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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부] 영과 혼과 몸에 관한 총론
1장 영과 혼과 몸
일반적인 학설에 의하면, 사람은 ‘영혼’과 ‘몸’ 두 부분으로 나뉜다. 영혼은 사람 속에 보이지 않는 정신적인 부분이고 몸은 사람 밖에 보이는 신체이다. 이것은 타락한 인류의 사상이다. 비록 이것이 약간의 일리는 있지만 정확하다고 할 수 없다. 하나님의 계시 외에 이 세상에는 믿을 만한 사상이 없다. 몸을 밖의 신체하고 말하는 것은 물론 틀리지 않는다. 그러나 성경은 영과 혼을 동일한 것으로 여기거나 서로 섞어 놓치 않았다. 영과 혼은 단어가 다를 뿐 아니라 실질에 있어서도 같지 않다. 하나님의 말씀은 사람을 ‘영혼’ 과 ‘몸’ 두 부분으로 구분하지 않고 영과 혼과 몸의 세 부분으로 구분한다. 데살로니가전서 5장 23절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친히 너희로 온전히 거룩하게 하시고 또 너희 온 영과 혼과 몸이 … 보전되기를 원하노라"(살전 5:23). 이 구절은 분명히 사람 전체를 ‘영과 혼과 몸’의 세부분으로 구분하였다. 사도는 여기에서 믿는 이가 ‘온전히 거룩하게 되는 것’, 즉 믿는 이의 온 존재가 전체적으로 거룩하게 되는 것을 말한다. 그는 사람이 거룩하게 되는 것을 무엇이라고 말했는가? 곧 그의 영과 혼과 몸이 보전되는 것이라고 했다. 이것은 매우 분명하다. 이 온전한 사람은 영과 혼과 몸의 세 부분을 포함한다. 그리고 이 구절은 영과 혼을 분명히 구분하였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의 영과 혼‘이라고 말하지 않고 너희의 ’영혼‘이라고 말했을 것이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으므로 사람의 영과 혼은 확실히 구분된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의 영과 혼과 몸의 세 부분으로 나뉘어 있다.
영과 혼을 구분하는 것이 그렇게 중요한가? 그렇다. 매우 중요하다. 이것은 믿는 이들의 영적 생명과 매우 많은 관계를 갖고 있다. 만일 믿는 이들의 영의 경계(境界)가 어디까지인지를 모른다면 어떻게 영에 속한 생활을이해할 수 있겠는가? 이것을 깨닫지 못하고서 어떻게 영적인 생활 가운데 자랄 수 있단 말인가? 믿는 이들의 영과 혼을 구뷴하지 않고 또 어떻게 구분할 줄 모르기 때문에 그들의 영적 생명은 장성한 사람으로 자라지 못한다. 그리고 많은 때 혼에 속한 것을 영에 속한 것으로 여기기 때문에 오랫동안 혼에 속한 생활에 거하고 영에 속한 것을 더 추구하려고 하지 않는다. 하나님께서 분리시켜 놓은 것을 우리가 섞어 버린다면 손실을 면할 수 없다.
영적인 지식은 생명과 많은 관계를 갖고 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믿는 이가 기꺼이 겸손하여 성령의 가르침을 받기 원하는가이다. 만일 원함이 있다면 성령은 믿는 이가 심지어 이 진리에 대한 지식을 갖고 있지 않다 하더라도 체험에서 그가 영과 혼의 구분을 갖게 할 것이다. 혼과 영의 구분에 대해 거의 알지 못하는 믿는 이라 할지라도 이 두 가지가 분리되었다는 것을 체험할 수 있다. 반면에 혼과 영이 다르다는 진리를 온전히 아는 믿는 이라 할지라도, 이에 대한 체험을 조금도 갖지 못할 수 있다. 그러므로 가장 좋은 것은 지식과 체험 둘 다 갖는 것이다. 믿는 이들 중 대다수가 이러한 체험을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에 먼저 그들로 영과 혼이 다르다는 것을 알게 한 다음 영에 속한 것을 추구하게 해야 한다.
