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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제물로 섭리하셨나?
아담해와의 타락으로 인하여 하나님은 타락한 인간을 복귀하시기 위한 섭리로 인류 역사를 이끌어 오실 수밖에 없으셨습니다.
이러한 복귀섭리 역사에 어김없이 등장하는 것이 바로 제물입니다.
그렇다면 왜 복귀섭리를 위해서 어김없이 제물이 있어야 하는 걸까요?
인간의 타락, 즉 아담해와의 타락은 죽음을 불사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한 것이었습니다.
선악과를 따먹으면 정녕 죽으리라 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고 뱀(천사장 누시엘)의 말에 꼬임을 당해 결국 사탄의 주관을 받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는 하나님에 대한 불효요, 배신이요, 거역이요, 심정의 유린이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자녀로 지으신 그 창조이상은 절대적이기에 인간을 버리실 수 없으셔서 복귀섭리는 아담해와 타락 직후부터 진행이 되었던 것입니다.
인간(아담해와)은 하나님을 배신하고 거역하지만, 하나님은 절대심정이요 절대사랑이셨기 때문에, 인간의 타락은 인간이 잘못한 것이 아니라, 당신이 잘못한 것이라는 심정으로 우리를 찾아오신 역사가 바로 인류 구원섭리 역사였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타락한 인간을 버리고 새로 만드실 수 있는 능력이 충분히 계십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절대심정과 절대사랑의 하나님이요, 절대원리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당신이 모든 책임을 지시고 불철주야 복귀섭리에 총력을 기울이셨습니다.
억겁의 세월을 투입해 아담을 위해 천지창조를 하셨듯이 언젠가 다시 찾아 세울 수 있다는 절대소망을 품고 죽어버린 아담을 다시 살리시기 위한 부활섭리 역사가 피어린 6000년 섭리였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원리에서 배웠듯이 아무리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시지만 인간만큼은 인간 스스로의 책임분담이 더해지지 않으면 복귀할 수 없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이 아담을 다시 살려내시려는 부활섭리, 구원섭리는 인간이 함께 협조해야만 완성을 기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 협조, 즉 인간의 책임은 바로 제물이 되는 것이었습니다.
즉 하나님이 재 창조를 하실 수 있는 내가 되는 것이 바로 제물이 되는 것입니다.
아담해와가 죽음을 무릅쓰고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고 타락의 길을 갔기 때문에 반대로 죽음을 불사하고 사탄을 거역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절대 순종 복종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원리에 의해 하나님은 제물섭리를 하셨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께로 돌아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제물이 필요했던 것입니다.
물론 제물의 역사는 인간의 심령 수준에 따라 나 대신 실제 제단 위에 올리는 제물(농산물, 비둘기, 양, 암소)로부터 시작해서 상징적 제물(성막이나 지성소 법궤 등)이나 육신을 직접 드리는 제물(이삭, 예수님), 심정의 제물(재림주님의 생애)까지 나타나게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제물은 어떠한 조건을 갖추어야 할까요?
첫째, 제물은 죽어 피를 흘리고 불태워야 합니다.
구약시대에는 동물이나 농산물을 나 대신 제물로 바쳤습니다.
그런데 피를 내어 죽이지 않고 제단에 올릴 수 없습니다. 그리고는 번제로 드렸습니다. 불태웠다는 것입니다.
이는 반드시 나 자신을 제물처럼 죽이고 피흘리고 불태워 희생을 하라는 뜻입니다.
당연히 죽어야 한다는 것은 생물학적 죽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말씀 앞에 절대 순종, 절대 복종, 절대 희생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자기 욕심이나 생각, 의식을 가져서는 제물이 될 수 없는 것입니다. 자기를 절대부정하지 않고는 결코 사탄과 인연을 끊고 하나님께 돌아갈 수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피흘리고 불태운다는 것은 절대 희생을 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나 대신 제물을 바쳤던 것입니다.
이렇게 제물을 죽여 피흘리고 번제로 드리는 것은 바로 나 자신을 대신 죽여 희생으로 바치는 것이 되어야 합니다.
