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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07-12 오전 6:13:16 김현경 유홍림(220.76.7.207) 142 제목 키나바루 등정기 1 동남아 최고봉인 키나발루 해외등반은 휘공회 창립이후 첫 번째 해외등반으로서 나름대로 의미가 있다 고 하겠습니다. 이에 관한 산행기를 본격 게재하기 전에 이번 산행이 이루어진 배경과 준비과정부터 소개하는 것이 여러모로 바람직하다고 여겨져 다음과 같이 적어봅니다. 이번 해외산행에 관해 처음 얘기가 나온 것은 8월초에 예정된 휘산회에서의 백두산 등정계획이 발표된 올 2월 무렵이었습니다. 거의 같은 비용과 기일이 소요되는 한편, 등정의 재미나 산의 높이를 감안한다면 Mt. 키나발루가 훨씬 낫다는 전문가의 말을 듣고 전격적으로 결정되었으며, 5월초에 있었던 설악산 등정과 6월 달의 지리산 종주도 키나발루 등정을 위한 준비훈련의 일환이었습니다. 이와 함께 산행 경험이 일천한 우리 회원들의 안전을 위해 박영석 북극탐험대의 대원이었던 강철원 팀장을 소개받아 합류시키기로 했으며, 이번 산행을 계기로 우리 67회 동기 산악회의 대외적인 홍보는 물론 회원들의 자부심 고취 및 활성화를 위해 산 전문 잡지인 『사람과 산』편집부 차장인 윤대훈 기자를 동행키로 하였습니다. 이러한 등산계의 거물(?)들을 건강산악회 수준의 휘공회와 동행시키기까지에는 동기 회장인 김응구 대장의 추진력과 우리 휘공회의 명예대장인 김병태 사장(한국산악스키협회 회장)의 노력이 있었음을 새삼 말씀드릴 필요가 없겠지요. 이어 등정 대상 산인 Mt. 코타 키나발루와 참여인원에 대해 소개해 보겠습니다. 등정포함 총 일정: 7월 5일(토)∼7월 9일(수) 대상 산 : Mt. 코타 키나발루(4095.2 m) : 말레이지아 보르네오섬 샤바주 소재 : 동남아 최고봉 결과 : 전원 등정 등정인원 : 14명(현지 가이드 포함) 67회 휘공회(8명) 김응구, 김한주, 김현경, 백경택, 유홍림, 윤승일, 전영옥, 조명하, 72회 이한구 박경덕(김응구 회사 기술이사)… 휘공회 설악산 및 지리산 등정에도 참여 김병태(산악스키연맹 회장, 초빙대장)…휘공회 설악산 및 지리산 등정에도 참여 윤대운(월간「사람과 산」편집부 차장)…8월호에 휘공회 등정 특집 게재 예정임 강철원(박영석 북국탐험대 대원, 오지 및 트렉킹 전문 가이드) 박건순(현지 가이드) 이상과 같은 기초적 사실들을 소개에 이어, 이제부터는 등정기를 작성해야 하는데, 3박 5일이라는 일정을 한번에 소개하기보다는 등정이전 - 등정과정 - 하산이후로 나누어 소개하는 것이 필자나 독자 입장에서 편할 것 같아 3번으로 나누어 소개하고자 합니다. 그리고 지난 번 지리산 등정기처럼 김현경 동기가 제공한 철저한 기록을 바탕으로 제가 가필을 하는 방식을 취할 것임을 미리 알려드립니다. 우선 서울 출발 및 현지 도착과정부터 써내려 가봅시다. 대원들은 7월 5일(土) 09:30 인천국제공항 3층 G-카운터 앞 집결하기로 예정되어 있었는데 전원이 약속시간보다 훨씬 빨리 도착해 있었다. 대원들은 첫 번째 해외등정을 기념해 단체로 마련한 반팔 티셔츠(왼쪽 소매에 Kinabalu 4095m라고 새겼음)로 갈아입었으며, wife의 횡포로 아침을 거른 친구들은 요기를 하였고, 몇몇 친구들은 환전 등을 마쳤다. 곧이어 보안검사, 출국수속, 화물 탁송 등을 마친 뒤, 쿠아라룸푸르 행이고 중간경유지가 코타 키나발루인 11:35발 MH 065 편으로 인천공항을 출발하였다. 좌석들을 확인해 앉아보니, 우리 대원들 중 가장 운이 좋은 승일이 자리 옆에는 몸매가 끝내주는 동양인 외국 여자가 앉아 있어서 모두가 부러워했다. 대부분의 대원들은 팔자 탓을 하며 평소에 덕을 쌓아둘 걸하고 후회를 하면서 스튜어디스가 놓아주는 간단한 음료를 마신 뒤, 승일이 쪽을 곁눈질을 하면서 좌석 앞에 붙은 모니터를 통해 영화나 노래를 즐기기 시작했다. 어느 정도 시간이 흘렀을까 승일이가 내 쪽을 향해 뭐라고 이야기를 한다. 그 때 나는 헤드폰을 끼고 있어 잘 못 들었기에 별 얘기 아닌가 보다하고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승일이는 계속해서 그리고 더욱 강력하게 손짓을 하는 것 아닌가. 남의 도움 요청에 거절을 하질 못하는 나는 드디어 헤드폰을 벗고 사정을 들어보았다. 얘기인 즉은 옆에 앉은 아가씨가 무언가를 물어보는데, 알아들지 못하니 나와 자리를 바꾸자는 것이었다. 워낙 양반집 자손인 나로서는 예법에도 맞질 않고, 어색도 하여 극구 사양을 하였지만, 승일이와의 의리를 생각하여 자리를 바꾸기로 하고 막 일어나려는데, 때 마침 필리핀 부근을 날고 있던 비행기가 이상기류를 만나 크게 흔들리면서 벨트착용 사인이 커지더니 자리에서 움직이질 말라는 승무원의 안내방송이 있었다. 아! 이것은 분명 우리 조상님들의 만류가 작용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제법 긴 시간이 흘렀고, 이윽고 기내 이동이 허용되었다. 본디 부모님의 말씀보다는 친구들과의 의리를 중시여기는 나였기에 자리를 옮겨 드디어 작업(?)이 아닌 격조높은 사교의 대화가 시작되었다. 대화를 통해 미혼이며 말레이시아 국내선 스튜어디스로 휴가 차 9일 동안 한국관광을 한 뒤, 귀국하는 길이라는 것과 우리가 산행을 마치고 시내 호텔로 들어와 머무는 날은 비번이라 쉰다는 사실들을 알게 되었다. 신의를 생명처럼 여기는 나로서는 한 가지 사실을 알 때마다 중계방송을 해 주었다. 이러한 나의 말을 들은 대원들은 나에게 그녀와 함께 그녀 친구들을 초대하라는 강력한 요청이 있었으나, 산행에 부정이 탈까봐 나는 정중히 자제시켰다. 