유독 데살로니가전서만 사람을 세 부분으로 구분하는 것이 아니라 성경의 다른 곳에서도 이러한 구분을 찾아볼 수 있다. 히브리서 4장 12절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하나니“(히4:12). 여기서 사도는 사람의 물질적이지 않은 요소들을 두 부분 곧 ‘혼과 영’으로 나누었다. 또한 물질적인 부분에는 생각과 의지에 해당하는 관절과 골수를 포함시켰다. 제사장이 희생물 전체를 칼로 완전히 해부하고 분리시켜 그 속에 어떤 것도 숨겨진 것이 없게 했듯이 주 예수님은 주 하나님의 말씀으로 그 분께 돌아온 사람을 완전히 분리하여 영에 속한 것과 혼에 속한 것과 몸에 속한 것을 모두 일일이 찔러 쪼개기까지 하신다. 혼과 영이 쪼개어질 수 있다면 혼과 영이 다르다는 것은 분명하다. 그러므로 여기서도 사람을 영과 혼과 몸의 세 요소로 이루어진 존재로 여겼다.
일반적으로 우리가 사용하는 성경은 영과 혼을 엄밀히 문자적으로 번역해 놓지 않았기 때문에(많은 경우 원어의 ‘영’이 ‘영혼’으로 번역되고 원어의 ‘혼’도 ‘영혼’으로 번역되었다), 독자들이 문자적으로 영과 혼을 분리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중국어에서 ‘영’을 따로 말하는 것은 괜찮으나 ‘혼’을 따라 말하면 어색해 보인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 말의 이러한 약점을 허락하지 말아야 한다. 성경을 번역할 때 우리는 후세에 통용되도록 이 단어를 직역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사람들이 세상적인 책을 번역하도록 많은 용어를 새로 창조해 내는데 가장 널리 보급되는 성경을 어찌 이렇게 할 수 없겠는가? 하나님께서 성경을 계시해 주실 때 영과 혼이라는 두 단어를 사용하셨기 때문에 우리는 결코 이 둘을 혼용하지 말아야 한다. 또한 우리는 영이라는 단어가 상태를 가리킬 때 성경에서 ‘신령한’(고전 2:15, 3:1, 갈 6:1)으로 번역된 것을 볼 수 있다. 그러나 혼의 상태를 말할 때는 ‘혼적인’이라고 번역하지 않았다. 고린도전서 2장 14절의 원문은 ‘혼적인’인데, ‘육에 속한’으로 번역되었다. 야고보서 3장 15절의 ‘정욕적인’은 원문에서 ‘혼적인’으로 번역되었다. ‘혼에 속한’이라는 단어를 유다서 19절은 ‘육에 속한’으로 번역했다. 그 이유는 성경 번역자가 담대히 ‘혼에 속한’으로 직역하지 않고 혼의 상태를 말하는 동일한 단어를 여러 가지로 번역했기 때문이다. 이것은 믿는 이들이 성경을 읽을 때 더욱 영과 혼의 분리를 이해하기 어렵게 만들었다.
