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이 씨부랄 년, 이혼해달라니까 왜 안 해줘?!”
난장판이 되어있는 집안 거실. 그의 손으로 여자의 얼굴을 짝짝 소리가 나게 따귀를 때려가면서 뱉는 말이었다. 심장 뛰는 소리가 혹여 그한테 들릴까 가슴을 움켜쥐고, 동생을 품에 안고 파르르 떨며 방안에서 겁에 질려 있었다. 어김없이 그는 엄마에게 폭언과 폭행을 행하고 있었고, 그 이유는 너무도 황당했다.
“난, 자식새끼도 너도 다 필요 없으니까 이혼해! 여기에 도장 찍어 당장! 난 저 앞집여자랑 살 거야!!”
“하... 아주 미쳤구나, 네가?”
엄마가 그에게 항변하듯 말한 적은 처음이었다. 아니 어쩌면 내가 기억하는 장면 속에 처음일지도 모르겠다. 발갛게 달아오른 얼굴로 그를 눈을 치켜뜨고 뱉던 엄마의 말이 그를 더 흥분하게 만든 것 같았다. 더 심한 폭언과 폭행으로 엄마는 이리 휘청, 저리 휘청 끌려 다니고 있었다. 말리고 싶었지만 그때 당시 내 나이 이제 막 초등학교를 졸업한 열네 살. 힘으로 그를 제압하거나 이길 수 없다는 걸 어린나이라도 알 수 있었다. 동생은 세 살 터울로 열 살 꼬마에 불과했다. 우리 둘이 할 수 있는 건 입 다물고 쥐죽은 듯 조용히 있는 것이 전부였다.
* * * *
[호석과 옥경이 부부가 되게 된 결정적 사건]
1986년 늦봄의 어느 날 호석과 옥경은 소개받는 자리에 함께하게 된다. 호석은 여느 여자들과 달리 내숭 없고 털털한 옥경의 모습에 호감을 갖게 되고, 옥경은 호석의 노래하는 목소리에 반하게 된다.
그 시대 때만 해도 남녀관련 성교육에 대해서 부모들은 상당히 보수적이고, 고지식함을 드러내던 때였고, 옥경은 그런 부모들을 통해서 제대로 된 성교육을 받지 못했던 스물두 살 처녀였다. 호석은 그날을 기회로 반강제적인 옥경과의 잠자리를 갖게 되고 그날로 인해 옥경은 현재 중학생인 루나를 임신하게 된다.
옥경은 집안에서는 5남2녀 중 막내딸로 애지중지 키워졌다. 옥경의 아버지는 그런 딸을 하루아침에 차가운 인상과 자로 잰 듯 각 지게 자른 헤어스타일, 택시기사라는 직업까지. 하나부터 열까지 맘에 드는 구석이 없었던 호석을 탐탁지 않아 한다. 심한 반대를 무너뜨릴 수 있었던 건 옥경의 임신사실 이었다. 옥경의 아버지는 마지못해 결혼을 허락하게 된다.
10개월이 지나고, 1987년 3월 루나가 세상에 태어난다. 오로지 남자의 노래목소리 하나에 반해서 임신을 하고, 결혼까지 이르게 된 옥경의 남편인 호석의 집안은 무척이나 가난하기 짝이 없었다. 옥경의 집안에 비하면 많이 기우는 집안이었다. 옥경은 경상도사람으로 친정어머니는 해녀, 친정아버지는 농사일을 하면서 남부럽지 않게 살아온 집안이었다. 귀하게 자란 옥경은 손에 물 한번 뭍이고 살아본 적 없었다.
“아버님, 제가 할게요.”
“아니다, 어린 네가 뭘 할 줄 알겠냐.”
“그럼 알려주세요. 배워서 다음부턴 제가 하도록 할게요.”