그러나 비행중이나 도착 후 공항을 벗어날 때까지 긴 시간동안 대한의 남아로서, 그리고 명문 휘문고등학교의 체통을 위해 신사도를 지켰음을 밝힙니다(믿어주면 고맙겠습니다). 이에 이의를 제기하는 대원들은 없을 거라고 믿습니다.(注意要望: 동기들의 홈페이지는 동기들의 가족 특히 부인들도 본다는 사실을 잊지 마십시오.) 예정시간인 15:40(현지 시간은 한국보다 1시간 늦음)에 코타 키나발루에 무사히 도착되었다. 공항주변은 비가 내리고 대지는 흠뻑 젖어있었다. 날씨는 조금 더운 편이었고 습도가 상당히 높았다. 간단한 입국 수속을 마치고 짐을 찾아 나오니 현지 한국인 가이드 박건순(019-871-7899)씨가 기다리고 있다. 당시 공항 주변은 Fruit Festival 준비 관계로 전통복장에 전통악기를 들고 연주와 춤을 연습하는 팀들이 있어 이국적인 분위기에 쉽게 빠질 수가 있었다. 현지시각 16:20 전용버스 편으로 공항을 출발하여 국립공원까지는 약 2시간 30분이 소요되었다. 이 시간을 이용하여 현지 가이드로부터 과일의 여왕인 망기스, 과일의 왕 두리안, 수상가옥, 회교사원, 전화기, 섬, 자동차, 태형 등에 관한 재미있는 이야기와 함께 여행 일정 및 제반 사항에 관한 설명을 들었는데, 이 글을 읽는 동기들에게도 도움이 될만한 내용들만 간추려 보면 다음과 같다: 보르네오 섬 북쪽에 위치한 Sabah 주(州)는 넓이는 남한 면적의 1.5배이고, 인구 300만 명이며, 13개 주 중 두 번째 큰 주이며, 주(州) 수도인 코타 키나발루(Kota Kinabalu, KK)는 우리 나라 면소재지 정도인 인구 6만의 조그만 도시란다. 인구구성은 말레이 30%, 중국계 30%, 필리핀인과 인도네시아인을 합쳐 30% 정도이며, 회교국가이면서도 기독교인들도 제법 거주한다고 한다. 허드렛일이나 힘든 일은 주로 필리핀인이 하며 왼쪽은 전혀 사용하지 말 것이며, 인사는 악수대신 가슴에 손을 대는 것으로 대신하라. 과일 및 야채는 비싼 농약을 사용하지 못해 무공해이므로 그냥 먹어도 된다. 그리고 대부분의 상권은 중국계가 장악하고 있다는 등의 내용이었다. 생리현상도 해결할 겸 저녁시간을 놓친 허기진 배들을 채우기 위해 열대과일들을 종류별로 사서 맛보기로 하여 버스터미널 앞에 위치한 과일시장에 잠시 정차하였다. (참고로 이곳의 버스는 승객이 다 차야 떠나며, 급한 경우, 전원 승차시의 요금 절반 이상을 내면 버스전세가 가능하단다.) 형형색색의 과일들을 먹는 방법부터 배워가면서 맛을 보았더니, 과일마다 기기묘묘한 맛을 보였다. 그 중에서도 칼이 없을 때는, 망고를 가볍게 비벼 내용물을 부드럽게 하여 쪽쪽 빨아먹는 해괴한 방법을 배웠으며, 그 맛 역시 색다른 경험이었다. 조금 가다 다른 상점에서 작은 크기의 monkey banana를 구입하여 시식을 하였다(참고로 이곳에서는 한국에서 쉽게 볼 수 있는 바나나는 맛이 없어 사료용으로 사용한단다.) 안개비 및 소나기가 오락가락 하며 끊임없이 내리는 비를 맞으며, 우리 일행이 탄 버스는 동아건설이 시공하였다는 산악도로를 따라 계속 달렸다. 오늘의 숙박지인 해발 1500m에 위치한 Fairy Garden Resort(仙園 088-889688)에 18:56에 도착하니 이미 어둠은 내리고 주위는 조용하였다. 방은 2인1실로 3층에 전원 배정을 받기로 되어 있지만, 룸메이트를 고르기 위해 날카로운 신경전이 오고간다. 일부 순진한 대원들은 담배 피우는 놈(?)과 코를 심하게 고는 자식(?) 그리고 술을 이겨보려는 의지를 불태우는 투사(?)들을 피하기 위해서 일 것이고, 일부 야만스러운 대원들은 동족(同族)을 만나기 위해서 일 것이다. 우여곡절을 거쳐 룸메이트를 정한 후, 19:30 무렵 저녁식사를 위해 1층 식당으로 내려갔다. 해외여행에서 가장 염려되는 것이 식사문제인데, 특히 동남아의 경우는 더욱 그러하다. 동남아 음식의 대부분은 열대 향료들을 많이 쓰기에 우리의 입맛에는 쉽게 맞질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저녁 테이블은 강철원 팀장이 한국에서 공수해 온 배추김치, 총각김치, 갓김치가 차려져 있었고, 메뉴는 소고기, 두부, 닭 등을 재료로 한 중국식으로 제공되어 별 부담 없이 식사를 즐길 수 있었고, 이들을 안주 삼아 한국에서 준비해 온 소주들을 나누어 마셨다. 식사를 마치고 각자 방으로 오니 내일부터 시작될 산행을 위해 배낭을 다시 꾸리라는 명령이 떨어졌다. 여름 등산장비는 물론 고도가 높은 관계로 겨울 장비도 갖추어야 하기 때문에 배낭의 무게가 제법 나갔기 때문이었다. 배낭무게에 기가 죽어 있던 대원들은 비가 계속하여 내리니 등산화 대신 등산용 샌달을 사용하고, 등산화 및 방한복을 별도로 포장하여 포터에게 맡기자는 대장의 말을 듣고 만면에 희색이 가득해졌다. 산행에 대해 겁을 잔뜩 먹고 있던 탓인지 조금 전의 식사시간에는 말 수도 적었고, 술잔의 회전도 느렸던 대원들이 갑자기 활기를 띠기 시작하더니 김응구-백경택의 방으로 술과 안주를 들고 모이잔다. 가볍게 몇 순배 돌리다가 산의 위엄을 아는 대원(나를 포함)들은 슬금슬금 자리를 빠져나갔지만, (후에 들은 이야기지만) 용맹이 넘치는 극히 일부 대원들은 차수를 옮겨가며 음주를 즐겼다고 한다. KK의 첫 날밤은 이렇게 갔다. 키나발루 등정기 2 드디어 역사적인 7월 6일(日)이 밝아 오고 있었다. 싱그러운 새소리에 잠이 깬 나는 승일이를 깨워 몸을 풀 겸 산책을 하자고 했다. 밖에는 여전히 안개비 수준의 비가 내리고 있었다. 밖에 나와보니 \’영원한 산 꾼\’임을 자부하는 현경이가, 그리고 저만치에서는 할배처럼 아침 잠이 없다는 불평을 듣고 있는 경택이가 이미 산책을 하고 있었다. 