사람의 창조
창세기 2장 7절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산 혼이 된지라"(원문 참조). 최초에 하나님은 흙으로 사람의 모양을 만드시고 그런 다음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셨다. 이 생기가 사람의 몸과 접촉할 때 혼이 산출되었다. 이 혼은 사람의 몸과 영이 만나 최종 완성된 것이기 때문에 성경은 사람을 ‘산 혼’이라 불렀다. 이 ‘생기’는 바로 사람의 영이자 생명의 원천이다. 왜냐하면 주 예수님은 우리에게 “살리는 것은 영이니”(요 6:63)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이 생기는 창조주로부터 온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결코 이 ‘생기’의 영을 하나님의 성령과 혼돈하지 말아야 한다. 성령과 우리 사람의 영은 다르다. 로마서 8장 16절은 사람의 영이 성령과 다르고 같지 않다는 것을 말해 준다. 성령이 친히 우리 영으로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거하시나니(롬 8:16). ‘생기’라는 말에서 ‘생명’이라는 단어는 원문에서 ‘chay’로써 복수로 되어 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생기를 불어넣어주심으로 두 가지 곧 영에 속한 생명과 혼에 속한 생명이 산출되었다는 것을 우리에게 말해 준다. 이는 하나님께서 불어넣으신 생명이 산출되었다는 것을 우리에게 말해준다. 이는 하나님께서 불어넣으신 생기가 사람의 몸 속에 들어가 영이 되었고 동시에 이 영은 몸과 접촉하여 혼을 낳았다는 뜻이다. 이것이 우리 안에 있는 두 생명 곧 영에 속한 생명과 혼에 속한 생명의 유래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 영이 하나님 자신이 생명이 아님을 알아야 한다. "사람 속에 들어온 전능자의 기운이 내게 생명을 주시느니라"(욥 33;4, 원문 참조). 여기서 생명은 사람 속에 들어온 창조되지 않은 하나님의 생명이 아니다. 여기서 우리가 받은 사람의 영은 거듭날 때 우리가 얻은 하나님의 생명이 아니다. 거듭날 때 우리가 얻은 생명은 생명나무로 대표된 하나님의 생명이다. 사람의 영이 영원히 존재하는 것은 사실이나 그 안에는 ‘영원한 생명’이 없다.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이것은 사람의 몸을 말한다.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는 사람의 영이 하나님으로부터 왔다는 것을 말한다. 이로써 그 사람은 ‘산 혼’이 되었는데, 이것이 바로 사람의 혼이다. 영이 사람의 몸을 살렸기 때문에 사람은 산 혼이 되었고 살아 있으며 자각(自覺)이 있는 사람이 되었다. 온전한 사람은 ‘영과 혼과 몸’ 셋이 하나로 화합된 존재이다. 이 성경 구절로 볼 때 사람은 영과 몸의 두 가지 독립된 성질로 창조된 것이다. 영이 흙으로 만든 몸 안에 들어감으로 혼이 산출되었다. 본래 몸은 죽은 것인데 생명의 영이 몸과 만남으로써 제3의 것인 혼이 나왔다. 영이 없으면 몸은 죽은 것이고, 영이 있을 때 사람은 살아나게 된다. 몸 안에 영이 있을 때 유기적인 것이 되는 데, 이러한 종류의 유기적인 것을 가리켜 혼이라고 한다.
여기서 그가 ‘산 혼‘이 되었다고 말한 것은 영과 몸의 연합에 의해 혼이 생겨났다는 것을 말할 뿐 아니라 더욱 영과 몸이 연합되어 혼이 생겨난 후에 영과 몸이 다 혼으로 합병되었다는 것을 말해준다. 다른 말로 하면, 혼과 몸이 온전히 영과 결합되었고 영과 몸이 혼으로 합병되었다는 것이다. 아담이 타락하기 전의 그 당시에는 현재 우리의 영과 육체처럼 매일 교전(交戰)하지 않았다. 그의 온 존재의 세 요소는 서로 완전한 조화를 이루었다. 서로 연합된 이 세가지 중 중간에 연결하는 고리 역할을 하는 인격체로서 혼은 사람을 독립적으로 존재할 수 있게 한다. 혼은 영과 몸의 결합체요 사람의 요소들의 최종 완성이다. 그러므로 영과 몸이 완전히 연합한 후 사람은 산 혼이 되었다. 이 혼은 다름이 아닌 두 요소가 상합한 총체요 사람의 인격이다. 이에 대해 완전하지는 않으나 한 가지 비유를 들겠다. 즉 한 잔의 물에 먹을 넣으면 ‘먹’과 ‘물’이 된다. 이것을 ‘먹’이라고 하면, 그 안에 ‘먹’이 있기 때문에 ‘먹’이라고 할 수 있고, 물이라고 하면, 그 안에 여전히 물이 들어 있기 때문에 물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먹과 물은 이미 융화되어 제 3읠 물질인 먹물이 되었다(그러나 영과 몸이 연합함으로 생겨난 혼은 영과 몸과 같이 분해되지 않는 독립된 요소가 되었다). 이와 마찬가지로 영과 몸은 본래 독립된 두 요소였지만, 이 둘이 합해질 때 산 혼이 되었다.
