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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난장> 세미나팀에서는 참가자들의 작품을 읽은 후기를 쪽글로 나누고 있습니다.
3/12 교재를 읽은 후기를 참가자들끼리만 나누기에는 너무도 풍성하여 공개하기로 용기 내었습니다.
살짝 엿볼까요?
<체르노빌의 봄>-피폭의 현장, 대세와 ‘다르게 보다’
조익상
얼마 전 벌어진 ‘드레스 색깔’ 소동은 상당히 흥미로웠다. ‘나’와는 다르게 보는 사람이 엄청나게 많다는 것을 확연히 보여준 사건이었기 때문이다. 같은 드레스에서 누군가는 파랑과 검정 무늬를 보고 누군가는 흰색과 금색 무늬를 본다는 것이 자명한 사실로 밝혀졌을 때, 다른 자명함은 빛을 잃는다. 바로 내가 본 것(만)이 ‘진실’이라는 믿음의 자명함이 그것이다.
전 지구인을 거의 반반으로 가른 드레스 소동은 곧 과학의 언어에 의해 수습된 듯하지만, 사실 이 세계는 좀처럼 수습되지 않을 소동 혹은 논란으로 가득차 있다. 이를테면 이런 것이다. 밀양에 송전탑을 건설해야 한다/건설하면 안 된다. ‘종북’이 대한민국을 좀먹고 있다/대한민국을 좀먹는 것은 ‘종북’을 팔아먹는 이들이다 등등. 물론 이런 여러 인식은 어느 한쪽이 대세가 되고 다른 한쪽이 수세에 몰리면서 누군가에게는 이미 끝난 논란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하지만 그렇지도 않다. 어느 논란이고 수세 측은 꽤 오랫동안 자신들의 견해를 유지하며 열세의 싸움을 지속하기도 하며, 그 와중에 어느 순간 형세는 뒤바뀔 수도 있다. 역사가 그렇게 흘러왔다. 흑인을 노예로 부리는 야만이 얼마나 오랫동안 대세였던가. 제국의 식민지 경영은 또 얼마나 오랫동안 지속되었던가. 여성의 정치권과 사회적 권리는 또 얼마나 오랫동안 제한되어 왔던가. 흑인을 노예로, 다른 민족을 한 민족의 착취 대상으로, 여성을 남성의 소유물 혹은 보조자로만 ‘바라보는’ 시각이 판치던 세월이 인류의 역사에서 훨씬 더 길었다.
앞서 말한 예들은 너무 가깝거나 너무 오래된 이야기일 수 있겠다. 그러니 조금 멀리 있는 지금의 이야기를 해보자. 화두는 ‘체르노빌’이다. 무엇이 떠오르는가? 방사능, 공포, 죽음, 폐허…. 1986년 원전 폭발 참사 이후로 체르노빌은 우리에게 끔찍한 여러 이미지를 동반하는 공간임이 분명하다. 직접 가보지 못했건만 우리는 그곳에서 죽음을 보는 것에 익숙하다. 2008년 체르노빌에 직접 찾아간 프랑스 만화가 엠마뉘엘 르파주도 마찬가지였다. 그곳의 참상을 그림과 예술로 증언하기로 동료들과 결의하고 체르노빌 방문을 준비하던 그는 두려움과 불안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체르노빌에 대한 책들은 모두 죽음을 말하고, 가족은 방문을 만류하며, 작가 자신도 손이 마비되는 증상을 겪는다. 그곳은 위험하다. 하지만 그는 그곳의 위험을 직접 보고 그것을 그려서 알리기 위해 결국 체르노빌에 발을 들인다.
방문 초기에 그가 본 것은 예상과 다르지 않았다. 금지구역에 들어서자 인간의 흔적이 쓰레기처럼 나뒹구는 황량한 도심 풍경이 그의 앞에 펼쳐진다. 당연하게도 그는 그 장면들을 모두 무채색으로 스케치북에 옮긴다. 하지만 잿빛으로 이어지던 그의 스케치북에 색깔이 들어가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체르노빌 사람들의 의외로 밝은 표정이 유채색을 입었다. 그리고 얼마 후 금지구역의 숲에서 르파주는 색깔을 ‘발견’하고선 너무나 아름다운 총천연색의 그림을 그리고 만다. 그 스스로도 의심하지 않을 수 없는 풍경과 그것이 담긴 스케치북을 보며 그는 생각에 잠긴다. “나는 괴상하고 흉측한 나무와 검은 숲을 상상했다. / 그래서 검은색 파스텔과 어두운 잉크 목탄을 준비했다. / …그런데 찬란한 색상에 사로잡힌 것이다.” “하지만 여기는 체르노빌이 아닌가!”
르파주는 그렇게 고뇌하면서도 솔직하게 그렸으며, 그리면서도 계속 고민했다. 그가 본 것에 대해, 그가 보여주게 될 것에 대해. 그렇게 현지에서 그린 그림은 그가 프랑스에 돌아와 그 경험을 전적으로 재구성해 내놓은 작품 <체르노빌의 봄>에 담겼다. 제목부터가 이율배반인 이 작품에서 우리는 체르노빌이 그저 죽음의 공간만은 아니라는 그림의 증언을 본다. 하지만 거기서 그치지 않는 두꺼운 고뇌의 흔적이 작품 곳곳에서 겹겹이 발견된다. 그 일말을 내 식으로 셋 정도만 정리해 본다.
