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무덤(言塚)
안동 선산을 관리하기 위해 지나가는 길목에는 '말무덤(言塚)'이 있다. 일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잠시 들러 그 의미를 되새겨 보았다.
400~500년 전, 예천군 대죽리에는 김녕김씨, 밀양박씨, 경주최씨, 진주류씨, 인천채씨 등 여러 성씨가 함께 살아가는 이른바 '각성바지' 마을이 형성되어 있었다.
농촌 마을은 오늘날의 도시처럼 바쁜 일상이 있는 곳이 아니었다. 여유로운 시간 속에서 남의 이야기를 하거나 험담을 나누는 일이 일상이 되었고, 사소한 말 한마디가 큰 다툼으로 번져 마을에는 갈등이 끊이지 않았다고 한다.
'입은 재앙을 불러들이는 문이다(口禍之門).'
옛사람들은 말의 무서움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마침내 마을 어른들은 지혜를 모았다. 서로를 향한 원망과 욕설, 비방과 험담을 모두 큰 사발에 담는다는 상징적인 의식을 치른 뒤, 그것을 깊은 구덩이에 묻고 봉분을 만들어 '말무덤(言塚)'이라 이름 붙였다.
신기하게도 그 이후 마을의 다툼은 눈에 띄게 줄어들었고, 공동체에는 다시 평화가 찾아왔다고 전해진다. 물론 실제로 말을 묻을 수는 없었지만, 서로 험한 말을 버리겠다는 공동의 다짐이 마을을 바꾸어 놓은 것이다.
오늘날 우리 사회를 돌아보면, 특히 정치권에서는 상대를 향한 비난과 막말, 정쟁이 끊이지 않는다. 서로를 설득하기보다 공격하는 말이 앞서면서 국민들의 피로감도 커지고 있다.
예천의 작은 마을에 세워진 '말무덤'은 단순한 민속 유적이 아니라, 말의 책임과 공동체의 화합을 일깨워 주는 소중한 교훈이다.
국회의사당 앞에도 상징적인 '말무덤' 하나를 만들어, 국민을 위한 정책보다 정쟁과 막말을 먼저 묻어두자는 다짐을 새긴다면 어떨까. 그것은 정치인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도 말의 무게와 품격을 되새기게 하는 의미 있는 상징이 될 것이다.
2026년 7월 17일 제헌절
풍산홍씨정익공파종회장 홍만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