하나님은 혼을 사람의 온 존재의 특징으로 삼으셨다. 천사의 특징이 그의 영에 있는 것처럼, 그분의 창조에서 사람의 특징은 그의 혼에 있다. 사람은 생기가 있는 몸일 뿐 아니라 더욱 산 혼이 되었다. 그러므로 이후로 성경에서 하나님께서 사람을 수차 ‘혼’이라고 부르신 것을 볼 수 있다. 사람이라고 부르지 않고 ‘혼’이라고 부른 이유는 사람의 어떠함을 보기 위해서는 그의 혼을 보아야 하기 때문이다. 혼은 사람의 대표로서 인격의 특징을 나타낸다. 혼은 사람이 자유의지를 갖는 기관이고 이 안에 영과 몸이 합병되었다. 혼에는 자유의지가 있기 때문에, 하나님께 순종할 때 하나님의 안배하심을 따르고 모든 것에서 영을 주로 삼게 된다. 그 반면에 혼은 영에 억압을 가하고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주(主)로 삼을 권한도 갖고 있다. 영, 혼, 몸, 이 세 가지는 마치 빛을 내는 전구와도 같다. 전구에는 전기와 필라멘트와 빛이 있다. 사람의 몸은 필라멘트와 같고 영은 전기와 같으며 혼은 빛과 같다. 전기는 빛의 원인이고 빛은 전기의 결과이다. 필라멘트는 전기를 저장하고 빛을 내는 물질적인 몸이다. 영과 몸이 연합하여 혼을 낳았고 또한 혼에는 영과 몸의 특징이 결합되어 있다. 그러므로 혼은 이 두 가지의 결합체이다. 전기가 빛의 근원이고 필라멘트는 빛의 매개체인 것처럼 영은 혼의 활동의 근원이고 몸은 혼의 표현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생에서는 혼이 사람의 총결이 되고 내세에 부활의 때에는 영이 사람의 총결이 될 것임을 기억해야 한다. 그러므로 성경은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육의 몸으로 심고 신령한 몸으로 다시 사나니(고전 15:44). 그러나 이제 우리가 부활한 주님과 연합하였기 때문에 우리는 능히 주님을 의지하고 영으로 우리 온 존재를 다스리게 할 수 있다. 우리는 “산 혼이 된 첫 사람 아담‘과 연합한 것이 아니라 ”생명 주는 영이 되신 마지막 아담“과 연합했다. 그러므로 능히 그렇게 할 수 있는 것이다.
영과 혼과 몸의 기능
몸은 '세상을 감지하는' 매개체이고, 혼은 '자신을 감지하는' 매개체이며, 영은 '하나님을 감지하는' 매개체이다. 몸에는 다섯가지 지각을 갖게 하는 오관(五官)이 있다. 물질적인 몸을 통해서 우리는 물질적인 세계와 왕래할 수 있기 때문에 이것을 ‘세상에 대한 지각’이라고 한다. 혼은 바로 사람이 존재하도록 도움을 주는 지력(智力)의 부분과 다른 사람이나 사물에 대한 애정을 유발하는 사랑의 부분과 지각에서 산출된 자극의 부분으로 되어 있다. 이것들은 사람 자체와 그 인격에 속한 것이므로 ‘자아에 대한 지각’이라고 한다. 영은 사람이 하나님과 왕래하는 부분이다. 이 부분에서 사람은 어떻게 하나님을 경배하고 섬길 것인가를 알고 그와 하나님과의 관계를 알게 되기 때문에 ‘하나님에 대한 지각’이라고 한다. 하나님은 영 안에 거하시고 자아는 혼 안에 거하며 지각은 몸 안에 거한다.