하나, 보는 것과 해석하는 것에 대해. 우리는 우리가 본 것을 스스로 해석한다고 생각하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다. 우리가 ‘보는 것’은 꽤나 자주 누군가에 의해 이미 ‘해석된 것’이다. 작품의 초반부에서 르파주는 열아홉 살의 자신이 처음 TV를 통해 목격한 체르노빌 원전 폭발의 인상을 전한다. 그 이야기는 국가가 해석한 이미지를 우리가 본다는 것을 정확히 증언한다. 사고에 대한 소련의 초기 발표는 “사망자 겨우 두 명”이었지만, 소련과 냉전 중이던 서방세계의 관측은 “희생자 수천 명”이었다. 또한 원전이 즐비한 프랑스의 정치인들은 “프랑스는 안전하다”는 메시지를 전하기에 바빴다. 이미 발생한 비극은 남의 나라 이야기로 만들고, 자국에 발생할지도 모르는 비극은 ‘절대 일어나지 않을 일’로 만들어야 한다. 그렇게 만들기 위해 프랑스는 체르노빌 원전을 노후한 것으로, 자국의 원전은 첨단의 것으로 ‘그려냈다.’ 이처럼 ‘해석한 것’을 ‘보게’ 만드는 정치가 우리가 보는 것에 도사리고 있다.
둘, 자신이 본 것을 해석해서 보이게 만드는 누군가는 ‘보여주기의 윤리’를 지켜야 한다. 자국 중심주의로 점철되어 있던 국가들과 달리 르파주가 체르노빌을 보여줄 때 지킨 윤리는 보이는 것이 다가 아니라는 사실을 함께 전달하는 것이었다. 그의 그림이 일차적으로 보여주는 것은 자연은 인간의 손을 벗어날 때 가장 아름답다는 깨달음이다. 위 그림은 한 공간을 시간을 반영해 그만의 시각으로 보여주면서 이 깨달음을 전달한다. 참사 이전 숲의 과거는 잿빛 도로로, 참사 이후 사람의 손이 닿지 않아 숲이 우거진 지금은 역설적으로 총천연색 자연으로 그려낸 것이다. 하지만 그는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20년이 넘는 세월이 걸려 자연이 제빛을 회복했지만 보이지 않는 방사능의 위험은 아직 사라지지 않았다는 것을, 방사능 측정기 소리를 비롯한 다양한 장치를 통해 가시화했다. 솔직하게 보여주면서도 보이는 것만을 보지 말라고 요청하는 이 태도는 국가의 보여주기와는 전혀 다른 윤리에 기대고 있다.
마지막, 그가 폐허에서 발견해 윤리적으로 전하는 ‘봄’의 희망은 지금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시간 속에서 꾸준히 쌓여온 것이다. 또한 쌓여갈 어떤 것이다. 이것은 시간이 모든 것을 해결해줄 거라는 낙관론이 아니다. 시간은 그저 흘렀을 뿐이고, 인간의 대세에 억눌렸고, 결국 원전 폭발로 오염되고 만 수세의 자연은 그 비참함에서도 회복해 나가기를 그치지 않았다. 지금 ‘상식’이 된 많은 것들도 마찬가지였다. 긴 시간 동안 수세의 인식이 대세의 인식을 설득해내고 이겨낸 일이 일어난 것이다. 당연하게 여겨지던 것들을 논쟁적 사안으로 만들고, 다시금 전혀 반대로 당연한 인식을 만든 것은 자신이 본 것을 끝까지 믿고 말하기를 그치지 않았던, 대세와 ‘다르게 보던’ 이들이다. 르파주도 그들 중 하나다.
이제 다시금 가까이 있는 지금을 본다. 후쿠시마를, 더 가까이는 최근 연장운행이 결정된 월성1호기를 본다. 지금 보여지는 대세는 분명 국가의 해석이다. 일본도 한국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다른 것을 보는 이들이 있다. 또 달리 보게 만들고 있는 누군가가 있다. “나도 인간이다”라고 외친 흑인/여성/피식민자와 “너도 인간이구나” 하며 새로운 눈으로 바라보기 시작한 일부 백인/남성/식민자의 합력이 그나마 차별이 덜한 세상을 만든 것처럼, 원자력 발전 문제를 다시 보게 만드는 이들과 다르게 보는 이들이 원자력 참사가 없는 세계를 향해 걷고 있다. 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다르게 보는 것을 불편해 하지 않고, 다른 목소리에 귀를 열어둔 사람들이다. ‘월성의 봄’이 언젠가 이율배반의 표현이 되지 않기를 바라며, 그 사람들에게 기대를 건다.
몽환의 숲---<체르노빌의 봄> 을 읽고
안기옥
기억 하나
생애 최초로 체르노빌 사건에 대해 알게 된 것은 초등학교 때 만화잡지 <보물섬>을 통해서였다. 너무 어린시절에 읽었던 것이라, 어느 작가였는지, 정확히 언제 그 작품이 게재되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그림과 대사에 기형아를 비롯한 끔찍한 부작용 장면들이 상세하게 묘사되어, 원자력발전에 관한 나의 ‘주체성’을 열어주었다. 그 쓰임새며 과정도 목적도 모른채, ‘원자력발전은 무서운 것, 나쁜 것’이라고 믿게 되었다.
