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연평도, 고난의 섬
소연평도에서 대연평도까지의 거리는 불과 1.8km밖에 되지 않았다. 이장님이 끄는 어선을 빌려 얼굴바위를 거쳐 대연평도에 도착하니 20여분 밖에 걸리지 않았다.
대연평도는 물이 한창 빠지고 있어 조그만 섬으로 가는 길에는 뭍이 드러나 섬에 온 관광객이 바위에 붙은 파래와 돌김을 뜯고 있었다. 일행도 잠시 대열에 합류하여 여유로운 시간을 즐긴다. 같이 파래와 돌김을 뜯어 먹어보니 비로소 먼 섬에 왔다는 생각이 든다.
대청면장은 매우 젊어보인다. 이곳 토박이라는데 작은 체구에도 카리스마가 느껴지고 매우 성실한 인상이 느껴진다. 그는 직접 우리의 안내자로 나서준다.
대연평도의 크기는 7.28㎢로 932가구 1,700여 명이 살아가고 있는데 해병대 1개 연대 800여 명이 주둔하고 있어 주민수는 영종도와 백령도, 대청도, 덕적도에 비해 많은 편이 아닌 것이다.
▲ 가래칠기해변
▲ 고깔바위. 6.25전쟁시에는 피난민이 이곳에서 생활하기도 하였다.
연평도는 옛부터 조기잡이로 이름난 어장이었으나 이제는 40여년 전의 일이고 지금은 꽃게잡이로 명성을 변경하고 있는 중이다. 꽃게 때문에 중국 어선들도 6년 전부터 군침을 흘리고 모여들었는데 서해교전과 연평해전이 벌어지고 나서 뜸했다가 얼마 전 북한의 김정일이 중국의 후진따오를 만나고 오면서부터 다시 내려오기 시작했다고 한다.
밤이 되면 북한에 속해 있는 석도 인근에 200여 대가 불을 밝혀놓고 일렬로 서 있는 모습이 장관이라고 하였다. 그들은 어둠이 짙어지면 NLL선을 침범하여 우리 어로수역까지 밀고 들어와 저인망어선에 타이어를 달아 쌍끌이로 바다 밑을 온통 휘젓고 다니면서 치어까지 몽땅 잡아간다고 한다. 한 어민은 이른 아침에 해변에 해산물을 채취하러 나갔는데 중국 어선이 해변 가까이 와 있는 걸 목격했다는 증언도 해준다. 일몰이 되면 우리 어선들과 심지어 해변에 나가있는 관광객들까지 모두 철수해야 한다. 북한과 바로 인접하여 NLL선은 바로 코앞이다. 밤이 되면 중국 어선이 우리 어장을 싹쓸이하는 것을 바로 눈 앞에서 바라보고 있어도 속수무책이다. 그들은 배를 바싹 붙여서 함께 몰려 다녀서 우리 경비정이 다가가 정선을 명령하면 낫과 도끼를 들고 벌떼같이 사생결단으로 달려든다. 이러다 보니 우리 수역을 넘어왔어도 경고방송만 내보내지 쉽게 다가서지 않는다고 한다.
▲ 용치를 설치해 놓은 시멘트가 오랜 세월 부식되어 떨어져 나간 부분이
40년 동안 그대로 방치되어 있다
▲ 새마을리에 설치되어 있는 용치.
북한의 잠수정과 상륙정을 막기 위해 설치한 쇠말뚝이다.
문제는 또 있었다. 중국 배가 쌍끌이를 하는 기간에는 바다 밑바닥까지 파헤쳐져 부옇게 일어난 흑탕물이 해변으로 밀려와 해산물을 모두 망쳐놓아 생산되지 않는다고 하였다. 중국 배는 아침이 되면 산동으로 돌아가지 않고 바다 위에 정박해놓고 그때서야 잠을 잔다고 한다. 섬의 동쪽 끝에 있는 망향전망대에서 망원경으로 직접 바라보니 빨간 오성홍기가 바람에 선명하게 휘날리고 있었다. 모여 있을 때는 따로따로 떨어져 있지 않고6대, 10대씩 무리를 지어 바싹 함께 붙어 있었다. 망원경으로 바라보지 않았으면 대형 큰 배가 몇 대 떠있는 것처럼 보였을 것이다. 몇 대인지 배를 세어 보았다. 근100여 척에 이르는 큰 선단이었다.
