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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은 여행이다.
정혜윤님의 마술라디오를 읽고. 2014. 7. 라떼.
거의가 잠든 새벽 두시.
비가 내렸고, 한낮에 익었던 내 푸념들이 잠시 안식을 찾았다.
그리고 생각했다.
내가 이 지상에 온 이유를..
나는 몇 번의 변주를 거치며 지금 여기 이렇게 있는지를..
브람스 4번 4악장.
그 음악이 몹시도 궁금해진 나는 파사칼리아의 무한한 변주, 그 서른 두 번의 변주를 찾아 들었다.
‘쿤데라’는 변주를 내면세계의 무한 속으로 들어가는 여행이라고 했다지..
감히, 나는 이렇게 정리해본다.
그 무한 속으로의 여행이 나만의 주파수를 찾기 위한 여정이 아닐까 하고.
나만의 주파수를 찾는 건 어려운 클래식 음악을 듣고 이해하는 것보다 내게는 쉬웠다.
내가 쏟아내는 전파들이 하늘로 올라가 나와 주파수를 맞추며 하나 둘씩 사람들이 내게로 왔다.
아니, 어쩌면 내가 갔는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작가가 말했던 그 맥스웰의 전파방정식이 내게도 성립이 된 거다.
나는 단테처럼 인생길 한가운데서 길을 잃지도 않았으며, 어두운 숲속을 참 열심히도 헤쳐 나왔다.
빈센트 반 고흐처럼 불행하고 지친 사람들 머리 위에, 위로가 필요한 사람들 머리 위에 별 총총 밤하늘을 올려놓고 싶어 무던히 애도 썼다.
당연히 내가 나를 할퀴는 시간들이 많았으며 세계와 나 사이에 불쑥불쑥 느닷없이 위기라는 것이 찾아오기도 했다.
그러나 그사이 나는 선인장처럼 단단해졌으며 장미보다 더 아름다운 꽃도 피울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기쁨도 잠시, 꽃과 가시의 경계 사이에서 잎의 부재가 나를 슬프게 했다.
잎은 내게 꿈이었음을 나는 너무 늦게 알아버린 탓이다.
그렇게 나는 모터사이클을 몰고 바람을 누비듯 앞으로 나아갔으나 그 반대방향에서 오는 ‘존 버거’의 [시]를 발견하지는 못했다.
그렇게 사랑과 꿈이 나를 스쳐갔고 그리하여, 나에 대한 연민은 시작되었다.
내가 좋아하는 페이퍼의 어느 작가는 단순히 다육이가 좋다는 이유만으로 제주도로 훌쩍 혼자 여행을 떠난다.
사방팔방 검색 신공을 발휘하며 결국엔 선인장 마을에서 한동안을 지내다 와서 글을 썼다.
선인장은 대표적인 다육식물이다.
‘쿠로시오’ 난류를 타고 온 선인장이 바위틈에 자리를 잡게 된 게 아닐까 하는 본인의 짐작을 꽤나 낭만적으로 묘사하며, 선인장을 “만사가 귀찮은 당신을 위한 미더운 식물”이라고 표현했다.
사막처럼 건조한 날씨의 지역에서 살아남기 위해, 줄기나 잎에 많은 양의 수분을 저장하고 있어 매일 물을 주지 않아도, 눈길을 주지 않아도 혼자서도 잘 자라는 한결같은 매력을 갖고 있기 때문이라 한다.
충분히 매력 있는 식물이다.
꿈이 있고 목적이 있는 삶 또한 충분히 아름답다.
어떤 여정을 뒤로 하고 그 추억들을 이야기로 풀어낼 수 있는 그녀가, 글을 읽는 내내 부러웠다.
한 세기 전 스페인 북서쪽에 있었다는 마을 ‘베탄소스’, 그 곳에서 플로리다로 쿠바로 남미로 떠났다는 그 갈라시아인들의 용기와 열정 또한 부럽기도 했다.