삭삭 하게 구는 옥경을 예뻐라 했던 시아버지는 너그러운 미소를 지어 보인다. 가난하기 짝이 없던 호석의 집안은 분가해서 사는 것은 꿈도 꿀 수 없었고, 더불어 호석의 가장 큰 형님은 젊은 나이에 간경화라는 병으로 세상을 떠나며 두고 간 두 남매가 있었고, 호석이 그들의 아버지 역할을 대신하며 키우고 있었던 것이다. 옥경에게는 스물두 살의 나이에 낳은 적도 없는 어린 자식 둘이 덜컥 안겨진 거나 진배없었다. 옥경은 호석 하나만 믿고 시집와서 그렇게 행복할 줄로만 알았던 결혼생활은 시작이 된 것이다.
* * * *
“미영아, 오늘 막차타고 갈래?”
“어? 그래.”
그와 엄마의 다툼이 잦아지면서 집에 들어가는 것이 두려워졌다. 초등학교 수업이 끝나고 집에 돌아오는 동생역시도 줄곧 밖에서 놀다 해가지면 들어오는 일이 허다했다. 동생과 난 그렇게 조금씩 집에 들어가는 것을 꺼리기 시작했던 것 같다. 사춘기 시절에 의지할 수 있는 친구마저도 없었다면 아마 난 어떻게 됐을까 싶기도 하다.
“난 정말 이해가 안 돼.”
“뭐가?”
“그렇게 싸울 거면 왜 결혼은 하고, 애들은 낳는지 말이야.”
“내가... 말 했었나?”
“뭘?”
입을 열어 뱉으려는 말이 조심스러워 보이는 미영을 가만히 바라보고 앉아있었다. 용돈도 일주일에 오백 원이 전부였던 나로서는 막차를 타고 간다고 해봐야 버스터미널에서 저녁 7시가 될 때까지 미영과 수다를 떨며 보내다 버스를 타고 가는 것이 전부였다. 어찌 보면 나를 위해 시간을 내어주는 미영에게 고맙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한 나날들이었다.
“우리 아빠 이혼했어. 그리고 지금은 중국여자랑 재혼해서 남자애까지 낳고 같이 살고 있고.”
“아, 그랬구나…….”
“그년이 자꾸 중국으로 아들 데리고 들어갈 궁리를 하는 것 같아서 지금 좀 불안해.”
“설마... 자식까지 낳고 어떻게 그래?”
“이미 전에도 한번 그런 일이 있어서 아빠가 중국까지 가서 데리고 온 적도 있거든.”
“대박…….”
“그리고 나랑 내 여동생은 아직 그 여자한테 엄마라고 부르지도 않아. 어쩌면 그것 때문에 그러는걸 수도 있고.”
“엄마라고 안 불러줘서 중국을 간다고? 그건 너무 핑계가 안 되잖아.”
“전에 중국 갔을 때도 딸들이 엄마라고 인정을 안 해주는데 자기가 그 집에서 같이 살아 뭐하냐는 식으로 말했었나봐. 그래서 아빠는 엄마라고 부르라고 자꾸 말하지. 근데 싫은걸 어떡해. 말이 안 나오는걸.”
남들은 다 행복한 가정 속에서 사랑받고 산다는 생각을 깨트려준 미영의 고백이었다. 그리고 그 후로 나와 미영은 고민상담도 서로 해주고, 의지하면서 돈독한 친구사이가 되었다.
그날도 어김없이 미영과 난 막차를 타기위해서 버스터미널 매표소안 나무의자에 앉아서 창밖으로 지나다니는 사람들을 구경하고 있었다. 갑자기 눈을 번뜩이며 뱉는 미영의 말에 동시에 나도 창밖으로 시선을 옮겼다.
“어?! 쟤 현우석 아니야?”
“맞는 거 같은데?!”
“뭐야, 초등학교 때 같은 운동부였던 언니 좋아한다더니 사귀나?”
“사귀면 어때 왜? 관심 있어?”
“아니, 그냥 동창이니까. 궁금하잖아. 그리고 난 쟤가 너한테 관심이 좀 있나 싶었거든.”
“뭐?”
“솔직히 그렇잖아. 마주칠 때마다 딴 애들한테는 찬바람 쌩쌩 불고, 차갑기 그지없는 애가 너만 보면 생글생글 웃으면서 인사를 건네는데 모르는 사람이 봐도 그리 보이지.”
