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애견 이야기 4 (함께 살기 위하여)
4. 사람과 애견이 함께 살기 위하여
규칙 세우기
사람과 애견의 공통점이 있다면 사회적인 동물이라는 것과 위계질서를
통하여 더불어 살아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공통점은 사람과 애견 사이에서도 필요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함께 살기위하여 법을 마련하였고, 함께 그 법을 지키며, 법위에 도덕적인
삶을 살 때에 법의 보호를 받으면서 선하게 살 수 있듯이, 사람과 애견들
사이에도 이와 같은 원칙을 세워서 애견이 해야 할 행동과 하지 말아야
할 행동에 대하여 가르쳐야 하고, 습관화가 되도록 모든 가족들이 협력
하여야 서로 마음 상하지 않고, 힘들지 않게 될 때에 사람과 애견의
관계는 원만하게 유지되며, 좋은 관계로 함께 살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도 사람들을 이러한 원칙을 통하여 다스리시고 계시면,
모든 만물들은 이러한 원칙을 준수하여야 생명을 오래 지킬 수 있으며,
자신의 존재에 대하여 알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사람으로 하여금 인생을 통하여 모든 관계 속에서 이러한 원칙을 깨닫게
하시기 위하여 수많은 고난을 허락하시고 계시며, 이러한 인생의 고난을
잘 이겨내고, 하나님을 인정하고, 상을 준비하시고 계시는 것을 믿는 다면
반드시 하나님의 자녀로 인정하여 주실 것입니다. ( 히브리서 11장 참고 )
사람과 애견 사이에 원칙은 사람이 세우게 되며, 애견에게 끌려가면
곧 불행이 시작될 것입니다.
애견들은 사람과 다른 것이 이성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신의
욕구를 채우는 것에 모든 관심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채움은 자신이
부모와 같이 생각하는 사람을 통하여 하려 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이치를 생각하시고, 귀엽고 예쁘다고 항상 좋은 것을 주려고만
한다면 애견들은 이러한 마음을 이용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관계는 머지않아 고정화(setting)된 모습으로 기정사실로
굳어지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실들을 염두에 두고, 오랫동안 서로에게 좋은 관계를 유지하기
위하여 반드시 서로 지켜야 할 원칙(법)을 세워야하고, 그 원칙을 받드시
지키도록 반복적으로 훈련시켜야 합니다.
이러한 훈련은 먹이를 통하여, 또는 칭찬을 통하여 애견과 관련 된 모든
사람들이 일관성 있게 할 때에 가능하게 되며, 어릴 때부터 많은 관심과
사랑으로 키워야 가능하게 됩니다.
이러한 일들에 관하여 알고, 애견을 키울 것인지, 아닌지를 결정해야 하고
일단 키우기로 결정하였으면, 끝까지 책임을 져야 합니다.
저의 어린 시절에 아버님께서 개를 좋아 하셔서, 대형견을 두, 세 마리
키울 때가 있었습니다. 지금까지도 기억이 나는 녀석들이 있는데,
초등학교에 다닐 무렵 서울로 쌀을 팔러 가셨던 아버님께서 큰 개에게
입마개를 해서 데리고 오신 기억이 있습니다.
아버님께서 말씀하시는 바로는 사람을 물어서 도살장으로 가는 녀석을
아버님께서 저렴한 가격으로 구입하셨고, 입마개를 하여 데리고 오셨다.
하시면서 근처에 가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어린 마음에 친해지고 싶어서 근처에 접근을 하면 녀석은 으르렁 거리며
하얀 이빨을 보이는 것이었습니다. 이러한 녀석이 야속했지만, 별다른
방법이 없던 저는 그렇게 몇 개월을 지냈고, 차츰 차츰 둘에 사이는
가깝게 되었고 약 1년 정도의 시간이 흘러서 접촉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 후로는 자신의 주인으로 받아 들였고, 순종적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언제나 자신의 제 일 순위는 언제나 저의 아버님이셨습니다.
