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복과 적벽
화순적벽
백아산에서 발원한 창랑천과 무등산의 동쪽에서 발원한 영신천이 합류되어 그 맑고 풍부한 수량을 자랑하는 동복천은 적벽을 휘감고 흐르는데 적벽강이라고도 하며 일명 달천이라고도 한다.
이 청정한 강물을 막아 광주시민과 화순읍민의 식수난을 해결하는 상수도원이 된 동복댐 공사의 1차공사가 시작된 것은 1968년부터이며 1970년에 완공되었으나 수원의 부족으로 1981년 10월에 2차공사가 국내 최초의 고무튜브공법으로 담수능력을 360만t에서670만t으로 확장되었다가 1984년 확장공사로 당초 댐 높이 19.5m 에서 44.7m로 높이고 제방길이 188.1m에 담수능력 9.200만t 을 저수하게 되었고 1일취수량은 32만t 이고 수몰면적은 6.6㎢이다.
이 동복댐 확장공사로 인하여 화순관내에서 으뜸가는 관광명소였던 적벽일대가 물에 잠기게 되었고 미각의 산책로로 쏘가리탕, 메기탕, 가물치회 등 담수어의 보고였던 맛의 고장이 사라지고 상수도보호구역이 되어 담수어의 어획도 제한을 받게 되었다.
이 확장 댐 공사로 수몰된 마을은 이서면 서리, 월산리일구인 월평마을, 이구인 장월마을, 보산리일구인 보산마을, 이구인 난산마을, 장학리일구인 장항마을, 이구인 학당마을, 창랑리 일구인 창랑마을, 이구인 물염마을, 도석리 일구인 석림마을, 이구인 석보마을, 삼구인 전도마을과 야사리의 일부와 북면 와천리, 다곡리, 임곡리의 일부가 수몰하게 되었다. 이 지역의 수몰로 주거지의 이거가 불가피하여 587가구에 2.654명의 인구가 이주하였다.
화순적벽은 동복천 상류인 창랑천에 약 7km에 걸쳐 발달한 크고 작은 수려한 절벽의 경관이다. 대표적인 것으로는 동복댐 상류에 있는 노루목 적벽과 물염적벽, 보산적벽, 창랑적벽이 있다. 노루목 적벽은 동복댐이 만들어지기 직전까지 수려한 자연경관과 웅장함, 그리고 위락 공간으로 옛날부터 널리 알려진 명승지이다. 1519년 기묘사화 후 동복에 유배중이던 명유(名儒)인 신재(新齋) 최산두(崔山斗)가 이곳의 절경을 보고 중국의 적벽에 버금간다 하여 적벽이라 명명하였다고 하며, 그 뒤 많은 풍류(風流) 시인묵객들이 이곳에 들러 그 아름다움을 노래하였다.
노루목 물염적벽: 송정순이 건립한 물염정이 있어 위락공간으로 이름이 높다.
보산적벽: 보산리의 북쪽 계류가에 형성되어 있으며 규모는 작으나 수량이 풍부
창랑적벽: 높이 약 40m에 길이가 100m가량 이어진 절벽군으로 웅장한 느낌
적벽 앞에는 망미정, 보안사지 석탑, 망향정 등이 있다.
동복의 역사
본래 백제(百濟) 두부지현(豆夫只縣), 신라(新羅) 때에 지금 이름으로 고쳐서 곡성군(谷城郡) 영현(領縣)으로 삼았다.
고려 초에 보성군(寶城郡)에 붙였다가 뒤에 승려 조염(祖琰)의 고향이라고 높여서 감무(監務)1)를 삼았다.
조선 태조(太祖) 3년(1394)에 화순감무(和順監務)를 겸하였다.
태종(太宗) 5년(1405)에 두 현을 화순에 합치고 복순(福順)이라고 칭하였다가 태종16년(1414)에 각각 복구해서 구례(舊例)를 회복하였다.
