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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광계공원내에는 서광계 徐光启 기념관이 있다. 현존하는 가장 오랜된 명나라 시대 민가 民家인 남춘화당 南春华堂에 기념관이 있다. 1930년대 초 서광계 묘지 전경. 멀리 쉬쟈후이 성당과 예수회 본원이 보인다. 서광계 서거 300주년 기념식장면 중국 묘지 장식의 전통 방식에 따른 아치형 석조 기념조형물(정문),1934년. 명사 明史에 길이 남겨진 서광계전 徐光启傳이 걸려있다. 중국인들이 서광계의 이름 앞에 언제나 '수학자' '과학자' 의 타이틀을 붙인다. 그는 이 분야에서 탁월한 업적을 쌓았다. 수학이 발달한 전통의 중국이었지만 그런 중국이 결코 보지 못했던 분야를 보도록 만들었던 인물이 바로 서광계이다. 아울러 그런 수학적 업적을 토대로 중국의 과학을 업그레이드 시킨 사람도 바로 그다. 그의 일생이 부각되어있다. 서광계는 송강부 松江府 상해현 上海縣 사람이다. 지금의 상하이가 고향이라는 이야기다. 그때의 상하이는 '십리양장' '동양의 파리'라고 불리는 300년 뒤의 상하이와 판이하게 달랐다. 사방에 논밭이 깔렸고, 동쪽으로 끝없이 바다가 펼쳐져 있던 한적한 농어촌 마을이었다. 상인인 아버지 밑에서 성장하면서 일찌감치 과거에 뜻을 두고 공부를 했다. 그런 그가 1593년 무렵 처음 서양의 선교사와 접촉한다. 서양의 선교사는 카테네오라는 인물이었다. 1560~1640 Lfizaro Catfino 예수회 선교사 서광계는 그로부터 처음 세계지도를 봤다고 한다. 중국 외에도 드넓은 세계가 있다는 것에 놀랐고, 포르투갈 출신의 스페인 항해사 마젤란이라는 인물이 지구를 돌아 지구가 둥글다는 사실을 점을 증명했다는 사실도 그에게 들었다 그로부터 다시 7년여의 시간이 흘렀다. 이번에도 그는 서양의 한 인물을 찾아간다, 바로 마태오 리치(1552~1610)였다. 마태오 리치는 일찌감치 중국에 들어와 선교에 몰두하고 있었다. 중국어를 제대로 익혔고, 전통 학문의 바탕인 한학 漢學에도 조예가 깊어 그는 당시 중국에서 이름을 높여가고 있었다. 그런 마태오 리치를 1600년 남경 南京으로 찾아가 역사적 만남을 이룬다. 당시 세상을 합리적 시선으로 바라본 두 지성의 만남이 이루어진 것이다. 두 지성은 끊임없이 철학적 토론을 벌인다. 첫 만남이 이루어진 후 3년 뒤 서광계는 자신의 식솔들을 모두 데리고 마태오 리치가 있단 남경으로 이주하여 천주교에 귀의한다, 그 점이 바로 계기 契机였던 것 같다. 1607년 마태오 리치는 그 유명한 <유클리드 원본>의 내용을 서광계에게 전수한다. 나중에 서광계는 마태오 리치와 함께 그 책을 중문으로 번역해 <기하원본 几何原本》이라는 이름으로 출간한다. 이틀에 한 번씩 마태오 리치는 서광계에게 그 내용을 강의했고, 일찌감치 실학 實學의 취향이 농후했던 서광계는 마태오 리치가 전하는 지식을 스펀지가 물을 빨아들이듯이 흡수한다. 그리고 마침내 둘은 책을 완역하기에 이른다. 문명사의 흐름에 관심을 둔 사람은 알 것이다. 마태오 리치를 만난 서광계로 인해 중국, 나아가 동양의 수학사에 기하학의 개념이 처음 옮겨졌다는 사실의 중대한 의미를 말이다. 그전까지의 중국 수학은 대수 代數가 주류를 이뤘다. 그것도 세계에서 으뜸이라고 꼽힐 정도의 수준을 만들어 낸 곳이 중국이다. 그러나 '평면' 지향의 대수가 '입체'의 기하학으로 발전하지 못한 점은 중국 수학, 나아가서는 동양 수학사에서는 일종의 미스터리다. 17세기 컴퍼스가 전시되어있다. 서광계의 번역을 거쳐 나온 평행선 平行線, 삼각형 三角形, 직각 直角, 둔각 鈍角 등은 지금도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기하학 개념이다. 아울러 기하 幾何라는 단어 자체도 마태오 리치가 들고 온 유클리드 원본 내용 중의 'Geo(측량 이란 뜻의 라틴어)'에서 나왔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의 업적은 다양하다. 나중에는 천문에 깊이 관여해 청나라 천문 역법에 관한 토대를 형성했고, 농법과 무기 및 화약 제조에도 발을 들였다. 왕조시대에 문인 관료로 큰 공을 쌓은 것이다.
크리스토퍼 클라비어 우스(1538-1612) 마태오 리치가 로마의 예수회 수련원에서 수학할 당시 그레고리력 제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 크리스토퍼 클라비어 우스(Christopher Clavius)에게 수학, 천문학, 역법, 시계, 지구의, 천체관측기구 제작법도 배웠다. 서광계와 마태오 리치, 그 들을 통해 서양 수리와 천문, 농법, 물리 등이 중국에 접목했다는 사실을 간과할 수는 없다. 부국강병 富國强兵을 꿈꾸다. 곤여만국전도(1602) 서광계와 마태오 리치의 만남을 영상으로 표현해주고 있다. 참고문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