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쇠재두루미 떼를 따라 날다 이 수 익
쇠재두루미 떼가 히말라야산맥 가파른 직립의 고도를 넘어가고 있다 계절을 나기 위해 이동해야 하는 습성, 떼는 대오를 지어 날며 생명의 상형문자를 저 높은 하늘벼랑에 찍고 있다
연회색 날개가 퍼덕이며 소리 내어 읽는 일련의 문장들이 점점의 약호略號가 되어 뿌려지는, 시퍼런 장천長天
운명은 이런 것이다 결연함만이 우리를 살게 하거나 혹은, 깨끗이 죽게 할 수 있다
따뜻한 상승기류를 타고 쇠재두루미 떼가 날아오르는 동안에도 어느 순간 폭풍과 난기류가 유령처럼 와락 나타날 수 있으므로 검독수리의 날카로운 주둥이와 발톱이 그들을 덮칠 수도 있으므로 |
날갯짓 하나하나는 운명을 건 약속, 물러설 수 없는 길을 바로 지금, 시간의 바퀴에 굴리며 가야 한다
만년의 침묵 하얗게 내뿜는 히말라야산맥 고산준봉 너머로
쇠재두루미 떼 행렬이 유랑의 무리처럼 까마득히 물결치며 날고 있다 새들과 산맥 사이의 공간에, 생사를 건 팽팽한 대치가 서로를 긴밀하게 빨아들이고 있다, 아니, 밀어내고 있다 가깝게, 때로는 멀리 파도치는 그들의 윤무가, 바로 생이다!
50인치 모니터 화면을 덮고 있는 장대한 백색 풍경 속에서 나는, 멀어져 가는 쇠재두루미 떼의 날갯짓을 떠받치고 싶어 기를 쓴다. 탁자 위 유리컵이 굴러 떨어지며 소리친다. |
창천(蒼天)아래 만년설산의 하얀 침묵, 그 비의(秘意). 가볍게 밀어 올려주는 따뜻한 상승기류. 와락 나타날 고봉준령의 복병들. 전존재를 걸고 히말라야 산맥의 가파른 파동을 새까맣게 넘어가는 쇠재두루미 떼의 물결. 계절의 엇갈림에 물러설 수 없는 직립의 벼랑계곡. 그들의 날갯짓을 떠받치고 싶어 기를 쓰는 話者. 극도의 긴장으로 전율하는 대기의 파동을 이기지 못하고 소리치며 굴러 떨어지는 유리컵. 무생물에 이르기까지 온 천지만물이 하나가 되어 쇠재두루미 떼가 직립으로 치솟은 장대한 백색의 하늘벼랑을 무사히 넘어가기를 기원한다.
두루미 중에서도 몸집이 유난히 작은 쇠재두루미는 생사의 갈림길에서 막 일어선 시인자신의 객관적 상관물이다. 쇠재두루미 떼에 빗대어 아포리아를 건너온 시인의 감회와 고마움, 그리고 생물과 무생물, 고저, 귀천, 완급, 생사가 하나라는 장자(莊子)의 제물론(齊物論)적 경지에서 깨달은 비의, 즉 생명사랑과 생의 기쁨과 고요한 평화가 깃들인 경지를 노래하고 있는 것이다. 이 詩를 읽으면서 그곳에 간다면 “내가 누구인지, 남아있는 삶의 비전과 목표를 찾을 수 있을는지” 하는 갈망으로 안달이 나기 시작했다.
지금도 연중 1센티씩 솟아오르는 젊은 히말라야. 1억2천만 년 전 남극 쪽에 있던 인도 판이 북쪽으로 서서히 이동하기 시작, 드디어 5천만 년 전 유라시아판과 인도 판이 중앙아시아에서 맞닥뜨리게 되었다. 두 개의 판이 맞물고 융기하면서 사람의 범접은 금하고 신들만이 사는 영원한 눈의 거처, 히말라야(‘히말’은 눈, ‘말라야’는 거처)가 무한 장천으로 솟구치게 된 것이다.
인도, 네팔, 부탄, 티베트 등 4개국에 걸친 만년설산맥의 히말라야. 비행기가 평행선으로 날기 때문에, 한 시간 이상 만년설의 웅자가 우리 눈앞에 전개된다. 우리는 마차푸차레(6,993m)의 베이스캠프(MBC 3,700m)와 안나푸르나(8,091m) 베이스캠프(ABC 4,130m)까지만 올라가 신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기로 했다.