혼은 집결하는 곳으로서 영과 몸이 여기에서 연합된다. 사람은 영으로서 영적인 세계와 왕래하고 또한 영적 세계를 표현하는 능력과 생명을 받아들인다. 사람은 몸을 통해서 밖의 지각의 세계와 접촉하고 서로 반향할 수 있다. 혼은 이 두 세계 사이에 거하고 이 두 세계에 속한다. 그러므로 한 면으로 몸을 통해 물질 세계와 영적인 세계에 속한 것들과 교통하고 또 한 면으로 몸을 통해 물질 세계와 상통한다. 혼은 환경 가운데서 자신과 관련된 사물에 대해 자의로 선택할 자주적 권한을 갖고 있다. 영이 몸을 직접 다스리는 것은 불가능하다. 반드시 어떤 매개체를 통해야 가능한데, 그 매개체는 바로 영과 몸의 접촉으로 산출된 사람의 혼이다. 이 혼은 영과 몸 사이에서 영과 몸을 속박한다. 사람의 영은 몸이 하나님의 능력에 굴복하도록 혼에 의해 몸을 다스릴 수 있는가 하면 그 반면에 또한 몸은 혼을 통해 영을 끌어들여 세상을 사랑하게 할 수도 있다.
이 세 가지 요소 중에서 가장 높은 것은 영과 하나님과의 연합이다. 몸이 물질과 연합하는 이것은 가장 천한 것이다. 이 두 가지 사이에 있는 것은 혼이다. 이 혼은 영과 몸의 두 성질을 자기의 성질로 삼아 이 양자를 연결하는 존재이다. 혼은 이 둘로 혼을 통해 서로 교제하고 일하게 한다. 혼의 임무는 영과 몸을 각자 마땅히 서 있어야 할 위치에서 보존되게 하고 그들 서로의 정상적인 관계를 잃지 않게 하는 데 있다. 곧 가장 비천한 몸으로 영에 굴복되게 하고 가장 고상한 영으로 혼을 통해 몸을 다스리게 하는 것이다. 혼은 실로 사람의 가장 중요한 주축이 되는 요소이다. 혼은 영이 그에게 준 것과 영을 통해 성령으로부터 얻을 것을 앙망하는데, 이것은 혼의 온전케 됨을 위한 것이고 또한 혼이 얻은 것을 몸에게 전달하기 위한 것이다. 이로써 몸은 성경의 온전함에 참여하여 영에 속한 몸이 된다.
사람의 영은 가장 존귀한 것으로서 사람의 가장 깊은 곳에 자리를 잡고 있다. 몸은 가장 비천한 것으로써 가장 밖에 자리잡고 있다. 혼은 영과 몸 사이에 거하면서 이 둘의 매개체 역할을 한다. 몸은 혼의 외적 물체이고 혼은 영의 외적 물체이다. 영이 몸을 지배하기 위해서는 중간에 있는 혼을 힘입어야 한다. 타락하기 전에 사람의 온 존재를 - 혼을 통해- 다스렸던 것은 영이었다. 영의 어떤 움직임이 있을 때, 영은 그것을 혼에 전달하고 혼은 몸으로 영의 명령에 복종하도록 몸을 다스린다. 이것이 바로 혼을 매개체로 삼는다는 뜻이다.
혼 안에 영과 몸이 합병되어 있고 또 이 두 가지가 다 혼을 인격으로 삼아 그것의 영향을 받기 때문에 혼은 가장 실지적인 힘을 가지고 있다. 이때에는 인간이 범죄하기 전으로써 혼의 실지적인 힘은 온전히 영의 지배를 받고 있었다. 그러므로 이때 혼의 실지적인 힘은 영의 실지적인 힘이었다. 영 자체로는 몸을 움직일 수 없고 오직 혼을 통해서만이 이것이 가능하다. 우리는 이것을 누가복음 1장 46~47절에서 볼 수 있다. "내 혼이 주를 찬양하며(현재 시제) 내 영이 하나님 내 구주를 기뻐하였음은"(과거 시제)(눅1:46-47). 여기에서 시제가 바뀐 것은 영의 기쁨이 먼저이고 혼이 주를 찬양하는 것은 나중 임을 보여준다. 먼저는 영이 기쁨을 혼에 전달하는데, 이때 혼은 몸의 감각기관으로 이 기쁨을 나타낸다.