기억 둘
대학 때 학보사 기자 생활을 했다. 1학년 풋풋한 수습기자 때다. 5월이 되자 데스크에서 나를 포함한 세 명의 수습들에게 광주로 2박3일 르뽀 취재를 해오라는 거룩한 명령을 내렸다. 분명 5.18 민주화운동에 관한 교육을 겸한 것이었을 거다. 치열하게 항쟁이 있었던 금남로도 걷고 조선대에서는 그쪽 총학생회와 짧은 워크샵도 했다. 그런데 나는 민주화운동에 관한 열정, 심오함, 치열함-데스크가 원했을-그런 것을 느끼지 못했다. 오히려 싱그런 오월의, 나와 다를 것 없이 달뜬 신입생들과 따스한 봄 기운에 싱숭생숭한 가슴한 더 울렁거렸다. 느끼지 않은 것을, 보지 않을 것을 쓸 순 없었다. 결국 나는 기행문다운 총천연색 기사를 냈고, 그 기사는 다른 동료들의 그것과 ‘연합’되지 못한 채, 별도의 박스기사로 처리되었다.
<체르노빌의 봄>은 묵혀두었던 저 두 가지 기억과 그 기억에 포함된 ‘간극’, ‘차이’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다. 실은, 제목의 ‘체르노빌’이라는 말만 보고 나는 또 암울하고, 가슴 먹먹해질 그림만을 보게 될 줄 알았다. 나에겐 그렇게 깊숙이, 편향되어 각인된 사건이기 때문이다.
한 사건을 구성하는 요소는 항상 다면적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우리는 보고 싶은 것만 본다. 혹은 교육받은 대로, 무언으로써 강요된 방식으로 보게 마련이다. 외압이든 믿음의 굴레 때문이든, 그 틀과 시야를 벗어나기는 쉽지 않다. 작품에서 밝혔듯, 작가 역시 본인이 무엇을 그려야할지 떠나기 전부터 알고 있었다. 그러나 알고 있는 것이 꼭 진실은 아니었다. 만약 모두가 ‘알고’ 있는, 또는 ‘알고 있다고 믿는’ 그림으로 완성되었다면, 나는 아무리 이 작품의 그림이나 짜임새가 훌륭했을지언정, <보물섬>에서 봤던 그것과 큰 차이를 느끼지 못했을 것이다.
풀 한 포기, 공기 한 모금 마음 놓고 가닿을 수 없는 폐허의 공간에서 이토록 풍성한 색채의 희망을 그릴 수 있다니. 감동이었다. 나는 분명 숨을 턱턱 막히게 하는 하는 무채색의 페이지보다 봄색의 그림들에서 작가가 느꼈던 훨씬 많은 것을 또한 느낄 수 있었다. 나도 모르게 한참동안 그 페이지를 보고 또봤다.
다만, 이 ‘체르노빌의 봄’에서는 '눈 앞에 꽃밭이 펼쳐지는' 비발디 사계의 봄이 아닌, ‘눈 감고 마음에 떠올’릴 신스 음색 가득한 몽환적인 사운드가 들려왔다.
현실이 아니어서일까. 처절함이 승화된 봄. 천국를 꿈꾸게 하는 전자음 같다.
체르노빌의 봄: 불편함에서 살아있음을 느끼다
강혜인
책을 처음 봤을 때는 사실 너무 큰 사고에 대한 이야기라는 생각에 선뜻 손이 가지 않았다. 마치 일본 원전이나 세월호에 대한 기사를 선뜻 읽을 수 없었던 것과 비슷한 감정일 것이다. 그렇게 책상 위에만 놓아두고 있던 어느 날, 갑자기 눈에 밟혀서 읽기 시작한 그 책은 나의 상상과는 전혀 다른 모양이었다. 소위 ‘참사’의 참담한 현장 – 이를테면 불, 낭자한 피, 시체 주변의 까마귀 같은 것 – 을 적나라하게 드러내지 않았기 때문이다. 오히려 한참 시간이 지난 뒤, 황폐한 금지구역으로 변한 그곳을 찾아간 기억의 모음이 펼쳐져 있었다.
그는 체르노빌 현장을 ‘기억’한다. 스크린과 신문 등의 매체를 통해 보고 들은 것들로 말이다. 참상을 직접 겪지 않은 그에게, 처음으로 직접 맞닿은 체르노빌은 가감없이 그 자체로 다가왔다. 주변 사람들의 만류와 걱정, 양 발을 감싸고 있는 비닐의 우스운 모습, 측정기의 쉴새없는 경고음에도, 그는 그 땅에서 순수한 아름다움을 볼 수 있었다.
당연하다고 여겨왔던 것, 체르노빌은 인간이 살 수 없는 땅이며 끔찍한 아픔이 배어나와야 하는 곳이라는 것과 실제로 보이는 것의 차이에서 그는 고민한다. 그는 불편하다. 이 땅에서 내가 ‘평화로움’을 느껴도 되는 것인지. 간과하거나 좌시해서는 안 되는, 세상의 수많은 아픔들 속에서 내가 즐겁고 행복한 감정을 느껴도 되는 것인지. 이런 종류의 석연찮음을 한번 느끼고 나면, 다시는 느끼지 않았던 때로 돌아갈 수는 없을 것이다. 그 이후의 세상은 전혀 다른 모습일테니까. 청소경비노동자들의 파업 농성천막을 창 너머로 두고, 그저 수업을 듣고 있어도 되는지. 나는 불편하다.