재림주님 이후 시대는 말씀을 완전히 이루는 성약시대로 심정의 제물 시대이지만, 나를 죽이지 않고, 희생하지 않고는 결코 제물이 될 수 없는 것입니다. 자신의 육의 욕심, 즉 부귀영화나 권력 등을 버리고 영으로 살기 위한 말씀 앞에 절대 순종 복종 희생의 길을 가야 제물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오직 위하여 사는 희생의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둘째, 제물은 숫 제물, 순결한 것이어야 합니다. 즉 깨끗하고 순결한 것으로 변함없이 끝까지 드릴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제물은 순결해야 하고 처음 것, 숫것을 드리는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에 대한 순결한 사랑으로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나 재림주님의 말씀으로 중생하려면 그 말씀을 배신, 거역하지 않고 절대신앙 절대사랑 절대복종의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처음 동기와 결심을 잊어버리면 그는 이미 제물이 아닙니다. 하나님께로 돌아가기 위한 처음 마음, 불변의 신앙, 절대심정으로 살아야 제물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재림주님의 말씀에 티끌만치라도 흠이 있다면 사탄이 참소한다고 하셨습니다. (뜻길 107)
성경에도 언제나 숫것을 제물로 드리게 한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재림주님은 '예수님은 숫제물로 왔다 가신 분'이라고 하셨습니다. (뜻길 105)
셋째, 제물은 기쁨으로 드려야 합니다.
억지 제물은 제물이 될 수 없습니다. 제물이 될 수 있다는 내가 되었음에 자부심을 느끼고 기뻐 감사하는 모습이 되어야 제물이 될 수 있습니다.
'제물된 나는 제물을 받으시는 하나님이 기뻐하고 제물로 인하여 은사를 받은 사람들이 기뻐한 연후에 기뻐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뜻길 102)
억지로 드리는 제물은 참 제물이 될 수 없습니다. 심정 속에 감사함이 우러나와 기쁨으로 드리는 제물이어야 하나님이 기뻐 받으실 수 있는 것입니다.
재림주님께서도 탕감은 억지로 하는 것이 아니라 감사한 마음으로 기쁜 마음으로 영광의 한 날을 위하여 제물 된 심정으로 가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죽었던 나를 무상으로 살리셨으니 이 목숨은 이제 내 것이 아니라 하늘의 것인즉 어떻게 하면 하늘이 기뻐할 수 있을까? 하고 영광되게 죽을 자리를 찾아갈 줄 알아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뜻길 109) 기뻐 제물된 삶을 살 수 있어야 진정한 제물된 삶을 살 수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절대 자신을 부정하고 순결한 마음으로 기뻐 하늘 길을 가는 자가 하나남의 섭리에 합당한 제물된 삶입니다.
제물된 삶을 살지 않고서는 결단코 하나님의 자녀로 중생 부활할 수 있는 길이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제물을 통해 구원섭리하신 그 뜻을 우리 심령 속 깊이 되셔겨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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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림주님 말씀>
숫제물로 바쳐져야 할 기독교 신자
예수님이 4천년 역사와 만민을 대신하여 하나님이 즐겨 받을 수 있는 산제물로, 생축의 제물로, 숫것으로 바쳐진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도 예수님께 숫제물로 바쳐져야 합니다.
생애에 인륜과 천륜의 도리를 다해야 하며, 뜻을 이루기 위하여 이 땅에 왔던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하늘의 아픔을 대신 느낄 수 있고, 예수님이 느끼시던 천적인 사랑의 심정을 체휼하면서 준비한 교단으로부터 배척받아 불쌍하고 가난한 사람을 찾아가야 했던 예수님의 사정을 알아드리는 신부가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그런 사람이 된다면 하나님의 원한을 풀 수 있는 동시에 인간을 구원하기 위하여 오셨던 예수 그리스도의 원한을 비로소 풀 수 있습니다.
사랑의 예수님은 이 땅에, 패역하고 배반하는 백성들을 찾아오셔서 자신의 이상을 의논해야 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배반한 선조들을 가진 우리는 하늘을 배반해 온 노정을 거슬러 올라가서 '아버지의 뜻이 이런 것이 아니옵니까? 이 몸을 받으시옵소서!' 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이와 같이 역사를 대표하고 나설 숫제물, 어느 누구도 만지지 않고 보지 않았던 숫제물로 드려질 사람을 찾고 계십니다.
우리가 성품을 다한다 하더라도 현재의 성품은 사탄 세상으로부터 용납 받던 성품이요, 마음을 다한다 하더라도 사탄과 속삭이던 마음이요, 뜻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므로 끝날에 처한 우리는 반드시 사탄적인 성품과 마음을 변화시켜야 합니다. 인생관과 우주관도 바꿔야 합니다. 이제까지 알고 있던 신앙관으로는 사탄을 이길 수 없고, 사탄의 참소조건에 걸려 있는 무대를 통과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숫제물로 십자가에 돌아가신 것은 처음인 동시에 마지막이며, 이것은 예수님께서 당신의 성품과 마음과 뜻을 이 땅의 인간들에게 소개해 주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역사성을 대표하고 만물을 대신하여 하나님이 귀하게 볼 수 있고, 하나님이 참되다 할 수 있으며, 하나님이 기뻐하고 사랑할 수 있는 분이었습니다.