우리 넷은 키나부루 정상이 보이는 곳으로 이동해 정상을 응시하는 순간 산의 위용에 압도되어 넋을 잃을 정도였다. 그러나 우리가 누군가? 정신을 가다듬은 후, 우리 누구나 마음속으로 안전하고도 성공적인 등정을 바라고 빌었을 것이다. 돌아오는 길에 나머지 대원들도 하나하나 나와 몸을 풀고 결의를 다지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이렇듯 학창시절에 예습에 충실했다면… 아침식사 시간까지는 여유도 있고 해서, 호텔방에 연결된 베란다로 나가 보았다. 베란다 바닥에 많은 새 배설물이 떨어져 있었는데, 고개를 들어 천장을 보니 많은 제비집들이 있었다.(제비집 요리가 비싸다더니---). 눈을 정면으로 돌리자 일생일대 다시는 경험할 수 없는 광경이 펼쳐지고 있었다. 내 눈앞에ㅡ 그것도 약 10미터 정도의 거리에 무지개가 펼쳐져 있는 것 아닌가? 보통 무지개는 횡으로 펼쳐지는데, 내 앞에 있는 무지개는 종으로 세워져 있었다. 마치 손을 뻗으면 잡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나 혼자 보기에는 아까워 호들감을 떨며 이 방 저 방 뛰어다니기 시작했다. 아침식사는 American 스타일로 마치고 주문해 두었던 한국식 도시락을 배당 받은 후, 08:10 경 전용버스를 이용하여 국립공원 관리소로 이동하였다. 약 4분 후 해발 1564 m에 위치하고 있는 국립공원 관리사무소에 도착했다. 현지 가이드 박건순씨가 입산신고를 하는 동안 우리는 사진 촬영을 하였고, 강철원 팀장의 지휘아래 전원이 둥글게 둘러서서 유격체조와 유사한 스트레칭을 하였다. 한 동작 한 동작 옮겨갈 때마다 고통스런 외마디가 절로 나온다. 나이 오십이 가까운 일행 모두 운동부족임을 실감할 수 있었다. 수속을 마친 가이드와 팀장은 형광 빛이 나는 연두색 줄에 달린 명함크기의 플라스틱 카드(개인 이름 및 고유번호 기재되어 있음)를 개인별로 나눠주면서 산행하는 동안에는 항상 목에 차라는 주의를 주었다. 이어서 팀장은 자기 옆에 서있는 현지인 두 사람(44세, 21세의 남자들)을 소개한다. 이들은 우리와 함께 산행할 고산족인데, 산행 안전은 물론 이들의 생계를 위해 8명 단위로 고산족 가이드(가이드가 되려면 최소 500번 이상의 등정기록이 있어야 한다고 함)를 1명씩을 배정을 받도록 되어 있단다. 또한 그 옆에는 순박하게 생긴 산골처자와 같은 두 여자가 있었는데, 이들이 바로 우리가 포터로 쓸 사람들이란다. 우리가 무거워 배낭에서 빼낸 짐들을 우리보다 키도 덩치도 작은, 그것도 여자 둘에게 맡겨진다니 너나 할 것 없이 마음이 편치 않은 듯 한 마디씩 한다. 이 때 현경이가 경험자답게 한 마디를 한다. \"현실로 받아드리라고… \" 08:55에 총 18명이 셔틀버스 2대에 나눠 타고 10분쯤 달려 Timpohon Gate(1866 m)에 도착하였는데, 이곳에서 다시 조금 전에 놓아준 증명서를 일일이 확인을 한 다음 통과를 시켜주었다. 09:10 경 첫 해외 산행의 첫 걸음이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이쯤에서 좀더 구체적인 산행 코스와 기후 등을 소개하는 것이 이 글을 읽는 동기들의 이해에 도움이 될 것 같아 다음과 같이 소개한다. 코스: 팀폰게이트(해발 1,866m) → 6 Km ← 라반라타 산장(해발 3,272m) → 2.7 Km ← 정상(로우픽, 4,095m). 편도 8.7㎞ 코스 특징: 산행코스는 처음부터 끝까지 거의 계단식의 오르막길로 이루어져 있다. 등산로 전체 합하여 평지는 약 200m 정도가 전부이란다. 등산로는 겨우 두 사람이 비켜 갈 수 있는 흑단 나무 계단이 주를 이루었고 때때로 돌계단으로 정비되어 있지만 그리 미끄럽지는 않았다. 그러나 이 코스는 계단의 높이가 불규칙한데다가 영국의 식민지 시절에 개발되어서인지 무릎정도의 높이도 많아 다리가 짧은 종족에게는 더욱 힘이 들었다. 특히 현경이의 경우는 그러했을 것이다. 나 역시 예외가 아니었다. 다리도 짧은 것이 체중까지 많이 나가니 말이다. ※기온: 평지 30도, 1,866m 등산기점 약 20도, 라반라타 산장 근처는 가을 날씨, 정상 부근은 초겨울 날씨(바람이 강해 체감온도는 더 추움). 원 세상에 이런 일이: 출입구 왼편에 녹색 바탕에 노란색 글자로 적힌 게시판이 눈에 띄어 살펴보았다. 내용인 즉은, 매년 시월 이곳에서 자칭 세계에서 가장 험난한(toughest) 산악마라톤(international climbthon)이 개최된다는데, 세계 각국에서 참가하는 선수가운데 매년 대회 우숭자는 3시간 미만이 소요된다는 내용이다. <참고: 2001년 제 15회 대회 기록 남자: 21Km 정상까지 왕복 1위 2:42:35 (멕시코 선수), 여자: 18Km 라반라타 산장까지 왕복 1위 3:08:12 (체코 선수)> 고소적응이 잘 되어 있고, 평소 체력관리를 해온 정상적인 사람이라도 2틀 정도가 소요된다는 점을 생각할 때, 도저히 믿어지지 않는 기록이라고 할 수 있다. 기죽지 맙시다! 우리와는 분명 다른 종(種)일터이니! 출발 작전 강철원 팀장은 전원을 모아 놓고 마치 자기가 치열한 전투를 앞 둔 지휘자인양 다음과 같은 명령을 한다. \"자기 앞을 추월해 가는 대원은 무조건 총살이다. 절대로 속도를 내지 말라. 그리고 휴게소마다 반드시 쉬며 물을 자주 마셔라.\" [참고: 오늘 묵을 라반라타 산장(해발 3,272m)까지의 6 Km 구간에는 비를 피할 수 있도록 만든 작은 정자와 음료수 탱크, 그리고 화장실을 갖춘 7개의 휴게소가 있다.] 잔뜩 긴장을 하고 첫 발을 내딛은 대원들의 앞에는 지극히 완만한 내리막길이 펼쳐져 있는 것이 아닌가! 