보이지 않는 걸 억지로 그릴 수는 없다. 그건 위선이다. 그러나 세상은 때로 거짓말을 강요한다. 수많은 ‘그래야 하는 것’들 속에서 우리는 또 다시 불편하다. 아스팔트에서도 꽃이 피어날 수 있다는 그야말로 당연한 진리를 받아들이기란 어렵다. 이 책을 빛나게 하는 건 그 불편함이다. 이 책이 세상이 요구했던 그대로의 뻔한 슬픔과 참혹함으로만 가득했다면 우리는 살아있는 그를 느낄 수 없었을 것이다. 그는 솔직했다. 그것이 이 책에 숨을 부여했다.
속수무책의 책, 혹은 아름다움에 대한 기분
-엠마뉘엘 르파주, <체르노빌의 봄>
서혜진
버려진 병원에서 두 남자가 기계 하나를 훔쳤다. 납으로 된 600킬로그램이 넘는 고철, 그것은 돈이 되는 물건이었다. 또한 거기에는 주먹보다 약간 작은 크기의, 푸른 빛을 발하는 캡슐이 포함되어 있었다. 고물상 주인은 캡슐에 들어있는 조각들이 어두운 곳에서 푸른 빛을 내는 것을 보고 가족들과 친구들을 초대했다. 그들은 빛나는 가루를 조금씩 선물받았다. 고물상 주인의 여섯살박이 딸 레이데는 푸른색 가루가 범벅이 된 손으로 간식을 집어먹었고, 몇몇 어른들은 밤에 빛이 나라고 얼굴과 팔에 반짝이는 가루를 발랐다. 고물상 주인은 그 가루로 아내에게 반지를 만들어 줘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일명 ‘브라질 고이아니아 세슘 노출 사건’의 이야기다. 푸른빛의 정체는 ‘세슘-137’. 우라늄의 핵분열 과정에서 생기는 것으로, 체르노빌 원전 사고 때 공중으로 흩어진 방사능의 주성분이었다. 아무것도 몰랐던 그들에게, 어둠 속에서 빛을 발하는 신비한 가루란 어떤 것이었을까? 그걸 본 순간 어떤 기분이었을까? 그런 가루가 체르노빌 창공에서 사방으로 흩어져 떨어졌다면, 그 하늘은 아름다웠을까? 그 어떤 축제의 밤보다 아름다운 불꽃이 명멸하고 있었을까?
<체르노빌의 봄>에는 이런 구절이 나온다. “이고르 코스틴은 원전사고 다음날 그 현장을 최초로 사진에 담은 사진가이다. 그때 그는 놀랍게도 필름 전체가 검게 현상되는 것을 확인했다. 필름이 방사능에 노출된 결과였다.”(p.108)
바로 그런 순간, 사람들이 웃고 있는 장면을 찍었는데 현상해보니 검은 심연만이 찍혀나오는 순간을 <체르노빌의 봄>은 담아낸다. ‘그림’으로도, ‘영화’로도, ‘사진’으로도 포착할 수 없을 어떤 치명적인 어긋남을 ‘그림-일기’의 형식에 담아내고 있는 것이다. 그 어긋남의 층위는 여러 갈래로 전개된다. 작가가 체르노빌에 대해 상상하던 ‘폐허의 이미지’와 실제의 체르노빌에서 마주친 ‘눈부시게 아름다운 풍경’, 어릴 적 자신이 그리고자 했던 ‘핵전쟁의 재앙’과 실제로 재앙이 휩쓸고 간 체르노빌이 보여주는 ‘깊이를 알 수 없는 우물의 표면’, 그리고 그 어떤 ‘사명감’으로 체르노빌행을 결심한 여행 이전의 자신과 실제의 체르노빌을 빠져나오면서, 오염된 금지 구역에 들어가 ‘무섭지 않아!’라고 소리치고 싶었던, 그러면 진짜 남자가 된다고 믿었던 자신 안의 소년을 직시하는 순간에 이르기까지.
책의 말미에 작가는 “우리 인간은 낙원에서 쫓겨났다고 한다. 하지만 체르노빌에서는 인간이 낙원을 떠났다.”(p.158)고 말한다. 거기에 나는 한 문장을 덧붙이고 싶었다. 인간이 떠나자 그곳은 낙원이 되었다고.