그다지 뛰어나게 잘하는 것도 없는 나는 또 딱히 잘 못하는 것도 없음을 늘 위로 삼았던 것 같다.
힘들었던 시절엔 힘들다는 이유로, 지금은 그 힘들었음을 핑계로 내게 너무 관대함을 인정한다.
때로는 살아감에 있어 돌아가는 지혜보다 직진하는 용기도 필요함을 절실하게 느끼는 요즈음이다.
언젠가 내 동생이 진지하게 내게 말했다.
언니는 책도 많이 읽고 영화도 많이 보고 좋은 점도 많지만 가끔씩 외계인이란다.
그 이유가 사람들과 함께 있을 때, 내가 유독 듣고 싶은 말만 듣고 하고 싶은 말만 하면서 아주 몽환적이란다.
생각해보니 나의 뇌는 이 지구를 자주 이탈하여 250만 광년 거리 안드로메다에 늘 가 있었던 것 같다.
그렇게 나는 37억 5천만년 뒤에나 있을법한 어떤 거대한 충돌을 기대하며 한 시간에 지구를 향하여 40만 킬로미터씩을 달려왔으니, 당연히 현실에서는 삶의 속도가 맞지 않는 것이다.
작가는 책에서 이야기한다.
우리를 살게 하는 것은 ‘증명’이 아니라 ‘발견’이라고.
확신에 가득 찬 사람이 아니라 의심하고 동요하면서도 찾고 추구하기를 멈추지 않는 사람만이 생생하게 살아있다고.
현재의 삶을 살만하다고 느끼게 하는 그것, 그것이 바로 마술이라고.
이 글을 읽고 나는 참으로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나는 외계인이 아니므로.
단지 나는 내 잎의 부재로 인하여 내 꿈을 여전히 찾고 추구하는데 시간을 많이 썼을 뿐이라고.
또 다만 나는, 작가가 제주도 여행길에서 만난 강장군 할머니처럼 처음 듣는 말을 마지막인 것처럼 듣는 배지근한 귀를 가지지는 않았으나, 아주 많이 들었던 말도 처음 듣는 것 같은 뇌를 가졌음에도 이 세상을 살아가는데 크게 지장이 없으니 그걸로 족하다.
그러다 어느 날 내 인생에 질문이 생기면 나는 다시 마술라디오를 꺼내어 눈을 크게 뜨고 마음을 활짝 열어 작가의 얘기들을 다시 들을 것이다.
인생은 학습이고 학습은 반복임으로.
그리고 이것이 여행자의 태도로 삶을 사는 데 있어 기본 공식임을 믿는다.
7월호 페이퍼에 실렸던 글에서 내게는 아주 인상 깊었던 두 친구의 얘기를 퍼 온다.
나는 그에게 말한다. “인생은 쉬운 게 아니야 이 친구야! 너는 좋겠다. 그렇게 뭐든 다 쉬워서."
그는 나에게 말한다. “ 인생은 그렇게 복잡한 게 아니야 이 친구야! 간단한 걸 가지고 자꾸 복잡하게 만들어서 애쓰지 말라니까.”
이 글을 읽고 나의 결론: 둘 다 옳다고도 틀리다고도 말할 수 없는, 여전히 우리의 인생은 현재 진행형이며 작가의 말처럼 아주 깊게 대화를 나누고, 아주 깊게 들을 수 있으며, 아주 깊게 말할 수 있는 시간들이 우리에게 여백으로 남아 있음을 행복으로 여기자.
내가 이 지상에 온 이유를 아직은 모른다.
그러나 이제 내가 이 지구상에서 할 일!
작가의 말처럼 뜨겁게, 열정적으로 최선을 다해서 남은 생을 사랑하며 살아내는 일뿐이다.
그러다 어쩌면, 정말로 아주 아주 멋진 일이 생겨날지도 모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