여러분은 예수님으로부터 사탄의 참소를 받을 수 없는, 사탄의 소유가 될 수 없는 성품을 느낄 때가 있고 예수님의 천적인 인격을 헤아릴 수 있을 것입니다. 또 그런 마음을 느꼈다면 예수님의 내적 사정을 느낄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인격과 내적 사정을 헤아리는 사람이 있다면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역사하실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이 찾아야 할 놀라운 역사적인 우주의 초점, 넘어야 할 우주적인 관문이 있다는 것을 사람들은 모르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숫것으로 드려지기를 바라는 예수님의 소망이 남아 있습니다. 이제 우리가 그 소망을 어떻게 찾아 이룰 수 있겠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그 소망을 찾으려면 과거의 자신의 부족했음을 깨달아야 하고, 그 부족함을 하나님에게 통회해야 합니다. 회개하더라도 눈물을 흘리고 또 흘려야 합니다. 30여 평생 흘렸던 예수님의 눈물을 대신할 수 있는 마음이 없어 가지고는 안 됩니다.
예수님께서 30여 평생 자나깨나 먹으나 굶으나 일편단심 그 한 뜻을 세우기 위해 있는 힘을 다했던 그 소망의 성품을 본받아야 하고, 죽음의 길을 가야 되었던 예수님의 비참한 심정을 느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땅 위의 믿지 않는 인간들을 위해서 회개의 눈물을 흘리시는 생활을 하셨고, 그것으로 끝나지 않고 저나라에 가서까지 눈물을 흘리고 계시다는 사실을 알아야 됩니다. 이러한 예수님의 내적 심정을 통하고, 내적인 천성의 이념을 알고, 내적인 예수님의 생활적인 모습을 알아 가지고 눈물을 흘려 하늘땅에 채워도 부족함을 느껴야 합니다. 눈물이 어리고 뼈살이 녹는 애달픈 심정을 이어받고, 성품을 통하고 마음과 뜻을 통한 예수님의 그 모든 사랑과 인격을 나를 통하여 표현할 수 있게 될 때 거기에서부터 천적인 인연을 중심삼고 예수님과 하나될 수 있습니다.
그런 심정을 느낀다면 죽음의 구렁에서 나를 살려주신 예수님 앞에 감사함을 느낄 것입니다. 그 감사의 마음을 마음 몸에 채우고 온 땅과 하늘에 채워도 부족함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은 아담 해와를 잃어버릴 때 하나님이 느꼈던 천지가 무너지는 것 같은 서러움을 풀어드리기 위하여, 또 인간을 찾으려는 하나님의 뜻을 대신하여 오셨지만, 자신을 보내신 그 뜻을 이루어드릴 수 없게 되었을 때, 하나님이 아담 해와를 잃어버릴 때 느끼던 서러움을 느끼셨습니다.
오늘날 역사적인 원한을 해원해야 될 인간들이 하나님을 잃어버리고도 서러워 할 줄 모르게 되었으며, 신랑인 예수님을 잃어버리고도 서러워 할 줄 모르게 되었습니다. 또 자신에게는 하나님의 서러움을 위로해 드려야 할 책임이 있다는 사실도 모릅니다. 그러한 입장에 머물러 있다면 하나님의 섭리 앞에 나서서 아무리 아버지를 불러도 하나님은 나타나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 주신 말씀이 헛된 말씀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진정으로 하나님을 대하여 '나의 아버지'라고 하신 것과 같이,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는 사람이 있다 할진대 하늘땅이 감동할 것입니다. (2-69, 57.2.24)
출처: 사랑이야기 - 제 3권 예수님 사랑편 - 제 3장 참사랑의 예수님 - 1. 하늘의 사랑을 세우시려는 예수님
제물은 반드시 피를 흘려야 됩니다. 피를 보기 좋아하는 하나님이 아니지만 죽었다가 살아났다는 조건을 세우게 하지 않는 한, 죽었다는 입장에 세우지 않고는 살려낼 수 있는 길이 없기 때문에 하나님은 제물을 희생시켜 피를 흘리게 해 가지고 지금까지 역사시대를 연결시켜 나오신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은 구약시대를 제물로 탕감조건을 세워 용서해 주면서 이스라엘 민족을 키워 나오셨습니다. 그리하여 그 위에 메시아를 보냄으로써 신약시대를 맞고 메시아를 중심삼은 승리적 국가를 만들려고 하셨는데, 그 메시아를 믿지 않게 되니 메시아가 실체의 제물이 되어 가지고 죽은 것입니다. 양은 상징적인 것이고, 양을 잡아 제물을 바친 터전으로 만들어 놓은 이스라엘 민족 전체는 구약시대의 열매와 마찬가지이므로 그러한 구약시대의 열매들이 예수님과 하나되었어야 될 것인데, 그것이 안 됨으로 말미암아 예수님을 실체 제물로 안 바칠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십자가에 돌아가게 되었습니다.