룰루랄라하면서 한국에서의 산행 속도로 보이려는 문제아가 눈에 띄자, 강 팀장은 지금 이 코스는 이 산행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인 내리막이라는 경고의 메시지를 보내는 것을 잊지 않았다. 가장 아래쪽에 위치한 규모가 적은 Carson 폭포를 지나자, 바로 오르막이 시작되었다. 계속적인 오르막길이지만 워낙 겁을 먹은 데다가 끝없이 이어지는 원시림 때문에 힘들다거나 지루하다는 느낌은 없었다. 평탄한 흙 길을 지나고 가파른 나무계단을 오르니 첫 쉼터인 Pondok Kandis(793 m거리)이 나왔다. 그 때 시각은 09:38. 듣던 대로 쉼터는 5평정도로 육각형 양철지붕으로 되어있고 둘레는 의자가 설치되어 있었다. 다시 출발을 해 얼마 가지 않아 비교적 세찬 비가 내리기 시작하였다. 현지가이드 박건순씨에 따르면, 열대지방의 날씨는 하루에 보통 한 두번은 스콜이 내리지만, 요즈음은 이상 기후현상이라 수시로 비가 많이 내린다고 한다. 그래서 대원들은 재빨리 준비해 온판쵸우의 또는 방수 상의를 착용한 채 등반을 할 수밖에 없었다. 산행의 시간이 길어지면서 몸은 더워지는데, 비가 내려 습도도 높고, 더구나 방수 장비까지 착용하니 점점 앞 뒤 대원들의 숨소리가 거칠게 들려온다. 이 때 산행모습 및 경관 촬영에 분주하던「사람과 산」지(誌) 기자이신 윤대운 차장이 한 마디 한다. \" 배낭을 맨 채 판쵸 우의를 뒤집어 쓴 모습이 마치 곱추들의 순례행진과 같아 보인다.\" 고… Pondok Kandis쉼터에서 441 m거리에 있는 Ubah 쉼터를 지나, 750 m거리 Lowi 쉼터에서 다시 휴식을 취한다. 틈만 나면 강 팀장을 비롯해 가이드들이 \’고산병은 천천히 걷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라고 강조한 덕인지 선ㆍ후미간 차이가 별로 없었다. 쉴 때마다 식수와 산행식을 권하며 나누어 먹었다. 물론 인간미가 그윽한 우리 대원들은 고산가이드와 포터들도 잊지 않았다. 다시 출발해 920 m거리의 Mempening 쉼터(2515.47 m)를 거쳐 12시경 Layang Layang(2702.3 m) 쉼터에 도착하여 점심식사를 했다. 거센 비속의 오르막 행군이어서 인지 아침에 놓아준 도시락을 꺼내 서둘러 식사를 하였다. 흰 쌀밥에 불고기, 갈치, 김치, 고추장 등 맛있는 반찬이 다양하게 담겨져 있었지만, 어느 한 사람 남기는 사람이 없었다. 먹는 모습을 살펴본 팀장은 아직까지는 고산병 증세를 느끼는 사람이 없는 것 같다는 말을 하면서 다시 한번 천천히 갈 것을 강조한다. 심지어 갈지(之)자로 걸으라고 까지도 한다. 비가 그칠 낌새를 보이지 않자, 산행이 속개되었다. 이제부터의 산행 길은 천연적인 돌계단의 연속이라 점차 힘이 들어갔다. 734 m거리의 Villosa(2960.8 m) 쉼터를 통과하여 417 m 거리의 Paka Cave (3080.42 m)쉼터에 도착하는 과정에서 몇 몇 사람은 드디어 고소증세를 나타내기 시작했다. 점점 말이 적어지고 걷는 모습이 느려지면서 앞 대원과의 거리가 점차 멀어지는 데도 따라잡을 의욕을 잃어가고 있는 것 같았다. 나의 경우는 등산화가 젖을 것을 염려한 나머지 처음부터 Aqua shoes를 신고 등정을 하였기에 신발은 물론 양말까지 젖은 상태로 오랜 시간 걷다보니 저체온 증세가 나타났다. 점차 뒤로 처졌고, 자꾸 앉고만 싶어졌다. 몇 발짝 가다가는 서서 숨을 몰아쉬기를 반복하였다. 동료 대원들의 격려 속에 산행은 계속하였다. 날씨 등의 이유로 비록 예정보다 다소 늦었지만, 첫 번째 산장인 Waras Hut(3244 m)에 거쳐 오늘의 목적지인 Laban Rata Resthouse(3273 m)에 드디어 도착되었다. 우선 따뜻한 커피 한 잔씩 나누며, 5:00로 예정된 저녁 식사 때까지 젖은 옷가지를 말리면서 산장 베란다로 나가 풍광을 구경하면서 휴식을 취했다. 이러한 동안 강 팀장과 현지 가이드인 박 건순씨는 숙소를 체크하고 있었다. 입산하기 전에는 비교적 시설이 좋고 난방이 되며, 같은 건물에서 식사도 가능한 Laban Rata 산장을 예약하였는데, 이곳에서 확인해 보니 Gunting Lagadan Hut(3323 m)에 8명(4인 1실), Pana Laban Hut(3314 m)에 6명이 따로 따로 배정되었단다. 가이드에 따르면 이러한 사실에 이상해 하질 말란다. 산장은 선착순으로 예약을 받되, 자국민 우선 주의라 자국민이 몰리면 밀릴 수밖에 없단다. 따라서 추위를 느끼면서 밤을 지새워야할 각오를 하란다. 이러는 동안 우리의 팀 닥터인 학주가 대원들의 고소증세를 살피면서 한 보따리 가져온 약들을 무료로 조제해 준다. 학주의 세심한 배려에 모든 대원들은 고마움을 느꼈다. [학주의 배려는 이것으로 그치지 않는다. 기대하시라. 공개박두! 학주의 로비나 압력이 들어오기 전에 얼른 세 번째 등정기를 써야 하는데 …] 뷔페식으로 차려진 메뉴에 한국에서 가져온 각종의 밑반찬들이 펼쳐지고, 영원한 우리의 간식인 라면을 곁들인 저녁 식사가 진행되었다. 이 때 누군가가 플라스틱에 담긴 야외용 산 소주를 꺼내 놓았다. 뚜껑을 열어 이리 저리 권했지만, 고소증세에 머리가 아프고, 술을 먹으면 고소증세가 심해진다는 경고를 귀아프게 들은 탓인지, 어느 누구도 쉽게 받질 않는다. 마치 식당 안을 돌아보던 산장 매니저가 소주를 보면서 반색을 한다. 이때를 놓치지 않고 소주 한 병을 들고 그에게 달려간 가이드는 뇌물의 대가로 침낭 14개를 공짜로 받아온다. 역시 한국민은 위기에 강하며 정이 많은 사람들이다. 이 때 현경이가 소주는 그러하니 맥주를 몇 캔 사서 나눠 마시자고 하니, 강 팀장 왈, 여기서는 달러가 사용되지 않으며, 환전도 불가능하고, 이미 술 파는 시간이 지났다고 한다. 