마치 자신이 죽을 고비에서 건져 주었음을 알듯이, 그랬고 장난으로
아버님을 해하려는 행동을 하는 사람은 공격하며 보호하는 모습을
보였었습니다. 이 아이의 이름은 “아리” 이었고, 셔퍼트 수놈으로 훈련을
받은 증서를 갖고 있었던 녀석 이었습니다.
후에 셔퍼트 암놈을 데리고 오셔서, 아리와 짝을 지어 주셨는데, 짝의
이름은 “페리” 이었습니다.
그리고 두 녀석은 서로를 의지하며 새끼까지 낳고 잘 지내던 중에
어느 날 아버님을 따라서 두 녀석이 집을 비운사이에 미친개가 들어와
새끼를 물어 죽였고, 겨우 한 녀석이 부엌 찬장 밑으로 피하여 살아
남을 수 있었습니다.
이러한 일들이 벌어지는 사이에 마침 집으로 돌아온 아리와 페리가
미친개를 공격하여 물어 죽였고, 이러한 과정에서 페리가 물려서 얼마
지나지 않아 죽게 되었고 이후로 아리는 몇 년을 더 살다가 감기에
걸려서 죽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이러한 일들을 지켜보았던 저로서는 이들을 보면서 그 때는 몰랐지만,
인생과 애견들의 삶이 크게 다르지 않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왜 이렇게 오랜 세월이 흘렀어도 이러한 기억은 남아 있을까요? !
그것은 아리가 훈련을 받았었고, 그 훈련을 통하여 주인을 어떻게
섬겨야 하는지를, 그리고 주인의 말에 순종해야한다는 사실을 알았던
셔퍼트 아리는 지켰고, 이러한 행동에 대하여 칭찬과 먹 거리로 채워
주었던 아버님께 대하여, 무한 충성심을 보이는 아리와의 사이는 신뢰
하는 사이로 돈독하게 되어 좋은 관계를 유지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과 사람사이의 관계도 마찬가지입니다.
자신이 알지 못한다고 하여 하나님을 부정하게 되면 모든 것들을
주관하시면서 사람들에게 때를 따라서, 필요를 공급하여 주시는
하나님께서 모든 사람들이 서로 행복하도록 본으로 믿음의 사람
아브라함을 세우셨고, 이 믿음의 조상을 통하여 이스라엘이라는 나라를
모든 만민 가운데 맏이로 부르셨고, 본을 보이도록 십계명, 율법, 규례를
주셔서 삶의 원칙을 세워주셨음에도 불구하고 불순종하여 현재까지
두 차례에 걸쳐서 나라가 없는 것과 같은 시기를 통하여 벌을 내리셨고,
앞으로 한 차례의 불순종의 징계를 거쳐서, 예수님의 재림과 통치 시기가
시작될 것입니다. 이 시기에 예수님께서 모든 민족들을 벌하시고, 순종을
가르치실 것이며, 불순종하는 민족들에게는 가뭄과 쇠 지팡이로 다스리실
것에 대하여 성경말씀을 통하여 말씀하시고 계십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심판으로부터 벗어나려면 아직 시간이 있을 때에
겸손히 하나님의 말씀을 살피며, 순종의 자리로 나와야 할 것입니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하나님 나라의 축소판입니다.
단지 이러한 이치를 깨닫지 못하는 사람들이 삼차원의 자신의 지식을
따라서 하나님을 알려고 하여, 눈이 멀게 되면서, 하나님에 대하여
성경말씀에서 모든 것들을 말씀하시고 계심에도 볼 수 없게 된 것입니다.
15 그대는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고 있습니다.
성경은 그리스도 예수를 믿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대에게 구원에 이르는 지혜를 줄 수 있습니다.
16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영감으로 된 것으로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합니다.
17 성경은 하나님의 사람을 유능하게 하고,
그에게 온갖 선한 일을 할 수 있게 하는 것입니다.