낮에는 교묘하게NLL선을 침범하지 않고 석도 인근에서 쉬고 있다가 밤만 되면 경계의 느슨한 틈을 노려 침범해 오는 그들을 바라보는 군과 경찰도 답답하기는 마찬가지일 것이다. 기십 년간 북한과 우리가 그어놓은 비무장지대에 각종 야생 동식물들이 뛰어 노는 천국이 되어있는 것처럼 바다의 선도 어느 누구의 간섭이 없어 황금어장이 되어있었던 것이다. 그것을 중국의 어선은 이데올로기의 틈바구니를 뚫고 쥐새끼처럼 드나들고 있는 것이고 그것을 우리는 닭 쫓던 개처럼 먼산 바라보듯 벙어리 냉가슴하고 있는 것이다.
▲ 새마을리에 조성되어 있는 유채밭
▲ 전망대에서 바라 본 긴작시해변
대연평도는 요즘 구리동 해변 주변에 수백 쌍의 백로가 서식하고 있다. 면에서는 면정현황에 백로를 표지사진으로 장식할 정도로 애정을 가지고 지켜보고 있는 중이다. 조기역사관에서 바라보는 가래칠해변이나 구리동해수욕장은 공기가 좋고 경관이 뛰어나 많이 알려져 있다. 조기와 꽃게 그리고 연평해전으로 국민들에게 많이 알려진 섬임에도 불구하고 관광객은 년간4천명 정도의 미미한 수준이다. 10여 년 전에는 연안부두에서4시간 걸려 왔으나 지금은2시간 정도로 빨라졌는데도 늘지 않는 것은 안보상의 특이한 상황 때문일 것이다. 1개 연대가 섬에 주둔하고 있는 관계로 섬의 전체는 요새화되어 있다. 토치카는 곳곳에 세워져 있고 나바론의 요새처럼 절벽 바로 밑에 굴을 뚫어 대포를 설치해 놓은 곳도 있다. 산 위로 지나다니는 도로 옆에는 사격장이 바로 옆이고 접근금지 표식은 보이지 않는다. 해변마다 북한의 군함과 간첩선들이 상륙하지 못하도록 쇠말뚝을 시멘트에 박아 해안에 설치해 놓았는데 주민들은 이것을 ‘용치’라고 불렀다.
용치를 설치해 놓은 지는 안보의식이 투철한 박정희대통령5공 시절이었는데40년이 넘은 지금은 쇠말뚝이 뽑혀져 나간 것도 많고 부식되어 시뻘건 녹물이 흘러 해안을 오염시키고 있었다. 쾌속선이 서는 안목선착장 인근 해안에는 용치 때문에 해산물 채취가 거의 불가능하여 반대편 해변으로 가기도 하는데 거의 포기상태라고 말한다.
선착장 인근의 새마을리 이장은 마을 바로 앞 해변에 용치가 설치되어 있어 지금은 컴퓨터로 전쟁을 하는 시대인데 아직까지 용치가 있다는 것은 시대착오라며 한숨을 내쉰다. 한나라당의 이재오 국가권익위원장이 연평해전 후 방문했을 때 건의를 했는데도 해결해주지 못한다고 아쉬움 섞인 눈망울을 짓는다.