결국 아쉬움만 남긴 채, 식사를 마칠 수밖에 없었다. 식사를 마친 뒤, 숙소로 옮겨갈 무렵 비가 그쳤다. 내일 새벽 남지나 해에서의 일출을 볼 수 있다는 가느다란 희망을 갖을 수 있었다. 배정된 숙소에 따라 대원들은 나뉘어졌고, 일부 대원들은 내일 산행을 위한 짐을 꾸리는가 하면, 일부 대원들은 양치와 세면을 했으나, 고소증상이 심한 대원은 눕기부터 시작한다. 실명(實名)은 댔다가는 야구방망이로 맞을 것 같아 이 정도로 그치려 한다. 그러나 아이큐가 높은 우리 독자들은 \’야구 방망이\’ 하면 누구인지 분명 알 것이라 믿는다. 또한 만약 내가 야구방망이로 맞게되면 도와줄 것이라는 점도 믿어 의심치 않는다. 어느 정도 휴식과 정리가 끝나자, 대원들은 함께 모여 등산에 관한 장비 및 장비사용법, 트랙킹하기 좋은 장소 등에 대해 강 팀장으로부터 강의를 들었다. 이것도 수업시간이라고 역시 조는 학생들이 있었다. [조는 이야기가 나와서 말인데, 영옥이가 그리 잠이 많은 줄을 몰랐다. 한 마디로 앉으면 자고, 결정적인 시기엔 화장실을 가든지 담배를 지우려 가는 바람에 중요사항이 제대로 전달이 되지 않는가 하면, 단체사진마저 같이 찍을 수가 없을 정도였다. 그로 인해 대원들의 스트레스 해소에는 커다란 기여를 했으나, 영옥이의 룸메이트인 현경이의 헌신적인 노고가 요구되었다. {영옥아! 너는 나를 뭘로 때릴거니?} ] 배정받은 숙소에서 산 아래를 내려다보니 구름과 안개가 오락가락 하는 가운데 우리가 첫날 묵었던 숙소가 보이고, 멀리 구름에 가려진 남지나해도 보인다. 그리고 낮에 내린 비로 거대한 계곡의 물이 굉음에 가까운 소리를 내며 폭포수처럼 흘러 장관을 이루며, 원색의 석양 노을이 넋을 빼앗겨 잠시나마 고소증세가 완화되는 듯했다. 밤이 깊어가자 거의 대부분의 대원들이 고소증세를 호소하기 시작한다. 비교적 산행능력이 뛰어나고 신중한 명하마저 두통을 호소하며, 학주를 찾아 약을 얻어먹고, 나아가 내일을 위해 예비약도 마련해 둘 정도였다. 경험이 있는 현경이가 머리를 따뜻하게 하고 잠을 자질 말고, 찬물을 손이나 얼굴을 대질 말라는 충고가 이어지는 가운데, 약 봉지를 든 학주의 움직임이 빨라진다. 무사히 밤을 지내야 새벽 2:00에 예정된 산행이 수월할 텐데...... 대원들은 각자의 침상에서 눕거나 장비를 점검하면서 고소와 싸우고 있었다. 나 역시 발이 너무나 시러워 담요와 침낭으로 감싸고 마사지를 계속하면서 순간순간 잠에 빠지고 있었다. 잠시 눈을 부쳤지만, 오랜 숙면에서 깨인 것처럼 다소 개운해졌다. 제법 시간이 간 줄 알고, 양치와 세면, 그리고 생리작용을 해결한 뒤, 짐을 꾸리고 있었는데, 옆 침상에 자던 응구가 깨 시간을 묻는다. 정확히는 모르겠다는 나의 말에 자신의 시계를 확인하더니 이제 10:00밖에 되질 않았다고 한다. 그 말에 다시 누웠지만, 발이 시러워 쉽게 잠이 오질 않는다. 다시 한참 마시지를 한 뒤, 잠을 빠지려 하는데, 영옥이가 화장실에 휴지가 없다며 투덜대며 자기 방도 아닌 우리 방에 들어와 잠을 깨운다. 밉다 미워! 정말 미워! 드디어 7월 7일(月) 새벽 1:00 무렵이 되었다. 대원 모두가 스스로 일어나 간단한 세면과 장비점검, 그리고 겨울복장으로 차려입느냐고 부산해 졌다. 가이드 박건순씨가 끓여온 차를 나누어 마신 뒤, 드디어 헤드랜턴을 착용하고, 물과 행동식, 우비 등을 담은 배낭을 메고 출발선에 섰다. 출발 직전 강 팀장의 무시무시한 경고가 떨어진다. 라반라타 산장으로부터 정상까지는 하얀 밧줄로 연결되어 놓여있는데, 밧줄에서 1m을 벗어나면 깊은 낭떠러지로 떨어질 수밖에 없으며, 낭떠러지로 떨어지면 1주일을 찾아도 못 찾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단다. 따라서 졸리더라도 밧줄을 잡고 자란다. 이 말을 들은 대원들이 어찌 겁에 질리지 않을 수 있겠는가? 마치 착한 유치원 학생들처럼 밧줄에서의 간격과 앞 대원과의 거리를 유지하기 위하여 무진 애를 쓰는 모습이 역력했다. \’가다 서다\’를 반복하다보니 어느 새 날이 밝아 오고 있었으며, 정상도 다가오고 있었다. 마침 내 헤드랜턴도 끌 정도가 되었으며, 앞선 대원들이 정상을 알리는 외침도 들린다. 드디어 전원이 06:30에 정상인 4095.2 m에 올라섰다. 비록 날씨가 흐린 탓에 남지나해의 일출 광경은 조망할 수 없었으나, 낙오나 사고없이 전원 등정하였다는 기쁨으로 서로 축하를 아끼지 않았다. 개별로, 또는 둘이서 기념사진을 촬영한 후, 드디어 비밀리 추진해 온 깜짝 파티가 열렸다. 이번 산행의 최고연장자이신 박경덕님의 회갑을 축하하기 위하여 기념 플랭카드와 케익을 서울에서부터 비행기로, 버스로, 그리고 산길로 운반해 왔던 것이다. 정상에서 상자를 풀어보니 케익은 신기하게도 조금의 흠집조차 없었다. 초를 꽂고(바람 때문에 불을 못 켰지만), 축하노래를 부른 뒤, 기념촬영을 하였다. 정상 부근에 있던 여러 외국인 등반객들도 축하행사에 참여해 주어 매우 감격스러운 장면이 연출되었다. 실은 등산길에 빠리바케트 케익상자를 본 외국인들이 의아해 하면서 질문을 해 온 적도 여러 번 있었으며, 축하케익 한 조각을 못 얻어먹어 아쉬워하던 말레이시아 처녀(간호원이었으며, 영어도 능숙하였고, 매우 애교가 많았다)의 실망을 하산하는 동안 계속해서 달려주어야 했다. 물론 이 몫도 내가 감수해야 할 부분이었다. 한 모금의 정상주를 나누어 마신 뒤, 드디어 하산길에 올랐다. 하산 직전 김응구 회장이 대표로 하여 강철원 팀장의 위성전화를 사용하여 한국에 기쁜 소식을 전하기도 했다. 