<체르노빌의 봄>을 읽은 지 며칠이 지났다. 여전히 이해할 수 없고 잘 상상이 되지 않았던 것은 오염된 지역에서 삶을 이어나가고 있는 사람들, ‘귀향자’들이었다. 이해할 수 없었으므로 잊히지 않았다. ‘밤에 푸른 빛을 발하는 잠든 몸’(p.103)이나 ‘푸른색 가루가 범벅이 된 손으로 과자를 집어먹는 꼬마 아가씨’의 이미지처럼. ‘아름다움’이란 것을 이해할 수 없었다. 아름다움은 잔인하다고, 아름다움을 믿어선 안 된다고 생각했다. 아름다움은 무력하다고도 생각했다. 나는 종로 3가에서 종각으로 향하는 대로를 거닐고 있었다. 이 모든 불빛과 자동차들과 사람들을 지우고 나면, 여기가 바로 ‘프리피야티’, 한때 우크라이나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시이자 엘리트들이 사는 신도시였으나 지금은 텅 비어버린 버려진 도시가 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원전밀집도 세계 1위를 자랑하는 한국이라면, 충분히 가능한 이야기가 아닌가. 그때에 살아 있다면 나는, 우리 가족은 피폭된 서울로 돌아와 살 수 있을까? 함께 살지 않으면 견딜 수 없을 것 같은 그런 이웃이 내게도 있을까? 모르겠다. 끔찍하다는 생각밖에는 들지 않는다. 오염된 볼로다르카에 남아 있기를 택한 사람들, 정부에서 마련해준 살집을 마다하고 귀향한 사람들, 그들의 어린아이들은 아름다웠는데……. 아니다. 그들을 향해 아름답다고 말하는 건 모독이 아닐까. 나는 <체르노빌의 봄>을 완전히 오독한 것은 아닐까. 그럼에도, 그렇다면, 그들을 향해 나는 대체 무슨 말을,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까. 아름다움은 정말 무력한가. 단지 아름다움 앞에 선 내가 무력한 것은 아닐까. 아니면 무력하다고 생각하는 나 자신이야말로 끔찍하고, 잔인한 걸까. ‘체르노빌이 하나의 거울이라면’(p.139)…….
<체르노빌의 봄>
최한나
얼굴 없는 처리반
허물어지는 벽들
기형적으로 번식하는 생물들
인간이 버린 건물들, 기구들
이 모든 건 측정기를 통해 본 체르노빌이다
그는 어느 순간 측정기를 너머
인간이 버린 낙원을,
외로웠던 자신의 유년기에 행복하고 싶었던 세계를 보았다
우리가 체르노빌 자유롭게 밟지 못하고 만질 수 없는 건
보이지 않은 것에 대한 공포였다
측정기를 통해 우리는 그 곳에서 죽음만 보고 있다
그 덕에 우리는 스스로 내려놓지 못하는 공포때문에
볼 수 없는 세계를 만났다.
측정기를 내려놓지 않는 이상
절대 만나지 못할, 체르노빌의 봄을.
<‘체르노빌의 봄’을 읽고>
이명선
즐겨듣는 팟케스트에서 후쿠시마와 관련해 놀라운 소식 하나를 들었다. 최근 몇몇 한국인들이 자발적으로 여전히 방사능 노출의 위험이 있는 후쿠시마를 방문한다는 사실이다. 실제로 인터넷 검색창에 ‘후쿠시마 여행’이라고 치자 적지 않은 블로그들이 떴다. 또 일본 내에서도 일부 후쿠시마 출신 사람들이 ‘후쿠시마 방문 프로그램’을 만들어 언젠가 다시 돌아갈 자신들의 고향을 잊지 않고자 노력하고 있다는 뉴스도 접했다. 후쿠시마를 여행한 블로거는 자신의 방문이유를 이렇게 적어놓았다. “원자력 발전의 혜택을 받고 있는 건 우리 모두지만, 뒤처리는 일부의 몫으로 돌아가는 것에 죄책감을 느꼈다. 그래서 떠나기로 했다”. 동일본 대지진이후 후쿠시마는 여행제한지역으로 지정됐지만, 그 여행자는 도쿄까지 비행을 탄 뒤 다시 기차를 갈아 타 후쿠시마현으로 향했다.
기억하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동하는 사람이라 여겨지는 세상. 광화문 한복판을 지날때마다 가슴이 아려지는 것도 같은 이유다. 세월호 침몰이라는 비극의 사고를 잊지만 말아달라고 호소하는 희생자들을 보고 있노라면 행동하는 사람의 부재를 방증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뒤를 돌아볼 여유는커녕 제 몸 하나 건사하기 힘든 세상에서 무언가를 망각하는 건 어쩜 자연스러운 일인지도 모르기 때문에. 그런 점에 만화 ‘체르노빌의 봄’에서는 더욱더 행동하는 자의 힘이 느껴지는 작품이다. 그림을 그리는 것 말고는 할 줄 아는 게 없었던 그들은 그들의 방식대로 세상에 목소리를 냈다. 자국 내에서 만평 등으로 안전하게 반핵운동을 할 수 있었음에도, 위험을 무릅쓰고 직접 위험 속으로 뛰어든 것이다. 어떤 교훈이나 훈계없이 담담하게 펜으로 현재 체르노빌의 모습을 노트에 옮겨 닮았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점은 작가들의 고민과정을 책에 온전히 담았다는 사실이었다. 그들은 위험에 대한 두려움, 그리고 체르노빌이 예상한 모습과 달라 혼란을 느꼈다는 점을 솔직하게 화폭에 녹여냈다. 그런 과정에서 체르노빌은 독자에게 진실되게 그리고 가깝게 다가왔다.