서해5도에 속해 있는 대연평도는 안보 특성상 군부대가 주둔해 있음인지 소연평도에 비해 그나마 사정이 나은 편이다. 6.25전쟁이 끝나고 휴전선인 군사분계선만 그어놓고 바다에는 아무런 합의 없이 일방적으로 우리 측에서 그어놓은 북방한계선(NLL선)을 두고 북한과 바로 대치해 있는 상황에서 서해해전과 연평해전까지 발생하여 언제 어느 때라도 긴장은 늦출 수가 없는 것이다.
▲ 면사무소에서 가까운 충민사
▲ 충민사 옆에 서 있는 서어나무. 당산나무의 위용을 가지고 있다
대연평도는 마을이 안목선착장을 바라보는 인근에 몰려 있다. 조기파시에는 수백 척의 배들이 성시를 이룬 것처럼 색시가 있는 술집도 줄지어 성황을 이루었다. 마을에서 찍어놓은 옛날 흑백사진에는 당시 농림해양장관을 지냈던 사람이 조기 어시장을 둘러보는 장면도 있었고 들썩들썩한 어부들의 생동감 있는 사진이 옛날의 영화를 말해주고 있었다. 그때 형성된 동네와 상가가 지금까지 존재하고 있었는데 교동도의 대룡시장 상가와 거의 흡사하였다. 마을은 평일이라 한적하였고 잠시 외출 나온 장병들이 간혹 걸어가고 있는 모습도 보였다. 마을을 둘러보는 일은 평화롭고 여유로웠다. 타임머쉰을 타고50년 전으로 돌아간 듯 하다. 조그만 슈퍼에 들어가보니30년 전 첫 월급을 타면 어머니에게 사다 드리는 쌍방울표 빨간 내복이 아직도 존재하고 있었고 주인은 폐교에서 수집한 학교종도 보여 주었다. 섬에서는 죽는 일이 다반사로 일어나지 않고 가끔 발생하여 이 가게는 수의도 취급하였는데 관을 짜는데 필요한 널판을 지금도 보관하고 있었다. 이것도 오래 되면 보물이라 귀중한 문화유산으로 간직하고 있는 가게주인의 안목에 일행은 모두 탄복한다.
▲ 구리동해수욕장
▲ 북한지역 석도 NLL선에 모인 중국배
대연평도의 안목선착장에는 조그만 섬들이 몇 개 있었는데 이 섬들은 괭이갈매기와 검은머리물떼새가 서식지로 삼고 있을 만큼 해산물의 보고였다. 썰물이 될 때면 뭍이 드러나 주민들은 작은 섬으로 가기 위해 섬으로 이어지는 길을 시멘트길로 조성해 놓았다. 그 길을 보는 순간 갑자기 가슴이 답답해져 온다. 시멘트는 독성으로 이루어져 있다. 아파트를 지어도 독성 때문에 각종 피부병의 염려로3년간은 입주를 하지 않고 세를 줄려고 할 정도로 치명적이라 생각하는 것이다. 섬을 편리하게 다니기 위해 시멘트길을 만들어 놓은 관청의 무지에 억장이 무너지는 것 같은 슬픔을 느낀다. 이 곳 해안은 모두 죽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시멘트에 폐타이어를 포함한 각종 독성물질이 함유되어 만들어진다는 것은 이미 알려져 있는 사실이다. 심지어는 일본의 각종 산업폐기물을 값이 싸다는 이유로 수입하여 시멘트에 포함하여 만들어 사회문제로까지 비화한 사실을 우리는 가지고 있는 것이다. 시멘트의 독성은 흡착되어 고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녹이 슨 철물이 빠져나가는 것처럼 서서히 빠져나간다. 종말에 가서는 해안을 해치고 굳어버린 갯벌이 되고 마는 것이다.
편리함과 무지가 빚어낸 참상을 인간은 반드시 배로 보상받을 것이다. 환경재해는 천재가 아니라 인재라는 점을 바로 여기에서 알 수 있는 것이다. 인간은 점점 지구를 약탈해가고 있다. 이제 그 한계치가 점점 바닥을 드러내고 있다. 아름다운 섬이 망가지는 것은 순식간이다. 중국의 어선이 쌍끌이로 바닥을 오염시켜도 그것은 오래 가지는 않을 것이다. 아무렇지 않게 인간의 편리함을 위해 자행되는 개발의 삽질을 우리는 경계해야 할 것이다.