총괄적으로 말해서 혼은 인격이 있는 곳이다. 사람의 의지와 지혜와 감정은 모두 혼 안에 있다. 영은 영적 세계와 왕래하는 부분이다. 몸은 자연계와 왕래하는 부분이다. 혼은 이 양자 중간에 서서 영적인 세계로 다스리게 할 것인가 아니면 물질적인 세계로 다스리게 할 것인가를 판단력을 사용하여 결정한다. 때로 혼은 자신의 지혜와 자극으로 사람의 온 존재를 다스리는데 이것은 이상(理想)적인 세계 안에서의 다스림이다. 혼이 영에게 다스리는 지위를 양보해 주지 않을 때에 영은 아무것도 할 수 없다. 혼이 영으로 하여금 다스리도록 결정할 때 비로소 영은 혼과 몸을 다스릴 수 있게 된다. 이것은 혼이 인격이기 때문이다.
혼은 한 사람의 주인인데 이는 사람의 의지가 혼의 부분이기 때문이다. 영이 사람의 온 존재를 다스릴 때는 혼이 스스로 낮은 데 처하기 원할 때이다. 혼이 거스를 때 영은 다스릴 능력이 없게 된다. 이것이 바로 “사람의 자유의지”의 뜻이다. 사람은 하나님의 뜻대로 움직이는 기계가 아니라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절대적인 권리가 있다. 그는 하나님의 뜻을 좇아 행할 원함을 가질 수 있고 하나님의 뜻을 반대하여 마귀의 뜻을 좇아 행할 원함도 가질 수 있다. 하나님의 안배에 의하면 가장 높은 부분이 영이므로 이 부분이 응당 사람의 온 존재를 다스려야 한다. 그러나 인격의 가장 주요한 부분인 사람의 의지는 혼에 속한다. 사람의 의지(혼)는 영으로 다스리게 할 것인가, 아니면 몸 혹은 자아로 다스리게 할 것인가를 선택할 힘을 가지고 있다. 혼이 이 같은 권력을 가지고 있는 인격의 기관이기 때문에 성경을 사람을 ‘산 혼’이라고 칭했다.
성전과 사람
고린도전서 3장 16절에서 사도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뇨"(고전 3:16). 이 성경 구절에서 우리는 사도가 계시를 받아 사람을 성전에 비유한 것을 알 수 있다. 과거에 하나님께서 성전에 거하신 것같이 지금 성령은 사람(믿는 이들) 안에 거하신다. 성경은 여기에서 사람을 성전으로 비유하였다. 그러므로 우리는 사람의 세 부분의 요소가 어떻게 분명히 나타났는가를 볼 수 있다.
우리는 성전이 세 부분으로 된 것을 안다. 첫째 부분은 바깥 뜰로써 모든 사람이 볼 수 있고 모든 사람이 들어갈 수 있으며 모든 외적인 예배가 이곳에서 하나님께 드려진다. 더 들어가면 성소가 있다. 이 안에는 오직 제사장만이 들어갈 수 있고, 피와 기름과 향과 떡을 하나님께 드리게 된다. 비록 이들이 깊이 들어 갔지만 아직 휘장 밖에 있고 하나님 앞으로 들어갈 수 없기 때문에 여전히 가장 깊은 데 있는 자들은 아니다. 하나님은 지성소 안에 거하시면서 무한한 그분의 광채(본래 지성소 안은 어두움)를 발하신다. 어느 누구도 그분 앞에 나올 수 없다. 비록 대제사장이 일 년에 한 차례씩 지성소에 들어갔지만, 이러한 행동은 휘장이 열리기 전에는 어느 누구도 지성소 안에 있지 않았다는 것을 나타낼 뿐이다.