책에서 체르노빌을 가장 잘 표현한 문장은 책 말미에 나온다. “인간을 쫓아낸 땅. 아니, 인간들이 나간 땅. 체르노빌에서는 인간이 낙원을 떠났다.” 효율만을 보고 마구잡이식 발전을 해온 인간들이 결국 삶의 터전을 잃었다는 뜻이 아닐까. 늘어나는 소비에 대해 인간들은 언제나 공급을 늘리기 급급해 화를 자초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작가 엠마뉘엘 르파주는 자신의 자녀들과 체르노빌의 아이들을 연결지으며 짧고 강렬하게 책을 마무리한다. 그림 속 사람들이 여전히 살아있냐는 아들의 질문에, 작가는 체르노빌의 한 폐가에서 즐겁게 아이들과 뛰어노는 장면을 떠올리는데 아이들은 죽음의 땅을 딛고 있다는 사실을 잊은 듯 해맑기만 하다. 어쩌면 낙원이란 거대 담론이나 첨단 과학에서 만들어지는 게 아니라 서로간의 어울림에서 비롯되는 게 아닐까.
체르노빌의 봄
신재경
이상하게 손이 안 가는 작품이었다. '북새통'에서 처음 보았을 떄에도 뭔가 불편한 느낌에 건드리지 않았다. 아마 제목으로부터 추측되는 내용을 다루기에는 작화가 너무 서정적이고 아름답다는 생각 때문이 아니었을까. 세미나에서 이 작품을 선택한 것에도 의문을 가졌었다. <체르노빌: 금지구역>이나 <세슘137>이 체르노빌에 대하여 얘기하기에는 더 괜찮지 않을까.
작가는 체르노빌 방문을 계획할 때부터 돌아오기까지를 솔직하게 그리고 있다. 마치 도망가기 위한 방편일 지도 모를 손의 통증을 얘기하고 있고 막상 체르노빌 현장에서 사고의 절박함과 처참함을 느끼는 데에 한계가 있었다는 점도 설명한다. 스스로도 이렇게 평화로운 장면을 스케치하고 있어도 되는 것인지 반문하고. 돌아가서 사람들에게 내어놓을 무언가가 부족하는 생각에 고민한다.
어떤 의도를 가지든 사건의 현장에 잠시 머무르거나 둘러보는 '체험'을 통하여 진실을 파악할 수 있을까. 그런 의미에서 작가가 서둘러 결론내리거나 설득하려하지 않고 "솔직히 제가 보고 올 수 있었던 것은 이 정도에요."라고 고백해주어 고마웠다. 과장하지 않고 실제의 위험과 현장에서 체감할 수 있는 위험의 괴리에 대해서 바르게 얘기해주어 반가웠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사람이 버리고 떠난 자리를 자연이 슬그머니 제 것으로 만드는 장면만큼 아름다운 것은 없는 것 같다.
<< 엠마뉘엘 르파주 인터뷰>>
“예술가로서 나는 ‘증언자’의 역할을 한다”
<체르노빌의 봄> 작가 엠마뉘엘 르파주
박희정
1986년 4월 26일 이른 아침, 우크라이나 체르노빌의 원자력 발전소에서 제4호 원자로가 폭발했다. 치명적인 방사능 오염물질이 대기 중으로 흘러나왔고, 피폭으로 인한 사망자는 1986년에서 2004년까지 100만 명에 가까운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체르노빌 핵발전소부터 반경 20km이내는 허가 없이 들어갈 수 없는 ‘금지구역’이다.
체르노빌 참사가 발생한 지 꼭 20년 후, 프랑스의 만화가 엠마뉘엘 르파주(EMMANUEL LEPAGE)는 사회참여적인 예술가들의 연대모임인 ‘행동하는 데셍’(association les dessin'acteurs) 일원으로 체르노빌의 금지 구역을 방문했다.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프랑스에서 2012년 11월 르포르타주 만화 <체르노빌의 봄>(길찾기)을 내놓았다. 이 작품은 지난해 한국에서도 발간되어 큰 주목을 받았다.
엠마뉘엘 르파주가 8월 13일부터 17일까지 열린 17회 부천국제만화축제의 초청으로 한국을 방문했다. 부천에서 그를 만나 <체르노빌의 봄>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독자를 체르노빌 속으로 데려다 놓다
엠마뉘엘 르파주는 1966년 프랑스 서부 브르타뉴 주에 속한 생브리외 (Saint-Brieuc)에서 출생했다. 진보적인 성향의 도시로 유명한 렌(Rennes)에서 대학시절을 보냈고, 건축학을 전공했다. 프랑스의 대표적인 그래픽 노블 작가 중 하나이며, 대표작 중 하나인 <무차초>(muchacho, 스페인어로 ‘소년’을 뜻함)는 <게릴라들>(2011, 씨네21북스)이라는 제목으로 한국에도 소개되어 있다. <게릴라들>은 남미 사상 가장 잔혹하고 타락했던 독재정권인 소모사정권을 무너뜨린 니카라과 혁명을 배경으로 한 작품이다.