우리란 LG의 OB 산악동호인 모임인 LG사랑방산악회 회원, 부인, 친구들로 구성된 평균 70세 전후의 13명이었다. 2011년 11월 11일 10시경 인천공항을 출발해서 11월 22일 0시 40분경 인천공항에 돌아오기까지, 카투만두와 포카라에서 각각 일박씩하고 비행과 버스 이동시간을 빼고도, 아흐레 동안 안나푸르나 히말 산행을 오지게 한 셈이다.
안나푸르나는 박영석대장의 조난으로 우리에게 더욱 친숙한 이름이 되었다. 박영석대장이 조난당한 안나푸르나 남봉(Annapurna South 7,219m)<이교수님이 착각함, 박영석대징은 남봉이 아니라 안나푸르나의 남벽-빙벽에 새로운 루트,코리안 루트를 내려다 조난당한 것임>과 제1봉(8,091), 제2봉(7,937), 제3봉(7,555), 제4봉(7,525)까지 다섯 봉과 바라출리(7,8 47), 캉사르캉(7,485), 강가푸르나(7,454), 타레캉(7,069) 등 안나푸르나히말의 능선을 이루는 7,000m 이상 9개의 직립고봉군과 히운출리(6,441), 마차푸차레(Machhapuchhre6,993), 람중히말(6,986), 그리고 좌우로 다울라기리(8,167, 7751)와 마나슬루(8,163)등이 연이어 있고, 멀리 포카라를 감싸 안은 안나푸르나의 백색 파노라마, 산정으로 치달리는 잘 정돈된 계단식 논밭, 여기저기 병풍처럼 둘러쳐진 아열대 밀림들은 거대한 원형경경기장 형상을 이루고, 그 자태를 페와호수에 드리우고 있다. 포카라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거대한 정원도시라 할 수 있다.
영(靈)과 똥이 함께하는 안나푸르나 트레킹(Trekking). 트레킹은 미개지에 남겨진 발자취를 따라 형성된 오솔길(trail)을 걷는 여행을 말한다. 안나푸르나(안나는 물을, 푸르나는 풍요의 여신)는 히말설산과 빙폭포와 빙원과 빙산과, 빙산에서 흘러내리는 우유빛 비취색 콜라(khola 강), 해가 퍼지면 땅에서 피어오르는 안개와 운해, 간간히 흩뿌리는 는개와 빗줄기, 골짜기의 맑은 시냇물과 폭포수 등등의 어마어마한 물 기운과 직립으로 솟은 산에 가려져 있다. 간간히 새하얀 얼굴을 짙푸른 아열대밀림과 구름바다 위로 들어 내보일 때의 그 신비감을 이루 형언할 수 없을 정도다.
강, 내, 개울, 폭포가 많으니 다리도 많다. 물레방아까지 제법 꼴을 갖춘 다리도 있고 모디콜라의 뉴브릿지 처럼 쇠다리도 있긴 하지만, 대부분의 다리는 지지대 위에 대여섯 개의 통나무를 엮어 올린 것들이다. 우기에 쉽게 떠내려가고 쉽게 다시 놓기 위해서이리라. 여기저기 정상에서부터 산을 할퀴고 쓸려 내려간 산사태는 흔한 광경이다. 우리나라 같으면 인재냐 자연재해냐, 전문가 비전문가할 것 없이 한마디씩 요란할 터. 하늘계단식 골답과 마을길, 좁은 비탈에 간신히 몸을 지탱하며 풀을 뜯는 소, 야크, 염소, 곡식을 거둬드린 밭에서 어미를 쫓는 병아리와 양들 또한 흔한 풍경이다.
산마을 학교는 10시에 시작, 두세 시에 끝난다. 교복을 입은 학생들을 등하교시간에 많이 만날 수 있다. 주로 식재료와 생활필수품을 운반한다는 당나귀의 똥이 산길을 흙 반 똥 반으로 뒤덮고 있다. 그러나 3,000미터 이상은 신성한 땅으로 여겨지기 때문에, 동물도 배설물도 눈에 띄지 않는다. 몇 시간을 올라가야 트레커를 위한 로지(Lodge, Coffeehouse)가 바람의 집처럼 비탈에 겨우 매달려있다.
자동차도 포장도로도 없는 맨땅의 숨결과 동행한 아흐레. 포카라의 강력한 물기운 때문에 카트만두 왕복선 비행기가 오지 않는다. 카투만드 공항에서 거의 4시간을 기다렸다. 포카라에서 돌아올 때도 마찬가지였다. 세계 각지에서 온 다양한 피부색의 산사람들은 책을 읽거나 환담을 나누며 느긋하게, 그러나 안내방송에 귀를 세우고 기다린다.