사람은 하나님의 전(殿)이다. 사람 속에도 이 세 부분이 있다. 몸은 마치 바깥 뜰과 같고 밖의 것으로써 모든 사람이 볼 수 있는 생명이다. 바로 여기에서 사람은 응당 하나님의 모든 명령을 준행해야 한다. 바로 이를 위해 하나님의 아들은 사람을 위해 죽으셨다. 더 들어가서 사람에게는 혼이 있는데, 이것은 사람의 내적인 생명으로서 사람의 감정과 의지와 생각 등을 포함한다. 이 부분은 바로 거듭난 사람의 지성소인 것이다. 그의 감정과 사상과 갈망이 모두 여기에 있기 때문에 제사장이 하나님과 왕래하고 하나님을 섬기는 것과 같이 그에게는 빛이 충만하고 깨달음이 있다. 더 나아가면 휘장 뒤에 지성소가 있는데, 이 부분은 사람의 빛이 비칠 수 없는 곳이고 사람의 눈으로 볼 수 없는 장소이다. “지존자의 은밀한 곳”(시 91:1)은 바로 하나님께서 휘장을 열어주지 않는 한, 사람이 이르지 못하는 지성소이다. 이것이 사람의 영이다. 사람에게는 몸과 혼이 있을 뿐 아니라 또한 영이 있다. 이 영은 사람의 지각보다 더 깊은 곳에 있다. 이곳은 사람이 감지하지 못하는 곳이다. 영은 하나님과 연합하고 교통하는 기관이다.
지성소는 하나님의 거처이기 때문에 그 안에는 빛이 없다. 성소 안에 빛이 있다면 그것은 일곱 등이 있기 때문이다. 바깥뜰은 해의 비춤 아래 있다. 이것은 거듭난 사람의 그림이다. 그의 영은 지성소와 같고 하나님께서 거하기 위한 곳이다. 이곳은 믿음으로 들어가며, 완전히 어두운 곳이다. 이곳이 믿는 이들이 볼 수 없고, 느낄 수 없고, 이해할 수 없는 곳이다. 혼은 마치 성소와 같이 그 안에는 이상(理想)적인 세상과 물질적인 세상에 속한 것들을 이해하는 능력과 사상과 지식과 원칙들이 있다. 이것은 등대의 비춤과 유사하다. 몸은 바깥뜰과 같이 모든 사람이 볼 수 있다. 무릇 몸의 모든 생활과 행동은 모든 사람이 볼 수 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순서는 틀림이 없다. "너희의 영과 혼과 몸"(살전 5:23) “혼과 영과 몸”이 아니며 “몸과 혼과 영”도 아니라 “영과 혼과 몸”이다. 영은 가장 고귀한 존재이기 때문에 먼저 말하고 가장 비천한 존재인 몸을 맨 나중에 말하고, 혼은 중간에 있기 때문에 영과 몸을 말하는 사이에서 언급되었다. 하나님의 순서를 분명히 볼 때에 우리는 성경이 사람을 성전으로 비유한 지혜를 볼 수 있다. 우리는 지성소와 성소와 바깥뜰이 영과 혼과 몸의 순서와 중요도에 일치된 것을 볼 수 있다.
성전의 일은 지성소의 계시에 따라 바뀐다. 성소와 바깥뜰의 모든 행위는 지성소에 있는 하나님이 임재에 의해 결정한다. 성전의 가장 깨끗한 곳이요, 다른 장소가 굴복하고 의뢰하는 곳은 바로 지성소이다. 지성소 안에는 아무런 활동도 없고 어둡게 보인다. 모든 활동이 다 성소 안에 있고 바깥뜰의 움직임은 또한 성소 안의 제사장의 지배를 받는다. 그러나 바로 이 고요하고 아무 움직임이 없는 가운데 성소 안의 모든 활동은 지성소의 계시의 영향을 받는다.
이 영적인 이해는 깨닫기 어렵지 않다. 혼은 우리의 인격의 기관으로써 생각과 의지와 감정 등을 포함한다. 우리 전 존재의 모든 일은 혼이 주인이 되고 몸은 혼의 보내심을 받는 것 같다. 그러나 인간이 타락하기 전에 사람의 혼에 많은 활동과 일이 있었겠지만 이것들은 영의 지배를 받았다. 하나님의 순서에서 첫째는 영이고, 둘째는 혼이고, 셋째는 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