완전히 어둠이 사라지자 등산로가 완연히 드러났다. Donkey Ear peak를 지날 무렵 로프 양쪽으로 수 십 미터 펼쳐진 암반을 보고 강철원 팀장을 사기죄로 고소하자는 의견도 나왔지만, 원래 마음이 넓고 머리가 좋은 우리 동기들은 무사 등정을 위한 선의의 거짓말인 점을 이해하고 용서해 주기로 했다. 이러한 결정에 감격을 한 강 팀장은 한술 더 떠 어제 맥주건(件) 역시 거짓이라는 양심고백을 하였다. 우리는 너무나 허탈했다. 그러나 한 번 용서하기로 했기에 사나이 중의 사나이들인 우리는 더 이상의 추궁은 하질 않기로 했다. 어둠 때문에 보질 못했던 광경들을 여유롭게 즐기면서 비교적 자유롭게 내려왔다. [다음 문단은 원작에는 없었던 내용이다. 심각하게 오랫동안 고민을 거듭한 뒤, 첨가시켰다는 사실을 밝힌다.] 물론 내려오는 길목에서도 인원점검 절차가 있었다. 올라갈 때에도 거쳤던 곳이었는데, 그 곳에는 몇 개의 2층 침상과 식수대가 설치되어 있었고, 그 건물 밖에는 화장실도 마련되어 있었다. 바로 이 곳에서 정말 안타까운 그러나 웃지못할 헤프닝이 벌어졌다. 실은 이 내용은 무덤까지 가져가려고 했었는데, 정보의 공개와 공유가 하나의 파라다임으로 작용하는 시대의 흐름을 거역할 수 없어 밝히기로 결심을 하였다. 그 순하디 순한 명하에 관한 이야기이다. 비교적 무난하게 고소를 견디어 오던 명하가 아침이 밝아오자 \’아침 밀어내기\’를 하려 휴지를 얻어들고 당당하게 화장실에 들어갔다. 얼마 후 명하가 문을 열고 나왔다. 그런데 들어갈 때와는 달리 옷을 제대로 치켜 올려 입지도 못한 채, 휴지는 여전히 손에 들고 있었다. 너무나 멍하게 서있는 명하의 모습을 지켜 본 대원들은 웃을 수만은 없었다. 얘기를 들어본 즉은, 변을 보려고 힘을 주는 순간 머리가 띵해지면서 어지러워져 넋이 잠깐 나간 것 같다는 것이다. 이처럼 고소는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그 누구나에게나 올 수 있음이 증명되었다. 이러한 광경을 지켜본 학주이지만, 생리작용을 억지할 수 없었던지 결의를 단단히 하고 화장실 문고리를 잡았다. 그러면서 \’홍림아, 너 가지말고 여기서 꼭 있어야 해\’ 하는 당부를 거듭하면서 ---- ] 각자 묵었던 산장에서 겨울 복장 대신 여름복장으로 착용한 뒤, 짐을 꾸려 다시 라반라타 산장(3273 m)에 집결하였다. 그 때 시각은 08:40 무렵이었다. 간단히 아침을 먹은 뒤, 바로 하산길에 올랐다. 고소증상도 어느 정도는 가신 데다가, 정상을 정복했다는 승리감에 도취되어 다들 발걸음이 가벼운 것 같았다. 매번 휴게소마다 쉬었던 것과는 달리 두 개의 휴게소마다 한번 씩 쉬면서 내려 왔으며, 내려오는 동안 희귀한 식물들에 대한 설명도 들었다. [Mt. 키나부루는 세계 4대 자연식물원으로 유엔의 철저한 보호를 받고 있다고 한다]. 하산 길에 올라오는 많은 외국인을 만날 때마다, \’힘들게 왜 올라가냐.\’ \’나 같으면 도로 내려가겠다\’ 등등의 농담을 하며 매를 먼저 맞은 경험자로서의 여유를 즐겼다. 이러는 가운데 출발기점이었던 팀폰게이트에 도착을 하였고, 그 때 시각 14:30분이었다. 이 곳에서도 역시 확인점검을 받았다. 왜 이렇듯 여러 차례 확인을 하는가 하는 의심이 관리사무소에 와서야 풀렸다. 지구성에 등정증명서를 주는 곳은 킬로만자로와 이곳 키나부루 단 두 곳이란다. 관리사무소에서 정상등정 증명서(근사한 문양을 바탕으로 한 졸업장 크기의 종이에 이름, 등정일자, 일련번호가 적혀 있음)를 발급 받고 첫날 묵었던 Fairy Garden Resort에 15:20경 도착해 맥주로서 등정축하주를 마시고 점심식사를 마친 뒤, 맡겨준 짐을 찾아 4시경 KOTA KINABALU를 거쳐 골프장, 수영장, 헬스크럽 등을 갖추고 있는 리조트 스타일의 Suerta Habour 호텔에 5시 경 도착하였다. 잠시 샤워와 휴식을 가진 후, 중국식당으로 자리를 옮겨 저녁을 하면서 아직도 남아 있던 소주들을 풀어놓고 마시기 시작했다. 한 여자 종업원의 눈치가 한 잔 얻어먹고 싶은 하는 것 같았다. 한 두 잔 남아있는 병들을 치우는 척 하면서 슬그머니 가져가려는데, 술 한 방울을 피같이 여기는 모 대원의 눈에 걸렸으니, 얼마나 야속하고 서러웠을까? 이 대원의 실명(實名)을 거론하면 분명 나는 살아남기 어려울 것 같아 정보공개를 보류하기로 했다. 만약 독자들이 강력하게 원한다면야 생명을 무릎 쓰고 공개하겠지만…. 이렇게 저녁을 마치자, 경제개념이 전혀 없는 강팀장이 자연산 용봉탕을 내겠다고 자리를 옮기자고 한다. 워낙 예의가 바른 우리들은 극구 말렸지만, 그리고 사도 우리가 사야 한다면 나이가 조금이라도 많은 사람들의 말을 들으라며 협박까지 하였지만, 산 사나이답게 어떠한 위해(危害) 위협에도 굽히지 않아 할 수 없이 응하기로 하였다. 안내된 곳은 마치 우리나라의 포장마차 촌과 같은 곳이었다. 강 팀장이 용봉탕, 식용개구리 튀김, 새우, 조개 등의 요리와 함께 현지 술을 시키는 바람에 이미 배가 부른 우리들은 음식의 절반 가까이를 남기고 말아 미안함을 느끼고 말았다. 내일 일정에 관한 안내를 받으며 호텔에 도착한 후, 각자 방으로 해산해도 된다는 허락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우리의 주당 영옥이가 응구와 내 손을 꽉 잡으며, 경택이와 승일이한테도 따라오라고 한다. [정작 자신의 룸메이트인 현경이는 술이 제법 되었다는 핑계로 제방으로 가도록 뒷거래가 있었던 모양이다. 역시 한국인들은 연고(緣故)가 있으면 특혜를 받게 마련이다.] 기억력이 좋은 독자들은 기억하겠지만, 승일이와 내가, 응구와 경택이가 룸메이트였기 때문에 영악한 영옥이가 그 중 한 사람씩만을 낚아챈 것이었다. 자기가 저녁 무렵 낙조(落照)에 물든 바다를 보았던 자리에 가서 생맥주 한 잔 더 하자는 것이었다. 