고난의 섬 연평도에 따스한 봄이 일찍 찾아오면 좋겠다.
▲ NLL선을 넘어와 있는 중국배(사진 중간부분 점은 점)
첫댓글 연평도사태가 일어났을 때 가장 먼저 새마을리 주민들이 생각났습니다.
주민들을 모시고 밤 11시까지 이야기했으니까요.
어려운 과정 잘 딛고 다시 평화로운 마을이 되었으면 합니다.
그러게요. 이 시기에 연평도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니 안타까움이 더 크게 느껴지네요. 정말 평화가 찾아왔으면 합니다~~~
연평도 주민들의 이주대책이 세워졌다고 하는군요. 김포의 미분양아파트로 들어간다고 합니다.
대형버스를 이용해 인천까지 나올 수 있도록 조치도 취한다고 합니다.
연평도 현장은 전쟁체험을 위해 그대로 보전하는 안도 나오고 있는 모양입니다.
반대하는 주민도 있고요. 안나가는 주민들을 위해 연평도 다른 장소에 번듯한 이주지를 만들어준다면
반대할 주민은 없을 것 같은데요.
좋은 소식이네요. 이주 소식~~~~
서해안 어느 섬에서나 볼수 있는게 용치인 것 같아요.
제 기억이 정확한지는 모르겠지만 제가 간 몇 안된 곳에 모두 보여던 기억이........
서해 5도(대연평도, 소연평도, 대청도,소청도,백령도)쪽에만 설치되어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NLL선에 바로 인접해 있는 곳이지요. 나머지 섬은 비슷한 것을 보셨을 텐데 그것은 용치가 아니고
닻을 해안에 세워놓은 것입니다. 대체로 꽃게잡이할 때 쓰는 돛인데 금어기때 세워 놓았다가
풀리면 가져가기도 합니다. 그 섬에게는 당연히 세를 주지요.
아름다운 섬이라 봅니다. 가보고 싶은 섬중의 한곳으로 늘 생각하고 있었던 섬인데 ...금번 북한의 포격으로 인한 아픔이 오래 갈듯 하네요 ~ 교묘한 방법으로 보이지 않는 선을 넘어와 싹쓸이하는 중국어선...먹고 사는 방법도 여러가지 라는 생각이 드네요 ~ 충민사 옆의 서어나무의 위용이 참으로 듬직해 보이네요 꼭한번 가봐야 겠어요 ~ 금강송님 고생하셨습니다 덕분에 앉아서 잘 보았습니다 ㅎㅎㅎ
인천의 섬들은 남해해상국립공원의 섬에 비해 뒤떨어질 없고 오히려 더 훌륭한 섬들이 많습니다.
사람들이 많이 살고 있지 않다보니 관광화가 이루어지지 못한 까닭이지요.
연평도는 그래도 많이 살고 잇는 섬인데 이번에 이렇게 되어 사람이 더욱 줄지 않을까
염려스럽습니다.
이제는 연평도 가기도 어렵게 되는건가요?...
마음 가득한 글 잘읽었습니다..^^
연평도 들어가기는 가는 모양입니다.
일단 주민들부터요^^
영화 나바론이 연상되는군요!그 긴 포신의 위용! 아름답던 천헤의 섬이 눈물의 연평도가 될줄이야! 주민이 계속 살아야 언제 한번 가볼텐데 아마 그리 되겠죠! 금강송님의 상세한 여행기 넘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나바론' 대목은 글의 후반부에 나와있는 부분인데
이 글을 끝까지 읽었다는 증거입니다.
사실 긴 글은 중간부분은 토스하기 마련이거든요.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