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학보 2호는 1977년 3월 12일에 발행되었다. 이때쯤이면 신입생들의 열기가 부푼 꿈으로 설레일 때이다. 과연 교수진들은 어떻게 구성되었을까.
'새로 出帆하는 文藝創作科'라는 제목으로 교수진의 소개가 보인다. 그리고 정현종 주임교수의 모습이 크게 보인다. 나는 그를 이 학교에서 딱 한 번 보았다. 입학 실기시험을 보았을 때 교실에서 시험감독관으로 있는 시인을 본 것이다. 아마 확실하지는 않지만 그때 시험 제목이 <꿈>이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이 제목이 맞는다고 생각하는 이유 가운데 하나가, 그 후로 나는 그 제목이 그의 면모를 그대로 나타내는 것이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1978년 중판(1974년 초판)으로 되어 있는 민음사판 <고통의 축제>를 다시 들춰 보니 속표지에 나와 있는 전신 사진 밑에 <나무의 꿈>이라는 시와 김우창의 해설 제목이 <사물과 꿈>으로 되어 있다. 그는 그때 꿈을 창작의 가장 중요한 요소로 본 것이리라. 그리고 그는 내 시험 답안지에 도장을 꾹 누르고는 학기 초가 되어서는 어딘가로 사라졌다.
그리고 막강한 교수진의 위용.
그런데 주임교수의 사진과 많이 대별된다. 오, 우리의 최인훈 교수님. 그때의 얼굴이 이리도 젊으셨다니요. 과 소개글 앞부분을 보자.
금년도 본교 입시에서 5:1의 치열한 경쟁율을 보여주어 큰 기대와 관심을 모으고 있는 신설된 문예창작과는 어느 대학 못지않은 막강한 교수진으로 구성되어 벌써부터 기대와 화제를 모으고 있다.
막강도 하다. 김현에 의해 전후 최대 작가로 불리운 최인훈, 1974년 미 아이오와대학 국제창작프로그램에서 수학한 정현종, 중앙일보에 인기리에 연재되고 영화화된 <겨울여자>의 조해일 등 아마도 그때 신입생들은 그 이름을 듣고 마음을 설레었을 것이다. 겨울여자는 이 해 영화화되었는데, 잠깐 볼까?
장미희와 김추련
잠깐 옆길로 샜다. 본분을 지키자.
산문에, 문창과 1년 이명호 동문의 <내가 그린 그 길>이라는 글이 있고, 시는 여전히 R/TV과다. 활자가 큰 관계로 그대로 싣는다.
울산에 있는 개운포는 처용설화와 관련이 있는 곳이다. 그가 김춘수의 처용를 읽었음직도 하다.
그리고 수습기자모집란이 있는데, 여기에 앞으로 시인으로 활동하게 될 문창과의 한 신입생이 들어가게 된다.
첫댓글 05학번 다니면서 시를 읽다가 한자가 나오면 당황해하는 것이 교실 풍경이었는데 그 시절에는 시에 한자가 들어있었어요. 여러가지로 세월이 무상합니다.
시의 삽화가 컴퓨터 그래픽에 익숙해진 시각을 신선하게 합니다. 세심한 해설 너무 좋아요. 그 옛날 방송에서 들은 전설따라 삼천리 같은 향수가 가득 밀려오네요.
아하, 이런 자료를!
우~ 우~. 너무너무 고맙네요. 학보사를 사랑한 내가 부끄러워지면서도 행복하네요. 새삼 존경스럽네요. 1기 학보사 편집장이 영화학과 출신의 영화평론가인 양윤모 선배로 아는데... 어찌 이런 자료를 간직하고 있는지 눈물나게 고맙구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