지난해 한국사회에 소개된 <체르노빌의 봄>은 2011년 3월 발생한 후쿠시마 핵발전소 참사에 대한 관심과 맞물려 큰 반향을 얻었다. 프랑스에서 발간될 당시(2012년)에도 평단과 독자 양쪽에서 모두 찬사를 이끌어냈다. 입소문을 통해 작품이 꾸준히 팔려나갔다. 그러나 그것은 이 작품이 단순히 ‘체르노빌’을 다루었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체르노빌의 봄>은 펼치는 순간 매우 강렬한 그림으로 시선을 사로잡는다. 작업기간만 4년 가까이 걸렸다는 것이 납득될 만큼 다채로운 기법과 화풍으로 담은 그림들은 압도적인 느낌을 준다. 그러나 이 책은 단지 입이 쩍 벌어지는 볼거리를 주면서 독자를 구경꾼으로 만들고 싶어 하는 작품은 아니다. 일련의 시각적 이미지들은 독자에게 작가가 느꼈던 감정을 환기시킬 수 있도록 정교하게 짜여있다.
이를테면, 르파주가 그림을 그리기 위해 들어간 오염된 숲에서 죽음의 공포를 느끼는 장면이 있다. 당장 그의 눈에 보이는 것은 찬란한 숲이다. 눈으로는 죽음의 그림자조차 볼 수가 없다. 하지만 죽음은 도처에 깔려 있다. 르파주는 우리에게도 익숙한 후크선장과 악어의 이야기를 끌어들여, 그가 체르노빌의 숲에서 느꼈던 ‘보이지 않는 죽음’을 독자가 느낄 수 있도록 만든다.
후크에게 악어, 곧 ‘죽음’은 물속에 있어 곁에 다가와도 보이지 않는다. 죽음이 다가온다는 사실은 시계가 똑딱대는 소리로 감지된다. 마찬가지로, 방사능으로 오염된 숲에 선 르파주에게 죽음은 방사능 측정기가 틱틱 거리는 소리로만 감지될 뿐이다. 측정기의 수치가 고조되고, 르파주가 느끼는 공포감이 강렬해지자 숲은 마치 이빨을 드러낸 악어처럼 표현된다.
또한 르파주에 따르면 빛은 ‘삶’과 관련이 있다. 작품 초반에는 무채색의 사실적인 그림으로 시작되지만 작품이 진행될수록 색이 더해지며, 그가 받은 인상을 더 적극적으로 담아내게 된다. <체르노빌의 봄> 도입에서 독자들이 어둡고 평면적인 죽음의 이미지를 많이 느끼지만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찬란한 아름다움과 삶이 주는 에너지에 감탄하게 되는 이유이다.
독자의 지성을 믿고 ‘열린 작품’ 지향해
르파주는 체르노빌행이 “처음에 ‘행동하는 데셍’에서 파견된 여행이었고, 그래서 주어진 구체적인 목적과 메시지가 있었다면 실제 여행과정에서 그것은 더 복합적인 여정이 되었다”고 회고한다.
“원래 처음 체르노빌에 갈 때는 내 만화책을 내는 것을 목적으로 하지 않았어요. 현장의 크로키를 가져오는 게 목적이었지요. ‘행동하는 데셍’은 십년쯤 전에 도미니크라는 만화가에 의해 창립되었고, 만화책을 만들거나 엽서를 만드는 등 그림이 들어간 작업물을 만듭니다.
매우 구체적인 현실을 지원하기 위해 만들어진 단체이지요. 이를테면 체르노빌에 갔을 때 크로키 책을 내기 위해 갔으며, 돌아와서 동행했던 화가 질다스와 책을 냈습니다. 여기에 대한 저작권은 ‘행동하는 데셍’에 있고, 수익기금은 방사능오염지역의 아이들을 위해 쓰입니다. 아이들이 적어도 3주 혹은 한 달에 한번 그 지역을 떠나서 맑은 공기를 마시고 자연을 누리도록 지원하는 데 쓰이지요.
‘행동하는 데셍’을 통해 체르노빌에 가게 된 개인적 동기는 아틀리에 ‘바깥’으로 나가서 가장 끔찍한 현실을 직면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그 도전에 직면하는 것 자체가 동기였지요. 그러나 보다 근원적으로는 핵문제로 고통 받는 아이들을 도와야 한다는 분명하고 구체적인, 그리고 참여적인 정신이 바탕에 깔려 있었습니다. 그런데 현지에 가서 보게 된 것은 내가 예상했던 것과 너무나 달랐고, 운동가의 방식과 예술가의 방식은 다르다는 것을 생각하게 되었지요.”
체르노빌의 어린이를 지원하기 위한 프로젝트를 구상한 ‘행동하는 데셍’은 핵에너지에 대한 반대 입장이 명확했다. 르파주를 포함한 모임 구성원들이 체르노빌에 대해 가지고 있던 이미지는 죽음, 공포, 황폐함, 절망만이 지배하는 곳이었다. 그러나 현장에 도착한 이들이 목격한 것은 아름다운 숲과 자신들과 다를 바 없는 사람들이 내뿜는 활기찬 삶의 기운이었다.
“후쿠시마와 체르노빌 등 방사능 오염지역의 사람들에 대해 우리는 흔히 밤에 빛이 난다든지, 세 번째 팔이 날거라든지, 물집이 생긴다든지 식으로 돌연변이가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상대를 보지 않았을 때 우리의 공포심을 오히려 투사하지요. 나에게 체르노빌은 우리의 공포의 거울이었습니다.”
물론 르파주가 체르노빌에서 목격한 희망적인 이미지는 역설적으로 그곳에서 발생한 핵발전소 참사가 얼마나 끔찍한 일인지를 강조하는 것이기도 하다. 르파주는 “죽음이 평화로운 얼굴을 가졌다는 사실이 더 끔찍했다”고 말한다.
