있었다. 베오그라드 공항은 그리 넓지 않아 뜨고 내리는 비행기가 많지 않다. 한 눈에 그를 알아봤고, 그는 더 당연히도 우리를 한 눈에 알아봤다. 덩치 좋고, 키 큰 사람들 무리에 빼빼한 동양인 남녀는 어디서나 눈에 띈다. 게다가 파리에서 출발한 비행기에 동양인은 우리밖에 없었다.
밀란은..... 뭐랄까? 정말 잘! 생! 겼! 다! 외국에서 좋은 점은 말을 주워 삼키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그를 대면하면서 헬로우, 나이스 투 밋츄. 다음에 건과 나 둘다 저절로 흘러 나온 첫번 때 한국 말은 "정말 잘 생겼다!" 였다. 헝가리 써트에 이어 두 번째 유럽인 세르비아. 동유럽은 내게 이렇게 좋은 인상을 남겼다. 미남국. 헝가리와 비교하자면 미남 평균지수가 훨씬 높고, 수줍고 조용한 헝가리 남자들에 비해 대화나 제스춰가 훨씬 많다. 여기서 원빈이나 조인성은 그냥 "동양인"일 뿐. 가끔씩 트램 안에서 츄리닝 바람의 헐리우드 배우를 보는 듯한 착각에 빠진다. 여기 사람들은 양복을 입기보다는 면바지를 즐겨입는 듯 하다. 이것도 마음에 든다. ㅎㅎ
너무 미남 얘기만 했다고, 기분 상하지 마시라. 여기엔 또 엘프녀들이 가라데, 아이키도, 영춘권, 크라브마가를 수련하고, 엘프들이 닭을 팔고, 정류장에 서 있으며, 인간이랑 함께 살고 있다. 휘트니스보다 무술을 더 사랑하는 나라가 세르비아다.세르비아는 여자들도 무술을 많이 하냐는 내 질문에, 왜 한국은 여자들이 무술을 하지 않냐고 되묻는 나라가 세르비아다.
한 친구의 여자 형제는 한국대사관에서 근무하고, 또 다른 친구의 여자 형제는 평양에서 일하고 있다며 남한과 북한의 언어가 같냐고 묻는 나라가 세르비아다. 빵, 초콜릿, 주스는 참 맛 없지만, 기가 막힌 맛의 쇠고기 1kg이 만 원도 안 되는데 공짜로 구워서까지 주는 나라가 세르비아다. 블록이 잘 조성 되어있어 공동주택(아파트)이 많지만, 또 한 구석엔 판자촌(집시촌)이 있는 나라가 세르비아다. 쇼핑센터에 가보면 아빠들이 아이들을 잘 데리고 다니는 곳. 아시아푸드라고 해서 쓰시나 타이푸드를 기대했겄만, 중국식 정크푸드를 팔고. 초등학생 쯤 되보이는데 연신 담배를 피워물고 있는 집시촌의 아이들. 길거리의 개를 위해 먹다 남은 음식을 눈밭에 놓기도 하고, 영하 20도에 밖에 서서 엄청 달고 두꺼운 팬케익을 먹는 사람들.
새로운 경험들은 참 많다. 뭐 아직 여정의 반도 끝나지 않았다. 그런데, 그렇게 GIC 파트 원의 11일 동안 내내... 아니 문득 문득 떠나지 않은 생각은 내가 대체 왜 여기에 있지... 물론 백 퍼센트, 이백 퍼센트 예상했지만. 여기 모인 16인은. 전직 군인, 보스니아 전쟁 참전 용사이자 현 스페셜 포스 슈팅 인스트럭터, 가라테 3단, 킥복싱, 영춘권, 주짓수 등등 무술 경력 기본 6년에서 25년까지. 크라브 마가는 기본 2년 이상. 그런데 나는... 평화로운 요가 선생이자, 조금 하드한 스타일의 케틀벨을 수련하고 있고. 예전에 아주 부드러운 택견을 했던 사람인데. 아... 이런.
당연히 제일 못 한다. 굳이 좀 나은 점을 찾자면, 무브먼트가 좋다는 것(일리야 선생님이 직접 말씀해주신 것)과 심폐가 지치진 않는다는 것(내 생각).
게다가 눈은 하우 종일 11일 내내 내렸고, 영하 15도 위로 기온이 올라가지 않는다. 제길. 운동은 지하 벙커에서 하고. 거의 한 달 내내 쉬지도 못 하고 매일 12시간씩 일하고, 14시간을 날아서 8시간 시차를 극복하며 하루도 안 쉬고 매일 여덟시간 11일 동안 난생 처음 배우는 것을 저런 사람들과 극한의 날씨에 해 한 줌 안들고 상쾌한 공기 한 자락 들어오지 않는 곳에서 완전히 낯선 다양한 유럽 국적의 영어 액센트를 들으며 버텼다고? 미쳤구나. 미쳤어. 게다가 마지막 날. 테스트 땐. 그런 사람들과 스파링까지. 난 제일 가볍고 작고 약하고 못 하는 아줌마라고.
하지만, 난 모든 것에서 살아남았다. 그렇다고 내 자신이 뭐 그리 대단하게 느껴지지는 않는다. 많은 것을 배웠고, 많은 것을 느꼈지만. 풀어내자니 어렵다. 가져간 노트는 벌써 자리가 부족할 정도로 채워졌고, 내가 느낀 겸손함과 목표와 방향 그리고 숙제는 3년치가 벌써 예약돼버렸다.
오늘은 쌀로 밥을 지었다. 김치랑 젓가락이 그립다. 손짓 발짓으로 눈치 코치로 쇠고기를 갈아달라고 해서 뭔지 도대체 알 수 없는 칼국수 생면같이 생긴 애랑, 감자랑 양파, 마늘, 고추 초절임을 넣고 칼국수를 끓였다. 맛있었다.
옆에선 건이 힘차게 두드리는 자판소리가 난다. 나는 지금 패드를 사용하고 있고, 기억이 사라지기 전에. 아니 귀찮아지기 전에 뭔가 하나는 써야겠고 해서. 독수리 타법으로 타라락락. 덕분에 일단 사진은 없다. 뭐 막 써서 오타도 많을 테지만. 일단.
첫댓글 우왕~ 어서 많은 사진들을 보고싶어요 ㅋㅋ
기대하고 기대하고 기대합니다. 몸 조심하시고 오실때 메로....
일종의 모험기 같습니다. 다큐로 만들면 재밌을 것 같아요. 요가인의 격투기 체험!
두분 다 무사히 깨우치고 돌아오시길!
무엇보다 몸 건강히 일정을 소화하고 계신것 같아 마음이 놓입니다. 남은 일정도 무사히 잘 마치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