포카라에서 일박을 하고, 나야폴(1,070)까지는 전용버스로, 나야폴부터 완만한 산행이 시작됐다. 비렌탄티(1,025)의 군 체크포스트에서 입산신고를 마치면 본격적인 산행이다. 우리는 물 만난 물고기가 유영하듯 온몸의 긴장을 어깨부터 툭 떨어트리고 대지의 숨결을 깊이 마시면서 천천히 땅기운을 받기 시작했다. 반환점인 ABC(4,130)에 이르기까지 엿새 동안 이 보조를 고르게 유지했기 때문에 고산병에 시달리는 사람 없이 자유를 만끽했다. 일행 13명의 편안을 위해 안내원, 등산안내원, 세르파, 요리사 등 20여명이 헌신적으로 일하며 동행했다.
산행 첫 날, 샤울레바잘(1,170)에 이르기 전에 날이 저물었다. 반딧불이 들이 꽁무니에 별빛을 밝히고 낯선 밤길을 인도해주었다. 새벽마다 따끈한 차를 들고 문밖에서 “Good Morning! Tea.” 하며 새벽을 깨우는 웨이킹 콜도 감동적이었다. 세상 엄마들이 아침을 이렇게 깨운다면 매일의 하루가 더 행복하고 밝아지리라.
산행날씨는 맞춤형 환상이었다. 오름길엔 이른 아침에 장미 빛 봉우리를 살짝 보여주고 햇살이 퍼지면 안개와 구름과 비에 가려진다. 하산 길엔 아쉬움에 뒤돌아보면 만년설산의 웅대한 산봉우리가 반색을 하며 우리를 내려다보고 있다.
산행 이틀째 샤울레바잘부터 촘롱(2170, 여기까지 전기도 들어오고 샤워도 할 수 있다)까지 고도차 1,000m를 7시간 이상 오르락내리락하는 길이다. 지누단다(1,780)부터는 숨이 턱에 닿을 정도로 가파르게 올라가야했다. 지구 땅덩이 아래에서 마차푸차레 또는 안나푸르나에 빗겨드는 여명은 거대한 설봉을 다양한 톤의 장밋빛과 찬란한 금빛으로 물들인다. 그러나 황금의 시간은 오래가지 않는다. 겨우 사진 몇 장 찍을라치면, 더 좋은 자리에 대한 아쉬움을 남긴 채 구름바다 속으로 잠적한다.
밤새 우박, 폭포, 빗소리를 들으며 빗속 등반의 염려로 잠을 설친 도반(2,505)의 아침은 산 주름 사이에서 뭉게뭉게 피어오르는 안개와 폭포수가 어우러져 한 폭의 동양화를 그리고 있었다. 앞산 뒷산 어디쯤 들어가면 신비한 베율(불교전승. 히말라야 계곡 깊은 곳에 숨겨져 있다는, 늙음도 죽음도 없다는 비밀장소)을 만날 수 있을 것만 같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구름바다를 헤치고 금빛 찬란한 고래꼬리가 환영처럼 웅자(雄姿)를 드러내는 것이 아닌가. 등반이 금지된 ‘神의 山, 마차푸차레’의 정상이 물고기의 꼬리를 닮았다하여 Fishtail이라 불린다.
히말라야로지(2,920)에서 점심을 먹고 나오니 비가 내린다. 고도적응을 위해 2시간을 천천히 걸어 큰곰들의 서식지였다는 힌쿠동굴(3,100)에 이르니, 잔설이 눈에 띠기 시작한다. 여기까지도 아열대 밀림의 숲 사이 오솔길이다. 강 건너편 직립의 산봉우리에서 거대한 레이스를 짜듯이 만났다가 헤어지며 쏟아지는 장대한 폭포는 절로 감탄을 일으키게 한다. 우리에게는 경탄, 그들에게는 너무나 흔해서 이 폭포는 이름조차 없단다. 힌쿠동굴부터 한 시간 남짓 오락가락하는 빗줄기 사이로 오르락내리락 데우랄리(3,230)의 샹그릴라롯지에 도착했다. 고산병 예방에 좋다는 따끈한 마늘수프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밤 2시경 밖에 나가보니 밤새 눈이 소복소복 내려 순은의 세상이다. 발목까지 빠지는 로지마을 눈길에 발자국을 남기고 들어왔다. 하늘에서 내린 눈축복의 생일카드 두 장을 쓰고 나니, 환상적인 하루였음에 감사기도가 절로 나온다. 그런데 밤사이에 폭설이 끝나고 내일은 해가 뜰까, 만년설산맥을 볼 수 있을까.
