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과 축구 경기, 소소한 기쁨과 추억
김낙윤 신부(한국외방선교회 캄보디아 지부)
▲ 이리저리 넘어지고, 다치면서 한바탕 신나게 축구경기를 하고
돌아가는 꼼퐁참 아이들. 이들의 해맑은 미소가 있기에 선교사의 하루는 행복하다.
오늘은 교구 청소년 축구 결승전이 있는 날.
물론 모든 본당에서 참가한 것은 아니다. 캄보디아에는 세 개의 교구(프놈펜ㆍ바텀방ㆍ꼼퐁참교구)가 있고 사제는 60명이 채 안 된다.
그나마 우리 꼼퐁참교구에는 한국외방선교회 신부 4명을 포함해 사제 12명이 넓은 지역을 담당하고 있다. 불교국가인 캄보디아에서 가톨릭은 소수에게만 알려진 종교이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한 신부가 담당하는 공소가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오늘 축구경기에는 지역이 멀리 떨어져 있고 교통 사정이 안 좋은 이유로 꼼퐁참 근처 공소 아이들만 참가했다. 대상은 5학년부터 10학년 아이들. 7개 팀이 예선을 거쳐 3팀이 결승 토너먼트에 올라왔다. 작은 마을들에서 모였기에 신자가 아닌 아이들이 대부분이다.
부전승으로 결승에 올라가 있는 프랑소아 신부(프랑스)의 '로리억', 3위 결정전을 해야하는 루카 신부(이탈리아)의 '꺼덜루', 그리고 '꺼로까'(내가 주임신부는 아니지만 어쨌든 한국)의 아이들. 마치 미니 월드컵을 연상하게 하는 대진표다.
경기장은 교구청에서 운영하는 남자 아이들 기숙사 앞마당. 유니폼과 축구화가 없는 터라 아이들은 나름대로 준비해온 색깔이 다른 반바지로 팀을 구별했다. 당연히 맨발이다. 며칠 전 한국에서 한 지인이 보내준 돈으로 축구공과 배구공을 10개씩 준비했다. 비록 멋진 유니폼과 축구화는 없지만 새 공으로 축구를 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 아이들은 기뻐한다.
휘슬이 울리고 '꺼덜루'와 '꺼로까'의 3위 결정전이 먼저 시작됐다. 전ㆍ후반 30분씩. 울퉁불퉁한 맨땅에 맨발이지만 아이들은 열심이다. 경기가 잘 풀리지 않는다. 공이 빗나갈 때마다 탄식이 터진다. 내가 축구를 좀 할 줄 안다면 심판에게 작전시간을 요청해 루카 신부와 함께 뛰어들고 싶은 심정이다.
그러나 그럴 일은 전혀 없었다. 다행히(?) 난 축구를 잘 못하고 루카 신부는 며칠 전 아이들과 축구하다가 발을 다친 상태다. 앗! 후반 25분 쯤 '꺼덜루'가 한 골을 넣었다. 경기는 그대로 1대 0으로 끝나버렸다. 아이들이 아쉬워한다. 초등학생들로만 팀을 만들어 왔던 것이 패배 원인이라고 속상해한다. 난 아이들도 달랠 겸 물밖에 준비 안 돼 있는 상황을 보고 빵과 음료수를 사오자고 했다. 덩치 큰(?) 녀석들과 시장에 가서 빵과 음료수를 한아름 사갖고 돌아왔다.
▲ 불교국가답게 캄보디아 예수님은 가부좌를 틀고 앉아 계신다.
▲ 김낙윤 신부.
결승전이 이미 시작됐다. 아직 0대 0. 12시가 되자 햇빛이 점점 강렬해진다. 그래도 아이들은 공을 한번이라도 더 차려고 열심이다. 시간이 흐르자 결승전답게 경기가 격렬해진다. 루카 신부 응원도 덩달아 뜨거워진다. '그도 그럴 것이 프랑스와 이탈리아 결승전이니까'하고 혼자 웃는다.
하지만 사실 이 경기는 신부들 경기가 아니라 아이들 경기다. 자신들 마을의 이름을 걸고 당당히 경기를 하는 것이다. 아이들이 열심히 하기는 하나보다. 벌써 축구공이 3개나 구멍이 났다. 프놈펜에 가서 좀 좋은 공을 사올걸 그랬나보다.
경기장 분위기가 달아오르면서 부상자들이 하나 둘 나오기 시작했다. 넘어지기도 하고 심하게 발이 벗겨진 아이들도 있다. 비상약이라고는 수녀님이 준비해 온 한국 모 제약회사의 물파스와 밴드가 전부다. 아이들은 다칠 때마다 다리를 절며 수녀님께로 왔다. 응급처치라고 해봐야 타박상이면 물파스, 피가 나면 밴드, 이런 식이다.
하지만 수녀님 사랑 때문인지 치료를 받은 아이들은 금방 상처가 아문 듯 아무렇지도 않게 다시 공을 향해 힘차게 달려간다. 결국 제일 작은 마을인 '로리억'이 승리했다. 진 아이들은 못내 아쉬워했지만 '로리억' 아이들이 기뻐하는 모습을 보니 나도 흐뭇하다.
경기를 다 마치고 카리따스 어머니회에서 마련한 점심식사를 했다. 아이들이 어찌나 잘 먹는지 계속 음식을 나르기에 바빴다. 아이들은 언제 경기에 져서 아쉬워했냐는듯 희희낙락이다. 다들 하나가 되어 즐겁다. 식사가 끝나고 주교님께서 시상식을 했다. 2, 3등에게는 축구공과 사탕, 1등에게는 축구공과 사탕, 거기에 덤으로 배구공까지. 아이들이 박수를 치며 좋아한다. 오늘은 승자도 패자도 없다. 아이들 모두가 승자다.
이제 아이들은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야 한다. 하지만 오늘의 아름다운 기억은 영원할 것이다. 트럭에 올라타고 손을 흔들며 다음에 또 만나자고 서로 인사하는 아이들이 자랑스럽다.
즐거운 하루가 지났다. 하지만 주교님과 우리 신부들은 아이들을 마을로 보내고나서야 밥을 먹을 수 있었다. 먹성 좋은 아이들이 밥을 다 먹어치웠기 때문이다. 우리는 늦은 점심이었지만 오늘 있었던 축구경기에 대해, 그리고 아이들에 대해 이야기꽃을 피웠다.
행복하다. 이것이 캄보디아에서 작은 마을 신부로 살아가는 행복이 아닐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