다시 말하면 구약시대에 제물을 드려 용서받아 가지고 이루어진 것이 이스라엘나라요, 유대교이므로 그 상징적인 제물의 터전이 예수님의 발판이 되었어야 할 것인데 그 상징적인 제단이 없어지니까 예수님이 대신 실체로서 바쳐지지 않고는 길이 막혀 버리게 되었습니다. 그러기에 할 수 없이 예수님이 제물 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개인적으로 피를 보고, 가정적으로 피를 보고, 국가적으로 피를 보고, 세계적으로 피를 보며 나온 것이 기독교입니다. 기독교가 순교의 종교가 아니 될 수 없었던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됩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죽었다가 부활한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도 피 흘리는 놀음을 해야만 부활한 예수님을 맞아 그와 접붙여서 한 몸이 되어 참감람나무와 같은 입장에서 낙원에 들어갑니다. 영적인 기준입니다. 그러니까 영적으로만 해서는 안되겠으니, 다시 지상에 와야 일을 해결하겠기 때문에 예수님은 이 땅 위에 다시 오겠다고 약속을 해 놓고 갔습니다. 그 끝날이 되어 가지고 이제 새로운 메시아가 와야 할 때가 되었습니다. (선집 54권 251쪽)
<뜻길>
91 불평하지 말자. 탕감은 순종을 통하여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92 자기가 타고난 천성보다도 더 억울한 자리로 낮아지면(제물적 입장) 하나님이 긍휼히 여기시고, 또 사탄도 치지 못한다.
94 탕감노정은 제물의 기간이니 존재하기는 하되 존재의식을 가져서는 안될 기간이다.
96 심정적 생활 앞, 제물적 생활 앞, 누구보다 깨끗한 제물이 된 분이 예수님이시다
98 제물은 사정을 보아 주어서는 될 수 없다.
102 제물된 나는 제물을 받으시는 하나님이 기뻐하고 제물로 인하여 은사를 받은 사람들이 기뻐한 연후에 기뻐해야 한다.
103 아침의 첫기분이 하루의 생활을 결정한다. 그러기에 아침에 첫제물로서 하나님이 기뻐할 수 있는 것을 보기에 힘쓰라.
105 예수님은 숫제물로 왔다 가신 분이다. 숫제물은 남이 만지지 않고, 남에게 보이지 않고, 순수한 첫번 것을 뜻함이니 성품과 마음과 뜻을 다함에 있어서 숫것으로 드릴 수 있는 자가 되어야 한다. 결코 쓰다 남은 성품, 쓰다 남은 마음, 쓰다 남은 뜻을 가지고 바칠 때에는 하나님의 사랑을 체휼할 수 없는 것이다.
107 여러분이 바치는 생명에 미련이 남아 있는가? 하나님 앞에 바치는 제단위에 제물로서 티끌만치라도 흠이 있다면 사탄이 참소할 것이다.
109 죽었던 나를 무상으로 살리셨으니 이 목숨은 이제 내 것이 아니라 하늘의 것인즉 '어떻게 하면 하늘이 기뻐할 수 있을까?' 하는 마음으로 영광되게 죽을 자리를 찾아갈 줄 알아야 한다.
111 재림 이후 시대는 암소시대이다. 암소는 주인을 위해 살아 생전 온갖 충성을 다하고, 그리고 번식을 다하고, 뿐만 아니라 죽어서 뼈, 가죽, 살 등 안 바치는 것이 없다.
114 제물은 순종굴복의 표상이다. 고로, 제물은 자기라는 소유관념이 없고 죽음 앞에서도 반항할 줄 모르는 것이다.
126 우리들은 제물이다. 먼저는 받으시는 하나님과 속죄함을 입은 만민이 기뻐하고, 그다음에 제물이 기뻐한다.
130 물질 가지고 제물 드리는 것이 구약시대를 탕감하는 것이요, 육신 가지고 희생시키는 것이 신약시대를 탕감시키는 것이요, 심정을 가지고 눈물로써 뜻을 받들어 나가는 것이 성약시대를 복귀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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