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정복규의 성씨칼럼
연안송씨(延安宋氏)(2)
연안송씨(2)의 시조 송한(宋罕)은 나라에 공을 세워 염주군에 봉해졌다. 염주는 연안의 옛 이름이다. 그래서 후손들이 연안을 본관으로 삼았다. 연안은 황해도 연백군 일원의 옛 지명이다. 1914년 군면 폐합으로 연안군은 다시 배천군(白川郡)과 합하여 연백군이 되었다.
송흥 은 고려 말 직제학, 지제고를 지내고 연안백에 봉해졌다. 송윤서는 충목왕 때 문하시중평장사로 오원군에 봉해졌다. 송전실은 공민왕 때 중랑장과 군수 등 주요 관직을 역임했다. 그러나 조선이 개국되자 두문동으로 은거, 절의를 지켰다. 송전실의 아들 송의강은 태종 때 곡산부사로 나가 선정을 베풀었다. 송인 은 조선 때 병조정랑을, 송세우는 직장을, 송대립은 부제학을 각각 지냈다.
송대립의 아들 4형제 대에서 크게 4파로 갈라진다. 송기 를 파조로 하는 형참의공파, 송정필을 파조로 하는 예참의공파, 송정수를 파조로 하는 병참의공파, 송정광을 파조로 하는 호참의공파 등이 4개 산맥이다.
그밖에 가문을 빛낸 인물로는 송정수의 아들로 부호군을 지낸 송이현, 공조참의를 역임한 송경직이 있다. 송경적은 성균관 교수를 지냈으며, 송경득은 동지중추부사, 송경인은 해남현감을 역임했다. 효자 송희천, 학자 송지경. 송의증, 목사 송인수 등도 가문을 빛냈다.
경북 안동군 풍산면 만운동, 평남 대동군 임원면 양암리, 경남 울주군 언양면 일원이 집성촌이다. 2000년 현재 442명이다.
시조가 다른 연안송씨(1)의 시조는 송경(宋卿)이다. 송경 은 공민왕 때 찬성사에 오른 뒤 1359년 홍건적의 난 때 공을 세웠다. 그 뒤 직밀직사사에 올랐으며, 연안부원군에 봉해졌다. 그래서 후손들이 연안을 본관으로 삼았다. 연안송씨(1)은 2000년 현재 12,149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