그 한잔이 몇 잔이 될지는 그 누구도 모르는 일이지만… 소주만으로는 자신의 주량을 알 수 없다는 영옥이에 잡힌 우리는 거의 사색이 되어 끌려간다. 그 이상의 이야기는 독자들의 상상에 맡겨 두기로 한다. 이젠 마지막 날이 남았다. 키나발루 등정기 3 [등정기 1, 2를 14일 이전에 읽은 분들은 죄송하지만, 사진과 지도들도 첨가했고, 감추려고 했던 내용들도 용기를 내어 첨언하였으니, 한 번 더 방문하시길 바랍니다. 불편을 드려 죄송합니다.] 7월 8일(火)의 일정은 지난 2틀에 걸친 산행으로 인한 피로도 풀 겸 열대지방의 색다른 향취를 즐기고자 마련된 스케줄이었다. 08:00 (호텔 뷔페식) 식사, 09:00 무인도인 사피섬으로의 출발이 예정되어 있었는데, 그 시간보다 훨씬 이전에 각 방별로 일어나 산책을 하는 사람, 실외 수영장에서 수영을 즐기는 사람 등이 있었다. 나와 승일이, 그리고 경택이는 헬스클럽을 찾아 가볍게 러닝머신과 바이크를 타며 몸을 푼 뒤, 사우나를 즐겼다. 이러는 과정에서 절실하게 체험한 것이 있다. 너무 이른 아침이라 영어를 구사할 줄 아는 호텔직원은 보이지 않았고, 단지 청소나 정리 등 허드렛 일을 하는 하급 직원들만 나와 있는 상황이라 나의 유창한(?) 영어는 무용지물이었다. 답답함을 느꼈던지 승일이는 한국말과 함께 현란한 바디랭귀지를 사용하였는데, 놀랍게도 그 위력은 가공할만한 것이었다. 직원이 알아듣고 손가락으로 가르쳐 주려고 하자, 그의 손을 덥썩 잡고는 같이 가자고 끌었다. 결국 납치된 상황에서도 침착을 잃지 않았던 직원에 의해 우리의 모든 문제는 해결되었다. 결국 승일이의 용기에 나의 지성은 꼬리를 감추지 않으면 아니 되었다. 이윽고 아침 식사를 한 후, 호텔 선착장에 모여 사피섬으로 떠나기 위해 모터보트를 탔다. 탈 때 나누어 준 구명조끼를 착용하고 자리에 앉자, 모터보트는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이 때 고소의 쓴맛을 단단히 경험한 본 경택이가 어느 정도 회복되었는지 예의 장난기를 발동한다. 보트 운전자에게 갖은 모션을 쓰면서 최대 속도를 내는 것은 물론 보트를 이리저리 몰라는 주문이었다. 순간 모터보트의 엔진은 6000 RPM을 가리킨다. 튀어 오르는 물줄기를 피하라, 날아가려는 모자를 잡으랴 정신이 없었다. 경택이의 고소증상이 좀더 강했고, 좀더 오래 지속되었으면 하면 바램은 분명 나뿐만이 아니었을 것이다. 섬에 도착하여, 예약한 자리로 이동했다. 커다란 나무 밑에 하얀 식탁보가 덮여져 있는 서빙 테이블과 식탁, 그리고 의자들이 격조있게 놓여져 있었다. 각종 음료를 담은 아이스박스도 함께 ---- 고개만 돌리면 비키니를 입은 늘씬한 외국 여자들이 눈에 들어오자, 여자 몸매에 대해서는 각자 일각연을 지닌 터라 품평회로 시끌벅적하다. 정신차려 이 친구들아! 다 그림의 떡인데-----. 이러한 아수라장이 어느 정도 정비되자, 대원을 둘러 세운 뒤, 김병태 대장이 스노클링에 위한 장비 착용법과 함께 유영하는 법을 알려준다. 역시 만능 스포츠맨임을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다. 가이드 박건순씨로 부터 이 곳에서 즐길 수 있는 해양스포츠의 종류와 가격을 소개한 뒤, 주문을 받는다. 우리 대원들이 관심을 가진 것은 sea walking(US $80)과 파라세일링(US $23)인데, 전자는 4명만, 후자는 전원이 타기로 예약을 했다. 스노쿨링 장비는 무료로 대여하고 있는 반면, sea walking은 선체로부터 산소를 공급받을 수 있도록 줄이 연결되어 있는 제법 커다란 헤드기어를 쓰고 5미터 정도 깊이의 해저를 걸으면서 열대어와 산호를 구경하는 것이고, 파라세일링은 모터보트에서 줄로 연결된 낙하산을 타고 바다 위 하늘을 날아다니게끔 되어 있는 기구이다. 줄을 어느 정도 풀고 당기느냐와 보트의 속도에 따라 하늘 높이 올라가기도 하고, 바다에 빠지기도 한단다. 예약시간까지는 다소 여유가 있어, 섬 가운데 있는 산을 가볍게 올라가 보기로 했다. 산은 열대지방의 희귀한 나무들이 빽빽이 우거져 있고, 원숭이들이 몰려다니는가 하면, 거대한 개미집들도 눈에 띄었다. 산을 내려와 섬 반대편에 도달하자, 형형색색의 죽은 산호들로 해변은 메워져 있었다. 처음에는 신기한 모양의 산호들을 집어보기도 하였는데, 전부가 신기하고, 그 숫자도 너무 많아 처음 느꼈던 신기함이 사라질 정도였다. 이렇듯 무아지경을 보내고 있는데, 갑자기 돌 구르는 소리가 나서 고개를 돌려보니, 족히 2미터는 넘어 보이는 이구아나가 내려오고 있는 것이 아닌가! 겁을 먹고 줄행랑을 놓다가, 눈에 길다란 나무가 보이고, 돌들이 널려져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더구나 내 옆에는 영원한 우리의 왼손 투수이었던 경택이가 있질 않은가? 우리는 나무로 위협하고 경택이는 옛 명성 그대로 돌을 들어 정확히 맞추자 이구아나는 숲 속으로 달아나고 말았다. 동료들에게로 돌아 용사들이 이 같은 무용담을 어찌 같이 나누지 않을 수 있겠는가? 산행에 동참하지 않은 대원들은 이미 스노클링을 즐기고 있었다. 나도 장비를 갖추고 물에 발을 담는 순간, 환상 그 자체인 광경이 벌어지고 있었다. 갖가지 색깔의 열대어들이 마치 무지개 빛을 이루며 군무(群舞)를 연출하고 있었는데, 나를 인식한 열대어들이 나를 물 속의 향연에 초대라도 하려는 듯, 물 속에 담긴 내 다리를 슬며시 건드리며 스쳐간다. 나도 인어가 되어가 되어 한 동안 어울려 주었다. 참 인어는 여자들이라던가? 12:00 무렵 각종 해물을 바비큐 식으로 요리한 음식들이 차려지고, 별도로 준비된 김치들도 펼쳐진다. 