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의 속담 : 말짱도루묵
해년마다 이맘때쯤이면 대학교수들이 올해의 사자성어를 내놓는데 해년마다 어렵다.
듣도보도 못한 ‘도행역시(倒行逆施)’라는 걸 올해의 사자성어로 뽑았다고 한다. 중국의 <사기>에 나오는 춘추시대 얘기라는데 오자서가 자신의 원수인 초나라 평왕의 시체에 300번 채찍질을 하자 그의 친구 신포서가 과한행동이라고 지적했다. 이에 오자서가 ‘도리에 어긋나는 것은 알지만 부득이하게 순리를 거스르는 행동을 할 수밖에 없었다.’고 변명한 데서 유래됐다는데 뭔 뜻인지는 알겠지만 역시나 어렵다. 교수역시!
한마디로 말하면 올바로 안가고 거꾸로 간다는 얘긴데 도행역시를 내맘대로 풀어쓰면 근혜역시 정부역시 국가역시 국정역시 남북역시 민주역시 사회역시 모두역시 거꾸로 가고 있다는 말이렸다?
하여 나는 순수 토종이면서 친근하고도 누구나 생활 속에서 쓰고 있는 올해의 속담을 엄선하여 발표하노니 나의 노력이 말짱도루묵이 안 되길 바랄 뿐이다.
때는 바야흐로 백성들의 안위와 생명에는 터럭만큼도 관심 없는 선조가 왜구들이 침범(임진전쟁)하자 궁궐을 버리고 도망가다가 어느 농부가 ‘묵’이라는 물고기를 밥상에 올렸는데 피란길에 먹은 생선이 얼마나 맛있었는지 그 물고기 이름을 격상시켜 ‘은어’라고 칭하도록 명하였다. 전쟁이 끝나고 궁궐에서 옛 생각에 그 은어를 올리라고 하였는데 어라, 옛 맛이 아닌 것이다. 그래서 선조는 “에잇~ 이 맛이 아냐! 도로 묵이라고 하라~”
이 일화가 후세에 전해지면서 ‘다시 본래의 상태로 되돌아가버리’거나 또는 ‘아무 소득이 없는 헛된 일이나 헛수고’를 비꼬아 말할 때 우린 ‘말짱도루묵’이란 말을 쓰게 되었다. 바로 어제 대한민국 경찰의 무모한 행동에 딱 맞는 말이기도 하거니와 대선을 치른 지 1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대선의 굴레에서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하고 있는 오늘의 현실은 말짱도루묵이란 말로는 과분하다는 생각조차 든다.
부정선거 논란은 반드시 규명해야 할 사안이지만 일단 논외로 하고, 야당과 진보민주진영에게도 예외가 아니라는 생각이다. 누가 생각해도 이길 수밖에 없었던 선거를 패배로 만든 책임을 그 누구도 책임은커녕 일말의 반성조차 없이 그때의 유행가를 그대로 부르면서 뻔뻔스럽게 다시 대선에 나서겠다고 하는 걸 보면 측은함까지 느껴진다. 오늘 이렇게 고통스럽고 안녕하지 못한 모든 책임을 떠넘길 상대(박근혜정부)가 있어서 참으로 당신들은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도행역시는 정부여당에게만 해당되는 게 아니고 야당역시고 진보역시이며 나도역시가 될 수 있다는 말이다.
말짱도루묵에서 벗어나려거든 현재의 양 진영이 적대적으로 보이지만 상호공생관계인 기득권세력의 구도를 깨지 않으면 절대 불가능하다는 생각이다.
동짓날 팥죽 한 그릇 못 얻어먹고 일 년 중 낮 길이가 가장 짧은 오늘 콧물 흘리다가 하루가 저물어버렸으나 내일도 다만 ‘말짱’하길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