효종(孝宗) 6년(1655)에 전패(殿牌)4)가 불타서 화순에 합쳤다.
현종(顯宗) 5년(1664) 동복으로 복구하여 순천부(順天府) 영현(領縣)으로 하고 광주목(光州牧)에 소속
군명(郡名)
비리(卑離) 두부지(豆夫只) 귀성(龜城) 옹성(甕城) 복천(福川) 라복(蘿葍) 동복(同福)
역사상식
고려시대 지방행정체계와 동복
고려 성종 때 12목에 지방관을 파견하면서 정비되기 시작한 고려 전기 지방제도는 현종 때 일단락되었으나, 실제로는 수령을 파견하지 못한 속군현(屬郡縣)이 많이 존재하였다. 이에 1106년(예종 1) 중앙에서 정식으로 관리를 설치하지 못했던 속군현과 향(鄕)․소(所)․부곡(部曲)․장(莊)․처(處) 등에 감무를 파견하였다.
조선시대 지방행정체계와 동복
조선시대 태종 13년에 군현제를 정비하면서 현감으로 개칭하였다.
태종 3년(1405)에 동복현에 있던 감무를 다시 화순감무로 변경하여 동복현을 함께 관할하게 하였다.
태종 5년(1407)에 화순현 감무를 고쳐 동복현과 화순현을 합한 이름인 복순현(福順縣)이라 하게된다.
태종 집권 이후 화순 지역은 여섯 차례에 걸쳐 군현의 통폐합 과정이 있었다. 이런 현상은 그만큼 군현 병합에 반대하는 세력이 많았고 병합되는 현의 토성이민(土姓吏民)들이 불만을 갖고 방해를 하였기 때문이었다.
역사유적
동복향교는 동복면 연월리 월송마을 뒷편 높은 언덕위에 정남향으로 자리하고 있다. 세종 26년(1444) 동복현감 하강지가 현 위치에 처음 건립하였다. 이후 명종19년(l568) 현재의 위치에서 교촌마을로 이건하였으며, 효종6년(1655)에 객사에 불이나 전패가 소실되자 동복현이 폐현되면서 향교도 폐하였고, 현종 6년(1664)복현되면서 향교도 복교되었다. 숙종 39년(1713)에 현의 남쪽 독상리 생가몰로 향교를 이건하였다가, 다시 영조 32년(1756)에 현재의 위치인 월송마을 뒤 구릉으로 이건하였다. l903년 동복군수 김기중의 주선으로 중수하였고, 1935년 중건하였다. 당시 향교건물로는 대성전, 동무, 서무, 명륜당, 동재, 서재, 사마재, 고고재, 고직사 등이 있었다. 1950년 6.25로 인해 향교가 전소되고 말았으며, l959년 조병의 전교를 중심으로 대성전과 내삼문이 복원되었다. 이후 1988년 경모재(동재), 양사재(서재)가 복원되었고, I99l년 화장실 신축, 1996년 내삼문 계단, 1997년 담장 및 외삼문, 계단, 1998년 대성전 보수, 1999년 명륜당을 복원 하였다.
동복의 누정
환학정(喚鶴亭) : 적벽 서쪽 언덕, 북쪽 강선대(降仙臺)18) 남쪽으로 화표봉이 우뚝 솟은 곳에 있다. 정지준(丁之雋)의 시를 보면,
늦가을 바람결에 학을 불러올가
적벽강 언덕에 정자가 높았구나
세 군데 산봉우리는 가까이 보이는데
높다란 으슥한 소택이 멀리 솟아났어
화려한 옷을 입고 신선이 내려온 듯
맑은 시냇물에 도사(道士)가 돌아온 듯
갑자기 날아갈 곳 없다고 호소하면서
속세 사람 보고서 찾아올까 두렵구나.
○ 강선대(降仙臺) : 적벽 북안에 있으며 온화괴(榲花槐)와 줄 지어 합하여지고 환학정 화표봉 적벽과 마주하여 침류삼층(枕流三層)이 되었다. 주인은 적송(赤松) 정지준이 건립하였다.