디모데후서 3 : 15 ~ 17절 - 새번역성경
사랑하는 사이에는 비밀이 없습니다. 그리고 사랑은 언제나 오래 참는
것으로 시작하여 참는 것으로 끝납니다.
이러한 원칙은 사람과 동물들 사이에서도 꼭 같이 적용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좋은 관계는 항상 서로 지켜야할 것들을 지킬 때에 가능하게
되며, 이러한 것들이 쌓여 서로를 신뢰하게 되는 것입니다.
애견을 반려견이라 합니다. 이 말은 사람과 더불어 사는 동물을 뜻합니다.
이 말은 부부사이를 뜻하는 말로도 사용되어, 평생 함께 한다는 뜻으로
반려자라는 말로 쓰이고 있습니다.
이러한 말들을 통하여, 인생을 살피면 많은 것들을 깨닫게 됩니다.
반려 견을 선택할 때에 자신이 끝까지 상대를 책임질 수 있는가? ! 등등
사람들이 배우자를 선택할 때에 생각하는 사항들을 생각하면서 선택을
해야 서로 행복할 수 있는 확률이 높아진다는 사실을 잊지 마세요.
배변훈련
어릴 때에 아버님께서 돼지를 몇 마리 키우실 때가 있었습니다.
그 때에 저는 보았습니다. 더럽다는 돼지도 배변을 모두 치워주고,
새로운 짚이나, 등교를 넣어주면 한 동안은 배변을 자신이 자는 곳에서
가장 먼 곳, 구석에서 배변을 본다는 것을 보았으며, 이러한 시간은
생각보다 길었고, 자신이 어찌할 수 없는 상황이 벌어지면서 배변과
함께 자신의 잠자리를 갖게 된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좁은 공간 안에서 자신에게 주어진 환경에 적응할 수밖에 없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이러한 사실을 확인할 수 있는 것이 대형견의 경우 자신이 묶여 있는
공간에서는 배변을 하지 않으려는 본능이 있음을 통하여 알 수 있습니다.
소형견과는 다르게 대형견들은 자신을 지키고, 영역을 확보하려는 본능과
함께 자신이 거주하는 곳에는 흔적을 남기지 않으려는 생존본능이
소형 견에 비하여 강하게 나타납니다.
이러한 것들을 확인한 것은 동물병원을 찾는 대부분의 대형견 견주들께서
하시는 말씀을 통하여 확인 하였습니다.
매일 산책을 시켜야 하는 나름의 고통을 하소연 하시는 분들을 통하여
이러한 일들을 확인하였고, 병원을 들어서는 거의 모든 애견들이 주변에
냄새를 확인하고, 자신의 소변을 그 위에 뿌리는 행동을 하거나, 아애
제대로 볼일을 보고 있다는 것이 그것입니다.
즉 영역에 대한 본능이며,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려는 것으로 자신이
거하는 곳에서 하는 행동과는 완전히 상반된 행동을 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자신의 영역 안에서 다른 개체가 이러한 행동으로 자신의 영역을
흐리려하면 곧바로 함께 경쟁하듯이 그렇게 무분별한 영역의 표시를
한다는 것에 대하여 평소와 다른 행동임을 알고 이에 대처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러한 행동은 서로가 만나고 얼마간 하지만 몇 분이 지나지
않아, 곧 멈출 것입니다. 이런 몇 분을 참기 힘든 분들은 바로 분리시키면
한, 두 차례 더 하다가 이러한 행동을 멈출 것입니다.
어린 애견의 배변 습관은 처음에는 패드를 몇 장씩 깔아 주고, 시간이
경과하면서 서서히 줄여 주는 방법으로 하고, 패드가 아닌 곳에 배변을
하였을 경우에는 바로 치워주시고, 냄새를 제거하여 주시는 것으로
패드가 아닌 다른 곳에 배변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가르쳐 주어야
하며, 이러한 일은 반복적으로 행할 때에 서서히 습관화가 되어서
원하시는 곳에 배변을 하게 될 것입니다.