손사래를 저어가며 그럴 리 없다 말했다. 하지만 미영은 계속 어딘가 찝찝한 표정으로 미간을 찌푸리며 생각을 하는 듯 보였다. 앞으로 팔짱까지 끼어가며 고개를 갸우뚱거리기까지 하는 미영이었다.
* * * *
[초등학교 4학년 무렵 현우석과 루나]
“자!”
루나의 앞으로 불쑥 내밀어진 위생봉투 안에 한가득 담겨져 있는 앵두를 건네는 현우석. 루나는 우석의 행동에 생각지 못했다는 반응을 보이며 방과 후 일로 인해 남아있던 유진을 부른다. 루나의 반응에 내심 서운한 듯 눈꼬리가 쳐지는 우석이었지만 알아차리지 못한 루나다.
“이거 봐. 우석이가 앵두를 이만큼이나 갖고 왔어. 직접 따왔대.”
“우와. 먹어도 되는 거야?”
“으, 응. 내일 또 따올 수 있어. 우리 동네에 앵두나무 엄청 큰 거 있거든.”
“진짜 진짜? 우와! 그럼 또 갖고 와. 내일도 먹자 우리 셋이서만. 응?”
우석의 앞에서 해맑게 웃어 보이며 좋아하는 루나를 보는 우석의 입 꼬리가 씰룩 올려지며 미소를 짓는다. 웃고 있는 루나를 보며 자신도 모르게 눈꼬리가 휘어진다.
나란히 셋이 책상에 앉아서 야금야금 앵두를 머금어 먹어댄다. 먹을걸 줘야 애들은 조용해진다는 말이 틀린 말이 아님을 보여주는 모습이었다. 한참을 열심히 먹어 입가가 불그스름해진 루나가 눈빛을 반짝이며 무척이나 궁금하단 표정으로 우석을 보며 묻는다.
“넌 우리 반에 좋아하는 애 없어?”
“어?”
“아, 맞다. 너 그 언니 좋아한댔나?”
“아니.”
“어? 아니야? 그럼 우리 반에 있어?”
차마 말로 대답을 뱉진 못하고 어색하게 고개를 끄덕이는 우석을 보고 루나가 재미있어 하며 바짝 다가들어 캐묻는다.
“누군데, 누군데? 유진이? 남자들 대부분 유진이 좋아하는 거 같던데. 공부 잘하지, 여성스럽지.”
“난 아닌데.”
“진짜? 누군데? 말 안 해줄 거야?”
궁금해 죽겠다는 표정으로 큰 눈을 똘망똘망 떠서 우석을 보고, 마주보고 있던 우석이 시선을 피한다. 무슨 말인가 하려다 화장실을 갔다 돌아오는 유진을 발견하고 말없이 루나의 팔을 쿡 찌른다. 루나는 또 개구진 우석이 자신을 괴롭힌다 생각해 들어오는 유진에게 고자질 하다시피 외친다.
“아! 봤어? 유진아 봤어? 현우석이 나 또 괴롭혀. 우씨!”
“우석이 너 왜 그래 루나한테.”
“에이씨!”
씁쓸한 표정을 짓고, 인상을 한껏 쓰며 교실을 나가버리는 우석. 그런 우석의 반응에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어깨를 으쓱이는 루나.
* * * *
문득 초등학교 때 일이 떠올랐었다. 그래서 나도 모르게 웃음이 픽 하고 새어나왔다. 이런 날 이상하단 듯 보며 눈짓을 하는 미영에게 고개를 슬쩍 가로 저으며 아무 일도 아니란 반응을 보였다. 미영의 말에 갑자기 왜 그때 일이 떠올랐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생각해보면 현우석이랑 내가 초등학교시절 가장 많은 짝꿍을 했었지 않나 싶기도 하다. 새 학기가 되면 항상 남자 중 제일 키가 컸던 현우석과 여자중 제일 키가 컸던 내가 짝꿍이 되는 건 다반사였던 것 같다.
‘그땐 지금처럼 불편하진 않았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