정지준
흰 구름 솟아날 때 새는 돌아오는데
검은 학은 공중에서 저녁 빛을 희롱하네
붉은 점을 명중하려고 다투어 화살을 다 당겼는데
불어오는 하늘바람에 육수의(六銖衣)가 펄럭인다.
창주
우뢰소리 높고 높아 별은 어지럽게 나는데
흰구름 가는 곳에 태양이 움직이네
동쪽바람 10리 언덕에 버들꽃 떨어질제
4월달 강남길에 구름은 옷에 가득해.
창옹
벼들 강아지 빛은 백설이 어지럽게 내리는 듯 하는데
꾀꼬리 꾀꼴꾀꼴 봄빛을 희롱하네
인생들의 즐거움이란 끝이 없는 것
저녁 이슬이 내 옷을 젖는 것을 어찌 혐의할까.
현감 이학래(李鶴來)
환학정 앞에 적벽이 열렸으니
강선대에 신선이 몇번이나 찾아왔을까
꿈속에 우의(羽衣) 만난 소동파 가신 뒤에
달 밝은 봄밭에 이 학이 날아왔어.
창랑정(滄浪亭) : 현 북쪽 창랑리 동쪽에 진사 정암수(丁巖壽)가 건립하였다. 선조 22년(1589) 을축옥사 후에 세상을 등지고 이곳에 정자를 지었다. 스스로 이름을 창랑이라 하였다.
송강 정철
갓을 씻고 발을 씻은이는 이에 누구일까
물이 탁하고 물이 맑음은 임금이 이에 임금이로다
주인의 형상하기 어려운 곳을 알진데
한바퀴 밝은 달에 싸리문을 가렸어라.
한강 정구
제일 가는 명구(名區)가 천고에 전하고
삼계(三溪)의 흐른 물은 거울을 길이 걸었도다.
서리를 능멸하는 송국의 선태위에서
푸른 얼굴 서로 대하여 성현 배우기를 권하였노라.
제봉 고경명
강남에 재가승*(在家僧) 이 있어
홀로 구름과 물을 마음껏 즐기는구려
생각이 많아서 말씀은 오히려 신선하고
시도 좋아서 모두 거문고에 실을 만하네
바위굴일망정 정 붙여 사니
능연각*(凌煙閣) 공신 그림 어디에 쓸거나
깊은 생각으로 창랑에 낚시 던지고
흩어진 머리로 고깃배나 저어보리
■ 註
*재가승(在家僧) : 속가에 있으면서 불법을 닦는 중.
*능연각(凌煙閣) : 당나라때 西安府의 성안에 있던 전각, 唐太宗
이 나라에 공이 큰 신하 24명의 초상을 그려서 걸어 놓았음.
물염정*(勿染亭)
김인후
명양주*에 몹씨 취하여
돌아와보니 삼월 봄이어라
강산은 천고의 주인이건만
사람이야 백년의 손님일 뿐일레라
적벽에서 놀며(遊赤壁)
이 발
방초는 두터워 융단인가 하고
청산은 아득하여 연기와 같네
그대와 함께 오늘 취하니
만사는 오직 하늘의 뜻이로세
동암은 취해 적벽에 누웠다가
어부에게 살찐 고기 얻어오누나
오로지 이것을 어머님께 드려서
봄볕같은 그 은혜에 보답하리라
첫댓글 라(蘿)복
蘿 무 라{나}; ?-총23획; [luo?]
무, 미나리, 새삼 넌출, 시라향, 댕댕이 넌출, 담장이 넌출
복(葍)
葍 메꽃 복; ?-총13획; [fu?]
메꽃, 메
비리(卑離) 두부지(豆夫只) 귀성(龜城) 옹성(甕城) 복천(福川) 라복(蘿葍) 동복(同福)
[출처]화순적벽과 동복|작성자푸른하늘
묵재(默齋)
노고에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