만년설산의 일부, 아니 우주가 되다. 오늘, 드디어 MBC! MBC까지는 눈이 깊게 쌓여있을 것이다. 9시 반에 느지막이 출발해서 잘 다져진 눈길을 걷기로 했다. ABC에서 하산하는 사람마다 국적불문하고 “허리까지 빠져요. 눈은 실컷 보고 안나푸르나는 못 봤어요. 우리 몫까지 많이 보고 조심해서 다녀오세요,” 기원해준다. “대~한민국! 짜잔짜 짝짝”이다. 정말 많이 만났다. 현직 국회의원 한분도 만났다. 안내원하고 허리까지 빠지는 4,130m의 ABC까지 갔지만, 안나푸르나를 보지 못해서 다시 와야겠단다. 놀라운 외국인 가족도 만났다. 쌍둥이 형제를 아버지와 세르파가 나누어 업고, 예닐곱 살짜리 형과 해맑은 표정의 아홉 살 누나는 걸어서 내려오고 있었다. 엄마는 “한길 넘는 눈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쌍둥이들을 업었다”고 한다. 그렇다면 쌍둥이들이 걸어서 올라갔다는 말씀. 나는 이 가족에게서 존경을 넘어 외경심마저 느꼈다. “우리 청소년들은 글로벌 경제․문화 전쟁시대에 과잉보호로 유약하게 자라는 게 아닌지”싶다가, “ K-Pop같은 불굴의 청소년들도 많지” 위안삼다가, “인류는 모두 한 가족인데, 인간의 위상을 높여주는 사람이면 누구에게나 감사하자”고 우주적으로 통 크게 생각키로 했다.
35명 정도 되는 우리 일행이 옹기종기 선채로 점심을 먹을 수 있는 비탈눈밭을 발견, 어쩔 수없이 11시에 대한민국 컵라면에 감격하면서 이른 점심을 먹었다. 우리는 아이젠을 하고도 미끄러워 쩔쩔 매는데, 세르파들은 고무조리를 신고도 눈살 한번 찡그리지 않고 잘도 오른다. 대장은 비닐봉지를 있는 대로 거두어 그들이 신게 했다. 한 시 반쯤 MBC에 올라와보니 저 아래서 바라보던 것과는 달리, 안나푸르나(8,091)와 마차푸차레(6,993)는 남북으로 까마득히 떨어져 있다. ABC와 MBC의 고도차이만도 400m이상이다.
MBC는 꽤나 너른 설원을 아늑한 정원처럼 갖추고 있다. 가슴 저 깊은 곳에서 스멀스멀 흥분이 피어오르기 시작한다. 나는 이 설원에 야생화가 가득 피어오르는 상상, 설인(雪人)이 되어 만년설산봉을 뛰어다니는 착각에 잠들지 못하고, 새까만 밤하늘에 초롱초롱 빛나는 보석들의 그림 잔치에 눈을 팔았다. 달빛을 받아 마차푸차레의 물고기 꼬리가 새하얗게 빛난다. 돌아다보니 안나푸르나 남봉, 히운출리, 안나푸르나 제1봉의 웅자가 검은 대지를 향해 빛을 발사하고 있다. 마차푸차레 쪽에서 오리온좌를 쉽게 찾아냈다. 오리온좌에 매달린 큰개와 아래위로 토끼좌와 쌍둥이좌, 안나푸르나 쪽에서 북두칠성과 북극성, 큰곰 작은곰을 어렴풋이 찾은 것으로 했다. 내일은 태양이 찬란하게 솟아오를 것이 분명하다.
ABC를 감싸 안은 고봉준령 만년설에 두 눈이 멀어도 좋으리라. 새벽 3시 반 기상, 4시 출발, 6시부터 8시까지, 목적지인 ABC에 단 2시간 머물기 위해서 우리는 주위의 염려와 두려움과 사랑의 말들에 과감한 귀머거리가 되었다.