이에 소주들이 곁들어지니 아무런 생각도 하고 싶지 않고 단지 이 순간만을 즐기고 싶을 뿐이다. 특히 식사 중에는 원숭이들이 산에서 내려와 식탁의 주변과 나무 위로 오르내리면서 음식을 얻어 가는 광경에 지상낙원이 따로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점심식사 후 예약을 해 두었던 파라세일링을 할 시간이 되어 두 대의 보트로 나누어 탔다. 내 쪽에는 김병태 대장과 학주, 승일이, 현경이, 영옥이가 같이 탔다. 승무원들이 안전 장구들을 챙겨 입혀주지만, 유격훈련만 받아 보았지, 공수훈련은 받아 본 적이 없고, 수영장에서 어느 정도 수영을 하지만, 바다에서는 자신이 없는 나는 다소 겁에 질러 있었다. 우선 김병태 대장의 멋진 고공 쇼가 펼쳐졌고, 이어서 현경이와 나의 차례가 되었다. 실제 하늘에 띄고 보니 안정감이 있었고, 오히려 여유가 생겼으며, 내릴 시간이 오질 않기를 바랬다. 이 대 현경이의 말이 걸작이다. 애연가인 현경이는 창공에서 담배 한 번 피워보고 싶단다. 이런 말을 주고받고 있는 찰나, 김병태 대장이 보트 운전자에게 무언가를 이야기한다. 순간 우리는 줄의 길이와 속도를 조절해 우리를 물 속에 빠트리라는 주문일 것이라는 예감이 들어 각오를 단단히 하고 손에 힘을 잔뜩 쥐어 밧줄도 잡아 보았지만, 우리는 결국 여러 차례 짜디짠 바닷물을 먹을 수 있는 기회를 가졌다. 이러한 과정에서 특별한 사실들도 알게 되었다. 특히 영옥이가 덩치와는 어울리지 않게 겁이 많다는 사실과 함께 김학주 원장의 가운데 부분(?)이 아주 크면서도 새하얗다는 것을 말이다. 파라세일링을 하다보면 엉덩이를 받혀주던 안장 같은 부분이 뒤로 밀리게 되니, 자연히 입고 있던 수영복은 더 이상 올라갈 수 없을 정도로 말려지는데, 그것을 감지했더라도 밧줄에서 손을 뗄 수 없는 상황인지라 속수무책이었다. 마침 우리 보트에는 선장의 부인과 어여쁜 딸이 동승하고 있었다. 그들은 대부분 앞을 응시하면서 바람을 피하고 있었지만, 타고 내리는 순간만은 뒤쪽으로 고개를 돌려 안전한 이착륙을 확인하고 있었다. 다들 흉하지 않을 정도로 수영팬티가 올라가 별 문제없이 내렸는데, 왜 학주의 팬티만은 그토록 높게 말려졌는가 하는 의문이 생긴다. 이는 아마도 학주 팬티가 가장 비싸다거나, 본디 여자들에게 세심하고 정중한 배려를 하는 학주의 동승하고 있는 모녀를 위한 퍼포먼스이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런 저런 해프닝 속에서 시간이 흘러 호텔로 돌아올 시간(3:00)이 되었다. 간단히 샤워를 하고 짐을 챙겨 5:00에 로비에서 만나기로 했다. 이윽고 호텔을 출발해 간단한 토산물을 사고자 KK에서 가장 크다는 백화점에 들렀다. 돌아보니 별달리 살만한 물건이 없고, 저녁예약한 시간까지는 약 2시간 정도 남았다. 항상 시간을 알뜰히 사용하던 우리 가운데 누군가, 동남아에서 유명한 그리고 한국에서도 성업중인 발 마사지 얘기가 나왔다. [결코 누구라고 밝히지는 않을 터이니 당사자는 마음을 조리지 않아도 됩니다. 정보공개도 좋지만 가정의 평화는 굳게 지켜야 한다는 신념을 갖고 있습니다. 더 이상 알려고 하면 다칩니다. 주의 하십시요]. 마사지의 종류와 가격, 장소에 관한 정보를 들은 뒤, 각자 알아서 갈 사람은 가고, 쇼핑을 계속할 사람은 하기로 하고 7:00에 다시 만나기로 하고 찢어졌다. 전부 집결한 시각은 7:10분경. 전세 버스를 타고 중국식 샤부샤부를 가장 잘 한다는 Putera 식당에 도착했다. 두 테이블로 나눠 앉아, 간단히 먹는 법을 들은 뒤, 각자의 창의성을 발휘해 조리에 들어갔다. 실험정신이 강한 우리 대원들은 식탁의자에 앉아 있는 시각보다는 음식재료를 담아 나르는데 더 많은 시간을 보낸 듯 싶다. 이 시간을 이용해 「사람과 산」 기자인 윤대훈 차장은 한 사람 한 사람 씩 인터뷰를 따기 시작했고, 세계에서 유일하고 4000미터 정상에서 환갑 상을 받은 박이사님은 전리품인 프랭카드에 사인을 받기도 하였다. 21:20경 식당을 출발해 마지막으로 시원한 바닷가에서 과일주스를 마시며, 김병태 대장의 사회로 평가회를 가졌으며, 사용한 경비의 결산 절차 등을 가졌다. 다들 진지하다 못해 엄숙한 표정과 어조로 등정을 전후로 한 심정을 이야기하며, 서로가 서로에게 고마움을 표하는 자리가 되었다. 그래서 그런지 분위기는 진지하다 못해 엄숙할 정도였다. 이러한 분위기에 익숙하지 않았던지 우리의 산 꾼 현경이는 이미 술꾼으로 변해 있었고, 그의 주변 사람들은 그를 말리고 있었다. 그렇지만 술 취한 현경이의 모습은 섹시할 정도로 귀여웠다. 여러 평가내용 가운데, 우리 동기들 모두에게 나누고 싶은 내용이 있었다. 우리 휘공회의 산행능력이 보통 수준은 넘으며, 휘공회처럼 대원 전원이 모두 정상까지 올라간 경우는 극히 드물다는 박건순씨의 이야기가 바로 그것이다. 이윽고 공항에 도착해 출구수속을 마치고, 정들었던 현지 가이드 박건순씨와 포옹을 나눈 뒤, 01:05 공항 출발 MH064 편에 몸을 실었다. 모든 대원은 자리에 앉아 눈을 감은 채, 이젠 꿈결같은 시간들을 뒤로하고 현실을 직면해야지. 또 열심히 살아가자는 결의를 다지고 있는 듯 보였다. 도착한 인천의 시각은 07:05이었고, 입국신고를 마친 뒤, 07:40 쯤 해단식을 갖고 각자 집으로 행하였다. 마지막으로, 이처럼 좋은 기회를 보다 많은 동기들과 함께 할 수 없었다는 아쉬움과 무사고를 빌며 가슴 졸였던 가족 분들에게도 명색이 가장인데 혼자만 즐겨서 미안함을 표합니다. 또한 짧지 않은 산행기를 읽어주신 분들은 특히 많은 복을 받으시기를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