르파주는 그가 목격한 것을 전달하는 데 있어서 운동가(activist)와 예술가(artist)의 태도를 구분 짓고, 자신은 후자의 태도를 취하고 있음을 분명히 했다. 이를테면 핵문제에 대해 반핵운동가의 입장이라면 핵발전은 이러이러한 문제들이 있다고 “메시지를 바로 말하는” 방식을 취할 것이다. 그러나 르파주가 생각하는 예술가의 방식은 “상황의 복잡성을 설명”하는 데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예술가로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담론을 만들거나 교훈을 주는 게 아니라 그것을 환기시키는 것입니다. 내가 갔던 곳, 경험했던 것을 무대화하고 이야기를 그려내는 것이지요. ‘진실이 이것이다’라고 말로써 이야기할 수는 없지만 ‘증언자’ 역할을 함으로써 사람들이 자기가 알아서 판단할 수 있도록 하는 것입니다. 판단에 대해서는 독자의 자리를 남겨두는 것으로 내 역할은 충분합니다.
책을 읽고 독자가 자신이 보고 느낀 것을 드러내는 것이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굳이 거기에 작가의 의견을 덧붙이는 것은 필요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독자가 창작의 과정에 참여하게 하는 것이지요. 나는 닫혀있는 작품을 만들고 싶지 않습니다. 독자가 그 작품을 ‘자기화’할 수 있는 것이 중요합니다.”
르파주는 “책을 만들 때 중요한 것은 독자의 지성을 믿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는 독자가 능동적으로 작품을 해석할 것을 신뢰하고 그 요소를 준다. 그에게 있어서 ‘독자’는 작가가 만들어낸 창작물을 일방적으로 소비하는 대상이 아니다. 창작은 독자가 해석을 함으로써 완성된다. 만화창작은 독자에게 이야기를 하는 것인데, 그 이야기는 일방적인 독백이나 연설이 아니고 존중할 수 있는 상대와의 ‘대화’인 것이다.
정직하고 정확하게 삶의 진실에 접근하다
르파주가 <체르노빌의 봄>에서 그려내고자 노력했던 ‘상황의 복잡성’은 ‘실재’라는 말과도 연결이 된다. 이번 부천만화축제에서 르파주는 <만화, 실재를 그리다: 르포 혹은 미시사>라는 대담에 참여했다. 대담을 준비하고 진행한 만화평론가 조익상 씨는 ‘실재’에 대해 이렇게 설명한다.
“실재(the real)는 현실(reality)이라는 말이 담아낼 수 없었던, 또한 어떤 언어로도 표현할 수 없는 현실의 영역을 가리키기 위한 용어다. 실재는 그 단독으로는 도무지 포착되지 않으며 상상과 상징에 의해 구성적으로만 존재를 가늠할 수 있다. 따라서 실재라는 말을 쓸 수 있으려면, 그것을 그대로 투명하게 보고 보여주는 일은 불가능하다는 점을 먼저 인정해야만 한다. 그런 다음, 실재라는 이름으로 포착하는 대상을 표현하기 위해 온갖 애를 써야 한다.”
우리가 현실이라고 생각하는 어떠한 상황이나 생각들도 ‘실재’를 담고 있지는 못하다. 우리는 흔히 “현실을 알아야 한다”는 말을 쓴다. ‘현실’이라는 말은 중립적이고 분명한 실체가 있는 용어 같지만 사실은 그 사람이 한 사회에서 어떤 위치에 서 있는가에 따라 달리 설명되고 달리 해석될 수 있다.
이는 ‘객관성’이라는 말이 주는 착각과도 비슷하다. 우리는 ‘객관성’이라는 말을 들을 때 치우치지 않는 완벽한 중립의 상태를 떠올린다. 그러나 그것은 가정일 뿐이다. 실재라는 말을 쓰기 위해서 실재를 그대로 보고 보여주는 일이 불가능함을 인정해야 하듯이 객관성에 대해 말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객관적이기 어렵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우리가 편향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중립을 가장할 때 그것은 무서운 결과를 낳는다. 이를테면 우리는 거대언론이 객관과 중립을 부르짖으면 행사하는 폭력에 대해 알고 있다. 그래서 르파주는 <체르노빌의 봄>에서 자신이 서 있는 위치를 정확히 드러내는 일에서 출발한다.
르파주는 대담 발표문에서 이렇게 말한다. “정직하고 정확하기 위해, 나는 내가 어디서 왔는지 분명히 한다. (책속에서) 내가 가족과 함께 있는 장면이나, 나의 의심과 두려움 그리고 약점을 그린다면, 이는 내가 주관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으며 또한 커다란 진리를 밝히는 것이 내 의도가 아님을 보이는 것이다.”
엠마뉘엘 르파주는 일주일간의 한국 방문 기간 동안 짬을 내어 광화문의 세월호 유가족 농성장과 미군기지 건설반대운동을 하고 있는 제주도 강정마을을 찾았다. 가는 곳마다 그는, 대학 때부터 지니고 다니는 것이 버릇이 된 스케치북에 열심히 크로키를 채워 넣었다. ‘실재’에 가까이 다가가려 애쓰는 작가의 눈에 비친 한국사회의 모습이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