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긴 손길을 더듬는다 / 허수경
나이 들어가면서 느끼는 게 많아졌다. 4계절을 포함해 세상만사 모두가 신기하고 신비스러움으로 가득, 가득함을 의식하게 된다. 해가 뜨면 해는 서쪽으로 진다. 내가 사는 Redondo Beach 주변 하늘은 황홀하도록 아름답다. 곱고 아름다운 노을 때문에 관광객들도 몰려올 정도다. 처다 보는 모든 사람들이 감탄하며 황홀경에 도취된다.
새해가 되었다. 어느덧 70 고개를 넘으니 어쩔 수 없이 변한 모습과 삶을 심각하게 다룰 때가 많아졌다. 어떤 때는 이유 없이 쓸쓸한 감정에 파묻힐 때가 있다. 원하지도 선택 할 수도 없었던 출생, 한 가정에 태어나 시간에 떠밀려 역사 속으로 스쳐간 수많은 삶들이 떠오른다. 문득 캄캄한 어둠에 깔려 의식만 있을 때 또 우리가 깊은 잠 속에 있을 때 어느 세계와 교통 하는지, 죽음 다음의 세계는 천국이라 하는데 남편 보필 잘한 그 선배언니는 과연 천국으로 갔을까 상념에 사로잡힌다. 오늘은 함께 운동하던 선배언니가 더욱 그립다.
태양은 솟고 또 솟고 있다. 잠에서 깨면 일어나 습관화 된 일상 준비에 바쁘다. 힘들어도 가야만 하는 장소, 어떤 때는 쉬고 싶을 때도 있다. 오늘도 등록한 gym 클라스에 출석하기위해 운전대를 잡는다. 5분이면 갈 수 있는 가까운 위치에 있는 너무 좋은 곳. 남의 눈을 의식 안 해도 되는 옷차림, 얼굴을 쓰담지도 않고 가도 괜찮은 곳, 모두가 건강을 위해 열심히 운동하는 컴뮤니티 시설이다. 전에는 1년에 1$만 내는 곳이었건만 지금은 약 백불 로 인상되었지만 그래도 저렴한 편이고 건강에 좋고 친구 사귀어서 좋다.
넓은 홀에는 각 인종 근 150여명 주로 동양인 남녀가 모여 "루시말광량이" 같은 예쁜 교사를 따라 웰빙 운동을 한다. 그 백인 교사 오른쪽 머리에는 항상 생화가 꽃장식 되어있다.
(학생들이 자기집 정원에서 가지고온다. 영혼에 단맛을 주는 선생님이기에..)
학생들을 웃기며 열심히 지도하는 그리고 행복하게 해 주는 에너지 교사이다. 호령에 맞추어 "스트렛치' 기본운동, 호흡운동, 근육 운동을 하는 곳. 벤드를 이리저리 돌리고 오늘 노래는 '고스트 주제곡" 아령을 갖고 운동을 하면 어느 듯 땀이 등을 적신다. 나도 모르게 아휴 힘 들어라 소리가 저절로 나올 때 기분이야 말로 말할 수 없이 행복하다. 아침 운동은 보약, 우선순위 1 위로 놓고 하루를 시작한다.
9시 전 까지는 걷는 시간이라 오늘도 신나게 얘기하며 홀을 걸을 때 문득 그 친구 분 생각이 나 아련히 허공을 처다 보았다. 나 말고 다른 많은 친구들도 같은 심정일까. 늘 친절했고 사랑이 넘쳐 모든 사람에게 사랑을 베풀던 그 선배언니. 무슨 일만 생기면 척척 너끈히 잘 해결하곤 하던 여걸이지만 섬세한 성품.....그리워하며 아쉬워하며 기댈 수 있는 그 포용력, 매력적인 마력 같은 힘, 어디에서 나왔을까? 상상해보며 그리움을 달랜다. 생각 한 토막은 일본말에 능통, 일본 동료들에게도 인기 있었고 76살 그때도 의욕적이어서 배우려는 학구열도 남달라 밤마다 일본 말로 좋은 글을 쓰는 습작시간에 잠을 빼앗겼다고 들었다.
어느 때인가 한번 보여준 노트북에 한문으로 기록된 "덕혜옹주" 의 일생을 쓴 것을 보고 감탄에 감탄을 했다. 어쩜....그것 뿐인가? 날마다 특이한 음식을 가져와 우리에게 먹여준 그 인정, 우린 신기하게 보고 느끼면서 배우며 그 분과의 사귐을 기뻐했다.
아! 아 이런 일도 있을까? “하나님도 무심 하셔라.” 그렇게 외치고 싶었다. 아프다며 운동하는 홀에서 보이지 않아 찾아 갔을 때 암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때마다 밝은 안색으로 열심히 치료하며 하나님께 맡기겠다며 도리어 우리를 위로 해 주었던 언니 벌 그분, 언니 빨이 일어 나세요, 간절히 기도 했건만.....얼마 후 사망소식을 전해 들었다. 가슴이 덜컹 내려앉았다. 아! 원통해라. 그렇게 마음이 아플 수가, 고만 주저앉고 말았다. 이럴 수가 있단 말인가? 그 침울함이 한참 계속되었다.
17년 동안 남편의 병수발을 해 온 터라 속이 많이 짓물러 터졌나보다 혼자 짐작했다.
한국남자의 권의주의- 부인은 자기를 위해 태여 난 것처럼 부려먹던 왠병할 영감태기-
스트레스로 인한 한 여성의 생이 그렇게 짓이겨져 저물어갔다. 분하고 안타까웠다. 얼마나 많이 주위 친구들 가슴에 천사 꽃을 주었기에... 여학교 동창들이 발 벗고 나서서 편안한 곳으로 가도록 애쓰고 힘쓰던 그 모든 장례광경......마음속으로 통곡하며 돌아올 땐 모두가 슬픔에 잠겨 침묵으로 일관했다.
그 후 한 달 만에 영감태기도 죽었다. 그 소식을 접했을 때 슬픔보다 이구동성으로 진작 죽었으면 부인이라도 덜 고생 하고 좀 노년을 즐겼을 터인데....여편네 잡아먹고 한 달 만 살 것이면 왜 그토록 부인에게 잔혹하게 굴었느냐고 모두 애석해서 한마디씩 해댔다. 무슨 악연이었기에.....
죽어서도 욕 안 먹는 삶을 살아야 하지 않을까? 생각을 안으로 품으며 자문자답 해 본 하루였다. 이런 날 차라리 리돈도 비치에 가서 아름다운 노을에게서 위로 받을까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