사람들이 어릴 때에는 신경감각이 제대로 발달하지 못하여 기저귀를
이용하여 처리하는 것과 같이 애견들도 어릴 때에는 감각기관이 완전하게
발달하지 않은 상태라는 것을 이해하시고, 이에 따라서 대처하시면
자신과 함께 하는 생활 습관을 함께 익힐 수 있을 것입니다.
제가 동물 다루는 직업을 선택하여 일하게 된 지 벌써 6년이 되어 가고
있는데, 이러한 일을 하면서 느끼는 것은 애견들의 대부분에 성격이
주인을 많이 닮았다. 라는 것을 봅니다. 마치 부부가 되어 몇 십 년을 함께
살면 얼굴 형태부터 말투, 성격 등이 비슷하여 지는 것과 같이 그렇게
닮아 있는 모습을 보면서 체질에 대하여 함께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사실 체질은 타고 나는 것으로 고쳐지지 않는다. 라는 생각을 많이 합니다.
하지만 이러한 현상들을 보면서 저는 체질은 음식, 생활습관, 생활환경
등에 따라서 생존을 위하여 변화되고, 그에 따라서 면역력도 함께 반응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생명체들에게 필요를 따라서, 필요한 것들을 공급해
주시고 계십니다. 그리고 어떠한 환경이든 적응하는 능력을 주시고
계시며, 이러한 능력으로 생명체들은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급격한 변화는 적응하기도 전에 생명체들의 신진대사에 불균형을
주어 생명을 유지해나가는데, 많은 에너지를 쏟게 되고, 이러한 시간이
길어지면 강한 스트레스와 신진대사의 막힘으로 생명을 잃게 됩니다.
이 모든 것들을 주관하시고 계시는 분이 하나님이시고, 이러한 하나님을
인정하고 받아 들여서 순종할 때에 모든 일들은 형통하게 됩니다.
사람의 몸을 주장하는 것은 영혼으로 마음으로 표현되기도 합니다.
그리고 그 마음 중에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여, 하나님과 같은
마음을 갖게 되었는데, 그 마음은 바로 양심이라는 마음입니다.
애견들에게도 이러한 영혼이 있습니다. 그래서 그들도 자신들에게
사람들이 어떻게 대하느냐? ! 에 따라서 자신들의 행동을 하고 있는
것으로 특히 어릴 때에는 스폰지가 물을 빨아들이는 것과 같이 그렇게
빠르게 적응한다는 사실입니다.
이러한 이치를 생각하면서 배변습관도 길들이는 것이 중요합니다.
장소 구별하기
사람들은 자신이 선택하여 자신이 거할 장소를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지만
애견들은 그렇지 못합니다.
사람과 함께 살기 때문에 모든 것은 주인의 생각과 마음에 따라서 자신이
거할 장소가 결정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애견을 키우시는 분들은 이러한 점들을 고려하여 자신과 함께
살게 될 애견을 어떠한 장소에서 어떻게 키울 것인지를 신중하게 생각하여
어릴 때부터 교육시키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리고 그 교육은 반드시 일관성 있게 하셔야만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성견이 되면서 혼란을 겪게 되고, 이에 따라서 주인의 말에 불순종하게
되어 함께 사는 것이 즐거움이 아니라, 많은 스트레스 속에서 함께
할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러한 방식은 모든 만물들을 존재하게 하신 하나님께서 통치하시는
방법으로 방종과 구분하여, 만물들을 사랑하시는 방법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러한 방법으로 사랑하시기에 모든 만물들은 질서를 지키며
자신들에게 주어진 삶에 방식과 영역을 따라서 사는 것이고, 이러한
질서는 서로에게 유익을 주면서 공존하게 되는 것입니다.
사람과 집짐승들도 이러한 하나님의 통치 규칙을 지킬 때에, 서로에게
필요를 채워주면서 즐겁고, 행복할 수 있을 것입니다.