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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거제시로 소유권 반환 지심도는 아담한 장승포항에서 5km쯤 떨어져 있어 뱃길로 15∼20분 걸린다. 아직 꽃샘추위가 떠나지 않았지만 봄을 맞으러 남쪽 바다 위에 떠 있는 지심도로 향했다. 2006년 6월 지심도에 처음 갈 때 배를 태워줘 인연을 맺은 반용호(60) 선장이 이번에도 반갑게 반겨주었다. 지심도 주민자치회 사무국장 이영구(54)씨도 동행했다. 여행은 낯선 곳에서 또 다른 나를 만나듯이 누구를 만나도 반갑다. 선장은 배가 출항하자 주의사항과 지심도 오디오가이드북 설치를 안내했다. 주변 풍경을 감상할 사이도 없이 배는 금빛 바다를 미끄러지듯 지심도 선착장에 닿았다. 선착장에 내리면 지심도반환기념비가 있다. 지난해 3월 국방부에서 거제시로 소유권이 반환 된 것을 기념하는 비석이다. 섬 입구부터 이어지는 동백터널에 접어들면, 수령이 수백 년도 넘은 아름드리 동백나무가 봄이면 앞다퉈 꽃을 피워내 숨막히는 절경을 연출한다. 지심도 초입 바위틈 사이 절벽을 타고 흐르던 물줄기가 모여 내려오다 귀한 동백꽃 한 송이를 싣고 왔다.
바다와 어우러진 원시 동백림 지심도는 동백나무가 숲 전체의 60~70% 정도를 차지하고 있다. 진초록 나뭇잎과 함께 가지 위에서 한 번, 꽃 채로 툭 떨어져 바닥에서 또 한 번, 두 번 피어나는 동백꽃에 취해 걷다보면 선홍빛 꽃들 너머로 몸을 뒤척이는 쪽빛 바다가 마중을 나온다. 작은 섬은 하늘에서 보면 마음 心 자를 닮아 지심도(只心島)라는 예쁜 이름을 얻었다. 뜻은 ‘다만 마음을 다할 뿐’이다. 마음 대신 다만 동백꽃뿐이라고 해도 좋은 동백숲길이 있는 섬이다. 해마다 섬 전체에 불을 지른 것처럼 붉은 동백꽃이 섬을 덮는다. 12월부터 이듬해 4월까지가 동백꽃이 만발하는 숲길이 제 색깔을 마음껏 내는 시기이다. 지심도는 중생대 백악기에 형성됐다. 면적은 35만6000㎡, 해안선은 3.7㎞로 십리가 채 안 된다. 가장 높은 곳이 해발 97m이다. 옛 문헌에 따르면 조선 현종 45년에 사람이 이주해 살았다는 기록이 있다.
무심한 세월에 추억이 된 인연 1936년 일본에 의해 강제 이주 후 일본군 1개 중대가 주둔하며 군사시설을 만들었다. 1945년 광복 후 주민들이 돌아왔고 밭농사를 짓고 어업을 하며 생계를 이어왔다. 지금은 15가구(주민등록:24세대 39명) 20여명이 민박을 하며 살고 있다. 동백꽃은 매년 피고 지는데 세월은 참 무심하다. 꽃보다 아름다운 것이 사람의 인연이라 했다. 2006년 지심도에 처음 왔을 때 지심도에 전력발전기를 운영하던 홍종관씨가 있었다. 그의 집에서 끓여주던 된장찌개에 반해 선뜻 민박을 예약해두고 7년 만에 갔더니 홍씨는 세상을 떠나고 없었다. 2003년 지심도가 좋아 무작정 왔다고 했던 손순국씨도 섬을 떠나고 없었다. 천천히 민박을 지나 마끝 해안절벽으로 향했다. 마끝으로 가는 탐방로는 말끔하게 다듬어졌다. 거제시는 마끝에 망원경과 긴 의자를 놓고 나무데크 전망대를 설치해 놓았다.
볼거리 많은 생태와 역사 탐방로 마끝 전망대에서 발전소로 향했다. “2009년부터 마을에 전기를 공급하기 위해 내연기관 발전기가 쉼 없이 돌아간다”며 윤필영(45)씨가 안내했다. 마끝에서 발전소 앞을 거쳐 탄약고로 이어지는 출렁다리 조성공사가 한창이다. 자연은 항상 그대로가 좋건만. 지심도는 연평균 기온이 14℃인 해양성기후로 동백나무와 난대성 식물이 생장하기 가장 좋은 자연생태를 가지고 있다. 관속식물 61과 116종으로 좁은 면적의 도서지역에서 큰나무가 12그루나 있어 학술적, 문화적, 생태학적 보존가치가 매우 높다. 또한 일제강점기 태평양전쟁 최후의 방어 지역으로 일본군 주둔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현재 포대 4곳, 탄약고 4곳, 방공호 3곳, 서치 라이트 보관소, 방향지시석, 경계표찰, 중대장 관사, 전등소, 전등소장 관사 등 역사 유적이 남아 있다. 자연생태와 역사의 흔적을 제대로 살펴볼 수 있는 탐방로 조성사업이 말끔하게 완료되어 있다. 우거진 칡넝쿨과 대나무를 제거하고 금계국과 달맞이꽃을 파종했다.
‘경남의 걷고 싶은 길’ 선정 지심도 동백숲길 약 3.5km는 ‘경남의 걷고 싶은 길’로 선정됐다. 경사가 급하지 않은 평탄한 오솔길은 아이들도 거닐 수 있는 편안한 길이다. 섬의 구석구석까지 이어진 길을 걸으며 바다의 절경을 감상하는 여유를 부릴 수 있는 곳이다. 숲길을 따라 국방과학연구소에서 옛 분교가 있던 곳으로 내려섰다. 애처롭게 피어있는 붉은 동백이 나그네를 반겨준다. 이끼가 낀 건물은 주민자치회 사무실이다. 운동장과 건물을 활용하려고 했더니 규제가 많아 쉽지 않다고 했다. 분교 터를 나서면 탐방로와 화장실이다. 그리고 곧 지심도에서 가장 넓은 공간이 펼쳐진다. 경비행기가 이륙한 흔적은 없는데 활주로라고 불린다. 해맞이 명소이다. 윤후명 소설 ‘지심도 사랑을 품다’ 속 사랑이 이루어지는 섬을 주제로 빚은 러브 러브 하트상이 있다. 영남대학교 조소과 최병양 교수가 기부했다. 청동이라 무게 때문에 지심도까지 옮기는 데 힘들었다고 했다. 문득 나오시마 해변의 노란 호박 조형물이 떠올랐다. 이내 전망대 동백터널이다. 짙은 초록색 잎에 붉디붉은 꽃이 어우러진 동백 모습이 맑고 강렬하면서도 애잔하고 천연한 이미지로 카메라에 담긴다.
지심도 이영구 사무국장의 꿈 있다. 지심도 탐방로 망루에는 이씨가 주민들을 설득해 국기봉을 세우고 대형 태극기가 펄럭이게 했다. 태평양을 오가는 배에서 봐도 우리 땅임을 당당하게 보여주기 위해 세웠다고 한다. 관광객들이 버리고 간 쓰레기를 주우면서 건축 폐자재, 섬 곳곳에 쌓여있는 베어 낸 대나무도 치우고 싶어 했다. 지심도 스토리텔링과 자연 그대로의 보존, 주민들의 작지만 행복한 삶 그리고 나오시마 지중미술관 같은 명품 관광 섬 등 그의 꿈이 이루어지기를 소망한다. 심재근( 옛그늘 문화유산답사회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