우주의 자궁, 대지의 배꼽에서 날아오르다. 안나푸르나히말의 영원한 설산연봉이 감싸안은 ABC는 순백의 거대한 분화구 안처럼 아늑하다. 로지들은 저 아래, 출구도 보이지 않는다. 우주의 자궁 한가운데 내가 들어와 있는 것이다. 그래도 춥다, 정말 춥다. 박영석 대장을 보낸 안나푸르나 남봉의 빙폭포 크레바스가 손에 닿을 듯 가깝다. 거의 다 내려와 안나푸르나 남봉에 새로운 Korean Root 설정이 눈앞에 보이는 데, 굉음과 더불어 눈사태에 휩쓸려가는 대장일행을 속수무책으로 바라봐야 했던 대원들의 절망은 얼마나 추웠을까. 산맥너머 여기저기 눈사태가 눈 기둥을 하늘높이 분사한다. 대장의 순수한 영혼이, 불굴의 의지가 드높이 날아오른다. 죽음을 떠올리면서 허무(Vanitas)가 아닌 고양된 정신이 우주 밖으로 날아가는 듯 한 묘한 느낌이 들었다. 추워서 너무나 추워서 주위를 살펴보니, 분화구 같이 생긴 우주의 자궁한가운데, 대지의 배꼽처럼 둥글게 솟은 전망대 위에는 같이 있던 대장부부도 이미 내려가고 없다. 일행모두 어느 로지에서 생일을 맞은 일행을 위해 위스키 축배를 들고 있을 것이다.
하산길은 ABC에서부터 역순이다. MBC, 데우랄리(3,230), 히말라야로지(2,920 일박), 도반(2,340), 뱀부(2,335), 가축냄새 사람냄새 나는 시누와(2,340)를 거쳐, 강 건너 2100계단을 밟고 올라가 촘롱(2,170 일박), 지누단다(1,780), 뉴브릿지(1,340)까지 계속 하산이다. 모디콜라를 건너면서 다른 길로 접어들었다. MBC로 오르는 길엔 안개와 구름에 시야가 가려서 물소리만 들으며 걸었다. 돌아오는 길은 햇볕이 쨍쨍, 대명천지간 이리 황홀할 수가! 1,000m 이상 낭떠러지 아래 모디콜라의 물결이 반짝이고, 설산고봉이 하늘까지 치고 오르는 계단식 논밭의 정연한 풀섶길까지 따라와 고개를 내민다.
건너 산과 여기저기 농촌마을의 불빛이 하늘의 별빛과 어우러지는 란드럭(1,700 안나푸르나히말 5대 관망소 중 하나)에서 일박. 이 곳은 주변 경관이 빼어나고 저녁노을에 장미 빛으로 빛나는 다울라기리(8,167)와 안나푸르나 연봉이 오랜만에 샤워를 한 우리 이마까지 붉게 물들인다. 내친김에 어설픈 마사지도 받고. 내일이면 안나푸르나와 순하고 어떤 일에나 열심인 네팔 도우미들과도 이별해야하는 아쉬움에, 어느 대원이 베푼 이별파티의 음악과 웃음과 발을 구르는 춤사위가 밤이 이슥토록 끝일 줄 모른다. 내일은 이른 아침 란드럭을 출발해서 또 다른 5대 관망소 중 하나인 담푸스(1,650)를 거쳐, 트레킹이 끝나는 페디마을(1,130)까지 8시간 이상을 걷게 될 것이다. 그러고 나면 안나푸르나의 마지막 밤을 포카라의 페와호숫가 초호화 호텔에서 그렇게도 그립던 열탕목욕으로 마무리할 것이다.
등정은 산을 정복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정복하는 것이라는데, 안나푸르나히말을 다녀와서 자신이 업그레이드된 양 오히려 우쭐하는 걸 보니, 나는 한참 멀었다. 랑탕, 에베레스트까지 다녀오면, 그때 비로소 나와 친근해질까. 잠간 반짝이다 슬어질 이슬만도 못한 자신을 깨닫게 될까. 남은 생을 무엇을 위해, 어떻게 살아야할지 볼 수 있을까. 어리석은 인간은 몸이 사라져야 욕망으로부터 자유할 수 있다던데, 나는 벌써 어디로 떠날까 욕망할 뿐이다. 여행은 새로운 것을 보는 것이라기보다 새로운 시각을 갖는 것이라는데, 히말라야의 영원한 눈 세례를 받은 나는 얼마나 새로운 눈으로 자신을, 이웃을, 세상을, 자연을, 그리고 하나님을 사랑하게 될까? 내게 분명한 다만 한 가지는, 고대그리스이래 예술이 추구해온 “고귀한 단순, 장엄한 고요(Noble simplicity, grand stillness.)”를 ABC의 눈밭, 거기에서 발견했다는 것이다.
(이교수님 글에 트레킹을 위해 네팔에서 사왔던 지도를 보고 몇몇 고산을 추가하였습니다.)
첫댓글 다시 마차푸차레을 올라 갔다오는 감동입니다 넉넉한 시간날 때 다시가고 싶습니다
분위기메이커 이교수님 여러가지로 감사했습니다 한편의 칼럼 감동입니다 남촌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