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씨시의 성자 프란치스코(1182-1226)가 10월 3일 임종하였다. 부유한 가정에서 자라났지만, 가난한 수도자의 길을 택하였다. 마10:9의 가르침을 그대로 따른 것이다. 생전에 많은 추종자와 지지자들이 생겨났고, 사후 2년만에 성인의 반열에 올랐다. 그의 가르침을 그대로 따를 것인지, 그 교훈을 보다 효과적으로 전하기 위하여 조직을 강화할 것인지 논쟁이 생기면서, 제자들은 갈라지기도 하였다. 그의 생애와 관련하여 여러 가지 전설이 생겨나고 확장되었으며, 큰 사랑과 존경을 받는 인물로 꼽힌다.
십자군 원정의 와중에서, 1219년에 이집로 술탄을 찾아가서 만나려고 하였다. 그를 설득하여 평화로운 해결책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순진한 생각이었다. 설복하지는 못하였지만, 이슬람 신도들의 열정과 순수함을 목도하면서 오히려 큰 감명을 받고 귀환하였다.
그의 이름으로 널리 알려진 평화의 기도, “주여, 나를 평화의 도구로 써 주소서...”는 성인의 작품은 아닌 듯하다. 백년쯤 전에 옛 수도사의 기도로 발굴되었는데, 거듭 인용, 확산되면서 프란치스코의 삶과 어울린다는 생각에서 그의 작품으로 오인하게 되었고, 다수가 이를 믿어버리게 되었다. 검색해 보면, 이러한 잘못된 정보를 바로잡는 이야기를 만날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